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9

 

이튿날 오전, 신경비행장에서 수송기 한대가 급기야 날아올라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였다. 군용우편물수송기였다. 비행기안에는 이께우찌대좌와 모리다대위 그리고 림수산… 수행원 몇이 앉아있었다.

수송기는 11시반경 함흥 가까운 비행장에 착륙했다.

일행은 곧 시내에 들어가 호텔로 들었으며 점심식사부터 대충 하였다.

식사후 이께우찌대좌는 모리다와 림에게 자기 호실들에 돌아가 로독이나 풀면서 쉬라고 이르고는 《총독부》 경무국에 전화한다며 헌병대로 갔다.

림수산은 모리다가 든 호실의 옆방인 자기 거처로 들어가자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대각선으로 벌렁 누워버렸다.

볕에 탄듯 한 까만 얼굴로 천정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이께우찌와 특무부의 새 귀순작전계획을 알고있었으며 이번 걸음이 그 실현가능성여부가 판가리되는 결정적인 아니, 운명적인 계기라는것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모든것이 권영벽에게 달려있었다. 그를 전향시켜 내는가, 못하는가.… 권영벽을 꺾어내지 못하고 귀순공작계획이 휴지로 되는 경우 이께우찌가 그 책임을 아무런 배경도 보호자도 후원자도 없는 가련한 투항자에게 넘겨씌울것은 불을 보듯이 명백했다.

그는 이께우찌가 자기를 다루는것을 보고 자기에 대한 그의 감정과 립장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과 립장은 모리다의 계속되는 밀고에 의하여 빚어졌으리라는것도 짐작하고있었다.

(이번에 내 운명도 결정될수 있다. …)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이께우찌는 3시간후에 돌아왔는데 몹시 흥분된 얼굴로 모리다와 림수산에게 좀 있다가 자기 방으로 오라고 일렀다.

그들이 1등호실에 들어섰을 때 대좌는 군복을 벗어버리고 회색신사복차림에 색안경까지 끼고 응접실의 거울앞에 서서 향수분무기로 겨드랑이밑에 향수를 치고있었다. 아마 이곳 함흥형무소에서 권영벽을 만난 일이 있기때문에 그렇게 변장한것 같았다.

향긋한 냄새가 방안에 떠돌았다.

대좌는 두사람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기도 안락의자에 와서 앉으며 활기에 넘쳐 말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여기선 굉장한 사건이 벌어질번 했다. 람의사, 의렬단… 그 테로단들이 여기까지 기여들어 엄청난 사건을 모의하다가 적발됐다. 그자들은 형무소에 대화재를 일으켜 일대 혼란을 조성하고 그 틈에 자기계렬의 사형수들을 구출하려고 했다. 그뿐아니라 공산계렬의 권영벽이 등도… 일부는 잡히고 일부는 지하에 숨고 할빈, 상해 등지로 도망친것 같다. 그무렵 권영벽이 독감방에서 체조도 하고 휘파람까지 불었다는걸 보면 그한테도 내통이 돼있은것 같아. 지독한 놈들… 음… 이번 사건은 권영벽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을것이다. 일이 참 잘 맞아떨어져. 묘- 하게… 때마침 여기 형무소에서 래일 교수형을 당하는 죄수가 있다는군. …》

대좌는 흐믓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권영벽이한테 그 형장을 보여 초벌로 기를 꺾은 다음 료정에 끌어간다. 죽음에서 삶, 암흑에서 광명, 지옥에서 천당으로 말이다. … 미미한 동요라도 일면 성공이다. 그다음은 총공격이다. 어떤가? 음?!》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같은것이 언뜻 비꼈다.

《이번에 형무소전옥이 우리 요구대로 모든것을 준비해놓았다. 오늘 저녁부터 권영벽은 그와 꼭같은 대접을 받게 된다. 아마 지금쯤 목욕을 하고있을게다. 그다음에는 리발… 더부룩하게 자란 허연 수염을 밀어버리고 래일 아침 식사때에는 고별주까지 마실수 있다. 그러면 어차피 곧 사형언도가 내려질 자기한테 무엇이 오는지 느끼겠지. … 음…》

그리고는 우리는 독감방에서 나오는 그를 만난다고 하면서 림수산이더러 그때 비통하게, 떠들썩하게 옛 전우를 만나라고 하였다.

《전옥은 나한테 형장에서 진짜 사형수한테 절대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사람을 22명이나 죽인 살인악당, 강력범인데 형무소개소이래 처음보는 횡포한 작자라 한다. 그래서 서대문에도 데려가지 않았는데… 집행유예기간 두번이나 간수한테 달려들어 미친개처럼 물어뜯었다. 굉장한 놈이야. 흐흐…》

림수산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불안감이 엄습해들었다.

