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5

 

그날 밤 대륙을 휩쓰는 눈보라는 자욱한 안개바다의 흐름처럼 원정대의 긴 대오를 가리워주고 부대들의 발자취를 순식간에 묻어주었다.

원정대는 소리없이 삼차구를 에돌아 륙과송쪽으로 돌진하였다.

척후대의 뒤를 따라 몸을 앞으로 숙일사하고 걸음을 다그치던 림수산참모장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떡떡 얼어붙은 속눈섭을 주먹으로 빗씻고는 골짜기며 릉선, 바위들을 둘러보군 하였다. 륙과송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은근히 설레여와서였다.

그는 5. 30폭동의 불길이 일제와 반동군벌의 칼바람속에 꺼져버리고 대지에 피바다가 번져갈 때 적들이 벌린 테로의 광풍을 피하여 이 산간오지 어느 숯구이막에 은신했던적도 있었다. 그는 넉달남짓 세상을 등진 불우한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일하면서 숯가마니에 넣을 나무를 찍으러 어느 골짜기, 어느 릉선이나 타보지 않은데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비감이나 절망, 영탄은 인연이 먼 말들이였다. 애국의 열기와 혁명의 랑만에 가슴이 설설 끓어번져 온몸이 땀과 숯검댕이투성이로 되여 숯가마속으로 드나들고 나무를 메고 산판을 내리면서도 구슬픈 《북간도타령》이 아니라 《인터나쇼날》의 노래가 가슴에 넘쳤다.

밤이면 초막곁에 벌렁 누워 북극성을 쳐다보며 끼로브와 프룬제, 챠빠예브를 생각하였다. 그들과 자기를 비교해보며 빙긋이 웃기도 하였다.

아, 그 시절의 랑만은 어디로 가고 그 기개, 그 기상은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은 풋내기들의 눈치까지 보게 됐단 말인가. 그 시절을 불러오고싶었다. 그 랑만, 그 기개를 되찾고싶었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이 됐는가!)

손상당한 자존심때문에 가슴이 도끼에 찍히운듯 저려들었다.

그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억척스럽게 발걸음을 내짚었다. 단숨을 헉헉 몰아쉬며 활개를 크게 저으면서 걸음을 다그쳤다.

사령관동지께서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으시며 이제 20리쯤 더 가면 륙과송의 불빛이 보일것이라고 하시였다.

림수산은 5. 30폭동직후 여기에 와서 은둔생활을 몇달 한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 그렇소?!》 그이께서는 못내 기뻐하시였다.

《세월이 좀 흘렀지만 여기 지형은 선합니다.》

이튿날 새벽, 날이 희붐하게 밝아오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목적지로부터 15리쯤 떨어진 계선에서 부대들을 이끌고 남쪽골짜기로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림이 무성한 골짜기치기에 숙영지들을 정해주시고는 곧 륙과송에 정찰조를 파견하려고 하시였다.

그때 림수산이 여기 지형에 밝은 자기가 정찰조를 이끌게 해달라고 제기했다. 뜻밖이였지만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이날 낮에 돈화에 갔던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오시여 소박한 농촌녀성의 차림을 한 그대로 사령관동지앞에 나타났다.

《아 정숙동무, 수고했소.》

령관동지께서는 추위에 언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오셨다는것은 봉룡이와 할머니를 만났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서 그냥 돌아올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사령관동지께서는 잘 알고계시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소?》 하고 묻지 않고 《수고했소.》라고 하셨다.

수고했다고 하신 그 인사말에는 또한 혹한속에서 먼길을 무사히 다녀온 김정숙동지를 만나신 기쁨과 안도감이 스며있기도 했다.

륙과송으로 행군해오면서도 그리고 지금 전투준비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권영벽의 아들과 어머니에 대한 아픔이 깊이 박혀있어 그들을 생각하실 때마다 가슴이 찌르는듯 했다.

《빨래집에서 일하는 봉룡이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주신 모포와 솜저고리를 받고 얼마나 목이 메여 우시던지… 할머니는 말하기를 자기는 지금까지 봉룡이 아비를 다시 못 볼 사람으로, 다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고있었는데 아니라고, 장군님의 보살피심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꼭 돌아올것으로 믿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 돈화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시였다.

《음.》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딘가 멀리 권영벽이 갇혀있을 그곳을 응시하시는듯 묵묵히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선 륙과송에서 권영벽동무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립시다.》

지휘관들이 사령관동지를 찾아오는 바람에 그 이야기는 더 하실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림수산이 정찰조를 데리고 무사히 돌아와 사령관동지께 륙과송일대의 지형이며 주민구성과 그 동향, 적정에 대하여 낱낱이 보고하였다.

