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5

 

기근에는 녀대원들이 더 견딜성이 있는것 같았다.

태반의 남대원들은 밀영자리에 도착하여 쌀섬들이 타버린 재무지들을 보자 억이 막히고 맥이 풀려 말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며 걸음도 간신히 옮기였는데 하루밤을 자고나니 어느 부대에서나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대원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그러나 녀대원들은 이른아침에 일어나 숙영지주변에서 샘을 찾아 맑은물을 길어들이는가 하면 맞춤한 돌멩이들을 들어다가 솥을 걸 자리들을 어렵지 않게 만들고 여기저기서 삭정이들을 주어다가 불을 살리는것이였다.

얼기설기 덧놓인 삭정이들사이로 발기우리한 불길이 가느다랗게 피여오르며 날름거리고 파르스름한 연기가 떠돌기 시작하자 생활의 화기가 살아나고 어느덧 숙영지가 사람사는 동네처럼 되였다.

아침식사가 끝난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을 이끌고 이전 밀영의 식량저장소자리로 넘어가서 재무지들을 파헤치며 불길이 지나가 누렇게 된 쌀알들을 골라내시였다.

오후 3시경 녀대원들은 그런 쌀 세가마니를 나누어 이고 사령부로 돌아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뜻밖의 소득에 못내 기뻐 녀대원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어서 부대들에 나누어주자고 하시였다.

순식간에 그 소문이 부대들에 퍼져 숙영지를 꾸리는 작업에 나선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되였다.

자연동굴속에서 연미숙을 비롯한 환자들과 허약자들을 보살피면서도 새로 도착한 자기 련대에 내내 마음이 가있던 《무산아재》리철금은 군수처에서 나누어주는 그 쌀 반가마니를 이고 7련대 작식터로 내려왔다.

오래동안 식량공작에 나와있으면서 그립고그리웠던 오중흡련대장과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저녁식사 한끼라도 자기 손으로 지어주고싶어서였다.

오중흡련대장은 그가 몹시 존경하고 따르는 지휘관이였다.

그래서 불길에 누렇게 그슬린 쌀을 백포에 펴놓고 아주 타버린 새까만 쌀알들이며 모래알들을 골라내고 입으로 후후- 불어 재들을 날려보내고 한옆으로 쓸어내면서 쌀을 골라내는 일에 지성을 다하였다.

그러다가도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처벌로 소대장에서 평대원으로 강직한 박주호때문이였다. 철금은 하마툰의 강가에서 그런 망측한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 《날도깨비》같은 소대장을 날카롭게 경계해왔으며 마음속으로 멀리하였다.

무슨 틈만 있으면 또 어쩔것 같아 그한테만은 따뜻한 인정을 보이거나 선심을 쓰는 일을 싹 그만두고 지어는 스스럼없이 흔연하게 대하는 일도 없었다. 밀영생활이나 식량공작중에 잠시 같이 있게 되거나 어쩔수 없이 외가닥길에서 어기게 될 때면 매섭게 독을 피웠다.

하지만 노상 그러자니 자기편에서도 지내기가 그지없이 불편하고 또 어느새 마음도 고약해지는것 같았다. 좀 늦추어주면 저쪽에서 인차 낌새를 느끼고 남들이 있는데서도 만나면 얼굴이 활짝 밝아져 웃음을 보내는가 하면 희떠운 롱말까지 텅텅 던져가면서 진짜 《도깨비》처럼 될것 같은 기미를 보이는것이였다. 그래서 모질게 마음을 먹고 매정하게 대하며 독을 더 풍기면… 그러면 무안을 크게 당한듯 분해하고 괴로와하고 절망까지 하는것 같았다.

이전에 어른들이 전책을 보고 하는 소리를 들어봐도 그렇고, 글공부깨나 한 유격대원들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남자나 녀자나 《실련》이라는것을 당하면 죽고싶은 생각까지 든다는것이였다.

