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5

 

박주호의 소대가 사령부고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올라가고 그뒤로 4중대전체가 숲속을 질풍처럼 휩쓸며 뛰여올라가고있을 때 그 두두룩한 고지뒤경사면에서는 모리다대위의 《결사대》가 고지정점을 향해 기여오르고있었다.

《결사대》의 7~8메터앞에서는 유격대군복차림의 림수산이 조심조심 배밀이로 기여갔다. 그가 움직이면 10명의 《결사대》도 따라 움직였다. 그가 멎으면 멎어서고… 시계바늘처럼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였다. … 숨을 죽이고… 모두 풀포기며 잔디로 빈틈없이 위장하여 움직일 때조차 바람결에 풀잎들이 살랑대는듯이 보였다.

모리다대위는 권총으로 림수산의 뒤통수를 내내 겨누고 기였다. 어느 순간에도 그 총구는 자기 과녁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의… 만약의 경우 림수산이 정신착란이라도 일어 발작적으로 뛰여일어나 유격대측으로 도망쳐간다면 발사하기 위해서였다.

림수산도 이 은밀한 포복전진이 시작된 첫 순간부터 그 총구를 느끼고있었다. 반발심이 울컥 치밀었다. 그러나 《토벌》사령부와 일선지휘처가 이 《사령부소탕작전》에 어떤 의의를 부여하고있으며 그 실현을 위하여 어떤 대가를 선불했는가를 생각할 때 리해되는 점도 있었다. 《공산사령부》가 자기 배후에 순간도 주의를 돌리지 못하도록 오늘 아침부터 《황군》은 자기 주력군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홍기하량안의 공산주력에 모험적인 공격을 마구 들이대였으며 그 과정에 《〈토벌〉의 맹장》이라는 마에다까지 잃고 엄청난 손실을 보았던것이다.

이께우찌대좌의 작전안에 따라 10명의 《결사대》뒤에서는 20명, 30명의 제2진, 제3진의 《결사대》가 따르고있었다. 그뒤에서는 1천명이상의 정예무력이 때를 기다리고있었다. 《결사대》의 1진, 2진, 3진이 다 실패하는 경우 이께우찌대좌는 자기자신이 다짐한대로 자결할것이고 그 1천의 예비대는 공개적인 총공격으로 넘어와 《공산사령부》를 압살하게 되여있었다.

이 은밀한 작전의 첨병으로 제일 앞장에서 기여가고있는 림수산은 자기를 주시하며 숨어있는 그 모든 예비대들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으며 그로부터 오는 중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시계바늘처럼 눈에 띄지 않게 기여나갔다. 한치… 또 한치… 풀대들사이로 소리없이 내짚고 또 내짚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땀방울이 흘러든 탓인지 눈이 쓰려나고 시야가 희부옇게 흐려졌다. 눈앞에서 안개가 사품치는듯… 자기가 배반한 사령부로, 그 사령부를 소탕하려고 짐승처럼 네발걸음으로 기여들어가는 그의 심중이 어떠했으랴. 넉달전만 하여도 자기를 동지로, 상급으로 여겨 존경심과 온갖 정을 다 주던 사람들한테로, 그 사람들을 멸살시키러 가는 그의 심중이 어떠했으랴. 인간적인 가책과 공포, 후회가 착잡하게 뒤엉킨것이였는가, 아니면 살인을 앞둔자의 랭혹하고 무자비하고 사악한 감정이였는가, 그것은 누구도 똑똑히 알수 없을것이다. 그때 림수산자신은 그저 여태 체험해본적 없는 사형장, 그 인간도살장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공포로 머리칼이며 눈시울, 팔다리까지 얼어들어 꽛꽛하게 굳어진듯싶었다. 그 무슨 생각같은 생각이 있다면 오직 하나, 성공이든 실패든, 죽든 살든 이 일이 제발 빨리 끝났으면 하는 갈망뿐이였다.

그리고 자기를 알아본자는 누구든지 물고뜯어서라도 죽여버려야 한다는 앙심뿐이였다.

