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4

 

닷새후 날이 아주 어두워서였다.

귀틀집부엌아궁이앞에 서기활이와 장득범이 퍼더버리고앉아 눈가루에 젖은 신발을 말리우며 수군거렸다.

《여, 이 장득범이 채벌로동에서야 누구한데 짝진적이 있나? 한데 조화거든. 사격하자구 엎디면 기침이 자꾸 쿨럭쿨럭 나온단 말이야. 젠장, 묘준이 제대로 돼야지.》

《거 별난데?…》

아궁이안에서 장작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둘의 벌겋게 익은 얼굴에 그 불빛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제그제 참모장동지가 사격훈련을 하는데 나한테 와서 동무는 왜 사격점수가 오르지 못하는가… 이렇게 묻지 않겠나. 그래 기침얘기를 했더니 아니글쎄 돌소금 한두알 입안에 넣구 녹이면 기침이 갈앉는다고 대주면서 소대장동지한테 작식터에 가서 한줌 갖다주라구 이르데. 그대로 해보니 히야- 진짜야. 묘준이 딱딱 명중이야. 참모장동지 참 아는게랑 많지?》

《쳇, 오죽하면 참모장이 됐겠나. 인테리야!》

《그건 무슨 소린가?》

《지식이 많다는 소리야. …》

《히야-》

장득범이 김이 문문 나는 신발등에 날아든 불찌를 헤덤비며 털어버리는데 서기활이 팔굽으로 짝패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요전에 참 희한한걸 봤어.》

《뭘?…》

《저 뒤산에 삭정이 주으러갔다가… 쉿, 이건 정말 비밀이야. … 참모장동지하구 우리 연동무가 나란히 걸어오는데… 요렇게 딱 붙어서 걸어오는데 거- 멋있더라. 온 누리는 고요- 한데 발자욱소리만 자박… 자박…》

《뭐? 뭐라구?》

《뭐긴 뭐겠어. 그저… 그거지. 우리 혁명군안에두 견우하구 직녀도 있구 부부도 있다누만. …》

《그- 래? 그럼 참모장동지하구 연동무는?…》

장득범은 제풀에 와뜰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 나두 잘못했는데 그만두자구. 뒤소리를 하지 말것, 필요없이 뭐나 알려고 하지 말것! 밀영규률이 있지 않아.》

《챠, 이것 봐라?》

장득범이 벌떡 일어났다.

《서기활동무!》

《아니, 왜 이래? 넨장…》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둘은 놀라서 돌아봤다.

한명찬소대장이 버티고 서있었다.

《동무들은 이게 뭐요? 잘 시간이 지났는데… 기활이, 동무는 득범동무 비판을 접수하는게 좋소. 참모장동지는 그날 나를 통해 연동무한테 로획품인 거울을 보내줬소. 아마 연동무는 그게 고마와 따라나가 인사했을거요. 다시 그따위 소릴 하면 용서하지 않겠소! 다른 의견이 없으면 빨리 들어가 자오.》

두 대원이 덤벼치며 신발들을 주어신고 병실로 뛰여들어간 다음에도 한명찬은 어둠속에 오래 서있었다.

그는 행상군을 놓아준 후 참모장의 지시로 회암봉뒤로 밀영을 옮겨갈 준비를 다그치는 한편 밀영주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경비인원을 배로 증강하였다. 그렇게 하고도 속이 개운치 않았는데 두 대원의 미심쩍은 소리까지 들으니 슬그머니 결이 났다. 참모장이 두 밀영의 책임자로서 이러한 때 서기활의 짐작처럼 헛된 열정에 빠질만큼 가벼운 위인이 아니라는것은 물론 알고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속에 여유가 너무 많은것 같아서였다.

이튿날 새벽 잠복초에서 닷새전에 놓아준 행상군이 또 찾아왔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림강지하조직에서 보내는 비밀련락을 가지고 왔다는것이였다.

잠복초에서 뛰여온 대원은 숨을 헐썩거리며 그자가 우리하고 장사거래를 해보자고 오그랑수를 쓰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한명찬은 가슴이 선뜩 얼어들며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그 대원을 따라 잠복초로 뛰여내려갔다.

