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6

 

그날 밤 오중흡련대장과 륙과송 뒤산에서 영결하였다. 빨찌산식장의였다. 제주도 없고 호곡소리도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애도사를 하신 다음 하늘을 향해 조총들을 쏘았다.

그리고 원정대는 인차 륙과송을 떠나 전날의 숙영지를 향해 부지런히 행군했다. 륙과송일대에서 참군을 탄원하여 달려나온 100명의 청년들이 비감속에 움직이는 그 대오를 따라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행군종대의 맨 앞장에서 비통한 심정을 안으시고 묵묵히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오중흡련대장을 언땅에 묻고 떠나자니 발밑에 천근무게의 추가 달린듯 발걸음을 옮기기 여간 힘겹지 않았다. 걸음걸음마다 갖가지 추억과 비감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오열이 터져올랐다. 오중흡이 그냥 따라오며 《아-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하고 애절하게 부르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비감에나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다음작전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그처럼 신념이 강한 인간 오중흡의 뜻이고 념원이다. 가자, 빨리… 그이께서는 억척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가시였다. 두세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다음부터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시며… 여태 구상해온 원정대의 군사작전과 정치공작에 대해서만 생각하려고 애쓰며 다음단계의 작전에 대한 생각에 깊이깊이 빠져들어가시였다.

(…이제 쟈신즈, 쟈신즈까지 치면 저놈들이 돈화땅에 소부대가 아니라 대부대로, 우리 주력이 들어왔다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그다음… 그다음은?… 적의 대무력이… 노조에사령부관하 《토벌대》들과 관동군부대들이 두만강연안 국경일대와 백두산동북부에 몰켰던 그 대무력이 여기로, 돈화로 밀려든다. … 밀려들테지. …)

하지만 쓰디쓴 비감은 해일처럼 그 생각들을 헤집고들며 온몸의 기운을 물거품처럼 날려버린다. 비분이 터져오른다.

(아니… 아니다!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 속으로 웨치시며 그이께서는 다시 의지를 가다듬고 다음작전을 생각하시였다.그 생각으로 비감을 물리치며…

(적의 대무력이… 대무력이 여기로 밀려들면 그때엔… 감쪽같이… 쥐도 새도 모르게 기동방향을 돌려… 저 천리수해속 밀로를 따라 남하한다. 목단령과 장산령산줄기들을 넘고넘어 두만강연안으로… 적군이 없는… 텅 빈 백두산서남쪽과 동남쪽으로…)

눈발이 그이의 얼굴을 스친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뜨겁고 짜거운것이 입술로 흘러든다.

(아니…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 … 백두산기슭과 두만강국경일대가 우리 전구로 될것이다. 거기서 유격전을 벌리고 조국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 거기에 밀영을 꾸리고 국내조직과의 련계도 살려놓고 주력부대가 먹을 군량도 미리 장만해두고… 그러자면 거기에 소부대가 있어야 한다. 빨리 거기로 소부대를 내보내야 한다. 누구를… 누구들을 거기로 보내야 하는가. … 아, 이제부터 할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모두 슬픔에만 잠겨있어. 이걸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 그건 명령만으로는 안되는 일이다. 어떻게 하는가.… 이 비감이 한동안 가겠지.…)

그이의 우려와 예상은 틀림이 없었다.

이튿날 이른아침식사시간이였다.

박주호가 여느 대원들과 나란히 앉아 뜨끈하고 푸짐한 식사를 들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천막에서 나갔다. 그는 뒤쪽 산비탈의 진대나무에 걸터앉아 머리를 싸쥐였다. 김이 나는 뜨끈한 흰쌀밥과 국을 후- 후- 불며 떠먹다가 오중흡련대장 생각이 울컥 치밀어 음식을 도저히 넘길수 없었던것이다.

점점이 흩날리던 싸락눈은 오는듯마는듯 하다가 아주 그치고말았다. 그대신 추위가 더 맵짜져 소슬하게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살을 선뜩선뜩 에이는듯싶었다.

박주호는 머리를 싸쥔채 우들우들 떨며 소리없이 울었다.

두 군화발사이의 정갈한 눈에 굵은 비방울같은것이 후두둑… 뿌려졌다. 간밤에 장의가 끝나자 모두 인차 돌아서 그곳을 떠날 때 그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근한 련대장을 홀로 남기고 산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인차 돌아서 떠나는것이 야속하고 매몰찬 일로, 죄스러운짓으로 여겨져 가슴이 찢어지고 발이 땅바닥에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망두석으로 굳어져 영원히 련대장을 지키며 동무해주고싶은 생각이 불같았던 그였다. 눈을 밟는 소리… 헐썩거리는 숨소리… 누구인가 앞에 와서는것 같았다.

