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

 

그날 오전은 조용했다. 오후 3시경부터 쌍엽기 두대가 낮게 떠서 수림우를 날아돌며 삐라를 뿌렸다. 푸른 하늘에 희끗거리며 흩날려내리는 그 삐라들은 울울창창한 수림속의 빨찌산숙영지에도 무더기로 떨어졌다.

삐라들은 두가지였다.

한 삐라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일쏘간에 곧 조약이 조인될것이 명백하다. … 공산유격대원들이여! 세상은 달라졌다. 당신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사령부에 항거하여 총을 버리고 귀순하라!…》

다른 삐라에는 중학교복차림의 림수산과 권영벽이 어깨곁고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과 협화복차림의 림수산과 수의차림의 권영벽이 어떤 강가를 나란히 걷고있는 사진이 실려있고 뒤면에는 빨찌산의 옛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있었다.

그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 나는 판결을 앞두고 자기를 반성해오다가 룡정 대성중학의 옛 동창이며 유격대의 참모장으로 있다가 제국에 귀순하여 황국신민이 된 림수산씨의 권고를 받아들여 전향하였다. 전향해놓고 보니 좀더 일찌기 결심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 어리석은 망상과 열기로 꽃다운 청춘을 희생시키지 말고 우리를 따라 귀순하라! 주저말고 속속 귀순하라!…》

편지 마감줄밑에는 권영벽의 지장까지 찍혀있었다.

첫 삐라에는 최근시기 왜놈들이 계속 떠들어온 소리가 찍혀있어 혐오감만 자아낼뿐이고 대원들은 그것에 왼눈도 파는것 같지 않았으나 두번째 삐라는 그렇지 않았다. 권영벽이 지조를 꺾었다니… 하고 경악하는 대원들이 있는가 하면 반신반의하는 대원들, 거짓이라고 규탄하는 대원들도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도 그 삐라를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일제의 어떤 특무기관이 격전을 앞둔 혁명군부대들의 머리우에 이런 삐라들을 집중적으로 살포함으로써 강한 충격으로 우리의 신념을 허물거나 미미한 동요라도 일으켜보려고 꾸민 모략이라는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중학시절에 림가와 함께 서서 찍은 사진… 그자와 강가를 나란히 걷고있는 사진들… 과장이 없고 날카로운 표현을 피하고 담담하게 쓴 편지의 글줄들에서는 어떤 로회하고 간악한자의 수완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이 비렬한 모략의 목적이 부대들의 신념을 허물거나 대원들을 심란하게 만들어놓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혁명가 권영벽을 육체적으로 말살할뿐아니라 세상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그의 명예나 사상감정까지 말살해버리자는데 있다는것을 간파하시였다. 모략의 조직자는 엄청난 허위가 때로는 진실보다 더 설득력이 있어 빨리 전파되며 허위가 허위라는것이 폭로되여도 께름직한 흔적을 남긴다는것을 잘 아는 놈인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국내에 파견되여있던 정치공작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아 권영벽의 옥중투쟁과 법정투쟁에 대하여 죄다 알고계시였다.

(… 그는 지금 놈들이 어떤 모략을 벌리고있는지 전혀 모르고있을것이다. 만약에 안다면?…)

그이께서는 의분이 터져올라 가슴속에 불이 일고 주먹이 우들우들 떨렸다.

그날, 밤이 깊어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들이 식사는 어떻게 했으며 잠은 제대로 자는지 걱정되여 7련대 숙영지로 내려가시였다.

깊은 골짜기에는 환한 달빛이 가득차있고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그속에서 이따금 산골물이 돌돌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백룡련대장은 한 천막앞에서 보초를 서고있었다. 문전초에 서있던 어린 대원을 자라고 들여보내고 그대신으로 선다는것이였다.

《모두 깊은 잠이 들었소?》

《예… 사령관동지께서 하라시는대로 하니까 허참, 모두 어찌나 태평스럽게 자는지…》

《그래 내가 한 말을 다 전했소?》

《예… 관동군놈들의 군화창이야기를 하니까 모두 어찌나 좋아하는지 한 친구는 얼음판에 들어선 황소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구 일어서서도 옴짝 못하고 쩔쩔매는 흉내까지 내면서 웃겼습니다.》

