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4

 

신록이 짙어가던 어느해 여름 림송심은 그 여름을 류다른 환희속에 맞이하였다.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맞으며 그는 년간계획을 앞당겨수행하였던것이다.

편직공장 편직공이였던 림송심은 기대의 만가동을 보장하는 고급기능공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공장에서는 년간계획을 완수한 혁신자들에게 보름동안 정기휴가를 주었다. 그 순간 림송심의 마음은 아직 한번도 가본적 없는 풍덕이라는 산골마을로 훨훨 날아가고있었다. 이미 약혼한 사이인 ㅊ연구소 연구사 라준이 그곳에 있었던것이다. 고산지대의 양, 염소의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벌써 두해째 집을 떠나 사는 그였다. 그는 보내오는 편지마다 한해여름에 양, 염소가 황소만큼 자라게 하는 연구가 진척되여간다고 써보내군 하였다.

《…하루빨리 연구를 끝내고 돌아가겠소. 이제 우리가 결혼을 하면 오늘을 긍지높이 추억하게 될거요. 그날이 오면 내 지금껏 주지 못한 사랑을 동무에게 깡그리 다 바칠 결심이요. 믿어주오. …》

두해가 되도록 한번도 찾아가보지 못한것이 미안했다.

림송심은 사전련락도 없이 무작정 애인을 찾아 떠났다. 기차를 타고 삼포까지, 또 삼포에서 배등령을 넘어 수십리길을 걸었다. 무서운 산골이였다. 이처럼 멀고 험한 곳에 그가 와있다는것이 놀랍고 꿈처럼 생각되였다. 애인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면 배등령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관리위원회에서는 체격이 크고 얼굴이 검스레한 관리위원장이 그가 찾아온 사연을 듣고는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라준연구사를 찾아왔단 말이지요? 정말 반갑소. 자, 여기서 다리쉼을 하면서 좀 기다리오.》

그는 밖으로 뛰여나가 한참이나 누구를 찾고 부르고 하였다. 한동안 조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송심은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 높고낮은 산발들과 그아래 푸른 등판들이 눈뿌리 아득하게 안겨들었다. 잠시후 누군가 마당으로 뛰여들며 그를 불렀다. 아래우 연회색작업복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였다. 까맣게 탄 얼굴, 뾰족해진 턱…

송심은 애인을 선뜻 알아보지 못하였다. 영민하게 반짝이는 두눈만이 그가 틀림없는 라준임을 말해주고있었다.

《송심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요? 소식도 없이 불쑥…》

송심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홍조가 비낀 얼굴에서 처녀의 심정을 읽은 라준은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잘 왔소. 풍덕땅 구경도 할겸 님도 볼겸… 자, 어서 가기요. 나의 연구소로…》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 농장에서 연구실을 꾸려준 모양이였다. 걸음걸음 호기심에 찬 눈길로 산촌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어느덧 마을을 벗어나 둔덕에 올라섰다. 구릉진 푸른 등판이 바다처럼 안겨왔다. 사방 끝간데없이 펼쳐진 등판을 쭉 손짓하며 라준이 말했다.

《풍덕마을을 둘러싼 이 넓은 방목지가 다름아닌 나의 연구소요. 어떻소? 가슴이 확 넓어지는것 같지 않소? 난 여기서 연구도 하고 방목도 하고있소.》

《양방목이요?》

《그렇소. 랑만적인 산촌, 랑만적인 생활이요.》

그가 얼마나 긍지에 넘쳐 말했던지 풍덕땅이 마치 제 고향인듯싶었다. 인정많은 이 고장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산골짜기들마다에 주렁진 산과실이며 산나물들에 대해서 끝없이 이어나갔다.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빨간 열매가 달린 키낮은 떨기나무가지를 꺾어 송심에게 내밀었다. 팥알모양의 열매가 조랑조랑 매달린 나무가지는 가시가 있지만 보기 좋았다.

