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6

 

이른아침 드넓은 풍덕등판은 마치 짙은 안개의 희롱에 말려든듯 했다. 두툼한 안개층은 장난세찬 아이가 잠결에 걷어찬 솜이불마냥 한켠이 불쑥 들리우며 덕의 한 귀퉁이를 드러내보였다가는 다시 슬쩍 덮어버린다. 안개가 덕에 흐르는지 덕이 안개를 휘감는지 알수 없다. 바람이 덕과 안개의 씨름을 심판하면서 안개를 편심이라도 서는듯 한감이 느껴진다. 멀리 바라보이는 우중충한 산줄기가 망망대해의 섬처럼 안겨오고 덕중심의 건설장과 마을은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건설조청년들은 날밝기 바쁘게 기초공사에 달라붙었고 야외식당쪽에서는 가마를 부시는 소리, 칼도마소리, 장작튀는 소리가 처녀들의 웃음소리와 한데 어울려 들려온다.

라순미와 안홍진은 아침일찍 안개발을 헤치며 능금골로 향했다. 그곳에 야외방목지를 전개한 후 자주 가보지 못한데다 초봄에 새끼를 낳고 젖떼기를 한 염소들의 사양관리에 대해 미처 관심하지 못했던것이다.

어제 저녁 석회로작업을 마치고 올라오면서 그런 사연을 이야기하자 안홍진은 함께 능금골방목지에 올라가보자고 했었다. 그래서 함께 떠난 길이였다. 건설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서부터 시간을 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더우기 염소무리들이 방목을 나가기 전에 도착해야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대책을 세울수 있었다. 능금골방목지는 덕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안홍진은 신기한듯이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능금골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순미는 능금골이 다른 골짜기와 차이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능금골은 골짜기입구가 덕의 안쪽을 향해 반도마냥 내리붙은터여서 덕중심에서도 그중 거리가 가까운 골짜기이다. 입구가 나팔주둥이모양으로 조금 벌어진듯 하다가 백메터정도 들어가면 넓은 공지가 나지는데 곰취며 길짱구, 말발굽풀같은 풀들이 한벌 쭉 깔려있었다. 축구경기라도 능히 할수 있을만큼 넓은 공지였다. 그 둘레에는 능금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이 바로 먼 옛날 풍덕땅 조상들이 모여살던 곳이라고도 했고 재난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와 숯구이를 한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고도 했다. 능금나무들의 밑둥이 굵고 지어 어떤것들은 구새먹어 구멍이 뚫린것으로 보아 그 말이 어느정도 사실인듯싶었다. 그런것들은 이미 방목등판에 염소방목쉼터를 꾸리고 이동방목지들을 관리하면서 방목공들이 삼합토를 이겨 곱게 메워준탓에 더이상 벌레의 침습을 받지 않게 되였다. 그 공지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나지막한 릉선들이 마치 큼직큼직한 층계를 이루듯이 굴곡을 이루다가 마침내 한곳에 모여 봉우리를 이룬다. 염소들이 그 봉우리까지 올라갈 때면 마치 하늘의 흰구름이 내려앉은듯 했다.

순미는 고향산천에 대한 자랑과 긍지가 푹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맑게 개인 날 이곳에 올라와보면 아마 시 한편은 능히 짓게 될거예요.》

《시를 짓기 위해서라도 자주 올라와야겠군요.》

안홍진은 이미 아버지를 통하여 능금골에 대하여 알고있지만 순미의 이야기를 들으니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골짜기의 좁은 구간을 지나 넓은 공지에 들어서니 골짜기안쪽으로 바싹 붙여지은 림시염소우리호동들과 반토굴식침실이며 골개울물이 흘러내리는 맞은켠에 전개한 야외식당이 안개속에 어렴풋이 안겨왔다.

홍진은 순미의 말대로 공지가 넓고 시원한데 놀랐다. 골짜기안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것은 이동방목하는 염소들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는것이였다. 염소들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관찰할수도 있고 생산절기에는 암염소들을 찾아내는 일도 헐한것이다.

《정말 명당자리군요.》

《홍진동무한테 합격을 맞으니 기쁘군요. 앞으로 여기도 현대적인 방목지로 꾸릴 계획이예요.》

홍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외방목우리들에서 한창 염소들을 내몰던 방목공들은 이른아침 올라온 두사람을 놀라운 눈길로 맞아주었다.

《이거 우리가 늦잠을 잔게 아닌가?》

김태식이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팔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순미가 아침일찍 올라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젖짜기를 빨리 하자고 방목공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지체없이 야외우리에 내몬 염소들을 젖짜기틀에 들여세우느라 법석 떠들었다. 젖통이 한껏 불어난 염소들이 《날새》, 《백학이》, 《막둥이》 등 이름을 부르자 《메-에》, 《메-에》 하고 저마끔 대답을 하며 틀안에 저절로 들어서는 모양이 볼만 하다. 젖짜기명수처녀들이 깨끗한 물걸레로 젖통을 씻어주고 둥그런 소랭이모양의 젖그릇들에 쫘락쫘락 젖을 짜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젖이 뿜어져내려 그릇에 차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귀맛좋게 들려온다.

순미는 매 염소들의 우유의 질을 가늠해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홍진은 염소들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도 풀판의 상태가 좋아지는데 따라 우유의 량이 많아지고 신선도가 높아지는것이 알렸다. 그는 방목덕이 앞으로 거대한 염소방목기지로 전변되고 젖짜기를 기계로 하며 여러가지 젖가공품들이 생산되여 풍덕사람들의 생활이 한결 풍성해질 앞날을 보는듯 했다.