가까운 웃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림수산은 귀를 강구었다. 온몸이 귀가 되여 그 소리를 여겨들으려고 애썼다.

《여, 담배 있나?》

《마라초밖에 없는데…》

《좀 주게나.》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담배를 주고받는듯… 이윽고 성냥을 긋는 소리… 바람결에 담배연기가 날아오는듯 구수하면서도 씁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자기가 저버린 세계의 냄새였다. 자기를 저주하는 세계의 냄새였다. 가슴이 못 견디게 활랑거렸다.

공포감이 덮쳐들어 목을 움츠러뜨렸다. 담배를 피우는 저들이 누구들인가 확인하고싶은 충동에 못이겨 머리를 쳐들려 했지만 식은땀만 나며 그렇게 되지 않아 모지름을 쓰는데 무엇인가 굳은것이 옆구리를 꾹 찔렀다.

돌아보니 어느 틈에 기여나왔는지 모리다대위가 불찌같은 눈을 껌뻑껌뻑거리며 입술까지 놀렸다. 고지에 사령부가 있는것이 확실한가고 묻는것 같았다. 저 담배를 피우는자들이 사령부의 전령병이나 경위중대 대원이면 사령부이고 아니면 7련대나 8련대, 어느 부대의 지휘처일것이다. …

그가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웃쪽에서 내려오는 발자욱소리가 들렸다. 나무가지며 수풀에 군복이 스치는 소리… 불현듯 나무그루들사이에 한 녀대원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지난날 많이 보았고 매우 친숙한 얼굴인데 웬일인지 누구라고 딱 짚이지 않았다. 사상감정이 아득히 먼 그 천문학적인 거리감때문인가. …

림수산은 눈에 불을 켜고 한들거리는 풀잎들과 나무잎사귀들사이로 내다보았다. 그 녀대원은 심각한 얼굴로 열댓걸음앞에까지 내려와서 잡관목가지 몇개를 꺾어들고는 저 멀리 산릉선들을 건숭으로 둘러보다가 돌아서 올라갔다. 그제야 비로소 그 녀대원이 누구라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쳤다.

(아, 김정숙이!… 어딘가 가까이에 사령부… 사령부가 있다!)

그때 웃쪽에서, 어디로부터인가 숱한 대원들이 밀려드는듯 발구름소리들이 울리고 다급한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정숙동무, 적정이 없소? 사령부배후에 적이 붙은것 같아 달려왔소!》

《아니… 적은 무슨 적이라고 그래요?》

《련대장동지두… 중대장동지랑 다 그렇게 느꼈는데?…》

《그런 일이 있으면 벌써 전령병을 보냈지요. 우리가 여기서 느끼지 못하는걸 거기서 어떻게? 마음을 푹 놓고 돌아가라요.》

《챠- 이 박주호가 신경과민이라…》

그리고 침묵… 몇순간이 지나…

《허참, 공연한 걸음을 했군. 정숙동무, 그럼 잘있소. 사령관동지한테는 보고하지 말아주오.》

《그러지요. …》

멀어져가는 발자욱소리들… 모리다대위는 불같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다가 한쪽눈을 찡긋해보였다. 위기가 지나갔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림수산은 아까 느낀 몇순간의 침묵이 미심쩍어 몹시 불안했다. 목안에서 겨불내까지 풍겨올랐다. 그는 말소리가 들려온 바로 웃쪽이며 박주호네 발구름소리들이 멀어져간 좌측 릉선쪽을 황황히 둘러보다가 그쪽 산비탈의 나무우듬지들이 유별나게 설레고 까투리 한마리가 기겁하여 날아오르는것을 띄여보자 소스라쳐 놀랐다.

가슴속에서 바위돌이 떨어지는듯 한 충격… (아, 속았구나!) 눈앞이 아찔해졌다. … 혼란된 정신이 수습된 이튿날 새벽에야 그는 저들이 이미 모리다의 《결사대》를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접근시켰으며 그 미심쩍은 침묵속에서 1, 2, 3진의 《결사대》를 우회하여 포위하라고 눈짓과 손짓으로 신호했으리라는것을 똑똑히 깨닫게 되였다. 그리고 사령부의 지시나 신호가 없었으나 놀랍게도 박주호가 달려온것은 일종의 반사작용과 같은것으로서 사령부와 그들이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있는데 그 비결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싸쥐고 몸부림치며 비통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

그러나 그 운명적인 시각에는 그저 하늘땅이 뒤번져지는듯 한 환각속에 퇴각하자고 모리다의 팔을 잡아챘을뿐이다.

