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6

 

사령관동지께서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의지, 신념, 불굴의 지향… 이 모든 정서적앙양과 론리적사색때문이였다.

이튿날 아침.

사령관동지께서는 즉시 련대장들과 정치위원들을 불러 개별과업을 주시였다.

박주호나 많은 대원들이 바라며 자신께서 이미 결심하신 그런 큰 전투를 벌림으로써 변절과 배신이 있어도 조선혁명대오는 끄떡없다는 불굴의 의지와 기상을 국내와 지하조직들에 시위해야 한다.

그리고 멀고 가까운 밀영들과 소부대들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응하여 위치이동, 전투경계강화 등 긴급대책을 취해야 한다.

조국광복회조직망들과 반일지하조직들에 빨리 통신원들을 파견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적들이 혁명군 녀대원이라고 하는 녀자가 혁명군이 아니라는것을 각 지하조직망에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연미숙은 어떻게 되였는가.

연미숙… 연미숙…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믿고싶으시였다.

미모를 탐내는 림가앞에서도 도고하게 자기를 지키줄 알던 연미숙이, 일부 사람들이 인테리녀성이라고, 천성적으로 안온한 성격이라고 나무람도 했었다.

하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혁명가에게 있어서 그런 외적인 인상은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믿고계시였다.

이 엄혹한 환경속에서 연미숙이 림수산이를 따라나섰다고 할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때 닥친 불의의 정황에서 그 녀대원한테서 아무런 용기나 결단력이 발휘될수 없었겠는가.…

박덕산이 들어와서 사령관동지께 말씀드렸다.

《마영복동무도 통신원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마영복이?》

사령관동지께서는 의문을 던지시다가 《그렇지, 그렇지.》 하고는 말씀을 이으셨다.

《그 동무도 좋겠소. 한데 그 동문 요새 어떻소? 병은 다 나았을테지만…》

《네, 병은 나았습니다. 아마 그 병도 정신적인 충격으로 생겼던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타격이 컸으니 말입니다. 행군해오면서 몹시 토한거나 자기를 쏴버리고 가달라고 하던걸 봐도 그렇구 여기 와서 밥 한숟갈 먹지 않고 천막구석에 꼬부리고 누워있었던걸 봐두 그렇구… 량심의 가책에 시달리였댔습니다. 아마 사령부에서 처단조파견을 막지 않았다면 거기에 서슴없이 나섰을것입니다.》

《동무네 련대에서 림가와의 지난날 관계를 두고 그를 지명하여 비판한 일은 없었소?》

《없었습니다. 자기스스로 량심의 가책을 느끼니 동무들도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통신원으로 어데 보내자고 하오?》

《연길근방의 광산련락지점에 보내려고 합니다.》

여러 방향으로 통신원들을 떠나보내는 대책이 취해졌다.

바로 그 시각 신경역의 려객들로 혼잡을 이룬 홈에서 양복차림에 허름한 중절모를 눌러쓴 중년사나이가 걸어나왔다. 모리다대위였다.

비가 내렸다.

대륙의 을씨년스러운 봄비였다.

대위는 역장실로 가려다가 증명서를 보이기 싫어 일반려객출구로 빠져나와 주차장쪽으로 껑충껑충 뛰여갔다. 오랜 밀정생활에서 하층서민들속에 슬쩍 어울리는데 이골이 난 모리다의 그런 행동거지는 하급공무원이나 청빈을 자랑하는 어느 시골소학교교사의 모습을 련상시켰다.

주차장에는 대여섯대의 승용차가 비속에 서있는데 사령부에서 나온 차는 한대도 없었다.

모리다는 볼이 부어올랐다. 자기를 급히 올라오라고 소환했으며 렬차도착시간까지 알고있는 이께우찌대좌가 역에 차를 내보내지 않은데 은근히 모욕감을 느꼈던것이다.

어깨가 벌써 축축히 젖어들었다. 왜 이런 푸대접인가. 백두산기슭의 밀림속을 사냥개처럼 싸다녔는데 만주국의 수도에 와서까지 비속을 개처럼 뛰여다닌단 말인가. …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흐릿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역마차 한대가 경쾌하게 굴러들어와 역사현관앞에 멎어서더니 일본인 중년신사와 젊은 부인을 내려놓았다.

모리다대위는 그 마차에 뛰여오르며 관동군사령부로 몰라고 소리쳤다. …

이께우찌대좌의 방은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요원이라는 직함에 비하면 너무나도 검소하게 꾸려져있었다.

