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4

 

밀림도 설레임을 삼가하는듯 했다.

그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총을 바치고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대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시였으나 한명도 없었다.

그이께서는 낮에 약속한대로 그런 대원이 나타나면 쾌히 보내줄 용의가 있었던것이다. 8련대의 박덕산정치위원을 불러 쫄라병으로 고생하는 대원들한테로 가서 흉금을 터놓고 담화해보라고 하시였다. 2시간후 박덕산은 그이를 찾아와 세 동무와 담화해봤는데 한결같이 수모라도 당한듯 얼굴이 벌개져 이렇게 말했다는것이다.

《내 죽으면 죽었지 사령관동지와 동지들을 버리고 집으로 갈수 없소.》

《쫄라병이 심해져 정 운신하지 못하면… 짐이 되면 그땐 날 쏴주시오. 총탄 한알이면 간단히 해결될텐데…》

《정위, 이거 무슨 롱말을 이렇게 하슈. 내가 뭐 림가놈의 십륙촌쯤이나 된다고 보는게 아니우? 허허허…》

한편 그이께서는 다른 생각에도 골똘하시였다.

…길림의 노조에《토벌》사령부와 신경의 관동군사령부는 림수산의 변절투항으로 우리 혁명군안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의기저상과 패배의식, 호상불신의 기운이 창궐하리라 타산할것이다. 그리고 림가가 넘겨준 정보에 따라 작전방안들을 재검토, 새로운 지침을 세우고 대대적인 공세로 나올것이다. 우선 우리 주력군에서 멀리 떨어진 저 장백산줄기의 계곡들에 산재한 밀영들에 대한 소탕작전이 곧 벌어질것이다. …

사령부천막곁에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빛이 근심에 어려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참모장의 변절소식을 들은 다음부터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시였다. 왜놈들이 그자를 앞세우고 《토벌》을 시작한다면 사령부가 첫째 목표로, 과녁으로 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러고보면 골바닥의 둔덕진 수풀속에 자리잡고있는 사령부천막자리가 전에없이 불안감을 자아냈다. 어딘지 모르게 울창한 수림속에 깊이 숨어있지 못하고 드러나보이며 적의 사격을 받는 경우 신속히 은페할수 있는 유리한 지형지물이 근처에 없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온종일 그 문제로 마음을 쓰다가 어슬녘에야 경위중대장과 박포리에게 말을 비쳐보시였다.

경위중대장은 주변에 부대들이 배치되여있기때문에 별일이 없을것이라고 안심시키며 그러나 위장은 인차 더 하겠노라고 했다. 박포리는 심중한 얼굴로 의견을 듣고는 저 변절자놈때문에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빨리 옮기면 옮길수록 좋다고 하며 좋은 자리를 봐두었느냐고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밀영에 남아있던 허약자들이 겨울을 난 자연동굴속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시였다.

박포리는 거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선뜻 동의해나섰다. 그는 다 꾸려놓은 다음 사령관동지께 보고하자고 하며 경위중대의 대원 두명을 데리고 자연동굴속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그들의 일손을 도와주시였다.

허약자들이 잠자리밑에 깔았던 락엽들이며 마른풀가지들과 새초들을 쓸어내고 밖에 나가 퍼담아온 마른 흙을 그 자리에 펴고 발로 다지였다. 박포리는 어느새 벌써 통나무걸상과 탁자를 만들어가지고 들어와 동굴벽에 붙여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혹시 천반에서 석수방울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가 하여 등불을 들고 여기저기를 비쳐보시였다.

그때였다. 어딘가 멀고 가까운데서 총소리들이 울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속에 바위가 떨어지는듯 한 모진 충격과 함께 박포리를 홱 돌아보시게 되였다.

《정숙이, 〈토벌〉이다. -》

그 다음에는 무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동굴속에서 뛰여나왔으며 어떻게 사령부쪽으로 달려가는지 아실수 없었다. 그저 온몸이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날아가는듯싶고 자신의 울음섞인 목소리와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릴뿐이였다.

(아, 아- 장군님은… 장군님?!…)

웃쪽에서 끓어번지는 총소리들이 먼 우뢰소리처럼 들리고 번개불처럼 펑끗거리는 섬광에 사령부천막의 희누런 지붕이 언뜻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잡관목덤불속을 꿰질러 달리시였다. 나무가지들이 얼굴을 후려치고 가시풀이 목이며 손등을 허비는것도 느끼지 못하시였다.

