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노비출신 장영실

5

 

김을지는 영아의 눈물겨운 바래움을 받으며 동래현을 떠나 낮과 밤을 걸어서 드디여 고향마을의 동구길에 들어섰다.

나지막한 언덕우에 아지랑이가 아물거리고 그너머 산기슭에 초가이영이 버섯송이처럼 보여오는 정다운 고향집! 어머니는 무얼하실가, 아버님은 불구의 몸으로 폭삭 늙으셨겠지. 아지는 시집갈 나이인데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연분을 맺은 영아를 데리고와서 부모님들앞에 큰절을 드리게 하였다면 부모님들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아지는 또 얼마나 좋아하랴.

그는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그의 아버지도 한때는 드센 군정이였다. 기해년(1419년)에 왜놈들이 도두음곶에 쳐들어왔을 때 우리 군사들이 다 죽었지만 아버지는 홀로 마지막 끝까지 싸워 왜놈들을 벌벌 떨게 하였었다.

온몸에 무수한 상처를 입은 아버지는 군역을 더 질수 없는 몸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자부레한 집일도 할수 없는 페인이 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술을 익혀주고 담력을 키워주었다.

김을지가 세상에 태여나 이름을 지을적에 아버지는 강보에 싸인 어린애를 공중거리로 떠올리며 《이놈! 네 아버지 이름은 김갑지로다. 앞으로 네가 가계를 이어야 할것이니 내 다음차례라는 뜻을 담아 네 이름을 을지라 짓는다! 이놈 알았느냐. 갑지 다음에 을지란 말이로다. 하하하!》 하고 호탕히 웃었다고 한다.

김을지는 10년간 군역을 지는 동안에 아버지의 이 말을 어느 하루도 잊은적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무술을 닦아 나라앞에 충의를 다하리라고 항시 애써왔다.

김을지는 한달음에 달려가 고향집문앞에 다가섰다. 하지만 썩은 초가이영과 비가 새여 흙물이 얼룩져내린 벽과 추녀밑에 말거미가 흉물스럽게 도사리고있는 거미줄이 그를 불안스럽게 하였다.

토방우에는 헌짚신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져있었다. 그리웠던 가족식구들이 방안에 있는가부다. 무겁던 가슴이 봄눈녹듯 스러지고 반가움이 세차게 흉벽을 두드렸다.

《어머님―》

대답이 없다. 문을 벌컥 열고 나오실 어머니가 대답이 없다.

《아지야―》

역시 대답이 없다. 《오빠―》 하고 뛰쳐나올 아지도 대답이 없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토방에 올라서 문을 열었다. 식구들이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가 누워있고 웃목에 아지가 쓰러져있다.

김을지는 먼저 아버지의 어깨를 가만가만 흔들었다.

《아버님, 아버님… 을지가 왔사오이다.》

아버지의 입귀에 알릴듯말듯 경련같은 그 무엇이 일더니 그마저 사라지고 끊어질듯말듯 가느다란 숨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김을지는 얼른 아버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얼음같이 차다. 손과 발을 만져보았다. 모두 싸늘한 랭기가 돌았다. 어머니와 아지의 몸도 아버지처럼 식어가고있었다. 이대로 그냥두면 오늘저녁도 넘길것 같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족을 살려내랴. 문득 단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칼로 베여 피를 내서 죽어가는 혈육에게 먹이면 살려낸다고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말이 있다. 그는 실지 그렇게 하여 부모들을 살려낸 효자, 효녀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것이다.

김을지는 왼손무명지를 억센 이발로 깨물었다. 이내 붉은 피가 내보이더니 걷잡을길없이 줄줄이 방울져내렸다. 그는 먼저 아버지의 입에 그 피방울들을 조심히 넣어주었다. 한방울, 한방울 붉은 피는 아버지의 입으로 흘러들고 아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버님과 함께, 어머님과 함께 나무뿌리를 뽑고 돌을 들추어내며 화전뙈기를 일구던 어릴적이 떠오른다. 손가락마디마디에 피가 지던 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입김을 불어주면서 한숨을 내쉬던 부모님들.

김을지는 이 시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문득 일어나 《이게 뭐냐? 손은 왜 다쳤니, 응?》 하고 머리수건을 얼른 벗어서 싸매줄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상만사를 알지 못하고 입으로 흘러드는 그 뜨거운것을 본능적으로 넘기고있었다.

김을지는 제 몸의 피를 부모들에게 바쳐 살려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것 같았다. 부모들이 준 이 피를 부모들을 위해 바치는것은 자식의 응당한 도리이다.