《허, 그랬는가. …》

《그래서 제가 우리는 뚝심만 가지구 싸울게 아니라 꾀로 싸워야 이긴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낮에 우리한테두 삐라들이 많이 떨어졌는데 말다툼질까지 생겼습니다. 권영벽이 변절했다는게 사실인가, 아닌가 말들을 주고받다가 주봉길이라는 친구가 글쎄 심란해져서 불 안 땐 굴뚝에서 연기가나겠는가고 한마디 했는데 엄한철이가 왈칵해서 답새겼습니다, 왜놈들 악선전에 넘어갔다구. 놈들은 바로 이렇게 우리들속에 불신을 조성하자는게다. … 허, 이렇게 되니 주봉길이 가만있자구 합니까. 각성을 높이자는게 뭐가 나쁜가, 너는 림가놈이 변절하리라는걸 미리 알았는가, 열길물속은 알아도 한길사람속은 모른다. 이런 소리까지 해서 왁작 떠들게 됐습니다. 겨우 눌러놓구 타일렀습니다.》

《그래, 뭐라고 타일렀소?》

오백룡은 뒤덜미를 긁적거렸다.

《량쪽 주장이 다 일리가 있어 어떻게 할지 몰라 둘을 다 골고루 쳐서 눌러놓았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조용하나 쇠소리가 나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래일 아침 그 동무들이 일어나면 내 말을 전하오. 권영벽이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것은 내가 보증한다고. 박달, 리제순이도 마찬가지이고. …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 더 믿고 아끼고 사랑하고 더 굳게 단합해야 한다고… 만약에 납득하지 않으면 두 동무를 다 나한테로 보내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두 경위대원만 데리고 숙영지를 돌아보시였다. 따라나서는 오백룡련대장은 보초를 그냥 서라고 남겨두시였다.

환한 달빛에 골짜기는 대낮처럼 밝았다. 짤막한 그림자를 끌며 스적스적 발걸음을 옮겨가시는 그이의 마음은 가볍지 못하였다. 권영벽에 대한 왜놈들의 악선전이 다른 부대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그 부대들에는 주봉길이처럼 심란해져 동지에 대한 믿음이 순간이나마 흔들린 대원이 한명이라도 없었는가. 그런 미미한 흔들림이 오늘은 순간적으로 일어난것이지만 래일의 죽느냐 사느냐 하는 혈전속에서는 어떤 무서운 재앙을 빚어낼지도 모른다. …

천막안에서 자는 대원들도 있고 바깥의 수풀속이나 나무밑, 바위옆에서 배낭이나 돌베개를 베고 모포로 배를 대충 가리우고 자는 대원들도 있었다.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드는 희푸르스름한 달빛이 그들의 얼굴을 밝혔다. 모두 곤하게 자고있었지만 시름이 실린 얼굴이나 괴로움에 찌프린 얼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거센 숨소리, 코고는 소리가 어스름속에 흐르고 꿈속에서 무엇을 먹고있는지 입을 쩝쩝 다시는 소리까지 났다.

얼굴도 다르고 성미도 서로 다른 사람들의 그 각이한 숨결소리는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 흐르며 따뜻한 가정적인 화기를 풍기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해져 정신없이 자고있는 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정겹게 여겨보시였다. 그들은 래일이면 아니, 이제 당장이라도 죽음이 살판치는 불비속으로 뛰여들어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사람들이였다.

(아,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 나를 믿어 이렇게 마음놓고 자고있는것이 아닌가!…)

그이께서 발걸음을 조용조용 옮기며 대원들의 모포도 여미여주고 베개도 바로 베워주시는데 언제 따라왔는지 오백룡이 곁으로 다가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데리고 저만치 떨어진 바위벼랑밑으로 가시였다.

《저들은 우리를 믿고 저렇게 마음놓고 자오. 모두 이렇게 우리를 믿고 의지하고있는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자신이 없어 움츠러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대장이 그러면 소대가, 련대장이 그러면 련대가, 사령부가… 내가 그러면 온 주력군이 흔들리오. 허물어지오. 싸움판에서 지휘관의 신념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이요.》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백룡의 팔굽쪽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20만대군이 밀려드는데 나라고 왜 마음이 편하겠소. 하지만… 우리는 흐린 낯색 한번 보일 권리가 없소. 신념과 의지의 힘으로 모든걸 묵새기고 버티고 서있어야 하오. 쇠기둥처럼… 그러지 못하면 망하오!》

그이께서 골짜기치기에 있는 7련대숙영지의 마지막천막으로 다가가시였을 때였다.

천막앞불무지곁에 웬 그림자가 웅크리고 앉아있는것이 보였다. 그 그림자는 도대체 무슨 일에 골똘하고있는지 곁에서 인기척이 나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백룡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나직이 불렀다.

《여, 소대장동무. …》

깜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을 보니 박주호였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못된짓을 하다가 들켜난 아이처럼 손에 쥔것을 슬그머니 뒤에 감추었다.

