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밀림의 바다가 음울하게 신음소리를 내며 설레였다.

트레트레 밀려드는 시커먼 구름장들이 날아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는데 어느덧 그밑, 무한대한 재빛공간에 수억만의 흰 반점들이 아물거리며 흩날렸다.

이해의 첫눈이였다.

아, 첫눈… 아무리 가난이 서리고 불행이 겹쳐들어도 향촌의 첫눈은 밭에 나가 딩굴며 돌아치는 강아지들의 짖음소리, 아이들의 《야- 눈이 온다-》 하는 떠들썩한 환성속에 내리건만 아이도 강아지도 없는 여기 빨찌산숙영지의 첫눈은 침묵과 고요속에 소리없이 내리였다.

빨찌산의 첫눈, 그것은 계절의 첫 위협이고 모진 시련의 첫 예고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깨에 외투를 걸치고 수림속을 지나시며 시름겨운 안색으로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흩날려내리는 하늘을 이윽토록 쳐다보시다가 숙영지의 귀틀막들이며 천막들을 둘러보시였다.

첫눈이 온다고 기뻐 뛰여다니는 대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진것인가. 아니다, 그런것도 아니다. 빨찌산만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을것이다. 무성한 푸른 숲에 락엽이 다 지고 산릉선과 계곡들에 빙설이 뒤덮이면 빨찌산은 행군하기도 은페하기도 싸우기도 살기도 몇갑절로 어려워졌다. 왜놈들은 겨울이 오면 대대적인 《토벌》공세를 벌리였다. 겨울은 적들의 계절이고 봄, 여름, 가을은 빨찌산의 계절이였다. 항일전의 큰 전투, 큰 승리는 거의다 푸른 숲이 무성한 계절 봄, 여름, 가을에 있었고 왜놈들의 대대적인 《토벌》공세는 례외없이 푸른 숲의 보호가 없는 빙설의 계절 겨울에 있었다. 나어린 대원들과 녀대원들은 겨울은 왜놈들편으로, 봄, 여름, 가을은 빨찌산편으로 생각하는데 습관되여있었으며 적의 《토벌》을 예감하는것이였다. 하여 첫눈이 내리는 그날도 모두 마음속의 탕개를 은근히 조이며 나무도 패고 총소제도 해놓고 신발도 기웠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 첫눈을 맞으며 한참 서계시다가 7련대쪽으로 걸음을 옮겨가시는데 오른쪽으로 가지를 친 8련대골안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나고 소년중대출신의 한 나어린 대원이 맨머리바람으로 정신없이 달려나오다가 그이의 앞에 뚝 멎어섰다.

기겁한 얼굴이다.

《왜 그러나?》

장군님, 쫄라병이 터졌습니다!》

《뭐?!》

그이께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중대 신동무가… 신재영이 발광합니다.》

꼬마는 울먹이였다.

장군님!…

《그런데 어딜 가?》

《군의관을 데려오라구 해서…》

《방금전에 군수처에 있었다. 빨리 가봐라!》

천막안은 환자의 앓음소리로 가득찼다.

몸매가 우람진 정치위원 박덕산이 모포로 감싼 환자를 가로타고앉아 그의 두어깨를 기운껏 누르고 중대장이며 대원들은 팔다리에 달라붙어 꾹꾹 눌러주는가 하면 발바닥이나 아래다리, 손, 가슴을 열이 나게 넋없이 비벼대고있었다.

얼굴이 시퍼래지고 귀밑이며 목에 닭의 살이 눈에 띄게 내돋은 신재영은 입을 딱딱 벌리며 황소눈을 디룩거리는가 하면 화들화들 떨다가 몸통을 들썩거리며 소리소리 내질렀다.

《더- 더- 눌러 주오- 아이쿠- 팔이 까드라진다- 다리가- 다리가- 내 - 죽지 않으니- 누구- 가슴에 더 올라 앉소- 다리에 - 다리에두- 아이쿠- 오한이야-》

그가 용을 쓸 때마다 바위같은 박덕산의 몸도 들썩거리고 팔다리에 붙은 대원들은 물론 둘러선 대원들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더 덮어주자고 모포며 외투를 들고 접어드는가 하면 따끈한 숭늉을 먹어야 한다며 물을 빨리 끓이라고 떠들었다.

