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

 

인생의 길에 우연이라는것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또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연이란 다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펀펀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의 함정에 처넣기도 한다. 불행한 사람을 행복의 절정에 올려세우기도 하고 행복한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기도 한다. 원쑤들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게도 하고 영영 헤여졌던 사람들을 만나게도 한다. …

새벽녘에 림수산이 이끄는 식량공작대는 열대여섯채의 농가들이 모여앉은 이름모를 산간마을로 찾아들어가려고 산비탈을 내리다가 반나마 허물어져내린 산전막을 발견하였다.

험악한 세월의 풍운에 황페해진 산촌풍경에서 그런것은 흔히 눈에 띄는것이여서 무심히 지나치려다가 척후에 선 오백룡이 흠칫 놀라며 멎어서는 바람에 뒤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그 산전막의 고삭아 내려앉은 지붕에서 희유스름한 김 같은것이 보일듯말듯 피여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던것이다. 인적기는 없었다. 헐어빠진 산전막은 괴괴한 정적속에 묻혀있었다.

림수산은 그안에 《위만경찰》이나 《자위단》 몇놈이 새벽잠에 노그라떨어져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놈들은 어느 현에서나 외진 산간마을 한두개씩은 집단부락에 몰아넣지 않고 남겨두고는 은밀히 망을 보다가 산에서 굶주린 유격대가 찾아들면 벼락같이 덮치였던것이다.

림수산은 오백룡이더러 그안에 들어가보라고 손짓했다.

일본군복으로 변장한 오백룡은 싸창을 빼들고 살금살금 산전막으로 접근하였다.

이윽고 산전막의 바깥벽에 붙어선 그는 한쪽으로 쏠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다가 저으기 놀랐다. 어스름속에서 처음 눈에 띈것은 불무지우에 놓인 찌그러진 양재기, 거기서 문문 피여오르는 허연 김… 그리고 쌔근쌔근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백룡은 인차 전지불을 켜고 안을 두루 비쳐보았다. 거멓게 썪은 나무통들, 흙덩어리들, 돌멩이들과 깨여진 사발쪼각, 허리부러진 독… 불무지 저쪽에 웬 애녀석이 헐어빠진 가마니짝을 덮고 번듯이 누워 태평스럽게 코를 골고있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 유심히 살펴보니 더벅머리 애녀석은 감때사납게 생긴 얼굴인데 열살도 돼보이지 않았다. 가마니짝밑으로 삐죽 내민 막돌같이 새까만 손에는 먹다남은 감자가 쥐여있고 발에는 어디서 훔쳐 신은것인지 새 흑곤색솜신이 신겨있었다. 찌그러진 양재기안에서 설설 끓는 물속에서는 어디서 잡은것인지 새빨갛게 익은 가재 네댓마리가 떠다니고있었다.

류랑걸식의 길을 걸어온 거지아이가 틀림없었다.

오백룡은 가슴이 저려나 먼지투성이의 껄껄한 머리칼을 쓸어만져주다가 어깨를 조용히 흔들어봤다.

《얘… 얘… 이 녀석아…》

사내애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전지불이 눈을 찔러서인지 얼굴을 사납게 찌프리며 한손으로 그 불빛을 막았다.

《얘… 이 녀석, 넌 어디 사는 얘야, 누구야?》

다음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아이는 발길질로 오백룡을 냅다 차고 뛰여일어나 밖으로 내뛰였다. 오백룡은 몸을 날려 그놈을 덮치여 번쩍 안아들었다. 녀석은 억센 팔뚝에서 빠져나가려고 뻐드럭거리다가 그의 팔을 꽉 깨물고 영악한 산짐승새끼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아-악-》

잡관목덤불속에 숨어있던 림수산은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솟구쳐 일어났다. 여느 대원들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산전막에서 작달막한 그림자가 튀여나와 어스름이 서려있는 수림쪽으로 날듯이 뛰여올라가고 오백룡이 뒤쫓아가며 서라, 이녀석아, 서라, 서라 하고 소리쳤다.

애녀석은 림수산과 대원들의 열댓걸음앞을 바람처럼 달려지나 수림의 어스름속으로 뛰여들었다.

림수산이 오백룡이한테 뛰여나갔다.

《무슨 일이요? 웬 놈이요?》

《거지애요. 너무 불쌍해서 내의라도 벗어주자구 자는걸 깨웠는데 내 팔을 무는게 아니요. 엑- 고약한 놈…》

《동무 그 왜놈군복에 놀란게 아니요?》

《아-참…》

《작아도 반일감정이 대단한 애 같소. 찾아보기요.》

《청서처럼 휙휙 나는 놈이요. 숲에 들어갔는데 우리한테 잡힐게 뭐요.》

《허-》

이때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나 돌아보니 웬 장정의 그림자가 헐썩거리며 올라오더니 산전막안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그 그림자는 도로 나와 산전막둘레를 정신없이 돌아보는가 하면 그 무슨 충격에 망연자실해버린듯 수림쪽을 멍하니 바라보며 헛소리 같은 말을 웅얼거리였다.