 

×

 

시간이 되자 한초도 어김없이 독감방의 철문이 신경을 써는 마찰음을 내며 무겁게 열렸다.

습하고 악취 풍기는 공기와 함께 곰팽이냄새가 휩쓸어나오는 속에 머리가 허옇고 피골이 상접한 《로인》이 두 간수에게 부축되여나왔다.

림수산은 달려들지 못하고 오히려 주춤 물러서면서 벽에 붙어섰다. 이런 《로인》이 권영벽이란 말인가?! 가슴이 떨렸다. 대바르고 강직하고 도도한 기상은 어디로 갔는가. 밝게 웃을줄은 몰라도 어떤 사경에서도 락망을 모르고 앞장에서 달려나가며 대원들을 불러일으키던 그 기개… 말없이 앉아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던 혁명가의 그 기품은 어디로, 아, 어디로 다 갔는가? 어떤 무서운 고문이, 제국의 어떤 완력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

림수산은 뒤덜미에 비수처럼 꽂히는 이께우찌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전률하며 달려나가 수갑을 채운 권영벽의 뼈가 앙상한 팔목을 와락 잡았다 흔들었다.

《수남이! 여보게 권동무, 권영벽동무! 나요. 수산이요. 림수산이!… 옛 참모장일세. 나를 모르겠나?!》

권영벽은 인생의 서리가 허옇게 내린 눈섭을 찌프리고 기억력을 완전히 잃은듯 망연자실한 사람의 멍한 눈으로 그를 여겨볼뿐…

림수산은 너무나도 기막혀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영벽이, 왜 나를 몰라보는가? 엉?! 여보게, 나… 나… 림수산이네!》

권영벽은 머리를 푹 떨구었다. 그리고는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도 인사불성이 된 사람처럼 머리를 들지 못했다.

량옆에서 그를 부축하고있던 두 간수가 사정없이 걸음을 옮기며 그를 끌고갔다. 발을 허둥지둥 헛짚기도 하고 발끝이 넝마자락처럼 끌려가기도 했다. … 족쇄의 사슬이 콩크리트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세상을 하직하는 비참한 인생의 여운처럼 복도에 흘렀다.

림수산은 이께우찌의 시선을 등뒤에 느끼며 황황히 권영벽이를 뒤쫓아가면서 준비해두었던 말을 엮어내렸다.

《… 나는 자네 기막힌 소식을 듣고 달려왔네. 여보게, 우리 혁명군이 다 망한 지금에 와서 이렇게 값없이 허무하게 가다니? 아, 왜 그토록 고집불통인가. 자네는 옥중에 있어 아무것도 몰라. … 쏘련과 도이췰란드가 불가침조약을 맺고 손을 잡았네. 이제 불원간 쏘일이 손을 잡는다고 온 세상이 떠들고있네. 이러한 때 자네같은 참사람이 가다니…》

권영벽은 한번 고개를 돌리거나 주춤거리는 기색도 없이, 그렇다고 저주의 눈총을 쏘거나 울분에 몸부림치는 일도 없이 고개를 떨군채 끌려갔다. 밖에 나오니 해빛이 눈을 찌르고 흙냄새, 풀향기가 페부로 휩쓸어들어 머리가 핑 도는것 같았다.

림수산이 자기가 이러할진대 내내 어둑침침한 독감방에 있던 권영벽은 어떠랴싶어 여겨보니 그는 된타격을 받기라도 한듯 비칠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두 간수가 걸음을 멈추며 그의 팔을 더 꽉 끼면서 추켜올렸다. 권영벽은 얼굴을 뒤로 젖히고 숨을 한껏 들이키는것 같더니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재빛 감옥건물의 지붕쪽에서 참새들의 우짖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중충하게 솟은 두 감옥건물사이로 잡초가 성글게 돋은 오솔길이 빠져나갔는데 그 저쪽 성벽같은 담장앞 외진 공지에 서있는 자그마한 단층 콩크리트건물이 보였다. … 그쪽에서 풍겨오는 서늘한 기운에 림수산은 그것이 사형실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문득 이께우찌의 존재도 까마득히 잊게 되고 룡정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령사관류치장… 형사는 학생시위사건으로 끌려와 뭇매를 맞으면서도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고 한마디 불지 않은 애숭이의 귀를 비틀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면서 새벽 2시에 저 뒤뜨락에 끌어내여 총살한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나가버렸다. 그 말을 믿은 애숭이는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가 왈칵 닫기는 순간 죽음… 죽음이라는 시꺼먼 먹장구름이 얼굴에 확 덮씌우고 어딘가 멀리에서 장새납소리같은것이 간드러지게 들려오며 눈앞이 돌아갔다. 그 소리는 아스란히 멀어지는가싶다가도 귀전에서 울부짖으며 온 정신을 휘저어놓았다. 류치장에서 풀려나온 다음 누구한테인가 그 이상한 소리에 대하여 이야기했더니 그건 지옥의 음악이라고, 령혼이 지옥근처에까지 날아갔기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린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그 소리가 모기소리만큼 들려오면서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오솔길로 끌려가던 권영벽은 이런 순간을 위하여 아껴온듯 한 기운과 기개를 다 내여 두 간수를 뿌리쳐버리고는 혼자 걸어나갔다. 몸을 앞으로 숙일사 하고 죽음의 집을 향해 돌진해나갔다.