박주호가 《민생단》이라고 허위자백을 한것이 자기탓이 아닌가싶은 무서운 생각이 문득 들며 저도 모르게 눈앞이 아찔해지고 한숨이 나갔다.

그러나 그 한숨은 인차 다른 한숨으로 번지였다.

(에그, 나한테 뭐가 볼게 있다구… 이 -무산아재-한테…호…)

이러나저러나간에 박주호가 저렇게 되자 적지 않은 동무들이, 특히 녀대원들이 자기 눈치를 여겨보는것 같아 부끄러워났다. 저편에서도 자기를 보기 부끄러운듯 만나면 외면을 하고 될수록 피하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그가 측은하게 여겨져 찾아가 위로의 말,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런 때 아주 남남처럼 모르는척하는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것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런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또 다르게 쓰려나며 그에 대한 원망이 끓어올랐다.

(에그, 제가 나를 뭘루 만들었누… 어떤 매정한년으루… 왜 사람한테 이런 맘고생을 시킬가. 저두 맘고생이구, 나두 맘고생이구… 그래… 그래… 그렇게 해서 무슨 리득이 있는가…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에그, 정말 〈도깨비〉지…)

《무산아재》, 리철금이 낟알을 고르며 혼자생각에 골똘히 빠져있는데 저 웃쪽에서 누군가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잡관목덤불곁 샘물이 흘러나오는 후미진 곳에서 오중흡련대장과 전령병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무엇인가 하고있었다.

철금이 무엇을 하는것일가싶어 엉거주춤 일어나서 그쪽을 여겨보는데 련대장이 그를 돌아보며 손짓하였다.

《철금동무- 여기 와서 좀 보우! 마음에 드는가 어떤가…》

《무산아재》는 의아해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련대장과 전령병은 어느새 샘터를 번듯하게 꾸려놓은것이였다.

샘물속에는 네모반듯하게 짠 나무틀을 박아넣었고 그 둘레에는 깨끗한 모래를 다져넣었으며 샘바닥에는 하얀 자갈을 깔아놓았다.

리철금은 너무도 희한하여 《아니!-》 하고 한마디 탄성을 나직이 지를뿐 기쁨에 넘쳐 샘물속을 넋없이 들여다보았다.

작업중에 흙모래들이 떨어져들어가 흐려졌던 샘물이 점점 가셔져 투명해지며 샘바닥까지 환히 들여다보였다. 이윽고 수면의 흔들림에 너울거리는듯한 조약돌들 짬에서 모래들을 날리며 샘이 퐁퐁 용솟음치는것까지 똑똑히 보였다.

철금은 그것이 그 무슨 생명력의 박동처럼 보였던지 아니면 아이적에 들은 옛말속에 나오는 백두신령의 정기가 용솟는것으로 여겨졌던지 가슴이 벅차지고 이름할수 없는 신비감에 휩싸여 한동안 말도 못하였다.

오중흡련대장이 그의 어깨쪽을 툭 건드리였다.

《아- 니, 의견을 말하라는데 뭘 그렇게 보기만 하오?》

리철금은 고개를 들더니 한손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련대장동지, 말을 못하겠습니다. 너무 좋아서…》

《그렇소?! 합격이구만! 작식대원들 마음에 들면 합격, 합격이지!》

그리고는 허리에 두주먹을 올리며 껄껄 웃어대였다.

그 호방한 웃음소리에 가슴까지 들썩이는듯 했다.

철금은 팔소매를 걷어올린 련대장의 팔뚝이며 손에 게발린 즐벅한 흙모래와 굴러내리는 물방울이 눈결에 띄우자 송구스러워서 얼굴이 벌개졌다.

《이제 또 어디로 뜨겠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품을 들이다니 세상에…》

그러자 몸매가 장수처럼 우람한 전령병이 벙글거리며 응대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싸움뿐아니라 생활에서두 늘 우리 7련대를 모범으로 내세우시지 않습니까. 하루이틀 묵어두 군대답게 번듯하게 꾸려놓구 살아야지요.》

오중흡련대장이 그의 말을 받았다.

