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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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문이 열렸다. 부전옥이 조용히 들어섰다.

권영벽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였다.

부전옥, 주독이 올라서인가 코가 벌겋고 군턱이 진 그자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만주국 신경에 있는 당신 친구가… 이께우찌대좌가 전해달라고 했소.》

권영벽은 봉투를 뜯고 접어있는 종이장을 꺼내였다. (그것은 홍기하전투때 뿌려진 삐라였다. )

《… 나는… 림수산씨의 권고를 받아들여 전향했다. 전향하고보니 좀 더 일찌기 결심했더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

권영벽은 순간에 온몸이 얼어들었다. … 이놈들이 내 육체를 소멸할뿐아니라 그리운 사람들과 동지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나에 대한 깊은 추억까지 말살하려드는구나.…

부전옥은 거수경례를 붙이고 돌아섰다.

그날 밤 권영벽은 주먹으로 배식구를 들이쳐 문짝을 떨어뜨리고 감방이 떠나가도록 무서운 함성을 내질렀다.

《나는- 항의한다-》

 

×

 

권영벽은 마루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죽은 사람이 어떤 치욕스러운 혐의를 들써도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하는것처럼 자기 역시 전향, 변절, 투항의 억울한 루명을 썼다고 아무리 항의해야 전혀 소용이 없으며 세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벌써 멸시와 저주속에 자기를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절망에 빠졌다.

그는 쓰러졌다.

인간세상과 완전히 격페된 어둠침침한 독감방, 곰팽이내와 악취속에 쓰러져있었다. 사령부와 혁명군부대들이 어디에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되였는지 전혀 모르고…

권영벽의 감방에는 죄수들의 《교화》를 위한 신문인 《미찌》(길)도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허위선전에 계속 항거해온데 대한 졸렬한 보복이였다.

물도 잘 주지 않았다. 전기불도 무시로 꺼버렸다. 전옥의 엄명으로 당직간수들은 물론 배식당번들까지도 그한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한달… 석달… 반년이 지나가도 말을 못해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과의 대화와 의사소통이 없고 교감이 없는 질식상태, 그것은 정신생활을 하는 사형수에게 있어서는 물부족이나 공기부족, 육체를 파괴하는 고문보다도 더 참기 어려운것이였다. 한해, 두해가 지나가자 입이 굳어지고 혀가 말라들었으며 많은 낱말들을 잊게 되였다. 아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혹은 소리를 내여 봉룡이… 봉룡이… 봉룡이… 하고 끝없이 불러보군 하였다.

그는 날과 달이,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뙤창을 통하여 쳐다보이는 하늘에 락엽, 눈송이, 비발이 흩날리는것을 보고 무슨 계절이 왔는가를 알수 있었다.

그의 유일한 말동무는 널마루밑에서 부스럭대며 짹짹거리는 쥐새끼들뿐이였다. 한해, 두해… 밤마다 그 소리들을 여겨듣는 과정에 설치류의 감정표현과 습벽, 언어를 리해하게 되여 그것들이 먹을것을 놓고 싸움이 붙으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나누어 먹으라고 타일렀으며 정분이 나서 찍짹거리며 미친듯이 쫓아다니고 야단법석을 떨면 손바닥으로 마루바닥을 두세번 치면서 좀 조용조용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는 해를 거듭하여 계속되는 고독에 미칠 지경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두주먹으로 철창을 쾅쾅 두드리며 빨리 사형을 집행하라고 소리지르고싶었다. 하지만 울분과 설음을 씹어삼키며 참았다.

고독에 시달리고 시달리고 또 시달리던 그는 마침내 자기 생활에 유격대의 일과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침기상… 세면… 식사… 학습시간이 오면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조항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외워보았다.

 

1.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2. 재만조선인들은 조중민족의 친밀한 련합으로써 일본 및 그 주구 《만주국》을 전복하고 중국령토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진정한 민족자치를 실행할것.

3. 일본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

7. 량반, 상민, 기타 불평등을 배제하고 남녀, 민족, 종교 등 차별없는 인륜적평등과 부녀의 사회상 대우를 제고하고 녀자의 인격을 존중히 할것.

8.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의 철페, 강제적군사복무 및 청소년에 대한 군사교육을 반대하며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의무적인 면비교육을 실시할것.