그런 돌변에 당황하여 정신없이 뒤쫓아간 림수산은 어느새, 어떻게 형장에 들어섰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닥 넓지 않은 썰렁한 방, 천정에서 내리드리운 바줄올가미, 그밑 마루바닥에 진흙빛으로 그려진 크지 않은 직경의 원… 권영벽이 그 원으로 다가서려는데 검은테안경을 낀 나이 지숙한 부전옥이 실무적인 표정으로 손을 가슴앞으로 들어보이며 당신은 다음차례라고 은근한 목소리로 일렀다.

두 간수가 그를 부축하여 왼쪽벽밑 나무걸상으로 데려가 앉히고 그들 일행 이께우찌와 모리다, 림수산을 그옆의 긴걸상에 앉혔다.

권영벽은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조용히 앉아있었지만 림수산은 형장의 여기저기에 눈을 팔다가 허공에 드리운 바줄올가미를 흘깃흘깃 치떠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졸라 숨을 끊어버렸을 그 올가미의 바줄은 숱한 목에 쓸리고 피눈물과 기름기에 쩌들어 거멓고 반들반들하였다.

문득 향불내가 풍겨왔다. 돌아보니 어디서 언제 나타났는지 희누런 베천가사를 입었고 머리가 번들번들한 중이 경건한 얼굴로 맞은편 벽쪽으로 걸어나갔다.

중은 그 벽의 자그마한 쌍바라지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안에서 검누렇게 색이 바랜 불상이 나타났다.

중이 불상옆에 꼿꼿이 서있는 초대에 불을 달고 향불을 피우는데 형리 두명이 중키에 얼굴이며 온몸이 퉁퉁 부어보이는 사나이를 끌고 들어왔다. 그 죄수는 벌써 얼혼이 빠져 머리며 팔다리가 제멋대로 놀아나고 입귀에서 느침이 흘러내렸다.

림수산은 가슴이 화들화들 떨렸다.

(아니, 그렇게 사납다던자가 벌써 저 지경이 됐는가. 아, 누구나 죽음앞에서는 저렇게 되는가. …)

두 형리가 넋없이 축 늘어진 죄수를 원안으로 끌어들이고 량쪽에서 부축했다.

중이 불상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웅얼웅얼 념불을 외우면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이승에서 죄를 짓고 저승으로 떠나는 중생을 보살펴달라고 기원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였다.

별안간 두 형리가 올가미를 홱 끌어내려 죄수의 목에 걸고 기겁을 한듯 우당탕 마루를 울리며 원밖으로 뛰여나왔다. 그 순간 왈칵하는 소리가 벼락치며 마루바닥의 원부분이 사각형으로 꺼져내리고 죄수는 허공에 데룽데룽 매달려 흔들거리며 우로 서서히 끌려올라가다가 멎었다.

권영벽을 제외한 일행모두가 저도 모르게 일어서게 되였다.

림수산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여나가고싶었지만 자신을 가까스로 다잡고있는데 이윽고 축 늘어진 몸뚱이가 스르르 아래로 내려오고 위생복을 입은 립회의사가 시신의 손맥을 짚어보고 눈시울을 까 뒤집어본 다음 밑으로 내려보내라고 손을 저었다. 죄수의 몸뚱이가 묘혈처럼 느껴지는 원안의 사각구뎅이를 지나 지하실로 내려간 다음 모두 돌아서려는데 뜻밖의 소동이 벌어졌다. 밑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팽팽하게 드리운 바줄이 무섭게 떨며 춤을 추었다.

한 형리가 원안에 들어서서 밑을 굽어보며 소리쳤다.

《야- 이건 뭐야? -》

지옥의 소리같은 웅글은 부르짖음소리가 날아올랐다.

《여- 안됐어- 다시 끌어올려- 목숨이 소힘줄같은- 작자여-》

《야야- 한대 먹이라- 콱-》

그 소동이 지나가고 모든것이 끝난 다음 형장에 다시 랭혹한 고요가 깃들었을 때 사람들의 아니, 교형리들의 눈길은 자연히 권영벽에게 쏠리였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벽에 기대여 앉아있는 그의 얼굴에는 공포도 비탄도 후회와 가책의 그늘도 비껴있지 않았다. 그 온화한 얼굴에는 어떻다고 짚어말할수 없는 숙연하고 숭엄한 빛이 어려있었는데 언제 흘렸는지 꺼져들어간 볼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그는 알릴듯말듯 채머리를 떨고있었다.

