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이 지나…

 

수도의 토요일 밤.

우주의 별무리들이 내려앉은듯 한 평양의 불빛바다… 그 불빛들이 흘러나오는 창문안의 가정들에서는 한주의 일을 다 끝낸 세대주들이 생맥주 몇고뿌에 거나해져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혹은 래일, 일요일의 모란봉과 대성산산놀이를 계획하고 혹은 일요일에 흔히 있게 되는 친척의 결혼식에 갈 차비를 하고 혹은 혼기에 이른 처녀들은 래일 어디어디에서 님을 만나 할 말들과 있을수도 있는 포옹을 공상하며 가슴울렁이는 그밤,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는 수령님께서는 당력사연구소 한 일군을 기다리시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군사사업을 의논하고계시였다.

작년 가을과 그 전전해 5월-7월사이에 동유럽나라들과 쏘련(당시)을 공식방문하고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몹시 무거우시였다.

그 나라들의 형편은 상상하신것보다 더 심각하였다. 사회주의의 배신자, 변절자들이 머리를 쳐들고 공공연히 사회주의제도를 《개편》한다고 날뛰였으며 반체제적기운이 사회에 만연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준엄한 시련들과 온갖 파란곡절을 수없이 겪은 로혁명가의 정치적감각으로 그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제도가 전복될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는 경우 우리 나라에도 엄혹한 시련이 닥쳐올수 있다고 예감하시였다.

엄혹한 시련이라고 하면 1938년말과 39년봄까지의 고난의 행군과 1939년말의 돈화원정, 1940년의 홍기하전투가 회상되고 오중흡, 박덕산, 오백룡 등 지휘관들과 박주호, 한명찬, 《무산아재》, 마영복을 비롯한 수많은 대원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들었다.

사회주의를 지키자면 혁명전통교양을 잘하고 그러자면 구체적이고 생동한 력사자료에 토대하여 혁명전통교양을 더 심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1939년과 1940년대의 사료들이 제일 적었고 그것도 깊이 연구되지 못하고있었다.

이런 사정을 료해하신 김정일동지께서 당력사연구소사업을 강화하시는 한편 사료수집을 위한 학자대표단을 중국의 동북지방과 쏘련의 까자흐스딴과 우즈베끼스딴 일대에 파견하시였던것이다. …

얼마후 집무실에 나타난 당력사연구소 한 일군은 흥분된 얼굴로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며 만났던 항일연고자들과 새로 발굴된 사적자료들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하고는 응접탁에 수십매의 사진들을 펼쳐놓았다. 그것은 항일연고자들과 그 후손들의 사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가며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주의깊이 여겨보시다가도 알만 한 얼굴이 나타나면 못내 기뻐하시며 그가 먼 나라로 흘러가게 된 경위며 현재생활 그리고 자손들에 대하여 다심하게 물으시였다. 그러시다가도 깊은 회억에 잠기시였다.

《이들이 그렇게 먼 나라들에까지 흩어진 사실자체가 우리가 진행한 항일혁명의 간고성과 우여곡절을 말해주오.》

일군은 그이께서 권하시는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말씀드렸다.

《량성룡렬사의 딸을 만났을 때 그 어머니는 저를 보니 조국을 본것같다고 하며 얼굴을 싸쥐고 울었습니다.》

《음… 량성룡이는 나하고 왕청에서 함께 싸웠지. … 아주 가까운 사이였소. … 그는 참 우수한 지휘관이였소. …》

수령님, 이번에 림수산의 종적도 찾을수 있었습니다.》

《뭐라구? 림수산이라구?》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지나간 근 반세기동안에 그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싶지도 않아 까마득히 잊고계시였던 그이이시였다.

《그 인간이 어디 있는가, 살아있소?》

《죽었습니다, 몇해전에… 그자의 인생길도 후대들한테 무슨 교훈을 주지 않을가 해서 좀 품을 들여 알아봤습니다.》

《나는 류경수네가 해방후에 포태산인가 어디에서 나라가 해방된줄도 모르고 산골에 틀어박혀 술장사를 하던 그놈을 붙잡아가지고 찢어죽이고싶다고 하는것을 그까짓 더러운 놈에게 손을 대서는 뭘하겠는가, 인민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소. …》

《림가의 상전인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요원 이께우찌대좌는 홍기하전투후 그를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안도의 산간벽지에 있는 부흥농장이라는데로 쫓아버렸습니다.》

《거기서 농사를 지었는가?》

《거기는 왜놈들이 장개석군대와 구국군 포로, 항일련군의 탈주병들로 인삼농사를 짓는 인삼재배농장인데 포로수용소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

《음…》

《그자는 해방직후 일제패잔병숙청사업을 하던 류경수동지네 소조에 체포되여 혜산구류장에 갇혔다가 함흥에 있는 쏘련군 위수사령부 구류장으로 이송되였는데 거기서 일본군포로들과 같이 씨비리로 호송됐습니다.