그는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하였다. 어머니는 제 몸에서 나는 따스한 젖으로 나를 키웠는데 이 아들은 왜 제 몸에서 나는 따스한 피로 어머니를 살려내지 못하랴. 어머니의 젖줄기가 아들의 생명수로 되였던것처럼 아들의 피도 어머니의 생명수로 되여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지는 방금 잠든것처럼 그린듯이 누워있다. 처녀는 마치 《오빠, 난 일없어요. 아버님, 어머님을 살려내세요. 난 죽지 않아요. …》 하고 단지를 받지 않으려 하듯이 피기없는 입술을 꼭 다물고있다. 그 모양을 보니 설음이 더욱 북받치였다. 어릴적에 얼굴이 비쳐드는 멀건 죽을 세그릇 담아 들여보내고 제 먹을 죽은 없어서 난 벌써 먹었노라고 웃음을 지어보이던 아지, 지금도 그때처럼 입을 꼭 다물고있다.

김을지는 으흑으흑 느껴울면서 누이동생에게 눈물과 함께 단지하였다.

이윽하여 세식구가 다 숨결이 조금 높아졌다. 반가왔다. 살아날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서둘러야 했다. 실오리같은 명줄에 일어난 생명의 이 불꽃을 더 크게 피워야 한다.

김을지는 지고온 괴나리보짐을 풀었다. 거기엔 군영에서 길량식으로 받았던 쌀이 한되가량 남아있었다. 그것을 한줌 꺼내 부엌으로 나갔다. 가마뚜껑을 열어보니 시뻘겋게 녹이 내배인 가마밑창에 개미들이 기여다녔다. 무엇을 끓여본지도 고망옛적같았다. …

다음날 중낮쯤에는 부모들도 아지도 미음을 두세숟가락 넘길수 있었다. 김을지는 기운이 솟았다. 600여리를 걸어온 몸으로 두번씩이나 세식구에게 단지하였고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한잠도 자지 못하였지만 조금도 피로하지 않았다. 나는 죽어도 식구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이렇듯 샘솟는 열정과 힘을 낳게 하였다.

그는 관가로 급히 달려갔다. 군역을 마치고 돌아온 사유와 가족들이 굶어쓰러진 정상을 아뢰고 환자곡이라도 얻어다가 살려내야 하였다.

관가의 삼문안에서는 때아니게 가야금에 장고장단소리, 피리에 저대소리가 한창 울려나왔다.

김을지는 주홍칠이 위엄스러운 삼문을 지나 휘넓은 마당굽에서 무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헌마루에는 자개박이 음식상들이 주런이 놓이고 그우에 울긋불긋 주지육림을 가득가득 차려놓았다.

웃자리에는 옻칠이 번들거리는 통영갓을 쓰고 옥색도포를 입은 고을원이 거나하게 취하여 앉았고 그 좌우에 량반들이 어느 한 기생의 노래가락에 맞추어 넓은 팔소매를 너흘거리며 춤을 추었다.

김을지는 노래춤이 끝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일각일각이 급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아지의 생명이 꺼져가고있었다.

이윽고 노래춤이 한종목 끝나고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넘쳐났다.

《초향이 기예는 고을의 으뜸이로다. 세상에 웃는 꽃이 있다더니 어여쁜 너야말로 말하는 꽃, 노래하는 꽃이로다. 내 오늘 너의 꽃나이 생일을 쇠주기를 잘하였고나. 네가 춤노래로 나에게 기쁨을 주니 너의 생일이 내 생일같구 내 생일이 너의 생일같고나.》

고을원은 살이 푸둥푸둥 오른 얼굴에 취흥이 도도하여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였다.

《애고, 사또님, 천한 소녀의 난날이 어이 관장님의 생신날과 같으리오. 그저 고마운 말씀만 하시네.》

초향이란 기생이 백화주를 받쳐들고 고을원의 품에 살풋이 안겨들었다.

《이애 초향아, 그런 소리 말아라. 네가 내 품에 담쑥 안기니 어느것이 내 몸이고 네 몸인지 분별할수 없고나. 너와 나는 이렇게 한몸이니 네 생일이 내 생일이 아니고 무어냐.》

고을원이 초향이 허리를 한손으로 그러안고 다른 손으로 술을 받아마셨다.

마침내 좌중이 잠잠해지는 한순간이 왔다. 김을지는 이 틈을 타서 큰소리로 여쭈었다.