모리다대위는 그의 손을 홱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 미친듯이 소리쳤다. …

《도쯔게- 끼-》(돌격-)

정신을 후려치는 총소리, 총소리…

모리다가 몸을 비틀며 모재비로 쓰러지고 따라일어선 세명이 앞으로도 꼬꾸라지고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벌렁 넘어져 통나무처럼 딩굴었다. 림수산은 자기가 어떻게 굴러내려 잡관목덤불속에 구겨박혔는지 몰랐다.

수풀속에서 옆으로 몸을 날리며 권총을 쏘는 그 녀대원이 언뜻 보였다. 그의 뒤로 여러명의 유격대원들이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내려왔다.

림수산은 와닥닥 뛰여일어나 머리를 움츠러뜨린채 허리를 구부정하고 아래로 냅다 뛰여내려갔다. 빨찌산이, 박주호네가 포위하기 전에 빠져나가려고… 그는 저들한테 잡히면 어떤 보복, 어떤 징벌이 가해지리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다. 송강에까지 사람들을 파견하여 역마차를 기습하게 한 그 증오와 저주가 어떤것인가를, 어떤 불도가니, 화염인가를 알고있었다. 백번 죽어도 빠져나가야 했다.

뛰다가 몸을 날려 수풀속에 구겨박히고 구겨박혔다가 다시 내뛰였다. 죽고싶지 않았다. 저들한테 잡혀서 오백룡이나 박덕산이앞에 서기란, 자기가 배신한 대오앞에 끌려나가 서기란 죽기보다 백배나 싫었다. 뛰고 딩굴고 다시 뛰였다. 징벌을 피해… 나무잎사귀들이 량옆으로 획획 날아지나가고 시체들이 널린 산비탈의 경사지가 발밑으로 날아지나갔다. 수풀속에 쓰러졌던 장교가 피칠갑이 된 얼굴을 쳐들고 무엇이라고 소리쳤다.

 

×

 

그날 사령부배후의 급한 산비탈과 아래골짜기, 그너머 산릉선에서는 왜군과 아군사이에 전에 없던 혈전이 벌어졌다. 1, 2, 3진으로 편성된 《결사대》의 사령부기습이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경위중대원들의 거세찬 반격으로 좌절되여 놈들이 사상자들을 버리고 도망쳐내려오기 시작하자 1천의 예비대, 그 정예무력이 사태처럼 밀려내려와 중간골짜기를 건너 들쑹날쑹한 대형으로 사령부고지에로 치달아오르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자 《결사대》들의 배후로 우회하여 포위소멸을 기도하던 7련대 4중대는 력량을 2개 방향으로 갈라 박주호의 소대는 풍지박산이 되여 도망쳐내려오다가 대오를 수습하려는 《결사대》들을 족치기 시작하고 4중대의 기본력량은 광적으로 진출하는 적의 예비대를 측면으로 타격하여 병졸들을 쓸어눕혔다. 그러나 적들은 군도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이께우찌대좌의 살기 풍기는 눈길과 피타는 《반자이》(만세)소리, 광기어린 위혁에 떠밀려 중간골짜기를 날아건너 사령부배후 산중턱까지 치달아올랐다.

그리하여 그 산비탈의 중간계선에서 적아간에 최후결전이 벌어졌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산봉우리 아래턱 바위뒤에 기관총을 잡고 경위중대 대원들과 나란히 엎드려 밀려드는 적병들에게 련발사격을 하시였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는 7~8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좌측릉선을 따라 이동하며 맹사격으로 사령관동지앞으로 밀려드는 적의 일부력량을 떼내여 멀리로 유인해가시였다.

