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7

 

방목등판에서 집채같은 우등불이 타올랐다. 청년염소반원들이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맞으며 건설장에 지핀 우등불이였다.

권봉석은 관리위원회마당에서 활활 타오르는 그 불길을 바라보고있었다.

(풍덕땅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밤풍경이로군. …)

그는 순미가 과연 우등불을 크게도 지폈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순미가 시작한 일을 이악하게 밀고나가는것이 무척 대견했다. 며칠전 덕에 올라갔을 때 순미는 작업반 염소우리호동들과 건물들을 번듯하게 꾸려놓은 다음에야 콤퓨터화를 완성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하지만 권봉석은 그가 이미 마음먹은 자기들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저 위원장의 반대에 부딪칠가봐 안심시키기 위해 그랬을것이다. 이제 일을 내미느라면 저들이 내세운 목표가 얼마나 어망처망한것이였는가를 깨닫게 될것이다. 그저 은송목장만큼만 해놓아라. 그래도 우리로선 하늘의 별을 딴거지. …

《위원장동지, 순미반장이 염소작업반 전투현장에서 우등불모임을 가질것을 제기한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농장청년들이 덕으로 올라가면서 막돌 한개씩만 들고가도 대단한게 아닙니까. 그리고 우등불모임이 끝나면 작업도 염소반원들과 함께 하고…》

청년들의 우등불모임에 참가하려고 덕으로 올라가면서 박성복이 한 말이다.

(나도 빨리 올라가봐야겠군. )

권봉석은 갑자기 저로서도 이상할만큼 덤비기 시작했다.

그 시각 우등불모임에 참가한 농장청년들속에서는 서사시 《백두산》랑송이 한창이였다.

그중에서도 리경칠의 시랑송이 제일 볼만 하였다.

그는 이미 준비했던 홰불에 불을 붙여들고 자못 엄숙하고 름름한 표정으로 시를 읊었다.

 

          …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짚고 웨치는 김대장―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쑤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 집도 거리도 떨치고

          화염을 따라 오르고올라

          이 나라의 컴컴한 야공을

          뒤흔든다 뒤울린다!

          …

 

리경칠은 홰불을 높이 쳐들며 웨쳤다.

《저는 청년염소작업반 전투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고향, 우리 작업반을 꾸리는 전투에서 맨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겠다는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리경칠은 방목소대의 인원을 조절할 때 희망대로 건설소대에 편입되였다. 오늘 시랑송모임에도 자진하여 자기의 격정을 터뜨리는것이였다. 농장청년들은 크게 감동되였다. 청년염소반원들의 전투를 돕자는 웨침이 울려나오고 억세게 틀어쥔 주먹들이 밤하늘을 향해 수풀처럼 솟아올랐다. 야외등불로 대낮처럼 밝은 전투현장은 기세충천한 청년들의 열기로 끓어번졌다.

토끼작업반쪽에서도 집채같은 우등불이 타올랐다. 농장청년동맹에서는 한창 전투를 벌리는 그곳에서도 우등불모임을 조직했던것이다.

염소작업반의 건설속도에 청년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표시했다.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앉을 기초구뎅이를 다 파제끼고 이제는 막돌과 몰탈로 기초를 다지는 판이다.

한편으로는 건설장뒤쪽의 넓은 공지에서 블로크를 찍고있었다. 희문아바이가 책임진 석회로작업조에서 나오는 석회가 쉴새없이 덕으로 올라왔고 방목지에 흔한 석비레와 혼합되여 블로크무지는 날을 따라 높아만 갔다. 사방에서 여싸여싸 용을 쓰는 소리가 울리고 삽날마다에서 번쩍번쩍 불꽃이 튄다.

권봉석은 방목등판에서 기세를 올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듯 했다. 그는 덕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안은채 드달려 위원장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할일을 잊은 사람처럼 잠시 서있었다.