그이께서 한걸음 더 다가서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다 자는데 왜 자지 않소?》

《…》

《그건 뭐요?》

박주호는 어줍게 웃어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음… 그런가, 개인적인 비밀이면 보지 말아야지.》

박주호는 좀 당황해하였다.

《별거 아닙니다. 담배쌈지가 판이 나서 기웠댔습니다.》 그리고는 허연 천쪼박을 내보였다.

《아-니, 이런 밤에 바느실이 보이오?》

《달빛이 환해서… 사령관동지, 저는 부엉이눈입니다.》

《부엉이눈이라. … 헛허허…》 하고 그이께서 껄껄 웃으시였다.

《야간기습전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자연히 밤눈이 밝아졌습니다.》

《음… 어디 보자구.》

그이께서 담배쌈지를 받아쥐고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주호동무는 배포가 유하거든. 전투를 앞두고 담배쌈지를 깁는걸 보니…》

《전투가 다 끝난 다음 쌈지를 꺼내 마라초를 굵직하게 말아서 피우면서 연기를 들이켰다가 후- 내불면 정말 별맛이구 속이 후련해집니다.》

《그래… 그래… 한데 그 쌈지는 틀렸어. 좀 촘촘히 기워야지 그게 뭐요. 듬성… 듬성… 동무 쌈지는 내가 장만해보지!》

《예?… 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그저 목단령을 넘을 때처럼 싸워주오.》

《어제밤 련대장동지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사령관동지하고 같이 있으면 무서운게 없습니다.》

《소대장동무, 그 말이 정말이요?!》

《우리 소대동무들이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맙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그날 밤 7련대를 떠나 8련대로 나가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편안히 잠자는 오백룡이네 대원들이며 전투를 앞두고 담배쌈지를 깁는 박주호의 모습이 눈앞에 그냥 얼른거려 마음이 든든해지고 걸음마다 신심이 넘쳐나시였다.

 

×

 

새벽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되시였다.

갑산조직에서 압록강을 넘고 비밀지점을 거쳐 보낸 밀봉한 종이말이를 받으신것이다. 미농지에 만년필로 쓴것이 비물에 젖었는지 글자들이 번지였다. 대부분은 알아볼수 있었지만 어떤 장은 아예 보지 못하게 되였다.

하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글자 하나, 단어 하나가 대번에 문장으로 쭉쭉 련결되면서 단숨에 읽게 되시였다. 흥남지구에서 조국광복회 특수회원이 입수한 이께우찌대좌와 권영벽의 일문일답록이였다.

 

이께―후회하지 않겠는가?

권―안함.

이께―이 세상에 남기고싶은 말은?

권―있음, 가슴에 안고감.

이께―우리가 전하겠다.

권―말할수 없음. 외곡될수 있기때문.

 

사령관동지께서는 급히 글줄을 더듬으시였다. 권영벽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왕왕 울리는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지시였다.

 

이께―왜 림을 그토록 외면? 말같은 말 한마디 없이?

권 ―량심의 눈으로, 이 말뜻을 아는가. 량심의 눈으로 보면 어떤 존재도 가장 깊은 심층까지 꿰뚫어볼수 있다. Ⅹ광처럼.

림은 외양은 사람, 얕은 속은 류인원, 깊은 속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하나를 위해 움직이는 렬등동물. 그런 짐승한테는 사람의 언어 통할수도 리해될수도 없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께―한때 가까운 사이였다는데 그런 험구를?

권 ―들으라. 첫째로, 내 말은 험구가 아님. 량심의 선언, 성스런 증오의 웨침, 지탄이다. 둘째로, 옛 우정은 나의 실책, 수치.

이께―그렇게 증오하는가?

권 ―원쑤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대라 설교하는 저 그리스도교도들을 보는가. 오늘까지 2천년이 되도록 예수를 배반한 배신자 유다를 증오, 저주. 그 증오를 후대들한테 물려주어 2백대, 4백대, 5백대로 내려가며 증오, 저주. 세기와 세기를 넘어 꺼질줄 모르는 불길처럼 타번지는 증오여!