그도 자기를 지켜보는 뭇시선을 느꼈던지 눈을 떴다. 벽을 짚고 후들후들 떨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무슨 열망에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자기앞에 서있는자들을 뚜릿뚜릿 둘러보며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고백하오만… 나는… 고문에, 당신네 고문에… 방향지각을… 완전히…상실했소. 동서남북이 어딘지… 모르게 됐소. 북쪽이 어디요? 대주면 고맙게 여기고… 여한이 없이 당장이라도 여기서 죽겠소!》

이께우찌와 부전옥, 모리다 등이 의아해서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리는데 림수산이 맞은편 벽을 턱으로 가리키며 저쪽이라고 했다.

권영벽은 그한테서 무엇을 느꼈던지 빤히 여겨보다가 고개를 외로 돌렸다.

이께우찌가 다가와서 그를 뚫어지게 보며 왜 그러는가, 리유를 말하면 알려준다고 휘파람같은 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권영벽은 응대를 안했다.

 

×

 

그날 권영벽은 죽음앞에 섰다가 삶에로의 급전환이 심장에 부담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순간에 긴장이 풀리며 맥을 놓아서인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 죽음의 집 콩크리트층계에서였다.

최후의 각오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얼떠름해진채로 두 간수한테 부축되여 밖으로 끌려나온 권영벽이 층계를 내리다가 발을 벋디디고 몸을 뒤로 제끼였다. 몸을 비틀며 모재비로 넘어질번 했다. 두 간수가 잡지 않았다면 층계밑으로 굴러떨어졌을것이다.

이께우찌는 림수산에게 의미있는 눈길을 보내며 이 선생이 눈앞에서 벌어진 교수형에서 좀 충격을 받은것 같다고 하였다.

권영벽은 립회의사의 방으로 업혀가 주사를 맞고 두시간가량 자고나서야 눈을 떴으며 사람도 알아보았다.

이께우찌는 일이 계획대로 되여가는것이 은근히 만족스러운듯 권선생을 고급료정 《명월관》으로 모셔가라고 말재간까지 부리며 분부하였다.

두대의 승용차는 사람들의 물결이 굽이치는 거리를 누비며 달리였다. 앞차에는 이께우찌가 타고 뒤차에는 앞좌석에 모리다, 뒤좌석에는 권영벽과 림수산이 타고있었다.

차안에는 오가는 말도 없었다. 앞좌석의 모리다는 후사경에 비친 권영벽의 얼굴에 흘깃흘깃 눈길을 던졌다. 림수산은 거리쪽을 내다보며 인간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고난 옛 벗이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저 생활, 사람들의 물결, 상점가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것일가 하여 이것저것 말을 건네였다.

그러나 권영벽은 아무런 응대도 없이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풍경을 묵묵히 내다보고있었다. 그는 룡정의 대성중학교… 그 시절의 추억이 막을수 없이 밀려들어 옛 동창일뿐아니라 막역한 사이였던 수산이를 와락 그러안고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와의 사이에 그 어떤 언어도 감정도 숨결도 통할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혀있는것 같아서였다. …

갑자기 앞차가 십자로에서 우로 꺾어돌아 강쪽으로 내달리였다.

림수산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모리다한테 황급히 물었다.

모리다도 의아한 표정이나 응대를 못하였다.

얼마후 앞차는 흙먼지를 날리며 강뚝길로 달리다가 갈림길에 들어서 강가로 내려가더니 풀밭에 멎어섰다. 따라온 뒤차도 멎어섰다.

먼저 차에서 내린 이께우찌는 뒤따라 내린 모리다와 림수산에게 여기서 좀 시원한 강바람이나 쏘이고 료정으로 가자고, 그래야 음식맛도 술맛도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권선생도 차에서 내려 수산씨와 함께 강기슭의 풀밭을 자유롭게 거닐며 자연을 즐기고 빨찌산시절을 추억하며 회포도 나누라고 일렀다.

권영벽과 림수산은 차에서 내렸다. 권영벽이가 잘 걷지 못한다는것을 알고있는 림수산이 얼른 그에게로 다가와 팔을 끼려고 했다.

권영벽은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한쪽팔을 흔들어보이고는 강바람에 백발이며 람루한 수의자락을 날리며 풀밭으로 스적스적 걸어나갔다.

