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3

 

박대산은 장영실의 집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부엌문은 열려져있었다. 아마도 아주머니가 저녁을 짓고있는것 같았다.

아직은 날이 채 어둡지 않아서 깨끗이 거둔 집이 알뜰하게 보여왔다.

바람벽은 노란 진흙물을 곱게 칠하고 하얀 창호지를 바른 자그마한 방문은 새로 재간있게 짜서 달았다.

그 칸살은 서로의 맞물림이 정교하고도 단단한데 가만히 보니 한쌍의 원앙새로 되여있었다.

그것은 장영실과 숙이의 모습이다.

장영실형님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방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한쌍의 원앙새 그 마음 간직하자고 만들어놓을수 있을것인가.

그는 저도모르게 탄복하여 중얼거리였다.

《허, 그참 형님답네!…》

부엌에서 쌀을 일던 숙이는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열려진 부엌문으로 내다보았다.

(아이구나! 리천아주버님 오셨네. )

그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반갑게 달려나와 어글어글한 눈을 빛내였다.

《아주버님, 그간 편안하셨나이까?》

대산이도 벙글거리며 굽석 선절을 하였다.

《형님은 무고하신지요?》

《네, 성덕이랑 성덕이 엄마랑 잘 계시나이까? 막 보고싶어 죽을 지경이오이다. 호호…》

《그러지 않아도 따라오겠다는걸 말렸소이다. 대군마님을 모시고 오는 길이여서…》

대산이는 저도모르게 어쩔수 없었다는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순박하게 웃었다.

숙이는 맨손으로 범을 잡아메치는 시누이 남편이 자랑스러웠다. 남편을 잘 만나 이 억대우같은 사나이가 가까운 친척으로 되였다.

언제봐야 미덥고 고지식하고 착하고 듬직하여 참말 미더운 성덕이 아버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사람이다.

숙이는 마음이 든든해지고 무서울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가집 녀자들은 입을 삐죽이며 지나가는 일이 있어도 객사의 녀종들과 일반려염집 아낙네들은 숙이를 은근히 부러워하였다.

박대산은 그동안 서너번 양녕대군의 반당으로 서울에 올라왔다가 이 집에서 묵어가군 하였었다. 그럴 때면 숙이는 혼례를 치르기 전에 장영실나리님과 각기 다른 방에서 잔다고 하면서 엇걸이로 지어놓았던 방에 그의 잠자리를 보아주었다.

《아주버님, 먼길에 피곤하실텐데 어서 몸을 씻고 방에 드시오이다. 배가 고프실텐데… 세면물을 떠드리리다. 그사이에 저녁밥을 짓겠소이다.》

《물은 무얼… 난 시원한 내가에서 웃동을 벗어붙이고 활활 씻는게 더 좋소이다.》

박대산은 꽁무니에 찼던 수건을 뽑아들고 성큼성큼 사립문밖을 나섰다.

날은 이내 어두워왔다.

박대산이 몸을 씻고 마당에 들어서니 숙이는 《밥이 다 되였소이다. 어서 저녁상을 받으시오이다.》 하고 서글서글 웃으며 재촉하였다.

잠시후에 방안에 들어와 앉은 대산에게 숙이는 쪼각상에 저녁밥을 챙겨 놓아주었다.

《아주버님이 반갑기는 해도 저녁상은 변변치 않아서 부끄럽소이다.》

《원, 무슨 소릴… 그나저나 형님이 오거들랑 겸상하리다.》

《오늘은 좀 늦어지리다. 대궐에서 무슨 연회가 있는데 거기에 참석하고 나오느라면… 먼저 잡수시오이다.》

《지금은 밥이 당기지 않소이다. 경상도 백성들이 북각앞에 모여든걸 보았더니 마음이 편치 않소이다.

등문고를 치고 천여명이 하루종일 엎드려 빌었지만 북을 친 사람들을 잡아들이였소이다.》

대산은 남의 일같지 않아서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 일이 오늘뿐이게요. 한해에도 몇번이나 있는 일인데…》

《뭐? ! 한해에도 몇번이나? 그래 그때마다 소원풀이를 못했소이까?》

대산이는 크게 놀라 숙이를 처음보듯 하였다.

《열에 아홉은 그랬던가 보오이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탓인지 멀리 영추문 담너머에서 궁중악곡이 바람에 실려왔다.

얼씨구 지화자 좋구 좋다 태평세월 하좋아… 라는 기녀들의 노래가락이 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엇섞여 간간이 들려왔다.

영추문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돌란간 석교가 나지고 거기를 건느면 석축담이 또 하나 나서는데 그곳을 에돌아 지나면 큰 련못이 펼쳐진다. 그 련못엔 흰돌기둥들우에 떠받들려있는 루각이 찬연히 솟아있다.

이 루각이 바로 당시 유명한 경회루이다.

경회루는 왕궁의 대연회장이다. 지금 거기서는 조정의 문무신하들이 임금에게 큰 잔치를 베푸는중이였다.

《허참, 대궐에선 춤노래가 한창인데 대궐밖에선 백성들이 상기도 엎드려있는지 모르겠구만. 등문고는 임금과 백성사이를 가깝게 하는 북인데 오히려 멀게 하는 북이 되였소이다. … 그게 다 못된 고을원들과 사대부들탓이오이다. 그런 놈들을 가만히 두다니, 상감마마의 눈과 귀를 간활히 속여먹는 놈들을 당장에…》

대산이는 큰 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지금이라도 칼을 찾아들고 떠나온 《산당》 웅거지로 되돌아가고싶은 충동이 온몸에 일어섰다. 천군만마를 몰아 여기저기 악질관료무리들을 씨종자도 남기지 않고 쳐버리였으면… 허나 그렇게 할수 없다. 사랑하는 안해와 성덕이는 《화적》의 가족이라 잡혀가고 또다시 노비로 떨어지거나 참형을 당하기 십상이다. 어디 그뿐이랴. 장영실형님에게도 루가 미쳐 어떤 화를 당할지 짐작할수 없다.

그도 그렇거니와 임금의 은총을 받고 양녕대군의 은총을 입은 몸이 어찌 임금의 뜻을 거슬리겠는가.

대산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왔다.

그는 큰숨을 내쉬고 제 손으로 물그릇을 잡아당겨 꿀꺽꿀꺽 마시였다. 마치 타는 가슴을 식혀버리기라도 하듯이…

《아주버님, 고정하시구 밥을 좀 드시오이다.》

숙이는 대산의 침중한 낯빛을 날려버리듯이 방긋이 웃으며 등불심지를 돋구어올렸다. 금시 방안이 밝아졌다.

《형님이 오면 함께 하리다.》

대산이 밥상을 한무릎 들어내놓는데 《리천 성덕이 아버지 왔나?》 하는 장영실의 기쁨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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