이께―그 감정이 리해됨. 중학시절에 읽은 단떼의 《신곡》이 생각난다. 플로렌스의 그 시인은 지옥에는 지심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며 아홉층의 옥이 있다고 상상… 1옥에는 신을 섬기지 못해 버림받은자들의 령혼을, 2옥에는 음란죄를 지은자들의 령혼을, 3옥에는 식충인 탐식가들의 령혼을… 그밑, 그밑 옥들에는 변놓이죄, 랑비죄, 린색죄, 도적죄… 사기협잡, 폭행, 아첨, 리간… 죄를 지은자들의 령혼을, 제일 깊은 밑바닥 9옥에는 유다 이쓰까리오떼를 비롯한 배신자들의 령혼들이 감금되여 무서운 형벌을 받으며 영원히 고통속에 있다고 묘사… 그러나 이건 지구물리학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의 허황한 환상…

권 ―나도 한때 그 책에 심취…

이께―단떼를 읽었단 말인가?!

권 ―묘사된 사실들은 다 비과학적인 환상… 그러나 거기엔 자기 조국과 당파와 은인을 배반한 배신자들에 대한 만민의 증오와 저주의 감정이 반영… 보라, 위대한 시인은 배신자들을 지옥의 제일 밑바닥 9옥에 처넣음.… 인간세상의 모든 죄악들중 배신, 변절을 가장 간악한 대범죄로 보았기때문… 지옥사자에게 영원히 물어뜯기우는 형벌, 얼음늪에 영원히 꺼꾸로 구겨박혀있는 형벌… 인민적감정의 얼마나 진실한 표현인가.

이께―음… 계속하라.

권 ―만약에 지옥이란것이 있다면 림수산, 그자도 그런 형벌을…

이께―그렇게 생각하는가?

권 ―그렇다.

이께―음…

권 ―림을 만난 다음 나는 많은 생각… 만약 그가 패배하리라는 생각에서 헤여날수 없어 권총자살이라도 했다면 좀 리해되는 점도 있을것임. 림은 자기가 10여년 반대해 싸운 일본군에 투항… 자기가 정의… 정의의 위업이라고 믿었던 조국광복성전을 저버리고 자기를 크게 믿었고 사랑한 령도자, 은인을 배반…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을 배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침. 정의가 아니라 힘이 강한 일본측에 붙어 안락한 생활과 출세의 길을 열어보자고 도망, 투항… 나는 정의가 아니라 개인적리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인생관을 멸시함.

이께―그러니 너는 감옥에 계속 있겠다는건가?

권 ―여기가 좋다. 감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이께―결심이 됐는가. 생사 어느쪽을 선택?… 어느 길을?

권 ―후자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림. 다시 충분히 생각… 결심…

이께―체조를 하고 날아가는 새까지 내다봤다는건? 누구를 골려주고싶은 심보였는가?

권 ―이제 인차 끝날 마감길을 웃으며 가고싶었소.

이께―전향을 엄비에 붙인다. 제국에 복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 열어주었는데 왜? 왜 죽는가?

권 ―살고싶다. 그러나 살길이 없다. 엄비, 강요하지 않는다. 이건 다 계책, 회유책. 설사 아니더라도 량심을 더럽혀야 살수 있기때문에 후자를 선택함.

이께―권선생, 안해, 자녀들이 불쌍하지 않는가?

권 ―(침묵)

이께―당신은 흔연하게 죽음으로써 혁명가의 명예를 지켰다치고 금후 안해, 자녀들은 어떤 불행을 겪겠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권 ―쥐들만 부스럭거리는 이 감방의 긴긴밤 가족들을 몇천번, 몇만번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들이 불쌍하다가도 달리 생각하면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불행, 생활고는 일시적임, 미구에 승리의 날이 오면 권영벽렬사의 자녀로서 사회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됨.

이께―그날이 오리라고 믿는가?

권 ―온다. … 반드시 온다.

이께―오늘 황군은 중국대륙을 거의다 점령. 제국의 강대성앞에 미, 영, 쏘베트로씨야까지 전률. 이 엄연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들한테 명절이?… 핫하하… 그건 망상… 망상이다!

권 ―일본의 승리와 성과는 일시적이다. 종당에는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

이께―왜? 무엇을 보고 그렇게 단언?

권 ―일본에는 정의가 없다. 해외팽창야망밖에… 인류사회는 불의의 승리가 아니라 정의의 승리로 한걸음한걸음 진보해왔다. 오늘까지 발전해왔다. 불의는 고립, 배척, 배격, 전인류적항전에 부딪쳐 망함. 정의는 공감, 환영, 지지성원속에 강대해져 필승함. 이것은 인류사의 가장 보편적인 법칙… 진리… 보라, 스파르타쿠스는 죽었지만 노예제는 페지됨.

권 ―언제인가는 일본에 패망의 날이 올것임. 그날에 내 말을 기억하라.

이께―우리가 떠나는 날이 당신이 끝장나는 처형의 날로 될것이다. 당신도 이것을 안다. 그런데도 감정정서가 있는 인간이면 이럴수 있는가. 무신론자인 당신이 신의 자비심에 의한 기적을?

