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시꺼먼 연기가 바람에 흩날려왔다. 기름이 타는듯한 매캐한 냄새가 밀림속에 가득찼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앞으로 걸어나가시다가 아름드리 가문비나무에 붙어서며 전방을 내다보시였다.

지난봄부터 밀영의 귀틀막들이 숨어있던 수풀과 그 뒤쪽 골짜기치기에서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오를뿐 사이는 괴괴한 정적에 싸여있었다. 아무리 지켜보며 귀를 기울여도 인적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적병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원들을 뒤쪽의 잡관목덤불속에 산개시켜놓은 오중흡이 얼굴빛이 새까매져 그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참모장동무랑 모두 어떻게 됐는가?》

그이께서 혼자 말씀으로 뇌이시였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적들은 왜 보이지 않소?》

《저 밀영을 다 요정낸 다음 불을 지르고 내려간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바로 그때였다.

오른쪽 산비탈중턱으로부터 웬 사람이 굴러내려오듯이 달려오며 환성도 비명도 아닌 절망적인 소리를 내질렀다.

《아- 아- 아- 》

맨머리바람에 람루한 군복차림, 얼굴이 숯처럼 시꺼먼 그 대원은 사령관동지앞으로 달려와 엎어지며 비통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오중흡이 그를 안아일으켰다.

《동무!… 동무!…》

경위중대의 조윤석이라는 대원이였다.

사령관동지- 쌀이- 식량이- 다 탔습니다-》

그 대원은 그이의 팔에 매달리며 황소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동무들은 다 어디 있소? 어떻게 됐소?》 하고 사령관동지께서 다급히 물으시였다.

그 대원이 단숨과 함께 두서없이 내뿜는 소리들은 밀영의 참사를 선히 떠오르게 하며 피비린내까지 풍기는듯싶었다.

… 새벽녘, 대여섯마리의 군견들이 난데없이 밀영에 달려들었다. 보초와 밖으로 달려나온 대원들한테 덮쳐들었다. 대원들이 영악한 짐승들을 안고 딩구는사이에 적병들이 달려들었다.

육박격투가 벌어졌다.

참모장이 싸창으로 개들과 적들을 쏴제끼며 그들을 산중턱의 유리한 지점으로 이끌었다. 모두 바위들이며 진대나무에 의지하여 적병들에게 몰사격을 퍼부었다.

《토벌대》는 두패로 나뉘여 한무리는 산중턱으로 기여오르며 불을 뿜는가 하면 다른 무리는 식량저장소들이 있는 골짜기치기로 밀려갔다.

놈들은 땅을 파헤치고 쌀가마니들을 끌어내여 여기저기 뿌려던지고는 거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달았다.

참모장의 명령으로 산릉선으로 치달아오르던 대원들이 그 불길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도로 뛰여내려가려고 하였다.

참모장은 사람이 살아있으면 식량은 또 구할수 있다고 하며 그들을 막았다.

그들은 《토벌》을 피해 높은 령들을 넘어가 숲속에서 자연동굴을 발견하고 거기에 새 밀영을 꾸리기 시작했다.

모두 말없이 락엽들을 그러모아 동굴바닥에 깔고 나무들을 메여나르며 엄청난 재앙에 허탈이 온 정신들을 수습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당장 사령부와 주력부대가 들이닥치면 어떻게 하는가, 공작해들인 식량을 다 태워버린 이 책임을 누가 지는가. 어떻게 되여,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불의에 이런 참사를 당하게 됐는가… 수군수군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참모장이 미심쩍은 포수로인을 놓아준 일이며 오백룡이 참모장의 의사를 거역하고 백계로씨야청년들을 살려보낸 문제며 식량을 운반해들일 때 쌀을 많이 흘린것들이 입에 올랐다.

구구한 론의끝에 그날밤 식량운반을 직접 조직했으며 백계로씨야청년들까지 놓아준 오백룡에게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그러자 박주호는 그날밤 자기가 지고 온 쌀가마니에 총탄구멍이 크게 나있었는데 거기로 쌀알이 계속 흘러내린것 같다고 고백해나섰다. 박주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군견들이 흘려진 그 쌀냄새를 맡으며 밀영으로 달려들었다는것이였다.

참모장은 성이 독같이 나서 바로 그 흘린 쌀이 화근이다, 누군가 그 구멍을 막으라고 일러주는것 같았는데 왜 막지 않았는가고 소리쳤다.

그 무렵, 식량공작에 나갔던 오백룡중대장이 돌아왔다. 그는 식량저장소들이 모조리 불타버리고 박주호가 이런 재난을 가져온 장본인이라는것을 알게 되자 제 정신이 아니였다.

