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이룰수 없는 꿈

1

 

깊은 산속에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누렇게 황이 든 나무잎들이 하나둘 소리없이 떨어져내렸다.

천고마비의 절기는 어언 지나고 한로, 상강의 절기가 새벽마다 하얀 서리를 내불렸다.

잎이 성글어진 나무우듬지사이로 저녁노을이 붉게 비껴왔다.

작은 산새들이 이내 찾아들 어두운 밤을 앞두고 먹을것을 찾아서 이 나무, 저 나무로 포롱포롱 날아옜다. 저 조그마하고 연약한 박새와 메새, 콩새 같은 새들도 비오나 눈오나 이 숲속에 둥지틀고 알깨워 후대를 남기며 살아가고있건만 최천복두령의 《산당》사람들은 또다시 일어나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며칠전 웅거지를 감쪽같이 빠져나왔었다.

그런줄은 모르고 충청감사는 감영군사들과 각 고을의 군사 천수백명으로 웅거지를 둘러싸고 각일각 좁혀들고있을것이였다.

이 몇해간에 의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정든 웅거지를 버리고가는것이 누구나의 가슴에 애수를 자아냈지만 그보다도 관군을 속여넘긴 통쾌감이 더 커서 사기충천하였다.

그들이 살아서 싸움을 계속하자면 관군이 모르는 험산오지 또 관군이 안다해도 하나가 능히 지세에 의지하여 천을 감당해낼만한 곳으로 옮겨가야 하였다.

최천복두령은 이미 지난 여름에 새로운 예비장소를 지목해두고 사람 두셋을 먼저 보내여 샘줄기를 찾아내게도 하고 움막집을 짓게도 하였었다.

웅거지를 옮기는것은 김을지가족이 렴탐군을 꼬리에 달고온 까닭에만 있지 않았다.

최천복두령이 렴탐군을 놓아보내준것은 웅거지사람들이 조정에서 말하는 《화적》패가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라는것을 량반통치배들에게 밝히자는데 있었다. 또 렴탐군에게 박대산을 면대시킨것은 양녕의 반당이였고 임금의 상까지 받았던 그가 왜 칼을 들고 나섰는가를 알게 하여 악덕관리들이 함부로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먹지 못하게 하려는데 있었다.

바람이 우수수 나무잎을 떨구며 불어왔다.

큰 칼을 어깨뒤로 꽂아지고 화살이 든 전대를 등허리 한옆으로 간편하게 띠고 강궁을 손에 든 최천복두령이 맨 앞장에 서서 자기들만이 아는 산길을 헤쳐나갔다.

이따금 한옆으로 나서서 외줄배기 행렬을 돌아볼 때마다 그의 시꺼먼 구레나룻이 저녁노을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김을지는 갑패와 을패사이에서 새매의 고삐를 잡고갔다. 말잔등에는 식량과 세간붙이들을 싣고 그우에 성덕이를 태웠다.

그뒤로 남복차림을 가뜬히 하고 머리수건도 남자들처럼 동여맨 영아가 따라갔다.

최서방은 아이가 새매의 잔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돌보았다.

말이 숲속의 올리막이나 내리막길을 갈 때면 《어, 안되겠다.》 하고 성덕이를 말잔등에서 닁큼 안아다가 업고 가기도 하였다.

그의 덩지 큰 몸에는 창이나 활은 없고 다만 어깨에 엇걸어멘 돌주머니 하나뿐이였다. 그안에는 게사니알만큼 크고 매끈한 돌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길을 가면서 김을지와 영아에게 경상도사람들과 함께 등문고를 치러 갔다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뜻밖에 장영실나리님을 만난 일, 서울을 떠나 집에 돌아와 겪은 일을 비통하게 들려주었다.

《내가 장영실나리님에게 루가 미칠가봐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서울을 떠나 근 한달가까이 고생하여 집에 와보니 집은 텅텅 비여있었네.

마침 나많은 동네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내 팔을 붙들고 눈물을 쏟으며 하는 말이 〈그 집 가솔은 다 잘못되였다. 〉고 하였네. 고을원은 내가 등문고를 치는데 주모자노릇을 했다고, 집에 돌아왔겠는데 어디에 숨어있느냐고, 이실직고하라고 식구들에게 형장을 쳤다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하자 관가놈들은 더욱 독이 올라 날뛰면서 곤장이 부러지도록 때려 나중엔 다 잘못되였다고… 난 반정신이 나갔네. 이놈들, 너죽고 나죽어보자 하구 그날밤 관가를 들부시구 불을 질렀네. 추격해오는 놈들을 모조리 돌팔매로 까부셨지. … 그렇게 몸을 숨기고 떠난 길이 결국 여기로 들어오게 되였네.》

저녁노을이 어느덧 스러지고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내가 죄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가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아보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낼 길이 없다는걸 알았네. 허참, 허망한 생각을 하였었지. 허지만 지금에야 어림없지. 앉아서 량반놈들의 매를 맞을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일어나 량반놈들을 쳐야 하느니… 허허…》

《옳소이다. 그참 말씀 잘하셨소이다.》

김을지가 활기있게 최서방을 돌아보며 웃다가 이내 웃음을 거두고 근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온탓에 성덕이 삼촌이 련좌죄를 덧지게 될가봐 걱정이오이다.》

《나도 그 생각이여. 내가 장영실나리님집에서 병구완을 받을적에 리사균이라는 놈이 임금의 뜻을 어긴 놈들을 돌봐준자들은 다같은 패당이라는 죄에 걸어서 나리님을 옭아매보려고 벼르었었는데 내가 또 관가에 불을 지르고 군사들까지 몇놈 죽여버렸으니 나리님께 루가 끼쳐두 크게 끼치게 되였네. 이를 어쩌면 좋겠나?》

영아는 남편과 최서방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흑흑 느껴 울었다.

