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눈앞에서 노랗고 파란 반점들이 서서히 날아돌았다. 땅바닥이 움찔거리고 어딘가 먼곳에서 아츠러운 바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다음순간 울컥 치미는 현훈증에 눈앞이 휙- 돌아갔으나 한명찬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강대나무를 꽉 붙안고 그 터슬터슬한 껍질에 이마를 박았다.

《어-》

그는 가까이에 있는 대원을 석쉼한 소리로 찾았다.

《여- 영복이-》

《…》

《영복동무-》

가까이에 있는줄로 알았던 마영복이한테서는 아무런 응대도 없다.

어디로… 어디로 갔을가?…

너울너울 날아내리는 락엽들만이 그의 희누렇게 퇴색한 군복어깨며 잔등에 붙어 한들거리였다.

한명찬이와 마영복이… 그들은 두어시간전부터 밀영주변의 수림속에서 산열매며 풀뿌리를 캐고있었다.

동무들이 적의 봉쇄망을 은밀히 빠져나가 목숨걸고 구해온 얼마 안되는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오백룡중대장이 이끄는 소부대는 여기 화라즈분지에 와서 한달째 식량공작을 하고있었다. 가을걷이철이지만 일제의 잔인무도한 봉쇄정책으로 하여 낟알 한두섬을 공작하려고 해도 필사의 각오로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달전 여기로 올 때 그들은 화룡과 안도일대는 이전부터 반일감정과 혁명성이 강한 인민들이 살고있어 주민구성이 좋은데다가 어랑촌유격근거지가 해산될 때 이주해온 농민들이 많이 살고 지하조직들도 비교적 튼튼히 꾸려져있어 식량공작에 유리할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령부에서도 바로 그런 타산으로 소부대를 여기로 파견했던것이다.

그러나 현지에 와보니 공작조건이 생각과는 달랐다. 엄혹했다. 왜놈들의 거듭되는 소탕작전으로 지하조직은 거의다 파괴되였으며 민중은 의기저상되여있었다.

놈들은 산골치기들에 산재해있는 오막살이농가들을 불태우거나 허물어버리고 산골사람들까지 토성을 둘러친 집단부락에 몰아넣고 산에서 싸우고있는 유격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출입과 통행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일체 량곡매매를 엄금하고 쌀 한되박이라도 새여나가지 못하게 엄중히 단속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성미가 과격한 오백룡중대장은 한달이 지나도록 낟알 네댓섬밖에 구해들이지 못하자 가슴이 타번져 얼굴이 시꺼매지고 노상 웃음이 떠날줄 모르던 입술까지 초들초들 말라터져 껍질이 일었다.

그가 요구한것도 아니고 누가 호소한것도 아니였으나 작식당번들까지도 그 낟알섬들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였다. 반드시 상급이나 동무들에게 좁쌀이나 피쌀을 얼마나 퍼내야 하는가를 물어보고 그속에 쌀바가지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들은 풀뿌리를 짓이겨서 좁쌀이나 강냉이가루 같은데 버무려 푹 끓인 멀건죽으로 끼니를 에우기 일쑤였다.

한명찬은 자기한테 일어난 갑작스러운 현훈증이 허기때문이라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는 강대나무를 붙안고 잠자코있다가 속이 좀 가라앉자 마영복이 어디로 갔을가싶어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리였다.

마영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 웃쪽 우중충한 수림속에서 이름모를 메새가 푸드덕거리며 밸을 토하는듯 한 소리를 내질렀다.

삐약- 삐약-

한명찬은 훌쭉한 배낭을 어깨에 건채 미심결에 그쪽으로 비청거리며 걸어올라갔다. 그의 배낭속에는 갖가지 풀뿌리며 서리를 맞아 시들해진 다래열매들이 들어있었다.

