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등문고(2)

1

 

서울장안에 파루의 메아리가 울려간지 이슥하였다.

새벽안개가 고요히 흘러서 키높이 우중충한 궁궐담은 어슴푸레 보일듯말듯 하였다.

안개는 차츰 서서히 엷어지고 아침해빛은 불그스레 광화문앞 북각에 비쳐들고 또 이윽해서는 그앞에 부복해있는 젊은 부부의 어깨와 등허리에 어려들었다.

이들은 등문고를 치려고 리천에서 밤새워 달려온 박대산과 장영아였다.

해빛을 받은 영아는 꽃같이 아름다왔다. 꽃무늬비단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그 모습은 어느 량반집 마님과도 같았다.

흰비단바지저고리에 탕건을 쓰고 검은 목신을 신고있는 박대산이도 름름하였다.

임금이 상으로 하사한 옷을 입은것이다. 하루도 번지지 않고 이 옷을 넣어두는 엄나무궤에 절을 드리며 임금의 은총에 만분의 하나라도 보답해갈 마음을 쌓아가던 그들이였다.

박대산과 장영아가 이 옷을 입은것은 죽어서 뼈골이 진토된다 해도 임금에게 향하는 일편단심 변함없다는 뜻을 보여주자는것이였다.

해빛이 좀더 넓게 퍼졌다.

두사람은 이때를 기다린듯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나 대궐을 향해 사은숙배하고 박대산은 등문고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가슴은 널뛰듯 하였다. 등문고가 걸려있는 북각까지는 이제 몇걸음밖에 있었다. 그는 이 짧은 거리를 걷기 위해 이날이때까지 살아온것처럼 느껴졌다.

커다란 북이 눈앞에 다가들었다.

박대산은 걸음을 멈추고 북각앞에 세번 절을 하였다. 거기에 임금이 앉아있는것 같아서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붉은 가죽으로 끝머리를 절구공이처럼 둥글게 씌운 커다란 북채를 들었다. 이제는 한번에 세번씩 세번을 쳐서 아홉번 북을 울려야 하였다.

박대산은 제자신을 잊었다.

(상감마마, 소인이 오늘 등문고를 쳐서 상감마마께 억울한 사연을 아뢰려고 하오이다. )

박대산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뇌이면서 북채를 머리우에 높이 들었다.

허나 그 북채를 허공에 주춤 멈추었다. 자기의 본이름으로 등문고를 치지 못하는것이 죄송스러웠던것이다.

(김을지를 김을지라 하지 못하고 박대산이라 한것을 용서하옵소서. 소인이 본명을 밝히오면 못된놈들이 《중죄인》으로 잡아들일것이옵니다. 오로지 상감마마께 상소를 해야 하옵기에 기군망상지죄(임금을 속인 죄)를 짓사옵나이다. )

그는 깊이깊이 용서를 빌면서 멈추었던 북채를 더 높이 들어올려 힘껏 내리쳤다.

등문고가 기다렸다는듯이 《등으응!―》 하고 엄엄히 웅글고도 벅찬 소리를 냈다.

박대산은 가슴에 맞부딪쳐오는 북소리에 온몸을 떨면서 두번째 북을 울리였다. 그 소리는 박대산부부의 간절한 소원을 안고 대궐궁담과 광화문을 흔들었다.

박대산은 세번째로 북을 쳤다.

그에게는 자기가 울리는 북소리만이 이 세상에 가득차 하늘땅에 메아리쳐가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데선가 임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휩싸안았다.

《오, 박대산이냐. 네가 장영실의 일로 등문고를 치는것 아니냐.》

박대산의 눈에는 주먹같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어깨를 떨며 다시 북을 세번 울리였다.

문득 북각앞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경상도백성들이 떠올랐다. 공법이 부당하다고 등문고를 치고 하회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의금부라졸들이 눈앞에 얼른거리였다.

박대산은 그런 놈들의 낯판대기를 짓쳐대는 마음으로 북을 치고 또 쳤다.

그는 어떻게 안해곁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영아는 그자리에 엎드려 흐느끼였다. 그들부부는 다시 세번 절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회를 기다렸다.