륙과송은 일본의 군수기업체들이 전쟁확대에 필요한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미친듯이 벌리고있는 산림채벌의 한 거점으로 꾸려져 산간벽지에서는 자그마한 도회지라고도 볼수 있게 번창해졌다.

목재소에는 6백여명의 로동자가 고용되여있다.

아직은 채벌장을 개척하는중이여서 나무는 찍지 않고 통나무들을 운반해나갈 도로들을 닦고있다. 왜놈들은 로동자들한테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그들을 매일 령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 내몰아 마소처럼 부려먹고있다. 지금 로동자들은 불만과 원한에 사무쳐있다.

목재소구역은 6개의 높다란 포대로 삼엄하게 경비되고있다. 중무장한 산림경찰무력이 들어있는 병실둘레에는 통나무울타리를 둘러치고 그안에 가시철조망을 세겹으로 늘여놓았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휘관들을 사령부천막에 부르시고 자신의 전투결심을 발표하기 전에 림수산이 직접 지휘관들에게 적정을 설명하도록 하시였다.

그가 정찰한 내용을 다 말하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지휘관들에게 모를것이 없느냐고 물으시였다.

오중흡련대장이 일어섰다.

《참모장동지…》 하고 나직이 불러놓고는 몇순간 동안을 두었다가 물었다.

《저… 좀더 자상히 알고싶습니다. 병실에서 포대로는 어떻게 가게 되여있습니까?》

참모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아, 그거 말이요? 그건 여태 우리가 흔히 봐온 포대들처럼 밖으로 해서 포대로 들어가게 돼있고 망루우로는 층계나 사다리를 타고오르게 돼있소. 지하통로도 있을수 있소.》

《있을수 있다는건 가정입니까?》

《그렇소.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소. 포대건설에 참가한 로인을 만났는데 지하통로이야기는 없었소.》

《한가지 더 묻겠습니다. 여섯개 포대들의 화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다 기관총들이 배치돼있습니까?》

《화구들이 백두산쪽을 향한 두개 포대에만 기관총이 한정씩 배치돼있소. 나머지들에는 장총을 든 감시병이 서있을뿐이요.》

《포대가 6개인데 기관총이 2정뿐입니까?》

《쌍안경으로 확인한데 의하면 그렇소!》

《혹시 다른 기관총들은 예비로 감춰두지 않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림수산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 포대들앞으로 수많은 대원들을 이끌고 돌격해나가야 할 지휘관인 그로서는 적의 화력세기에 대하여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는것이 리해할만 한 일이였다. 그러나 그의 말투며 더우기는 눈빛에 자신에 대한 의혹과 불신의 그늘이 비껴있는듯싶어 속이 울컥해졌다.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미간을 찌프릴사하고 오중흡의 얼굴을 한순간 똑바로 지켜보는데 사령관동지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정찰자료를 믿자구. 참모장동무가 정찰한거요. … 적의 유생력량으로 보면 기관총이 두정이상 있을수 없는데 혹시 더 있을지도 모르오. 한두번 허위돌격으로 위력정찰해보면 놈들의 화력이 다 드러날거요.》

날이 아주 어두워지자 적의 병실들과 포대들에 대한 기습작전이 시작되였다.

7련대는 경찰대무력을 철저히 소멸하고 그 성과를 확대하여 포대들까지 일거에 점령하기 위하여 적의 병영쪽으로 은밀히 기여들어갔다.

8련대는 경위중대와 함께 로동자들속에 대담하게 들어가 정치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리는 한편 로획물자들을 운반해내오기 위하여 목재소건물들쪽으로 향하였다. 나머지 구분대들은 있을수 있는 적군의 증원을 막기 위하여 이미 서북차와 돈화방향에서 들어오는 도로들에 나가 길목을 차단하고있었다.

7련대와 8련대의 뒤를 따라 사령부도 앞으로 전진하였다.

아직은 적들이 아군의 접근을 감촉하지 못했는지 륙과송일대는 괴괴한 정적속에 묻혀있었다.

거리의 불빛들은 태평스럽게 반짝이고 우뚝 솟은 포대들의 한두개 망루며 화구에서 이따금 희미한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언뜻거릴뿐… 모든것이 어둠속에서 조을고있는듯싶었다.

적들의 병영이며 포대, 목재소건물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사령관동지곁에 엎드려 초긴장속에 어둠속을 내다보고있는 림수산의 가슴은 마냥 후둑후둑 뛰고 목안에 단재가 차는것만 같았다. 이것이 자기 정찰자료를 믿고 벌리는 기습작전이라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그는 만약의 경우 실패하면 어쩌랴싶은 불안감과 조바심에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그가 불이 황황 이는듯 한 눈으로 어둠속을 내다보는데 저 앞쪽 어디서인가 짐승의 멱을 따는듯 한 소리가 터져올랐다.