한참 걸어올라가니 어느 세월에 벼락을 맞았는지 숯처럼 거멓게 탄 나무그루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너렁청한 공지가 나타나고 그 저쪽가녁에 꺼꺼부정한 마영복의 자태가 보였다.

마영복은 무엇인가를 붙안고 앞뒤로 흔들어대며 그것을 뽑으려는듯 안깐힘을 썼다. 그러다가 결이 난듯 엑- 퉤-하고 걸쭉한 욕설을 한마디 던지고는 나무줄기같은것을 움켜잡고 뒤로 잡아끌며 허리를 활등처럼 구부리였다.

마영복은 그 일에 어찌나 열중했던지 소대장이 다가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가 끙끙 뚝심을 쓸 때마다 파헤쳐놓은 흙구뎅이속에 드러난 칡뿌리들이 찍… 찌직… 하고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었다.

한명찬이 흙버럭속에 구겨박힌 조막도끼를 들고 구뎅이속에 뛰여들어 불이 나게 잔뿌리들을 쳐주니 여러갈래로 엉킨 칡뿌리가 건듯 들리고 그 바람에 마영복이 뒤로 벌렁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웃지도 못하고 비지땀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눈만 디룩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송아지만 한 노루라도 잡아엎은 포수처럼 기세등등하여 두손을 허리에 올리고 로획물을 굽어보며 벙글거렸다.

《히야- 굉장한데-》

그러고는 미끈한 뿌리들을 슬슬 쓸어만졌다.

《이거야 노루다리만 하지 않습니까. 여기… 여긴 문어다리구… 여긴 뱀장어라…》

한명찬소대장은 그 소리때문인지 문득 창자가 쓰려났지만 웃으며 맞장구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허허… 그래…》

《짓찧겨서 즙을 내면 구수하구 달거우다. …》

《아무 쌀이나 좀 보태면 서너끼 량식은 되겠소. 횡재를 했소.》

《이젠 그만하구 갑시다.》

《가자구.》

마영복은 일어나려다가 기운을 너무 쓴탓에 허리가 아픈지 좀 숨이나 돌리고 가자며 잔디우에 벌렁 드러누웠다.

한명찬이도 온몸이 녹작지근해서 그 옆에 누웠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았다.

나무가지들사이로 바라보이는 아스라하게 높은 하늘… 씻어낸듯이 깨끗한 그 파란 공간에는 구름 한점, 티끝 하나 보이지 않는데 여기저기 나무우듬지들이며 가지들에서 누런 락엽들만이 시름없이 너울너울 날아내릴뿐… 그것들은 이 림간의 공지에 깃든 고요며 두 빨찌산대원의 마음을 아늑히 다독여주는가 하면 가버린 여름, 혈전과 행군이 계속된 그 피어린 계절과 닥쳐오는 겨울의 엄혹한 시련을 상기시켜 잔잔하던 가슴속에 격정의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마영복이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다.

《휴- 가을이구나!》

《…》

《젠장, 먹지 않구두 이런데서 며칠 푹 자구나면 살이 질것 같수다.》

한명찬이 그의 마음을 달래여주듯이 은근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가을이야… 가을… 후- 옛날 사람들은 가을이 오면 천고마비라… 이런 소리를 했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진다는 소리네.》

《천…고…마비? 허, 그거 참 신통한 말이오다. 여름내 고역에 시달려 바싹 여윈 말두 가을이 되면 몸이 어지간히 푸드러지지요. 말문세야 내가 좀 알지오다.》

마영복은 제나름의 회억에 잠긴듯 가느스름하게 뜬 눈이 그윽하게 빛났다.