9. 8시간로동제실시, 로동조건의 개선, 임금의 인상, 로동법안의 확정, 국가기관으로부터 각종 로동자의 보험법을 실시하며 실업하고있는 근로대중을 구제할것.

10. 조선민족에 대하여 평등적으로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밀히 련합하며 우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선의와 중립을 표시하는 나라 및 민족과 동지적친선을 유지할것.

 

이렇게 강령전문의 수백개 글자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더듬어 외워보고 다음에는 한조항씩 놓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느라면 어느덧 그 과학성과 진리성, 정의로움이 가슴벅차게 안겨와 이런 강령의 실현을 위해 무장을 들고 싸운 자기의 짧은 한생이 긍지높이 생각되고 그 어떤 정신적고통이나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는것이였다.

저녁 오락시간이면 로야령과 마안산, 동강의 숙영지들에서 활활 타오르던 우등불을 눈앞에 그려보며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지으신 《반일전가》며 《사향가》를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그러면 오중흡, 박덕산, 오백룡이 떠오르고 사령관동지로부터 《사향가》를 배우던 일도 생각났다.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던 김정숙동지와 재봉대책임자 박록금이와 최희숙의 환한 얼굴도 떠올랐다. … 빨찌산생활의 향수가 가슴에 젖어들고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싸늘하게 식어들던 육신에 후더운 피의 격류가 굽이쳐흐르는듯싶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걸었다. 어둠속에서 벽을 따라 감방안을 돌아가며 자기가 주력부대의 행군대오속에서 걷는다고 상상하며 오백룡이나 박주호, 대원들을 고무하였다.

(동무들, 기운을 내자. 하나… 둘, 하나… 둘…)

(주호동무, 저기 저 불빛들이 보이는가? 저기가 무송현성이다!)

감시구멍으로 어떤 작자들이 들여다보며 수군거린다.

《끝내 돌았구만, 정신이상이야…》

《허, 저렇게 되니 불쌍한걸…》

권영벽은 그들쪽을 지켜보다가 허구프게 웃었다.

《헛허허… 헛허허…》

이튿날 오전, 세상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 늘 공동묘지처럼 괴괴한 정적속에 묻혀있던 형무소안이 발칵 뒤집혀졌다. 미친듯 한 웨침소리, 열에 뜬 부르짖음소리, 만세소리, 복도로 뛰여가고 뛰여오는 구두발소리, 어딘가 멀리에서 들려오는 군가의 취주악소리…

권영벽은 감방문에 붙어앉아 문틈에 귀를 대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그 소리들을 여겨들었다. … 12월 8일… 하와이진주만 불의공격… 내각총리대신 도죠 히데끼 방송연설… 태평양전쟁… 련합함대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꾸해군대장의 총지휘…

그는 광적인 희열로 뒤섞여진 그 말들을 차례로 이어놓고서야 12월 8일 련합함대사령관의 총지휘하에 해군특공대가 하와이진주만의 미해군기지를 불의공격함과 동시에 총리대신이 미, 영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터졌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다음 날들과 달들의 쏜살같은 흐름속에 련이어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소식들… 일본군의 필리핀상륙… 홍콩, 타이, 먄마점령, 말라이반도에서 남진 계속… 싱가포르함락, 인도네시아상륙… 유격대의 소식은 감감하고 일본군의 련전련승에 대한 소식은 그를 절망속에 빠뜨렸다.

그는 넋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주먹으로 마루바닥을 쳤다. … 두번… 세번…갑자기 뒤구석 천정모서리쪽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야- 수남이- 너- 후회하지- 말- 라-》 그것은 림수산이 마지막으로 내지른 소리이다.

권영벽은 벌떡 일어나앉아 천정모서리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스름이 서린 그 모서리쪽에서 거미줄만 너울거렸다.

그는 비로소 환각임을 깨닫고 머리를 싸쥐고 몸부리쳤으나 림수산의 유들유들한 얼굴이 그냥 눈앞에 어른거렸다.