《샘터야 녀동무들이 늘 쓰는덴데 깨끗하고 모양새도 괜찮아야지… 작식대원들 마음이 밝아야 끼니도 맛있게 지을게 아니요.》

《정말 수고했습니다.》

《수고는?… 백두산쪽에 나와서만두 우리가 이런 샘을 얼마나 많이 팠소. 이젠 손에 익어서 일없소.》

무슨 궁리를 하는지 실눈을 짓고 샘터를 여겨보던 전령병이 한마디 했다.

《련대장동지, 그런데 한가지 부족한게 있습니다.》

《?…》

《샘터곁에는 떡돌이 있어야 제격인데 그게 없으니 좀 허전합니다.》

《그렇지… 그래!…》

전령병이 잡관목덤불뒤로 사라지자 오중흡은 샘터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녀대원들이 저기에 아침마다 얼굴을 비쳐보면 체경에 못지 않을거라고, 내 물값은 못받아도 체경값은 받아야 하겠다고 롱말을 건네다가 문득 얼굴빛이 진중해지며 화제를 돌렸다.

련대장은 식량공작에 나와 고생이 많았겠다고, 별의별 일이 다 있었겠다고, 그 이야기는 천천히 듣겠다고 하였다.

그한테서 두어걸음 떨어진데 웅크리고 앉은 철금은 련대장이 자기와 주호의 사이에 대하여 무슨 소문을 들었거나 이상한 눈치를 벌써 느끼고 하는 소리같아 눈길을 다소곳이 숙이였다.

오중흡이도 성미가 괄괄한 이 녀대원한테 그사이 아련한 구석이 생긴것 같아 슬며시 돌아보았다.

《련대동무들이 그리웠지?》

《에그, 정말… 다른 부대들에서 온 동무들과 어울려 식량공작이랑… 밀영생활을 하자니 첨엔 통 마음이 붙지 않았는데 차차 나아졌습니다. …》

《우리도 동무를 멀리 떠나보낸 다음 마음이 정말 허전했소. 식사때랑 〈무산아재〉가 언제 돌아오겠는가 외우는 동무들이 한둘이 아니였소. 〈무산아재〉가 없으니 감자지지개 생각이 더 난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더라니까. 허허…》

그 말에 철금의 눈에 물기가 핑 돌았다.

《이전에 입대해서 련대가 고향집이나 같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번에 지내보니까 정말… 련대장동지, 이제는 나를 외딴데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우리두 〈무산아재〉가 없으니 틀렸어. 허허… 가만 있자… 그렇지… 지금 구완해주는 환자들만 병원밀영에 후송하면 인차 붙잡아가겠소. 동굴에 밀려든 환자들 시중에 정말 바쁘겠소.》

《바쁘기야 무슨, 속이 좀 상해서 그렇지, 8련대 연미숙이는 저러다가 어떻게 될것 같습니다. 맹물만 몇모금 마시고는 아예…》

《연미숙이? 최성배동무가 희생됐다지?》

《…》

《아, 얼마나 비통하겠소. 청천벽력일게요! 녀성들끼리 곁에서 잘 위로해줘야지…》

《그런데 어째 참모장동지는 사람이 그렇습니까? 예?》

리철금은 의분에 목소리가 떨렸다.

《어째 얼굴도 내밀지 않습니까? 와서 여사여사해서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데… 그만 그렇게 됐다구 알려주면 못씁니까? 예? 찾아오지부터 않으니 연미숙이는 점점 옥생각이 들어 다른 동무들 말은 듣지두 않구… 곁에 가는것도 질색이지요. 제발 혼자 있게 해달라구 졸라서… 8련대에서 작은 천막을 하나 내여 거기루 옮겼습니다. 세상에 원…》

오중흡은 가슴이 쩌릿해져 저도 모르게 모두숨을 후- 내쉬였다.

