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등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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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잘살아도 못살아도 떨어져 살수 없는것인가. 사람이나 뭇짐승까지도 제 능력껏 양지바르고 아늑한 자리를 골라 제집을 짓고 후대를 낳아 기른다.

사나운 비바람과 추위를 가려주고 온갖 위험한것을 막아주는 보금자리! 제집에서는 비록 초근목피를 끓여먹는대도 남의 집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고 잠을 자도 발편잠을 잔다.

자기네 혈족끼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안식을 누려가는 집! 집은 한가정의 자그마한 세상이고 자그마한 《나라》이다. 사람의 설음중에서 집없는 설음이 제일 크다. 집이자 생활이고 생활이자 집이다.

박대산과 영아는 이제 집을 버리고 떠난다. 비록 양녕대군이 빌려준 집이였으나 제집처럼 정들었다.

이 집에서 남에게 매여사는 노비가 아니라 자유로운 량인백성으로 살았다. 노예가 아닌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앞날의 희망을 안고 양녕대군과 임금의 성은에 의리를 다해 갚으려는 한마음을 꽃피워왔다.

네해 짧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백년을 산것처럼 정들었다.

그러나 엄마나무에 붙어있던 잎사귀들이 떨어져 바람부는대로 굴러가는 락엽처럼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가는 곳엔 집이 없다. 영아는 관청노비의 옛 처지로 되돌아가고 어린 성덕이는 세살에 관노로 되였다.

참으로 밀가루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장사하면 비가 온다더니 이들이야말로 이렇게도저렇게도 살아갈수 없는 처지였다.

마당가에는 기르마를 얹은 새매가 서있다. 바로 어제 급히 찧어 쌀을 낸 좁쌀과 콩이 댓말, 까맣게 윤이 도는 작은 솥이 하나, 그릇가지들이 몇개, 기르마에 실어놓은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절을 드리고야 수저를 들던 엄나무궤는 없다. 리천고을 아전들이 그것을 속공해버렸었다. 임금이 내린 상을 죄를 지은자들에게 그대로 줄수 없다는것이였다.

등문고를 치러 갈 때 입었던 옷도 빼앗기였다.

그들은 낟알을 넣은 다련속에 칼을 깊숙이 감추었다.

영아는 마지막으로 집안팎을 깨끗이 거두었다. 마치 다시 돌아와 살것처럼.

무명치마저고리에 허리끈을 잘룩하게 매고 저고리소매를 가볍게 걷어올린 그 모습은 등문고 북각앞에서 더위를 먹고 까무라쳤던 일은 없었던것 같았다. 남편의 등에 업혀 의원집에 찾아가서 약도 지어먹고 침도 맞고는 꿈같이 병을 털고 일어났었다.

그들은 등문고를 다시 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급히 그날밤으로 돌아왔다.

양녕대군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고 갔던것이다. 만약 대군에게 마지막소원으로 등문고를 치겠다고 하면 그 당장에 《무엄하다. 상기도 정신이 덜 들었다. 내가 너희들을 생각해서 너더러 처와 아들을 데려가게 했더니 안되겠다. 고을군사를 시켜 압송해가도록 해야겠다.》 하고 불호령을 내릴것이였다.

그들은 양녕대군을 더는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얼마나 소탈하고 관후하고 인정사정 많았던가. 사람은 량반이라고 하여 눈이 하나 더 있는것이 아니고 상놈이라고 하여 눈이 하나 더 없는것이 아니니 서로 격차를 두지 말자고 허물없이 풀판에 함께 앉아서 시원시원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던 양녕대군은 어디에 가고 오늘은 의금부관리편에 서서 불호령을 내리는 대군으로 변하였는가.

양녕대군이 지금껏 보여준 후더운 인정은 자기를 호환에서 구원해준 사람에게 값을 치르는 인정이였고 자기가 인자한 대군이라는 인상을 돋구어 박대산을 감지덕지하게 만들어서 제 몸의 수족처럼 부리려는 인정이였다.

박대산은 이것을 너무도 뒤늦게 깨달았다.

《성덕이 엄마, 인젠 떠납시다.》

김을지는 성덕이를 새매의 잔등에 앉히고 안해를 돌아보았다. 영아는 입술을 꼭 감쳐물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낮 사흘, 밤 사흘이 지난 늦저녁.

김을지는 최천복두령앞에 안해를 데리고 무릎을 꿇었다.

