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기다리는 마음

4

 

장영실이 경상도 동래현에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은 세종은 조회를 마친 뒤에 장영실을 불러 따로 만나보았다.

이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승정원을 통해 보고나 받고 맡은 일을 잘하라는 어지를 내리는것이 례상사였으나 장영실에게만은 특별하였다.

《먼길에 몸성히 다녀왔다니 기쁘기 그지없노라. 과인은 그대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였니라.》

세종은 어전에 무릎을 꿇고있는 장영실의 체소한 몸을 대견히 내려다보았다.

《황공무지로소이다.》

장영실이 머리를 더 깊이 수그리였다. 그는 임금이 이렇게까지 만나줄줄은 미처 몰랐던것만큼 감복됨이 한량없었다.

그러나 또 나라의 《죄인》으로 꼬리가 붙어 방을 내돌려 찾고있는 김을지를 만나 영아와 혼례까지 시켜준것을 임금이 알고서 부른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차겁게 등골에 흘렀다.

더우기나 양녕대군에게 을지와 영아를 두고온것을 알면 어떤 화가 미칠지 모를 일이여서 가슴이 한줌만 해졌다.

임금의 은총을 하해같이 받은 몸으로서 임금앞에 제 마음을 감추는것은 천륜을 어기는것이고 마땅히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 이제 임금이 김을지에 대해 물으면 사실그대로 숨김없이 대답하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영실이 김을지와 깊은 연고가 있음을 아직은 알수 없었던것이다.

《금일에 우리 글을 만드는 일은 훈민을 위한 정사중에서 매우 긴요한 일이노라. 자음과 모음의 결합법도 완성을 보고 우리 말 소리대로 적을수 있는 기틀이 서게 되였다.

허나 아직 고쳐나가야 할것도 많아서 그대는 우리 글이 한자한자 완성되는 차례로 책을 찍어낼수 있도록 금속활자를 부어낼 차비를 지금부터 잘해두어라.》

《듣자왔사옵나이다.》

장영실이 눈빛을 빛내이며 황망히 대답하였다.

《과인이 근심이 또 한가지 있으니 그대가 맡아 덜어주어야 하리라. 평안도절제사로 나가있는 리천이 얼마전에 화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리유를 밝힌 상주문을 보내왔다. 북방의 야인들(건주위녀진)이 처음엔 우리 화포를 두려워하였는데 이즈막에 와서는 그리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들군 한다니. 천지를 진감하는 화포소리에 놀라서 달아나군 하였지만 화포알이 대개 천여보밖에 나가지 못한다는것을 알았기때문이다. 우리 군사들이 화포를 가지고 따라가며 쏘면 되겠지만 화포가 무거워 말잔등에 싣지 못하는데다가 화약도 많이 들어서 당해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즉 어떻게 하면 화포를 가볍게 하고 화약을 적게 쓰면서도 화포알이 멀리 미치게 하겠는가. … 이런 화포는 그대만이 만들수 있다고 리천이 상주해왔노라.》

세종은 어좌에서 일어나 부복해있는 장영실을 손잡아 일으켜주면서 빙그레 웃었다.

《과인이 리천대감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되겠느냐? 응?》

임금의 《응?》 하는 물음소리가 장영실의 가슴에 흘러들어 세찬 감격을 불러일으켰다.

《상감마마, 굳게 믿어도 되오리다. 리천대감이 평안도로 떠나기 전에 소신과 의논한적이 있사옵나이다. 화포를 가볍게 하면서도 더 크게 위력한 새 화포를 만들어낼 방안까지도 세워놓았나이다. 상감마마, 걱정하지 마옵소서.》

《과인은 그대를 믿어 지금까지 세상에 없는것을 많이 만들었거니 이번에도 의심치 않으리라.》

세종이 만족하여 한시름 놓인듯 어좌로 돌아가 앉았다.

《황송하옵니다.》

《과인은 새 화포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겠니라. 그건 그렇게 하고… 다음은 그대가 먼길을 오가며 보고들은 이야기를 해보아라. 보태지도 말고 떼지도 말고 곧이곧대로 여쭈어라.》

장영실은 뜻밖에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임금이 백성들의 처지를 알아야 하리라고 늘 생각해왔기에 그는 선뜻 말하였다.

《상감마마께 근심을 끼칠가봐 죄송하오나 어찌 있는대로 여쭙지 않겠나이까. 백성들이 집을 버리고 류랑걸식하옵나이다. 열에 다섯가호는 되나이다.》

참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살길을 찾아 헤매는것인가.

대산과 영아도 살길을 찾아 양녕대군의 령지에 숨지 않았던가.

《열에 다섯가호나?》

세종이 놀라며 이렇게 되묻고 《어찌하여 빈집이 많은고? 과인은 너의 말에 실속이 없다고 탓하지 않으리니 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고 이윽히 굽어보았다.