한낮의 쨋쨋한 해빛이 망막을 찔러 눈이 시고 아파났다. 눈앞에 허연 김이 사품치는듯싶고 도무지 눈을 뜰수 없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며 눈을 꾹 내리감았다. 휩쓸어드는 청신한 공기, 강바람, 물비린내, 싱그러운 풀냄새, 꽃향기, 땅김… 어둑한 독감방의 악취와 곰팽이냄새에 습관된 그는 몰아쳐오는 그 모든 훈향에 취해버리고 어리쳐 몸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권영벽은 설음같은것이 목이 메도록 북받쳐올라 《아…》 하고 석쉼한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질듯 비칠거렸다.

그것은 몇순간의 일이였다.

권영벽은 의지를 가다듬고 정신을 수습했다. 눈을 떴다. 그리고 강가쪽으로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갔다. 족쇄의 쇠사슬이 풀포기들을 쓸며 스르륵… 스르륵… 끌려갔다.

저쪽기슭에까지 가득차서 흐르는 강물은 해빛을 번쩍번쩍 반사하며 굼니는데 갈매기 서너마리가 물을 차고 푸드득 날아올라 그의 머리우로 날아돌면서 청아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삐-욱-삐-욱

여러해만에 처음 보는 갈매기이고 그 울음소리였다. 그가 멎어서서 갈매기를 쳐다보는데 림수산이 곁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로 왔는가? 어떻게 왔는가? 림수산참모장이 분명한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떻게 여기로?… 어떻게… 어떻게? 아까 나한테 뭐라고 했지. … 뭐라고 했던가?)

《아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소?》

《이젠 나를 알아보겠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차차… 차차 이야기하지. …》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어?》

《아, 기막힌 일이네. … 일쏘우호가 실현되여가고 관동군은 우리한테 달려들었네. 대무력으로… 주력부대는 괴멸당하고… 사령부도 소멸되였네. … 나는 포로가 되고…》

《어디서 그렇게 됐소? 어디서?… 언제?…》

《여보게, 이런 얘기는 그만두자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료정에 가서 단둘이 앉아 구체적인 말을 하기로 하구 옛 우정으로 돌아가 회포나 나누세. 나는 포로된 후로 정에 굶주려왔네. 자네야 더 말할것 없겠지. 저 강물, 저 하늘! 아, 자연이란 얼마나 좋은것인가!》

권영벽은 타는듯 한 눈으로 몇순간 그를 지켜보다가 다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었다. 포로가 된 수치를 다소나마 덜자면 그렇게 된 불가피한 사정을 꾸며대야 할것이고 그러자니 아군의 손실을 과장했을수도 있었다.권영벽은 옛 벗에 대하여 속단하지 않고 말이 나오는것을 더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여보게… 권동무… 여기로 오기 얼마전에 연길에 갔댔어. 구수애산골 자네 집에…》

어느덧 그의 손은 옛 동창의 어깨에 얹혔다.

《자네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통곡했어. 우리 수남이는 살아나지 못할거라구 하면서… 봉룡이 그녀석은 벌써 7살인가 8살이 됐는데 신통히 아버지모색이야. 성미두 아비를 닮아 곧은목이야. 고집불통이야. 목에 있는 기미두 자라서 팥알보다 더 커졌더군. 허허…》

권영벽은 가슴을 비트는듯 한 아픔에 숨이 꺽 막혔다. 여태 어느 하루도 잊은적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자기 살붙이… 생각하면 그 귀염성스러운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고 머리칼냄새, 젖살냄새까지 가슴이 터지도록 안겨드는 아들… 독감방의 긴긴밤 그것이 불쌍하여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던가. … 굳게 닫겼던 그의 입에서 탄식비슷한 아니, 비명비슷한 소리가 새여나왔다.

《봉룡이를?!… 엉?!…》

《이런 소리는 하지 말자고 했더랬는데… 에미가 재가하는 바람에 그애가 고생이 많았네. 그 에미를 따라갔다가 이붓애비가 너무 미워해서 어미도 몰래 그 집에서 도망쳐나와 류랑걸식을 하며 돌아갔네. 돈화원정을 할 때 우연히 그 애와 손자를 찾아 돈화땅을 헤매는 할머니를 만나 구수애로 보내줬네. … 여보게, 사령관동지는 그 애 걱정에 식사도 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어. …》

권영벽은 얼빠진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어디라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개를 떨구고… 강바람이 백발을 날리였다. 그의 얼굴로 기름같은 비지땀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는 가슴이 터져올라 단숨을 몰아쉬며 저도 모르게 멎어섰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봤다.