엷은 안개속에서 투다닥투다닥 발걸음소리가 급히 들려왔다.

땅에 머리를 숙이고있는 박대산부부의 눈바투 검은 목신을 신은 발이 멈춰섰다.

액정서관리로서 등문고를 관할하는 리사균이 라졸 하나를 달고 나타난것이다.

《너희들은 누구인데 안개속에 몸을 감추고 돌입해 감히 북을 울리느냐?》

리사균은 첫마디부터 생트집을 걸어왔다. 보매 등문고를 치러 온 사람을 미리 조사해보지 못한 자기의 실책을 깨닫고 그 분풀이를 하는것 같았다.

등문고를 칠나위도 없는것을 가지고 북을 울리거나 또 제 리속을 차려보자고 북을 쳐서 임금의 정사를 번거롭게 할수 없다는 조사명분을 내대고있으나 안속으로는 뢰물을 받으려는것이였다.

그런데 이 아침에 벌써 등문고를 쳤다. 그러니 왜 트집을 걸지 않겠는가.

《소인은 경기도 리천고을 양녕대군마님의 반당 박대산이옵고 이 사람은 저의 안해 장영아이옵나이다. 저희들은 억울한 사정을 존전에 상주하려고 북을 울렸소이다.》

《뭐, 박대산이?!》

리사균은 처음엔 놀랐으나 다음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희들이 한때는 임금의 상을 받는다 어쩐다 하더니 일이 이렇게 될줄을 몰랐더냐. 너는 장영실의 매부되는 박대산이고 너의 녀편네는 장영실의 누이동생이렷다. 흥, 꼴좋다. 장영실이 본래의 노비로 다시 돌아가고 너희들은 련좌되고…

아무려면 노비가 벼슬을 해? 똥개는 똥을 먹고 사는거야 하고 리사균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그는 잘먹어 군턱이 지고 개기름이 번질번질한 얼굴에 몇대 나지 않은 웃수염을 배배 꼬아올리면서 박대산부부를 내려다보았다.

이 리사균은 군기감의 판관벼슬을 지내다가 얼마전에 뢰물로 벼슬이 올라 승정원 관리로 되였었다.

리사균은 박대산부부를 어떻게 하면 놀려먹겠는가를 궁리하듯이 배를 내밀고 그들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너희들이 등문고를 친 까닭을 알겠다. 장영실이 노비로 떨어진것을 상소하려는것이렷다. 어험, 내 말이 옳으냐?》

《…》

《너희들이 글을 아느냐?》

《상감마마께서는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치라고 이 등문고를 설치하였소이다.》

박대산은 분이 치밀어올랐지만 꾹 눌러 참을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상소문도 없이 맨손으로… 아하하…》

리사균은 이렇게 비웃어가며 배를 내밀었다.

박대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큰 눈이 무섭게 불을 뿜었다. 방금이라도 화닥닥 일어나 리사균을 토끼새끼 덮칠듯한 호랑이기상이다.

리사균은 얼결에 한발 뒤로 물러섰다. 박대산이 범도 맨손으로 잡아휘두른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던것이다.

그는 또 두어걸음 뒤로 물러났다. 단박에 멱살을 붙잡힐것 같았다.

《어…어… 이것 봐라. 행동거지가 불손무엄토다. 어서 썩 물러가라.》

리사균이 한마디로 잘라버리고 쫓기듯이 돌아가버렸다. 박대산부부는 그가 돌아가든말든 상관치 않고 그대로 부복한채 기다리였다.

상감께서 하늘땅을 둥둥― 흔들어놓은 북소리를 어이 못들었으랴.

《이 어인 등문고소리냐? 어느 고을 백성이 무슨 일로 등문고를 쳤는지 알아보도록 할지어다.》

이어 승정원에 어명을 내리실것이다. 틀림없이!

그러면 어느 령이라고 너희들이 가만히 있을테냐.

그들부부는 이런 기대와 소원을 안고 하회를 기다리였다.

안개는 언제 끼였던가싶게 자취없이 사라졌다. 해빛이 그들의 오른쪽얼굴과 몸을 비치였다.