《여기 풍덕땅에 흔한 참빗살나무인데 열매의 맛이 독특하오. 한알 맛보오.》

나무가지를 받아들고 들여다보던 송심은 한알을 똑 따서 입에 넣고 씹었다.

순간 그는 눈을 꼭 감으며 호―하고 입김을 내불었다. 시그럽고 쌉쌀하고 맵고 떫은 맛이 한데 어울려 대번에 정신이 번쩍 드는듯 했다. 한참만에야 눈물을 씻으며 호호호 웃었다.

《어떻소, 혼났지?》

《열매는 고운데 맛은 여간 아니군요.》

《이 고장 기후의 반영이요. 얼마나 좋소. 새큼하면서도 쓰고 달면서도 맵고… 난 그 맛에 정들었소.》

라준은 열매를 따서 입에 넣고 맛나게 씹었다. 림송심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문 이 고장 사람이 다 됐군요. 이 고장 냄새가 확확 풍겨요.》

《그래, 난 이 땅을 영원히 잊을것 같지 못하오. 우리의 푸른 꿈을 꽃피운 곳이 아니요.》

한동안 산촌을 둘러보던 라준이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얼마나 동무를 그리워했는지 아오?》

송심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뜨거운 정이 가슴에 마쳐왔다.

《연구는 언제쯤 끝나는가요?》

라준은 처녀의 손을 꼭 잡았다.

《래년 봄이면 끝이 날거요.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오.》

송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가슴에선 기쁨의 물결이 찰랑거렸다. 지금은 가을이다. 가을뒤에 겨울이 가면 봄인것이다.

《송심동무, 저기 보이는 건물들이 바로 면양반이요. 아직은 낡고 초라하오. 그래서 저것들을 모두 헐어버리고 면양반을 새로 일떠세우기로 했소. 양우리도 20여개로 늘쿠고 작업반선전실도 2층으로 증축하고 수의실, 먹이가공실, 털깎는 기계까지 그쯘히 갖추어놓자는거요. 그 모든건 다 우리 면양반 반장동무가 구상하고 설계한거요. 나도 적극 지지해나섰고…》

《그래요?》

《아주 정열적인 동무요. 손탁이 세고 내밀성이 있어 이 일대에선 소문난 일군이요. 리상과 목표는 또 얼마나 높은지 나도 깜짝 놀랄 지경이라니까. … 사양관리의 기계화를 비롯해서 기술적인 문제들은 전적으로 내가 맡아 해제끼기로 했소.》

송심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연구사업만 하재도 바쁘겠는데 그런 일까지 해야 하나요? 여기에도 사람들이 있겠는데…》

《그야 그렇지. 하지만 면양의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가 실천에서 은을 내자면 그에 따르는 방목과 사양관리에서의 기술적인 조건들이 보장되여야 하는거요. 그러니 내가 팔짱만 끼고있을수 없지.》

송심이 라준을 따라 면양반에 들어서니 때마침 방목공들이 양떼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서고있었다. 한달전에 털을 깎은 양들이라고 라준이 말해주었다. 털을 깎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몸집이 실했다.

《국가에서 보내준 우량종양들과 여기 풍덕땅 토종양들을 교잡해서 새로 얻어낸 품종들인데 생활력이 강하고 털생산량이 높소.》

몇년전부터 해오고있는 라준의 연구가 여기 풍덕땅에서 결실을 맺고있었다. 양무리를 우리에 몰아넣은 방목공들이 저마다 들꽃묶음을 안고 달려와 송심을 축하해주었다.

《연구사선생을 찾아 먼길을 서슴없이 달려온 림송심동무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여기 풍덕땅에 온 기회에 아예 결혼식을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라준의 말대로 배짱이 세고 전개력이 있어보이는 안문찬반장이 서글서글한 눈에 웃음을 가득 담고 묻는 말이였다.