어느덧 그 산비탈의 격전장에서는 적아가 마구 뒤섞여돌아가며 치고 받고 찌르고 쏘는 혼전이 벌어졌다.

그 백병전의 와중에서 박주호는 뒤설레이는 나무가지들과 흩날리는 초연사이로 기관총을 들고 자리를 옮겨가는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문득 띄여보았다. 소름이 끼쳤다. 헉 느꼈다. 온몸에 전률이 퍼지며 팔다리, 주먹,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적을 사령부에 이렇게 접근시킨건… 이건 우리 책임이다! 내 불찰이다!… 죄악이다!)

그는 무서운 함성을 터뜨리며 앞으로 달려드는 놈의 대가리를 총탁으로 후려쳤다. 옆으로 달려들어 허리를 끌어안는 놈의 면상을 팔굽으로 치고 닁큼 들어올려 강대나무에 뿌려던졌다.

(내 불찰이다!… 죄악이다!)

그는 자기자신을 완전히 잊고 펄펄 뛰여다니며 덤벼드는 놈들을 족치고 짓뭉개버리다가 정수리를 내리치는 모진 타격에 눈앞이 아찔해져 비틀거리였다. 코에서 뜨거운것이 줄줄이 흘러내려 군복을 적시였다. 어떤 놈이 뒤에서 총대로 내리친것이다. 불길같은 분노가 터져올랐다.

《야-악-》 하고 박주호는 함성을 내지르며 돌아서 난쟁이같은 왜놈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놈은 짐승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가 멨다꽂았다. 놈을 붙안고 딩굴었다.

숲이 치솟아오르고 파란 하늘이 한옆으로 쏟아져내리는듯 한 환각… 그는 몸과 마음이 아득한 나락으로 날아내리는듯 한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하늘땅을 들었다놓는 폭음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번쩍 떴다. 얼기설기 뒤엉킨 다래넌출같은것에 덮인 벼랑밑이였다. 파란 하늘이 총소리들에 쫓겨 어디론가 황황히 흘러가는데 옆을 돌아보니 난쟁이같은 왜병이 팔다리를 벌리고 엎어져있었다. 그의 뒤더수기가 검붉은 피에 질벅히 젖어있었다.

주호는 가까스로 일어나앉았다.

또다시 울리는 폭발소리, 폭발소리… 하늘로 날아가는 피융- 하는 비명소리, 비명소리… 저 웃쪽에서 터지는 폭발소리들의 메아리… 아주 가까운 아래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왜군의 구령소리, 말소리… 분명히 아래골짜기 어딘가에 박격포나 척탄통좌지가 있는것 같았다. 거기서 사령부가 있는 산봉우리쪽을 겨냥하고 포탄을 날려보내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포탄들이 작렬하는 섬광이 눈앞에 언뜻거리는듯 했다.

박주호는 벼랑을 짚고 무겁게 일어섰다. 아래골짜기에서 폭발소리와 함께 파르스름한 초연이 뭉게쳐올랐다.

그는 발사의 굉음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며 온몸이 산산쪼각나 산지사방으로 뿌리워나가는듯 했다. 엄습해드는 초조감, 불안감… 소대를 부르고싶었다. 소대를 찾아 저것들을 소멸하자고 웨치며 대원들을 그 소멸에로 불러일으키고싶었다. 하지만 어찌랴. … 그렇게 할 경황이 없다. 한초 한초가 새로왔다.

더듬더듬 허리를 만져보니 수류탄 두알이 손에 잡혔다.

(아, 두알만, 세개만… 더 있었으면…!)

수류탄들을 황급히 뽑아 두손에 움켜잡고 비청거리며 걸어나갔다.

한발자욱 또 한발자욱… 땅바닥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리에 기운을 주어 발을 한걸음 또 한걸음 옮겨짚어나가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무엇인가 육중한것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한 소리가 났다. 선뜩한 기운이 뒤덜미를 후려쳤다.

박주호는 홱 돌아봤다.