권 ―나는 오늘까지 이 형무소에서 무사히 탈옥해나갔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2중3중의 삼엄한 경비속에 있는 형무소의 독감방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갇혀있는 사람이 자기를 구원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그거야말로 망상,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도고하게 보였다면… 이 가슴에 변함없는 신념이 있기때문. 신념… 나… 이 권영벽은 김일성장군을 철석같이 믿기때문에 웃으며 죽을수 있다. 비감에 빠지지 않고… 김일성, 그이는 정의의 화신,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자는 민족의 지향과 숙원을 한몸에 체현한 령수, 장군이 령도하시는 항일전은 정의의 성전, 이 전사는 죽어도 장군은 조국을 해방하신다! 장군은 승리한다. 나는 체포된 후 고문에 피를 토하고 뼈가 부러지고 이발이 부서지며 기절한 일 한두번 아니지만 백두산을, 장군을 생각하면 기운이 나고 용기백배해져 굴함없이 항거… 우리 혁명군… 민중은 다 나처럼 장군을 믿는다, 따른다.

이께―충군정신으로 말하면 페하에 대한 우리 황군과 신민의 그것처럼 높고 강한것이 이 세상에 없다.

권 ―내 알건대 당신네 페하의 선조는 하늘의 신, 천조대신이요. 그 후손인 페하는 현인신… 유물론자들 관점으로 보면 신은 무이다. 무를 믿고 섬기는 그 신념은 속이 빈 허황한것… 언젠가 그 허황함을 깨닫게 되면 다 허물어진다.

이께―권선생, 내가 어떤 인내로 듣고있는지 아는가?

권 ―때문에 일본의 정치학자 미노베는 《천황》기관설까지 내놓음.…

이께―그자는 대역죄인이다!

권 ―김일성장군은 우리 백의민중과 같이 빈한한 농민가정에서 탄생… 민족의 피눈물속에서 민중해방의 구성으로 솟아오름… 그이는 애국애족의 화신, 정의의 화신… 장군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진정에 충만된것임… 당신은 우리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아는가? 그건 우리 김일성장군이 백두산바위에 앉아 한자한자 쓴것임.

이께―그래서?…

권 ―우리를 심문하자면 적어도 그런 문헌쯤은 연구하고 마주앉아야 함. 당신 요설을 들으면 전혀 읽은것 같지 않아 하는 소리

… 그 강령조항들을 읽으면 우리 민중이 왜 김일성장군을 믿고 따르는가, 장군두리에 뭉친 민중의 신념, 그 힘이 어떤것인가 인차 알수 있음.

이께―나 인간적으로 터놓고 말한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정신상태이다. 정신만으로는 그것이 아무리 강하고 고결해도 일본의 막강한 군사력, 저 무한대한 물리적힘을 이길수 있는가?

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다. 나는 구태여 당신을 리해시키려고 하지 않겠음. 그만하고 돌아가라.

이께―안된다. 더 말하자.

한가지 묻겠다. 마지막소원은?

권 ―내 아들이 지금 8살인데 이제 크면 나를 대신해서 김일성장군님의 부하가 되여 너희들과 끝까지 싸우는것임. 그런데 그게 안될것임.

이께―왜?

권 ―그전에 너희들이 망할것이기때문.

이께―뭐야? 대일본제국은 승승장구하고있다. 태평양은 우리의 호수로 되고 미국, 중국, 로씨야 모두 우리앞에 무릎을 꿇을것임.

권 ―당신의 과대망상증도 일본의 운명과 함께 끝날것임.

이께―닥치라.

권 ―그럼 한가지 묻자. 우리 혁명군이 다 망했다면서 어째 이토록 나를 전향시키려고 애쓰는가? 당신들 언동은 무엇을 자체폭

로하고있는가. 우리 사령부와 그 주력군이 의연히 막강한 힘으로 존재하며 일본군을 계속 타격하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당신네는 골머리를 앓고있다. 그래서 나를 전향시켜 저 림씨와 함께 혁명군에 대한 《귀순공작》에 내세우자는것이다. …

이께―닥쳐라! 투항해! 투항하랏-

권 ―헛허허… 헛허허…

 

사령관동지께서는 주먹으로 옆에 눕혀있는 통나무를 내리치시였다.

(그렇지, 권영벽이!… 너는 신념의 화신!… 너는 나의 신념을 받아안았다고 하지만 나는 너의 불굴의 모습에서 나의 신념을 백배천배로 굳히고싶다.