《으악- 악-》

(보초인가… 어느놈이 밖에 나와 뒤를 보다가?!…)

포대… 하나, 둘, 셋, 넷… 4개의 포대들에서 일시에 번개치듯 불빛이 벙끗거리고 련발사격소리들이 뢰성벽력처럼 야음을 뒤흔들었다.

(아, 기관총이 더 있었구나!)

망루와 화구들로부터 뿜어나오는 불빛에 저 앞쪽 어스름속에서 8련대의 공격서렬이 전진하지 못하고 눈속에 박혀있는것이 언뜻언뜻 바라보였다. 쇠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탄우, 탄우… 여기저기에서 뽀얗게 날아오르는 눈가루, 머리우로 날아가는 총알들의 아츠러운 비명소리, 전률하는 대기…

림수산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먹으로 언땅을 내리치다가 사령관동지를 홱 돌아봤다.

그이께서는 앞쪽만 내다보며 침착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저놈들이 교차사격두 못하는군. 어찌나 당황했는지 과녁도 없이 무턱대고 갈겨대오.》

《아-》 림수산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주먹으로 언땅을 내리쳤다.

사령관동지께서 홱 돌아보시였다.

《참모장- 왜 그러오?-》

《제가 정찰을… 정찰을… 기관총이 더 있는걸 몰랐습니다!》

《괜찮아… 8련대, 저 친구들이 왜 엎드려만 있어? 대응사격으로 포대화력을 제압하라- 파괴조를 우회시켜 익측과 후면으로 포대벽에 붙으라. 화구들에 수류탄- 수류탄을- 에익, 기관총을 날려보내야지-》

《제가 8련대로…》 림수산은 이런 소리만 남기고 몸을 앞으로 날렸다.

등뒤에서 돌아서라는 그이의 부름소리가 울렸으나 림수산은 8련대쪽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언땅을 걷어차며 뛰여일어났는지, 어떻게 탄우속을 뚫고 달려나가는지 몰랐다. 그저 후끈한 화기와 비발쳐오는 탄우가 태풍처럼 울부짖으며 귀전을 스치고 시퍼런 번개불이 눈을 후려칠뿐… 그는 저도 모를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가다가 쇠몽둥이같은것이 팔을 들이치는 바람에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기류의 회오리속에 든듯한 환각과 함께 핑그르르 돌아 눈속에 구겨박혔다.

코와 입으로 확 풍겨나오는 화약냄새, 팔… 왼팔로 뜨끈뜨끈한것이 흘러내리는 감각… 비로소 자기가 부상당했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기관총의 련발사격소리들이 가슴을 찢었다.

그는 화끈거리는 팔을 움켜잡고 몸부림치다가 후닥닥 뛰쳐일어나 정신없이 앞으로 뛰여나갔다.

간신히 8련대에 이른 그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하고는 온넋을 휘저어놓는듯 한 어지럼증에 세상이 돌아가며 눈앞이 아찔해 푹 꼬꾸라졌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눈을 뜨니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사위는 고요했다.

팔이 끊어져나가는듯 저려들어 황황히 만져보니 누구인가 지혈을 하고 붕대까지 감아준것이 알렸다.

견딜수 없이 갈증이 나서 눈을 더듬더듬 움켜잡아 입에 가져가는데 누구인가 그 손을 꽉 잡았다.

《안됩니다. 피가 더 나옵니다. 물이 당겨두 참아야 하우다. …》

웬 사람의 근심스러운 얼굴이 내려다보며 속삭이였다.

림수산은 그제야 이전 전령병 마영복이, 그 어리무던한 친구를 알아보았으며 자기가 후미진 곳에 누워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요. 내가 왜 이런데 누워있소?》

《군의관이랑 박덕산정치위원이랑 저보구 안전처로 업어가라구 해서… 생각이 안 납니까? 팔을 부상당했습니다. 철알이 살거죽만 꿰구나갔수다. 에- 다행이오다.》

《음…》 그는 신음소리를 내였다.

《전투가 끝났습니다. 놈들을 다 요정내구 목재소로동자들두 다 해방했수다. 모두 달려나와 만세를 부르구 얼싸안구 울고 웃으며 야단이우다. 지금은 우리를 도와 전리품들을 나르구있수다. …》

림수산은 성한쪽 손으로 언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안깐힘을 썼다.