림송심은 그만 부끄러워 처녀들이 안겨준 꽃다발에 달아오른 얼굴을 묻었다. 그들과 웃고 떠들며 흘러보낸 그 나날 아침, 오후 방목과 저녁마다 진행하는 노래보급과 군중무용, 유쾌한 오락회, 연구대상으로 정한 양떼를 몰고 라준과 함께 거닐던 무연한 방목등판… 어쩐지 짧게만 생각되는 나날이였다.

송심은 그동안 애인에 대하여, 이 고장 사람들의 뜨거운 인정미에 대하여, 이 땅의 풍요함과 귀중함에 대하여 심장으로 느낄수 있었다. 라준은 수십마리나 되는 양무리속에서 한마리라도 놓칠세라 세심히 관찰하였고 좋은 풀판을 만나면 노래를 부르며 양들을 배불리 먹이는데서 기쁨을 찾았다. 방목을 마친 양무리를 몰고 돌아올 때면 영양가 높은 만문한 풀들을 한짐씩 베여지고 들어오군 했다. 밤에 양들에게 줄 보충먹이라는것이였다.

어느날 송심이 물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힘들지 않은가고…

라준은 빙그레 웃었다.

《왜 힘들지 않겠소.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 지금도 산골사람들의 생활을 두고 걱정하고계시는걸 생각하면 내가 하는 일이 작게만 생각되여 발편잠을 잘수가 없소. 난 나의 모든것을 다 바쳐 그 심려를 덜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소.》

송심은 깊은 감동을 안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론문은 왜 아직 안 써요? 처녀들이 말하는데 안문찬반장이 대단한 론문을 썼다고 하던데…》

《그게 뭐 그리 바쁜 일이겠소. 문제는 나의 연구가 실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거요. 론문은 그 다음에 써도 늦지 않소.》

며칠후 송심은 그곳을 떠났다. 라준은 그를 바래우면서 다음해 봄이면 꼭 돌아가겠다는것을 거듭 약속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초봄 라준은 인편에 편지를 보내여왔다. 그것이 림송심을 놀래웠다.

《…송심이, 여러모로 깊이 생각해본 끝에 이 편지를 보내오. 올봄에 연구사업을 마무리하고 떠나려던 결심을 아무래도 미루어야 할것 같소. … 여기서는 지금 면양반건설이 한창인데 그 일을 책임지고 하던 안문찬반장이 도에 새로 생긴 목장으로 소환되게 되였소. 물론 다른 사람이 맡아도 되겠지만 면양반건설을 적극 지지하고 떠밀어준 나로서는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구만. 나의 량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소.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요즘에 와서 나는 면양뿐아니라 부림소나 염소같은 짐승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도 계속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소. 풀먹는 집짐승은 산이 많은 우리 나라 그 어데서나 다 기르고있소. 그러니 그 연구는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요.》

림송심은 눈앞이 새까매졌다. 그 동문 결국 그곳에 영원히 눌러앉겠다는게 아닌가.

동무는 자기가 맡은 연구만 하면 되지 않아요. 안문찬반장이 소환되여가는게 동무와 무슨 상관이예요. …

그는 마음속으로 라준을 향해 수많은 질문을 했다. 더이상 참을수 없어 우편국으로 달려갔다. 전화련계는 힘들게 이루어졌다. 한시간을 실히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송수화기에서 라준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송심동무, 나요. 라준이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웬일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라준동무, 난 동무의 마음을 리해할수 없군요. 솔직히 전 이곳에서 동무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싶어요. 이번에 제가 짠 무늬편직천이 질좋고 문양이 곱다고 높이 평가되였어요. 그 천을 동무한테 보여드리고싶었어요. 그런데 동문 어쩌면… 이제는 과제도 끝마쳤는데 연구소로 돌아올 당당한 권리가 있지 않나요.》

《송심동무, 난 동무의 심정을 리해하오. 행복한 앞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꿈을 꾸어온 우리들이였소. 바다가 백사장에서, 그리고 흰눈내리는 고향도시의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우리가 속삭인 사랑의 언약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우리들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소.》

《됐어요!》

송심은 송수화기를 놓았다.