《후- 마구간에서 말과 함께 먹구 자며 머슴을 살던 이 마영복이 혁명군이 돼서 아는것두 많은 소대장동지하구 이런 잔디밭에 누워 저런 하늘을 쳐다보게 될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소다. 정말 사람의 신수라는건 모를게지요.》

《…》

한명찬은 문득 엄습해드는 시름겨운 생각에 가슴이 짓눌려 그의 인생타령에 응대를 하지 못하였다. 마영복은 그를 흘깃 돌아보더니 무엇을 느꼈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원 참, 여름철에 올기강에서 오백룡중대장은 나한테 이렇게 묻지 않겠소다. 이제 나라가 독립이 되믄 무슨 일을 하겠는가? 어찌나 태평스러운지… 그런데 사령부에서는 왜, 왜 아무 소식도 없소? 우리가 여기 와서 식량공작을 한지 한달이 지났는데 어째 감감 무소식이요? 주력부대가 여기로 인차 온다고 했는데… 다른데루 빠져나갔다면 통신원이라두 보냈겠는데 …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소대장동지, 짐작이 가는게 없수다? 예?》

《이제 소식이 있겠지… 영복이, 마음을 누긋하게 먹으라구….》

《에익, 속이 상해서… 아무 소식이 없는것두 그렇지만… 식량을 얼마 구해들이지 못했는데 대부대가 들이닥쳐도 야단이 아니우다? 예?》

《…》

《사령관동지앞에… 동지들앞에 뭐라구 변명하겠소. 기가 막혀서…》

《자꾸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구. 속이 타번져 견디지 못해… 이제 소식도 오고 식량공작도 제대로 돼나가겠지. …》

《휴-》

 

×

 

한명찬은 이를데 없이 어리무던하면서도 우직한데가 있는 이 대원에 대하여 평소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있었다.

마영복의 입대경위에는 좀 기구한데가 있었다.

작년여름 림강쪽에 나가 국경일대에 대한 정찰임무를 마치고 사령부로 돌아오던 한명찬의 소부대는 밀림속을 행군하다가 웬 수상한 그림자가 자기네를 몰래 뒤따른다는것을 눈치채게 되였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면 그림자는 숲의 어스름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런 일이 몇번 거듭되였다. 한명찬과 그의 대원들은 밀정이라고 단정하였다.

새벽녘에 세 대원이 산릉선의 칼바위뒤에 숨었다가 왈칵 달려나가 붙잡아보니 더벅머리에 옷차림이 람루한 총각이였다. 눈두덩이 부어보이는 거적눈, 두툼한 입술, 얼굴은 좀 침울해보였다.

한명찬은 넌 어디서 사는 누구인데 우리뒤를 왜 그냥 따라왔느냐고 따져물었다.

더벅머리총각은 고개를 떨구고 쿨쩍거리기만 하였다. 처음에는 벙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묻다 못해 부아가 나서 발을 탕 구르며 소리쳤다. 왜 우리를 그냥 따라왔느냐, 밀정이 아닌가 해서 그러는데 묻는 말에 좀 대답하란 말이다라고…

총각은 밀정이라는 소리에 와뜰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불이 황황 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리고는 비로소 떠듬떠듬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은 마영복, 열네살때 마을에 흑사병이 돌아 한달사이에 부모형제들을 다 잃고 고아로 된 그는 인정깊은 한마을 어른의 주선으로 녕안현의 중국인지주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주인어른은 그의 나이며 성과 이름을 물어보고나서 너는 성도 마씨겠다, 말하고 인연이 깊어질 팔자이니 마구간에 가서 일하라고 분부하였다.

그가 하는 일이란 마구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말을 먹이고 거두는 일이였다. 밤이면 마구간에서 말과 같이 자고 낮이면 말을 끌고 들판으로 나가 풀을 먹이고 강물에 들어가 미역도 시키고… 다리며 발통도 깨끗이 씻어주었다.

미끈하고 영특하게 생긴 가라말은 그 지성을 느끼는듯 그가 외로움과 슬픔에 젖어 풀밭에 호젓하게 앉아있으면 곁으로 다가와 시큼한 코김을 내불며 머리정수리며 잔등을 다정하게 핥아주었다. 인간세상의 랭대에 습관된 그한테는 짐승의 그런 애무도 여간 위안으로 되지 않았다.