잠복초의 웅뎅이속에서 개털외투에 털모자를 눌러쓴 장득범이 뛰여나와 눈을 끌날같이 번뜩이며 입속말로 보고했다.

《저따우 장사치가 나하구 무슨 구면친구나 되는것처럼 기신기신 나사들며 수작질을 거는데… 이거야 참…》

그는 턱짓으로 10여메터앞에 바람을 등지고 웅크리고 서있는 그림자를 가리키며 뇌까렸다.

《헝, 이 장득범이를 어떻게 보구 담배를 피우지 않겠는가, 깨엿을 먹겠는가… 이럽니다. 한방 갈길가 하다가 꽥 소리쳐서 저렇게 세워놓았수다, 옴짝달싹 못하게. …》

《잘- 했소.》

그 그림자는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봤던지 울분을 터뜨렸다.

《여보시우, 이건 너무하오다. 내가 언제 깨엿이란 소리를 했다구… 혁명군대원이 코흘리개애라구 그런 소리를 했겠수. …》

《좋소, 비밀련락이란건 뭐요? 나한테 말하시오.》

《림강조직에서는 대장어른한테만 전하라구 했소다.》

《나한테 말하시오!》

《안되우다!》

《그럼 래일 아침까지 거기서 기다리오!》

《뭐… 뭐? 당신네도 민중을 위해 싸우는 유격대가 옳긴 옳소? 나는 돌아가겠소!》

그는 결패스럽게 돌아서 활개를 크게 저으며 성큼성큼 걸어내려갔다.

한명찬은 황황히 뒤쫓아가며 소리쳤다.

《섯- 서랏!-》

그래도 서지 않았다. 한명찬은 장득범에게 쏘라고 손짓했다.

격발기가 절커덕거리는 소리… 행상군은 살기풍기는 쇠소리에 기겁하여 돌아섰다가 풀썩 주저앉으며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어휴- 이 한지에서 어떻게 떤단 말이유- 요전에 들어갔던 움막이 있지 않소. 거기서 기다리면 안되우?-》

《…》

《믿지 못하겠으면 쏘시오! 쏘란 말이요- 얼어죽으나 맞아죽으나 매한가지요. 어휴- 왜 이런 길에 나섰던고-》

한명찬은 잠복초로 돌아와 장득범에게 불돌을 달군게 있으면 갖다주라고 짤막하게 일렀다.

아침에 재봉대밀영에서 넘어온 림수산참모장이 잠복초로 뛰여내려갔을 때 그 사람은 눈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미지근한 불돌에 인사불성이 되여 앉아있었는데 림수산이 새된 소리로 부르자 스르르 모재비로 쓰러졌다.

개털모자귀덮개며 눈섭과 입언저리에 허옇게 불린 성에가루, 턱수염에 달린 얼음방울들, 얼어붙은듯 한 속눈섭… 림수산은 험악한 얼굴로 한명찬을 홱 돌아봤는데 불꽃이 이는 그의 눈이 이렇게 소리치는듯 했다.

(동무도 인간인가?!)

그는 잠복초로 달려가 두 대원에게 저 사람을 움막으로 맞들어가라고 했다.

이윽고 그 사람을 움막바닥에 눕힌 다음 참모장은 두 대원과 함께 그의 얼굴이며 목, 가슴팍을 비벼주는가 하면 팔다리를 주물러주다가 입을 벌리고 더운물을 떠넣었으나 넘기지 못하였다.

한명찬은 그들 뒤에 심각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참모장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참모장은 행상군을 놓아준 처사에 대한 반감으로 그를 그처럼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 사람은 오후에야 겨우 피여나 눈을 뜨더니 림수산을 알아보고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래일 새벽 림강지하조직 련락원이 범바위골어귀에 온다, 당신을 만나고싶어한다고 하였다.

참모장은 당신이 우리한테 왔다간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행상군은 모르겠다고, 자기는 여기서 내려가다가 산림경찰에 잡혀 경찰서로 끌려갔다. 놈들은 자기를 《통비분자》로 몰아대며 악착스럽게 심문하였으나 유격대를 만났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노라고 말하였다.