《이제 찾아가서 만나겠지. 참모장동지야 사령관동지께 보고할 문제도 있고 의논할 문제도 많을테니까. 연동무가 그걸 곡해하지 말아야겠는데…》

《련대장동지, 참모장동지한테 말해주십시오. 제가 한 얘기랑 다…》

《내가 말할수도 있지만 내내 곁에 있는 철금동무가 직접 말하는게 더 좋을것 같소.》

《무산아재》는 갑자기 두손으로 제 무릎을 소리나게 치며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에이구… 왜… 왜… 공연히 정을 나누고는 저 고생일가, 사람들두…》

《음…》 오중흡은 앓음소리를 내였다.

《련대장동지, 이전에 우리 어머니두 인물고운 내인은 마음고생을 업고 다닌다구 했습니다. 연미숙이두 인물덕에 저 지경이 됐지요. … 언제 철알을 맞을지 모르는 쌈판을 다니면서 정을 주구받다니.》

《혜산사건바람에 체포된… 지금 저 함흥형무소에 있는 권영벽이는 참군해서 집을 떠날 때 안해하구 아주 리별을 했소. 나를 기다리지 말구 재가해도 좋다구 하면서…》

《저두 입대해서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독하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면 그게 오히려 사람다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단 말이요. …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인간생활이란게 그렇지만도 않거든. … 단순하지 않아. … 자로 금을 그은것처럼 그렇지 않지. … 최성배동무가 연미숙이 주는 정때문에 그렇게 억척스럽게 싸웠는지도 모르지…》

《어이구, 아니오다. 최성배동무는 원래 장수로 소문나지 않았습니까. … 권영벽동지는 그렇게 하구… 안해하구 정까지 썩둑 베버리구 집을 나선 혁명가니까 왜놈들의 악착한 고문속에서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련대장동지, 나는 요새 혁명자는, 특히 녀성혁명자는 그 정이란걸 멀리해야 되겠구나… 적병다음으로는 그걸 경계해야 잘 싸울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오중흡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어대였다.

《핫하하… 아- 니 그러다간 우리 남성들을 모두 적처럼 보지 않겠소. 핫하하…》

철금은 당황해져 어쩔바를 몰라하며 변명조의 말을 련발하였다.

《아니… 아니지요. 그런게 아니라 동지야 동지지만… 그렇지만…》

《가만 이거 이상하다… 여기서 누가 동무한테 실없이 군게 아니요? 엉? 》

범이 제소리를 하면 온다고 그때 댓발이나 되는 아름드리 통나무를 멘 박주호가 작식터옆을 지나가고있었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통나무의 무게에 눌려 허리를 구붓하고 발걸음을 가까스로 옮기고있었는데 시뻘건 얼굴이며 목에서 땀발이 번들거리며 흘러내렸다. 당금 쓰러질것 같았다.

 

×

 

리철금은 외면하고 오중흡련대장은 뛰여가며 소리소리 질렀다.

《여- 주호- 서라-》

박주호는 통나무를 가까스로 내려놓고 주먹으로 이마의 땀을 빗씻었다.

오중흡은 그가 측은해졌으나 좀 격한 어조로 꾸짖었다.

《둘이서 맞들어도 헐치 않겠는데 혼자 메고 오다니… 허리를 상하면 어찌겠소.》

박주호는 아무렇지 않다는듯 팔소매를 툭툭 털었다.

《사람두…》

그리고 련대장은 좀 숨을 돌리고 함께 메고가자고 하며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박주호도 통나무의 다른 끝에 앉았다가 좀 가까이 다가앉았다.

《오늘 보니까 동무는 통 웃지도 않구 누구하고 말도 안하는데 어째 그러오? 비판이 소화되지 않아 그러오?》

《아닙니다. 사령관동지 말씀이 그냥 가슴에서 울리는것 같아서… 저는 여태 혁명가의 영예, 존엄이라는게 뭔지 모르고 살아온것 같습니다.》

《나두 사령관동지께서 그렇게 분노하시는걸 최근에는 처음 봤소.》

《정말 정신이 들었습니다.》

《여보, 그럼 좀 웃으라구. 일판에서 동무 웃음소리가 없구 우스개소리두 없으니 영 흥이 나지 않는단 말이요. 대장부라는게 넨장…》

박주호는 어줍게 웃어보이며 물기어린 눈을 숨벅이였다.