아, 권영벽이… 너는 철의 인, 조선혁명의 자랑이다. )

그이께서는 즉시 오백룡과 박덕산을 부르시였다.

여러장으로 된 미농지를 옮겨가며 급히 읽고난 그들은 흥분으로 말을 못했다.

그러다가 오백룡이 부르짖었다.

《그럼 그렇지! 쪽발이들의 삐라가 새빨간 거짓말이란걸 빨리 대원들에게 알립시다.》

박덕산이 심중해졌다.

《이것을 공개해서 혹 우리 비밀조직선이 로출되지 않겠습니까. 몇몇 지휘관들만 알고… 어쨌든 권영벽동무가 전향하지 않았다는것만 말해줍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아니요. 큰 전투를 앞두고 이걸 전문공개하자는거요.

권영벽이 전향할 사람이 아니라는것은 우리가 믿은바이지만… 이건 그 어떤 전투명령보다 더 위력한 힘을 가질것이요. 난 방금 이걸 읽고 이번 작전을 바로 권영벽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자는 결심을 다졌소.》

그날 그 속기록사본은 부대에서 부대에로 돌아가며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격동시켰다.

 

×

 

이튿날 이른아침 오백룡련대장은 산마루로 뛰여올라가 적정을 살피려고 쌍안경을 눈에 붙이였다.

웬일인지 가까운 앞쪽의 나무줄기와 우듬지들이 얼른얼른 눈에 비쳐들뿐 그 저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연 장막에 가리워진듯… 그는 놀라서 쌍안경을 내렸다가 다시 눈에 붙인 다음에야 그것이 안개라는것을 깨달았다.

골짜기며 릉선들을 삼켜버리며 안개바다가 소리없이 밀려들고있었다. 젖빛안개는 낮게 떠서 골바닥이며 릉선들의 수림속으로 조심스럽게 기여드는가 싶더니 홀연 기승을 부려 사품치고 회오리쳐 오르기도 하면서 해일처럼 휩쓸어들어 산발들을 덮치는가 하면 갈기를 날리며 아득한 하늘에까지 날아올라 온 천하를 뒤덮는듯 했다.

어느덧 그자신도 희부옇고 서늘한 안개바다속에 잠겨들어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멀고 가까운 적진영쪽에서는 자동차소리나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다. 모든것이 눅눅한 안개와 괴괴한 정적속에 묻히여 조을고있는듯싶었다.

오백룡련대장은 그 정적을 믿지 않았다. 마음이 더 긴장되였다. 왜놈들의 사령부와 일선지휘처들에서 〈토벌〉의 백전로장이라고 떠드는 노조에나 마에다, 야마시다, 이즈미와 같은자들이 안개를 천기의 조화로 여기며 부대들을 은밀히 기동시켜 아군가까이로 접근시키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때문이였다.

수풀을 헤가르며 누구인가 올라오는것 같더니 몸매 다부진 4중대장이 곁으로 다가와 헐썩거리며 안개를 리용하여 적진에 바싹 접근했다가 불의에 기습전을 벌리면 어떤가고 물었다.

오백룡은 느슨하게 웃어보였다.

《수고스럽게 찾아갈게 있나. 제발로 기여들면 답새기지. … 감시를 빈틈없이 조직하라구.》

그때 박주호네 소대에서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릇들을 거두는중이였다.

주호는 이끼덮인 진대나무에 기대여앉아 담배를 마는데 진대뒤에서 풀포기의 이슬로 그릇들을 부시던 두 대원이 수군수군 주고받는 불평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 〈무산아재〉가 우리하구는 별스레 깔끔하게 군다니까. 다른 소대하구는 그러지 않는데. …양재기에 밥알이 묻었다… 식기밑굽을 깨끗이 닦으라… 허참, 별스레 군다니까.》

《왜 그러는지 모르겠나? 소대장이 너무 뚝바우가 돼서 그래. 남들처럼 작식터에 찾아가서 수고한다는 인사도 하구 뭐나 좀 도와주면서 롱말도 슬슬 건네면 좋지 않아? 이거야 속이 상해서…》

《쉿…》

박주호는 그런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넘실거리는 안개속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손끝이 따가와나도록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는 우수에 젖은 눈을 슴벅이며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런 소리를 듣는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철금이 자기 소대를 빛내여주자고 은근히 왼심을 써서 남다른 요구를 제기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달리 생각되였다. 자기를 경원하던 나머지 대원들한테까지 그렇게 깔끔하게 구는것 같았다.

