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사령관동지께서는 사지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사령부로 찾아온 그들을 하나하나 뜨겁게 안아주시고 빨리 식사를 시키고 푹 쉬게 하라고 이르시고는 한명찬을 데리고 사령부천막으로 내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명찬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으시였다.

사령부천막안은 훈훈하고 고요했다.

화로우에 놓인 구리주전자에서 물이 끓기 전의 야릇한 소음이 나고 그 아구리로 김이 문문 피여나왔다.

한명찬은 하던 이야기를 중둥무이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끅끅 흐느껴울었다. 중중첩첩한 사선을 헤쳐오며 이를 악물고 씹어삼킨 분격, 울분, 절망, 비감이 그이의 앞에 오자 설음이 되여 걷잡을수 없이 터져올랐던것이다.

령관동지께서 한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를 다독이며 갈린 음성으로 이르시였다.

《그만… 그만… 이젠 제 집에 왔는데 왜 이러나. 자, 그만… 그치라구.》

그이께서도 아까 망원초에서 살아돌아온 신대원들이 한품에 안겨들며 울음을 터뜨리던 때의 그 격정이 되살아올라 가슴이 쩌릿해지시였다.

《그만… 됐소.… 보고는 후에 듣기로 하고 우선 쉬여야 하겠소. 경위중대동무들이 동무자리까지 다 펴놓고 기다리고있소.》

그러나 한명찬은 통나무걸상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들이 그사이 겪은 고초와 죄책감, 울분을 다 털어놓지 않고는 잘수도 먹을수도 숨을 쉴수도 없는듯 하였다.

그의 머리에 칭칭 감긴 토목천붕대에 내배여 거멓게 말라붙은 피, 흙덩이같은 손, 시퍼렇게 피멍이 든 목, 여기저기 찢어져 너덜거리는 진흙투성이의 군복, 땀내, 흙냄새, 무슨 그을음냄새… 수난자의 그 참혹한 겉모습과 체취가 그들이 어떤 사지에서 빠져나와 어떤 가시덤불길을 헤쳐왔는가를 다 말해주는듯싶은데 여기서 무슨 설명이며 증명, 상세한 보고가 더 필요하랴.… 하지만 고지식한 한명찬은 그냥 앉아서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장군님, 저는… 이 바보, 못난이는 뒤늦게야 그자가 사상정신적으로 부패해질대로 부패해졌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행상군차림으로 우리 밀영에 기여들어 림강지하조직의 련락원으로 행세한자는 왜놈특무였습니다. 전문교육을 받은 밀정입니다. 우리 밀영에 〈원군물자〉를 대대적으로 들이민것은 우리 대오를 와해시키기 위한 일제의 모략이였습니다. 그자를 통해 감행한 모략책동이였습니다. 그 밀정놈은… 그놈은 포수로 가장하고 화라즈밀영에 기여들었던 놈입니다.

령관동지, 바로 그놈이… 그 악귀가 화라즈밀영을 〈토벌〉하고 우리 동무들이 죽을 고생을 다하며 공작해들인 주력부대의 군량을 모조리 불사르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이의 무릎우에 놓인 주먹이 우들우들 떨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가 후- 내뿜으며 신음같은 소리를 내시였다.

《왜놈의 특수기관은 자기 특무인 그 〈행상군〉을 통하여 우리 밀영에 신문과 잡지들을 많이 들이밀었습니다. 우리한테 부족한 식량, 군복천 등 〈원군물자〉와 함께… 림가는 그것들을 독차지하고 탐독했습니다. 왜놈의 신문, 잡지… 그것들이 림가를 병들게 한 마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신문들에는 일쏘간의 문제가 요란하게 광고되고 권총자살한 양정우군장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모스크바성문의 열쇠가 곧 열릴것이라는 시사론평도 크게 났습니다. 림가는 이런것에 충격을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

《음…》

《림가는… 제 보기에는… 자기가 범한 비량심적인 죄행으로 해서 놈들에게 잡혔고 그 죄행이 폭로될가봐 그 마수를 단호히 뿌리치고 뛰쳐나오지 못한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적들은 먼 거리에서 우리 밀영을 포위하고있었고 림가는 왜놈들과 완전히 내통하고있었습니다. 깊은 밤중에 몰래 재봉대밀영으로 찾아갔습니다. 뛰여갔습니다, 우리쪽 사태를 알리고 지원을 받자구. 거기 동무들과 협동해서 역적과 놈들을 처단하고 빠져나가자구… 가보니, 가보니 밀영이 텅 비여있었습니다. 거기 동무들이 벌써 다 알구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저는 신대원들을 각성시켜 단합된 힘으로 역적을 체포하고 포위를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3월 3일날 거사를 단행하려고 했는데 그자가 선손을 썼습니다.》

거사전날.