《… 중대장동지는 첨엔 박주호를 쏴제낀다고 펄펄 뛰였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된 노릇인지 참모장동지한테 들이댔습니다. 그날밤 낟알을 흘린게 주호뿐인가, 이렇게 된 책임을 한사람한테 뒤집어씌우자는건 량심이… 량심이 없는짓이다! 이러면서… 저는 그러는것까지 보구 망원초에 나왔습니다. 사령관동지, 이 일을 어쩝니까. …》

그 대원은 고개를 푹 떨구고 울먹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연해지시였다. 여기에 참모장도 와있고 경위중대장도 와있는데 어째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림수산동무는 뭘하고 오백룡이는?… 둘이 다 졸구 있었는가. 박주호는 또 소대장이란 동무가 왜 그랬는가. 일이 생긴건 그렇다치고 의견대립까지 생긴건 무슨 까닭인가. 이 동무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한꺼번에 착잡한 의혹이 그이의 가슴에 휩쓸어들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허물어지는듯싶었으나 그 대원의 어깨를 흔들며 부드럽게 달래시였다.

《이러지 말라구. 자, 자… 큰일이 아니요. 우리가 오지 않았소. 우리가… 자, 자, 그만… 어디 가보자구!》

그이께서는 어떻게 밀영자리까지 달려갔는지 알지 못하시였다.

불타서 내려앉은 밀영자리의 재더미들에서는 희유스름한 실연기와 함께 거멓고 허연 재가루만 흩날리고 부엌아궁이며 부뚜막자리옆에서는 일상생활의 흔적인 깨여져나간 솥이며 법랑소랭이, 그릇쪼각들이 딩굴고있었다.

재무지속에 너부러진 적병의 시체, 샘터곁에 혀를 빼물고 늘어진 군견의 주검, 파헤쳐지고 불타버린 식량저장소들의 참상은 거기에서 어떤 혈투가 벌어졌는가를 력력히 보여주었다.

어느 식량저장소 근처에나 낟알섬이 타버린 재무지들이 그 무슨 봉분처럼 너저분히 널려있는데 그속에 늘어진 적병의 시체… 그 대가리에서 흘러내린 허연것이 언뜻 눈에 띄였다.

재무지에 찍힌 발자국들에는 아직도 단말마적인 함성이며 비명, 총성의 여운이 서려있는듯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너무나도 기막히고 절통하여 새까맣게 타버린 낟알을 한줌 쥐여올려 넋없이 들여다보시였다. 그이의 손가락짬으로 재가루가 새여내려 바람결에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이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시였다. 아, 희망의 밀영, 여기 오면 쌀이 있다고, 산더미처럼 쌓인 군량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고, 그 군량이면 부대들을 잘 먹이고 며칠 쉬고나서는 다음 작전에로 넘어갈수 있으리라… 그런 희망에 며칠씩 굶으면서도 모두 쓰러짐이 없이 행군해오지 않았던가! 아, 우리를 기다린건 이런 재더미란 말인가, 이 사실을 알면 주력부대의 저 대원들이 어떻게 될것인가. 다… 다… 쓰러지고말것이다! 쓰러지고만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윤석이라는 대원을 앞세우고 동굴밀영으로 찾아가다가 첫번째 령마루에서 《무산아재》로 소문난 녀대원 리철금을 만나 더 기막힌 소식을 들으시였다.

보기 좋은 중키에 몸도 마음도 남아장부처럼 든든해뵈는 그 녀대원은 어디로 가는지 산마루에서 정신없이 뛰여내려오다가 사령관동지를 띄여보자 걸음을 뚝 멈추며 침착하게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그리고는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주호소대장이 〈민생단〉의 잔여분자랍니다!》 의분에 찬 목소리였다. 눈물 한꼬치 보이지 않았다.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망해버린지 오랜 〈민생단〉이 여기서 또 나타났는가 엉?!》

《자기가 그랬습니다. 자기 입으로… 첨엔 박주호가 기장쌀을 흘리며 와서 밀영위치가 발견되구 〈토벌〉을 당했다구 떠들었는데… 이거야 참… 며칠후 모두 떨쳐나서 흘린 낟알을 주을 때 나한테는 흰쌀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두 기를 쓰며 주호소대장만 추궁하니까… 좋다, 내가 고의적으로 그랬다, 나는 〈민생단〉이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

그리고는 참모장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오백룡중대장이 자기더러 지금쯤 행군해오고있을 사령부로 뛰여가 보고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너무 억이 막히고 아연해져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그이께서와 7련대장 오중흡을 비롯한 일행이 《무산아재》를 따라 첫번째 령을 넘고 두번째 령마루로 치달아오를 때 동굴밀영에서는 참모장과 오백룡사이에 론쟁이 벌어지고있었다.