(아, 어째… 어째… 좀더 일찌기… 낮에 옮기지 못했는가. 다 내 불찰이다. 내탓이다. 아- 아-)

사령부에 도착한 그이께서는 펄럭이는 천막속으로 뛰여들어가보시고 비발치는 탄우속을 정신없이 뛰여다니며 사령관동지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진대통과 바위돌뒤에 엎드려 맞총질하는 경위대원이나 경위중대장한테 물어봐도 몰랐다. 놈들은 오른쪽 산비탈중턱에서 내리쏘고 경위대원들은 골바닥에서 올리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발치는 탄우의 쇠바람속을 헤매다가 절감이 들이닥쳐 눈앞이 아찔해지시였다. 그 바람에 발을 헛짚어 후미진 곳에 굴러떨어지시였다.

갑자기 사격이 뜨음해지는것 같더니 오른쪽 산비탈중턱에서 웬자의 째지는듯 한 웨침소리가 울렸다.

《여- 쏘지 말라.- 내가- 왔다.- 참모장이-다.- 너희들을 데려가자구- 왔-다. 혁명군은 다 망했- 다.- 쏘련과- 일본이- 손을 잡았-다. 귀순하라.-》

(아, 저놈이… 림가놈이… 《토벌대》를 끌구왔구나!)

김정숙동지께서 분격과 혐오감에 치를 떨며 총대를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몸을 일으키시였다.

바로 그때 왼쪽 산비탈중턱에서 모든 소음을 제압하며 오백룡이 내지르는 무서운 노성이 터져올랐다.

《숨어서 소리만 치지 말구 내앞으로- 여기로 오라. 못 오겠으면- 거기- 서있으라.- 내가- 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떡 일어나 왼쪽산비탈로 날듯이 뛰여가시였다.

그런데 적들쪽에서는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다. 잡관목들이 와슬렁대는 소리, 돌이 굴러내리는 소리… 그러다 정적… 뚝 멎어서 뒤를 돌아보시는데 골짜기와 산비탈… 온 누리가 획 돌아가는 환각과 함께 귀안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경위중대- 추격하라 -》

사령관동지의 추상같은 호령소리…

 

그날 놈들은 범인의 상상이 미칠수 없는 사령관동지의 그 기상, 그 호령소리에 기겁했는지, 너무나도 담대하고 준절한 호령소리에 저들이 신출귀몰의 전술에 걸려 포위됐다고 오판한것인지 그쪽에 마구 총질하다가 도망쳐버렸다.…

저녁식사후 김정숙동지께서 작식도구들을 거두고 숭늉물이 든 구리주전자를 들고 천막으로 들어가시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등잔불밑에 앉아 심각한 안색으로 군복저고리를 깁고계시였다.

녀전사는 구리주전자를 탁자우에 얼른 놓고 도로 뛰여나가시여 여벌로 간수해두었던 새 군복상의를 안고들어와 그이께 드리시였다. 그리고는 사령관동지께서 내주시는 상의를 받아들고 살펴보시였다. 초연에 그슬고 땀내가 풍기는 그 군복상의의 어깨는 적탄이 스쳐지나가 찢어졌고 팔소매와 옆구리에 탄알이 뚫고지나간 자리가 두군데나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떻게 천막에서 뛰여나왔는지 모르시였다. 어디라없이 어둠속으로 달려가다가 바위밑에 앉아 그 군복상의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시였다.

경위대원 두세명이 놀라서 달려왔다.

적탄이 사령관동지의 군복을 뚫었다.… 그 소식은 대원들의 입과 입을 거쳐 순식간에 부대들에 퍼져 열화같은 분노가 터져오르게 했다. 복수하자, 천배만배로, 변절자에게 죽음을!… 어느 부대들에서나 사람들의 분노가 용암처럼 끓어번지다가 처단, 처단조라는 하나의 곬을 따라 불길처럼 내뻗쳐 지휘관들로 하여금 사령부로 달려가게 하였다.

 

×

 

길게 늘어선 행군종대가 울창한 밀림속을 묵묵히 누벼나갔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사령관동지께서는 행군종대의 앞장에서 상반신을 앞으로 숙일사 하고 억척스럽게 걸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백룡을 비롯한 부대장들의 처단조파견제의를 《안된다!》, 이 한마디로 단호히 일축해버리고 그들에게 행군명령을 내리시였던것이다.