《사또님께 아뢰오. 백성 김을지 군역을 마치고 돌아왔소이다.》

량반들이 큰소리에 놀라 섬돌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에 몸이 거쿨지고 힘발이 넘쳐나는 젊은 총각이 안겨들었다.

《김을지? 으음, 김을지라… 그러니까 알만하다. 네가 군역을 마치고 왔으면 왔지 무엇이 장한 일이라고 꼭 이런 날을 택하여 여쭙느냐? 괘씸할지고―》

《암, 그렇고말고. 눈치코치도 없을지고.》

《관가에 풍악이 울리면 돌아갔다가 다음날 와도 늦지 않겠는데.》

《저눔이 무엄하기 이를데 없소이다.》

리방, 호방, 책방놈들이 이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어서 물러가라고 손짓하였다.

《그러하오나 집에 오니 부모님들과 녀동생이 굶어죽게 되였소이다. 촌각이 위태하옵나이다. 환곡이라도 한되박내서 미음을 쑤어드리면 급한 고비는 넘기려니 가족식구들의 목숨을 구원하여주옵소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면 어이 굶는다, 죽는다 하겠느냐?》

고을원이 무릎에 앉혔던 기생을 한옆으로 내려놓으며 이같이 노성을 터뜨렸다.

《사또께서 선정을 베푸시여 소인이 자식된 도리를 할수 있게 환곡을 내려주옵소서.》

《어― 저런 쇠고기처럼 질긴 놈 보았나. 선정도 베풀데가 따로 있지. 너의 집으로 말할것 같으면 년년이 꾸어먹은 환곡이 리자까지 붙어서 열섬이 넘어되였다. 그러나 너의 아버지 김갑지가 기해년에 도두음곶에서 공을 좀 세웠다 하길래 빚독촉을 과히 하지 않았으되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고 어찌 사람으로서 또 환곡을 내라 하느냐.》

《요즈음 백성들은 제 그른줄은 모르구 헤덤비니… 해괴한지고―》

량반아전들이 엉뎅이를 들썩들썩하며 웃어댔다.

김을지는 쏟아지는 비양을 용케 이겨냈다. 당장 살려내야 할 가족식구들이 아니라면 년놈들의 주안상을 들부시고싶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서 놀라운 힘과 날래고도 민첩한 무술을 겸비하고있었다. 군영에서는 그와 비교할 군정이 없었다. 어렵고 힘든 역사가 있어도 그를 찾았고 왜놈들이 출몰하는 외진 섬에도 그를 보내야 마음을 놓았다. 거기에 또 의리있고 인정이 있고 고지식하여 군사들이 그를 따랐다. 군역을 남보다 더 오래동안 진것은 군영에서 김을지를 내놓기가 아쉬웠기때문이기도 하였다.

《사또님, 저의 부모님들을 살려주옵소서.》

김을지는 거듭거듭 같은 말로 간청하였다.

《관가에서 너의 아비, 어미를 죽이려 하였더냐. 어인 까닭으로 여기 와서 살려내라 하느냐. 여봐라, 술맛 잡친다. 저눔을 삼문밖으로 몰아내라!》

김을지는 제발로 관가를 떠나왔다. 그리고 그날밤과 그 이튿날에도 부모들의 머리맡에서 밤낮을 새웠다.

쌀은 한줌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그것마저 떨어지면 끝장날 지경이다. 꿀물을 따스히 풀어 대접하면… 그러나 꿀이 어디에 있으랴.

저녁녘에 옆집 사는 방울이네 할머니가 종자콩을 한줌 꼭 쥐고왔었다. 콩물이라도 풀어먹이라고 하면서 울면서 돌아갔다. 어제부터 우물집 쇠둑이네, 곽서방네 또 누구네 집 온 식솔이 이 집처럼 쓰러져 기신이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어질고 착한 백성들이 전수이 굶어서 죽어가는것이다. 이것을 알고있는 부모들은 의식을 차릴 때가 오면 동네사람들이 떠넣어주는 미음을 한사코 받지 않았다고 하였다.

온 동네가 아사에 직면하였다.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되였다.

김을지는 쌀을 한줌이라도 얻으려고 문밖을 나섰다. 고개너머 이웃마을로 가는 행길에 들어서니 숱한 사람들이 길좌우로 늘어서있었다.

갓쓴 량반들과 비단치마를 발밑에 드리운 부녀들도 보였다. 뜻하지 않은 광경에 놀랐지만 김을지는 그 길밖에 없어서 그대로 걸어갔다.

