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등문고(2)

3

 

세종을 놀래우고 실망케 하였으며 분노케 한것은 충청도관찰사의 급보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도 리천고을 양녕의 반당으로 있던 박대산이 처자를 데리고 화적의 소굴로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사옵니다. 박대산은 자기의 처와 자식이 장영실과 련좌되여 동래관가의 노비로 쫓겨나게 되자 등문고를 치고 상소하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거부되여 마침내 도망한것이옵니다. 양녕이 박대산을 시켜 처자를 데려다주고 오도록 하였었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알아본즉 박대산이 처자를 데리고 화적이 되였습나이다. 본관이 화적의 소굴을 알아내라고 내보냈던 렴탐군이 제 눈으로 화적들이 출몰하는 어룡산에 박대산이 들어가는것을 보고 몰래 뒤를 따랐사오이다. 했더니 과연 깊은 산중에 화적들이 자고깨는 산막들이 있었다고 하옵습니다.

하온데 어데선가 나타난 사나운 화적들의 손에 렴탐군이 붙잡히였사오이다. 화적들은 렴탐군의 눈을 싸매고 어떤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두령인듯 한자가 물었습나이다.

〈너는 누구냐? 바른대로 말하면 살고 거짓말 하면 죽는다. 〉

〈나는 감영에서 보낸 렴탐군이다. 〉

〈어떻게 박대산을 알고 뒤따랐느냐?〉

〈나는 벌써 여러날째 이 어룡산어귀에서 너희들의 출몰을 여겨보고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양녕대군의 반당이 여기로 들어올줄 누가 알았겠는가. 〉

〈너는 박대산을 이미 알고있었는가?〉

〈맨손으로 범을 잡아메쳐 양녕대군을 구원했고 임금의 상까지 받아서 소문난 사람을 왜 모르겠는가. 그리고 유명한 재인명사 장영실상호군의 누이동생과 혼례를 이루고 살지 않는가. 〉

〈좋다. 네가 비굴치도 않고 솔직하고 시원시원하다. 너를 살려보내겠다. 하되 여기에 앉아있는 박대산이 하는 말을 듣고가서 너희 관찰사와 양녕대군에게 전하라. 〉

박대산이 렴탐군에게 말하였습나이다.

〈나는 양녕대군의 반당이였던 박대산이다. 임금은 나에게 깊은 은총을 베푸시고 대군마님도 산같은 은총을 안겨주었다. 또 장영실상호군과 내 처에게도 베풀어준 성은은 죽어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임금이 타는 련을 잘못 만들었다고 하루아침에 장영실형님의 벼슬을 빼앗고 형장을 치고 노비로 만들었다. 임금이 처와 내 어린 자식도 노비로 만들었다.

이 억울한 일을 바로잡아주십사 하고 등문고를 치고 상소하려 하였지만 받아주지조차 않았다.

임금이 미리부터 은총을 주다가 다시 빼앗자고 작정하였겠는가. 임금치고 오늘 다르고 래일 다르겠는가. 이는 장영실을 시기질투하는 량반관리들이 임금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든장질을 했기때문이다. 이런 량반통치배들을 두고 백성들이 어찌 편안히 살수 있겠는가. 이 사람은 의분을 금치 못해 칼을 들었다.

이제부터 내 손에 죽는자들은 악덕량반관리들, 허가낸 날도적놈들이다. 그것이 임금의 정사를 돕고 임금의 은총을 갚는 길이다. 〉

상감마마, 박대산의 이런 해괴한 말과 행위는 장영실에게 더 큰 련루죄를 지우게 하옵니다. 장영실을 노비로 내쳤다 해도 그를 다시 붙잡아 올려 심문해야 할줄 아옵니다.》

충청감사의 급보에는 감영의 군사들과 린근고을의 군사들로 《토벌대》를 무어서 《화적》의 소굴을 치게 하였다는것을 첨부하였다.

세종은 충청도관찰사의 급보를 천천히 구겨쥐였다. 그리고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어탁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봄꿩이 제 죽을줄 모르고 울어서 사냥군의 화살에 맞아 죽듯이 박대산은 제스스로 《죄인》의 몸을 드러냈다.

양녕을 호환에서 구원하였다고 상까지 주었지만 어찌 이런 놈을 용서할수 있겠느냐.