순미는 처녀들이 염소젖짜기를 표준조작법대로 정확히 하는가를 관심하며 직접 팔을 걷고 일손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젖짜기에서는 송순애가 제일이였다. 그의 모든 동작은 그야말로 기계처럼 재빠르고 정확했다. 두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찌뿌둥한 눈길로 순애를 지켜보던 경칠이가 이렇게 빈정거렸다.

《동문 마치 염소젖을 짜기 위해 태여난 사람같구만.》

사실 그는 일전에 송순애를 따로 만나 자기의 염소무리까지 다 맡아달라고, 자기는 꼭 건설조에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처녀는 단박에 거절해버렸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리경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송순애를 시까스르군 하였다. 그 속심을 빤히 알고있는 처녀가 즉시 반공격을 가했다.

《동문 왜 입만 벌리면 무식한 소리뿐이예요?》

그리고는 숨쉴 틈 주지 않고 련속 강타를 들이댔다.

《젖짤 때 빠른 동작으로 될수록 빨리 짜야 한다고 기술학습에서 몇번이나 배웠어요. 물론 앞으로는 기계로 짜기는 하겠지만… 까멘나야 골로바!》

송순애는 마지막말꼬리를 높였다. 학습에서 언제나 모범이고 우월감이 남달리 강한 처녀인지라 리경칠이쯤은 떡반죽 주물듯 했다.

《까멘나야 골로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외국어로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가?…》

젖짜기를 하던 처녀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순애동무, 아는것이 많은것 같은데 이 리경칠이를 동정해서라도 똑바로 말해줄수 없겠어?》

자못 심중한 어조였다. 안홍진은 염소들의 상태를 한마리한마리 관찰하면서 그들의 말다툼을 모르는척 했고 순미는 순미대로 소리없이 웃으며 처녀들에게 어서 젖이나 짜라는듯 말없이 손짓한다. 어쩌나 보자는것이였다.

리경칠이 씩씩거리며 순애한테 다가들자 김태식이 막아나섰다.

《여 경칠이, 남자가 시시하게 뭘 그래?》

《어진 맘에도 오른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바로 이런 때였구만요. 내 오늘 아침엔 저만 잘난체 하는 저 동물 그냥 두지 않겠어요. 내가 뭐 돌대가리라구?… 그따위 외국어로 말하면 내가 모를것 같아서 그래?》

송순애도 젖짜기를 그만두고 발딱 일어섰다. 그러자 리경칠은 벙글벙글 웃으며 그앞에 버티고섰다.

《순애동무, 동문 자기가 수재라는걸 자랑하고싶어 몸살이 난것 같은데 내가 시험을 쳐볼가?》

《흥!》

처녀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 해볼테면 해보자는듯 자신만만한 자세다.

《염소젖이 소젖보다 젖기름률은 몇프로나 더 높소?》

《0.47프로.》

처녀는 내쏘듯이 대답하고 거꾸로 물었다.

《젖단백질은요?》

《뭐 젖단백질?… 에 0.13프로.》

《광물질은요?》

《도대체 동무가 시험관이야 내가 시험관이야?》

《경칠동무, 동무가 마저 대답하라구.》

김태식이 한마디 했다. 리경칠은 두손을 허리에 얹으며 《0.14프로요.》 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의 팔이 허공을 휙 갈랐다.

《보란 말이요, 동무들. 내 겸손하니 그렇지 아무렴 순애동무만 못하겠소. 말을 안하자니까…》

순애는 픽 하고 입술을 내밀어보이고는 위생복자락이 날리도록 젖그릇을 들고 야외식당쪽으로 가버렸다. 매일 아침 짠 우유는 농장탁아소, 유치원들에 공급하고도 남아 염소반에서도 소비하고 일부는 작업반별로 날자를 정해놓고 운반해가고있었다.

염소무리들을 돌아본 안홍진은 젖을 뗀 염소들의 사양관리방법을 빨리 개선해야겠다는 의견을 순미에게 말했다. 순미는 태식을 불러 그 조직사업을 하는 한편 방목공들의 생활을 잘 보살피고 건설전투가 본격화되는데 따라 야간전투에도 동원되고 일부 인원을 조절하여 건설조에 넘겨야 할 실정을 이야기했다.

《알겠소.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마오.》

김태식은 쾌히 응했다. 순미는 반토굴식천막안에 습기가 없게 통풍을 시키라는 지시도 주고 식당에 들려서는 작업반에서 자체로 생산한 콩으로 짠 기름을 올려오라는 과업도 주었다.

그는 방목공들의 천막앞에 세워놓은 그리 크지 않은 속보판의 글에도 관심을 돌렸다.

《방목소대장동무, 속보판에 쓴 방목공들의 자랑이나 문학예술상식같은 내용들은 다 좋아요. 그런데 과학기술상식란에 세계적인 염소고기 생산량이나 염소젖 생산량을 소개하는것보다 우리 나라에서의 염소번식생리특징과 염소먹이풀에 대해 알려주는게 더 실리가 있을것 같군요.》

《알겠소. 내 생각이 늘 이렇게 짧다니까.》

순미는 지금 건설을 시작한데 불과하지만 이제 풍덕등판을 염소방목기지로 전변시킨 다음 생산될 고기생산량과 젖생산량에 대해 정열적으로 이야기했다. 안홍진은 생각이 깊어졌다. 평범한 산골농장의 처녀반장인 그의 가슴속에 얼마나 큰 포부와 희망이 간직되여있는것인가. 고향을 아름답게 꾸리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처녀를 진심으로 더잘 도와주어야겠다고 안홍진은 새삼스레 생각했다.

반장동무, 난 동무가 창조하고 이 땅에 새기려는 고향의 노래에 나의 모든 지식과 정열을 깡그리 바치겠소.

안홍진은 처녀에게 하는 그 마음속 말이 이 땅과 한 약속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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