오래동안 무릎을 꿇은채 기다리고기다리니 해빛은 그새 자리를 옮겨 잔등과 정수리를 지지듯이 내리쪼였다. 땀방울이 흘러 목언저리로 굴러떨어졌다.

박대산은 안해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마와 눈섭, 귀, 목에 땀이 구슬처럼 수없이 맺히였다.

안해가 가엾어졌다. 사나이자신도 견디기 어려운데 아녀자의 몸으로 꼼짝않고 엎드려있으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가.

두무릎이 저려오고 발도 제발인지 남의 발인지 모를 지경이 되였다.

《여보, 몸이 일없겠나?》

박대산이 누가 들을세라 속삭이자 장영아는 《참아내야지요. 헌데 성덕이 아버지가 걱정되여요. …》 하고 숨을 할싹이였다.

사실 영아는 자기보다 남편이 더 념려스러웠다.

몸이 항우같은 남자가 오래동안 무릎을 꿇고있자니 몸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남편의 얼굴에 줄기져흐르는 땀을 씻어주고싶으나 그럴수 없는것이 가슴아팠다.

《그럼 됐네. 난 당신이…》

박대산이도 영아도 이제나저제나 임금이 자기들의 상소를 꼭 받아주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힘든줄을 모르고 기다리고기다렸다.

해빛은 등과 정수리에 불볕을 쏟아붓다가 지금은 왼쪽으로 옮겨가 그와 같이 살을 지지듯 내렸다. 가을해빛이 오뉴월 뙈약볕보다 성글다하지만 한낮이 이렇게 따가울줄은 몰랐다.

마치 억만개의 불바늘로 살가죽의 땀구멍들을 찔러서 진땀을 빼내는듯 하였다.

옷이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목이 말랐다. 물을 먹고싶다. 그러나 부복한 몸을 흐트릴수 없다. 임금이 어명을 내릴지 모르는 이때에 물을 먹는 행위를 어찌할손가.

어데선가 한줄기 선들바람이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또 불어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진다.

허나 불어간 바람은 다시 돌아올줄 모른다. 바람이 기다려진다. 여느때는 바람도 많더니 오늘은 종일토록 불지 않는다.

물, 물을 먹고싶다. 비가 왔으면,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아니, 비바람을 몰아왔으면,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꺼지도록 뢰성이 터지고 이놈의 세상을 통채로 들부셨으면… 하는 갈망이 솟구쳤다.

해는 바위투성이 인왕산너머로 기울어졌다. 조금 있다가 피빛노을이 타올랐다.

박대산이는 안해의 숨결이 고르롭지 않음을 느끼였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안해는 두눈을 감고 입을 벌린채 《헉헉―》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박대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안해가 잘못될것 같았다.

《여보―》

가만히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숨소리만이 거칠었다.

《여보―》

좀더 크게 불렀다. 그때에야 영아는 정신을 차린듯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눈을 스르르 떴다.

《임자 몸이 견디여낼것 같지 않네.》

박대산은 어찌할지 몰랐다. 자신도 머리가 무겁고 온몸이 쑤셔왔다. 목이 뻣뻣해지고 금시라도 쓰러질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엎드려있었다.

어제 저녁에 리천을 떠나 밤새워 달려온데다가 등문고를 앞에 두고 너무나 흥분하여 아침밥도 잊었었고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기갈이 더해지는지 몰랐다.

《일없어…요. … 성덕이 아버지―》

《그만 일어났다가 래일 아침에 다시 오자구.》

《아니예…요. … 좀더 기다려보자…요―》

《상감마마께서 국사에 다망하신가봐. … 임자가 견딜만 하면 좀더 기다려보세.》

어느덧 해가 졌다.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잠시후에 별들이 총총히 돋아났다. 그러나 대궐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문득 장중하고도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였다.

순간 박대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 이경을 알리는(밤 10시경) 인경소리다. 성문을 닫고 통행을 금하는 시각을 알리는 소리다.

저 인경은 옥루기륜이 가리켜주는 시간을 따라 친다. 바로 장영실형님이 창안제작한 옥루기륜이 인경을 울리게 한다.

장영실은 비록 노비로 쫓겨났지만 옥루기륜은 변함없이 이 나라의 시간을 재고있다.

박대산의 눈앞에는 장영실의 웃는 모습이 안겨왔다.