권영벽은 팔을 홱 가로저어 그 환영을 밀쳐버리고는 마루바닥에 쓰려졌다. … 과연 림수산이 옳았단 말인가. 나는 그르고… 정의… 정의의 위업에 헌신한 인생은 망하고 불의… 불의… 개인적인 당면리해관계를 추구하여 어떤 불의도 마다하지 않고 일제의 권력에 붙어 아부하며 살길을 열어가는 그런… 그런 추악한 인생이 승리한단 말인가. 림수산이 저 변절자, 인간추물은 일이 다 잘돼서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고 나는… 아, 나는 정의를 신봉하고 비량심, 불의를 경멸하고 타매한 탓에 송장이 돼서 시궁창에 구겨박힌단 말인가, 아니, 아니, 그럴수는 없다. 권영벽은 밤마다 몸부림치며 소리없는 눈물을 삼키였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해가는 일본군의 혁혁한 《전과》에 대한 대본영의 요란한 보도들을 듣고 희열에 뜬 형무소관리들은 권영벽에게도 전향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게 되였다. 그 관리들은 권영벽이라는 존재도 까마득히 잊은듯 하였다.

그는 독감방에 내버려둔채로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역에로의 일본군의 군세확장과 함께 권영벽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불면증에 허덕이여 몸이 나날이 쇠약해졌으며 1년후에는 해골이나 다름없이 되여 마루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있었다. 끼니때가 되면 벽을 짚고 겨우 일어났으며 절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리들은 그를 말리워죽일 심산인지 물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감시구를 통하여 죽었는가 살았는가 들여다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주 의식을 잃게 되였다. 그러한 때 뙤창으로 흘러드는 한가닥 달빛에 비쳐진 파릿한 얼굴이며 몸에서는 이미 온기가 사라지고 랭기가 풍기는듯 했다.

날과 달이 어떻게 가고 해가 어떻게 흘렀는지.

어느 새벽녘인데 배식구문이 열리는듯 한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폭신한것이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화닥 놀라 일어나보니 자리옆에 자그마한 보꾸레미가 딩굴고있었다. 바깥복도에서 황급히 멀어져가는 발자욱소리… 몸을 날려 배식구문을 열고 내다보자고 하니 어느새 밖으로 걸려있었다.

권영벽은 배식구문에 귀를 대고 바깥동정을 살폈다. 그 미지의 발자욱소리는 복도구석의 당직간수자리쪽으로 사라지고있었다.

황황히 돌아와서 누런 보자기를 풀어보니 통버선 한컬레가 나왔다. 솜을 푹신하게 두고 광목천으로 큼직하게 지은것이였다.

인정에 굶주리고 인간세상과의 교감에 갈증이 날대로 난 사형수는 그것을 와락 부둥켜안고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누가 들여다보지 않는가싶어 감시구멍쪽을 흘끔흘끔 돌아보고는 불안감에 쫓겨 이 구석, 저 구석을 옮겨갔으며 나중에는 감시구멍 바로 밑벽에 등을 돌려대고앉아 버선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며 쓸어만졌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그한테는 버선이 발에 신는것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형무소의 높은 울담과 철조망과 벽과 철창을 뚫고 랭혹한 몰인정과 적의, 무자비와 인간증오의 깊고깊은 지층을 뚫고들어온 인정의 손길이였다.

권영벽은 그 소중한것을 발에 끼여볼 생각도 못하였다. 낮이면 개여서 구석쪽에 쌓아놓은 침구속에 감추었다가 밤이면 곰팽이냄새가 나는 헐어빠진 모포를 푹 뒤집어쓰고 그속에서 인정의 손길을 가슴에 부둥켜안고있다가 볼이며 가슴에도 대여보고 쓸어만져도 보았다. 그리고는 어느 고마운 누가 자기한테 이런 적선을 했는가, 이것을 배식구로 던져넣고 사라진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끝없는 생각에 잠기는것이였다.

그는 며칠후에야 비로소 지난 겨울 동지섣달추위때 발이 얼어들던 일이 문득 떠올라 그 버선을 신어보았다. 두발이 이름할수 없이 부드러운것에 감싸이자 인차 훈훈해졌다. 버선속에 손도 넣어보았다. 그러다가 가슴이 서늘했다. 아니, 선뜩 얼어들었다. 혹시… 혹시… 모략… 새 모략이 시작되는게 아닌가? 나한테 이런 차입이 들어올수 있는가, 누가 나한테 이런… 이런 자선을… 높은 울타리, 철조망, 철창… 경계가 삼엄한 이런 지옥속으로, 사형수의 독감방으로 인정의 온기가 슴새여들수 있는가?… 권영벽은 얼음쪼각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버선을 지켜보다가 그것을 와락 집어 뿌려던졌다. 그것은 앞벽에 부딪쳐 마루바닥에 떨어졌다.