세종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어려들었다. 그러나 장영실은 임금이 백성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반드시 알아야 하겠기에 거짓을 말할수 없었다.

《상감마마, 백성들이 살길을 정처없이 헤매는것은 해마다 가물어 농사를 망친탓이옵고 흉년에도 조세는 조세대로 바쳐야 하옵고 군포도 군포대로 바쳐야 하는것이 둘째 리유이옵나이다.

3, 4월 농번기때에도 부역에 나가고 온갖 가렴잡세가 너무 많사와 백성들이 허리펼 날이 없나이다. 상감마마의 은총을 입어 소신이 마을돌이를 하고온 동래현에서는 저에게 큰 잔치를 차려준다고 하면서 거기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백성들의 가호에서 받아들였다 하옵나이다. 이것이 잡세중의 한가지로 첨부되오니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는것이 얼마나 많겠는가를 능히 알수 있나이다.》

장영실은 고을원의 생일잔치, 그 부모들의 제사, 경차관들의 접대비, 어린아이의 돌잔치비까지도 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충당한다는것도 아뢰일가 하다가 량반관리들의 비행을 너무 야박하게 품하는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일반백성들이거나 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상전을 헐뜯기를 일삼는다면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풍속이 어지러워져서 정사가 바로서지 못하는것이다.

그래서 장영실은 다른것은 말하지 않고 이번에 동래현에서 자기를 위해 차려놓은 큰 잔치상이 전수히 백성들의 진혈을 짜낸것이므로 차마 거기에 참석할수 없었다는것을 아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미 차려놓은 연회상을 마다하면 그 연회상은 뭐가 되느냐. 그 연회상은 임금이 보낸 사람을 중히 환대하여 임금을 높이는 충절이 깃든것이 아니냐.》

장영실은 뜻밖에 일이 이렇게 번져지는데 당황하였다.

《상감마마, 소신이 외곬으로만 생각하였사오니 용서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오나 굶주린 백성들은 어이하오리까.》

세종의 얼굴에 큰 시름이 비구름처럼 떠돌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떼도적이 되여 관청이며 량반이며 세상을 들부시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는 없는것이다.

지난봄에 행차를 멈춰세웠던 양지현 백성 김을지도 온 식구를 굶어죽게 한 양지현감을 죽이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가 필경 《도적》의 무리에 끼여들었을것이다. 그를 살려둘수는 없다.

《김을지를 죄인으로 붙잡아 처형하자는 간관들의 제의를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제의가 그른데가 없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백성들이 저저마다 〈김을지〉가 된다면 나라가 망할것이다. 동래고을엔 김을지를 잡아들이라는 어지가 닿지 않았느냐?》

장영실은 가슴이 섬찍하여 온몸이 부르르 떨리였다.

임금도 종당엔 김을지를 처형할 결심을 세운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왔다.

《예, 닿았사옵나이다. 고을원이 소신에게 통고해주면서 주…의하라고 하였사옵니다.》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마저 혀가 굳어진듯 떠듬거리였다.

만약 세종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그의 낯빛을 보았더라면 이상히 여길것이지만 그가 갓쓴 머리를 숙이고 부복해있은탓에 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삼남지방의 각 고을에도 어지가 닿았을것이다.》

그리고는 내 그대만은 굳게 믿는다는듯이 온화하고도 따스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그대의 누이동생은 이번에 노비신분을 벗었으니 집에 데려다가 함께 살면 어떨고?》

임금이 이렇듯 친근하게 의논조로 물어주는것은 어느 신하에게도 베풀지 않는 한량없는 믿음이였다.

장영실은 자기가 노비에서 갑자기 높은 벼슬을 받았을 그때처럼 지금도 임금의 성은에 너무도 높이 받들려 자칫 잘못하면 천길나락으로 떨어질것만 같은 위구를 느끼였다.

그것은 김을지―박대산에게 몰려오는 검은구름에서 환기된 위구심이기도 하였다.

임금은 아직 김을지와 자기의 관계를 모르고 전고에 없는 은총을 베풀고있지만 그것이 알려지면 엄청난 죄를 물을것이다.

《상감마마, 누이동생은 꿈같은 은총을 입고 지금은 억센 젊은이와 혼례를 치르고 양녕대군의 령지에서 살게 되였사옵니다.》

《양녕대군의 령지에서?!》

세종이 놀랍게 눈을 번쩍 뜨고 장영실을 바라보았다.

《소신은 일이 이렇게 희한스럽게 될줄은 몰랐사옵니다.》

《어떻게 그리되였던고?》

《예, 일은 뜻밖에 이렇게 되였사옵니다.》

장영실은 누이동생과 박대산이 양녕대군령지에 눌러살게 된 사연을 다 아뢰였다.

다만 양녕대군에게 그랬던것처럼 박대산의 본명과 양지현감을 죽여버린 일은 빼고 그외에는 사실그대로 고스란히 아뢰였다.

