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7

 

어디서인가 은은한 종소리 같은것이 울려왔다.

뎅- 뎅- 뎅-

이께우찌 사부로는 그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눈을 떴다.

그는 푹신하고 따스한 이부자리속에 번듯이 누운채 창문쪽을 돌아보았다.

창밖은 아직도 캄캄하였다.

어제 저녁 화김에 들이킨 술때문인지 머리가 뗑해진 그는 몇순간이 지나서야 자기가 여기 대화호텔에 들었으며 들려온 소리는 종소리가 아니라 이 호텔의 아래층현관의 대형탑시계가 시간을 알려준 소리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스위치단추를 눌러 탁상등을 켰다. 새벽 3시 15분이였다.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요원인 이께우찌대좌는 화룡에서 실어온 공산유격대《포로》가 절명할것 같다는 급보를 받고 어제 오후 차를 질풍같이 달려 여기 륙군병원으로 왔었다.

그는 공산유격대의 운명이 경각에 이른 시기에 모리다의 공로로 잡게 된 이번 《포로》는 이전시기에 체포한 빨찌산이나 공작원들에 비해 가치가 백배나 더 높다고 치부하였다. 게다가 백두산일대에서 포수로 변장하고 공작하는 모리다대위가 그를 잡게 된 경위에도 주위를 끄는 문제점이 있었다.

모리다는 그를 우연히 잡았다.

어느날 어슬녘 화라즈분지의 한 산비탈벼랑밑에서 숨을 돌리며 담배를 피우는데 열댓걸음옆 락엽무지가 버스럭거리며 움씰거리더니 그속에서 유령인지 사람인지 알수 없는 형체가 기여나왔다는것이다.

잡고보니 만신창에 피투성이가 된 유격대원이였다. 어디서 떠나 어디로 가던 길에 치명상을 입었는가, 동행자는 없었는가, 있었다면 그들은 숨이 아주 끊어졌는가도 확인하지 않고 락엽속에 묻어버렸는가, 숨이 붙어있었으나 어차피 살지 못할것이라고 단정하여 버리고간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우의적으로 단합된 공산유격대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징후였다. 저들한테서 붕괴가 시작되는가.… 이께우찌에게 있어서 그것은 공산군내부를 들여다볼수 있는 틈바구니였다.

대좌는 특무부의 명의로 모든 의학적수단을 다하여 《포로》를 소생시키라, 죽이면 당신들이 책임지게 된다고 륙군병원측에 거의 협박조로 요구하였다. 그리고 신경의 권위있는 의료진을 길림에 파견하였다.

그제만 하여도 병원측은 환자가 하루이틀사이에 의식을 회복할것이라고 확언하였는데 갑자기 돌변하여 절명이라니?… 그는 병원에 도착하여 그 까닭을 알게 되였다.

환자는 원래 장수체질인데다가 수혈을 많이 하고 각종 소생제와 영양제를 아낌없이 주입한것이 효과를 내여 상태가 급진적으로 호전되여 어제 오전 11시와 12시사이에 두번 눈을 뜨고 달려와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간호부와 의사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수면상태에 들어갔다. 당직의사와 당직간호부도 안도감이 들어 잠시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니 환자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마루바닥에 엎어져있었다. 그리고 머리며 가슴의 붕대를 마구 집어뜯은 흔적이 눈에 띄였다. 두번 눈을 떴을 때 자기가 어디 와있는가를 비로소 깨닫고 자살을 기도한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천행으로 차례진 《포로》한테서 아무런 정보도 알아내지 못하고 지어는 이름조차 모르는채 잃게 된데 분통이 터져올랐다. 그는 당직의사와 간호부를 처벌하며 환자를 어떤 수단으로든 살려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병원을 나서 《토벌》사령부로 갔다.

노조에소장은 특무부가 그처럼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는 《포로》에 대하여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화라즈분지에서 공산유격대의 밀영과 식량저장소들을 기습소탕한데 대하여 노발대발하였다.

열흘사이에 모리다대위는 (모리다는 반도에서 나서자라 조선말뿐아니라 세태풍습과 신앙과 미신까지도 꿰들고있어 그가 제일 신임하고 총애하는 정탐이였다. ) 송강에서 두번에 걸쳐 극비전신을 보내여왔었다.

- 공산유격대의 한 소부대가 화룡, 안도, 화전일대에서 식량을 다량 구입하여 화라즈분지쪽으로 운반해가고있다.

- 화라즈분지의 모지점에서 공산군의 중요인물인듯 한자와 접촉하였다. 본래 만주성당산하 동만특위서기 동장영, 항일련군 2군의 왕덕태, 위증민에 대한 극비자료속의 사진들에서 본듯 한 얼굴이다.

그 정보는 적어도 공산유격대의 대부대가 미구에 화라즈분지로 올수 있다는것을 시사했다.