청나라말기의 유물이 분명한 고색이 짙은 서류장 두개와 책상, 포의자 몇개, 안락의자 한개뿐… 현판이나 족자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인정에 린색한 대좌는 책상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흔연한 얼굴로 비물에 젖을가봐서인지 안락의자가 아니라 구석쪽의 나무걸상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일렀다.

모리다는 눈살이 꼿꼿해서 거기에 절도있게 앉았다.

대좌는 화룡, 안도일대의 날씨며 건강상태며 민심 등에 대하여 묻다가 신중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림씨의 동향에서 이상이 나타난건 없는가?》

《별로… 여전합니다.》

《불안해하는 기색은 없던가 ?》

《불안이요?》

《백두산에서 자객이 내려올수 있어. … 림씨를 격살하자고… 경비를 강화하라!》

《사택이 위만군병영에서 가까워 병영초소가 그의 집까지 봐줍니다.》

《음. …》 그리고 이께우찌대좌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군을 지방의 소지구〈토벌대〉에 소속시키라는 상급의 명령이다. 그래서 불렀다.》

모리다는 순간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고 눈빛이 사나와졌다.

《군만 강직을 당한게 아니야.… 공산유격대가 돈화로 빠져나간걸 모르고있은것, 림의 때이른 귀순으로 공산사령부에까지 침투하려던 상부의 계획이 완전실패한것… 이 두건으로 소장각하가 대노했다.》

모리다는 정신없이 뛰여일어나 공산참모장의 투항이 륙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단 말인가고 소리쳤다.

그 소리가 노상 정숙이 깃들어있는 특무부의 복도에까지 울려나갔다.

《모리다군!》

《대좌님, 군기나 군법이 아니라 어느 각하의 분노, 감정에 따라 막하장졸들의 목을 치는건… 이건 륙군의 페풍입니다. 법치국이라는 일본의 수치입니다. 우리 륙군에 봉건사무라이구습이 제일 깊이 있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모리다! 진정하라구. … 내가 각하에게 사정해서 나와의 련계속에 활동하게 됐네. 문건상으로만 지방토벌대에 소속되고… 알겠나?》

모리다는 담배생각이 못견디게 나서 무의식중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배? 여기 나앉아 피우라구.》 하며 대좌는 담배곽을 내밀었다.

모리다는 안락의자에 옮겨앉아 그 담배갑을 받아쥐였다. 그리고는 성급히 피워물었다.

《각하의 심정도 리해해야지. 공산사령부때문에 얼마나 신경을 써왔는가. 여보게, 상관의 심중을 리해해주는것도 하관으로서 지켜야 할 도의가 아니겠나.》

《실례했습니다.》

《음…》

그리고 이께우찌는 그를 위로하려는듯 투항자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었다.

그들의 건강이며 기분상태, 새로 든 사택에 안착되였는가 등에 대하여… 특히 림가의 발언이며 움직임, 그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감정이며 여론 등에 대하여 깊이 캐여물었다.

《빨찌산에 있을 때 동상이몽해온 지독한 이중인격자니까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우리 환대에 대단히 만족해합니다. 감지덕지해서 페하께 멸사봉공하겠다는 맹약을 여러번 해서 토벌에 내세워봤는데 성과는 별로 없습니다. 사령부의 긴급련락을 받았는지 밀영들이 거의나 어디론가 이동해버렸고 또 림이 토벌대를 끌고왔다는것만 알면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치명상으로 체포된자들을 심문할 때 회유해보자고 림을 내세우면 변절자,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저주를 퍼부어 말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림에 대한 증오와 저주가 그토록 강한가?》

《세상에 그런 무서운 증오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백성들에 대한 회유공작에도 림을 내세우면 안되겠습니다. 지하조직망을 통한 유격대의 선전공세의 영향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로서도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림과 그의 귀순에 대한 특무부의 그런 과소평가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나를 파면시켜도 절대 동의할수 없습니다.》

《모리다군!…》

모리다는 볼편을 씰룩거리고 꾹 다문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불찌처럼 타는 눈으로 대좌를 지켜보았다.

《대좌님은 그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믿지 못하겠습니까?》

대좌는 느슨하게 웃어보였다.