가없이 넓은 새파란 하늘… 가녁이 은빛, 보라빛으로 불타는 두 구름장사이에서 눈부신 빛발을 뿌리며 이릉거리는 해… 그밑에서 유리가루처럼 반짝이는 수천수만의 반점들… 무엇인가 그지없이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산뜻산뜻한것이 얼굴이며 목, 손등을 축축히 적신다. 아, 해비… 해비가 아닌가. … 어릴적에 산촌에서 해비가 내리면 돌쇠, 철바우, 쌍가매또래들과 함께 너무 기뻐 야- 소리치며 들판으로 뛰여나가 해비를 맞으면 키가 빨리 큰다고 깡충깡충 뛰여오르며 머리가 함초롬히 젖도록 그 비를 맞던 일이 떠올랐다. 엇비스듬히 날아내리는 해비속에 비를 맞으며 좋아라 웃어대는 봉룡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야- 봉룡아-)

살고싶은 욕망, 생의 욕구가 북받쳐 시원한 대기며 풀향기, 비발의 상쾌한 기운을 가슴터지도록 욕심스럽게 들이켰다.

림수산이 목소리를 죽여가며 귀뜀해주듯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저 왜놈들은 자네를 전향시키려고 왔네. 포로인 나를 데리구… 내가 자네하구 대성중학교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였다는걸 알구… 여보게, 만약에 사령부가 건재해있구 혁명군이 한개 중대… 한개 소대라두 살아있다면 난 지조를… 신념을 지키라고 권하겠지만… 난 포로의 몸으로 자네앞에 나타난게 부끄럽네. 난 홍두산에서 체포됐어. 포위돼서… 최후의 순간에 권총을 가슴에 대구 방아쇠를 당겼지만 불발이 돼서… 아, 마지막탄알이 나를 배반했네. 아, 분통이 터지네! 주력부대가 전멸되고 사령부도 소멸됐다는걸 알면 자네도 이마로 벽을 받고 자살할것 같아 정신없이 달려왔네. 자네를 살리자구, 공연한 죽음에서 구출하자구. 여보게… 여보게… 이제는 모든게 무의미해졌어. 지조도 절개도 신념도 다… 다 무의미해졌어. 여보게, 전향하라구. 전향문에 지장을 누르면 그만이야. … 우선 살아놓구 차후문제는 그다음에 의논해보자구. 저놈들을 속여넘기는 수밖에 없어. 저놈들은 전향한 다음 자기네 제국을 위해 복무하라고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네. 총독의 담보가 있어. … 솔직히 말하면 나한테는 새로운 구상이 있네. 앞으로 우리 연안이나 원동으로 빠져나가 거기 교포들을 궐기시켜 새 혁명군을 조직하자구.

우리는 아직 젊어. 30대야. 연안에 가면 모택동이와 주덕이… 원동에 가면 국제당 원동국이 우리를 도와줄거네. …》

권영벽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나는 역시 참모장으로, 자네는 정치위원으로… 우리 손잡고 씨베리야찬바람속에서 새 혁명군을 일으켜세우세. …》

어느덧 그의 손은 옛 동창의 팔굽을 잡았다.

《여보게, 우리 혁명군과 그 사령부의 전멸… 우리한테 이런 참극이 생긴데는 나한테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어. 아, 참… 사령부호위기관총소대만 있어도 그렇게는 안되지. 홍두산으로 들어오는 큰골어귀에 방차대로 내보냈거든. 사령관동지가 그렇게 지시할 때 섬찍한 느낌이 들었지만 막지 못했어. 내가… 아, 참모장이란게… 아, 참… 홍두산중턱의 사령부에는 적 1개 대대력량이 왁 달려들고 혈투가 벌어졌어. 사령관동지는 처음에 왼다리를 부상당했으나 바위에 기대여 싸창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쏴제끼다가 쓰러졌네.…》

(사실이구나!…)

예리한 구체성과 생동한 세부란 흔히 허위에 진실성을 부여키 일쑤인데다가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림수산의 말이므로 믿지 않을수 없었다.

권영벽은 무쇠마치가 가슴을 들이친듯 한 모진 타격에 가슴을 부여안고 허리를 꺾으며 비틀거렸다. 숨이 컥 막히고 피가 얼고 온 누리가 캄캄해졌다. 그는 하늘땅이 뒤번져져 《아-아아-하- 으으- 으흠-》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풀밭에 모재비로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는 피거품을 날리며 한번 또 한번 몸을 뒤채기다가 졸도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몇순간이, 몇분이 흘렀는지 거멓게 흐린 하늘이 새벽녘처럼 희붐하게 밝아오며 뇌리에서 새로운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럴수 있는가? 땅이 이렇게 든든하게 펼쳐져있고 저 하늘이 저렇게 그대로 있는데?…)

그는 천만근무게의 짐이 잔등을 짓누르는듯 했으나 식은땀을 줄줄이 흘리며 가까스로 무릎을 세우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대여섯걸음앞에 숯으로 변한듯 한 시꺼먼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림수산이 틀림없었다.

(따져보자! 사실인가, 아닌가?)

권영벽은 불이 황황 이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림수산은 무엇이 켕기는지 주춤 물러섰다.

《여보게, 왜 그러나?》

《한가지 물어보자!》 하고 권영벽이 씹어뱉었다.