《야, 이리와!―》

륙모방망이를 든 라장 하나가 어데서 불쑥 다가와 김을지의 우아래를 훑어보았다. 처음엔 혼쌀을 내주려고 했는데 첫눈에도 상대가 범상치 않아보였는지 말꼬리를 순탄히 하였다.

《어서 이리와 서우. 그 옷주제가 뭐요. 베잠뱅이를 그대로 입고… 안되겠수. 거기선 사람들 뒤전에 서우.》

《난 길이 바쁜데다가 옷은 이것밖에 없수.》

그는 갈길을 내처갔다.

라장은 그를 덥석 잡아쥐고 다시한번 김을지의 우아래를 훑어보았다.

《거참 모를 일이군. 이목구비는 사내다운 젊은이가 아직 그믐밤이란말야. 두말말구 여기에 있다가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게. 앞줄엔 나서지 말구.》

《네에?! 임금께서 이리로 지나신단 말이요?》

김을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얼없이 라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라장을 꿈속에서 보기나 하듯이―

그는 사람들의 뒤전에 물러나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자기처럼 가난한 행색을 한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그럴것이 어느 마을에서나 모두 굶어 허덕이는 백성들이 이렇게 잘 입고 잘 먹는 백성들의 모색으로 나타날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데서 온 사람들인가. 김을지는 알수 없었다. 충청감사 리선이 린근고을의 량반들과 부자집만을 골라 임금이 가는 길에 내세운줄이야 어찌 알수 있겠는가.

저 앞쪽 행길초입에서는 임금을 맞이하는 이날의 경사를 알리듯이 기남기녀들이 너흘너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김을지는 경각에 이른 부모들을 살려주려고 임금이 찾아오는것만 같은 환각에 휩싸여들었다.

길은 누가 벌써 닦아놓았는지 돌부리 하나 없고 길섶에 돋아난 작은 풀까지도 뽑아버려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산야에는 록음방초 우거지고 따스한 봄바람은 꽃향기를 실어나른다.

길가에 잇달린 밭에서는 수수와 조가 무릎오금에 이르도록 자라서 누런 밭이랑을 다 덮었다.

먼산에서 구성지게 울던 뻐꾸기와 가까운 숲속에서 태평스레 청아한 제 목소리를 자랑하던 꾀꼬리와 파아란 하늘가 들끝에서 우짖던 노고지리가 문득 잠잠해졌다. 어데선가 울려오는 신비로운 뿔나팔소리에 이 웬일인가 하듯이 산새들이 나무잎새사이를 빠금히 내다본다.

행길이 밋밋이 뻗어오른 고개우에 붉고 푸르고 누런 기발을 든 사람들이 련이어 넘어왔다. 또다시 《부―웅―》 하는 뿔나팔소리와 뒤이어 두리둥둥 울려오는 북소리에 길가에 늘어서서 임금의 행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황공스러운 얼굴빛을 나타내며 부복하였다. 김을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사람들의 뒤에 엎드리였다.

세종의 행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임금은 근간에 눈병이 나서 온양온천으로 약물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행차의 선두에는 한성부판사와 의장용칼을 든 무관이 두눈을 번뜩이며 걸음발을 성큼 내짚는데 그뒤로 홍문대장기를 높이 든 군사가 여봐란듯 씩씩하게 걷는다. 붉은 바탕에 구름무늬가 있고 그가운데 룡이 그려진 기발이 펄럭일 때마다 꿈틀대는 룡이 하늘을 치달아오르는것만 같았다.

갑옷투구차림에 칼과 창을 든 시위군 세개 부대가 그뒤로 잇달리였다. 이 부대들은 오직 임금의 앞길에 온갖 잡것들이 나타나면 단숨에 무찔러버릴듯 그 모습들이 호랑이같고 산이 나타나면 산을 허물어 길을 내고 강이 앞을 막으면 강을 메워 길을 열것 같은 장수들의 기상이다.

자주빛옷에 검은 두건을 쓰고 허리에는 붉은 띠, 무릎아래에는 푸른 행전을 치고 비단신을 신은 열두명의 교군들이 흡사 하나의 작은 집과 같은 임금의 련을 떠메고 가볍게 나아간다. 바깥벽은 룡의 비늘같은 무늬로 장식하고 지붕은 야청빛갈의 비단을 덮었다. 번쩍이는 금과 은실로 수놓은 사면에는 금빛주렴을 드리웠다. 주렴바깥과 휘장안에는 여러개의 향주머니들을 달았다. 거기서 풍기는 향내는 꽃밭속을 걸어가는듯 교군들의 기분을 상쾌히 만들었다.