하바롭스크교외의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로동을 하던중 자기를 천대하고 학대한 이께우찌대좌를 만나자 복수심이 터져올라 쏘련측에 밀고했습니다,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요원이라고… 그러자 대좌도 그놈대로 쏘련측에 고발했습니다, 림가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사람이며 혁명군의 참모장으로 있다가 변절해서 숱한 혁명가들을 죽인 놈이라고… 림수산은 수용소안의 재판에서 15년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한 다음 만기출옥해서 조선족이 많이 사는 우즈베끼스딴의 싸마르깐드주에서 살다가 3년전에 죽었습니다.》

《그 인간이 그렇게 됐군. 연미숙이는 왜놈들이 림가한테 붙여주려고 하자 자결했지. 나는 광복후 동북에서 나온 강건동무한테서 그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놈들은 그대신에 문정금이를 들이밀었습니다. 그 녀자는 왜놈의 개가 다된 그놈하고 더는 살수 없어 명월구에 있는 친척집에 숨어있다가 도로 부흥농장의 림가한테로 끌려갔습니다.

광복되기 몇달전 딸을 낳았는데 림수산이 제 혼자 살겠다고 버리고 도망쳐 류랑걸식하며 돌아갔습니다. 머리가 돈 그 녀자가 애기를 업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걸 봤다는 사람이 서너명 있었습니다.

그후 그 녀자는 아기를 모래불에 풀어놓고 고동하의 찬물에 뛰여들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과 오진우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께서도 한대 피우시였다.

방안에 파르스름한 담배연기가 날아올랐다.

《림가 그 인간은 정말 죄많은자요. 아, 연미숙이, 혁명군녀대원의 기개를 과시했거던.》

《문정금이라는 그 녀자도 량심의 가책을 몹시 받은것 같습니다.》

《그럴테지.》

《싸마르깐드와 따슈겐뜨에 림수산의 말년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 있었습니다. …》

…그는 림하낌이라는 거류민이 되여 싸마르깐드에서 멀지 않은 꼴호즈의 양봉작업반에 적을 붙이고 일하게 되였다.

세월이 흘렀다. …

풍토관계로 흉하게 늙어가서 얼굴에 깊은 주름살이 뒤덮이고 눈까지 흐려지자 그는 친척과 고향땅에 대한 향수로 하여 밤이면 앓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뒤채기였고 새벽에도 신음소리를 내다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술을 마시다가도 가슴을 치며 울었다.

그도 정이 없으면 못사는 인간이였던것이다.

림종이 와서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슬퍼해줄 사람 하나 없으며 눈물 한방울 흘려줄 살붙이도 없다는것을 생각하면 기막히기 그지없었다. 그럴수록 아득한 옛날 문정금이 업고왔던 피덩어리가 만주땅 어디엔가 살아있지 않을가싶은 생각, 이 세상에 남겨놓은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을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그애가 지어주는 따끈한 밥을 먹어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는 어떤짓을 하든지 딸을 찾으리라는 심산으로 꼴호즈회계원과 짜고들어 꿀을 밀매한 돈을 모으기 시작하는 한편 중국동북지방으로 나가는 려행자들을 통하여 딸의 생사여부며 행처를 수소문해보았다. 10여년간의 고심끝에 자기 피줄을 이어받은 딸이 연길시의 한 생약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40대의 중년부인이 된 딸, 시정부 과장의 안해는 자기 집 뜨락에 들어선 우즈베끼스딴로인 림하낌에게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나한테는 당신같은 아버지가 없다, 당장 나가라, 엄마를 죽이고도 부족해서 나까지 망하게 만들자고 찾아왔는가, 주인이 들어오기 전에 썩 사라지라. …

말 몇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딸한테서 쫓겨난 림가는 비탄에 빠져 낮선 거리를 헤매다가 돈을 많이 내민 덕에 화물자동차를 얻어타고 두만강가로 나갈수 있었다. 먼발치에서라도 고국땅을 바라보고싶었던것이다.