때문에 노조에《토벌》사령부관하 부대들의 일체 《토벌》작전을 중지하는 한편 관동군정예무력을 은밀히 끌어내여 화라즈분지를 포위하고 공산유격대의 대부대가 식량을 찾아 그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면 되였다.

그때 이께우찌는 숨이 멎는듯 한 긴장속에서 저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며 《오, 신이여…》 하고 나직이 속삭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무공을 떨치려는 야심에 환장한 우두머리의 휘동하에 지방《토벌대》가 자의적으로 출동하여 빨찌산기지에 대한 기습전을 단행하여 소부대를 전멸하고 밀영과 거기에 저장된 식량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살아남은 잔여분자들이 자기네 사령부에 사태를 보고하면 공산주력은 화라즈로 오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고말것이다.

노조에소장은 이것은 전적으로 모리다대위, 그 저능아의 사촉에 의한것이라고 하며 우리 사령부의 작전구역에서 특무부의 활동을 금지시키겠다고, 당신네 정보원, 정탐나부랭이들을 다 철수해가라고 소리쳤다.

이께우찌도 그만 리성을 잃고 반발하여 벌어진 사태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아니다,

현지의 모리다대위는 권총까지 빼들고 출동하는 《토벌대》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모리다를 란타하여 류치장안에 집어던지고 출전하였다. 모리다가 아니라 지방《토벌대》의 광란을 묵인한《토벌》사령부의 몇몇 고위장교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여 언쟁의 칼부림이 벌어졌다.

이께우찌 사부로대좌는 그때의 모욕감과 분격이 되살아올라 유까다앞섶을 열어헤치고 방안을 왔다갔다 거닐었다. 역쪽에서 밤렬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씨비리에 파견되여 공작중 적위군에 체포되여 총살당한 이께우찌 센중좌의 맏아들이였다. 사부로는 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한 다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특수공작에 나서 혹까이도로 파견되여 공산당조직들을 색출하고 범인들을 심문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 과정에 젊은 형사는 다음과 같은 리치를 깨닫게 되였다.

즉 공산당이란 그 어느 정당이나 사회단체보다도 하나의 리념만을 절대시하는 이데올로기적광신자들의 전위조직이며 따라서 공산당정예들은 생명을 잃을지언정 자기 신앙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것, 때문에 공산당을 완전소멸하자면 우선 그 이데올로기부터 훼손시켜야 한다, 단순한 물리적수단으로는 안된다, 면밀한 심리작전으로 그들을 정신도덕적으로 교화하여 본능에 순응하는 노예로 만들면 그들스스로가 자기네 신앙에 회의와 환멸을 느껴 신조를 바꾼다는것이였다. … 그후 이께우찌 사부로는 울라지워스또크의 제국령사관에 서기관으로 1년동안 가있다가 상인, 실업가로 가장하고 내몽골과 중국의 섬서지방에까지 잠입하여 《특수공작》을 수행하다가 재작년 봄 관동군사령부 특무부로 왔다. …

다급한 전화종소리가 응접실에서 울렸다.

대좌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들어 전화기가 놓인 탁자로 성급히 걸어나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병원부원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환자가 2시 21분에… 맥박이… 서맥이 아주 멎었습니다. 동공이 확대되고…》

《뭐라구?!…》 그는 피가 곤두서 정신없이 소리쳤다.

《각하, 한시간이상 다시 소생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저희들이 무능하여… 벌써 사지가 강직되여갑니다. 석고보다…》

이께우찌는 송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대륙의 밤하늘에는 아직도 희붐한 새벽빛이 어리지 않았으나 거리와 골목의 어스름속에서는 벌써 《뚜퍼-》와 《깐뚜퍼-》하는 행상들의 웨침소리가 처량한 종소리와 함께 울리였다.

병원뜨락에 들이닥친 승용차가 현관앞에 급정거했다. 이께우찌대좌가 내리자 그가 올줄 알고 마중나와있던 무테안경을 코에 건 뚱뚱한 부원장을 비롯한 2, 3명의 군의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모두 죄책감에 젖어 침울한 얼굴들이다.

그는 부원장의 안내를 받아 크레졸냄새가 떠도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구석쪽의 한 방에 들어갔다.

대기실을 지나서 처치실을 지나 다음 방으로 들어가니 소생실이였다.

안쪽의 높다란 침대에 백포에 덮인 시신이 누워있었다. 백포우에 시신의 코마루며 턱이며 어깨가 희미하게 부각되여있었다.

부원장이 진중한 얼굴로 침대가로 다가가서 백포를 들치여 죽은 빨찌산의 얼굴을 보이였다.

생전의 적의가 비껴있는듯한 눈확, 약간 두드러진 관골, 쳐들사한 턱… 그 얼굴인상이며 굵은 목에는 아직도 완강하게 저항하는 의지력이 깃들어있는듯 하였다.