참모장은 새 유격대군복차림의 낯선 대원 3명을 데리고 나타나 비상소집을 일으켜 신대원들을 병실앞에 정렬시켜놓고는 요즘 무기소제와 보관상태가 한심해졌다고 하며 무기검열을 시작했다. 그는 모든 대원들이 10보앞으로 걸어나가 총들을 눕혀놓도록 구령을 쳤다.

총대들이 2렬로 눕혀놓이자 그는 총들의 격발기도 열어보고 총신도 들여다보며 선택검열을 하는척 하다가 낯선 세 대원에게 이것들을 저쪽으로 걷어가라고 소리쳤다. 그 대원들이 총대들을 장작개비처럼 걷어모으기 시작했다.

《반-변이다. -》 한명찬은 정신없이 소리치며 싸창을 번개같이 빼들어 우들우들 떨면서 림수산의 가슴을 면바로 겨누었다. 네댓명의 대원들은 어쩔바를 몰랐으나 태반의 대원들은 왈칵 달려나갔다. 얼을 뽑아버리는 총소리… 달려나가던 두 대원이 피를 뿜으며 땅바닥에 딩굴고 다른 대원들은 림수산과 세놈에게 덮쳐들었다. 란투가 벌어졌다. 림수산은 우들우들 떠는 손들이 자기 어깨며 멱살을 틀어잡고 목을 조이는데도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고 쏘고 또 쏘았다.

밀영주변의 숲으로부터 누런 왜군무리들이 야성을 지르며 달려나왔다.

야수적인 란타…

체포, 체포…

호송…

《그날 밤 저는 분명히 서남방향으로 달리는 트럭적재함우에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놈들은 우리 26명을 적재함에 앉히고 호송병 세놈이 운전칸을 등지고앉아 감시했습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어느 령길에서 차가 굽인돌이를 돌 때 장득범이와 또 한동무가 적재함에서 날아떨어져 낭떠러지밑으로 굴러내렸습니다. 급정거한 차우에서 호송병들이 낭떠러지밑에 대고 총을 란사했습니다. 그들의 생사여부는 알수 없습니다. 그날 밤 호송차가 울창한 수림속 길에서 비적이 된 산림대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왜놈들과 비적들사이에 혼전이 벌어진 그 틈에 우리는 숲속으로 내뛰였습니다. 비적들은 우리도 왜놈으로 보고 마구 갈겼습니다. 거기서 세 동무를 또 잃었습니다. 우리는 왜놈들의 악착한 추격을 피해 한달이상 산속을 헤매다가 겨우 여기로, 화라즈로 찾아왔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명찬에게 《만선일보》를 보이며 《이 문정금이란 녀성은 누구요? 우리 녀대원들속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는데… 누구요?》 하고 물으시였다.

《문정금은 유격대원이 아닙니다. 원호물자를 지고 재봉대밀영에 왔다가 혁명군에 입대하고싶어 떨어진 동무입니다. 사건이 터지기 며칠전에 림가놈이 우리한테 데려왔습니다. 사업을 통해 검열하고 입대시킨다고…》

《그럼 연미숙동무는 어떻게 됐소?》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터진 날 왜놈들이 작식터로 달려들었을 때 두 녀자는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놈들은 그들을 포승줄로 묶어가지고 차에 실어 어디로 끌어갔는데 그후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시름겨운 숨을 조용히 내쉬시였다.

《저놈들이 어째 연미숙의 이름은 신문에 내지 않았을가? 호송도중에 어떻게 된게 아닌가? 몸도 쇠약하고 의지도 박약했던 동무였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명찬이와 그 신대원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윽토록 그를 지켜보시다가 구리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고뿌에 따라주시였다.

《대접할게 물밖에 없구만. 훌훌 불면서 마시라구.》

한명찬은 고뿌를 들었다가 도로 놓으며 일어섰다.

사령관동지, 저를…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처벌해주십시오. 대렬앞에서 총살해도 의견이 없겠습니다!》 하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응? 그건 무슨 소리요?》

《제가 떨떨해서… 머저리구실을 해서 그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한달이상 산속을 헤맬 때 애꾸지게, 억울하게 죽은 동무들을 생각하니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결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건 비겁한짓이다, 신대원동무들을 사령부에 넘겨주고… 죄를 다 고백하구 우리 총알에… 동지들의 총알에… 으흐흐…》 하고 흐느꼈다. 《… 맞아죽자, 편안하게…》

《명찬이,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가?!》

천막안에 그이의 격한 음성이 메아리쳤다.

