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그날 참모장의 뜻밖의 출현은 밀영에 남아있는 모든 대원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충격을 주었으며 착잡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한명찬은 우선 식량공작에 나가있는 오백룡중대장한테 련락을 띄우고 참모장의 병구완을 조직하였다.

적막속에 묻혀있던 밀영이 발칵 뒤집혀졌다.

대원들은 온돌을 놓은 외딴 귀틀막안에 참모장을 눕혀놓고 바깥부엌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가 덥힌다, 식사준비를 한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귀틀막안에 누워있는 참모장을 들여다보고는 부엌아궁이앞에 모여서서 혹은 귀틀집모퉁이에 둘러서서 수군거리였다. … 이러한 때 참모장이 저렇게 상한 몸으로 혼자 여기로 온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사령부와 주력부대들에 무슨 일이, 아주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 왜놈들한테 완전히 포위되여 참모장 혼자 빠져나왔는가, 전쟁국면에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생겨 우리 소부대를 데리러 왔는가라고…

마영복이만은 침착하면서도 시름겨운 얼굴로 자기 할바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우선 숭늉을 덥혀서 참모장의 입에 숟가락으로 여러번 떠넣어주었다. 그리고는 깨끗한 수건으로 그의 입가장자리를 씻어준 다음 다시 조용히 눕히고는 미음을 쑤기 시작하였다. 한편 가마에 맑은 샘물을 붓고 몸을 씻기 알맞춤하게 덥히였다.

미음이 다 된 다음에는 입으로 후- 후- 불어 넘기기 좋게 식힌 다음 환자에게 한술 두술 떠먹였다.

밤이 깊어 그는 환자의 옷을 조심조심 벗긴 다음 더운 물에 적신 수건을 꼭 짜서 얼굴을 정히 닦아주고 목이며 어깨, 가슴팍에 말라붙은 피를 씻어냈다.

참모장은 그러는줄도 모르고 이따금 미간을 찌프릴사 하고 신음소리를 내는가 하면 인차 깊은 잠에 노그라떨어져 코를 골았다.

옛 전령병은 환자구완을 하면서 절대 누구의 손을 빌리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 하려고 하였다.

한명찬은 그 눈치를 알고 환자의 몸에 굳이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곁에서 그의 손놀림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마영복이한테서는 전령병시절의 지성, 그때 못다한 정성이 고스란히 피여오르는것 같았다.

가슴의 피흔적을 말끔히 씻어낸 마영복은 앙상하게 드러난 참모장의 쇄골을 몇번이고 쓸어만졌는데 그때 그의 눈언저리에 물기가 반짝이였다.

한명찬은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어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자지 못하고 귀틀막앞에 모여서있던 대원들이 근심어린 얼굴로 그한테로 다가왔다.

한명찬은 참모장동지는 크게 부상당한데도 없고 미음이랑도 자신것만큼 인차 소생할것이라는 위안의 말을 하면서 마음놓고 어서 가서 자라고 대원들의 등을 떠밀어 병실에 보내였다.

그리고는 부엌아궁이앞에 앉아 거멓게 스러져가는 잉걸불에 장작개비들을 넣어주다가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

지금은 벌써 아득한 옛일로 생각되는 룡정의 은진중학교시절 한명찬은 동향의 대성중학교 상급생 권영벽을 통하여 림수산을 알게 되였다.

1학년때였다. 어느날 밤 그는 권영벽에게 이끌려 독서회에 참가하였다가 거기서 처음으로 림수산을 보게 되였다.

훤칠한 키에 얼굴모습이 준수한 그는 남포등불빛에 눈을 끌날같이 번뜩이며 사회주의10월혁명과 중국무산혁명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레닌과 쓰딸린, 모택동과 주덕의 이름들을 친근하게 부르며 말하였다.

뒤에 앉은 두 녀학생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대성중학교 5학년생인 연사가 국제당 어느 지하아지트와의 련계속에 활동하는 청년투사라는것도 알게 되였다. 그밤 한명찬에게는 그가 높이 쳐들어흔드는 주먹에 의하여 세상의 불의와 암흑이 짓부셔지고 새시대의 려명이 밝아오는것 같았다.

5. 30폭동의 실패후 일제의 체포소동이 간도땅을 휩쓸 때 은진중학의 풋내기 독서회원은 룡정의 어느 뒤골목 벽돌담벽에 붙어있는 령사관경찰의 광고문에서 림수산의 사진과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앞에 모여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범인이 폭동때 무고한 일본상인 두명을 사살하고 략탈한 거액의 돈을 중국공산당계렬의 요인에게 넘겨주려다가 체포되였다 류치장의 벽을 뚫고 도망쳤다고 수군거렸다. 광고는 이자를 숨겨주는자는 엄벌에 처하고 이자의 행처를 통고해주는 《량민》에게는 상금을 준다고 소리치고있었다.

사흘뒤 독서회의 한 동료가 찾아와 경찰이 피눈이 되여 찾고있는 혁명가를 도와주자고, 지금 애국자들은 은밀히 모금운동을 벌리고있는데 우리도 돈이나 돈이 될수 있는것을 내자고 하였다.

한명찬은 그 혁명가가 틀림없이 림수산일것이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보내온 하숙비와 신발값을 다 털어 내놓았다. 그뒤 림수산의 운명에 대한 소식은 감감하였다. 대신에 사라진 그 인물에 대한 풍설은 봄우뢰처럼 환희와 찬탄을 불러일으키며 청년학생들속에 파다하게 퍼졌다.