림가는 강뚝에 앉아 물건너의 푸른 산들이며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논밭이며 지붕들우에서 텔레비죤안테나들이 반짝이는 문화주택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저쪽대안의 초소막에서 국경경비대원이 나와 이쪽을 빤히 지켜보자 림가는 대뜸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마 아득한 옛날 어디서인가 만났던 백계로씨야청년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 로씨야땅이 아무리 넓어도 반역자의 유골이 묻힐 자리는 없다. …트레트레 흐린 흑룡강물에 뿌려던진 유골함…

그가 우즈베끼스딴에 돌아가니 꼴호즈회계원은 잡혀간지 오래고 싸마르깐드역과 뻐스정류소에 붙어있는 광고에는 그의 공모자인 림하낌을 보면 즉시 검찰에 신고하라는 글발이 언뜻거렸다.

그를 반겨 문을 열어줄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한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악당도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림수산은 그 사회에 바퀴처럼 흔한 좀도적으로 이국감옥의 철창속에 갇힐 운명에 처했다. 그는 수사의 눈길이 덜 미치는 이웃주로 빠져나가려고 밤중에 황량한 반사막지대의 초원을 가로질러나갔는데 그후로는 종적이 묘연해졌다.

이웃주에까지 가서 수사를 벌렸으나 끝내 찾지 못한 수사원들은 무시로 일어나는 사막의 모래바람이 범인을 깊이 묻어버렸거나 이따금 출몰하는 승냥이떼한테 먹히웠을것이라고 추측하였다. …

《허 참… 그 인간이 그렇게 죽었단 말인가. 죄많은 인간이지. 달리는 될수가 없어.》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담배가치에 불을 붙이시였다.

《림수산이는 나를 믿지 않아 그렇게 됐어. …1940년초였던가… 1939년말이였던가. … 쏘련과 일본간에 협상이 있을 때인데 쏘련은 국제당을 통해 만주에서 일본을 자극할수 있는 일체 군사행동을 중지하라… 이렇게 요구했거던. … 그때 나는 우리가 무장투쟁을 어느 누구의 승인을 받고 시작한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기 조국을 광복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쓰딸린이 일본과 손을 잡는건 책략이다, 일시적인것이다, 우리는 초지관철이다, 누가 뭐래도 총대를 놓을수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무장투쟁을 계속한다… 이런 배심으로 돈화원정을 단행했소. 그때 오중흡이, 박덕산이, 오백룡이랑은 다 나를 적극 지지하고 따랐는데 림수산은 나를 믿지 않고 나중에는 반대로 나갔소, 겉으로는 공감하는척 하면서… 그래서 종당에는 변절까지 했소.》

오진우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르며 말씀드렸다.

수령님, 령도자의 사상과 령도를 지지하여 그 주위에 한덩어리로 굳게 뭉치면 혁명이 승리하고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것이 우리가 진행한 20성상의 항일혁명이 후대들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 혁명을 봐도 다 그렇소, 다 그래… 다…》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며 계속하시였다.

《권영벽이와 림수산은 룡정대성중학출신이고 막역한 사이였소. 5. 30폭동실패후에는 우리를 따르겠다고 서로 맹세다졌으며 새 출발을 기념하여 둘이 어깨겯고 사진까지 찍었소. 그런데 한사람은 수년동안 옥중투쟁을 하며 신념과 량심을 지키다가 혁명가의 고결한 품성을 보이고 최후를 마쳤소. 한데 다른 사람은 좀도적으로 쫓겨다니다가 생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됐소. 참모장을 하던 사람이… 군사적자질도 괜찮던 지휘관이… 참 가련하지. …》

수첩에 그이의 말씀을 속기하던 당력사연구소 일군이 조용히 말씀드렸다.

《저도 이번에 그의 한생을 두고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그 과정에 혁명가는 자기 혁명의 수령을 정말 진심으로 믿고 따를 때 인간으로서도 완성되며… 그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의혹을 품기 시작하면 우울, 비관에 빠지고 그걸 수습하지 못하면 타락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는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교훈이지. … 인생의 심각한 교훈이야. …》 하고 그이께서는 거듭 뇌이시다가 자리에 돌아와 앉으시였다.