그는 고민속에 모대겼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준이와 떨어진 자기를 상상할수조차 없었다. 그와 약혼을 해서라기보다 송심이자신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기때문이였다. 명백한것은 그가 라준을 찾아가는것이였다.

송심은 바람세찬 풍덕땅으로 다시 오지 않을수 없었다. 애인을 직접 만나 모든것을 따져물을수밖에 없었다. 그가 풍덕땅에 들어선 날은 공교롭게도 안문찬반장이 떠나가는 날이였다. 그는 송심을 만나자 여간만 반가와하지 않았다.

《연구사동무도 인차 떠나겠는데 수고로이 걸음을 했구만. 함께 일해보자고 했었는데 새 배치지에서 하도 독촉이 심해서 먼저 떠나오. 송심동무, 후에 다시 만나기요. 그리고 행복하시오.》

송심은 어리둥절해졌다. 연구사가 인차 떠나다니, 그사이 라준동무의 결심이 달라졌는가. 아니, 그럴수 없어.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하고야마는 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러니 라준은 안문찬반장한테도 자기의 결심을 말하지 않은것이였다.

송심은 혀를 깨물었다. 그는 반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면양반을 나서는 안문찬에게 달려나가 말하고싶었다. 연구사한테 모든 일을 떠맡기고 이렇게 훌쩍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가더라도 작업반건설이나 끝내고 가라, 라준동무가 그 건설때문에 그리고 이 땅의 앞날을 위해 여기에 남기로 한걸 동무는 알기나 하는가고…

안문찬이 떠난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라준은 자기의 결심을 면양반 반원들앞에서 공개했다.

《전 이미 우리 연구소 분원 당조직에 저의 결심을 보고했습니다. 분원에서는 저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습니다.》

《연구사동무,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건설은 우리 힘으로 하겠습니다. 송심동무가 먼길을 왔는데 어서 함께 떠나십시오.》

반장으로 임명된 권봉석이 진심으로 권고했다.

《반장동무,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 남겠습니다. 면양반건설도 연구도 저에겐 다 귀중합니다. 여기 풍덕땅이 고향처럼 정들었습니다. 함께 일해봅시다.》

라준의 절절한 호소에 면양반청년들은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해했다. 안문찬의 몫까지 맡아안으려는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송심은 끝내 라준의 결심을 돌려세우지 못한채 풍덕땅을 떠났다. 명백한것은 그를 위하여 자기가 이곳에 영원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사랑의 자각이였다.

그러나 송심은 인차 돌아설수가 없었다. 공장에서 기능공양성문제가 급하게 제기되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두해가 지나서야 라준을 찾아온 송심은 따뜻한 그 봄날에 이 고장 사람들의 뜨거운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다. 그는 자진하여 양방목공이 되였다.

방목공들은 조기작업과 야간작업으로 면양반건설을 밀고나갔다.

무작정 크고 요란하게만 구상하고 벌려놓았던 안문찬의 계획과는 달리 양우리호동 십여개와 작업반선전실을 증축하고 자그마한 먹이가공실을 짓는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그동안 몇배로 불어난 양무리들을 관리하면서 건설을 밀고나간다는것이 조련치 않았던것이다.

그 나날 전국적인 농촌부문 예술소조경연이 진행되였다. 풍덕면양반원들은 작업반을 새로 꾸리는 나날에 부르던 노래와 춤을 가지고 경연무대에 나가 1등의 영예를 지니였다.

라준은 면양반건설을 끝낸 후에도 작업반청년들과 양사양관리기계화설계를 토론하고 직접 도면을 그렸으며 때로는 배등령을 넘어 군 기계공장이나 농기구공장들에 가서 필요한 기계장치들을 조립해오기도 했다. 그는 가슴에 항상 불을 안고 사는듯 했다.

류달리 추위가 심했던 동지달 그는 밤을 새워가며 만능분쇄기조립전투를 벌렸다.

어느날 송심이 안타깝게 권고했다. 지금처럼 일하면 사람이 견뎌내지 못한다고, 다문 하루이틀만이라도 휴식을 하자고… 라준은 빙긋이 웃었다.

