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4 장

4

 

순미가 건설현장을 한바퀴 돌아보고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있었다. 야외식당에까지 들려보고싶었으나 그길로 덕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옥련이의 일이 심상치 않았다. 온 풍덕땅이 폭우피해를 입던 그날 밤에도 그는 능금골방목지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날에야 얼핏 나타났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앓는다는 소식이 뒤따라와서 다시 내려갔다는것이다.

그러니 순미가 배등령을 넘어간 그날부터 옥련이는 자기 초소를 떠나있은것이다. 어머니의 병이 심한 모양인가. 그렇더래도 련락이야 할수 있지 않는가.

순미가 옥련이네 집뜨락에 들어서니 마루에 나앉아 먼산만 바라보고있던 정보배가 깜짝 놀라며 토방을 내려섰다.

《우리 옥련이때문에 왔나?》

정보배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는데 방에서 옥련이가 나왔다. 웬일인지 그는 고개를 짓수굿한채 순미의 눈길을 피하려고 허둥거렸다. 순미는 정보배의 손을 잡아 마루에 다시 앉혔다.

《옥련이 어머니, 앓으신다더니 좀 어떠세요? 일만 일이라고 돌아치면서 찾아뵙지 못해 정말 미안해요.》

정보배는 손을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내 병이야 저 곱살한 딸을 둔 덕에 생긴건데 낫고 말고가 있겠나. 그런데 배등령넘어 갔다더니 언제 왔나?》

정보배는 슬쩍 순미를 건너다보았다.

《오후에 도착하는 길로 작업반을 한바퀴 돌아보고 내려왔어요. 어머니병문안도 하고 옥련이를 데려가려구요.》

《우리 옥련이가 염소반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인게지?》

《예.》

정보배는 한숨을 내쉬였다.

《우리 앤 이 에미때문에 자기가 망신을 했다는거네. 그래서 뭐 염소반에 올라갈 체면이 없다나.》

순미는 정보배의 말이 리해가 되였다.

《어머니, 그건 어머니의 잘못도 옥련이의 잘못도 아니예요. 그리고 망신은 또 무슨 망신이겠어요. 다 자식이 귀한 생각에 그러시는건데…》

순미는 사실 옥련이의 행동을 두고 생각이 많았다. 비바람이 불던 그날 밤 능금골방목지에서는 염소무리를 지키고 건설현장에선 새로 지은 건물들을 지키기 위해 반원들이 밤을 꼬박 새우며 전투를 벌렸는데 집에 내려왔던 옥련이는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방목지에서는 옥련이 어머니가 딸을 돼지종축반에 넣으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고있었다. 옥련이의 마음에 무엇인가 틈새기가 생긴것만 같아 몹시 불안하고 두려웠다.

《어머니, 병이 아직 낫지 않았으면 옥련이가 간호를 하게 하자요. 만약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이제라도 나와 함께 올라가는게 나을것 같아요.》

순미는 어머니곁에 쭈그리고앉아 마루바닥만 빠득빠득 긁고있는 옥련이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죽 생각이 많았으면 내앞에서 얼굴조차 들지 못할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머니, 옥련이와 난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향의 영원한 딸로 살자고 굳게 약속한 사이예요. 우린 지금까지 그 약속에 충실해왔어요. 아마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거예요.》

《나도 다 알고있네. 어쨌든 반장이 내려왔으니 내 마음이 한결 편해. 어서 함께 올라가보라구.》

정보배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머니, 앞으로도 우리가 고향의 딸답게 살지 못하면 무자비하게 채찍을 들어주세요.》

순미는 정보배에게 병치료를 잘하라고 인사를 한 후 뜨락을 나섰다.

그는 길가에 나와 한동안 서있었다. 옥련이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덕으로 오르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미는 걸음걸음 자신을 자책했다. 옥련이가 집으로 내려갔다는 김태식의 보고를 받았을 때 조금만 관심을 돌렸어도 오늘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을게 아닌가. 모든것은 작업반에 제기된 난관에만 집착하던 나머지 반원들의 생활에 낯을 돌리지 못한 자기탓이였다.