《아닙니다!… 이 생각이 없었더라면 저는… 저는… 이 생각만 없었더라면 도중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을겁니다. 맥이 다 빠진 다리를 끌구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어째 나는 림수산이… 저 인간의 정체를 일찌기 간파하지 못했는가? 아이적부터 어른들은 나를 총명하고 민감하고 눈치빠른 녀석이라고 했는데, 혁명군에 들어와서도 둔자라는 소리는 안 들었는데 어째서… 왜… 늘 저 인간곁에 붙어있으면서도 부패타락해가는자한테서 그토록 아무런 기미도 느끼지 못했는가? 썩는 냄새를 맡지 못했는가? 저자의 정체를 다 안 다음에는 어째서 그토록 우유부단하고 망설이면서 즉시 단호하게 손을 쓰지 못했는가?…》

이렇게 말하며 몸부림치는 그의 머리에서 희끗한 머리칼이 유표하게 드러났다. 20대청년의 머리에 내린 인생의 서리… 그 반짝이는 서리를 발견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쓰려나 부드럽게 이르시였다.

《그만하오… 명찬이, 그런 얘기는 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푹 쉬오.》

한명찬은 고뿌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한명찬소대장을 잠자리가 꾸려진 경위중대병실로 데려다주고 돌아와서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연미숙의 운명을 두고 계속 심려하시였다.

 

×

 

그때 연미숙과 문정금은 곧장 신경으로 끌려갔었다.

놈들은 호화로운 호텔의 3층 구석진 방에 연미숙을 떠밀어넣고 밖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문정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가 어떤 마굴에 들어왔는가를 깨달은 순간 연미숙은 창공을 날다가 조롱속에 갇힌 새처럼 진정을 못하고 응접실에서 침실로, 샤와실로 정신없이 돌아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출입문이며 창문을 열어보자고 안깐힘을 쓰고 또 썼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기진하여 응접실의 주단우에 쓰러지고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벌써 창문에는 어둠이 비끼고 번화가의 소음이 흘러들었다. 승용차들의 경적소리, 마차며 인력거들이 굴러가는 소리, 귀에 선 음악소리…

이윽고 연미숙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오도카니 앉아있다가 조용히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아… 아,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그 인간이 변절하리라고야 꿈엔들 생각했던가, 꿈엔들…)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든것이 자기탓인것 같았다. 자기한테 중요한 책임이 있는것 같았다.

(밀영에서 그날 아침 한명찬소대장이 그 인간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솔직했더라면… 그랬다면 일은 달라졌을지도 몰라.

아, 아, 왜 그런 자를 비호했던가. 아, 저 인간이 변절할수 있다는걸 알았다면 내 아무리 무맥한 녀자라도 그랬겠는가. 아니, 이건 변명이야. 난 죽어도 싸다. )

연미숙의 얼굴로는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앓아누운 자기를 혁명동지라고 버리지 않고 그 험한 수백리길을 담가에 메고 화라즈까지 온 그리운 8련대 대원들이 생각났다. 자기 병구완을 다심하게 해준 《무산아재》, 어떻게나 자기 입맛을 돌려보자고 적의 배후에까지 들어가 잃어버린 조찹쌀배낭을 찾아온 정숙언니, 언제나 친어버이심정으로 자기한테 왼심을 써주시던 사령관동지 모습이 흐려진 눈앞에 우렷이 떠올랐다.

(지금 장군님께선 어디에 계실가. 아, 내가 이런데 와있다는걸 아신다면 얼마나 걱정하실가, 얼마나… 얼마나…)

호텔접대부가 난생처음 보는 고급료리가 차려진 다반을 들고 들어오고 우악스럽게 생긴 중위가 따라들어와 간사하게 웃으며 먹으라고 구슬리다가 군도까지 빼들고 위협했지만 먹을수 없었다. 먹을래야 먹을수 없었다. 입안이 바싹 마르고 갈라터진데다가 음식물을 떠넣으면 소태처럼 쓰거워서였다.

접대부와 중위가 다반을 응접탁에 놓은채 나가버린지 이윽하여 만족의 비단옷차림을 한 중년부인이 들어와 협화양복점의 재단사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요염한 얼굴에 사람의 간을 녹이는듯 한 서울말씨였다.

《나를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도 김찬씨밑에서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잡혀가 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어요. 나는 연미숙양을 리해해요.》

그 녀자는 귀속말로 속삭이고는 스스럼없이 그를 안아일으켰다.

그리고는 소형권척을 풀어 익숙하고 날랜 솜씨로 그의 키며 다리길이, 목, 젖가슴, 허리둘레를 재여보고 꼬마목책에 무엇인가 또박또박 적어넣었다.

《왜 이러는가요?》

재단사는 그한테 눈을 흘기였다.