그는 가라말에 정을 붙이고 살았다. 분한 일이 생기면 말의 목을 그러안고 하소연하였으며 어찌다가 먹을것이 생기면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

어느날 고역에 시달린 그가 나무그늘에서 새우잠을 자고나니 그 마음의 의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때마침 현성에 볼 일이 있어 가려고 서두르던 주인은 자기 말이 잃어진것을 알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머리며 어깨를 말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피가 터졌다. 그래도 가라말의 배신적인 도주에 울분이 터져올라 그 매가 아픈줄 몰랐다.

주인어른은 밥도 먹이지 않고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말을 찾아오라고… 그는 말을 찾아 사흘이나 산과 들을 헤매다가 현성근처종마장의 말무리들속에서 《배신자》를 찾았다. 그놈이 들판을 지나가는 어느 암말한테 정분이 나서 도망쳤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놈을 찾아 끌고나오다가 무엇으로 어떻게 때렸던지 가라말은 껑충 뛰여올랐다가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지르며 길바닥에 꼬꾸라져 뻐드럭거렸다.

더럭 겁이 났다.

줄행랑을 놓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지주집에 불이 일어 마구간과 창고가 다 타버렸다.

머슴이 앙심을 품고 불을 질렀다고 신고되여 경찰이 현안에 수사망을 펼치였다.

마영복은 거지로 되여 도시와 농촌 구석진데로만 찾아다니며 류랑걸식하다가 림강의 산골에서 소부대를 띄여보고 뒤를 따르게 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한 대원이 동정심에 그를 도와주고싶었는지 네가 지주집에 불을 지른게 아닌가고 물었다.

마영복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정상이 가긍한 더벅머리총각을 데리고 떠났는데 이튿날부터 오한이 나 덜덜 떨며 몹시 앓았다. 몹쓸 전염병이 아닌가 싶어 그한테 로자까지 주며 민가에 내려가 치료한 다음 다시 찾아오라고 일렀다. 그는 순응하여 돌아섰는데 한참 가다가 돌아보면 다시 따라오는것이였다.

대원들은 성이 독같이 나서 그를 붙잡아놓고 발을 탕탕 구르며 부대에 전염병을 퍼뜨리자고 그냥 따라오느냐, 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을렀다.

그러자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 병은 몹쓸 전염병이 아니라 고뿔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유격대원으로 받을수 없으면 짐군으로라도 받아달라, 웬만 한 짐을 지고 하루 백리는 뛸수 있다고 애걸하였다.

그 사연이 사령부에 보고되지 않을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한번 만나보고 대원으로 받으라고, 새 군복도 입히고 총도 메워주라고 하시였다.

마영복은 한명찬이네 소대대원으로 되였다. 그런데 기구한 운명의 흔적인지 《고뿔》이란 별명이 그냥 따라다녔다.

장난기 심한 대원들은 그를 군적의 이름대로 부르지 않고 《여, 고뿔이!》, 《야, 고뿔아!》하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림수산참모장이 중대에 내려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 대오앞에서 엄하게 지적하였다. … 혁명동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렇게 얕잡아 부르는것은 지배계급, 착취계급의 악습이라고… 그때 마영복은 눈물이 그렁하여 참모장을 쳐다보았다.

두달후 마영복은 참모장의 전령병으로 올라갔으며 행군할 때면 그의 침구류며 천막까지 지고 씽씽 뛰여다녔다. 어쨌든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어떤 때에는 참모장을 따라 중대에 내려와서는 쌍안경까지 가슴앞에 드리우고 다녔는데 애숭이대원들은 선망의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금년봄 참모장은 그를 참모처에서 한명찬의 소대로 도로 내려보냈다.

그 조치에는 마영복이를 전투소대에서 더 단련시켜 끌끌한 혁명가로 키우려는 웅심깊은 의도도 깃들어있는듯싶었다.