동굴안에서였다.

박주호소대장의 운명처리문제를 놓고 한시간남짓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다.

참모장은 박주호를 체포하여 혁명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백룡은 그가 분김에 한 소리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였다.

서로 엇갈린 의견들이 오가는 가운데 열이 올라 얼굴빛이 험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울기가 벌겋게 오른 오백룡이 먼저 소리쳤다.

《참모장동무, 정- 이러기우? 예?!-》

참모장은 얼굴이 해쓱해져서 오히려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건 내 의사나 감정과는 관계없는 문제요. 혁명규률의 요구란 말이요. 알겠소?》

《챠- 이거야… 여보시우, 규률두 사람이 만들구 사람이 다루는게 아닌가 말이우다?!》

《그렇지만… 중대장동무도 규률에 복종할줄 알아야 되오. 여보, 본인이 실토하는데 가만히 놔두면 우리 대오의 규률이 뭐가 되오.

사령부에서 멀리 떨어진데라고 혁명규률에서 벗어난데라고 생각하오 엉?

본인이 실토했단 말이요. 본인이!…》

오백룡은 속이 타다 못해 얼굴이 비양조로 이그러졌다.

《챠- 이거… 실토는 무슨 실토요! 분김에… 결김에 나온 소리를 가지구. 박주호, 저놈 밸통이 어떻게 돼먹었는지 몰라서 이러시우 예?! 챠- 이거야, 박주호는 〈민생단〉이구 나는… 이 백룡이는 관동군사령관이다. 이래 보시우. 누가 믿나… 핫하하…》

오백룡은 턱을 쳐들며 앙천대소하고 림수산은 얼굴이 새파래서 발을 탕 굴렀다.

《중대장동무!》

참모장의 노성이 굴안에 메아리쳤다. 천반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날아떨어졌다.

오백룡은 얼굴빛이 정색해져 열기가 어릉거리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럼 좀 말해봅시다. 그날밤 쌀을 흘린건 그 동무 혼자뿐이 아니요. 여러 동무들이 그렇게 말합디다. 한데 그한테만 감투를 씌우구 죄인으로 몰아대며 〈토벌〉에 식량이 저렇게 된 책임을 몽땅 뒤집어씌우자고 하니 속이 뒤틀리지 않겠는가 말이우. 나는 터놓구 말하는데 여기에 무슨 감정이 깔려있지 않는가 생각하우. 달리는 생각할수 없소!》

《뭐? 뭐라구? 동무는 비켜서오. 내가 다 하겠소!》

그리고 림수산은 결패스럽게 돌아서 굴안에서 걸어나갔다.

그의 성급한 발자욱소리가 굴안에 메아리쳤다. 저벅… 저벅… 저벅…

그는 열댓걸음도 못나가 흠칫 놀라며 멎어섰다.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가 동굴어구를 막고있었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격한 음성이 굴안으로 울려왔다.

《참모장동무- 박주호가- 어디 있소?》

《…》

《어디 있소?-》

오백룡이 반가움과 자책감에 허둥거리며 달려나갔다.

여느 대원들은 모두 밀영건설에 떨쳐나서 통나무들이며 돌들을 메여나르고있는데 박주호는 골바닥의 앙상한 강대나무밑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8련대의 마영복이라는 대원이 장총을 들고 그 둘레를 느릿느릿 돌다가 자기네쪽으로 다가오는 사령관동지와 오중흡을 비롯한 일행을 알아보고는 화닥 놀라 박주호한테 무엇이라고 소리쳤다.

박주호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모든것을 초탈한 사람의 숙연한 자세로 서있었지만 초췌한 얼굴에는 비장한 감정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소슬한 바람에 이마로 흘러내려 나붓거리는 부연 머리칼, 육박전투의 흔적인듯 퍼렇게 피멍이 든 관자노리, 펄럭이는 람루한 군복자락이며 찢어진 바지가랭이, 쌀이 탄 재무지를 헤집어봐서인가 아직도 시꺼먼 재가 묻어있는 손, 바지혼솔에 붙어 우들우들 떠는 손이라고 할수 없는 그 손…

가까이 다가서다가 말고 눈길을 떨구고 서있는 박주호를 지켜보는 사령관동지의 눈앞에 지난해 겨울 남패자를 중중첩첩으로 둘러싼 왜군의 포위를 뚫고나올 때 일이 언뜻 비껴들었다.