《나는… 나는… 8련대로 가봐야 해. … 영복이, 마동무, 좀 일으켜 달라구!》

이윽고 옛 전령병은 참모장을 둘쳐업고 목재소건물들쪽으로 향하였다. 마영복은 상한 팔에 울림이 갈세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갔다.

전리품들을 메고 진 대원들과 로동자들이 옆으로 지나가며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말들을 주고받았다.

《히야, 꿈이면 이런 꿈이 어디 있겠소. 어제까지만 해두 저-기 두만강쪽에서 싸운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오늘 밤에 이렇게 우리한테 오시다니 이거야 정말… 이번에도 장군님께서 축지법을 쓰시였겠지요?》

《암 그렇지 않구! 축지법을 쓰시여 저 목단령산줄기두 훨-훨- 날아넘었소!》

《헛허허…》

마영복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부상자를 조심스럽게 추슬러업었다.

《참모장동지, 제 목을 꽉… 꽉 끌어안으십시오. 저는 일없수다. 자꾸 내려가서…》

《영복이, 내리자구. 혼자 걸어갈수 있어.》

《안됩니다. 그러다가 무엇에 걸려 넘어지면 어쩝니까?》

그리고는 참모장의 허벅다리를 더 꽉 그러안는다.

《영복이…》

《챠- 이거 속상하게 이러지 마시오다.》

《남들이 보면 팔을 부상당했는데 업혀간다구 웃지 않겠나.》

《우리한테 참모장동지가 둘입니까. 하나밖에 없는 참모장인데 누가 그러겠습니까?》

그 지성과 진심에 가슴이 뻐근해져 더 말을 못하였다.

마영복은 여전히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갔다.

열댓걸음 저쪽에서 로획물자퉁구리 같은것을 둘러멘 서너명의 그림자가 헐썩거리며 지나가면서 침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결에 들려왔다.

《야- 정말 안됐어. … 원통해. …》

《청천벽력이라는게 이런게지. …》

림수산은 영복의 잔등을 떠밀어버리고 땅에 내려섰다. 지나가는 대원들을 불러세웠다.

참모장은 그들한테로 다가갔다.

《이자 뭐라고 했소?》

그 대원들은 고개를 수굿하고 대답을 못했다.

《원통하다는건… 청천벽력이란건 무슨 소리요? 누가 어떻게 됐소? 엉? 》하고 그는 다급히 따져물었다.

한 대원이 고개를 숙인채 잠긴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7련대장동지가… 련대장동지가 그렇게 됐습니다. …》

《누구라구? 엉?》

림수산은 숨이 멎는듯 했다.

(아니… 아니… 그럴수 없다! 얼마전에 나한테 정찰결과를 놓고 따져묻던 그가 벌써 이 세상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허튼 소문이다. 어디 부상을 당해 쓰러졌겠지. …)

그는 사실인가 아닌가 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는 숨도 쉬지 못할것 같았다. 머리나 가슴에 된타격을 받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다가 저쪽 어스름속에 희미한 륜곽을 드러내고있는 포대를 향해 허둥허둥 걸어갔다. 그러다가 달려와서 부축하려는 마영복의 손을 쳐버리면서 나를 뭘로 만들자는건가고 소리쳤다.

포대곁을 지나 적들의 병영자리로 들어가니 한 병실모퉁이에 여러명의 대원들이 몰켜서서 담배들을 태우고있었다.

림수산은 오중흡련대장이 전사했다는것이 사실인가고 그들에게 물었다.

나이지숙한 대원이 사실이라고 대답하고는 전투의 전말과 오중흡련대장이 전사하게 된 경위를 말하였다.

…8련대가 집중사격으로 포대들의 화력을 제압하고있을 때 7련대는 통나무울타리로 은밀히 접근하여 거기에 한사람이 드나들만 한 개구멍이 나있다는것을 발견했다.

오중흡련대장은 그 구멍으로 습격조부터 들이밀었다.

울타리안에 기여든 습격조원들은 세겹으로 친 철조망을 극복하다가 거기에 매달린 통졸임통을 잘못 건드려 댕그랑 하는 소리를 내였다.

보초병의 고함소리, 총소리… 그 운명적인 순간 오중흡련대장은 련대를 돌격에로 불러일으켰다.

질풍같이 달려들어가는 대원들이 보초와 적병들의 저항을 무찌르며 병실로 뛰여들었을 때 방안은 텅 비여있었다. 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수 없었다.

박주호가 병실바닥에서 지하통로로 들어가는 널문을 발견했다.