《아니 식사도 안하고 여기 와서 뭘하는가?》

《…》

《오늘 새벽 사령관동지께서 나를 7련대장으로 임명하셨네. 자네를 만나구싶어 천막에 찾아가니 먹다가만 밥그릇만 있거든. 원 사람두, 사내대장부가 계집애들같이… 허허…》 오백룡의 목소리였다.

박주호는 진대나무에 걸터앉은채로 미간을 찌프리며 치떠보았다.

혈색이 좋은 오백룡의 얼굴이 까닭없이 싫어났다. 아니, 혐오감까지 울컥 치밀었던것이다.

오백룡은 불깃불깃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그를 굽어보다가 낯색이 달라졌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그의 곁에 앉아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주호의 무릎을 으스러지게 움켜잡았다.

《용서하게.… 여보게, 실은 나두 오중흡동지 자리에 들어서는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 죽기보다 싫었네. 자네도 아다싶이 백룡이라는 이 작자가 오중흡련대장을 대신할수 있는가. 그런 재목이 되는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래서 사령부에서 여기로 곧장 내려오지 못했어. … 량심없는짓 같아서. … 숲속으로 들어가 오락가락 헤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네.

만약에 령혼이라는게 있다면 말이네, 오중흡련대장은 저세상에서 련대가 걱정돼서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할게 아닌가. 우리가 진정으로 련대장을 위한다면 누구나 그 자리에 서서 비감에 빠진 련대를 일으켜세우고 가꾸어나가야 할게 아닌가. … 이런 생각이 들어 숙영지에 찾아들어갔네. 대원들을 만나니 모두 련대장동지라구 부르니까 갑자기 더 자신이 없어지면서 오중흡동지 생각이 나서…》

오백룡은 머리를 수긋하고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주호- 여보게- 련대를 맡으니 오중흡련대장이 어떤 지휘관… 어떤 혁명가였던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더 치네. 나야 그의 발밑에나 가는가. 내가 무슨 수로, 무슨 재간으로 련대를 그처럼 이끄는가. 아하, 우리는 어떤 동지를 잃었는가 말이요.》

박주호는 진정에 넘친 이런 고백을 듣게 되자 오백룡이 측은하게 여겨지고 그를 랭랭하게 대한것이 뉘우쳐졌다.

주호는 뼈가 굵은 그 팔목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련대장… 련대장동지! 이러지 마시우. 사령관동지께서 남달리 믿어 임명하셨는데 이러면 되우? 예? 우선 나부터 오중흡련대장처럼 여기구 받들겠수다.》

《야 주호, 그런 소리 말아라. 이 백룡이는 백룡이루 봐줘야지 중흡이로 여기면 흠만 보일게란 말이야. 난 백번 죽어두 오중흡련대장처럼은 못해, 못해! 아, 어떤 련대장을 잃었는가!》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령부천막안에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앉아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몇숟가락 뜨다말고 그만두시였다. 울컥 치미는 비분에 목이 메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천막안으로 들어오시였다. 밥그릇이며 그옆에 놓여진 숟가락을 보자 아연해지시였다.

《좀 있다 들어오오.》

《사령관동지께서까지 이러시면 어쩝니까. 부대들에서 모두 아침식사를… 못했습니다.》

《뭐요?!》 하고 돌아보시는 사령관동지의 눈에 섬광이 일었다.

《7련대에서는 박주호동무가 숟가락을 내던지고 내뛰는 바람에 모두 비분이 되살아나 아침식사를 거의 못했습니다.》

《정숙동무, 전달장을 불러오오!》

이윽고 전달장이 달려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한테 지휘관들을 급히 사령부앞 수림속에 집합시키라고 하시였다.

그날 아침 지휘관들은 불의적인 비상소집에 놀라 적정이 나타난줄로 알고 정신없이 집합장소로 뛰여왔다.

전달장으로부터 다 모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한테로 나가시였다.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로 자기들 앞으로 다가오시는 그이를 지켜보았다.