사흘뒤 권영벽은 혹시… 하는 생각과 함께 얼었던 가슴이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하자 어느 자선가나 수도원의 수녀가 순 동정심에서, 자기가 죽어서 천당에 가기 위해 그런 자선을 베풀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께름한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감시구멍밑의 마루바닥에 떨어진채로 있는 그것을 쥐여 침구밑에 밀어넣었다.

스물댓새나 한달이 지나서였다.

깊은 밤중, 권영벽은 꿈결에 어딘가 멀리에서 봄우뢰가 우는 소리를 어렴풋이 듣다가 눈을 떴는데 웬 갱핏한 얼굴이 신선한 기운을 풍기며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선생님… 권영벽선생님!…》

《?…》

《절… 절… 모르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 젊은이는 따뜻한 손으로 팔목을 잡아흔들었다.

권영벽은 눈을 내리감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청년은 안타깝게 속삭이였다. … 순일이, 고순일. 이전에 함흥에서 각기병으로 가석방된 고순일이, 저를 모르겠는냐고…

《아-니, 이게 누군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권영벽은 일어나려고 했으나 뼈밖에 남지 않은 육신이 바위처럼 무거워 몸을 일으킬수 없었다.

청년이 권영벽을 안아일으켰다. 그는 고순일의 두팔을 붙잡고 우들우들 떨었다.

《자네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왔나?》

《여기 이 사람들과 같이 잘못 걸려서…》

《엉?…》

권영벽은 그제야 감방안에 열명은 넘어보이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날 밤 권영벽이와 고순일은 목소리를 죽여가며 수군수군 이야기하다가도 복도에서 당직간수가 다가오는 발자욱소리가 나면 자리에 모재비로 나란히 쓰러져 서로 손바닥이나 잔등에 글자들을 써주는 방법으로 《필담》을 나누었다. 수인생활을 오래한 권영벽은 죄수들속에만 통용되는 이런 소리없는 《언어》를 해득하는 방법을 일찌기 터득하여 새벽녘에는 그사이 고순일이 어떤 파란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는가를 환히 알게 되였다. 하여 그의 목을 꽉 그러안고 놓을줄 몰랐다.

…고순일은 산골에 의원이 없다는 핑게로 평택의 봉수골에서 겨우 빠져나와 원산 갈마반도에 있는 5촌숙의 집에서 넉달동안 병치료를 받는척 하다가 철도에서 일하는 6촌형들의 도움으로 라진행 북행렬차의 화물차량에 실린 짐짝속으로 기여들어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길주역에서 몰래 뛰여내렸으며 거기로부터 품팔이도 하고 류랑걸식도 하면서 백암령을 넘어 걷고걸어서 갑산땅에 들어섰다. 거기에서 동성동본의 부유한 농민을 만나 그의 집에서 몇달 머슴살이를 하다가 귀인을 만나 갑산광산에 광부로 들어갔다.

고순일은 그 광산막장에서 2년동안 일하는 과정에 《경상도나그네》라는 맏형벌되는 사람과 막역한 사이로 되였다. 《경상도나그네》는 알고보니 식자도 있고 세상형편에도 밝아 몰래 김일성장군과 항일전, 조국광복회와 그 10대강령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영향으로 눈이 틔였을 때 《경상도나그네》는 자기 본래이름은 한명찬이라고 하며 우리 결의형제를 뭇자고 하였다. 그래서 형제가 되였으며 이름도 한순일로 고쳤다. 그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국내에 파견된 정치공작원이였다. 어느날 고순일은 그한테 돌아갈 때 자기를 데리고가서 혁명군에 붙여달라고 졸랐다. 한명찬은 빙긋이 웃으며 자기는 이 광산에서 일하며 국내인민들의 생활에 몸과 마음을 적신 다음 서울지구로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한명찬이 서울로 떠날 때 고순일은 그를 따라나섰다.

한명찬은 서울교외 모지점에 와서 공작하고있으며 고순일은 그 방조자였다.

《필담》은 계속되였다.

《한주일전에 왕십리쪽에 련락을 왔다가 배가 너무 출출해서 〈남양면옥〉이라는 초라한 국수집에 들려 국수를 먹다가 3월 1일 류황도에서 일본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영벽은 펄쩍 놀라 순일의 귀속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휘파람같은 소리로 물었다.

《류황도라니?》

《필담》은 중단되였다.