《허… 웃지요. 웃지야 못하겠습니까.》

《이전에 김주현이는 책벌을 받구 밥가마를 지고다니면서두 흥타령을 부르더군. 그러니 모두 군수관을 할 때보다 더 존경하게 됐지. …》

《련대장동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여보, 어떻게 하는고 하니 내가 앞채를 메고나가면서 어기영 소리를 메길테니 뒤채를 메고 따라오면서 그 소리를 받아 동무는 치기영 소리를 기운차게 내오.》

《예. 그러지요…》 하고 박주호는 타는듯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련대장과 대원, 두사람은 묵직한 통나무를 앞뒤에서 메고 어기영… 치기영… 하는 소리에 맞추어 발을 짧게, 잦은 걸음으로 내짚으며 숙영지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오중흡은 내리누르는 통나무머리쪽을 어깨로 떠받드느라고 기운을 쓰는 바람에 얼굴이 시뻘개지였다.

둘이 메는데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뼈가 부서지는것 같고 통나무가 무쇠들보같은게 등허리가 휘친거리는가 하면 숨이 떡떡 막히였다. 대바람에 목구멍에서 겨불내가 풍겨올랐다. 식은 땀이 흘렀다.

이런걸 혼자 메고오다니, 사람두 참…

오중흡은 뒤따르는 박주호를 생각하여 《어기영…》 하고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러면 박주호가 화답했다.

《치기영…》

《어기영…》

《치기영…》

사정없이 짓누르는 짐의 무게, 아픔, 휘친거림, 숨막힘, 겨불내… 그 모든것을 헤가르며 날아오르는 어기영… 치기영… 그 소리는 단순히 흥취를 돋구는 가락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호소와 호응, 가혹한 무게에 저항하여 그것을 이기며 하나로 이어지는 마음들의 울림이고 함성이였다.

《어기영!》

《치기영!》

흐르는 땀, 떨리면서도 억척스럽게 내짚는 발과 발…

《어기영!》

《치기영!》

오중흡은 한팔로 끌어안은 통나무를 통하여 뒤따르는 박주호의 숨결이며 윽윽 용을 쓰는 그의 기운, 그의 가슴이 뛰는 소리까지 느껴져 입술로 흘러드는 쩝쩔한 땀물을 푸- 푸- 내뿜으며 자신있게 발을 내디뎠다.

가시풀덤불이 뒤엉킨 비탈을 치달아오르기 시작하자 그는 젖먹던 기운까지 다 내여서인지 동심이 꿈틀거려 엉뚱하게도 《어기영》이 아니라 다른 소리가 튀여나왔다.

《이기자!》

《이긴다!》

《이기자-》

《이긴-다-》

작업장의 대원들이 그들을 보고 우르르 밀려내려와 통나무를 받아내리려고 하였다. 련대장은 피하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뿌리쳐버렸다.

그러자 대원들은 두사람사이에 끼여들며 어깨를 들이밀었다.

두번째 통나무는 좀 가벼운것이였다. 그런데 박주호는 그것을 메고오는 도중에 《어기영》소리에 화답을 못하였다. 못하는지, 하지 않는지… 통나무로 전해오는 느낌도 전과는 판판 달랐다.

오중흡은 통나무머리를 다른쪽 어깨에 옮겨메며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놀랐다. 박주호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번민과 의혹의 그늘이 짙게 비껴있었다. …

저녁식사후 숙영지 웃쪽의 수림속에서 그를 조용히 만났다.

둘은 펑퍼짐한 너럭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련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다.