지휘관들의 열댓걸음앞에 멎어섰다가 허연 입김을 훌훌 날리며 천천히 다가오시는 사령관동지… 그이께서는 지휘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여겨보며 동무는, 동무는 아침식사를 얼마나 들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들은 순간에 주눅이 든듯 대답을 얼버무리며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사령관동지의 격한 음성이 그들의 가슴을 쳤다. 그이께서는 동지가 죽으면 비감이 오고 통곡하게 되는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응당한 일이다, 그러나 이건 헐한 일이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다, 참된 혁명가는 동지의 뜻을, 그가 못다하고 간 일을, 위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비감을 물리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비감, 오열이 아니라 분발로, 백배의 분발로 고인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야 하며 그것으로 떠나간 동지에 대한 의리를 보이라고 하시였다.

《…우리는 이제 쟈신즈를 쳐야 하오. 진정으로 오중흡이를 생각한다면 그 전투준비를 백배로 잘하자! 진정으로 오중흡이를 생각한다면 슬픔을 딛고 일어나 무엇보다먼저 아침밥부터 다 먹자! 밥이 소태처럼 쓰고 모래처럼 씹혀도 다 먹자! 동무들, 대원들한테 내 말을 그대로 전하시오. 그리고 대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다시 하오. …》

모임은 5분도 안 걸렸다.

지휘관들이 헤여져갈 때 사령관동지께서 림수산을 나직이 부르시였다.

《동무는 남소. … 나하고 같이 가기요.》

참모장은 얼굴빛이 해쓱해져 그이의 뒤를 따랐다.

나무가지들에서 눈가루가 날아떨어졌다.

림수산은 문득 목단령에서, 그 눈사태, 탄우속에서 오중흡련대장과 충돌했던 일이 떠올랐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를 따라 천막안에 들어선 그는 통나무탁자우에 두사람분의 식사가 차려있는것을 보고 얼떠름해졌다. 더우기 탁자 한쪽모서리에 배갈병까지 놓여있는것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림수산은 저으기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사령관동지께서 밝게 웃으시며 식사나 같이 들면서 이야기하자고 하시였다.

그는 어정쩡해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사령관동지앞에 마주앉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밥그릇이며 찬그릇, 수저를 그의 앞으로 가까이 놓아주고 잔에 배갈술까지 넘치게 부어주시고는 이제 동무하고 좀 헤여져있어야 하기때문에 식사라도 같이하고싶어 불렀노라고 하시였다.

《…동무도 아다싶이 여기 많은 청년들이 참군을 탄원하여 우리한테로 달려왔소. 기쁘면서도 힘에 부친 일이요. 지금까지 훈련은 시키기는 했지만 아직 그들을 원정군이 달고다닐수는 없소.》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백두산서남부의 조용한 곳에 데리고가서 밀영을 짓고 훈련시킬데 대한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하시였다. 계속하여 그 밀영의 위치는 적의 주의가 미치지 않는 곳이면서도 몽강, 림강, 장백지방과의 비밀통로를 내고 국내조직과의 련계를 취하기도 유리한 지점이라야 한다고 하시였다.

《참모장동무가 거기로 나가야 하겠소. 비서처에서도 동무를 파견하는데 동감이요. 왜 참모장을 파견하는가? 거기서, 그 밀영에서 해야 할 사업의 중요성때문이요. 동무는 신입대원들을 더 훈련시켜 유격전과 정치공작의 어떤 임무도 수행할수 있는 강력한 소부대를 편성해야 하겠소.

그 소부대로 앞으로 백두산서남부와 동남부로 진출하는 주력부대의 작전에 지장이 없도록 예비물자들을 장만해두어야 하겠소. … 그리고 중요하게는 갑산, 풍산, 삼수를 비롯한 지방의 국내조직들을 살려서 원군사업과 주력군의 국내진출시 한몫 하도록 이끌어야 하겠소. 갑산을 비롯한 거기 국내조직들은 권영벽, 리제순, 박달, 지태환동무들이 목숨으로 지키는 조직인것만큼 그들에 대한 의리심을 가지고, 초인간적인 정신력으로 옥고를 이겨내고있는 그 동지들의 투쟁을 빛내여주는 심정으로 그 조직들을 잘 도와주어야 하겠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무엇을 숨기겠소. 동무의 파견과 관련하여 비서처에서는 좀 의견이 제기되였소. 이미 비판된 문제지만 지난날의 과오와 실책때문이였소. … 나는 동무를 믿소!》

《사령관동지 …》 림수산은 격정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에 꼭…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 기대를 어긴다면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어려운 혁명의 길을 가고있소. 그 길에서 어찌 과오나 실책이 전혀 없을수 있겠소. 이번에 나가 명예를 회복하기 바라오. 성공을 바라오!》

사령관동지께서 잔을 들었다. 림수산도 따라서 잔을 들고 사의를 표하여 고개를 숙여보였다.