수치심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무산아재》… 저 동무야 마음씨 무던하고 간사한데두 없구…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한데… 나한테만은 정을 주고싶지 않으니까 그러겠지. 내가 못난이니까 하는수 없어. …)

또다시 수군거리는 소리…

《…여, 작식당번으로 나가있는 저 2소대 박쪼꼬맹이가 그러는데… 새벽녘에 사령부전령병이 뛰여와서 〈무산아재〉한테 무언가 주면서… 여기다 끈을 든든하게 달아 우리 소대장한테 주라고 했다누만. …》

《엉? 그게 뭐게?》

《글쎄?…》

주눅이 든 사람처럼 풀기없이 앉아있던 주호는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화때문에 그 소리를 여겨듣지 못하였다.

그는 다 타들어간 담배불을 풀속에 비벼끄고는 벌떡 뛰여일어났다.

(에익, 그까짓게 없으면 못살겠는가. 오늘루 다 털어버린다! 대원들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인가!)

그가 어디나 화풀이하고싶어 진대의 이끼를 와락 움켜잡는데 어디에선가 나팔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안개바다의 저 아래쪽 적진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왜놈들의 돌격나팔이다.

박주호는 거듭거듭 불어대는 그 돌격신호에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퉁명스럽게 뇌까렸다.

《겁쟁이들, 잔꾀만 부리지 말구 빨리 접어들엇. - 쪽발이들하구는 성미가 맞지 않아 쌈두 못하겠어. 접어들란 말이다!》

그때 8련대에서도 아침식사를 마치였으며 한명찬소대장은 망원초를 보강하기 위하여 대원 두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한명찬은 두 대원을 이끌고 자욱한 안개속을 헤쳐나가며 방금전 사령부에서 내려온 지시를 거듭거듭 되새기였다. … 안개가 심상치 않게 끼는것만큼 망원초들의 인원을 증강하고 감시를 특별히 강화할것. 만약 적들이 밀려들면 신호만 하고 쏘지말고 통과시킬것. 쏘지말고… 쏘지말고… 대여섯메터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희부연 안개가 너울거려 발을 자꾸 헛디디고 나무가지며 가시풀넌출에 긁히우고 강대와 나무그루터기들에 부딪칠번하였다. 얼굴이며 속눈섭까지 눅눅히 젖어들고 이슬에 옷이 화락하니 젖었다. 목안에서 겨불내가 풍겨올랐다.

망원초는 저 아래쪽 두두룩한 산릉선의 백년묵은 떡갈나무곁에 있었다. 거기서는 시야가 틔여 적들의 집결처방향으로 통하는 골안이 손금보듯이 내려다보인다. 망원초에는 지성학이라는 구대원과 젊은 서기활이 감시를 서고있었다.

한명찬소대장이 망원초에 이르니 거기에 로대원만 있고 서기활은 보이지 않았다. 귀속말로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로대원은 빙그레 웃어보이며 떡갈나무우듬지를 가리키면서 저기 있다고 하였다.

한명찬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그 우듬지쪽을 쳐다보았다.

실연기같은 갈기를 수없이 날리는 젖빛안개바다의 흐름속에 서있는 떡갈나무의 가지들만 희미하게 보일뿐 그우는 보이지도 않았다.

《여- 뭐가 좀 보이나?》 하고 한명찬이 나직이 물었다.

우에서도 목소리를 죽여가며 대답했다.

《소대장동지… 여기서두 아무것두 안 보입니다. …》

《무슨 소리는 들리오?》

《하늘땅… 천지가 다 고요- 합니다. 넨장, 총소리라도 한방 쾅 울려봤으면…》

《안되오. 사령부의 특별지시요.》

《성냥이 없습니까? 갑갑하니 담배생각만 자꾸 나서 죽겠습니다. …》

그때였다.

등성이 바로 너머에서 와스스… 와스스… 수풀을 헤가르는 소리와 낯선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왜말소리…

한명찬은 수풀속으로 날아들어 엎드렸다. 세명의 대원들도 따라들어와 숨었다.

이윽고 네댓명의 그림자가 산등성이에 올라서는것이 풀대들사이로 흐릿하게 내다보였다.

한명찬은 숨을 죽이고 눈뿌리가 저려나도록 정신력을 집중해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흐르는 안개의 조화로 그것들은 물결우에 비낀 그림자들처럼 얼른거렸다.

그자들은 몇순간 산등성이에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으로 걸어내려오더니 가지들을 넓게 펼친 떡갈나무밑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담배도 피우고 조용조용 말도 주고받았다. 모두 다섯놈인데 어디로 싸다녔는지 군복들이 다 이슬에 푹 젖어 거멓게 보였다. 그중 세놈은 옷들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여있었다.