《내 걱정은 마오. 오히려 송심이가 걱정되누만. 해산달이 가까와 오는데 양관리를 계속 해도 일없겠소?》

해산이란 말이 부끄러워 송심은 얼굴을 붉혔다.

《송심이, 난 우리 애가 태여나면 내가 조립한 이 만능먹이분쇄기를 선물로 주려고 하오. 아버지가 주는 출생기념품! 얼마나 뜻이 깊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도 힘든줄을 모르겠소.》

라준은 걱정말고 어서 들어가라고 송심의 등을 떠밀었다.

송심은 그의 일손을 돕다가 밤늦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새벽무렵 권봉석반장이 급히 달려왔다.

《송심동무, 빨리 나오우. 라준동무가 위험하오.》

《예?!》

《갑자기 기계앞에서 쓰러졌는데…》

경황없이 달려갔다. 반실 앞마당에 서있는 마차우에 라준이 누워있었다.

《여보,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림송심은 기척없이 누워있는 라준을 조용히 불렀다. 너무도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깊은 잠에 든것 같았다. 련락을 받은 리병원의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동안 라준의 몸상태를 살펴보고난 의사는 군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심한 뇌출혈입니다. 연구사동문 이미…》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림송심은 악 소리를 치며 의식을 잃고말았다. 반원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우리 면양반을 다 꾸려놓고 이렇게 가면 어떡하오? 그렇게 고심하던 연구는 또 어떻게 하고… 너무하오, 너무해. 연구사동무, 이제 태여날 아이의 그 눈동자를 우리가 어떻게 마주보라오. …》

권봉석이 침통하게 부르짖으며 몸부림쳤다.

라준은 그렇게 떠나갔다.

림송심은 이를 사려물고 양방목에 나섰다. 남편이 못다한 일을 자기가 해야 한다는 각오가 그의 작은 심장에 깊이 자리잡았다.

그 이듬해 귀여운 딸이 태여나자 송심은 마냥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했다. 아이가 태여나면 풍덕땅이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자고 당부하던 남편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림송심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아버지의 그 당부를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남동생 림송철이 누나와 조카를 데려가려고 찾아왔으나 송심은 머리를 저었다.

《난 이 땅을 떠나지 못한다. 여기엔 애 아버지도 있고 생전에 그이가 심혼을 다 바쳐 가꾼 땅이 있고 양들이 있다. 애가 태여나기 전에 당부한 그이의 말도 있고… 이제는 이곳이 나의 고향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렇다면 더 권고하지 않겠어요. 순미를 잘 키워주세요.》

벌써 20여년전의 일이였다. 남편에 대해 추억할 때면 림송심은 의례히 안문찬에 대해서도 생각하군 하였다.

남편이 사망한 후 그는 기술서적들과 일기장, 연구일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 라준이 안문찬의 탐구심을 북돋아주고 그의 자그마한 착상들을 계발시켜준 적지 않은 사실들을 알게 되였다.

그 순간 림송심은 가슴이 찢기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안문찬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꿈틀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소환장을 받고 떠나간 사람을 두고 무슨 할말이 있으랴만 송심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송심의 부부는 여기 풍덕땅사람이 아니였다. 하지만 안문찬은 이 고장에 태를 묻은 사람이였다. 그가 그렇게 불쑥 떠나지 않았더라면 남편의 불상사도 생기지 않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문 한두달만이라도 함께 있어주었더라면…

송심은 그후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적은 편지를 그에게 보냈었다. 그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어느 여름날 안문찬이 삼포에 왔던 길에 풍덕에 들렸다. 그가 리해를 바라는 많은 말을 하였으나 송심은 그를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그로서는 안문찬이 풍덕땅에 태를 묻은 사람으로서 량심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언젠가 림송심은 권봉석에게 안문찬에 대한 그런 감정을 비친적이 있었다. 권봉석은 순미어머니로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그의 심정을 리해해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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