령관동지께서는 잔을 쭉 들이키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 하루동안 떠날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가 우리가 출발한 다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시각에 떠나라고 하시였다.

《…화라즈밀영에 가서 동무가 마음에 드는 대원들을 데리고 떠나오. 거기에 작식대원도 있어야 하니까 녀대원들중에서 누구나 선택하여 데리고가오.》

그날 저녁 림수산은 원정군이 떠난 다음 신입대원들을 이끌고 멀고먼 행군길에 올랐다.

림수산이 이끄는 신대원들로 이루어진 그 짤막한 행군종대는 북동풍을 등지고 산중 오솔길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

처음 떠났을 때 신대원들은 결의가 드높으면서도 마음들이 긴장되여 어스름속에서 조심조심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차차 담들이 커졌는지 행군종대에서는 기침소리며 수군수군 주고받는 말소리들이 나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쩝쩝 먹는 소리까지 났다.

림수산은 줄곧 한가지 생각에만 골똘하여 이따금 뒤를 돌아볼뿐 그런 소리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자기를 먼곳으로 파견하신 그 크나큰 신임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기운차게 걸었다. 어느 바위벼랑밑을 지나가는데 문득 뒤쪽에서 싱갱이질소리가 났다.

림수산은 그제야 대오관리를 생각하여 뒤를 돌아보다가 그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키가 꺽두룩한 서기활이라는 청년과 목이 바툼하고 몸매 다부진 장득범이라는 친구였다.

장득범이 약이 잔뜩 올라 서기활이한테 뇌까렸다.

《제 혼자 아는체 하는것까지는 좋은데 왜 사람을 얕봐? 엉? 왜놈십장처럼…》

그러자 서기활이 느슨하게 웃으며 면박을 주었다.

《챠- 요거, 맏형 말을 곧이듣지 않으니 그러지?》

《뭐뭐… 맏형? 이거야 세상에…》

《동무들, 무슨 일이요?》 하고 림수산은 엄한 얼굴로 물었다.

서기활이 어처구니 없다는듯 웃어보였다.

《제가 이 친구한테 이제 자기가 입을 군복은 자기가 왜놈을 죽이구 빼앗아입어야 한다구 알아들을만 하게 설명해줬는데두 곧장 우깁니다, 공짜루 내준다구. 산에서 내내 싸우는 빨찌산이 어디서 군복이 생겨 그렇게 새걸루 척척 내주겠습니까. 흐흐…》

《동무는 어디서 빼앗아입는다는 소리를 들었소?》

《아니, 총두 왜놈들한테서 빼앗아 자기를 무장하지 않습니까?》

《총과 군복은 다르오. 우리 혁명군은 자기식 군복이 따로 있소.》

《?…》

《이제 화라즈라는데 가서 새 혁명군모자랑 군복이랑 다 내주겠소!》

서기활은 눈이 휘둥그래져 그를 쳐다보고 장득범은 기세가 올라 씨근거렸다.

《히야- 화라즈… 거기는 먼가요?》

목단령밑에 이르러 림수산의 소부대는 령길을 따라 밀려내려오는 왜군부대와 조우할번 하였다.

림수산은 대원들을 황급히 은페시키고 자신도 바위뒤에 엎드려 적의 행군종대를 살펴보았다.

놈들은 거의 뛰다싶이 하며 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 그 행군종대에서는 행군속도를 높이려고 악을 쓰는 장교들의 고함소리와 욕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급해맞은 놈들은 무리를 지어 지름길로 쏟아져내리기도 하였다.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실은 군마들은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앞발을 벋디디고 바스라지는 울음소리를 내지르기도 하였다.

돈화에 빨찌산이 나타났다는 급보를 받고 달려들어오는 놈들이 분명하였다.

림수산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제 돈화땅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것이다. …)

적군의 행군종대는 날이 저물 때까지 밀려내려왔다. … 령길은 다시 조용해졌다.

림수산의 소부대는 날이 아주 어두운 다음에야 목단령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소부대는 깊은 밤중에 령마루에 올랐다. 며칠전에 넘어온 바로 그 지점이였다.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었다.