박주호는 고개를 수굿한채 말을 못하고 모대기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련대장동지한테야 무얼 숨기겠습니까. 여태 나는 자기를 용렬하거나 옹졸한놈으로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오늘뿐아니라 처벌을 받기전부터두 우리가 〈토벌〉을 당한게 쌀을 흘린것때문이 아니지 않는가… 이 못된놈의 생각이 여기서… 여기서 떠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는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담배 좀 없습니까?》

《있소…》

박주호는 얼굴이 컴컴해서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켰다가 후- 내뿜고는 참모장이 며칠전에 망원초에서 붙잡힌 포수를 만난 일이 있다고 하였다.

오중흡은 얼굴빛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듣기만 하였다.

《그때 망원초에 나가 만나보고 놔주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전에 마당거우밀영근처에서 족제비사냥군놈을 잡았던 일이 생각나선지… 어쩐지 그 포수가 미타하게 여겨집니다. 혹시…》

《그때 같이 만난 동무는 없소?》

《저… 있습니다. … 8련대 한명찬소대장이… 잡기두 그 동무가 잡았습니다.》

한명찬은 포수가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주 덮어버리거나 묻어둘수 없는 문제였다.

밤중에 오중흡은 사령부로 찾아갔다.

고요가 고느적이 흐르는 분비나무숲속의 사령부천막은 안에 켜진 등잔불의 조화로 노을빛처럼 물들여지고 거기에 크게 확대된 사람의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그 그림자는 서서히 움직이다가 멎어선채 내려앉을줄 몰랐다.

사령관동지께서 이 밤도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렬강들의 움직임, 관동군부대들의 기동에 대처한 새 전략전술들을 구상하며 사색에 사색을 이어가고계심이 분명하였다.

오중흡은 경건하게 서있다가 그이의 사색을 중단시킬수 없어 래일아침 보고드리자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그는 참모장을 직접 만나 문의하고 의논도 해보는것이 더 좋을듯싶어 참모처쪽으로 향하였다.

오중흡은 일찍부터 나이 퍽 우이고 혁명경력도 오랜 림수산참모장을 선배동지로서 존경해왔다.

그의 군사지휘능력이며 지하공작의 수완도 좀 알고있어 그가 화라즈로 떠나갔다는 말을 듣고는 월동용군량까지 다 장만할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밀영에 도착하여 처절한 참변의 흔적을 목격했을 때 실망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다. 하지만 불의적인 《토벌》이라는, 이 항일전에서 유격대가 무수히 당하는 정황에서 참모장이라고 매사가 순조롭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오중흡은 스스로 제 마음을 다잡았다. 대원들도 그렇게 리해시키며 락망하지 않도록 고무하려고 애썼다.

앞쪽에서 참모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동무가… 연미숙이 그런단 말이요?…》

수림속의 어스름속으로 두 그림자가 나란히 걸어갔다.

참모장과 리철금이였다.

8련대쪽으로 내려가는것 같았다.

《나약하거든… 나약해… 아무리 녀학생출신이라고 해두…》

《참모장동지, 어째 그러지 않겠습니까. 여기 오면 최성배동무를 만나리라… 그 희망에 풀뿌리를 씹으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글쎄… 에그, 기막혀라…》

《식사는 좀 드오?》

《식사가 뭡니까. 최성배동무와 같이 갔던 참모장동지가 곁에 와서 자초지종을 말하지 않으니 점점 옥생각을 해서… 낮에는 참모처로 찾아가겠다는걸 겨우 말렸습니다.》

《허 참… 나야 마음의 준비를 좀 시키자구 그랬지… 내가 최성배동무를 데리고 떠났는데 아무렴 연미숙동무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겠는가, 참…》

그 다음말은 멀어져 들리지도 않았다.

오중흡은 한숨을 조용히 내쉬며 저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게 되였다.

깨끗이 개인 밤하늘에 총총히 배긴 무수한 별들의 신비한 반짝임… 어느 별무리에선가 별찌 하나가 점선을 그으며 날아떨어졌다. 그 점선이 자기 마음도 누비며 지나가는듯 가슴이 찌르르 저려든다. 웬일인지 어릴적에 학교선생님인가 누구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별찌란 어마어마하게 큰 운석인데 그것이 지구에 떨어지면 대륙이 진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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