(제 30 회)

제 4 장

8

 

홍진은 훨훨 날아가는 사람처럼 빨리도 달렸다. 배등령마루를 향해 조금도 숨차하는 기색이 없이 그냥 내닫기만 한다.

《홍진동무, 도대체 어딜 가는거예요? 동문 가서는 안될 사람이예요.》

순미는 안타깝게 손을 저으며 목청껏 웨쳤다. 홍진이 우뚝 멈춰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뻘겋게 충혈되고 리지적이던 두눈이 순미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홍진동무, 그렇게 말없이 떠나가는 법이 어데 있어요? 난 동무를 절대로 보낼수 없어요.》

순미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홍진은 여전히 분개한 표정이다.

《아니, 난 가야겠소. 동무는 날 좋아하지 않소. 이젠 아무런 미련도 없단 말이요!》

《그건 도대체 무슨 말이예요?》

《동무의 심장에 물어보오. 그럼 잘있소.》

홍진은 몸을 휙 돌려 배등령너머로 사라졌다.

《홍진동무―》

순미는 그를 따라갈수 없는 안타까움에 울면서 몸부림을 쳤다. …

《순미야, 왜 그러니?》

곁에 누웠던 어머니가 흔들어 깨워서야 순미는 정신을 차렸다. 그의 온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무슨 꿈이라도 꾸었니?》

《아니, 아니예요. …》

순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먼동이 터오고있었다.

(어쩌면 꿈도…)

얼마전에 안홍진으로부터 풍력발전기때문에 도에 갔다오겠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 꿈을 꾼 모양이였다. 비록 꿈이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이상해졌다.

(아니, 그 동문 절대로 그럴수 없어. )

그날 아침 안홍진은 자기가 결심한대로 동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작업반을 떠났다. 순미가 그를 바래기 위해 따라나섰다.

어느덧 가을빛이 떠돌기 시작한 넓은 풀판과 언덕들이 안식의 꿈에서 깨여나지 못한듯 한껏 기지개를 하며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있었다.

안홍진은 배등령어귀의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두손을 허리에 얹은채 한개의 염소작업반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엄청나게 규모가 크고 탁 트이게 새로 건설되는 방목지의 전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직은 건설중이여서 완성된 한폭의 그림처럼 뚜렷이 안겨오지 않고 곳곳에 보이는 방목쉼터마다엔 잎새 무성한 나무들만 설레이고있지만 그는 천지개벽을 한 풍덕땅의 전경을 똑똑히 보고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안홍진을 대하는 순미의 생각은 깊어만졌다. 콤퓨터조종실 설계도면의 첫페지에 변모된 풍덕땅을 배경으로 기쁨에 웃음짓는 처녀, 자기의 모습을 그렸던 홍진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그였다. 어째서 그의 가슴에 평범한 처녀에 불과한 자기가 깊이 새겨지게 되였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지금껏 순미는 홍진의 열정적인 눈빛을 이 땅을 열렬히 사랑하는 제대군인청년대학생의 심장에서 뿜어나오는 정열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어떤 대답을 그에게 주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순미는 자기의 미래도 사랑도 오직 고향땅에서만 꽃피울수 있다는것을 굳게 확신하고있었다. 고향을 떠난 그 어떤 미래와 사랑에 대해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어쨌든 그도 처녀인만큼 사랑에 대하여, 앞으로의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 순간마다 이따금씩 안홍진의 얼굴이 떠오르군 한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차피 이 고장을 떠나야 할 사람이였고 떠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였다. 높은 실력과 보다 넓은 지식은 결코 이 풍덕땅만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위해 바쳐져야 하였다.

(홍진동무, 전 동무의 그 마음만으로도 행복한 처녀예요. 그러니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용서해주세요. )

순미는 달아오른 얼굴을 선들바람에 한껏 내댔다.

《반장동무!》

홍진이 조용히 불렀다. 별스레 크게 울리는듯 한 목소리였다. 그래서인지 순미는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젠 들어가보오. 반장동무의 시간을 더 뺏고싶지 않구만. 아무래도 함께 갈수 없는 길이 아니요.》

그로서는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이겠지만 순미에게는 그것이 마치도 어떤 선고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반장동무, 왜 웃소?》

《…현실적으로 같이 갈수 없는 경우엔 같이 간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즐겁고 기쁠거예요.》

《참 좋은 말이요. 내 가슴깊이 새겨두겠소.》

《정말인가요?》

《정말이요. 내 어떻게 하든 풍력발전기를 해결해가지고 오겠으니 기다려주오.》

순미는 손에 들고있던 도중식사꾸레미를 내밀었다.

《고맙소.》

《그럼 잘 다녀오세요. 기다리겠어요.》

홍진은 힘찬 걸음으로 배등령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이 산굽이로 사라질 때까지 순미는 한자리에 그냥 서있었다. 홍진은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쩐지 마음이 아릿했다.

(홍진동무, 동무가 영원히 떠난 다음에도 전 동무를 잊지 않겠어요. 우리 고향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다 바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쉽게 잊을수 있겠나요. )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하여 눈굽이 젖어들었다. 허전해진 마음을 안은채 작업장에 이르니 식당근무처녀가 기다리고있었다.

