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7

 

림수산은 아침에 모리다의 호출을 받고 송강의 《위만군》병영에 나갔다.

대위는 이께우찌대좌가 룡정령사관에 나와 찾는다고 하며 그를 차에 태워가지고 송강을 떠났다.

림수산은 달리는 차안에 침울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대좌가 어제는 《토벌》에 끌고다니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그는 일본사람들이 자기한테 괜찮은 자리를 주고 인생의 락을 누리도록 해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런 기대는 점점 허물어져갔다.

언제봐야 흐린 얼굴로 밥을 지어주는 문정금이마저 측은해졌다.

룡정 … 자기의 소란한 중학시절이 흘러갔고 지우들이 많은 그 도시로 죽도록 가기 싫었다.

목안에서 겨불내가 나고 모리다의 질문에도 응대하기 싫었다.

2백리길에서 화끈 달아오른 승용차는 1시가 거의 되여 령사관정문에 들어섰다.

그들이 2층의 령사실로 안내되여 들어갔을 때 응접탁 저쪽에 앉아있던 이께우찌는 인사에도 응대하지 않고 림수산을 빤히 지켜보았다. 림수산은 가슴이 얼어들며 이께우찌가 손으로 가리키는대로 응접탁끝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곧 심문조의 질문이 퍼부어졌다. 로씨야씨비리의 동토대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중학동창들중에 대만에 가있는자가 있는가, 오스트랄리아의 사막에 대해서 아는것이 무엇인가, 룡정시절에 중국공산당 동만특위의 누구, 누구, 누구를 만났는가, 그때 지껄인 소리들이 생각나는가 등… 그리고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서대문이나 함흥형무소의 공산계렬 수인들, 사형수들중에 과거에 친교가 있었던자가 있는가, 있으면 누군가?》

투항자는 눈앞이 핑 돌아가는듯 하고 메스꺼움이 일며 이마에 식은땀까지 내배였다.

《있는가? 누군가?》

《…》

《없는가?》

《권영벽입니다.》

《리제순은?》

《장백에서 여러번 만났지만 친교라고 할만 한건…》

《박달, 박문상은?》

《한번 얼굴을 피뜩 봤을뿐입니다.》

《지태환은?…》

《역시…》

《그들은 림군의 얼굴을 기억하고있을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혁명군당시 제 직함과 이름을 대면 다 알아볼것입니다.》

《권영벽이도?》

《그는 인차 알아볼것입니다.》

《고문에 병신이, 머저리가 다 된것들이 어떻게 알아봐?》

《권영벽은 저하구 대성중학시절부터 보통사이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대성축구팀 주장이고 저는 사회운동의…》

대좌는 매우 흥분된듯 한쪽볼편에 경련이 일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성급히 빨았다.

《권영벽이 전향할수 있는가?》

《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어째서?…》

《지독한 공산당원입니다. 혁명군에 참군하여 집을 떠날 때 안해더러 자기는 살아서 돌아올수 없는 몸이니 다른데 재가해도 좋다고 한 인간입니다.》

《음…》

대좌는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어차피 사형언도를 받을걸 알고있을거다. 캄캄한 독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리고있어, 죽음을… 죽음의 왕거미를… 그사이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해골이 다 됐어. 여러번 기절해 쓰러졌다. 판결을…사형언도를 빨리 내리라 소동을 부렸는데 요새는 잠잠하다. 왜 소리치지 않는가? 왜 갑자기 조용해졌는가? 왜?… 왜?…》

《아마… 소리칠 맥도 없거나 아니면… 혹시 생에 대한 애착이 생겼는지?…》

이께우찌는 주먹으로 응접탁가녁을 내리쳤다. 파리 몇마리가 기겁하여 날아올랐다.

《바로 그거다― 그거야―》 광적인 웨침소리였다.

《만약… 만약… 둘째 경우라면 해골이 다 된 육신에서 인간다운 본능이 피여나는게 아닌가? 본능이… 본능이… 넋이 없는 초불도 초대가 다 녹아내려 아주 꺼지기 직전에 한번은 확 피여올랐다가 스러진다. 나는 저 해골에서… 그건 본능… 본능의 불꽃이다!》

림수산은 자리에서 벌떡 뛰여일어났다.

《공산당원도 인간입니다. 더우기 권영벽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입니다. 참사람입니다. 그한테 하루라도 더 살고싶은 본능적인 욕망이 없을수 없습니다.》

《확신하는가?》

《확신합니다!》

《그렇다! 사람이라면 하루가 아니라 한시간, 한초라도 더 살고싶을것이다.》

《대좌님, 전향할수 있습니다. 제가 그를 전향의 길로, 살아나는 길로 이끌겠습니다. 그러나 전향한 다음이 걱정스럽습니다. 해골이 다 된 그런 상태에서 전향하여 맥을 놓으면 숨이 인차 끊어지지 않겠는지…》

《감옥의사들은 이제라도 포도탕, 링게르, 영양제들을 주입하면 소생할수도 있다고 한다.》

그날 이께우찌대좌는 림수산, 모리다와 마주앉아 전향공작의 실무적인 문제들을 한시간남짓 의논하고는 함흥형무소로 갈 준비를 해가지고 3일후 신경에 도착하라고 지시했다.