아픈 마음을 안고 걷던 순미는 주춤 그 자리에 멈춰섰다. 뒤에서 따라오던 류옥련이 갑자기 풀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쳤던것이다.

순미는 구태여 달래지 않았다. 그의 깨끗한 눈물이 마음속 고충을 깨끗이 가셔줄것만 같아서였다.

옥련은 눈물을 머금고 중얼거렸다.

《순미야, 나같은건 왜 데리러 왔니? 이제라도 그냥 내버려두렴.》

순미는 옥련이의 동그란 어깨를 살뜰히 끌어안았다.

《애두 참, 넌 신통히 어린애같구나.》

《순미야, 난 너에게 하나도 숨기고싶지 않아. 그동안 내가 겪은 마음속 고민을 네가 안다면…》

그는 어머니가 능금골에 올라왔던 사연부터 이야기했다. 순미의 표정은 점차 심각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

《어머닌 당장 선을 봐야 한다면서 앞을 막아서는데 막무가내였어. 폭우가 내린 다음날 아침 태식동무가 내려왔더구나.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까지 생각되더구나. 그가 능금골에선 폭우피해를 가시기 위해 모두 떨쳐나섰는데 우량종염소방목공이 집에 앉아있으면 어떻게 하는가고 을러메니 어머니도 어쩌지 못하더구나. 그런데 어머니가 심하게 앓는다는 소식이 인차 뒤따라왔어. 그 내막에 대해선 뻔히 짐작되였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어. 내려가보니 어머니의 병은 심화병이였어.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앓음소리를 내는데 글쎄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꾸짖더구나. 알고보니 내가 태식동무와 함께 능금골로 올라간 다음 도예술단에 있다는 그 총각이 어머니와 함께 배등령을 넘어왔다가 그냥 돌아섰다는거야. 어머닌 죽어라 하고 나를 몰아대더구나. 그 총각이 얼마나 멋쟁인지 아는가, 네가 한번 봤더라면 그 자리에서 혹했을게다, 코앞에까지 굴러왔던 복호박을 놓쳤다고 화풀이를 하는데 난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어머닌 이제라도 당장 도에 올라가 그 총각을 만나라는거야. … 어머니성화에 난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말았어.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어머니의 화병을 가라앉히자니 별도리가 없더구나. 그런데 네가 이렇게 찾아왔으니 난 정말 할말이 없어.》

순미는 선뜻 말을 못했다. 문제는 옥련이가 앞으로 우량종염소방목을 꽤 해낼수 있으며 그런 정신상태로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에 올라갈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노래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 고향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안고 심장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것이 아닌가.

순미는 심한 자책감에 모대겼다. 옥련이가 제일 가까운 동무라고 하면서도 그의 감정과 생활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 후회감이 갈마들었다. 노래란 그 어떤 기교이기 전에 이 땅을 사랑하고 가꾸는 심장의 메아리라는것을 그의 가슴에 심어주지 못한것이였다.

《옥련아, 난 정말 믿어지지 않는구나. 폭우가 쏟아지던 그밤 집안에 그냥 앉아있을만큼 너의 심장이 그렇게 차지였다는게 말이야. 그런 심장을 가지고 어떻게 고향에 대한 노래를 뜨겁게 부를수 있겠니. 넌 확실히 요즘 달라졌어. 태식동무의 일만 해도 그렇지…》

옥련은 고개를 숙인채 대꾸 한마디 못했다. 순미는 그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됐어, 긴말이 필요있니. 앞으로 실천만이 너를 증명해줄수 있다고본다.》

순미는 사실 더 많은 말을 하고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옥련이에게는 작업반이라는 집단이 있고 염소방목이라는 생활이 있었다. 그 집단과 생활은 한 인간을 가꿔주고 성장시켜주는 비옥한 토양이고 자양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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