련을 따라 또 수백의 군사들이 엄엄히 호위해갔다.

세종이 그 련속에 앉아갔다. 그는 먼길을 지나오도록 한번도 밖을 내다보지 않고 책을 펴든채로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임금의 곁에 붙어가는 늙은 내시 김연이 황감히 말씀올렸다.

《다시 여쭙기 황송하오나 전하께서는 책을 거두시옵소서. 안질을 치료하러 가옵시는 길에서도 이같이 눈을 보하지 않으시니 걱정이 되옵나이다.》

세종은 학문을 숭상하여 책을 펴들기만 하면 밤잠을 자지 않고 등불을 돋구어가며 읽었다. 또 좋은 책이면 백번을 반복하여 보았다. 그것이 세종의 백독법이였다. 그러나 그대신 눈이 매우 나빠졌다. 가까운 년간에는 눈병이 생겨 고생하였다.

그런데 온천약물치료를 받으러 가는 이 길에서도 우리 글을 만드느라고 책을 놓지 않고있다. 내시 김연은 그것이 념려되여 벌써 이런 말을 몇번이나 하였었다. 이번까지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수염없는 얼굴에 짙게 떠돌았다.

《또 그 소리요?》

세종이 빙그레 웃으며 책을 덮고 오래간만에 련밖을 내다보았다.

《허, 산야에 푸른빛이 장하고나.》

세종이 이렇게 기꺼워하다가 문득 행차를 마중나온 양지현감과 량반선비들과 백성들을 보았다.

행길좌우에 명절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엎드리고서 지나가는 련앞에 절을 드린다. 모두의 얼굴에는 자기의 임금을 만나는 반가움과 기쁨, 충의지감이 어려 환히 빛난다.

세종은 밝은 웃음을 짓고 머리를 끄덕이며 절을 받았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젊은이 하나가 임금의 련앞에 달려나와 엎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상감마마께 아뢰옵나이다. 굽어살피옵소서. 굽어살피옵소서!―》

이렇게 련거퍼 부르짖고는 목이 꺽 메여 어깨를 떨며 흐느낀다. 너무나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금부라장, 사령들과 호위군사들도 젊은이를 막아내지 못하였다. 임금을 경사롭게 맞이하던 량반들과 부녀들, 수많은 백성들도 그자리에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이제 임금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거나 또 젊은이를 보았다 해도 시끄럽게 여기고 그대로 지나간다면 당사자는 말할것 없고 호위군사들도 의금부관리들도 죄를 면치 못한다. 일반백성이, 그것도 어떤 놈팽인지 알수 없는 놈이 별안간 임금앞으로 가까이 침습하였으니 어찌 제 직분을 소홀히 하였는가 말이다.

그러나 세종은 젊은이를 보았다.

《행차를 멈추어라―》

매우 좋지 않은듯 엄한 세종의 목소리가 련밖으로 흘러나왔다. 뒤따라 임금의 지시를 웨쳐 전하는 궁인이 맑고 챙챙한 목청을 뽑았다.

《행차를 멈추라 하옵신다―아―》

그러자 징을 세번 두드리는 소리가 멀리 울려퍼졌다.

순간 기치창검이 일시에 내리워지고 행차가 멈추어섰다. 다만 임금의 권력을 상징하는 금도끼와 은도끼―부월만이 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높이 쳐들려있을뿐이다.

행차가 움직여갈 때도 엄엄하고 멈추어설 때도 이처럼 위엄을 떨치니 뉘라서 무릎을 꿇지 아니할가. 량반들은 금시라도 머리우에 재앙이 떨어지는것만 같아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허나 임금의 목소리는 뜻밖에 부드럽고 온화하였다. 세종은 백성들을 직접 면대하면 이렇게 해야 임금이 민심을 모을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너는 어느 고을 백성이고 이름은 뭐냐? 또 행차는 어이 멈추었느냐?》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 몸은 양지현에 사옵고 이름은 김을지라 하옵나이다. 감히 행차를 멈춰세운 죄는 마땅히 백번 죽어야 하오나 죽어도 상감마마께 억울하고 통절한 사연을 아뢰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겠나이다. 본래 소인의 가정은 늙은 부모님들과 녀동생과 소인과 네식구이온데 소인이 10여년 군역을 지고 고향집에 돌아오니 온 식솔이 굶어 쓰러져서 숨을 넘기고있는중이였나이다. 일각이 위태하여 무명지를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하였으니 숨결이 아직 붙어있사온데 미음이라도 쑤어먹일 쌀 한줌이 없나이다. … 망극하오이다. 차라리 온 식솔이 다 죽사오면 편안할것이오나 그동안 관가에서 꾸어먹은 환자곡 몇섬이 되옵는데 본인이 죽는대도 그 빚은 무효가 되지 않사와 동네백성들이 련좌되여 물어야 하옵나이다. … 죽어서도 동네사람들을 괴롭히고 피눈물을 흘리게 하오니 저승에 가서인들 어찌 편안하기를 바라겠나이까. … 상감…마…마… 어이하오리까. … 굽어살피옵소서. …》