《엉?!》

《이자 말한게 사실인가?》

《여보게, 왜 이러나? 아무렴 내가 자네한테… 나하구 어떤 사이였나. 자네한테 내가… 내가… 없는 소릴 하겠나. 내 이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홍두산에서… 정말이야. 정말이야!》

《사실이란 말이지. … 한가지 더 묻자구!》

《또 뭔데?…》

《아까 사형장에서 내가 북쪽을 물었을 때… 백두산이 있는쪽을 물었을 때 대준게 북쪽인가 동쪽인가?》

《아니 여보게, 왜 자꾸 이러나?》

《북쪽인가 서쪽인가?》

《방안이 돼서 어디가 어딘지… 여보게, 갑자기 묻길래 얼결에 그만… 대준게 북쪽이 아닌가? 얼결에 그만…》

권영벽은 동자가 튀여나올듯이 크게 뜬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얼결이라구? 내가 장군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싶어 묻는다는걸 몰랐는가?》

《그속이야 내가 어떻게…》 림수산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 후들후들 떨었다.

《십여년이나 항일을 했는데 혁명가의 그런 속마음도 몰랐다면 다 썩은 놈이지.》

《아니 여보게, 수남이, 여보게- 거 무슨 소린가? 엉?! 나를 뭘루 보는가?!》

《네가 한 말은 다 거짓이다!》

《수남이!!…》

강안에 뢰성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메아리쳤다.

《엑- 변절자- 이- 개놈아-》

권영벽은 두주먹을 머리우에 높이 쳐들고 놈을 후려치려고 왈칵 뛰여나갔다. 그 순간 림수산은 기겁하여 후닥닥 물러서다가 무엇엔가 발이 걸채여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 바람에 권영벽은 공기만 내리치고 앞으로 쏠리는 몸을 가누지 못해 꼬꾸라지고 말았다.

갈매기 한마리가 하늘높이 솟구쳐오르며 피타는 소리를 내질렀다.

 

삐-육- 삐-육

 

림수산은 엉덩방아를 찧은채로 앉아 옛 벗에게 손가락총질을 하며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야- 너- 후회하지 말-랏-》

언제 달려왔는지 이께우찌대좌가 헤덤비며 일어서려는 하수인에게 혐오의 눈총을 쏘고는 권영벽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권영벽은 갑자기 딸국질을 하다가 열물을 토하며 다시 쓰러지려고 했다.

그날 이께우찌대좌는 권영벽을 형무소측에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과 같은 인격자를 감화시키지 못해 처형한다는건 문명국인 일본으로서도 썩 유쾌한 일은 못되오. … 심사숙고하시오. 결심이 되면 부전옥을 통해 나한테 알리시오.》

 

×

 

그날 밤.

권영벽은 어둑한 독감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목을 매단 사형수의 마지막몸부림에 부르르 떨다가 좌우로 춤을 추던 바줄… 변절하여 나타난 림수산이 감언리설로 전향권고를 하다가 안되니 날카롭게 부르짖던 소리… 《야- 너- 후회하지 말-랏-》… 갈매기의 피타는 울음소리… 낮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이 눈앞에 그냥 떠올라서였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들이 다 악몽인것 같고… 아, 악몽이면 얼마나 좋으랴. 눈을 꾹 내리감고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며 부정하려고 애써도 그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였다. 참모장 림수산이 변절하다니?…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열병이라도 걸린듯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터져오르는 의분을 누를 길 없어 가슴을 허비기도 하고 주먹으로 독감방벽을 치게도 되였다.

깊은 밤중에 문득 대성중학시절의 일들이 눈부신 채광속에 떠올랐다.

숙식비로 낼 돈이 없어 하숙집에서 쫓겨난 이 가난뱅이 고학생을 룡정역 기다림칸에서 만나 자기 하숙방으로 데려가 같이 지내자고 권하던 수산이… 얼마나 마음씨 용하고 의협심도 많고 정의감도 강한 동무였던가. … 5. 30폭동 실패후 그 하숙집의 어둑한 뒤고방으로 찾아온 길림공청의 순시원으로부터 한별에 대하여, 한별의 무장투쟁로선에 대하여 숨을 죽이고 듣던 일, 그 순시원이 떠나간 다음 둘이 환희와 격정에 넘쳐 뜬 눈으로 새벽을 맞으며 한별의 길을 따르자고, 그 길만이 살길이고 승리하는 길이라고, 우리 변심을 모르고 영원히 한별의 길을 걷자고 손에 손을 뜨겁게 잡고 맹세다진 일… 이튿날에는 새 출발을 기념하여 둘이 어깨곁고 사진까지 찍었지. … 새 공청조직을 뭇느라고 함께 끼니도, 피곤도 잊고 뛰여다닌 일, 어느 겨울방학에는 화룡현의 농촌지구에 나가 계몽사업을 하다가 상촌마을 어느 농가에서 메돼지고기국을 맛있게 먹으며 노상 벙글거리면서 롱말을 주고 받던 일…

어둑한 독감방에 홀로 앉아 끝없는 회억에 잠겨있는 권영벽의 꺼진 볼로 뜨거운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비애의 눈물이고 원한의 눈물, 저주의 눈물이였다.