무엇인가 가지고 염소반으로 올라갈 생각이였는데… 권봉석은 공연히 책상빼람을 뽑았다 닫기도 하고 벽에 붙은 서류함문을 열어보기도 하였다. 그렇지, 순미한테 필요한것이 분명 나한테 있지 않는가.

그는 확신성있게 다시 서류함 문을 열었다.

맨 웃단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는 겉표지에 《노래수첩》이라고 쓴 보풀 인 그 수첩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수십년전 면양반건설의 나날 순미의 아버지가 그에게 준것이였다. 첫장을 번졌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라는 글줄이 씌여있고 그밑에 라준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면양반건설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날 휴식시간에 저마다 일어나 노래를 불렀는데 권봉석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라준이 작업복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가 자리에 앉자 수첩을 좀 보자고 했다. 라준은 빙긋이 웃으며 순순히 내주었다.

겉표지에는 노래수첩이라고 적혔는데 내용은 전혀 딴판이였다. 조국의 력사와 지리에 대한 상식들, 조국을 노래한 몇편의 시들, 인상적인 명문장들, 례를 들면 《노래소리 높은 곳에 행복이 창조된다》, 《목표를 높이 세우고 용감하게 돌진할 때 성공할수 있다》 대체 그러한것이였다.

그다음 면양반 사양관리의 기계화착상과 설계, 건물들의 구조, 형태를 놓고 사색한것들이 그려져있었다. 《진정한 사랑이 있고 생사운명 같이할 동지들이 있고 량심과 의리로 뭉친 집단이 있는 곳!》이라는 글줄도 있었다.

한마디로 단 한편의 노래도 씌여있지 않는 노래수첩이였다.

권봉석은 그런 노래수첩을 처음 보았다. 그는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사동무, 명색이 노래수첩인데 한 제목 적어넣읍시다.》

《반장동무가 적어넣소, 기념이 되게…》

권봉석은 생각끝에 풍덕땅청년들이 제일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노래 《내 고향》을 적어넣었다. 1절은 그가 쓰고 2절은 라준이 썼다. 깊은 생각에 잠겨 2절을 쓰고난 라준은 그밑에 《면양반건설의 날에 197×년 ×월 ×일 권봉석, 라준》이라고 또박또박 적어넣는것이였다. 그런 다음 수첩을 권봉석에게 내밀었다.

《기념으로 반장동무가 건사하오.》

《정말이요?》

권봉석은 기뻤다. 그 노래수첩의 류다른 의미를 자기 가슴에 깊이 새기고싶었던것이다. 이제는 어언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라준이, 그는 과연 무엇을 노래하였던가. 자기의 지식과 재능을 깡그리 바쳐 이 풍덕땅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라준동무, 우리는 오늘도 풍덕땅을 더 높이, 더 빛나게 일떠세우고 고향의 노래를 떳떳이 부르기 위해 애를 쓰고있네. 동무의 딸 순미가 그 앞장에 서있네.

권봉석은 라준의 숨결이 깃든 노래수첩이야말로 순미에게 줄수 있는것중에서 가장 귀중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첩을 보면 아버지세대가 걸어온 투쟁의 자욱자욱을 긍지높이 더듬어보며 힘을 낼수 있을것이다.

권봉석은 방목등판우등불이 타오르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석회로쪽에서도 불무지가 타오르고있었다.

(온 풍덕땅에 불천지로군. 토끼반도 그렇고 덕에도, 여기 바닥에도…)

석회로에 다가서니 통나무를 로아궁에 던져넣는 김희문의 모습이 보였다.

《김동무가 수고하는구만.》

《위원장이 올라왔구만.》

그는 허리를 폈다. 권봉석은 땀흐르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불기운때문인지 불깃불깃하다.