림수산은 중국공산당 동만특위의 지시로 반일무장대를 조직하려고 준비해왔다. 부친은 김좌진휘하에서 싸운 애국렬사였다. 여러차례의 《토벌》에서 일가가 다 몰살되였다. 등등… 그리고 청운의 뜻을 품고 로씨야로 망명하였다거나 황포군관학교인가 운남군관학교인가 어디에서 군사를 배운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때 권영벽은 일제의 폭압소동을 피하여 부모님들이 소작살이를 하고있는 연길현 구수애 동거우라는 산간오지에 피신했다가 다시 룡정에 나타나 추수투쟁과 춘황투쟁때 학생운동의 선두에 섰다.

그후 그는 일제의 체포소동을 피하여 구수애에 은신했으며 대성중학을 아주 중퇴하고 향촌에서 청소년들과 농민들의 반일운동을 지도하였다.

한명찬은 겨울방학때 집에 돌아와 권영벽의 혁명사업을 도우면서 이전에 룡정에서 벌어졌던 림수산의 구출운동도 권영벽이 조직한것이였다는것을 비로소 알게 되였다. 그때 권영벽은 림수산이 지금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반일유격대에서 지휘관으로 싸우고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후 한명찬은 권영벽의 추천으로 조선인민혁명군에 참군하게 되였다. 어느때인가 눈보라치는 령을 넘다가 뜻밖에도 림수산을 띄여보게 되였다.

다른 련대의 중대장인 림수산은 싸창으로 하늘을 찌르며 대원들을 향해 기운을 내자, 저 령마루에 올라서면 무변광대한 대지가 보인다고 웨치였다. 왕청련대의 애젊은 대원은 반가움에 겨워 그한테로 달려가 격정이 북받쳐 두서없는 말로 룡정시절의 사연들을 상기시키며 너무 기뻐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그때 림수산은 말로는 반갑다고 했으나 잘 알아보지 못하는것 같았다. 애젊은 대원은 무안이라도 당한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후에는 혹시 만나도 담담하게 거수경례나 붙이고 지나치려고 했으나 림수산은 그러지 않았다. 《룡정친구》라고 큰소리로 불러주는가 하면 다정한 말도 몇마디 나누었다. 무등 기뻤다.

그는 풍설처럼 날아드는 이웃부대의 전투소식이며 림수산의 무훈에 대하여 들을 때면 은근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가 주력부대의 참모장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며칠동안 강행군을 해도 피로를 몰랐다. 그뿐아니라 룡정시절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금운동에 나섰던 이야기랑 하며 룡정시절 선배이고 친우였다고 자랑하고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품이 천박해지는것 같아 가까스로 참았다.

그가 참모장으로 와서 달포쯤 지나 항일련군의 몇몇 요인들로부터 축하인사가 인편으로 전해왔으며 이웃부대로부터는 감동적인 소문도 날아왔다. 림수산이 떠날 때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몹시 섭섭해하였는데 녀대원들은 어찌나 울었는지 눈두덩이 퉁퉁 부었다는것이였다.

주력부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새 참모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그는 전투의 나날속에 기민한 야간기습과 매복전, 대담무쌍한 유인전으로 왜군들을 무리로 쓸어눕혀 그 기대이상의 전공을 세웠으며 놀라운 군사적수완을 보여주었다. 특히 열하원정의 실패로 치명적인 손실을 당하고 항일련군부대들이 총퇴각을 하다가 왜군의 포위환속에 들어 완전괴멸의 운명에 처했을 때 구출작전을 벌려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조중련합전선의 뉴대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대담한 기습작전과 유인작전을 벌려 왜군의 포위환을 혼란에 빠뜨리고 항일련군 1군장 양정우를 구원해내는데서 한 중대장과 함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남패자에 도착한 양정우군장은 감사의 정에 목이 메여 사령관동지께 거듭거듭 절을 하고 중대장에게는 권총을, 림수산에게는 자신이 애용하던 회중시계까지 선사하였다. 그 광경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한명찬은 그때 룡정시절 림수산을 구원해준 권영벽을 생각했으며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는 속담까지 상기하였다. …

그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그 준수한 모습이며 도도한 기상은 어디로 갔는가. …

꺼져들어간 눈확이며 패인 볼에 서린 그늘, 맥없이 벌려진 입귀에서 번들거리는 침… 그런 표정들은 심한 피로뿐아니라 그 어떤 정신적인 좌절과 허탈을 말해주는것 같았다. 더 나아가서 주력부대의 절망적인 사태를 말해주는것 같았다.

혼수상태에 빠진채 옛 전령병의 구완을 받고있는 참모장의 초췌한 모습을 지켜보는 한명찬은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싶었다. 저도 모르게 모두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아무리 생각을 굴려봐야 이러한 때 사령부에 없어서는 안될 참모장이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 알수 없었다. 웬만한 련락이면 어느 전령병이… 특별히 중요한 련락이면 전달장쯤이 와도 될것이다. 그런데 참모장이?… 다시 들어가 그를 흔들어깨워 묻고싶었지만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한명찬이 부지깽이로 아궁이속의 잉걸불을 헤집어놓는데 방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같은것이 몇마디 나고 참모장을 찾는 다급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윽고 마영복이 뛰여나와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머리를 싸쥐고 몸부림쳤다.

한명찬은 그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영복이, 영복이 왜 이러나?!》

《참모장동지가… 참모장이… 헛소린지 어떻게 나만 살았는가… 이러지 않겠소. 헛소리라도 그렇지 왜 그런 소리를 하겠소? 주력부대가… 소대장동지, 주력부대가 다 어떻게 된게 아닌가유? 예?!》

《영복이, 무슨 소리를 해? 엉?!》

성벽처럼 우중충하게 둘러선 수림너머 먼 남쪽하늘가에서 우뢰소리같은것이 우르릉… 우르릉… 울려왔다. 무서운 재난의 예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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