박덕산은 환자의 두어깨를 누른채 욕설을 퍼부었다.

《야, 재영이. 보라, 아무거나 푹푹 먹을것이지 음식을 가리더니 싸다, 싸!》

《내가… 언제… 음식을 가렸소? 무슨 량반이라구?》

《뭐? 야, 재영이!…》

《아유- 떨린다- 비판은 후에 하구 누르기나 하우다-》

《넨장, 입은 살아서… 락엽이랑 푹신하게 깔구 잘것이지 언땅우에 그냥 누워자니까 이 지경이 됐지?!…》

헐어빠진 모포를 안은 한 대원이 출입문가에 사령관동지께서 서계심을 알아보고 놀라며 무엇이라고 소리쳤는지 박덕산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마디 말씀도 없이 환자한테로 다가가 그의 불덩이같은 이마를 짚어보고 다리를 쓸어만지고 꼬부라든 손가락들을 입김으로 녹이며 펴기 시작하시였다.

환자는 요동을 멈추고 다소 진정되는것 같더니 눈을 꾹 내리감고 쥐여짜는듯 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이윽고 출입문이 벌컥 열리고 어린 대원이 뛰여들어와 박덕산정치위원에게 보고했다, 군의관이 7련대에 쫄라병환자가 두명이나 발생하여 거기로 가서 데려오지 못했노라고…

그이께서는 눈앞이 어둑해지시였다. 이러다가는 이 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하지 않겠는가, 부대들이 전투력을 완전히 잃지 않겠는가?…

사령관동지께서는 7련대로 급히 내려가시였다. …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사령부천막에서는 그날밤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등불곁에 앉아계시였다.

쫄라병은 이 세상 어느 의학백과전서에도 올라있지 않은 기이하고 무서운 질병이다.

갑자기 고열이 나고 허리가 활등처럼 휘여들며 팔다리가 까드라들어 인간의 육신이 또아리처럼 되여버리는가 하면 때로는 각혈도 하다가 숨지는 병이였다. 이때까지 찾아낸 치유방법이란 몸을 덥히며 영양을 충분히 보장하는것외에 해열제, 진정제, 강심제를 쓰고 인삼, 록용과 같은 보혈강장제를 달여먹이는것이였다. 사망률은 그닥 높지 않으나 한번 걸리면 회복이 빠르지 않고 치유되지 못하면 불구로 되여 전투력을 완전히 잃게 되므로 누구나 제일 무서워하는 질병이였다.

처음에 군의관들은 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기때문에 세균성이나 비루스성 전염병으로 오판하였다. 4~5년 관찰하고나서야 혹한과 기아, 과로가 병인이며 그속에서 함께 고생한 대원들중에서 저항력이 약한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쓰러진다는것을 깨닫고 전염병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것은 일종의 특수환경속에서 생기는 직업병과 류사한것이였다. 엄혹한 추위속에서 풍찬로숙하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아와 무서운 난관을 이겨나가며 싸우는 빨찌산의 병, 엄혹한 환경속에서 싸우는 빨찌산에서만 발생하는 질환이였다.

그이께서는 언제인가 무슨 책에서 읽었던 콜롬부스와 마젤란의 원양탐험선에서 폭발했던 절망적인 사태, 선원들이 오래동안 과일과 남새를 먹지 못하여 괴혈병이나 각기병으로 피를 토하며 무리로 쓰러졌던 일이 상기되여 몸서리를 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등잔의 빨간 불꼬리가 스러져가며 가물거리였으나 심지를 돋구는것도 잊고 천갈래, 만갈래의 생각을 좇으며 앉아계시였다. 이제 또 누구들이 쓰러질것인가. 어떻게 하면 천막안을 더 뜨뜻이 할수 있는가, 바닥에 락엽들을 더 푹신하게 까는가, 불화로를 들여놓는가, 여기서 며칠 묵어도 온돌을 놓아야 하는가, 우선 래일 아침부터 전체 대원들한테 따끈한 물을 공급해야 하지 않을가. 여러곳에 파견한 식량공작조들로부터 왜 소식이 감감한가. 문제는 식량이 빨리 도착하여 대원들에게 하루세끼 따끈한 밥을 먹이는것이다. 솜동복은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가. 추위를 더 타는 대원들한테 먼저 입혀야 하지 않는가. …