그러나 이미 노비가 되여 떨어져나간 장영실을 어떻게 또 박대산과 련루시켜 극형을 내리겠는가.

과인은 장영실이야말로 임금의 정사를 빛내주는 충신이라고 큰 믿음을 주어왔었다. 얼마전에는 그에게 화포알이 날아가 터지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하였었다.

그러나 오늘은 무서운 형벌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종은 내실을 성급히 거닐었다.

그의 눈앞에는 양녕의 대경실색한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의 반당으로 삼았던 박대산이 《화적》의 소굴로 갔다는것을 때늦게 알고 몸서리치는 그가 보여왔다.

박대산이가 치던 등문고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은 환각이 왔다. 등문고가 백성들과 임금사이를 가깝게 한다더니 뜬 구름과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것이라고 수천수만의 박대산이가 부르짖는것만 같았다.

내 스무해가 넘도록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루자고 했더니 법치로도 례치로도 이룰수 없단 말인가. 과인이 문물도 장려하고 4서3경 성리학이 가르치는 백가지 방도도 정사에 다 적용해보고있지만 그것이 다 보람없어 끝내 나라의 태평성대를 도모하지 못한단 말이냐.

세종은 어좌에서 일어나 오래오래 내실을 거닐기도 하고 다시 앉기도 하며 날이 저무는지도 의식하지 못하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김연의 목소리가 조심히 들려왔다.

《상감마마, 초롱불을 밝힐 때옵나이다.》

세종은 그때에야 비로소 방이 어두워졌음을 알았다.

나라의 정사를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어두운 미궁으로 빠져들어 어찌할수 없던것이 초롱불이라도 밝히면 앞이 조금이라도 트일것 같았다.

《어서 그리해라.》

김연이 커다란 꽃초롱불을 걸어놓았다. 금시 방이 환해졌다.

《상감마마, 한인 김새가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청원하여 글을 올렸나이다.》

김연이 한장의 봉서를 두손으로 올리였다.

《뭐라구?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세종은 뜻밖에 놀라 김연이 올리는 봉서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마침내 받았다.

《…제가 오랑캐의 소굴에 억류되였다가 본국으로 가지 않고 귀국으로 오게 된것은 조선의 재인명사 장영실을 만나보고 그가 만든 기물들을 보고싶은데 있었소이다.

제가 귀국에 눌러살려고 한것도 장영실상호군과 더불어 더 훌륭한 기물들을 만들어보려는데 있었나이다. 그가 억울하게 죄를 당하여 노비로 떨어지고 그나마도 다시 붙잡혀 극형을 받게 된다 하오니 저는 누구와 더불어 세상의 문물을 론하오리까. 저는 귀국에 더는 남아있을 리유가 없어졌사오이다. 우리 명나라 사신들이 곧 나온다고 하오니 사신이 돌아갈 때 함께 돌아가도록 승인해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 장영실을 살리고 종전대로 일을 보게 된다면 소신은 본국으로 돌아갈 까닭이 없어지나이다. … 장영실은 임금의 련을 허술히 만들 사람이 아니오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기물들을 다 돌아보았는데 참말로 빈틈이 없고 정교하기 그지없으며 틀림이 없는것이옵니다. 이런 충신이 어떻게 임금의 련을 대강 만들겠나이까. 빈약하게 만들어버리면 아무때고 련이 깨지겠는데 그 죄를 제가 안고 죽어야 함을 그가 어이 모르리까. 장영실이 아무리 설계를 잘하였다 해도 그것을 직접 만드는 장공인이 잘 만들지 못하여 부러질수도 있사옵니다. 옛 성인들은 백가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한가지 착한 일을 한것을 보고 그 백가지 잘못을 다 용서해주었나이다. 그런데 장영실은 백가지 착한 일을 하고 한가지 실수를 하였습니다. 어이 용서하지 않겠나이까. 이제 그를 처형하면 아무때 아무 임금은 너그럽지 못하고 사리를 분별 못하는 임금이라는 뒤말이 따를것이옵나이다. … 장영실은 조선의 자랑일뿐만아니라 온 세상의 자랑이옵나이다.》

세종의 손에서 김새의 글이 스르르 미끄러져내렸다.

세종자신도 장영실이 무죄함을 잘 알고있었다.