《여보게, 진정하라구…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건 오묘한 철학적문제네. 중학시절에 어떤 책을 봤는데 나폴레옹인가 웰링톤인가 누군가는 조국과 국왕을 배반하고 자기한테로 넘어와 정보를 제공한자에게 훈장을 달아주고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더군. 그런데서는 썩 옛날의 칭기스한이 더 철저했지. 부족장을 배반하고 제 혼자 살겠다고 군사력이 강한 자기한테 넘어온 적장들은 다 죽여버렸거던. 그런자들은 언젠가는 자기도 배반한다고 생각해서네. … 도꾜에 있을 때 법무성의 한 늙다리 막료에게 이러루한 이야기를 했더니 크게 웃더군. 그건 한번 남편을 배반한 년이면 두번째, 세번째 주인도 헐하게 배반할수 있다는 성본능의 리치와 비슷하다는거네.》

《만약 대세가 기울어져 황군이 수세에 몰리면 그가 우리도 배반할수 있다. … 그래서… 그런 가정으로 해서 각하들의 과소평가에 동의했습니까? 자신이 직접 관여하고 투신해서 성사시킨 거사를…》

그리고 림의 때이른 귀순은 불가피한것이였다, 밀영의 부하들이 기미를 눈치채고 그를 체포하여 사령부에 호송하거나 사살할수 있었다, 현지의 상황과 실정은 모르고 신경의 사령부에 앉아 탁상공론을 일삼는 망상가들만이 그렇게 비난할수 있다고 뇌까렸다.

《림을 통해 어떻게 사령부에 침투합니까. 사령부는 벌써 그를 작전지휘에서 떼여 수백리밖의 밀영에 신대원훈련이라는 차요적인 임무를 줘서 파견했는데 과연 그런 위인을 통해 경계가 철통같은 공산사령부에 접근할수 있을것 같습니까? 망상! 망상입니다!》

《모리다군!》 대좌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러나 모리다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나는 강직처분에 복종하겠습니다. 그러나 림의 귀순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많은 비밀을 알고있습니다. 조선빨찌산뿐아니라 동북항일련군의 지휘간부들과도 림은 친분관계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

《알고있네. 알고있어, 그만하라구.》

《…》

《모리다군, 이런 불길한 얘기는 다시는 입밖에 내지 말자구. 림에 대한 특무부의 평가와 우리 예감에 대해선 엄비에 붙여야 하네. 본인 당자에게는 물론 직업상의 동료들에게도 말이네.》

이께우찌대좌는 신경에서 3~4일 푹 쉬고 현지로 떠나라고, 택시를 불렀으니 타고가라고 다정히 일렀다.

모리다가 일어나 나오려는데 대좌가 그를 불러세웠다.

《참… 림한테 붙여준 그 녀자 이름이 뭐드라?》

《문정금…》

《잘사는가?》

《예…》

《다행이군.》

《…》

《백두산에서 자객을 파견할수 있다는걸 잊지 말라구.》

《오늘중에 송강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모리다는 머리를 깍듯이 숙여보이고는 절도있게 돌아서 나갔다.

그날 밤 이께우찌대좌는 사택의 자기 서재에서 오래동안 잠들지 못하고 서성거리였다. 의분이 치밀어서였다. 모리다의 말은 모두 그가 하고싶고, 주장하고싶은 말들이였다. 그는 림의 귀순이 과소평가된데는 사령부요직에 있는 《로인》들의 우둔성에도 원인이 있지만 언제나 작전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려 꾀하는 고위참모장교들의 독설도, 특무부의 첩보전도 과소평가해온 군상층부의 심리적인 타성에도 관계된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림의 귀순은 절대로 과소평가될수 없다. 최하층의 대원이나 중간층의 지휘관도 아니고 참모장의 투항, 이것이야말로 공산유격대가 와해직전에 이르렀다는것을 시사해주는 사변이 아닌가. … 이렇게 생각하며 서재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하나의 착상이 령감처럼 뇌리에 번개쳐 뚝 멎어서서 허공의 한점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 불이 황황 이는듯 했다. 감옥의 명망이 높은 사형수들을 전향시켜 귀순공작조를 뭇고 그들을 내세워 공세적인 귀순작전을 벌린다면!…

그는 서둘러 전화기가 놓인 탁자로 다가갔다. 송수화기를 들고 서울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당직법관을 찾아 서대문형무소와 함흥형무소들에 있는 명망이 높은 인물들에 대하여 상세히 통보해주었으면 고맙겠다고 정중히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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