문득 담가에 누워오던 연미숙의 해쓱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한테 최성배의 죽음이 어떤 타격을 주었겠는가. 밀영에 오면 그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안고 행군의 어려움을 참아왔겠는데… 연약한 몸으로 그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받고 졸도하거나 아주 쓰러지지 않은것이 용한 일이다. … 최성배는 경위중대에서 힘장사로 이름난 대원이였다. 전장에서 부상자가 생기면 자기 떡판같은 잔등에 업고 불비속을 헤치며 십리고 이십리고 단숨에 내뛰였다. 숙영지를 꾸릴 때면 통나무며 바위돌을 제일 많이 날라오고 어렵지 않게 척척 다루었다. 그런 억대우같은 동무가 그렇게 맥없이 가다니… 추격을 당하다가 쓰러졌다는데 그 위급한 정황에서 제대로 묻어나주었는지… 물론 참모장이 다 잘해주었겠지만…

그이의 생각과 걱정은 끝이 없었다. 혹시 재봉대밀영이나 식량공작조들에서 련락이라도 오지 않는가싶어 괴괴한 정적속에서 귀를 기울이면 수풀을 헤치는 소리, 발자욱소리, 기침소리까지 들려오는듯 하였다.

이튿날 이른새벽 밤새껏 쫄라병문제와 온갖 시름을 안고 모대기던 사령관동지께서 그만 탁자에 엎드려 쪽잠이 드시였다. 등잔불이 꺼지고 심지에서 하얀 실연기만 몇순간 피여오르다가 그것마저도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그이께서는 잠결에 괴괴한 정적을 밀어버리며 이름할수 없이 생신하고 힘찬 기운이 밀려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깜짝 놀라 눈을 뜨시였다.

천막안은 아직도 어슴푸레한데 밖에서 숱한 발들이 땅을 구르는 소리며 세찬 숨소리들이 가락맞게 들려왔다. 그 소리들은 점점 가까이로 다가오는가 하면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며 그 박력있는 울림소리들로 숙영지의 정적을 뒤흔드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밖으로 나가보시니 한줄로 늘어선 대오가 땅을 구르며 기운차게 달려오고있었다. 모두 군복상의를 벗어버리고 내의바람이였다. 얼굴, 얼굴마다에서 풍기는 화기와 날리는 허연 입김, 나직하면서도 저력이 풍기는 웨침…

《여이싸!》

《여이싸!》

대오의 앞장에서는 오중흡이 달리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굽이 저려드시였다.

(저 동무가 쫄라병때문에 내가 밤새 자지 못하는걸 보구 이런 달리기를 시작한게 아닌가. 나를 안심시키려고…)

가까이로 가보시니 모두 얼굴들이 불깃불깃하게 상혈되였는데 내뿜는 입김들에서는 후끈한 화기가 안겨오는듯싶었다.

오중흡련대장이 그이의 앞으로 다가와 이제부터 어떤 환경에서도 조기운동을 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일어나자바람으로 팔다리운동부터 하여 밤새 까드라들었던 몸을 푼 다음 이렇게 달리기를 하니 후끈후끈해집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련대에서는 쫄라병환자를 더이상 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련대장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오늘중으로 다른 부대에도 동무네 경험을 보급해야 되겠소.》

사령관동지께서 몇몇 대원들을 만나보고 8련대쪽으로 향하시는데 오중흡이 따라오며 간밤에 돌아온 식량공작조가 있는가고 물었다.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없소…》

《놈들의 봉쇄때문에 이전보다 힘든것 같습니다.》

《정숙동무네 공작조는 돌아올 날자가 지났는데도 전혀 소식이 없소. 오늘까지 기다려보고 긴급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소.》

《!…》

그이께서 돌아서시였다.

 

×

 

길 아닌 길로 숲속을 누벼나가던 그들은 이튿날 새벽, 불빛이 멀리에 바라보이는 령마루에 올라 저 아래골안에 메아리치는 총소리를 들었다. 식량공작조가 추격을 당하며 대응사격을 하는것이 분명하였다.

오중흡은 대원들을 이끌고 골안으로 내려갔다.

골바닥에 내려선 그들은 쌀섬들을 지고 올라오는 농민들로부터 (일곱명이였다. ) 아래쪽에서 유격대원들이 추격해오는 《토벌대》놈들을 막아 싸우고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신없이 뛰여내려갔다.