《왜 여기 나와있어요?》

《반장동지, 어머니가 갑자기 집에 내려가셨어요. 웬일인지 몹시 불편해하시더군요.》

《아무 말씀도 안했어요?》

《아니요.》

작업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미의 마음은 무거웠다.

왜 갑자기 내려가셨을가. 좀처럼 알수가 없었다.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매번 안홍진을 대할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지군 한것이였다. 전번에 벽돌공장에 갔다가 함께 돌아왔을 때도 그렇고 오늘도 그를 바래우러 자기가 따라설 때도 어머니의 인상은 웬일인지 밝지 못했었다.

(왜 그러실가?… 혹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말고 고향의 딸답게 살아야 한다고 곱씹어 외우군 하던 어머니의 말도 한꺼번에 떠올랐다.

(어머니도 참, 이 딸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르시다니…)

한편 림송심은 허청허청 덕을 내리고있었다. 아침밥을 짓느라 분주히 오갈 때 순미가 식당에 들어오더니 홍진의 도중식사를 준비한다면서 닭알도 지지고 생더덕무침도 제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송심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기름을 더 두라느니, 양념을 아끼지 말고 푹푹 쓰라느니 하며 관심을 돌렸었다. 림송심은 딸이 무슨 눈치를 챌가봐 겁나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덮인 그늘이 딸이 하는 일에 지장이 될가봐서였다. 그 애들사이가 혹시 깊어질대로 깊어진걸 가지고 내가 이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던 그는 순미가 홍진을 바래우려고 자리를 뜬 사이에 그곳을 떠난것이였다. 도에 있는 순미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토론이라도 해보고싶었던것이다.

관리위원회에 들어서니 회계원처녀가 반겨맞아주었다.

《어머니가 웬일이세요, 아침일찍?…》

《도에 전화를 좀 할수 있겠지?…》

《그럼요, 어서 하세요.》

회계원처녀는 림송심을 종합사무실로 데려다주었다.

림송심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인차 련결이 되였다.

《누님이 갑자기 웬일이시오. 해가 서쪽에서 뜬게 아니요?》

림송철은 관리위원장한테 아무리 련락해도 종무소식이던 누이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것이 자못 신기한 모양이였다. 동생의 안부를 물은 송심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너무 경솔한것이 아닐가… 그래도 순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이 아닌가. …

그는 순미와 안홍진에 대한 자기의 속생각을 조용조용 설명했다. 아닐세라 림송철은 펄쩍 뛰였다.

《그것 보세요. 내 말을 안 듣더니 일이 어떻게 번져지는가.》

《글쎄 아직은 꼭 그렇다고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혹시 사람의 일을 알겠니?》

《알겠어요. 내가 인차 한번 내려가겠어요. 그때는 무조건 내 결심대로 하겠으니 그런줄 아시우.》

송심은 송수화기를 놓은 후에도 한참 멍하니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동생에게 다 털어놓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 마음은 가볍지 못했다.

그는 물론 순미가 안홍진이를 따라 훌쩍 떠나가버릴 그런 애가 아님을 잘 알고있었다. 문제는 행여 그 청년을 마음에 두었다가 현실체험을 끝내고 떠나가면 벌려놓은 일로 가뜩이나 속을 썩이는 딸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남길수 있는것이였다.

아무러면 이 풍덕땅에 순미와 맞세울 총각이 없을라구.

송심은 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 애는 결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틀 그런 철새가 아니였다. 지금도 오직 작업반을 꾸리는 그 하나의 일밖에 생각지 않는 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쫓으며 그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선 송심은 부엌에 들어가 자그마한 비닐바께쯔에 고추장을 가득 담아들었다. 그리고 자기를 대신해서 다섯마리의 돼지를 착실하게 관리해주는 옆집녀인을 만나 청년들을 내려보낼터이니 그중 살찐 놈을 한마리 덕으로 올려보내달라는 부탁을 한 후 집을 나섰다.

부지런히 건설현장을 향해 올라가는데 앞에서 누군가 소리쳐부르며 달려왔다. 딸이였다. 여태껏 방목지어구에서 기다리고있은 모양이였다. 미색달린옷에 파란 머리수건으로 머리를 꽁진 순미는 《엄마―》 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품에 안겨들었다.

림송심은 가슴이 찌르르 젖어들었다. 모성애의 뜨거운 정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순미는 어머니의 손에서 바께쯔를 빼앗아내더니 뚜껑을 열어보았다.

《고추장이군요.》

《힘들게 일하는데 입맛을 돋구어주자구…》

《그저 어머니가 제일이라니까. 그런데 반장한테 보고도 하지 않고 내려간건 큰 과오예요. 비판을 받아야겠어요.》

《어디 난생처음 딸의 비판을 받아보자꾸나.》

《호호호…》

모녀는 서로 팔을 낀채 즐겁게 웃었다.

림송심은 그렇듯 명랑하고 발랄한 딸앞에서 지금껏 자기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는 고충을 선뜻 털어놓을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순미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될것이였다.

《어서 가자꾸나.》

송심은 딸의 손목을 잡으며 이 말 한마디만 했을뿐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