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포로는 중위였다. 일본놈치고는 허우대가 크고 삐쭉 마른 신경질적인 인상의 작자였다.

칡넌출로 오라를 지운 놈은 마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락엽속으로 허리를 꺼꺼부정하고 비청거리며 걸어갔다. 최성배는 장총끝으로 포로의 잔등이며 궁둥이를 쿡쿡 내지르며 쩌렁쩌렁 울리는 맵짠 소리로 호령하였다.

《야- 빨리- 빨리… 꾸물거리면 쏜다… 개자식. 쏜다. -》

경위중대대원인 그는 밝아오는 새벽, 며칠전 전투에서 로획한 경기관총을 독립대대에 갖다주라는 임무를 받고 거기로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불의에 적들과 조우하게 되였다.

잡관목숲이 무성한 골안치기에서였다. 코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걸어오는데 옆에서 버스럭소리가 났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선뜩 얼어들어 홱 돌아보는데 수풀속에서 왜병 세놈이 표범처럼 달려나왔다.

치고 받고 차는 격투가 벌어졌다.

힘장사인 그는 앞으로 덮쳐드는 장교놈의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량옆에 붙은 두 병졸의 혁띠를 와락 움켜잡고 두 몸뚱이를 번쩍 들어올렸다가 땅바닥에 기운껏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총탁판으로 두놈의 대가리며 상판을 짓모으고는 몸을 날려 수풀속에서 딩굴며 신음소리를 내는 장교놈을 타고앉아 두손으로 목을 눌렀는데 놈은 하품이라도 하는듯 입을 딱딱 벌리다가 늘어졌다.

최성배는 일어나서 손을 털며 세놈을 둘러보다가 (왜놈들은 고추장을 먹지 않아 약골이라더니…)하고 생각했다. 문득 장교놈은 군사비밀도 뽑아내고 하면 쓸모가 있는데 공연히 죽였다는 생각이 들어 코구멍에 손바닥도 대보고 손목도 짚어보니 서맥이 뛰는것 같았다.

그는 장교놈의 뺨도 치고 가슴도 주먹으로 두드리고 얼굴에 찬물도 끼얹으며 살려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놈을 살려내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처음에 중위는 그를 여간 무서워하지 않았다. 최성배가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고 걸으라면 걸었다. 그런데 놈의 육체적상태를 고려하여 좀 늦추어주었더니 본색이 드러나 적의가 번뜩이는 눈으로 뒤돌아보기도 하고 불평조의 소리도 했다.

최성배는 성이 독같이 나서 탕개를 바싹 조이며 되게 다루었다.

그는 포로, 참모처에 바칠 산《선물》을 앞세우고 거뭇거뭇한 바위들이 울퉁불퉁 드러난 릉선을 따라 걸었다.

이윽고 중위는 걸음을 약간 늦추며 적의에 찬 말을 씹어 뱉었다.

《나는 오늘 죽지만 당신들도 이제 곧 망하오.》

최성배는 광산에 있을 때 왜놈 폭파기사의 급사노릇을 하여 포로의 생활적인 말은 알아들을수 있었다.

포로는 악에 받쳐 부들부들 떨며 미친듯이 소리쳤다.

《망한다. 왜 망하는가? 이 조선놈아, 제국군의 봉쇄정책에 한알의 쌀도 너희들 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먹지 못하고 싸우는가. 빨찌산은 다 굶어죽을것이다. 굶어죽는다! 굶어… 굶어!》

최성배는 제일 아픈데를 찔리워 리성을 잃었다.

《에익- 개자식아-》 그는 놈의 궁둥이를 힘껏 걷어찼다. 중위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다시일어나 그한테로 돌아서더니 게거품을 날리며 소리쳤다.

《쏘라- 쏘랏》

최성배는 격발기를 열었다가 절컥 채웠다. 그러자 놈은 풀썩 주저앉으며 한손을 내저었다.

《쏘지 말라. 나는 당신네 사령부를 찾아가는 노조에사령관의 특사다.》

《뭐?》

《정말이요!》

《잔꾀를 부리지 말라.》

그는 이자가 살구멍을 찾느라고 제 몸값을 높이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빨찌산사령부에 보내는 우리 사령관의 친서를 가지고왔다. 친서!》

《뭐?-》 그는 친서라는 처음 듣는 소리에 좀 얼떠름해졌다.

《편지!… 편지!》

《보자!》

《내 머리속에 있다. 노조에사령관은 친서를 내 머리속에 넣어줬다.》

《읽으라. 말로 하라!》

중위는 무슨 생각을 굴리는지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있다가 천천히 돌아서더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걸음… 또 한걸음…

최성배는 따라가며 총구를 들어 포로의 잔등을 겨누었다.