세종은 양녕대군의 창에 빗맞은 범이 양녕대군을 덮치려던 그 대목에서는 《아니 저런… 저런…》 하고 놀라나고 다음순간 박대산이 범의 꼬리를 붙잡아 못에 빠뜨려 죽이는 대목에서는 큰숨을 내쉬였다.

《그 젊은이 아니였다면 대군이 큰일날번 하였고나. 그참 장한 젊은이로다.》

그러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해마지않았다.

《음, 그래서 대군이 자기 생명의 은인을 령지에서 살게 하였고나. 참말 잘했구나. 이제부터는 사냥을 즐기는 대군이 그 박대산을 데리고 다니면 호환을 당할 념려는 없으렷다. 하하… 참말 기이한 인연이로다.》

그는 한시름 놓여 매우 만족해하였다.

《양녕대군을 구원한 일에는 그대의 공도 들어있다. 그대가 그 젊은이를 누이동생의 배필로 정해주고 또 그들을 데리고오다가 벌어진 일이니 어찌 공이 없겠느냐. 과인은 그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노라.》

《황공하옵나이다. 그것은 전수히 상감마마의 덕분이옵니다. 성상께서 누이동생까지 노비신분을 벗겨주신 까닭에 끌끌한 젊은이와 혼례를 치르게 되였고 양녕대군마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였사오니 상감마마가 아니였다면 이런 일이 어찌 생겨날수 있으리까.》

《하하…》

세종은 흡족한 웃음을 띄였다가 이내 거두고 《박대산이처럼 제 몸을 내대고 상전을 구원하는 백성이 있는가 하면 상전을 죽이는 김을지와 같은 백성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모두 박대산처럼 백성들을 길러내겠는가.》 하며 어좌에서 일어나 내전을 천천히 거닐었다.

장영실은 말할수없이 안타깝고 억울한 심정으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그는 박대산이 김을지라는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청원하면 김을지를 구원해낼수 있지 않을가 하고 모지름을 썼다.

그러나 정작 말을 올리자니 차마 사실그대로 말할수가 없었다.

《김을지가 죄를 짓게 된것은 본심이 아니옵나이다. 양지현감이 김을지의 부모를 살려내라는 임금의 어지를 중히 여겼다면 김을지의 부모도 죽지 않았을것이고 김을지가 양지현감을 죽일 리유도 없었을것이옵나이다.

만약 김을지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그도 제 몸을 내대고 대군마님을 구원하였을것이옵나이다. 그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상감마마의 성은을 받은 몸이여서 더구나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않았을것이옵니다.》

《음, 그건 그랬을테지. 허나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할수없이 그를 붙잡아 처형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세종은 얼굴빛을 근엄히 하고 말머리를 돌리였다.

《너는 돌아가 새 화포를 빨리 만들어내도록 하라.》

《예, 알았사오니다. 어찌 촌각인들 늦추리까.》

해는 벌써 대궐의 청기와지붕에 높이 떠올라 임금의 점심참을 알리고있었다.

하지만 장영실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박대산을 구원해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만이 가슴을 옥죄여 자신을 잊었다.

그는 마침내 용기를 내여 아뢰였다.

《상감마마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우리 글을 만드시느라고 뇌심초사 애쓰시옵고 오랑캐들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시려고 새 화포도 만들게 하시옵고 김을지와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하늘같은 은총을 펴시고… 온 나라 땅에 오곡을 땀흘려 가꾸도록 하고 례의도덕을 장려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상하관계도 뚜렷이 세워놓고 어진 정사를 펴고있사옵니다.

그러나 어이하여 양지현감과 같은 악독한 관리들이 흉년에 해충이 성하듯이 늘어나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이런 탐관오리들이 상감마마의 어진 정사를 좀먹고있사옵니다.

백성들은 어린애와 같고 임금은 부모와 같고 고을원은 유모와 같사옵니다. 유모가 부모의 눈을 속여가며 어린애에게 젖을 주지 않고 돌봐주지 않으면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굶주리기마련이며 고을원이 백성들을 돌봐주지 않으면 백성들이 편안히 살아갈수 없사옵니다. … 악덕원들은 하늘과 땅사이에 끼워서 임금의 밝은 정사를 가리우는 시꺼먼 구름과 같사옵나이다. 삼가 청컨대 이런 량반세도관리들을 내쫓고 상감마마의 선정이 백성들에게 골고루 미치게 하옵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훔치면서 부복했던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부복하고 절을 드렸다.

《나라와 백성들을 념려하는 너의 뜻은 가상하다. 과인이 알았으니 너는 걱정말고 맡은 일을 더 잘하라. 그러나 일후엔 악덕원이니 량반관리니 백성이니 뭐니 하고 참견치 말도록 해라.》

임금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그 무엇이 어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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