그 일군은 이번에 할빈에 체류할 때 문정금의 딸이라는 녀성이 호텔로 찾아왔다고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놀라며 그게 정말이냐고 물으시였다.

《그 녀자는 미모에 성격도 보통이 아니였습니다. 매우 리지적인 인테리녀성이였습니다.

그 녀자는 17살때 양부로부터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부터 자기 한생의 고민이 시작되였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한테 생명을 주고 피를 준 육친을 누구말만 듣고 부정할수도 증오할수도 없었다고, 두둔하고 옹호하고싶었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어느 철학입문서에서 인간의 의식밖에 있는 사물현상의 객관적인식에 대한 대목을 읽다가 아버지에 대한 인식과 평가도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배반당한 동지들이 그를 변절자로 저주하고 증오하는것이나 그를 받아들인측이 정의를 찾아온 의거로 찬양하며 보호해주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일이고 자명한 리치이다, 아니다, 객관적인 립장에서 보고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만약 불의를 박차고 정의의 편으로 넘어갔다면 그것은 의거, 쾌거일것이고 정의를 배반하고 불의의 편으로 넘어갔다면 그것은 변절, 반역대죄일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딸이라는 립장, 육친이라는 본능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며 조선의 과거사와 현실, 일본의 과거사와 현실에서 벌어졌고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파고들고 남다른 관심으로 주시해왔다고 합니다. 지어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패망으로 하여 묵살된 정의와 선의는 없었는가에 대해서도 마음을 썼습니다. 우리 공화국에서 내보내는 대외선전출판물들을 다 보고 로작원문들과 당정책을 연구하고 그것이 구현된 우리 나라 현실을 심각한 관심속에 주시해오다가 거의 20년만에 아버지가 추악한, 극악무도한 변절자, 반역자라는것을 힘들게 인정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 몇번 자살을 기도했다가 양부한테 들켜 미수로 되였습니다. 자기한테 아들딸 두 자식이 있는데 그 애들도 할아버지에 대하여 알게 되면 위축되여 서리맞은 꽃잎처럼 되지 않겠는가, 다른 애들처럼 생기발랄하게 자라지 못하고 양기가 없는 사람으로 되지 않겠는가…그것들의 자식들도 동심에 서리를 맞으면… 그 후손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 끝이 없었다고 말하다가 제앞에서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아이들, 후손들의 가슴에 똑똑한 인생관을 심어주자고 고국으로 찾아가고싶었노라고 했습니다. 자기같은 사람은 고국을 방문할수 없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래 무어라고 답변을 주었소?》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인차 해답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부드럽게 이르시였다.

《사람두… 좀 시원하게 풀어줄것이지. 그 딸이 참 똑똑한 녀성이요. 국제전화나 어떤 수단으로나 빨리 답변을 보내오. … 조국은 당신의 방문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그 녀성이 여기 와서 조국의 현실을 더 깊이 리해할수 있도록 동무들이 관심을 가지고 여러모로 편의를 도모해주어야 하겠소. 평양에 오면 연길지방을 잘 아는 로혁명가들중 누가 따뜻이 만나 식사랑 같이하면서 고민하지 말라, 너희들한테는 아무런 죄도 없다, 조국은 너희들도 다른 조선사람들과 똑같이 해외동포로서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면서 그들이 자기 인생길에 선을 세우도록 도와줘야 하겠소. … 세월이 흘렀소. …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 … 부모들은 혁명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변절했는데 그 딸은 우리한테로 찾아온다!… 동무 이야기를 들으니 항일혁명의 가장 어려운 시기 우리를 믿고 따랐던 옛날 동지들이 정말 못견디게 그리워지오. … 그들이 살아있다면 이런 밤에 모여앉아 추억담도 나누고… 아, 얼마나 좋겠소.》

오진우와 그 일군이 돌아간 다음에도 수령님께서는 끝없는 회억에 잠겨 자정이 썩 지나도록 주무시지 못하였다.

 

×

 

이튿날 이른아침 수령님께서는 주작봉의 혁명렬사릉으로 올라가시였다. 거기에는 벌써 간밤에 만났던 당력사연구소 일군과 함께 오진우가 나와있었다.