참말 어떻게 하면 좋으랴. 차라리 오빠대신 릉지처참을 당해서라도 구원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엄마, 울지 마―》

최서방의 등에 업힌 성덕이가 울먹이며 엄마의 품으로 가겠다고 두팔을 내뻗쳤다.

영아는 얼른 눈물을 씻고 웃어보이려고 하였지만 그 웃음이 잘되지 않았다.

《원참, 애두… 엄마는 울지 않는다. 자, 이리 오너라. 아주버님이 힘들어하실라.》

그는 애써 방긋이 웃으며 성덕이를 향해 두팔을 활짝 벌렸다.

최서방은 아이를 넘겨주고 대견히 영아를 바라보았다.

《참말 성덕이 엄마가 장하네. 아녀자의 몸으로 이런 길을 걷기가 어디 쉬운가. 응? 허허허…》

총각의 머리태를 둘둘 감아서 누런 베수건으로 거뜬히 동여맨 젊은이 하나가 영아의 품에 안긴 성덕이에게 다가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머루송이를 쑥 내밀어주었다.

《성덕아, 내가 널 업으면 산도 강도 훨훨 날아넘는단다. 자, 업혀봐라.》

그리고는 벙글거리며 성덕이를 닁큼 안아업고 성큼성큼 앞서갔다.

《산당》사람들은 영아와 어린 성덕이를 누이처럼, 자기들의 아이처럼 끔찍이나 아끼고 위해주었다.

그럴수록 김을지와 영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먼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자신들이 몹시 민망스럽고 끝없이 죄송하였다.

양녕의 반당 박대산이 《화적》이 되였다는 사실에 온 조정이 팥죽가마 끓듯 하고 한개 도의 감사가 군사를 풀어놓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그러나 최천복두령이하 모든 부하들은 그것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들의 일로 받아들이였다.

어느덧 나무가지사이로 좁쌀같은 별들이 가물가물 살아올랐다.

풀과 락엽에 묻힌 오솔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웅거지를 떠난지 열흘째 되는 날에 충청도땅을 벗어나 전라도에 들어섰다.

그들은 어느날 어스름 달밤에 별 탈없이 어느 고을 지경을 이루는 고개마루에 올라섰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였다.

《아니, 저게 무슨 불이야?》

갑자기 누구인가 와뜰 놀라서 그자리에 우뚝 섰다.

《어이쿠, 어느 고을인지 몽땅 불타는게 아니요?》

갑패장이 다급히 웨쳤다.

최천복두령도 일이 여의치 않은듯 구레나룻을 쭝깃거렸다.

가옥들이 저렇게 일시에 타는것을 보면 어느 한 집의 실수로 화재가 생긴것이 아니라 이는 어떤 놈들이 불뭉치를 들고다니면서 집집의 처마이영에 불을 달아놓은것이 헨둥하였다.

《가만, 저기 고개아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 올라오네그려.》

을패장이 손채양을 해들고 불빛을 막으면서 고개아래로 목을 빼들었다. 참말 웬 사람이 말잔등에 채찍을 연방 휘둘러 안기면서 올라오는것이 불빛에 보여왔다.

《저 사람을 붙잡게.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소.》

최천복두령이 갑패장에게 가만히 일렀다.

갑패장이 고개마루에 우뚝 나서서 가까이오는 말탄 사람을 막았다.

《게 서우. 저 불이 웬거요?》

《왜변이 났소. 왜놈들이 달려들어 저렇게… 이랴…》

말탄 사람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대답하면서 갈길을 재촉하였다.

불빛에 드러난 그의 복색을 보니 격자무늬더그레 라장복이였다.

《여보시오, 가더래두 이켠 말을 듣구 가우.》

갑패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라장을 에워쌌다. 라장은 급기야 겁을 먹고 갈팡질팡하였다.

《난 빨리 가야… 길을 내소. … 이 급보를 한시바삐 감영에…》

《흥… 바지벗는 사이에 날이 밝는다더니… 이제 가고오느라면 왜놈들이 제 할 일을 다하구 도망하겠다. 저런 밥병신같은 놈들이라구야. …》

라장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겁낼것 없소. 우리는 서울로 번들려고 가는 군사들이요.》

최천복두령이 라장을 안심시켰다. 라장은 그제야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저 왜놈들을… 어떻게 하면… 좀, 우릴 도와주시우.》

《뉘나 눈앞에 왜놈들을 내버려두고 어떻게 그냥 가겠소. 그래 왜놈들이 몇놈이나 되구 형세는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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