회암산밀영에로의 주력부대진출이 좌절된 조건에서 금후 어느 방향으로 나가 어떤 작전을 펼칠것인가를 시급히 결심하셔야 했고 그에 앞서 《토벌》이 미칠수 없는 안전처로 빠져나가 며칠 묵으면서 림가의 변절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며 그 견해를 일치시키고 각자가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철석같이 다지도록 정치토론을 벌려야 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였다. 그 희푸르스름한 달빛이 거목들의 가지들사이로 각광처럼 뻗쳐내려 지나가는 대원들의 얼굴을 언뜻언뜻 비쳤다. 울분에 찬 얼굴, 비장한 얼굴, 저주와 원한, 처절한 감정이 서린 얼굴, 끌날같이 번뜩이는 눈, 우수에 젖은듯 한 눈… 거치른 숨소리가 수림속에 흘렀다. 한마디 말도 없는 대오가 움직여갔다.

갑자기 8련대 행군종대의 후미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가슴을 찢는 신음소리, 떠들어대는 소리, 그쪽으로 달려가는 발자욱소리… 수림도 경악한듯 와스스… 설레였다.

정치위원 박덕산이 헐떡거리며 황황히 다가가보니 평소에 말이 없고 삐여진데라고는 전혀 없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수 없던 존재 마영복이라는 대원이 길가에 웅크리고앉아 무섭게 딸꾹질을 하며 열물을 토하고있었다.

한명찬소대장을 비롯한 대원 서너명이 그를 둘러싸고 배낭을 벗기고 잔등을 두드린다, 배를 문질러준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에익, 음식에 체했단 말이야. 체했어!》

《넨장, 급하게 먹으니까 그렇지!》

《아유- 아유-》

《다 토하라. 다 토해야 시원해. -》

《여, 여- 손가락을 입안에 들이밀어! 어서- 목젖밑에까지 쑤시란 말이야!》

마영복은 왈칵하고 두번 더 토하더니 《아유-》 하고 울음섞인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모재비로 쓰러졌다.

《야, 누우면 안돼. 자, 자, 일어나자구!》

《아유-》

《말몰이를 했다면서 그것두 몰라? 말이 체하면 냅다 뛰게 하지 않는가. 그럼 쑥 내려가!》

《영복이, 영복이, 일어나 걷자. 걸어야 쑥 내려가!》

그리고는 모두 달라붙어 그를 안아일으키고 부축하였다. 마영복은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그들을 와락 뿌리쳐버리고는 나무그루를 붙안고 애원하였다.

《아유- 아유- 난… 난… 못 걷겠소, 걷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쏴주시유, 잔등에 철알 한두발만 박아주시유. -》

《뭐라구?-》 하고 박덕산이 발을 탁 구르고는 달려들어 우격다짐으로 그를 닁큼 업었다. 그리고는 억척스럽게 걸어나갔다.

행군종대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그냥 묵묵히 움직여갔다.

대오의 앞장에서 걸어가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뒤쪽에서 분명히 무슨 일인가 있은것 같아 옆으로 비켜서서 그쪽을 돌아보시였다.

행군종대는 잔파도가 일다가 잦아든 강물처럼 유유한 흐름으로 움직여오고있었다.

그이의 앞으로 지나가는 대원들은 후끈한 열기와 땀내를 확확 풍기며 걸싸게 걸어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속에서 누구보다도 얼굴빛이 심각한 박주호소대장을 띄여보고 그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해보시였다.

《힘들지 않소?》

《괜찮습니다. …》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소?》

《기막힌 생각만 들었습니다.》

《기막히다?!…》

《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혁명군을 하늘처럼 믿구 지원해온 인민들이… 특히 국내인민들이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상심하구 손맥이랑 풀리겠습니까.》

《그렇소. 그렇단 말이요. 그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글쎄말입니다. 저두 속에서 불이 이는것 같습니다.》

《주호동무, 한번 세상을 들었다놓을만 한… 보천보를 들이친것만 한 싸움을 벌리면 어떻겠소?》

《사령관동지,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인민들의 기세가 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소. 그게 주호동무 생각만 아닐테지?》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걸 바랄겁니다.》

그러다가 박주호는 말을 이었다.

《사령관동지,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명찬동무한테 의견을 품구 속으로 별러왔습니다, 한번 되게 답새기자 하구…》

《그건 왜?》

《참모장의 그림자나 같았지요. … 망원초에서 사지를 빠져 찾아온걸 보니 그럴 생각이 싹 없어졌습니다. …》

《음…》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밤 박주호뿐만아니라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끓어번지는 가슴을 안고 행군하고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시였다.

그날 밤의 행군은 주력부대의 기계적인 위치이동이 아니였다. 그것은 분노와 저주, 뼈아픈 반성과 번민, 분발심과 복수심… 열화와 같은 심혼의 줄기찬 흐름이였다.

거목들의 가지들사이로 각광처럼 뻗쳐내리는 희푸르스름한 달빛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얼굴들, 끌날같이 번뜩이는 눈, 우수에 젖은듯 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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