말 절반, 흐느낌 절반 곡진히 아뢰이는 말에 세종은 한동안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지금까지 량반이나 백성들의 깨끗한 옷차림이며 불깃불깃한 얼굴에 만족하여 웃음을 피우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세종은 춘궁기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려는 뜻에서 봄에 량곡을 꾸어주고 가을에 약간한 리자를 붙여서 받아들이는 환곡이 백성들의 고통으로 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련좌법이 사람이 죽는대도 그 환곡이 무효되지 않고 저승에 가서도 죽은 사람의 혼백을 괴롭힌다니 이 무슨 허튼소리냐.

련좌법을 내올 때 재상들이 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백성들이 봄에 먹을것이 떨어져 농사짓기를 어려워하니 나라에서 환자곡을 내여 보살펴야 한다, 개중에는 일하기 싫어하고 여름매미처럼 그늘아래 낮잠을 자다가 환곡을 꾸어먹기만 하고 바치지 않는다, 이런 건달군들을 개준시키는데는 련좌법만 한것은 없다, 미납한 환자곡을 동네에서 바치게 하면 그 백성은 동네보기가 부끄러워서 땀흘려 일하지 않을수 없다, 이렇게 백성들을 교화하고 구제하며 농사를 장려하는 방편의 하나가 련좌법이라고 하여 이를 승인하였다.

어, 무엄하도다. 련좌법을 감히 시비해? 괘씸하도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일개 백성 하나와 마주하고 성을 내는것은 임금의 덕에 금이 가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세종의 얼굴에 비로소 젊은이를 측은히 여기는 빛이 짙어갔다.

《너의 집에서는 어인 연고로 농사를 짓지 못하였느냐?》

김을지는 정이 어려드는 물음에 너무나 감격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아뢰일지 몰랐다.

그는 기생의 생일상을 차려주면서 풍악을 울리던 양지현감을 생각하였다. 하늘같은 임금조차도 백성의 하정을 이처럼 각근히 알아보고 함께 걱정하옵신데 양지현감과 같은 악덕량반놈들은 어찌 생겨났는가. 김을지는 자기네 식솔뿐아니라 동네백성들이 너나없이 굶어죽게 된 리유가 못된 고을원들과 간악한 아전놈들이 백성의 등살을 벗기려들기때문이라고 아뢰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임금의 걱정을 더해줄것만 같아 그런 말은 피하였다.

《상감마마― 저의 가친은 왜놈의 창과 칼에 찔리워 오래전에 페인이 되였사옵고 늙으신 모친과 어린 녀동생이 힘을 합쳐 농사를 지어왔지만 해해년년이 흉년들고 거기에 또…》

김을지는 조세를 턱없이 부당하게 받아들이고 온갖 가렴잡세가 많아 한해농사를 지어도 빈털터리가 되고만다고 아뢰일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러면 또 임금이 더없이 근심할것 같아서 그 말도 할수 없었다.

세종과 김을지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데선가 메비둘기가 구구 울고 한줄기 봄바람이 임금의 옷깃을 스치고 김을지의 베저고리 어깨를 어루쓸며 불어갔다.

《너의 가친이 어이하여 왜놈의 창과 칼에 불구가 되였느냐?》

세종이 생각되는바가 있는듯 관심을 모았다.

《기해년에 도두음곶에서 왜놈들과 싸우면서 그리되였사옵나이다.》

《뭐라구?! 도두음곶에서?!》

세종이 놀라듯 몸을 젖히며 김을지를 지그시 굽어보았다.

기해년의 도두음곶은 세종이 스무해 가깝도록 잊지 못하는 곳이다.

기해년 5월에 왜놈들이 50척의 배를 안개속에 감쪽같이 몰고 와서 비인현 도두음곶에 달려들었다. 놈들은 우리의 싸움배를 불살라버리고 뭍에 기여올라 우리 백성들을 잠자리에서 닥치는대로 죽이고 로략질을 하고 가옥들을 불태웠다.