김새의 건의대로 그를 처형하면 뒤말이 명나라까지 퍼질것이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여 인재를 죽이였다는 임금의 오명은 후세에도 전해질것이였다.

세종은 괴롭게 큰 숨을 몰아쉬고 아래와 같은 어지를 승정원과 형조, 의금부에 내려보냈다.

《장영실이 동래관가에 닿았다면 죄를 더 론하지 말고 그가 과인에게 만들어 바치겠다고 한것을 만들어내도록 하게 할것이다.》

세종은 장영실이 날아가 터지는 화포알을 반드시 만들게 하여 나라의 위세를 떨치리라 결심하였다. 그래야 현명한 임금으로 력사에 남아있을것이고 인재를 귀중히 쓸줄 안 임금으로서 훌륭한 정사를 베푼다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을것이였다.

그러면 장영실의 박대산과 련좌죄는 어떻게 면죄시키겠는가.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를 처형할수밖에 없는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할수 없다. 얼룩소라도 뿔만 좋으면 제상에 쓰인다고 하지 않았더냐 하고 그는 장영실이 측우기를 만들어냈을 때 자기가 한 말을 상기하였다.

허나 다음날에 승정원과 의금부의 글이 올라왔다.

《…장영실은 동래에 가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간곳없이 종적을 감추었사오이다. 이는 분명 제가 지은 죄가 있기로 도망한것이 틀림없사와 지금껏 샅샅이 수색중이옵나이다. 붙잡아올린 다음 보고하려던것이옵나이다.》

세종은 첫 순간에 매우 놀랐으나 장영실이 죄가 있어 도망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가엾어졌다. 형장을 맞은 몸으로 어느 길가나 숲속에 병들어 쓰러져있을수도 있는것이다. 다만 그를 찾아내지 못하였을뿐이다.

세종은 불현듯 장영실의 얼굴에 김덕생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오늘의 장영실의 일과 지난날 김덕생의 일이 어슷비슷했기때문인지 모른다.

… 세종의 부왕인 태종이 사냥을 나갔는데 갑자기 황소만한 범이 숲속에서 달려나와 태종을 덮치려 하였다.

그러나 범은 어데선가 날아온 화살에 정통으로 멱을 찔리워 죽었다. 뒤에서 태종을 따르던 호위무장 김덕생이 화살 하나로 범을 쏘아눕히고 임금을 구원한것이였다.

시종들과 호종군사들이 모두 덕생의 충의와 재주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그중엔 덕생을 질투하는 간신도 있었다.

《범을 잡는다고 하면서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화살을 날리는것은 역신이 아니고는 행할수 없는 일이오이다. 누구를 겨누었댔는지 의심스럽소이다.

화살이 한치만 안으로 나갔다면 전하는 이미 잘못되였을것이나이다. 저 덕생은 늘쌍 범을 그려놓고 쏘는데 그 범이 누구인지 오늘에 밝혀졌소이다.》

태종은 이것이 간악한 모함인줄을 대번에 알았지만 참소를 받아주었다.

명궁이고 명장을 죽이기는 아까왔으나 그 모함을 받아들이는것이 더욱 유익했던것이다.

임금의 몸에 털끝만한 위험을 주는 일이 없도록 백성들과 문무백관들을 애초에 눌러놓을 본보기가 있어야 했다.

《억울하옵나이다. 소신이 화살을 날린것은 전하를 구원하기 위함이였고 범을 쏘아눕힐수 있는 저의 능력을 믿었기때문이옵니다.

이제라도 범을 그려서 걸어놓아준다면 소신이 백발을 쏘아 화살 하나라도 범의 왼눈을 꿰지 못하면 그때 목을 쳐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였다. 백발백중 왼눈을 꿰였다. 나라에 둘도 없는 명궁중의 명궁이였다.

태종은 망설였다. 죽이기는 아까왔다. 허나 어느새 망나니의 도끼가 덕생의 목에 떨어졌다.

임금이 앉는 옥좌의 백년천년 안전을 위함이라면 인재 하나만이 아니라 백천을 다 죽인대도 좋다는것이다.

지난날 김덕생을 모함한 간신도 있었고 장영실을 모함하는 간신도 있다.

어떻게 할것인가.

세종은 마침내 장영실을 찾아내서 부왕 태종이 일찌기 보여준 전례를 따르기는 아무때 하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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