네명의 대원들이 진대나무며 울퉁불퉁한 바위돌에 의지하여 맹사격을 하고있었다.

오중흡은 그들의 사이사이에 대원들을 산개매복시키고 자신도 바위뒤에 엎드려 탄알을 아끼라고 소리쳤다. 적탄들이 바위에 부딪쳐 그의 머리우로 불꽃을 날리였다.

누구인가 오중흡곁으로 기여와 팔굽을 덥석 잡았다.

《련대장동지!》

그 울음섞인 목소리의 임자는 《무산아재》였다.

《정숙동무는?…》

《이 일을… 정숙이는 나때문에…이 머저리, 이 겁쟁이때문에… 이 일을 어찝니까?》

《뭐- 요?!-》 오중흡은 피가 울컥 치밀어 소리쳤다.

그 녀대원이 눈물과 함께 쏟아놓은 말로 미루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무산아재》는 놈들의 추격을 피하여 탄우속을 정신없이 달리느라 적탄에 배낭끈이 끊어진것을 몰랐다. 달리고 또 달리다가 문득 몸이 홀가분해진것같아 손을 잔등에 가져가니 배낭이 없었다. 화닥 놀랐다. 어디서 미끄러져내렸는지 도무지 생각해낼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아신 김정숙동지께서 그 배낭에는 연미숙이한테 미음을 쑤어줄 조찹쌀과 콩이 들어있었다면서 어디서 잃었는가고 따져물으시였다. 대답할수 없었다. 한참 뛰여올라가다 돌아보니 김정숙동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 쌀배낭을 찾아 적탄이 비발치는 어둠속으로 내달리신것이 분명하였다.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였으며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옆에서 돌아서는것두 몰랐단 말이요?!》 오중흡은 거칠게 소리쳤다.

오중흡은 갑자기 사격을 중지시켰다.

그리고는 모든 대원들을 골짜기가 휘여들며 좁아진 잘루목뒤로 퇴각시켰다.

그는 대원들을 량쪽 산비탈에 매복시키고 골바닥의 바위우에는 경기관총까지 배치하였다.

놈들은 유격대가 탄알이 떨어져 저항 못하고 도망친다고 생각했는지 일제히 돌격하여 미친듯이 함성을 지르며 잘루목으로 달려들었다. 기관총과 보총들의 교차화력에 적병들은 골바닥에 쓰러져 딩굴었다.

불시에 사격이 멎었다.

대원들은 오중흡의 뒤를 따라 골바닥으로 뛰여내려가 살아남은 놈들을 찔러넘기고는 넓게 벌려서며 아래쪽으로 천천히 걸어내려가면서 김정숙동지를 찾아 풀속을 샅샅이 뒤지였다.

두어시간후 날이 희붐하게 밝았을 때 그들은 가파로운 산기슭의 잡관목덤불속에서 김정숙동지를 발견하였다.

그이께서는 자기 짐을 지고 잃었던 쌀배낭까지 붙안으신채 덤불속에 엎드려있었는데 《무산아재》가 안아일으키니 얼굴을 드시였다. 아마 경사가 급한 산비탈로 굴러내리며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으신것 같았다. 상한 얼굴, 긁히고 찢기운 군복…

그날 어슬녘 밀영에 도착하여 김정숙동지로부터 그 사연깊은 조찹쌀배낭을 받아안고 련대로 내려가던 《무산아재》 리철금은 뜨거운 격정에 목이 메여 잠시 멎어섰다. 이제 연미숙이 쏟는 눈물에 배낭이며 조찹쌀이 푹 젖을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에 안개가 소용돌이치는듯 하였다.

이윽고 연미숙의 거처를 향해 총총히 걸어가던 《무산아재》는 천막뒤 나무밑의 어스름속에 두 그림자가 마주서있는것을 띄여보고 주춤 멎어섰다.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와 그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보이는 녀자였다.

참모장과 연미숙이 분명하였다.

《무산아재》는 그 천막쪽으로 가지 않고 좀 에돌아 작식터로 꼿꼿이 내려갔는데 얼마후 그쪽에서 솥이나 양재기 같은것을 치우다가 떨어뜨렸는지 왱강쟁강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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