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5

 

청명이 지나고 닷새째 되는 날 새벽.

궁성동쪽 교외에서는〔동대문밖 보제원 동쪽골짜기에 선농단 (농사가 잘되게 비는 제단)이 있고 거기에 친경대(친경전)도 있었다〕 임금이 농사귀신에게 지성껏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대궐에는 왕궁을 호위하는 군사들만 남겨두고 모든 문무백관들이 다 나와 참석하였다.

북소리가 둥둥 세번 울리고 그뒤를 이어 궁궐악대가 풍악을 잡았다. 악공 열두남녀가 푸른 수건에 푸른 옷을 입고 높다란 제단옆에 늘어서서 농사귀신의 혼백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농사귀신이 와서 운감(제사때 귀신이 차려놓은 음식을 맛본다는것)한다고 백성들은 믿었다.

 

                 많고많은 풀씨에서

                 누가 낟알 찾아냈나

                 그런분이 없었던들

                 농사 어이 생겼을가

                 땅 일구고 씨뿌리여

                 우리 백성 먹였도다

                 주옥이랑 백옥이랑

                 페백으로 올리노라

 

노래소리는 새벽노을이 떠오르는 하늘가로 울려갔다.

(누가 먼저 가시밭과 풀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몇천만리 헤매다니며 낟알이 될만한 풀씨들을 찾았던가.

거치른 돌밭과 나무가지에 살을 찢기우고 혹은 무서운 짐승과 싸우기도 하고 징그러운 구렝이를 피해다니기도 하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진펄에 빠지면서 기장씨도 찾아내고 조씨도 얻어내고 벼씨도 구해내고 수수씨와 콩씨도 찾아냈던가.

낟알 한알을 얻어내려고 씹어보고 맛을 보고 단것, 신것, 쓴것, 비린것을 가리면서 먹을것과 먹지 못할것을 헤아려 태고의 이 땅을 갈고 간 사람, 독풀씨를 먹었다가 토해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산야에 쓰러져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은 얼마이고 낟알 한알 얻고서 너무 기뻐 흘린 눈물은 그 얼마였으랴!

저 하나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니라 뒤에 태여날 백성들을 위해 한생을 다 바친분, 이런분을 잊지 못해 제사를 지내고 절을 드리는것은 낟알 먹고사는 백성의 도리다. )

장영실은 이 나라 문무백관들을 데리고 이 새벽에 몸소 제단앞에 서있는 세종을 눈시울 뜨거이 바라보았다.

그는 임금우에 임금은 농사귀신이라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백성들을 먹여살리는이가 백성의 부모고 임금이다. 그래서 임금이 농사귀신에게 제사를 드리는것이 아닌가.

북소리가 다시 세번 울리였다. 임금에게 술잔을 받들어주는 관리한테서 커다란 은주발을 받아든 세종이 그것을 두손으로 대우에 놓고 절을 하였다. 장영실은 자기도 임금을 따라 절하는 심정이였다. 농사귀신에게로 향하는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 밀물들이 바다처럼 굼니는것 같아서 눈굽이 젖어왔다.

농사귀신의 넋을 옳게 이어 그 만분의 하나라도 이루어나갔다면 해마다 참혹한 흉년이 들지 않을터이고 백성들이 류랑걸식하거나 굶어죽지 않을것이 아니냐. 도적이 성하는것은 먹고 살아갈 량식이 없는데 있다.

사람은 본래 태여날 때부터 착한 마음을 안고 나는것이다. 어느 누가 도적이 되고싶어 도적이 되며 죄를 짓고싶어 짓느냐. 백성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에야 례의를 가르치고 잘되고 못된것을 가려서 상을 주거나 형벌을 내려야 한다. 농사귀신이 먼저 낟알을 찾지 아니하고 형벌만을 앞세웠다면 어이 후손들에게서 제상을 받겠느냐.

이해 겨울은 물러가고 산야에 찾아든 새봄은 농사귀신의 혼백이다. 밭갈고 씨뿌리라고 재촉하며 돌돌 속삭이는 시내물과 산과 들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움, 꽃샘하노라고 불어오는 바람은 농사귀신이 다 안고온것이다. 이해에는 임금이 각 고을 원들을 신칙하고 백성들을 이끌어 농사를 사람이 바라는대로 지어야 하겠다는 억년지심을 다질것이라고 장영실은 생각했다.

저 멀리 사래긴 밭이 제단에 잇닿아 넓게 펼쳐져있다. 여기가 이른바 임금이 직접 밭을 가는 의식을 거행하는 친경전이였다.