아직 해뜨기 전이였다.

새들도 우짖지 않아 사위는 고요했다.

혁명렬사릉에는 항일전의 천만리길에 몰아친 눈보라의 여운인듯 희뿌연 안개가 고즈넉이 흐르고 저 아득히 먼 산줄기와 만주광야에서 울려오는듯 한 《빨찌산추도가》의 비장한 선률이 들리는듯마는듯… 은은히 울려퍼지고있었다.

항일혁명렬사들의 구리빛모습들은 그 력사의 안개와 선률의 흐름우에 실려 숙연히 서있었다.

화강석층계를 따라 천천히 걸어올라가시던 수령님께서는 옛 전우들과 대원들이 대석들에서 뛰여내려 이쪽으로 내려올것만 같은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져 걸음을 멈추시였다.

뒤따르던 오진우도 멎어섰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렬사들의 구리빛얼굴부터 찬찬히 여겨보니 그들도 밤새껏 그이를 그려 기다린듯 하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가시며 렬사들의 얼굴, 얼굴들을 하나하나 정겹게 여겨보시였다. 오진우와 당력사연구소 일군은 경건한 감정에 휩싸여 그이의 뒤를 따랐다. 박주호의 옆에 가지런히 서있는 리철금은 남아장부의 숨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미소를 머금고 눈을 빛내이는듯… 수령님께서는 죽어서도 영원한 그들의 교감에 방해가 될세라 오래 서계시지 않고 인차 걸음을 옮기시며 다음, 그 다음렬사들의 앞으로 가시였다. 어느덧 그이께서는 렬사들의 령혼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시였다. 새벽이슬이 내려서인가 렬사들의 볼이며 눈언저리에 물기가 번들거리였다. 그 물기가 차지 않고 후덥게 안겨오는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 빨찌산에서 으뜸으로 인물이 곱고 마음이 여린 재봉대책임자 박록금이 제일 많이 우는것 같았다.

수령님께서 그의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으로 눈언저리며 볼을 정히 닦아주시였다.

박록금이 속삭이였다.

(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

(박록금이… 마음도 곱고 바느질솜씨도 그 마음처럼 곱더니…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불렀던가. 나는 아직도 그 노래소리를 잊지 않고있소. )

…오중흡의 반신상 머리웃쪽과 대석둘레에서는 연한 젖빛실안개가 떠나지 못한채 유유히 감돌고있었다. 그 실안개가 시대의 입김인듯 후덥게 안겨왔다.

수령님께서는 움직임없이 그냥 서서 정겨운 눈길로 옛 7련대장의 얼굴을 여겨보시였다.

오중흡은 들릴듯말듯이 속삭이였다.

(오늘 아침은 날씨도 그닥 좋은편이 아닌데 어떻게 또 나오셨습니까?)

(보고싶어 왔소. 만나면 만날수록 더 보고싶어… 중흡이, 우리 조국에 엄혹한 시련이 닥쳐오고있소. 돈화원정때가 생각나오? 그때처럼…)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모두숨을 내쉬시였다.

(닥쳐올 시련을 예감하니… 동무가 더 그리워지오. … 요새 김정일동무는 군대안에서 오중흡이를 따라배우도록 하였소. 인민군대의 모든 장령, 군관, 병사들을 오중흡이로 만들자는 결심이요. )

(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 제 뼈를 적이 쳐들어올수 있는 지점에 묻어주십시오. 적이 쳐들어오면 활화산처럼 터져올라 모조리 쓸어눕히겠습니다. )

(그러지 않아도 되오. 우리 군대가 다 오중흡7련대처럼 되면…)

그이께서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그 자리에 한참 서계시다가 걸음을 옮기시였다. … 오백룡은 석쉼한 소리로 속삭이였다.

(수령님, 간밤에는 어째서 그렇게 쉬지 못하셨습니까?)

(동무들이 생각나서… 홍기하전투때 일이랑…)

(저는 지금도 경위중대장입니다. 밤마다 호위초소들을 돌아봅니다!)

(백룡이, 고맙소. 나는 꿈결에도 동무의 발자욱소리를 듣고있소. …)

항일의 옛 전우들과 대원들의 반신상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들의 령혼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시던 그이께서는 권영벽의 반신상앞에 오래 서계시였다.

권영벽은 속삭이였다.