《두령님, 김을지가 왔소이다. 사람답게 살자고 여기를 떠났다가 종내 그 뜻을 못펴보고 다시 돌아왔소이다.》

최천복은 얼른 김을지를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친경장에 구경갔던 억쇠가 가져온 자네의 소식을 듣고는 놀라기도 했고 걱정스럽기도 하였소. 억쇠는 친경장에서 자네를 보고 반가운중에 자네를 노리고있는 전 의금부도사 리창배를 또 보게 되였다 하오. 그래서 그놈을 처단하였던거요. 억쇠가 아니였다면 어쩔번 했소, 응?》

《을지형님, 참 잘 오셨소이다. 하하…》

어둑스레한 광솔불이 비치는 한쪽에 서있던 억쇠가 반갑게 나서면서 김을지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억쇠! 억쇠로구만, 자네가 친경장에서 전 의금부도사를 죽이고 〈내가 김을지다. 〉하고 갑사들을 유인하던것을 보았네. 고맙네, 고마와! 제 생명을 내대고 나를 구원한 이 사람!―》

김을지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억쇠를 와락 그러안았다.

영아는 자기의 남편을 구원한 사나이를 늘 고맙게 생각해왔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여 억쇠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였다.

《아저씨덕분에 우리 세식구는 무사히 지냈사오이다.》

그는 그 고마운 심정을 어떻게 다 나타낼지 몰라하였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우. 우리는 을지형님과 함께 사생동고를 맹약했었는데 응당 해야 할바를 했을뿐이우. 하하하…》

《그렇지 않구, 응당 그래야지. … 억쇠 이 사람, 얼른 최팔매를 불러오게. 그가 장영실과 누이동생이야기를 늘 했었는데 와보면 놀랄거요.》

잠시후에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버그러진 중년배가 들어섰다.

《자, 누가 왔나 보우.》

억쇠가 벙글거리며 영아와 김을지를 가리켜보이자 최서방의 두눈이 대번에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누군가?! 응?! 영아가 아닌가베!》

최서방은 한껏 반가와 덤벼치듯 영아의 손을 덥석 잡아 흔들었다.

영아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를 돌봐주던 최서방을 보자 지금껏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온갖 설음을 다 받아줄 사람을 만난듯 왈칵 터지는 울음을 삼키며 무너지듯 그자리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아주버님, 그간… 몸… 성히 계셨나…이까. …》

최서방은 자기도 눈물이 핑 도는것을 애써 누르고 헌헌히 껄껄 웃었다.

《몸성히 있다마다. 임자오빠와 마님덕분에… 자, 그만 일어나게.》

그는 영아를 일으켜주고 말을 이었다.

《작년가을에 경상도백성들과 함께 등문고를 치려고 서울에 갔다가 매만 죽도록 맞고 옥문밖으로 내쳐졌더라네. 허참… 그런데 뜻밖에도 귀인을 만나 그 집에서 오래동안 몸을 다시 추세우고 여기까지 오게 되였네. 그 귀인이란 임자의 오빠 장영실나리님과 형님되는분이라네. 그 얘길 하자면 끝이 없네. 후에 품을 놓고 하자구. … 그래, 임자가 어떤 억센 사나이와 배필을 뭇구 리천에 산다더니 바로 이 사람이였군 그래. 응? 하하…》

최서방은 년장자답게 김을지를 반가운 눈길로 대견히 바라보다가 또 한번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전의 수영포 군사 김을지가 아닌가? 왜놈을 세놈이나 죽이고 영아를 구원한 그때 그 젊은이… 응?! 그후엔 양지현감을 원쑤갚았다던…》

김을지는 벙글벙글 웃으며 꾸벅 절을 하였다.

《옳소이다. 형님, 제가 그 을지오이다. 형님이 내가에 쓰러졌던 저를 업어다가 영아네 집에 눕혀놓았던… 제가 형님에게 용서를 빌일이 하나 있소이다. 그건 장영실형님이 상호군벼슬을 받고 두번째로 마을돌이차로 동래에 왔을 때 장영실형님의 반당으로 꾸미고 또 이름도 박대산이라 하고… 소인이 그때 형님을 보고도 모른체 하였소이다. 양지현감을 처단한 〈죄인〉이라 사람들앞에 이 몸을 드러낼수가 없어서… 형님이 새매까지 영아에게 줄 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였소이다. 이제라도 용서를 빕니다.》

《아, 그랬구만! 생각나네. 장영실나리님에게 끌끌한 반당이 있구나 하구 보기만 했었지 김을지라고야 꿈엔들 알았나. … 허 이 사람이 나를 감쪽같이 속여먹었구만. 하하하…》

최서방이 그때 속히운것이 더 잘한 일인듯 껄껄 웃자 최천복두령이하 여러 패장들이 즐겁게 웃었다.