《일본본토 남쪽… 가까운 섬입니다.》

《뭐- 라구?-》

《그런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한 친구가 고아댔습니다. 여- 아는가? 3월 1일이면 3. 1독립만세사건 26돐이 되는 날이야. 왜 하필 3월 1일에 류황도에서 일본군이 저렇게 전멸됐는가? 그러자 국수도 먹고 술도 마시던 사람들이 그만 정신없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하늘의 뜻이다! 신의 계시다, 조선독립이 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아리랑노래가 울리고 독립만세까지 터졌습니다. …》

고순일은 그때 지나가던 경찰 세놈이 총을 쏘며 달려들어와 식당안의 손님들을 모조리 홀쳐서 끌어갔으며 자기도 그속에 끼여 경찰소에서 취조를 받다가 여기까지 끌려왔노라고 했다.

《이것들이 감옥이 차고넘쳐서 우리를 사형수의 독감방에까지 쓸어넣었습니다.》

《무사하게… 되겠나?》

《괜찮아요. 나는 국수만 먹었으니까요.…》

《음… 그건 우기면 되겠지만…》

권영벽은 그의 손바닥에 재빨리 썼다.

《이전 일은?… 가석방… 도망…》

《몇해전부터 경찰이 찾던 강도가 서울장안에서 뻐젓이 돌아다녀요, 세상이 뒤집혀서…》

권영벽은 그가 이전과 같이 겁많은 애숭이가 아니라 담이 큰 사나이로, 혁명전사로 되여 나타난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여간 기쁘고 대견하지 않았다.

《세상이… 뒤집혔다는건?…》

고순일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릅니까?-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까? 히야-》

《…》

《히야- 선생님이 이렇게 되다니요. 세상은, 시국은 벌컥 뒤집혀졌어요. 태평양을 거의나 점령했던 일본군은 총퇴각중입니다!》

《엉?! 뭐라구?!》

《일본군은 태평양에서 총퇴각합니다. 아쯔쯔도 마샬군도 미드웨이군도…도처에서 전멸당하구… 도꾜… 일본본토가 매일 폭격당해 재더미로 되고있습니다.》

《아- 아하- 이게 정말인가?!》

《저놈들은 태평양에 군력을 다 들이밀었기때문에 본토가 텅 비여있답니다. 그래서 본토방위를 한다고 장사치, 순사, 우편배달, 국민학교 늙다리교장들까지 모조리 군대에 끌어냅니다. 여기 형무소에서도 숱한 놈들이 끌려간것 같습니다. 이런 판국에 절 알아보는 놈이 있을게 뭡니까.》

《…》

《선생님, 얄따와 카이로회담에서 일본에 무조건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쏘련붉은군대는 지금 오데르강을 넘어 도이췰란드본토에서 진격하고있습니다. 베를린을 향해… 선생님! 일본과 도이췰란드가 곧 망한다는 소문이 세상에 쫙 퍼지고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의 혁명군은 저 백두산과 어딘가 먼 원동에서 조선으로 쳐나올 준비를 하며 락하산훈련까지 하고있답니다. 이제 곧 평양, 서울, 함흥… 각지에 그 락하산부대들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굉장합니다. … 장군님께서는 벌써 국내인민들에게 전민항쟁을 호소하시였습니다.》

권영벽은 수년간 계속된 야만적고문에 모든 신경과 감각이 마비된데다가 너무나도 놀랍고 아름찬 소식이고 너무나도 갑자기 닥친 현실이여서 그 의미를 순간에 깨달을수 없었으며 딴세상의 소식을 전하는듯 한 그의 말에 더 반응할 기력도 없었다.

권영벽은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며 알릴듯말듯 채머리를 떨었는데 겨우 옴지락거리는 그의 말라터진 입술에서 단내를 풍기며 석쉼한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여보게… 이게 꿈이 아닌가. 꿈… 꿈이… 꿈이면 나를… 깨우지 말아주게!…》

(한명찬이… 그 동무가 지척에 와있다면… 사령부파견원으로 나온게 아닐가?… 아! 아! 사령부는 건재할뿐아니라 조국광복의 최후결전을 준비하고있구나.… 최후결전을… 아!…)

권영벽은 울컥 치미는 현훈증에 눈앞이 획- 돌아갔다.