도두음곶의 만호 김성걸은 경계를 소홀히 하였다가 급기야 자기 아들 김륜과 함께 적을 맞받아나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만호는 왜놈의 창에 찔리워 바다에 떨어졌다. 아들 김륜은 《아버지는 물에 빠져 죽었다. 나만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하면서 왜놈을 그러안고 바다에 뛰여들어 자결하였다.

나라에서는 급보를 받고 비인현감과 서천군 지사 윤곤, 람포진 병마사를 급파하여 왜놈들을 물리쳐버렸었다. 후에 들으니 첫 싸움에 도두음곶군사들이 미처 손쓸사이없이 태반이 죽고 몇명 안되는 군사들이 끝까지 싸우다가 그들마저 다 희생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군사 하나만이 죽지 않고 전후좌우로 달려드는 왜놈들을 무수히 베여눕히면서 홀로 마지막까지 싸웠다.

기골이 장대하고 무술에 뛰여난 그 군사는 우리 군사들이 달려갔을 때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쓰러졌다고 하였었다.

세종은 당시 병조에서 올린 글에 이 마지막군정이 살아났다고 하여 상을 크게 내리라고 전교를 내려보내던 그때가 생각났다.

(오, 그래그래, 그 군정의 이름을 김갑지라고 했었지. 한사람만이 살아남았다던 그 군정이 김갑지가 분명하다. 과인이 오만가지 나라일에 파묻혀 이 사람을 까맣게 잊고 그의 생사여부를 알아보지 못하였구나. )

세종은 그때의 흥분이 저절로 되살아났다.

《너의 부친이 김갑지가 아니냐?》

《예, 김갑지라 하옵나이다.》

김을지는 이같이 대답을 올리고 흐느끼였다.

《음, 그랬고나. 옳으니라! 네 또한 대마도(쯔시마)의 왜놈들이 류국해적들로 가장하고 연해고을을 로략질할 때 왜놈들을 다섯이나 목베였을뿐만아니라 왜선의 닻줄을 끊어놓아 그 왜선이 먼바다로 떠내려가게 하여 뭍에 올랐던 놈들을 모조리 사로잡게 한 김을지로구나! 과인이 너의 공을 적은 단자만 보았더니 여기서 이렇게 본인 당자를 볼줄은 몰랐고나!》

세종은 아버지이름은 갑지, 아들의 이름은 을지, 그 이름들을 첫째, 둘째로 내려가게 짓고 대를 이어 충의를 떨쳐온 부자지간을 매우 인상깊어 했었는데 지금에야 그 기억이 불꽃처럼 살아오르는것이였다.

김을지는 자기도 잊고있는 자기의 하찮은 공로와 오랜 세월이 지나간 뒤에도 아버지의 이름을 임금이 기억하여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상감마―마―아―》

김을지는 이렇게 목메여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였다.

세종은 많은 관리들과 호종군사들 그리고 이 시각 양지고을 백성들이 임금인 자기가 어떤 교지를 내리겠는가 하고 말없이 지켜보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때야말로 임금이 어떤 임금인가를 나타내는것이다.

《여봐라, 백성 김을지의 가족을 살려내도록 하라. 고을원은 의원을 동반하여 쌀과 약을 가지고가서 그들을 극진히 돌봐주어라. 만약 살려내지 못하면 임금의 어명을 위반한 죄로 다스리겠으니 명심할지어다. 살려낸 후에는 지금껏 꾸어먹은 환곡을 면제하여주고 햇곡이 날 때까지 먹을것을 후히 주도록 하라. 아울러 상목 10필을 주어 맨 살을 가리우게 하라. 또 부역을 종신토록 지우지 말지어다. 나라를 위해 제 한몸을 돌보지 않고 싸워 불구가 된 사람을 굶어죽게 내버려둘수는 없느니라. 나라에서 이런 사람들을 우대하지 않으면 누가 과연 나라를 위해 한목숨을 다해 싸우겠느냐.》

임금이 내리는 이 어지에 김을지와 길가에 부복해있던 백성들도 다 함께 감격을 터뜨리였다.

《너는 일후에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등문고를 치거나 글을 써서 과인에게 알려라.》

《황송하옵나이다.》

세종은 자신이 어진 임금이라는것을 보여준것이 크게 만족스러웠다.

《너는 어서 물러가거라. 관가에서 너의 부모들을 살려줄것이니라. 아무 근심말아라.》

세종은 김을지에게 지엄하고도 관후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온양으로 떠났다.