《형님, 새매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돌려드리겠소이다. 새매의 신세를 그동안 많이 졌소이다.》

《으응? 새매도 왔나?!》

《네, 밖에 매놓았소이다. 아주버님이 이제부터 타세요.》

영아는 새매를 돌려주게 된것이 기쁜듯 방그레 웃으며 최서방에게 말하였다.

《원, 이런 변이라구야, 새매를 보게 되여 반갑기는 한데 그렇다구 한번 주었던 말을 다시 빼앗다니 무슨 소린가. 그래서야 사람구실을 못하지.》

최서방은 급기야 손을 가로 저으면서 뒤로 한발 물러났다.

김을지와 영아는 제집에 돌아와 제 혈붙이들과 함께 있는것처럼 설음과 불안이 봄눈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인이 여기를 떠날 때 다시 돌아올 날이 있으리라던 두령님의 말이 옳았소이다. 이놈의 세상을 그대로 두고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없다는것을 뼈에 새기고 왔소이다. 두령님, 저와 우리 가족을 받아주시겠소이까?》

김을지의 한마디한마디에는 아기의 첫울음소리와 같은 그 무엇인가 세상에 태여나는 순박하고도 뜻깊은것이 슴배여있었다.

《우리한테 왔다가 또 나가겠거들랑 받아달란 청을 마우, 응? 허허… 각 패장들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 웅거지에 받아들이는것이 합당하겠는지 말해보우.》

최천복이 검은 입수염속에 흰이를 드러내며 웃으니 패장들도 덩달아 벙글대며 목소리를 합쳤다.

《합당하오이다.》

《고맙소이다. 저와 안해는 이 시각부터 여러분과 사생동고를 하리다.》

김을지는 모두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영아도 남편을 따라 머리를 숙여 맑은 목소리로 웅거지사람들과 죽고사는것을 함께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곧게 가리마를 타서 젊은 색시답게 쪽진 머리와 흰 저고리에 까만치마를 단정히 받쳐입은 영아는 사람들의 눈에 이채를 띠고 빛났다.

최천복두령과 패장들은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내들이 있어가지고 이 험악한 사지판에 저런 꽃같은 녀인까지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자책이 커서인지 아니면 아녀자가 사내들과 함께 칼을 들고 나서는 의기에 감복되여서인지 주먹을 더 굳게 틀어쥐였다.

이윽하여 최서방과 억쇠 그리고 패장들은 김을지부부가 어떻게 되여 양녕대군의 령지에 들어가 살게 되였으며 왜 거기서 빠져나와 웅거지에 다시 찾아오게 되였는가 하는 경위를 자초지종 들었다.

최천복두령은 김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길게 탄식하였다.

《장영실은 나라의 재인재사로서 앞으로 나라를 위해 더 큰일을 할 사람이였소. 허나 이놈의 세상이 그를 쫓아냈소. 그가 누구이든 천한 신분을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자기의 뜻을 이룰수 없소. 이자리에는 최서방과 김을지부부가 앉아있는데 두켠이 다 임금께 등문고를 치고 상소문을 올렸다가 소원성취를 못하였소. 임금이 어찌 등문고소리를 듣지 못하였겠는가. 또 등문고지기장이나 수문장이 어찌 임금에게 사유를 품하지 않았겠는가. 절대로 그럴수 없소. 임금은 알고도 그랬던거요. 내 김을지가 양지현감을 처단하고 웅거지를 떠날 때에도 말했지만 량반의 세상이자 임금의 세상임을 잊지 마우. 아주머니, 너무 상심마우. 우리 함께 칼을 들고 일어나 싸웁시다.》

《알겠나이다.》

영아는 나직이 부르짖고서 마치 자기가 한 말이 새나가지 않게 하려는듯이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리고 제 품에서 자고있는 어린 아들을 노예의 피눈물속에 내놓지 않으려는듯이 꼭 껴안았다.

이때 문밖에서 《어험!》 하는 나직한 기침소리가 나더니 이어 날파람있게 생긴 젊은이가 들어왔다.

《두령님, 망초에서 수상한 놈을 붙잡았소이다.》

《으응?!》

최천복두령과 패장들이 동시에 이렇게 되물으면서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언제 어떻게 기여드는 놈을 잡았느냐?》

최천복은 진중한 낯빛을 하고 물었다.

《여기 김을지형님네들의 뒤를 몰래 밟아오는 놈이 우리가 올라가 망을 보는 나무밑을 지날 때 수리개 병아리를 채듯 하였소이다. 하하…》

《음, 잘했네. 조금 있다가 이리로 끌구 오게.》

두령은 김을지의 내외를 보며 웃었다.

《보라구, 임자네들이 꼬리를 달고왔소. 허허.》

김을지와 영아는 죄스러워 어찌할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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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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