《김동문 나날이 젊어지는것 같구만.》

《아무렴. 내가 늙었으면야 반장이 이 김희문이를 자재보장조 책임자 겸 염소작업반건설 고문으로 추천했겠소.》

권봉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70년대제대군인이라는걸 알고 순미반장이 아니, 이젠 중대장이라고 불러야지. 순미중대장이 나한테 그런 중임을 맡겼으니 군대로 말하면 독립소대장편제요.》

김희문은 기분이 좋아 껄껄 웃었다.

《꿈만 같소, 청년들이 벌려놓은 이 일판이… 우리도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했지요. 지금 청년들은 생각하는것도 그래, 일을 제끼는것도 그래 우리하고는 전혀 다르다니까.》

《하여튼 순미 그 애가 물덤벙술덤벙하지 않게 옆에서 잘 신칙해주오. 김동무나 나나 그 애들이 탈선되지 않게 진심으로 이끌어주는게 의무가 아니겠소.》

김희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권봉석은 석회로를 나섰다. 방목지의 도간도간 꾸려져있는 염소방목쉼터들을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의 말뚝들이 꽂혀있었다. 하나같이 풍덕땅의 유명한 박달나무말뚝들이다. 덕으로 올라가는 본래의 길은 넓고 시원한 도로로 변했다. 그 도로 좌우에도 일정한 구획을 나누어 말뚝들을 박아놓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서있던 권봉석은 구획을 이룬 구간들을 돌아보았다. 구획과 구획사이의 작은 도로까지 닦아놓았다. 그야말로 불과 며칠사이에 방목덕건설장까지 올라가는 구간의 방목지를 완전히 변화시켜놓은것이다.

권봉석이 보기에도 염소방목을 콤퓨터화할 준비의 일환인듯 했다.

허허… 리상도 꿈같은 리상이고 실천도 꿈같은 실천이군, 그러니 리상과 실천을 일치시킨다는건가.

사실 순미는 덕아래구간의 염소방목기지 꾸리는 일을 먹이소대에 분담하였는데 그들이 임무를 받기 바쁘게 실천단계에 들어간것이였다.

권봉석은 전지불을 비치며 덕을 향해 올라갔다.

라준이 그 사람이 살아있어 오늘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가. 틀림없이 그도 깜짝 놀랄거야.

그는 웃옷주머니에 넣은 노래수첩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걸 주면 순미 그 애가 뭐라고 할가.

이때 한패의 젊은이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듯 왁짝 떠들며 내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예, 고지에 탄약이 떨어졌습니다.》

《탄약이라니?》

《블로크작업장에 석회가 떨어져간다기에…》

《어서 가보오.》

우등불은 여전히 황황 타오르고있었다. 작업장이 부글부글 끓고있다. 기초구뎅이를 파제낀 건물구역들마다 수많은 청년들이 웃동을 벗어던지고 막돌을 날라다 처넣으며 기초공사를 하고있다. 그 뒤쪽공지에서는 조별로 블로크 찍는 경쟁이 붙었는지 몰탈소리를 연방 웨치며 기세를 올린다.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노래소리가 온 덕을 들썩들썩 울린다.

박성복이와 함께 건설장을 돌아보던 라순미가 반기며 달려왔다.

《위원장동지, 힘들게 올라오셨군요.》

《아닌게아니라 이젠 예전같지 않구나.》

그 말에 순미도 박성복이도 웃었다.

《위원장동지, 이 동무들이 벌써 합숙건물기초벽을 다 완성했구만요. 숱한 건물들의 기초공사를 하면서 저렇게 한쪽에서는 블로크를 찍고… 그야말로 준마처녀, 총각들입니다, 허허허…》

권봉석은 방금전 덕으로 올라오면서 덕아래방향의 방목지들을 본터여서 과연 칭찬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자신도 속으로 얼마나 놀랐던가. 그는 그저 순미가 모든 일을 너무 쉽고 랑만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랄뿐이였다.

권봉석은 기초를 든든히 박아놓은 건물자리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순미는 마치 완성된 건물이기라도 한듯 칸칸마다 설명을 하였다. 스물네개의 칸은 청년반원들의 호실들이고 가운데 비교적 넓은 칸은 식당이라고 했다.