한명찬과 온 소대가 그를 반겨맞았다. 그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한명찬은 룡정시절부터 림수산을 존경해온데다가 자신이 한때 그의 밑에서 싸운적도 있어 선후배사이와 비슷한 친근감으로 마영복을 대하게 되였다.…

폭신하고 따스한 잔디밭에 한동안 가지런히 누워있던 두사람은 몸이 좀 거뜬해진것 같아 일어났다.

 

×

 

그들은 밀영쪽으로 향하였다.

소대장은 쟁기들을 두어깨에 갈라메고 대원은 칡뿌리를 둘러메고 수림속을 누벼나갔다.

괴괴한 정적이 흐르던 수림속에는 락엽이 밟히는 소리, 수풀이 군복들에 스치는 소리,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가득찼다.

한참 걸음을 다그치다가 멎어서면 적막감이 엄습해들고 귀안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명찬은 밀림의 바다속에 깃든 이 정적이 느닷없이 불길한 전조로 느껴지며 속이 뒤숭숭해졌다. 어디서인가 엄청난 재난의 그림자가 밀려오는것만 같았다.

마영복이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있는듯 가맣게 질린 얼굴로 숲속을 뚜릿뚜릿 둘러보다가 그를 빤히 지켜보는것이였다.

한명찬은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여가며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겨딛게 되였다.

영복은 그러는것이 언짢아진듯 앞에서 수풀을 왁살스럽게 헤가르며 발걸음을 억척스럽게 다그쳤다.

어딘가 멀리에서 쇠북소리나 인경소리와도 같은 떨림소리가 아스라하니 들려왔다.

 

떵- 떵- 떵-

 

야무지면서도 웅글은 그 울림소리는 한명찬의 뇌리와 가슴속에까지 메아리치며 속을 발칵 뒤집어놓는듯싶었다.

마영복이도 전기에 닿은듯 와뜰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크게 뜬 그의 눈은 이렇게 부르짖는듯 했다.

(이게 무슨 소리요?!)

 

텅- 떵- 떡

 

두사람은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그러나 다시는 울리지 않았다.

엄습해드는 적막감… 귀안에서 그 소리의 여운이 그냥 울리는듯… 두사람은 입도 벌리지 못하였다. 바위돌처럼 굳어져 서로 얼굴을 지켜볼뿐…

한명찬의 뇌리에 착잡한 생각들이 회오리쳤다. 그것은 분명히 후려치는 몽둥이에 얻어맞은 강대나무의 떨림소리였다. 전우들을 찾거나 자기위치를 알리는 빨찌산식신호이다. 누구인가 우리한테로 오고있는게 아닌가. 밀영으로 찾아오다가 향방을 몰라 신호한것이 아닌가. 누구인가? 아 도대체 누가 오는것인가? 사령부에서 급파한 통신원일수 있다. 아니, 아니, 적일수도 있다. 왜놈들의 모략일수도 있다. …

마영복이 휘파람같은 소리로 속삭였다.

《왜놈들이 아닌가?》

그도 같은 생각을 한것이다.

지난날 밀정이나 변절자들을 통하여 빨찌산의 신호법을 알아낸 적들이 그것을 도용하여 유격대원들이나 정치공작원들을 유인하여 살해하거나 체포한 일이 뜨문히 있었던것이다.

《아니요. 적이면 왜 두번만 신호하고 그만두겠소. 계속 울려보지 않구… 우리한테로 누군가 오고있소!》

《예?!》

마영복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웬일인지 그한테는 소대장의 말이 비참한 기별이나 불길한 운명의 먹장구름이 몰려오고있다는 소리처럼 들려 가슴이 서늘해졌다.