웃쪽에서 굴러떨어진듯 한 웬 유격대차림의 사람이 벼랑중턱의 다래넌출에 걸려 뻐드럭거리다가 밑으로 쿵 떨어져 딩굴었다. 그 사람은 웬일인지 박주호를 보자 후닥닥 뛰여일어나 벼랑에 가 붙어섰다. 숨을 거칠게 씨근거리며 불찌같이 타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준수한 얼굴, 허우대가 커보이는 체통, 푸들푸들 떠는듯 한 시꺼먼 눈섭.

(아, 세상에 이런 일도… 이런 일도!…)

그자는 분명히 림수산이였다.

그자도 그를 알아본듯 벼랑에 얼어붙어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무릎만 후들후들 떨뿐…

저도 모르게 수류탄을 머리우에 쳐든 박주호도 너무나 놀랍고 아연해져 몸이 바위돌처럼 굳어진채 놈을 쏘아보기만 하였다. 몸에서 증오와 복수심의 피가 소용돌이쳐 귀안에서 바람소리, 강철판의 떨림소리와 같은 우우웅-위이잉- 하는 소리… 그것은 머리우에 쳐든 수류탄의 울부짖음소리인듯… 그를 노려보는 림수산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턱주가리만 덜덜 떨었다.

박주호는 잠재의식의 일깨움으로 자기와 저 짐승사이에 인간 대 인간의 말이 오갈수 없으며 말을 아득히 뛰여넘어 서로 죽음을 안기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림수산도 그것을 아는듯 눈살이 꼿꼿해서 상대를 노려보기만 했다.

박주호한테는 총소리도, 골짜기의 폭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주변의 수림도, 벼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벼랑에 얼어붙어있는 대역죄인의 몰골만이 뚜렷이 보이고 그자가 최후심판의 넓은 광장에 홀로 서있는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기자신은 수류탄이 아니라 징벌의 철추를 높이 쳐들고 서있는듯… 죄인은 그의 눈총을, 징벌의 철추를 피하려고 벼랑에 붙어 좌로 다음엔 우로, 우로 서서히 게걸음질쳤다. 그자가 끌고다닌 《토벌대》한테 사살된 후방밀영들의 병약자들과 녀대원들, 배반당한 대원들과 지휘관들의 절규의 함성이, 구천에 사무친 원한이 하늘땅을 메우며 파도쳐왔다.

《야-아-아-악-》

박주호는 무서운 함성을 터뜨리며 수류탄을 쳐든채 놈한테로 날아들었다.

모든 악한들이 다 그러하듯이 약삭바른 그놈은 몸을 날쌔게 피해 벼랑의 가녁으로 나는듯이 달려가 키를 넘는 수풀속에 뛰여들었다. 뒤쫓아간 박주호는 술렁대는 수풀을 헤가르며 따라갔다.

《서랏- 서랏-》

박주호가 달려나가며 저 앞쪽 설렁대는 수풀속에 언뜻거리는 그림자를 향해 수류탄을 뿌리려는데 아래쪽에서 발사의 굉음들이 련이어 터져올랐다. 뚝 멎어섰다. 두손에 으스러지게 거머쥔 수류탄에 눈길을 떨구었다. 그자가 아무리 가증스러워도 그자한테 뿌리면 수류탄이 더는 없다. 그러면 사령부를 노리는 박격포를 소멸할수 없다.

(아!)

그는 치떨리는 얼굴로 그자가 사라진쪽을 바라보며 피덩이같은 울분을 씹어삼키며 침울하게 중얼거리였다.

《개-놈… 오래- 살아라…》

그는 돌아섰다. 발사의 굉음소리가 들려오는쪽을 향해 비청비청 걸어가다가 눈앞이 획 돌아가 쓰러졌다. 기여갔다. 땅바닥이 파도치며 급경사지로 꺼져내리는가 하면 밋밋하게 솟아오르는듯 했다. 그는 아래로 굴러떨어지는듯 한 환각에 쫓겨 조심조심 기여내려가고 이를 악물고 팔굽으로 땅을 밀며 그 밋밋한 경사지를 치달아올랐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그 희부연 안개속에 문득 리철금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무산아재》가 저기… 저기, 저기로 기여가는 자기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불같이 가슴을 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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