《선생님, 우리가 들여보낸 버선은 받았나요?》

《?…》

《받지 못했습니까?》

《…》

《아니, 못받았어요? 야, 이거… 명찬형이 백두산에서 여기까지 품고온건데… 장군님한테서 받아서… 김정숙이라는 동지가 밤새워 기운거라구 했는데… 명찬형이 그걸 들여보내자고 얼마나 애썼다구요!…》

《여보게… 용서해주게. … 나는 저놈들이 또 무슨 모략을 꾸민다구… 이 머저리는…》

고순일은 권영벽의 두팔을 와락 잡아흔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 저놈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사람을 이 지경으로… 으흐흑… 그래, 버렸나요. 예?! 없습니까, 예?!…》

권영벽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잠자리밑을 가리켰다.

고순일은 잠자리를 더듬더듬 쓸어만져보더니 어렵지 않게 그밑에서 버선을 찾아 꺼냈다. 그리고는 무엇때문인지 한쪽버선을 뒤집어서 권영벽에게 보였다.

《이걸 못 봤어요?!》

버선안의 발등을 감싸는 부분에 빨간 오각별이 수놓아져있었다. 혁명군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군모에 붙어있는 오각별과 색갈도 같고 크기도 같은것이였다.

권영벽은 청년한테서 버선을 받아 그것을 가슴에 꼭 안고있다가 혈전만리의 하많은 추억을 속삭여주는듯 한 그 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문득 동강숙영지의 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가에 빙 둘러앉은 대원들속에 사령관동지와 나란히 앉아 그 잊지 못할 녀대원의 노래를 듣던 일이 떠오르고 그때의 그윽한 노래소리가 아스런히 들려왔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

 

권영벽은 갑자기 버선에 얼굴을 묻고 잔등을 마구 떨며 소리없이 울었다. …

이튿날 오후 4시, 이 세상의 모든것을 짓부셔버리는듯 한 굉음을 울리며 감방문이 벌컥 열렸다. 저세상의 랭기와도 같은 서늘한 기운이 휩쓸어들었다. 철문밖의 어스름속으로부터 부전옥이 걸어나와 감방에 들어섰다.

권영벽은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고순일이도 일어서고 감방안의 다른 수인들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혁명가선생, 때가 된것 같소. …》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검은 그림자같은것이 다가오고 고순일이 몸을 날려 권영벽을 막아섰다.

《안된다- 이 선생은 안돼요-》

두 형리가 와락 달려들어 고순일을 권영벽한테서 뜯어내여 안쪽으로 밀쳐버리고는 량옆에서 사형수의 팔을 끼였다.

권영벽은 흔연한 얼굴로 부전옥을 보며 이 세상을 영영 하직하는데 작별인사를 할 틈이야 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부전옥이 무엇이라고 눈짓했는지 형리들이 물러서고 그 틈에 고순일이 달려나와 권영벽의 발에 버선을 신겨주면서 흑흑 흐느꼈다.

권영벽은 그를 일으켜세우고 두손으로 눈물에 젖은 볼을 싸쥐며 부드럽게 일렀다.

《…그치라구… 웃으라구… 순일이, 버선까지 신겨줘 고마워. 나는 장군님과 동지들의 믿음을 안고 가. … 이거면 다야. … 후날 친근한분들을 만나면 내가 웃으며 갔다고 전해주게. …》

그리고는 감방안의 다른 수인들을 돌아보며 좋은 날을 맞이하기 바란다고 하면서 머리를 깊이 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권영벽은 이 순간을 위하여 아껴두었던 기운이 뻗치는듯 형리들의 부축도 거절하고 머리를 쳐들고 꼿꼿이… 억척스럽게 걸어나갔다.

휘영해진 감방안에 숙연한 얼굴로 서있던 고순일은 허물어져내리듯이 마루바닥에 엎드려 발자욱소리가 사라지는쪽을 향하여 절을 하다가 목놓아 울었다. 다른 수인 몇사람도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날은 1945년 3월 10일이였다.

닷새쯤 지나서부터 형무소의 관리들은 그가 교수형 집행장인 그 《죽음의 집》으로 가면서도 걸음이 떠지지 않았으며 사형실의 출입문이 열렸을 때에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김일성장군 만세를 불렀다고 저희들끼리 수군수군 이야기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관리들의 얼굴표정은 류황도에서 저희네 군대가 전멸했다는 비보를 듣던 때보다 더 어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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