그때 박주호는 돌파조의 앞장에서 기여나가다가 우연히 맞다든 적병을 때려엎고는 놈이 소리를 지를세라 깔고앉아 입에 눈덩이를 쑤셔넣었던것이다. …

그이께서는 가슴이 못내 쓰려났지만 터져오르는 분격을 참을길 없어 그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 어깨를 와락 거머쥐시고 세차게 흔드시였다.

《주호, 박주호동무, 대답하라구! 네가 진짜 〈민생단〉이라면 남패자에서 포위를 돌파할 때 그 좋은 기회에 왜 총소리를 내지 않았어?! 맞다들린 놈을 죽이면서 왜 총소리를 내지 않았는가, 엉?!》

박주호는 그 한가지 물음에 그만 머리를 싸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령관동지-

그리고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식량을 다 태웠으니 오백룡이나 누구인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나혼자 철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그랬노라고 토설하였다.

그이께서는 너무 격한 나머지 순간에 탁 갈리신 음성으로 소리치시였다.

《너무 험하게 억지다짐으로 몰아대니까 그랬단 말이지. 혁명군밥을 몇해씩이나 먹구서 민족을, 동지들을, 나를 배반한 역적으로 죽고싶단 말인가?! 혁명가의 영예를, 존엄을 저버리기 그렇게도 헐했단 말인가?! 〈민생단〉… 입에 올리기 더럽지 않는가. 자그만치 혁명군 소대장이… 아무리 속이 뒤틀려도 그렇지. 식량이 다 타버린건 문제도 아니야. 스스로 명예를 더럽힌 이 한가지만은 용서할수 없소! 군복을 벗어놓구 갈데로 가라구!》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눈에 번개가 번뜩이였다.

어느새 달려왔는지 담을 이루어 둘러선 대원들이 그이의 앞으로 우르르 밀려나오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께서는 팔을 넓게 벌려 앞장에서 날아드는 어린 대원 두세명을 한품에 안고 그들의 등을 두드리고 쓸어만지시였다.

《동무들, 수고했소!… 수고했소!》

그이의 손이며 팔을 붙잡고 울고웃는 대원들이 있는가 하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불바다, 피바다를 헤쳐온 그이의 다리를 그러안고 소리내여 우는 대원도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토벌》을 당한 그 가책때문인지 문득 그늘이 비끼는 대원들의 얼굴, 얼굴들을 정겹게 둘러보며 시원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식량이 다 타버린건 아쉽고 분하지만 큰 문제가 아니요. 나는 동무들이 모두 이렇게 살아있는게 제일 기쁘오. 식량은 이제 우리가 머리를 쓰고 힘을 합쳐 새롭게 공작을 벌리면 얼마든지 장만할수 있소. 어디서나 인민들이 우리를 지지한다는것을 잊지 마오. 나는 동무들을 이렇게 다시 만난게 제일 기쁘오!》

그날밤 사령관동지께서는 새로 도착한 주력부대의 숙영지들을 돌아본 다음 사령부천막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이 마냥 무거워 오래동안 앉아계시였다.

처음에는 박주호에 대한 걱정때문이였다. 낮에는 준절하게 꾸짖고 갈데로 가라고 했지만 지금은 못내 가슴이 아파나… 그 강대나무밑에 머리를 떨구고 그냥 서있었는지, 오백룡중대장한테 일러놓기는 했지만 그가 풀뿌리죽이나마 저녁식사는 했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였다.

그이의 생각은 끝이 없었다. 박주호가 오늘 혁명가의 절개, 영예란 얼마나 신성한것이며 그것을 함부로 더럽혀서는 안된다는것을 깊이, 가슴깊이 느꼈는가… 그이께서는 물론 박주호가 속이 뒤틀려 《민생단》이란 소리까지 하게 됐다는것을 잘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일상생활속에서도 가장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것, 생명처럼 아껴야 하는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더럽히는데 습관되면 생사판가리의 준엄한 시각에는 그 귀중한것을 쉽게 저버릴수도 있기때문에 그처럼 랭혹하게 비판하시였던것이다.

어느덧 그이의 생각은 림수산에게로 옮겨갔다.

물론 지금껏 지휘관으로서 작풍상 이런저런 결함은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런 결함들을 크게 보지 않으시였다. 투쟁과 생활속에서 고쳐지리라고 믿으시였다.

하지만 오늘 일은?… 박주호를 그렇듯 극단적으로 험하게 몰아댄것은 뜻밖이였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오는것인가?… 사람이 차거워서인가… 좌경적인데가 있었기때문인가… 량심문제인가?…)

그이의 상념은 가을밤과 더불어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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