림수산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출입문이 열렸다.

회색등산복차림에 등산모를 벗어든 중키의 날파람있게 생긴 사나이가 들어섰다.

대좌는 그한테 눈길을 돌렸다.

《애녀석은 데려왔는가?》

《실패했습니다. 저희들이 구수애에서 하루밤 묵는 사이에 도망쳤습니다. 권영벽의 에미… 그 노친네 말이 돈화에 있을 때처럼 류랑걸식하는게 더 좋아 집에서 도망쳤다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습니다. 구수애… 그 오지에 통비분자가 있는것 같습니다. 근처의 마을들과 산속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께우찌대좌는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림수산을 돌아봤다.

《래일 당신이 직접 거기로 가오. 그 로파하고랑 구면일테니까. 그 집형편을 잘 알아서 함흥에 가 권영벽에게 이야기해줘야겠소. 그한테서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게 중요하오. 아주 중요하오.》

그리고는 밖에 나가 좀 기다리라고 하였다. 모리다가 뜨락에 나서지 말고 현관에서 기다리라고 덧붙였다.

령사실에서 나온 림수산은 침울한 얼굴로 복도가녁을 따라 스적스적 걸어갔다. 권영벽의 어머니를 만나기가 죽기보다 더 싫었다. 그리고 저 대좌가 전향공작준비를 어떤 야심으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저들이 따로 앉아서 무슨 밀담을 하는가. 아마 내 동향도 이야기되겠지… 《토벌》에 대한 열의라든가…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는 층계의 가녁을 따라 천천히 걸어내려오다가 가슴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욱 치밀어 멎어섰다. 이께우찌가 처음에 심문조의 질문을 퍼부은것들이 다 자기가 꾸며대지 못하도록, 진실만을 토설하도록 계책을 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무엇때문에 사람을 책략으로 다루는가. 개자식, 참모장직을 줴던지고 귀순했는데 그렇게 믿어지지 않는가. 아, 일본놈이란 얼마나 꾀바르고 용렬한것들인가!)

그런 용렬한자한테 마구 주물리운것이 분했다. 모욕감에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에 터뜨릴수도 없는 투항자, 저런 난쟁이한테 굽신거리고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아야 하는 자기 신세가 그지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현관에 내려온 그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출입문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뒤짐을 지고 출입문유리를 통하여 바깥풍경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령사관의 쇠울타리밖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흐름이 붐비고 화물자동차가 달리고 풍마차, 인력거가 굴러가고 높이 자란 가로수들은 예나 다름없이 푸르싱싱했다. 그 가로수들의 가지들사이로 소방대의 싸이렌탑이며 대성중학교의 재빛지붕이며 국기게양대가 멀리에 바라보였다. 봄, 여름, 가을 떠들썩하게 벌어지던 동맹휴학, 학생시위가 떠오르고 소방대의 싸이렌소리가 흘러간 세월의 먼 기슭으로부터 아스런히 울려오는듯싶었다.

다시 돌아갈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 한숨을 내쉬는데 모리다가 곁으로 다가와서 얼굴을 빤히 여겨보는것 같았다.

놀라서 돌아보니 모리다가 아니라 만복차림의 청소부로인이였다. 장갑낀 손으로 자루가 긴 방비를 짚고 서있던 로인은 검버섯이 다닥다닥한 얼굴에 경악과 반색, 복잡한 표정을 띠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까 차에서 내릴 때 먼발치에서 보고 낯이 익다 했는데 유명한 림선생이구만요. 온 룡정바닥이 들썩했지요. 우리 막내녀석이 신문팔이를 하는데 그날엔 〈만선일보〉가 두배나 더 팔렸답니다.》

그리고 로인은 목소리를 죽여가며 속살거렸다.

《조심하시유. 별의별 우둔도깨비들이 다 있지요. 보름전에는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세녀석이 변절자를 처단한다구 권총이랑 훔쳐가지구 신경으로 떠나다가 역전에서 잡혔지요. 경찰에서 심문해보니까 대성중학 졸업생들인데 모교를 욕되게 한 역적을 모교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철딱서니 없는것들이지. 아무쪼록 조심…》

림수산이 가슴이 못견디게 저려들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소태처럼 쓰거운것을 씹어삼키는데 별안간 로인이 말을 중둥무이하고 현관밖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모리다대위가 층계를 따라 내려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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