《아씨, 내가 모르는줄 알고 그렇게 묻지?》

《난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

《몰라요!》

《아이, 불쌍해라. …》

재단사는 그를 안락의자쪽으로 끌고가서 앉히며 좋은 일, 좋아도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며 곁에 앉았다.

《래일모레 그 남아장부하고… 림수산씨하고 성례를 치르고 신혼려행을 가게 된대요. 서울과 도꾜로…》

《?!…》

《관동군사령부에서 그렇게 결정이 됐으니 순응할수밖에 없어요. 왜 그렇게 놀라요? 본인의 의향을 묻지 않은건 섭섭하겠지만… 군인들이 하는 일이란 그렇다니까요. 호- 어찌겠어요. 돼가는대로 살아가는것이 인생이라지 않아요. 이제 신문에랑 굉장히 날거예요.…》

연미숙은 안락의자에 얼어붙었다. 숨도 쉴수 없었다. 귀안에 바람소리만 울부짖었다. 재단사가 언제 어떻게 물러갔는지도 알수 없었다.

(신문에 굉장히 나면… 산에서 그 신문을 보게 되면 정숙언니와 《무산아재》도 온 부대가 나를 저 인간쓰레기와 똑같이 보겠지. 그렇게… 그렇게 볼수밖에 없어…)

눈앞에서 칠흑같은 어둠이 회오리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출입문밖에서 발자욱소리가 울리고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 연미숙은 튕겨오르는듯 벌떡 일어서 황황히 두리번거렸다. 구석쪽의 원탁으로 달려가 과일칼을 움켜잡고 돌아섰다.

출입문이 반쯤 열리며 림수산과 모리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만취하여 혀꼬부라진 소리…

《오이, 여보게, 한껏 즐기라구.》

《모리다형, 고맙네.》

《저 회암산밀영에서 당한 모욕에 대해 복수… 복수하라구. 흐흐흐…》

연미숙은 몸을 날려 벽에 붙어섰다. 과일칼은 등뒤에 감추었다.

《아, 아, 이거 너무 마셨는걸…》

《안되겠소.》

《괜찮아. …》

《내 차까지 바래주리다.》

멀어지는 발자욱소리… 복도에서는 인기척소리도 별로 나지 않는것같았다.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

(아, 장군님!…)

연미숙은 반쯤 열려진 출입문으로 바람처럼 복도로 달려나갔다. 웃층에서 층계를 따라 총총히 걸어내려오던 일본계집들이 기겁하여 벌렁 뒤로 넘어지며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악, 도적이야.-》

《강-도-야.-》

이쪽저쪽에서 문들이 열리며 형형색색의 손님들이 복도로 쏟아져나와 떠들어대며 미친듯이 소리쳤다.

《저년 잡아-라.-》

《잡아-라.-》

연미숙은 아래쪽으로 내리뛰다가 그쪽에서 올라오는 두 경관놈들과 마주쳤다. 그는 홱 돌아서 웃쪽으로 올리뛰였다. 손에 쥔 과일칼날이 불빛을 반사하며 번뜩이였다. 복도와 층계의 손님들은 질겁하여 벽에 붙어섰다.

3층복도의 로대와 통한 문이 열려져있는것이 언뜻 눈에 띄였다.

연미숙은 날듯이 로대로 뛰여나갔다. 그리고는 로대의 쇠란간을 잡았다가 하늘을 쳐다보게 되였다. 오늘이 며칠일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서였다.

번화가의 가로등, 장명등, 장식등의 발갛고 파랗고 노란 불빛들이 그의 눈이며 얼굴, 손등에 비껴들었다.

문득 산에 있는 동지들, 그 정다운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마지막으로 헤여질 때 사령관동지께서 련환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시였는데 영영 부르지 못하게 되였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에이였다. 아, 이 몸이 그대로 노래로 될수 있다면… 아, 아, 노래로 되여 그이께 날아갈수 있었으면…

어느새 그의 몸은 어스름속으로 날아떨어지고있었다.

바로 그 시각 림수산은 복도에 나와 떠들어대는 손님들속을 비틀거리며 누벼나가다가 머리에 짚이는것이 있어 황황히 자기 호실로 뛰여들어갔다. 응접실, 침실에도 그 녀자는 없었다. 샤와실에도 위생실에도…

그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저 아스라한 밑 땅바닥 어스름속에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들어 왁작 떠들고있었다.

그들중에는 낯선 군복차림의 그 녀자가 사령관동지와 동지들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혁명군대원의 영예를 지키려고 꽃나이에 자결의 길을 택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림수산이만은 그것을 알았다.

순간에 술기운이 말끔히 가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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