《읽어라!》

《각하… 귀군은 10년간의 반일전끝에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토벌〉무력에 합세한 20만정예관동군이 포위했다. 황군의 봉쇄정책으로 귀군은 아군의 총탄에만 아니라 식량난으로 전원 아사하게 되였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쌀을 준다. 살려준다. 10일간의 여유를 준다. …》

최성배는 놈이 꾸며댄다는것을 알았으며 그 꾀바른 짓에 웃음보가 터져 총구가 밑으로 숙어지는것도 모르고 몸을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핫하하… 굉장한 놈이야…. 흐아 흐아 흐아…》

그 틈에 포로는 후닥닥 뛰쳐나가 경사가 급한 산비탈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정신없이 뛰여내려갔다.

최성배는 그놈을 겨낭하여 발사했다. 놈은 옆에 선 강대나무를 안고 모지름을 쓰다가 비명을 터뜨리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웃쪽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여-》

경위중대의 같은 소대 대원이였다. 그 대원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와 오발을 했는가고 물었다.

최성배는 시무룩해서 대답을 안했다.

《참모장동지가 동무를 찾아.》

《나-를?》

 

×

 

최성배가 땀을 철철 흘리며 울창한 숲속의 사령부에 도착하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천막앞에서 참모장과 함께 무엇인가 의논하다가 그를 돌아보시였다. 참모장은 좀 아연해진 얼굴이였다.

최성배는 도착보고를 하였다.

《새벽에 떠났는데 왜 이렇게 늦었소?》

경위대원은 돌아오다 적들과 조우한 일이며 포로한 중위의 수작질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놈은 잔꾀를 부린것 같은데 그 말속에 놈들 속심이 엿보이지 않소?》

《예… 그렇습니다.》라고 참모장이 나직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최성배에게 빨리 행군준비를 해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대원이 경위중대쪽으로 사라지자 사령관동지께서는 흥분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쌀… 쌀… 쌀이 문제요. 군량이 떨어지면 우리는 량강구회의에서 결정한 대부대에 의한 선회작전도 할수 없소.》

할힌골전역에서 수만대군을 잃고 참패를 당한 일제는 그 패전의 중요한 원인을 조중인민들의 항일무장력량에 의한 배후교란에서 찾았다. 관동군사령부는 자기 정예무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총공세를 개시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군이 근 1년동안에 화라즈- 륙과송- 쟈신즈- 동패자- 무송- 장백- 국내- 다시 두만강을 건너 백두산동북부로… 이런 밀로를 따라 1만여리 길을 선회하면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적극적인 정치공작을 벌려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어 그들을 조국광복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고 함흥과 서울을 비롯한 국내의 여러 감옥들에서 중세기적악형에 시달리는 혁명가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려고 계획하시였다.

그러나 군량이 문제였다. 그래서 경위중대장 오백룡이 이끄는 소부대를 화라즈분지로 파견했는데 한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늘진 안색으로 림수산참모장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화룡과 안도, 돈화 등지에 우리의 지하조직들이 살아있는것 같소?》

《사령관동지, 〈혜산사건〉의 여파로 피해를 좀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권영벽동무랑 지조를 지키는 한 거기 지하조직들은 건재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백룡동무가 아직도 그 조직선을 찾지 못했는가? 찾으면 인민들의 도움을 받아 식량공작을 대대적으로 벌릴수 있겠는데…》

《권영벽동무는 우리한테 선전과장으로 처음 왔을 때 저에게 자기가 삼도만과 처창즈에 갔을 때 지방조직들을 많이 꾸리고 거기에 유능한 정치공작원들을 박아넣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성중학시절부터 그를 잘 압니다. 그는 사람됨됨으로 보아 놈들의 고문에 굴복할 동무가 아닙니다.》

《음…》

그이께서는 담배를 피워무시였다.

《저는 확신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권영벽의 인간됨됨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그의 진중한 눈빛, 어떤 반가운 일이 있을 때면 손부터 높이 들어 흔들어대며 달려오군 하던 어린애같은 모습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대성중학 축구선수시절, 경기때마다 자기에게 공을 빨리 보내라고 손짓하군 하던 버릇이 그대로 습관으로 굳어졌다던가?

그중에도 그를 생각하실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었다. 이태전 신흥촌에 있는 리제순이와 련계를 가지고 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과업을 주면서 오래동안 적구에 있게 되겠는데 집소식을 더러 알고 떠나는가고 물으시였을 때 그가 한 대답이였다. 언제나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상기되군 하는 말…

《사령관동지, 제 처에 대해서는 상심하지 마십시오.

제 혁명에 나서면서 각오한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혁명이라는것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이다, 바쳐도 깡그리 바치는것이다, 혁명가들에게는 〈자기〉라는것이 없어야 한다, 아니 깨끗이 버려야 한다, 자기와 혁명, 이 두가지중에서 자기의 몫이 작으면 작을수록 그는 혁명에 그만치 충실한 사람이지만 반대로 자기의 몫이 크면 클수록 그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길로 굴러떨어지던가 나아가서는 자기를 위해 혁명을 외면하게 되기마련이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전 처한테 말해두었습니다. 난 당신보다도 혁명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혁명이 요구한다면 이 자리에서라도 피와 살은 물론 목숨까지 내대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늘 살아있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말고 돌아오리라고 기다리지도 말라, 내가 떠나면 당신 마음대로 하라, 부모님들이 있는 고향으로 가도 좋고 재가를 해도 좋다 하고 말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권영벽을 마주보시였다. 혁명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치는것을 삶의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그의 인생관이 대견스럽기는 하면서도 처에게 마음대로 하라, 재가를 해도 좋다고 한 말은 불만스러우시였다. 사람이 어쩌면 이다지도 매정스럽고 일면적인가.