왜말을 괜찮게 알아들을수 있는 한명찬은 그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통하여 제일 가운데 앉은 놈이 이께… 뭐라는 대좌이고 그 오른쪽 옆의 놈은 모리다라는 놈이고 세번째 흙투성이는 그들의 하수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선들바람이 불어오는듯 갑자기 떡갈나무잎사귀들이 설레이고 이슬방울들이 화라락… 밑으로 날아내렸다.

한명찬은 나무우의 서기활이 흥분한 나머지 조심성을 잃을것 같아 손에 식은땀을 쥐였다. 그러나 놈들은 한두명이 흘깃 우를 쳐다볼뿐 그냥 담배만 태우며 이야기했다.

대좌라는놈이 왼켠의 흙투성이를 돌아보며 저 홍기하 량쪽산들에 유격대주력이 있다는것을 무엇으로 증명할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흙투성이는 지난 밤 홍기하에 내려와 물을 길어가는 대원들중에 내가 잘 아는 8련대의 대원 둘이나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대좌는 수고했소. 림선생… 이렇게 분명히 말했다.

한명찬은 피가 왈칵 치솟았다. 무서운 함성이 터져나갈것 같아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고 우들우들 떨며 그 흙투성이를 쏘아보았다.

얼굴은 이전보다 더 파리해진듯 하나 그 준수해보이는 인상이며 틀진데가 아직 남아있는 앉음새, 쭉 빠진 체격으로 보아 림수산이 틀림없었다.

그는 손세까지 써가며 대좌에게 무어라고 부지런히 주어섬기고있었으나 한명찬은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 귀안에서 울부짖는 바람소리때문에 알아들을수 없었다.

누구인가 귀안에 후끈한 입김을 불어넣으며 속삭이였다.

《알아봤습니까? 저놈, 저놈이 림수산입니다. … 치자요!》

곁에 엎드린 로대원, 지성학이다.

한명찬이 그를 제지시키려고 부들부들 떠는 주먹을 잡아 꾹 누르는데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떡갈나무에서 검스름한 그림자가 날아떨어졌다. 서기활이 떨어지면서 발바닥으로 림수산의 뒤덜미를 냅다 차는것이 언뜻 보였다.

《악-》

《으악-》

놈들은 기절초풍하여 앞뒤로 뻗으며 딩굴었다.

한명찬은 어떻게 뛰여나가 총대로 놈들을 마구 후려치고 짓모았는지 알지 못했다. 세명의 대원들도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수풀속에서 달려나왔다. 치고 받고 발길로 걷어차고 짓쫓고 물어뜯고 붙안고 돌아가는 육박격투가 벌어졌다. 맹수의 그것과도 같은 울부짖음, 살과 살,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 영악하게 위협하고 저주하고 이를 가는 소리… 불길같은 입김, 철퇴처럼 날아나가고 날아드는 주먹, 주먹, 뛰놀며 걷어차고 짓밟고 짓이기는 발, 발, 발… 뒤엉켜 뻐드럭거리는 다리, 다리… 피빛으로 번뜩이며 불을 뿜는 눈, 눈, 눈… 회오리치는 살기… 증오가 지나쳐 리성을 잃은 다섯사람과 공포에 얼어빠진 다섯 짐승이 피투성이가 되여 각각으로 붙안고 딩구는가 하면 왁 모여들어 한덩어리가 되여 돌아가며 치고 받고 란투를 벌리다가도 다시 흩어져 하나와 하나, 둘과 셋, 둘과 하나가 마주 붙어 치고 받고 팔을 꺾고 목을 비트는 결사의 혈투… 한명찬은 림가놈을 깔고앉아 주먹으로 얼굴을 짓모다가 목을 누르는데 어떤자가 뒤로 덮쳐들어 걷어차는 바람에 허궁 나가떨어졌다. 그 바람에 풀려난 림가는 벌렁벌렁 기여나가 산비탈로 굴러내려가 안개속에 사라지며 권총을 발사했다. 탕-탕-탕- 고요를 짓부시며 메아리치는 총성…

나머지 놈들도 시체로 되여 늘어진 놈을 버리고 번개같이 도망쳐 안개속으로 뛰여들었다.

한명찬과 그의 대원들은 몸을 날려 뒤쫓아가며 서라고 소리쳤으나 밀려오는 안개로 시야가 막혀 놈들의 향방을 알길이 없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멎어섰다. 그리고는 단숨을 몰아쉬다가 너무 아연하고 허망하여 크게 뜬 눈으로 서로 돌아보았다.

서기활은 털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제 가슴을 쾅쾅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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