그가 웃는다. 그가 다가와 말한다.

동생이 인경소리도 못듣고 그냥 부복해있구려. 성덕이 엄마랑… 허허, 일어들나우. 소용없소. 상감마마께서도 침전에 드시고 피곤한 몸을 쉬울 때이고 온 나라 백성들이 혼곤히 잠들 때가 아니요― 하고 웃는 장영실은 그전과 다름없이 상호군의 관복을 그대로 입고있다. 왜 그리 놀라우? 성덕이 아버지… 난 파직되지 않았소. 저 옥루기륜이 살아 돌아가는 한 난 상호군이우. 하하…

박대산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가까운 어둠속에서 딱딱이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야행을 단속하는 순라군들이였다. 초롱불을 드리운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박대산부부의 머리맡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이게 사람이 아닌가?! 그것도 남녀가 부복해있네그려.》

그중 하나가 제 동료 순라군을 돌아보며 놀랐다.

《뭐, 남녀가?》

뒤에 섰던 순라군이 초롱불을 가까이 내댔다.

《참말이군. 여보게 이 사람, 인경소리를 못들으셨소? 도대체 어데 사는 사람들이요?》

박대산이 몸을 한번 움쭉하고 대답하였다.

《우리 부부는 리천에 사는 백성이우. 등문고를 치고 하회를 기다리는중이올시다.》

《하회를?!》

순라군 하나가 이렇게 되뇌이며 허허 웃었다.

《어서 일어나 물러가시우. 하회가 있을려면 벌써 있었지, 인경이후에 있겠소. 지난번 경상도백성들도 등문고덕을 못보고 흩어졌소. 어서 돌아가시오.》

《빨리 떠나시오. 다른 순라군이 보면 한성부로 잡아들인다오.》

다른 순라군이 박대산의 어깨를 잡아흔들고 영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엎드려있던 영아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옆으로 동그라졌다. 엎드렸던 그 모양대로 몸이 새우등처럼 되여 기척이 없었다.

《아니, 이런 변 봤나. 부인은 이미…》

순라군이 닁큼 놀라 한걸음 물러났다.

《여보―》

박대산은 급히 안해를 일으키려 일어서다가 그도 쓰러졌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관절이 펴이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일어나 안해의 머리를 제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창망히 안해를 흔들었다.

《여보, 여보, 정신차리우.》

허나 대답이 없었다. 대산이는 제 입술을 안해의 코밑에 대였다. 알릴듯말듯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안해의 손발을 주물러주면서 까드라진 팔다리를 조금씩 조금씩 펴주었다. 또 장지손가락으로 인중을 누르고 비벼주었다.

영아가 비로소 기지개를 켜듯 긴숨을 몰아쉬며 눈을 반쯤 떴다.

《깨여난가봐. 조금터면 큰일날번 했군. 우리가 마침 왔으니 그랬지 그대로 두었다면 부복한채로 잘못될번 했네그려.》

《여보게 이 사람, 사내가 보기는 거쿨지지만 미련하기 곰이네그려. 제옆에서 녀편네가 죽어지는걸 모르구 하회만 기다리다니… 안해를 업구 어느 가까운 집에 가서 의원을 불러 보이시오.》

순라군들이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의 곁을 떠났다.

박대산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안해를 죽일번한 자신을 꾸짖으며 눈물을 흘리였다.

영아는 숨결이 돌아섰으나 온몸이 불덩이였다. 더위에 찌들려 일사병이 난것이다. 조갈든 입술사이로 《물―, 물―》 하는 실오리같은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여보, 나 여기 있네. 조금 기다리게.》

박대산은 식은땀에 푹 젖어든 안해를 업고 일어났다.

어둠속에 그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상감마마… 궁궐담이 울리고 하늘땅이 흔들리도록 등문고를 울리였는데 들으셨나이까, 못들으셨나이까. 어이 대답이 없사오이까. 억울한 사정이 있거든 등문고를 치고 상소도 하라시던 어명은 어디에 두시고… 그 하교는 어디에 두셨더이까. … 상감마마!―

박대산의 가슴속에선 이같은 부르짖음이 오래도록 메아리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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