오중흡련대장은 적병들이 덮던 이불을 그 널문우에 쌓고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불길… 연기… 널문이 타서 구멍이 뚫리자 연기와 불길이 황- 소리를 지르며 지하통로로 밀려들어갔다.

그러자 7련대 나어린 나팔수는 병영을 완전히 점령한것으로 알고 승리자의 희열에 넘쳐 창문밖으로 뛰여나가 사령부쪽을 향해 전투가 끝났다는 신호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하통로에 연기가 꽉 차서 질식하게 된 적병들이 단말마적으로 아우성치며 총들을 마구 내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일제히 구석쪽으로 피해 엎드렸다. 오중흡련대장도 엎드렸으나 랑랑하게 울려오는 나팔소리를 듣고 뛰여일어나 열려진 창문쪽으로 달려가며 나팔을 불지 말라고 소리치다가 여러발의 총탄을 잔등에 맞고 비틀거렸다. 여기가 아직 위험구역이라고 생각했던 오중흡은 사령관동지께서 자기네가 있는 위험한 병영쪽으로 나오시는것을 막으려고 하다가 종시 그렇게 된것이다.

박주호가 그를 안아 구석쪽에 가서 눕혔을 때에도 련대장의 입에서는 불지 말라… 불지 말라…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새여나오고 그때마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

나이지숙한 대원은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짓고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어- 참 기막혀서… 이런 분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놈들이 과녁으로 삼고 조준해서 쏜것도 아닌데… 급해맞아 란사한 탄알에…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 뛰여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아, 나팔소리를 멈추려다가… 아, 아하-》

그 대원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후들후들 떨며 공연히 군복가슴이며 옷깃을 쥐여뜯듯이 움켜잡았다.

《엑- 기가 막혀서… 저 함바의 아래목에 업어다가 눕혀놨는데 어째 그런지 온기가… 체온이 식지 않습니다. 서맥이 뛰는게 알렸습니다. 뛰다가는 멎고… 그런 일이 서너번이나 있었습니다. 휴- 가기 싫은 길을 가자니 자꾸 돌아서게 되는지… 뒤일이… 사령관동지 안녕이 걱정이 돼서 그러는지… 으흐흑…》

그는 고개를 푹 떨구며 오혈을 터뜨렸다.

림수산이도 눈앞이 탁 흐려지고 코마루가 찡 저려왔다.

《동무들은 여기서 뭘하오?》

누구인가 황급히 달려와서 이렇게 소리쳤다. 7리밖의 방차대에 나가 《위만군》의 지원무력을 소탕하신 사령관동지께서 뒤늦게 비보를 듣고 오중흡련대장한테로 달려오셨다는것이다.

대원들은 함바쪽으로 우르르 밀려갔다. 림수산이도 나이지숙한 대원에게 부축되여 따라갔다.

함바뜨락에는 벌써 수많은 유격대원들과 림산로동자들이 빼곡이 서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떨구고 숙연하게 서있었다.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문이 열려진 방안의 한 귀퉁이가 보였다. 가물거리는 등불의 조화인지, 누가 장의초불이라도 켜놓았는지 저녁노을처럼 불그무레한 빛이 방안에 흐르는데 시신을 덮은 붉은기자락밑으로 단단하게 생긴 발끝이 삐죽 내민것이 언뜻 보였다.

갑자기 공기가 전률하는듯싶더니 나직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비통한 음성이 들려왔다.

《…련대장동무, 오중흡동무, 중흡이, 아직도 갈길이 먼데 나만 남기고… 우리만 두고 이렇게 가면 어찌는가. … 아,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아- 아, 이 일을 어찌는가, 야- 중흡아-》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는 소리, 울음소리, 무엇인가 흔들어대는 소리, 피를 내뿜는듯 한 부르짖음소리들이 중구난방으로 터져올랐다.

《아하하-》

《아이쿠-》

《오중흡이-》

《련대장동지- 한번만, 한번만 눈을 뜨오, 장군님이 오셨소- 곁에 계시오-》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구- 중흡동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중흡이-》

《사령관동지- 저 포로놈새끼들을 다 쏴제낍시다- 허락해- 주- 탕을… 탕을 쳐버리겠수다-》

《아-하-》

뜨락의 사람들도 술렁대며 눈물을 뿌리였다.

절통한 감정과 쓰디쓴 비감이 방안과 뜨락을 휩쓰는 가운데 누가 먼저 떼였는지 《빨찌산추도가》의 석쉼한 노래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가슴 쥐고 나무밑에 쓰러졌다 혁명군

      가슴에서 흐르는 피 푸른 들을 적신다

      …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림수산은 갑자기 상처가 못 견디게 저려났으나 웬일인지 상한 팔에 손을 가져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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