좌우 량옆의 각각 큰 칸은 남, 녀세면장 및 목욕탕… 실로 없는것이 없다.

순미의 목소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울렸던지 권봉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군 했다. 하도 젊음이 넘쳐나는 때이니까 모든것을 랑만적으로 생각할수 있지.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강압적인 요구가 통하지 않는것이다.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권봉석은 두툼한 손으로 웃옷주머니의 노래수첩을 꾹 눌렀다. 덕에서 내려가기 전에 주리라, 아무런 설명없이…

권봉석과 박성복은 작업장의 곳곳을 돌아본 후 블로크를 찍는 청년들속에 끼워 땀을 흠뻑 흘리고서야 덕을 내렸다.

권봉석은 순미의 손에 노래수첩을 쥐여주며 시간이 있을 때 보라고 했다. 순미는 영문도 모르고 그것을 받았다.

그들을 바래운 후 순미는 갑자기 조용해진 전투현장을 돌아보았다. 농장청년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건물들의 기초공사가 드디여 끝난것이였다.

이런 속도로 계속 나간다면…

순미의 가슴은 흥분으로 높뛰였다. 능금골방목공들도 방목지로 올라가고 건설조청년들은 천막에 들어가 깊은 잠에 들었다. 옥련이네 식당조만이 아침식사준비를 하느라 부지런히 오가고있었다.

라순미는 권봉석이 준 수첩을 쥔채 전경도앞으로 걸어나왔다. 아직도 이글거리는 불무지에 마른나무를 올려놓아 불을 지피고 그곁에 앉았다.

(무슨 수첩일가?…)

연청색겉표지는 보풀이 일었는데 《노래수첩》이라는 낯익은 글씨가 확 안겨온다. 가슴이 후두둑 뛴다. 아버지의 필체를 알아본것이다.

그럼 이 노래수첩이?… 첫 표지에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사색, 탐구, 창조!…》 또 번졌다. 귀중한 글발들, 면양반건설, 건물형태, 설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아! 아버지의 넋이 깃든 터전, 그 터전에서 이 딸이 지금 아버지의 넋을 이어가고있어요.

순미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부르고 또 불렀다. 풍덕땅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바친 아버지의 심혼이 깃든 수첩, 가슴에서 세찬 격류가 굽이쳤다.

면양반건설을 놓고 사색한 페지들의 뒤켠에 한편의 노래가 있었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

 

그밑에 씌여진 글발.

《면양반건설의 날에! 197×년 ×월 ×일 권봉석, 라준》

그렇게 놓고보니 1절과 2절가사의 글씨가 서로 달랐다. 2절이 아버지의 글씨였다. 1절은 권봉석의 글씨였다.

위원장동진 이 수첩을 오늘까지 가지고계시다가 오늘날에야 나에게 주셨구나, 아버지의 뜻을 이어 고향 풍덕땅을 더 아름답게 꾸리라고… 위원장동지, 고마워요. 사랑하는 고향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겠어요. 부모들의 넋을 이어 더 높이, 더 빨리 달려가겠어요. …

수첩의 갈피에는 참빗살가시나무열매까지 끼워져있었다. 마르고 납작해져 색갈과 모양이 달라졌으나 그 맛과 향기는 금시라도 페부에 흘러드는것 같았다. 순미는 수첩을 가슴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의 힘있는 고무의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 했다.

《어서 힘껏 내달려라. 내 딸아, 조금도 늦추지 말고 달리고 또 달려 네 고향 풍덕땅을 하늘가에 우뚝 솟구쳐올려라!》

(부디 이 딸을 믿어주세요, 아버지!)

먼동이 푸름푸름 터오고있다. 차츰차츰 륜곽이 드러나는 고향마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가슴에서 뜨거운것이 끓어올랐다. 그의 눈가에 간절한 열망이 불길처럼 타오르고있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