림수산이 이상한 예감이 들어 옹크리고앉아 자세히 여겨보니 그 그림자는 장정이 아니였다. 기골이 웬만큼 장대한 축인 로파였다. 방금전에 도망친 그 거지아이를 찾아온것 같았다. 사내아이는 어찌하여 거지로 되였으며 로파는 저 아이와 어떤 관계인가.… 림수산은 동정심이 북받쳐 로파한테로 다가가 누구를 찾느냐고, 한 열살쯤 된 아이가 아닌가고 물었다. (오백룡은 자기 군복이 또다시 험악한 오해를 빚어낼가봐 대원들의 뒤쪽에 돌아앉아있었다. )

할머니는 자기앞에 불쑥 나타난 귀인을 빤히 여겨보며 손자를 찾는다, 그 애는 고생을 많이 해서 열살이상으로 보일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다가 화닥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 이게 수산이가 아닌가. 엉?!》

그 순간 림수산이도 권영벽의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그는 왈칵 다가서며 나무등걸처럼 꽛꽛한 로파를 꽉 그러안았다. 권영벽의 어머니는 쌓이고쌓인 설음이 터져올라 소리를 내여 끅끅 느끼며 울었다.

《수산이 이 사람아, 여보게… 우리 집안은 다… 다 망했어.… 봉룡이 애비는 왜놈들한테… 그 악귀들한테 잡혔어. 이제 목을 친다는구나. 오찰이란걸 해서 각을 떠버린다는 소문두 돌아. 아이구, 원통해라- 임자두 소식을 들었겠지? 아이구…》

림수산은 너무도 놀라운 상봉이고 너무도 비참한 어머니여서 달래지도 못하였다. 자기를 아들로 여기고 마음껏 설음을 터치라고 잠자코 있었다.

《…수남이가 왜놈들한테 잡혀간 후 며느리가 불쌍해서 내가 친정으로 떠밀어보냈네. 거기서 어떤 뚜쟁이년 꾀임수에 들어 재가했네. 그런데 글쎄 손자녀석이 이 할미를 계속 찾았다는게 아니겠나. 며늘애는 손자애를 끔찍이 사랑해서 품고있고싶어 낮이나 밤이나 할마이를 찾는 그 어린것한테 할마이랑 다 죽었다고 꾸며댔어. 금년가을에 애가 그 집에서 아주 도망쳐 이 돈화땅에서 류랑걸식을 하며 헤맨다는 소문을 들었네. 가슴에서 불이 일어 찾아 떠났어. 두달동안 돈화땅을 헤매다가 오늘 새벽 저 아래마을에서 이 산전막에서 거지아이를 봤다는 소리를 듣구 달려왔어. …》

어느덧 날이 희뜩 밝았다.

림수산은 대원들과 함께 할머니를 도와 권영벽이 남긴 씨앗을 찾아 수림속을 샅샅이 뒤지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손자를 찾는 할머니의 애절한 부르짖음소리만 멎을줄 모르고 수림속에 메아리쳤다.

《봉-룡-아-》

《내- 손자-야아-》

림수산이 그 할머니와 함께 가지들을 넓게 펼친 거목밑에 이르러 두리번거리다가 봉룡이를 목청껏 소리쳐 부르는데 문득 하늘에서 울음섞인 부르짖음소리가 터졌다.

《할마-에-》

놀라서 쳐다보니 대들보같은 나무가지에 아까 본 그 애녀석이 납작 붙어서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무가지의 끝초리들이 설레이고 대원들이 뛰여왔다.

할머니는 손자한테 어서 내려오라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얘야, 봉룡아- 이 녀석아- 어서… 어서 내려오너라. 겁내지 말아라. 이분들은 다 네 아버지하구 같이 싸운분들이다. …》

봉룡이는 나무에서 기여내려왔다.

할머니는 거지행색의 손자를 붙안고 구슬피 울며 절규하였다.

《어느놈이 권영벽이 아들을… 혁명자 아들을… 내 손자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어디 보자! 이 쪽발이놈들아. 아이쿠, 원통해라. 어째 하늘에선 천벌이 내리지 않는고?!…》

림수산의 눈에 피눈물이 끓고 오백룡의 부르쥔 두주먹이 우들우들 떨렸다.