이께우찌대좌는 뒤짐을 지고 랭랭한 눈길로 그 얼굴을 잠시 굽어보다가 백포를 덮으라고 손짓하며 돌아섰다.

《지독한 놈입니다. 정신이 든 다음에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하고 부원장이 나직이 수군거리는데 구석쪽에 꼿꼿이 서있던 젊은 군의가 원추형의 유리용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나와 그것을 처치대우에 올려놓았다.

부원장이 한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밀담이라도 하듯 속삭이였다.

《각하, 위를 절개하니 저런게 터져나와 저렇게 알콜에 담그었습니다. 아, 어느 전쟁에 이런 일이…》

이께우찌대좌는 처치대로 다가가 유리용기안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희부옇게 흐려진 액체속에 무슨 넝마쪼박지, 실오리같은것들과 잡초뿌리같은것이 한데 엉켜 서서히 돌아가고있었다.

부원장이 다가서며 조용히 말했다.

《혼수상태에서 헛소리치는걸 들어보니 이자는 이름이 최성배이고 어느 참모장의 전령병인것 같습니다.》

《음…》

대좌는 어떻다고 말할수 없는 격정이 북받쳐 광인의 그것처럼 희번뜩이는 눈으로 부원장을 홱 돌아보았다.

《각하, 검사해보니 나무껍질, 풀뿌리따위 섬유질입니다. 저런것이 인간의 위장안에 꽉 차있었습니다.》

그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여 부원장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음- 음- 그렇단 말이지, 음- 그래 그래-》

이른아침 이께우찌대좌의 전화를 받은 노조에소장은 당직장교들과 시민들을 놀래우며 승마복바지에 내의바람으로 군마를 미친듯이 몰아 륙군병원으로 달려왔다. 노조에소장은 방으로 뛰여들자마자 두팔을 벌려 처치대를 짚고 그 유리용기속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휙 돌아서서 과흥분과 열광에 번쩍이는 눈으로 이께우찌며 부원장, 군의들을 둘러보며 웨치였다.

《이것은…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가 벌리는 사령부의 봉쇄작전이 성공했다는것이다. 비로소… 비로소… 이것은 우리 봉쇄작전의 승리다!》

노조에는 희열을 못이겨 장교들앞을 뚜벅뚜벅 거닐며 주먹을 흔들었다.

《저런것만 배속에 채우고 싸울 기운이 생기는가. 행군할 기운이 있는가. 도망칠 기운이 있는가!… 제군들, 조선빨찌산은 이제 곧 전력을 완전히 상실할것이다. 이제는 총공세다! 총추격이다! 핫하하…》

그 웃음소리에 방안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소장의 충혈진 눈에 물기까지 어리였다.

그는 이께우찌대좌를 대견한 눈길로 돌아보았다.

《저 유리그릇에 든것은 최대의 정보요. 우리 황군에게 있어서… 대좌, 사의를 표하오.》

이께우찌는 기척자세를 취하였다.

노조에는 계속하였다.

《이 불우한 무관이 오래간만에 문관선생들의 덕을 보오. …》

노조에는 전투부문이 아니라 간접부문의 장교들을 질책하거나 모욕하고싶을 때면 이 《문관》이란 말을 즐겨썼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무라이정신으로 차있는 그한테는 《문관》이란 소리가 제일 멸시적인 표현이였다.

그러나 이 아침에는 그것이 최대의 찬사처럼 들리였다.

이께우찌대좌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말하였다.

《각하, 우리 황군이 야마도다마시, 충군사상을 자랑하는것처럼 저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사상, 혁명의리, 혁명도덕을 자랑해왔는데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정신, 어떤 도덕의 화려한 루각도 물질적기초가 아주 허물어지면 다 무너집니다. 페허로 되고 맙니다.》

《흠… 그건 철학이군… 철학이야.…》

《이전에 제가 부친이 남긴 장서를 정리하다가 한 로씨야작가가 쓴 빨찌산소설을 그속에서 발견하여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기아에 허덕이며 일본군과 싸우는 원동빨찌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는 정당하게도 혁명의 전위들인 그들이 기아에 허덕이던 끝에 한점의 고기덩이를 놓고도 피투성이가 되게 싸웠다고 썼습니다.》

《나도 기회가 생기면 읽어보겠소.》

《이제 저 공산유격대도 야만인이나 짐승의 무리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흩어지고말것입니다. 한때 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구국군이 벌써 토비화되여 도적떼처럼 도처에서 백성들을 략탈하고있습니다.》

노조에는 얼굴이 신중해졌다.

《음…》

그날 만주광야의 시꺼먼 하늘에 때아닌 우뢰소리가 울어 사람들을 놀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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