김을지는 정녕 꿈만 같았다. 그는 집으로 달려갔다. 임금이 보내주는 쌀과 약을 가지고올 고을원과 의원을 맞이해야 할것이였다. 그리고 이 뜻밖의 소식을 어서 알려주어야 할것이였다. 이 소식 하나만이라도 백약이 되여 죽어가는 식솔들이 눈을 번쩍 뜨고 자리를 털고서 일어날것만 같았다.

《아버님, 어머님, 눈을 뜨시오이다. 상감마마께옵서 쌀과 약을 보내도록 하셨나이다. 아지야, 임금의 은총을 받지 않고 죽을수는 없다. 눈을 뜨거라―》

그는 부모들의 식어가는 손과 발을 주물러주면서 눈물을 흘리였다.

허지만 철석같이 믿고믿었던 고을원도 의원도 오지 않았다. 김을지가 임금을 만난지 사흘째 되는 날에 그의 세식구는 끝내 한많은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

《제가 불쌍하게 굶어돌아가신 부모님들과 동생을 산에 묻고 너무나 절통하여 무덤앞에 엎드려 울고있는데 고을호방이 하인들에게 제물을 들려가지고 올라왔소이다. 호방은 슬픈 낯색을 지어가지고 나에게 실로 얼마나 비통하겠느냐고 하면서 사또님도 비감을 못참아 이렇게 제물을 보내셨다고, 그러니 어서 제상을 차려놓고 술을 붓고 절을 하면서 부모님들의 혼령을 위로하자고 하는게 아니오이까. 호방의 이 말은 불붙는 이 가슴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였소이다. 난 호방에게 〈상감마마께서는 쌀과 약을 가지고 가서 우리 부모님들과 동생을 살려내라고 하셨지 돌아가신 다음에 제물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느냐?〉 하고 분격을 터뜨렸소이다. 호방은 참말 안되였다고, 고을에 한톨도 남은게 없어서 백성들의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며 안타까이 쌀을 모아보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빨리 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불가불 기일이 늦어졌으니 그리 알아달라고 하였소이다. 고을원놈과 량반들의 고간에는 쌀이 썩어나고있었지만 이놈들은 이 기회에 우리 부모님들을 살려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백성들을 더 짜내서 제 리속만 채우려고 하였소이다. 그러니 어떻게 쌀과 약을 가지고 제때에 우리 집에 올수 있었겠소이까.

나는 〈이놈아, 상감마마께서는 우리 부모를 살려내지 못하면 죄를 주겠다고 어명을 내리셨다. 네놈들은 우리 부모님들을 살려내지 않았으니 임금앞에 죄를 지었다. 네놈은 죽어도 할 말이 없다. 〉 하고 호방놈의 상투꼭지를 휘여잡고 내동댕이쳤더니 그놈이 산밑으로 굴러나 죽어버렸소이다.

관가에서 나를 붙잡아내려고 날치길래 할수없이 산에 들어가 칼을 잡고 오늘은 이렇게 양지현감까지 죽이고 부모님들의 원쑤를 갚아드렸소이다.》

김을지는 말을 끝내고 가슴이 후련토록 큰숨을 몰아쉬였다.

김을지의 이야기는 장영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는 탁주사발을 끄당겨 단숨에 그것을 다 마시였다. 원체 술을 모르는 그였지만 이런 기막힌 사연을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취하지 않고서는 차마 들을수 없었다.

《참말 절통할세. 동생이 칼을 들구 일어서지 않을수 없었지. 그래, 그래, 잘하였네. 상감마마께 불경하는 놈들은 쳐없애야지! 세상에 우리 상감마마와 같은 임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번에 상감마마께옵서 나를 상호군으로 봉하시면서 영아까지도 관비에서 해방시켜주셨다네.》

《네에?! 그게 정말이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이다. 형님!―》

김을지는 장영실의 두손을 와락 잡고 흔들었다.

《정말 아니구. 나도 임자도 영아도 우리 셋은 살아서는 갚지 못할 성은을 입은 몸들일세.》

《죽어선들 이 성은 어이 갚으리까. 이 동생이 비록 몸을 숨기고 다니지만 임금의 은총을 꼭 갚고야 죽으리다. 형님, 영아가 보고싶소이다. 관비의 몸을 털어버리고 새로 태여난 영아를 둥둥 떠받들어올리고싶소이다. 형님, 영아와 다진 언약을 내 살아있는 한 반드시 지킬터이니 기다리라고 전해주시오이다!》

《암,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응, 하하하.》

두사람은 서로 손을 덧잡아쥐고 오래도록 놓을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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