 

×

 

림수산과 오백룡은 예정보다 하루 늦어 수많은 식량을 구해가지고 사령부로 돌아왔다. 인민들의 지원도 받고 중국인지주가 《위만군》부대에 《례물》로 보내는 쌀을 실은 마차들을 기습하여 로획한것들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못내 기뻐 그 쌀포대들을 열고 옥백미며 수수쌀을 한줌 또 한줌 꺼내여 만져도 보고 씹어도 보시면서 림수산과 오백룡에게 이것이면 부대들의 전력을 회복할수 있겠다, 수고했다고 거듭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런데 림수산과 오백룡은 그런 치하에 얼굴이 상기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속에 그늘이 비껴있는 기색들이였다. 특히 오백룡은… 여느때 사령관이 그렇게 기뻐하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노상 벙글거리며 말이 많았을 그는 얼굴이 거멓게 질려 참모장뒤에 서있기만 하였다.

그이께서는 식량공작중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것을 직감하고 그들한테 천막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시였다.

림수산과 오백룡이로부터 권영벽의 아들과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 그의 안해가 재가한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주먹으로 통나무탁자를 탕 내리치며 뛰여일어나시였다.

《그게 정말인가?!》

거치른 노성이 천막안에 메아리쳤다.

두사람을 둘러보는 그이의 안광에 시퍼런 섬광이 번뜩이는듯싶었다.

림수산이 노성의 폭발에 주눅이 든듯 떠듬거리며 말씀드렸다.

《그리고… 권동무 어머니는 손자를 찾아 한달이상이나 헤매느라고 로자를 다 써서… 그래서 돈화로 나가 거기 역전거리 반점이나 빨래집에서 그릇닦기, 삯빨래랑 해서 차표값이나 벌면… 그때 연길로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뭐나 줄것이지. 동무들 몸에 팔면 차비가 될만 한게 그렇게 없었소?》

그 순간 림수산은 얼결에 팔목시계에 손이 갔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로획한 쌀이라도 줬더라면… 그걸 팔면 차비가 나올텐데, 에익?》 하고 오백룡이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쳤다.

림수산은 자책감에 잠겨 나직이 말씀드렸다.

《권동무 어머니와 그 애 정상을 보니 분통만 터져오르고… 머리가 돌지 않아 그렇게 됐습니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쩌릿하게 저려들어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좌우간… 수고했소. 가서 좀 쉬오.》

그날 밤 사령관동지께서는 진정 못하시고 천막안을 거니시는가 하면 밖에 나가 바람속을 거닐고 다시 천막에 들어와 걸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아, 권영벽이… 언제 그를 처음으로 알았던가? 그래그래, 요영구에서였지. 그때부터 장백현 17도구에서 체포될 때까지… 그리고 혜산과 함흥에서 그토록 악형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혁명가의 절개를 꿋꿋이 지켜오는 동무인가.

그는 티끌만 한 사심도 없이 조국광복위업에 자기를 깡그리 바쳐온 애국자이다. 그는 자기 개인의 안락이나 공명과 출세도 모르고… 위선과 허위, 가식을 멸시하고 오직 혁명만을 알고 혁명에 진정을 바친 참사람, 참된 혁명가이다. 김혁이나 차광수와 같은 혁명가이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나를 지도자로 받들고 내가 하라는대로 투쟁하고 생활한 동무이다. 그는 나를 령도자로 받들어준 하나의 기둥이다. 내 뜻에서 한치도 어김이 없이 투쟁해온 혁명가이다. 한데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무엇을?… 무엇을?… 언제한번 단둘이 마주앉아 음식도 나누며 따뜻한 말을 주고받은 일이 있었던가. 언제나 사령관과 선전과장의 공식적인 관계뿐이였다. 다른 동무들은 그렇게 보살펴주면서 그한테만은 왜 그랬던가. 그가 그런것을 바라지 않는… 령도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으려고 마음 쓰지 않는… 자각성과 지성이 높은 혁명가라고 믿었기때문이였는가.…

그러면서 가슴아프게 돌이켜지는 일이 있었다. 그게 아마 장백지구로 떠나보내던 날이지.…

권영벽이 유격대로 떠나오며 자기 안해한테 한 말, 다시 돌아 못 올수 있는 몸이니 다른데로 재가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 처사가 너무 매정하지 않는가고 비판처럼, 나무람처럼 자신께서 하신 말씀… 그 말이 얼마나 가슴쓰리게 돌이켜지는가. 그것이 바로 혁명가의 신념에서 나온 말이였음이 이제야 뚜렷해지는것만 같았다. 그다음은 밀영에서  리제순과 박달을 만나던 때 일 …아, 잊지 못할 그날, 권영벽은 나를 만난 리제순과 박달을 내곁에 앉히고 자기는 유축으로 좀 떨어져앉았다. 그리고는 될수록 그들이 나하고 많이 말할수 있도록 여러모로 마음을 쓴다는것이 알렸어. 권영벽이는 그런 사람이였지. 그날 권영벽이와 따로 만나 할 얘기도 있었고 식사도 같이하고싶어 군수처와 정숙동무한테 특별히 지시했는데 적정이 생기고 전투가 붙어 그러지 못했어. 손도 뜨겁게 잡아주지 못하고 헤여졌지.…