그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무서운 배신감이 가슴을 비틀어 주먹으로 무릎을 부서지도록 내리치고 끅끅 느껴울었다.

(이제야 네가 한 말이 생각난다. 혁명은 바치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기 위한것이라고 하던 너의 말이. 그래 네가 얻자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바로 이것이냐? 혁명과 동지들을 배반하는 자유, 왜놈들곁에서 알랑거리는 행복, 아- 그게 결국 너의 본심이였구나. 이 더러운 변절자야, 똑똑히 보아라! 난 바치는것을 혁명이라고 여겼던 그대로 마지막까지 자기를 깡그리 바치겠다. 혁명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아라! 참된 인간이 어떤 사람인가를 똑똑히 보아라!)

권영벽은 고개를 떨구고 우들우들 떨었다. … 룡정시절의 그 순결무후한 열정, 그 기개, 그 투명한 넋은 어디로 가고… 참모장시절의 그 당당한 자세, 그 담력, 그 작전능력이 어째서? 왜?… 왜, 왜, 왜 이그러지고 더러워지고 허물어졌는가? 어찌나 타락했으면 변절까지 했느냐? 도대체 까닭이 무엇이냐? 어째서?… 왜?… 왜?… 자기를 참모장으로까지 등용한 사령관동지의 신임이면 다지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모자라… 무엇이 불만스러워 변절까지 하게 됐느냐? 아, 천추에 용서 못할 인간, 인간쓰레기!…

권영벽은 그가 자기한테까지 나타나 전향시키자고 꾀했으니 무슨 악행인들 안했으랴싶었다. 빨찌산의 비밀을 많이 알고있는 그가 왜놈의 개로 되여 혁명에 얼마나 엄청난… 무서운 해를 끼쳤으랴 생각하니 온몸이 선뜩 얼어들었다.

독감방의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끝없이 오가며, 어스름속에서 서성거리며 끝없이 모대기던 그는 환기창으로 희붐한 새벽빛이 흘러드는 무렵에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북쪽하늘을 향해 돌아서서 가슴을 찢으며 절규했다.

(저 천추에 용서 못할 반역자때문에 얼마나 노여우셨습니까. 얼마나 분하고 괴로우셨습니까. 저는 그자하고 중학시절부터… 선전과장, 참모장으로 있으면서도 제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 자가 배신했으니 저는 천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제가 이 형무소 독감방에 있다는것을 고려하지 말고… 장군님,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권영벽의 눈에서 피눈물이 끓었다.

(사령관동지, 저희들 걱정은 마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늘도 조선혁명의 운명이 되여 험한 령, 깊은 골짜기 가림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왜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계시리라 믿습니다. 림수산놈의 갖은 거짓말에 한순간이라도 사령부의 안전을 믿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

권영벽은 점점 밝아오는 환기창의 아침빛을 우러르고있었다.

(사령관동지, 일찌기 사령관동지를 따라… 한별을 따라 혁명에 나선 이내 몸… 억천만번 죽더라도 혁명의 신념 변치 않으렵니다. )

권영벽은 지난날을 더듬었다. 요영구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왔던 일… 두번째 상봉… 뒤이어 장군님 친솔부대 선전과장으로 일하게 되였을 때의 기쁨… 장군님 슬하에서 계속 일하고싶은 심정 간절했으나 사령관동지 뜻 받들어 장백지구로 정치공작을 떠나던 일, 몸가까이에서 불과 다섯달…

(하지만 그날들은 일생을 대신하는 나날들이였습니다. 사령관동지의 한마디한마디 말씀, 회의, 가렬한 전투, 《사향가》를 부르시던 그 모습, 모든것은 사령관동지께서 지니신 투철하고도 따를수 없는 혁명적신념, 그것이였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이 심장속에 지녔다면 제가 어떻게 혁명을… 동지들을… 사령관동지를 배신할수 있겠습니까. )

다 말라버린줄 알았던 눈물이 그의 살가죽만 남은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그리움의 눈물… 깨끗한 샘물처럼 솟구치는 량심 그것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도서련재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5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51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50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9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8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7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6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5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4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3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1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40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9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8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7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6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5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4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3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1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30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9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8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7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6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5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4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3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1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0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9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8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7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6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5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4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3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1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0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9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8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7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6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5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4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제3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2회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붉은 산줄기》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