《누굴가유?》

《글쎄…》

《적인가?… 우린가?》

《…》

한명찬은 쟁기들을 황황히 내려놓고 돌아섰다. 마영복이도 칡뿌리를 쟁기옆에 놓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어림짐작으로 신호소리가 난쪽을 정하고는 그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한명찬이 앞에서 허리를 좀 구부정하고 락엽들을 걷어차며 걸음을 다그치고 마영복은 좀 떨어져서 어떤 불의의 사태가 벌어져도 소대장을 엄호할수 있게 장탄한 총을 거머쥐고 뒤따랐다.

괴괴한 정적이 도사린 울창한 수림속에 그들의 발자욱소리와 다급한 숨소리가 가득찼다.

한명찬은 앞만 살피며 전진했다. 마영복은 적들이 신호해놓고는 어딘가에 반드시 매복해있는것 같아 숲의 음침한 그늘속에 날카로우면서도 불안한 눈길을 흘깃흘깃 던지며 걸어나갔다.

둘은 그렇게 걸어나가다가는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멎어서서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는가 귀를 강구었다. 그러면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옛 전설의 미궁에서처럼 악귀들이 속살거리는 소리며 융융거리는 소리, 기침소리까지 들려오는듯 하였다.

마영복은 몇번이고 손으로 귀박죽을 털어보는가 하면 눈을 꾹 내리감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들은 3~4리 남짓 걸어나가다가 강대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것이 보이자 더 전진하지 않고 그 산비탈을 샅샅이 뒤지였다.

한시간가량 지나서 저 웃쪽에서 마영복의 기겁한듯 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게- 저게?!-》

한명찬은 정신없이 그리로 뛰여올라갔다.

《왜 그래?- 뭐- 요?》

딱따구리구멍이 숭숭 뚫리고 구새먹은 아름드리 강대나무, 그밑에 몽둥이 같은것이 던져져있었다.

한명찬은 달려가 그것을 얼른 집어들고 두루 살펴보았다.

고로쇠나무몽둥이였다. 아래부분에 껍질이 벗겨졌다. 누구인가 그것으로 강대나무를 후려쳐서 신호를 울린것이 틀림없었다.

《소대장동지!…》

마영복은 락엽들을 날리며 아래쪽으로 정신없이 뛰여내려갔다.

한명찬도 그의 뒤를 따랐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밑 락엽무지속에 웬 사람이 구겨박혀있었다.

우에서 굴러내려온것이 분명하였다.

한명찬은 마영복과 함께 그 사람을 바로 눕혀놓고는 너무 아연해서 자기 눈을 의심했다.

참모장이였던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참모장동지!》

그들이 얼이 나가 어쩔바를 모르고 림수산의 머리와 어깨… 몸뚱이 여기저기를 더듬더듬 만져보기만 하였다.

몸에는 온기가 있고 손목과 목에서 서맥이 느껴졌다. 이전의 그 준수하던 모색은 어디로 갔는지… 험상하게 깎이고 거멓게 그슬린 얼굴, 피칠갑이 된 목이며 군복어깨, 팔소매, 불에 괄거나 타서 너덜거리는 군복앞섶이며 군복저고리자락, 찢어진 바지가랭이…

아무리 만져보고 살펴보아도 목이며 어깨, 가슴팍에 즐벅한 피가 어디서 뿜어나온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의 몸에는 이렇다 할 상처가 없었다. 이마와 손등에 긁힌 자리가 좀 있을뿐이였다.

《참모장동지!》

《참모장동지!》

림수산은 삶과 죽음의 계선을 오락가락하는듯 반쯤 내리뜬 눈속에서 물기가 번들거리고 동자가 알릴듯말듯 움직이였다.

《참모장동지, 나를 모르겠소? 영복이… 마영복이오다!》

마영복은 그의 팔목을 두손으로 싸쥐고 흔들다가 끝내 울먹이고말았다.

마영복은 참모장을 업고 수림속을 누비며 밀영쪽으로 달리였다.

소대장이 뒤쫓아가며 몇번인가 교대하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그냥 달리고 또 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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