한명찬은 경찰들속에 조국광복회 특수회원이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참모장도 같은 짐작인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파고들지 않았다.

 

×

 

이튿날 새벽 4시경.

림수산참모장과 한명찬은 5명의 엄호조를 뒤에 달고 범바위골로 내려갔다. 행상군은 인질로 남겠다고 하며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자기를 쏘라고 하였다.

5시반경 림수산은 대원들과 함께 범바위골어귀가 바라보이는 산비탈에 매복하여 그 주변의 수림속이며 골바닥을 살펴보았다.

약속한 시간이 되여오자 나무군차림의 사나이 두명이 숲속에서 불쑥 나타나 범바위골어귀로 뛰여내려와 이쪽산비탈이며 릉선쪽을 뚜릿뚜릿 둘러보았다. 뒤에 달린 그림자들은 없었다.

참모장은 그쪽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행동계획을 변경시켜 한명찬이더러 단독으로 내려가 그들을 만나보라고 하였다.

얼마후 한명찬과 두 나무군은 스물댓걸음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서게 되였다.

저쪽의 두 그림자는 매우 긴장되여 불안해하는것 같았다.

《아니 동무들, 왜 이러시우? 모처럼 만났는데 담배라도 나누어 피워봅시다.》 하고 한명찬이 먼저 말을 건네며 두세걸음앞으로 걸어나갔다.

《유격대어른, 물러서시우!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알아둘 필요도 없구 인상을 남길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혜산사건의 교훈이지요.》

《그럼… 먼저 말하시오. 뭣때문에 만나자구 했습니까?》

《왜놈들의 봉쇄책동으로 유격대가 어떤 고생을 하는가 하는걸 알고… 우리 조직은 적지 않은 원군물자를 마련해놓았습니다. 그걸 넘겨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범골치기 숯구이막까지 은밀히 운반해오겠습니다. 량이 많고 경계가 심한것만큼 한꺼번에 운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세번에 꺾어 운반할가 하니 적당한 시간에 내려와서 운반해가시오.》

《감사합니다.》

《행상군아바이는 돌려보내든지 운반이 끝날 때까지 인질로 더 남겨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는 돌아섰다.

《안녕히. …》

그날 림수산참모장과 한명찬은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묵묵히 뒤따라가다가 훈련장근처에 이르러 약속이나 한듯이 뚝 멎어섰다.

《왜 아무 말도 없소?》 하고 참모장이 먼저 물었다.

한명찬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원군물자를 주고받으며 왕래가 잦아지면… 그렇게 되면 종당에는 밀영이 다 로출되지 않을가요?》

《흠… 그렇게 될수도 있지. …》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라도 다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림수산참모장이 노기어린 눈길로 그를 흘깃 돌아봤다.

《믿어지지 않는가?…》

《완전히 그런건 아니지만 어쩐지 이상합니다.》

《뭐가?…》

《여태 이런 식으로 인민들과 접촉해보기는 처음입니다. 만나면 그저 기쁘고 눈물부터 앞서 얼싸안고 돌아갔는데… 이건 경계해서 거리를 두고 마주서서… 인질을 남겨두고… 인질… 인질이 도대체 뭡니까?》

《그거야 적들의 경계가 삼엄하고 모략책동이 우심해졌기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하조직들을 다 배척하게 되고 인민들을 다 잃게 되오. 우린 고립무원해져 쌀 한되박, 소금 한숟가락 얻재도 피를 흘려야 한단 말이요.》

《참모장동지, 심사숙고해주십시오. 생활이 어렵다고 해서 물질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안된다고… 정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헛헛, 이 동무가… 동무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요, 엉?!》 격한 목소리였다.

《나는 동무가 저 행상군아바이를 혹한속에 세워둬서 죽일번 한걸 보구… 그걸 보구 한명찬이란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됐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다루면 못쓰오. 자기자신이 나빠진단 말이요!》

그날 점심식사후 참모장은 한명찬에게 이제부터는 신대원훈련에만 전념하고 인민들과의 사업에서는 손을 떼도 좋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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