(사령관동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수령님께서는 그의 머리며 어깨를 적신 이슬을 다심하게 훔쳐주시고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권동무… 용서하오.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생할 때 나는 동무한테 버선 한컬레밖에 보내주지 못했어. … 간밤에도 그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서 자지 못했소. )

(사령관동지, 그거야 반세기전 일인데 아직도…

그때… 그게 저한테는 버선 한컬레가 아니였습니다. 저에 대한 사령관동지의 대해같은 사랑이고 믿음이였습니다. 그 버선에서 저는 사령부의 공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형장으로 나가면서도 가슴이 든든하고 두려운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권동무…)

(지금 생각해봐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할 때 저는 장군님을 만나뵙지 못하고 가는것이 제일 한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를 장군님의 집무실이 환히 보이는 이런 높은 언덕에 세워주니 그 한이 다 풀렸습니다. )

(권동무, 봉룡이는 인민군대의 의젓한 장령이요. 그 애가 자주 찾아올테지?)

(예… 청명날에도 오고 추석날에도 오고… 자주 찾아옵니다, 가족을 다 데리고… 그래서 손자들도 자주 봅니다.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

(권동무, 봉룡이는 아버지의 신념을 이어받았어. 그 신념은 이제 손자애들한테로 이어질거요. …)

(장군님 고맙습니다. …)

계단식묘소들마다에 렬을 지어 꿋꿋이 서있는 옛 전우들과 대원들속을 천천히 걸어가시는 수령님그이의 머리에 내려앉은 인생의 서리가 이날 아침따라 백두의 눈서리처럼 유난히 빛났다.

반신상들의 대석밑에는 향기그윽한 꽃다발들과 이슬에 젖은 자그마한 꽃바구니들이 놓여있는데 거기에 드리운 빨간 댕기들에는 전국각지 공장, 기업소와 농장 혹은 청년조직들, 인민군부대와 소학교 어린이들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뒤따르던 당력사연구소 일군이 그이의 곁으로 나섰다.

《인민군대에서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사업이 힘차게 벌어지면서 요새는 군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전연초소의 군인들도 찾아오고 공군에서도 해군에서도 옵니다.》

그이의 가슴은 감격과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우리 후대들이 얼마나 혁명선렬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넋을 따르고있는가!…)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드넓은 렬사릉안에 줄지어 우뚝우뚝 서있는 항일렬사들의 반신상을 천천히 둘러보시였다.

…차광수, 최효일, 김혁, 김형권… 권영벽, 리제순, 박달, 마동희, 장길부, 김진, 박락권, 김봉석, 심태산…그리고 최희숙, 오중흡, 최춘국, 강건, 김책, 안길, 류경수, 최현, 김경석… 오백룡, 박덕산… 혁명의 사령부를 따라 굶어죽고 얼어죽고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혈전의 천만리길을 억척스럽게 걸어온 그들의 넋, 그들의 신념과 기개가 뜨겁게 안겨와 천산만악의 련봉을 보는듯 한 감개에 휩싸이시였다. 그 신념의 련봉은 오늘 후대들에게로 이어지며 붉은 산줄기를 이루어 거창하게 뻗어내리는것이 아닌가, 세기에서 세기에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에서 시작되여 꿈틀거리며 아득히 뻗어내린 검푸른 산줄기의 장쾌한 흐름을 바라보실 때처럼 마음이 든든해지시였다.

(어떤… 그 어떤 엄혹한 시련이 닥쳐와도 주체의 위업은 흔들리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수령님께서 금별메달이 부각된 검은 대리석의 화환진정대밑에까지 내려오셨을 때 당력사연구소 일군이 그이께 나직히 말씀드렸다.

《할빈에서 만난 그 녀성에게 이 렬사릉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눈물이 그렁해지며… 평양에 가면 맨 처음 찾아가보겠다고… 거기 모셔진 모든 항일렬사들… 한분, 한분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며 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진정에 넘쳐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어. … 흐르는 세월이 제일 공명정대한 재판관이라더니 그 말이 그르지 않아. …》

그때 렬사릉우로 새떼들이 기운차게 날아지나갔다.

저기 시대의 기상인양 우뚝우뚝 치솟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드넓은 수도의 동녘하늘가에 새날의 태양이 둥실한 화염덩어리처럼 이릉거리며 소리없이 떠올랐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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