인생을 자기가 세운 공식으로 따지면서 사람들을 두 부류 즉 혁명가가 아니면 리기주의자로 단정하는것도 무리하고 혁명자체를 인간생활, 매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감정과 분리시켜 생각하는것도 뜻밖이시였다.

어떻게 혁명가가 자기 가정 특히 안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수 있단 말인가! 처자에 대한 사랑, 혈육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조국에 충실할수 있겠는가. 애국심자체가 처자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여 고향에 대한 사랑,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는 감정이 아닐가. 권영벽이가 말하는 인생관은 마치 카톨릭교의 신부들이 가정을 가지면 자기 욕구가 생기고 그러면 결국 만인에 대한 공정한 사랑을 설교하는 자기네 교리와는 달리 사람에 대한 사랑에 편중이 생긴다고 하면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쉬이 입밖에 낼수가 없으시였다. 그것은 권영벽이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너무나도 확고하게 믿는다는데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가 가정을 이룬 기혼자라면 자신께서는 아직 미혼이기때문이였다. 아무리 리치가 명백하다 해도 가정이라는 세계에 대한 체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복잡한 가정생활의 갈피들을 헤쳐온 년장자에게 생활이 어떻소, 인생이 어떻소 하고 말할수 있단 말인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은연중 옆에 있는 참모장 림수산을 돌아보시였다. 권영벽과 같은 기혼자로서 혁명의 길도 같이 걸어온 그의 견해를 듣고싶으시였다.

입가에 빙긋 웃음을 지어보인 림수산은 언제나 그런것처럼 군모의 채양을 약간 추켜올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사령관동지, 이 선전과장동무의 어릴적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수남이가 아니요, 권수남…》

《그렇습니다. 한문으로 쓰면 삐여 질〈수〉에 사나이〈남〉입니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어릴적부터 평범한것은 질색인 반면에 특별하게 삐여지길 좋아했습니다. 축구경기를 해도 그랬고 사회활동을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혁명에 대한 견해도 특이할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 참모장동무는 권동무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오?》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권동무는 혁명을 바치는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전 오히려 찾거나 얻기 위해 하는것으로 리해합니다. 참된 자유와 권리를 찾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것으로 말입니다.》

《바치는것과 얻기 위한것이라…》

사령관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생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혈로를 헤쳐오는 혁명가들, 혁명의 지휘관들속에서도 이렇게 혁명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것이 놀라우시였다. 물론 그 견해들이 잘못되였다는것은 아니다.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자기나름의 론거를 가지고 다같이 정당한것 같으면서도 그 주장이 서로 모순되여있는 이률배반이 아닌가.

(바치는것과 얻기 위한것!)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금 속으로 되뇌이시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권영벽이와 림수산에게 돌아서시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혁명에 대한 두사람의 견해를 보면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긴 하지만 맞지 않는것도 있다는거요. 우선 혁명을 바치거나 무엇을 얻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하기전에 가장 인간다운 감정으로 대해야 한다는거요. 혁명은 사람이 사람으로 태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벌리는 투쟁이 아니요? 그렇기때문에 혁명은 가장 인간다운 사람만이 제대로 할수 있는것이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권동무가 한 말은 혁명은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랭혈한들이 하는것 같은 인상을 주오. 더우기 처에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한것은 남편으로서,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할 말이 아니라는거요. 남편을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서도록 이끌어주지는 못할 망정… 그리고 림동무의 견해도 어떤 조건적인 요구를 앞세운 감이 드오.

다시말하지만 혁명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이기때문에 혁명가들인 우리자신들부터 참된 인간이 되여야 한다는거요. 혁명가의 신념은 의리와 량심, 즉 도덕관으로 안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오.》

숙연한 침묵에 잠겨 있던 두사람… 두사람이 밖으로 나간 뒤 사령관동지께서는 웬일인지 권영벽에게 너무 박정스레 말한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안해를, 부모처자를 두고오면서 오죽이나 강심을 먹었으면 그런말을 했으랴. 그것은 자신을 혁명에 깡그리 바친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어찌 부모처자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과 헤여지는것이 가슴아프지 않았으랴… 점점 권영벽이 대견스럽고 큰 믿음이 가면서 그와 같은 참된 동지를 가진 기쁨과 긍지를 체험하시게 되였다. 그것으로 하여 자신께서 다지신 혁명에 대한 신념이 더욱 굳어진듯…

그리고 권영벽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의 주추돌로 된 그때의 잊을수 없는 일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못내 쓰려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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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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