모든 조정관리들이 임금을 따라 친경전으로 가서 왼쪽으로 반렬을 지어섰다. 임금의 오른쪽으로는 세자와 여러 대군들이 늘어서고 그옆으로 종친들이 잇대여섰다. 바로 그 반렬에는 리천에서 올라온 양녕대군도 있었다. 그는 청명이 지나간지 나흘만인 어제 저녁에 임금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도착하였었다. 견마잡이로는 직접 박대산을 지명하여 함께 왔다.

박대산은 청명전날에 부모의 산소에서 의금부의 라졸들과 뜻밖에 맞다들어 놈들을 쳐눕히고 영아와 함께 무사히 리천에 돌아왔었다. 양녕대군에게 타고갔던 백마를 돌려주며 엎드려 백배만배 사례하는 마음, 산소에서 있었던 피치 못할 사연을 대군에게 그대로 아뢰일수 없는 그 심정을 어느 누가 다 헤아릴수 있었으랴. 이제는 절대로 령지밖을 나가지 않으리라고 속다짐을 해두었건만 오늘은 어쩔수없이 양녕대군을 따라와 이렇게 밭을 가는 임금을 보게 되였다.

(상감마마께서 밭을 가시누나!)

그의 두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지난해 봄에 임금의 행차를 멈춰세우고 굶어죽어가는 부모를 살려달라고 엎드려 빌던 자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래서 임금의 앞길을 막아나섰지만 지금은 임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하여 밭갈이 하는 임금을 멈춰세우고 보탑을 넘겨받고싶었다. 발걸음이 절로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정신을 다잡고 발을 땅에 꽉 눌러붙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임금을 편히 모셔라.》 하고 부르짖는 김을지가 있고 《아니다, 너는 못나간다. 못나간다.》라고 부르짖는 박대산이가 있었다. 그 박대산은 김을지에게 《자숙하라, 여기가 어디냐. 임금이 직접 밭을 가는 의식을 네가 어이 대신한단 말이냐. 너는 〈중죄인〉이다. 네가 분별없이 뛰여든다면 임금이 한껏 놀라시고 또 임금의 거룩한 뜻을 망쳐버릴것이다.》라고 꾸짖었다. 그리하여 그는 몸이 앞으로 쏠리는것을 혼신을 다해 억제하였다.

오른쪽 밭머리에는 조정관리들이 여전히 반렬을 지어 서있고 그중에 상호군 장영실이도 있었다.

그는 임금이 잡은 보탑에서 그 어떤 자그마한 삐직소리라도 나지 않나 하고 온몸과 귀로 들으며 순간순간을 보냈다.

눈으로는 흙밥이 보습귀로 엇비스듬히 슬슬 넘어가서 겉면흙이 땅밑으로 들어가고 땅속흙은 겉면으로 자리바꿈하는것을 흐뭇히 바라보기도 하고 두마리 황소가 함께 메고있는 멍에와 보탑채, 보탑손잡이들을 주의해 보았다.

임금이 잡은 보탑이 뜻밖에 부러진다든가 보습이 밭이랑을 제대로 지어나가지 못한다면 임금의 거룩한 덕에 금이 갈것이다.

그러나 보습날은 신기하게 밭이랑을 훌륭히 지어나갔다. 해빛에 드러난 흙밥은 끊어졌다든가 굵어졌다든가 얇아졌다든가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매지게 이어져 번들거렸다.

이 보습은 장영실이 만들었다. 보습이 가벼우면서도 깨지지도 무디여지지도 않게 화포를 부었던 시우쇠물로 부어냈다. 또 보탑을 끌면 사람이 힘들게 누르지 않아도 땅속에 들어가 박히면서 깊이 갈아낼수 있도록 보습을 묘하게 만들고 보습채의 각도를 알맞추어 세밀히 지어놓았다. 그가 아니면 만들어낼수 없는 새 화포처럼 보습과 보습채도 그가 아니면 만들수 없는 훌륭한 보탑을 만들었다.

장영실은 제가 만든 보탑으로 밭가는 임금이 고맙고고마와서 체소한 몸을 어떻게 할지 몰라하였다.

이렇게 임금이 앞장에 서서 밭을 갈고 그뒤로 조정관리들이 밭을 갈며 또 온 나라 8도강산 백성들이 일제히 그뒤를 따라 밭을 간다면 능히 나라와 백성들을 살리는 낟알을 얻을것이라는 생각에 기쁨이 밀물처럼 가득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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