령마루에는 바람이 얼마나 드세게 몰아쳤는지 눈이란 한꼬치 보이지 않고 땅이며 바위돌들이 거멓게 드러나있었다. 령을 넘어갈 때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적병들의 시체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적들이 걷어간것이 분명하였다. 단지 부러진 총탁판이며 탄약통, 깡통 같은것들이 여기저기에 딩굴고있을뿐이였다.

림수산은 신대원들한테 바람을 피하여 령 남쪽 경사면에 붙어 쉬도록 이르고 자신은 령마루에 그냥 서있었다.

세찬 바람에 위장포가 찢어질듯이 펄럭이였다.

그는 이름할수 없는 감회, 아프고 쓰디쓴 추억이 밀려들어 가슴이 뻐근해졌다. 저도 모르게 모자를 벗게 되였다. 머리칼이 흩날렸다.

이 령을 넘어갈 때 겪었던 일들이 아득한 옛일처럼 떠올랐다. 눈보라의 광란, 무시무시한 눈사태, 오중흡련대장과의 마찰… 사령부의 충신인 그는 돌아서라는 충고를 물리치고 끝내 령마루로 치달아올라가 적들을 요정냈다. 원정대의 앞길을 열었다. … 그때 그는 영웅 같았다. 모두가 그렇게 돋보았지.… 그러나 지금은 없다. 언땅속에 묻혀있다. 용감한 군사지휘관도 결국 저렇게 값없이 땅속으로 사라지고마는가.

그는 가슴을 찌르는 아픔과 일종의 허무감을 이길수 없어 바람속에서 왔다갔다 거닐었다. … 아,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한해, 두해가 지나면 그를 잃은 애석한 마음도, 그에 대한 가지가지 추억도 산 사람들의 다난하고 거창한 생활속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것이다. 아, 아,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설사 이 항일전이 승리해도 그 승리자의 영광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껏 누릴것이다. 아, 가엾은 투사, 불우한 동지여, 바로 이 자리에서 희열에 넘쳐 주먹을 높이 쳐들고 웨칠 때 사흘뒤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간이란 자기 운명의 단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란 말인가. … 저 감옥에 가있는 권영벽의 운명을 봐도 안해는 재가하고 아들애는 거지로 돼서 류랑걸식을 하고… 그는 머지않아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질것이다. 아, 얼마나 허무한가. …

차거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헉 하고 느꼈다. 머리칼이 흩날리고 백포자락이 세차게 날리며 다리에 휘감겼다.

그때 동북쪽에서 먼 우뢰소리 같은것이 들려왔다.

우르릉… 림수산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저 멀리 돈화쪽 밤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삼단같은 불기둥이 솟구쳐오르고 자지러지는 총소리들까지 바람결에 실려오는듯싶었다.

그는 추위때문인지 온몸에 전률을 느꼈다.

(저건 쟈신즈쪽이다. 쟈신즈를 치는구나. 어떤 역경속에서 굽힐줄 모르는 저 위대한 신념과 의지는 세상을 진감시키겠지만… 이제 저기선 또 누구들이 오중흡이처럼 쓰러질것인가?)

그는 단숨을 몰아쉬였다. 목안에서 겨불내가 풍겨올랐다.

(오백룡이 어떻게 오중흡이를 대신할수 있는가. …우리 글이나 겨우 뜯어보는 그가… 그 우직한 완력가가 어떻게 련대를 지휘하는가. 7련대가 이전처럼 승승장구한다고 장담할수 있는가?)

그러다가 림수산은 제 생각에 흠칫 놀랐다.

(아니… 내가 이게 무슨 생각인가. …)

그는 소스라쳐 놀라 마음을 가다듬고 행군종대를 힘차게 이끌었다.

그날밤 행군종대는 령을 내린 다음 밀림속을 누벼나가다가 남쪽에서 밀려오는 적군의 행군종대를 자주 만나게 되여 숲의 어스름속으로 숨어들군 하였다.

그때마다 림수산은 저 남쪽하늘밑 화라즈밀영이 이 횡포한 무리들의 칼탕을 맞지 않았는가싶은 불안감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그러면 거기 남아있는 한명찬이며 《무산아재》… 특히 병약한 연미숙, 어느날 밤 슬픔을 못이겨 자기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짓던 그 아련한 존재의 구슬픈 자태가 삼삼히 떠올랐다.

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피곤도 잊고 행군종대를 앞으로 앞으로 이끌었다. 화라즈로, 화라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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