그때 정숙동무도 얼마나 서운해하였던가.…

이렇듯 천막안에서 지나간 가슴아픈 일들을 돌이켜보고계시는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순간에 와야 할 그가 온것만 같아 몹시 반가우시였다. 두손을 앞으로 모아잡고 조용히 서계시는 김정숙동지의 고뇌어린 표정을 일별하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권영벽을 생각하고있었다는것과 그래서 찾아왔다는것을 대뜸 짐작하시였다.

《사령관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직이, 그러나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께서 무엇때문에 천막밖을 거닐기도 하시고 또 천막안에 들어오시여서도 진정하지 못하시는가를 알고계시였다. 그래서 사령관동지의 괴로우신 심정을 함께 나누고 위로해드리시려는것이였다.

두분의 마음은 한곬으로 흐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런 때 김정숙동지께서 찾아와준것이 더없이 고마우시였고 마음에 의지가 되시였다.

그리하여 속에 안고 모대기던 괴로움을 김정숙동지께 터쳐놓으시였다.

《정숙동무, 내가 어떻게 마음쓰지 않을수 있겠소? …나는 방금 권영벽동무와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일을 돌이켜보고있었소. 그것이… 그것이 마지막 작별로 될줄 알았다면… 아무리 전투가 붙고 정황이 위급했다 해도 그때 그를 그저 그렇게 보내지 않는건데! 그는 참으로 혁명에 충실한 동무요. 그런데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아무것도 준것이 없소, 아무것도… 그저 믿음만 주었을뿐이지.》

《사령관동지, 저희들은 사령관동지의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것은 더 바라지 않습니다. 권영벽동지나 리제순, 박달동지들도 그런 믿음을 안고 옥중에서 싸울것입니다.》

김정숙동지의 눈에 물기가 핑 돌았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시는듯 주먹으로 탁자를 꽉 내려누르며 웨치다싶이 말씀하시였다.

《어쩌면 좋소. 응, 정숙동무? 권영벽의 아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의 아들이자 우리모두의 아들이 아닌가. 저런 참담한 운명을 보고도 모른다고 그냥 지나친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 동지이고 인간이겠는가! 가슴에 피가 뛰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가.》

김정숙동지께서도 더 참고 견딜수 없으시여 한걸음 다가서시며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 오늘밤중으로 봉룡이한테 입힐 솜옷을 한벌 짓겠습니다.

그리고 래일 제가 돈화역전거리에 가서 반점이나 빨래집들을 다 뒤져 봉룡이 할머니를 찾겠습니다. 돌아갈 차표값을 벌려고 그런데서 삯일을 하겠다고 했다니 찾을수 있을겁니다.

그들을 꼭 찾아 솜옷도 주고 려비로 쓸 돈도 주겠습니다. 저에게 마침 돈이 좀 있는데 녀대원들도 보태겠다고 했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그이께서는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고맙소. 정숙동무! 고맙소.…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만이 권영벽의 복수를… 리제순, 박달, 지태환동무들의 복수를 백배천배로 하는 길이요! … 정숙동무가 나를 대신해서 래일 봉룡이를 만나러 가오. 우리는 행군을 계속하겠소.》

이튿날 아침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따라 모든 부대들에서는 정치위원들과 정치지도원들이 출발에 앞서 권영벽의 복수를 위하여, 옥중에서 싸우는 동지들의 복수를 위하여 행군과 전투에서 용기백배해 왜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히자는 내용으로 일제히 집체담화를 벌리였다.

그때 사령부천막안에서는 사령관동지께서 김정숙동지가 가져온 봉룡이의 작고 탐탁한 솜옷을 살펴보고계시였다.

《밤새 수고많았소. 잘 만들었소. 그 어린게 이걸 입으면 한결 추위를 덜 타겠지.》

그이께서는 솜옷을 보자기에 차곡차곡 싸시는 김정숙동지를 이윽토록 보시며 무엇인가 더 보내줄것이 없겠는지 두루 궁리하셨으나 손에 쥐신것이 당장은 없었다.

천막안을 살펴보니 자신께서 덮고 주무시는 모포가 눈에 띄였다.

《정숙동무, 이 모포도 가져가서 권영벽동무의 어머니가 덮도록 해주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쓰시는 모포를…》

《좀 헐었소.》

《저에게 좀 나은것이 있습니다.》

《아니, 내가 덮던걸 보내주고싶어 그러오. 어머니에게 내 모포를 덮어드리고싶단 말이요.》

김정숙동지의 눈굽에 물기가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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