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노비출신 장영실

2

 

장영실은 말을 잘 탔다. 키가 큰 가라말은 자기 등에 올라앉은 낯선 사람을 놀리듯 몇번 뒤발질을 해서 떨구어보려고 하였다. 허나 장영실은 오히려 말궁둥이를 손바닥으로 다정히 자근자근 두드려주면서 《와, 와.》 하고 진정시켜주었다.

가라말은 뒤발질을 그만두고 갑자기 앞발을 껑충껑충 들어올리면서 《오호옹―》 몸부림을 쳐보았다.

허지만 장영실은 아무렇지 않은듯이 이번에는 말의 목덜미를 정답게 두드려주면서 말을 달래였다.

서울장안을 빠져나오면서 이렇게 몇번 갈갬질을 해보던 가라말은 자기 등에 올라앉은 자그마한 사나이가 마음에 들었던지 공손히 잘 달리였다.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로 있을 때 고을원의 말구종노릇도 해보고 풀판에 말을 놓아 먹이면서 짬짬이 말을 타보기도 하였었다.

무슨 일에서나 세심하고 탐구심이 많은 그는 말이 좋아하고 싫어하는것을 하나하나 알아내고 그에 맞게 말을 다루었다. 이런 장영실이였기에 만복이 가져온 말을 타고 천리 먼길을 다녀올 용단을 내린것이다.

경복궁이 뒤로 멀어지고 대궐의 푸른 지붕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더니 이내 그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청계천기슭의 강언덕에 오르자 말에서 내리였다. 그리고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경건히 합장배례하였다. 상감이 아니였다면 상기도 동래현 관노로 있었을 자기가 어찌 상호군이 되여 마을돌이차로 고향으로 갈수 있을것인가. 세월이 흐를수록 자꾸만 더해가는 성은이 깊어져서 눈물이 절로 솟구치였다. 그는 다시한번 숙배하고 말에 올랐다.

장영실은 남대문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성안에 사는 사람, 성밖에 사는 백성들이 성문을 메우며 나가거니 들어오거니 혼잡을 이루었기때문이다. 갓망건쟁이, 베감투쟁이, 초립쟁이, 머리에 베수건이며 무명수건들을 질끈 동여맨 사람들, 그나마 수건도 없이 맨 상투바람의 거푸시시한 머리들이 하나로 뒤섞여 복잡소동을 일으키였다. 떡장사군, 엿장사군, 곶감에 군밤, 삶은 닭알과 칼치, 전어, 고등어, 숭어, 젓갈 별의별 어물장사군들이 날밝기 전부터 성문안팎에 모여들어 기다리다가 파루가 울리고 드디여 성문이 열리자 일시에 저마다 먼저 나가겠다고 또 먼저 들어가겠다고 붐비였다. 게다가 남새달구지, 나무바리가 끼여들어서 《이랴, 이랴―》 하고 막무가내로 마소를 몰아오는데 달구지바퀴에 발잔등을 치운 어느 아낙네가 《애고― 애고―》 비명을 내지르고 저쪽에서는 갓난애가 《응아― 응아―》 울어대는데 애기 업은 젊은 아낙네가 《뒤에서 밀지 말아요, 애가 죽어요. 제발 밀지 말아―요―》 하고 자지러지게 웨쳐대고 또 한쪽에서는 《닭알바구니가 깨진다, 이 망할 놈들아―》 하는 파파늙은 로파의 악다구니질소리가 들려왔다.

장영실은 갈길이 늦어지는것도 잊고 이 가슴아픈 란장판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서로 밀고 당기고 욕지거리를 해가며 각기 자기의 생업을 위해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장사군아낙네가 아침일찍 나앉아 무엇인가 팔지 않으면 그날 끼니를 에울수 없고 농군들과 쟁인바치들, 나무군들, 머슴군들이 성밖으로 나가거나 성안으로 들어와 제 할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부모처자를 부양할수 없는것이다.

해마다 한재와 수재로 농사를 망치고 류랑걸식하는 백성들이 늘어나고있다.

밖으로는 북방의 여러갈래 야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와 우리 백성들을 해치고 재물을 략탈하고 남쪽바다가에서는 좀스러운 왜놈들이 준동하고있는데 안으로는 저렇게 굶주린 백성들이 아우성친다. 이처럼 안팎으로 어려운 때에 호사스럽게 마을돌이를 가는것이 백성들앞에 못할짓을 하는것만 같아 장영실은 은연중 얼굴이 불그스레해졌다.

문득 뒤에서 말방울소리가 왈랑절랑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산수털벙거지를 쓰고 청메뚜기와 같은 더그레를 입은 라졸들이 륙모방망이를 휘둘러가며 길을 잡아오고 그뒤에 견마를 잡힌 량반관리 하나가 말우에 우뚝이 앉아온다.

그러나 이 복새판을 뚫고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라졸들이 눈알을 사납게 부라리며 《이놈들 비켜라―》 하고 꽥꽥 소리를 내질렀다. 허나 그 어디에도 비켜설 자리가 없는 백성들은 어쩔수 없었다.

《이놈들― 방망이맛을 봐야 알겠느냐.》

맨앞에 서서오는 라졸이 젊은이건 늙은이건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륙모방망이로 이리치고 저리쳤다. 《딱》, 《딱》하는 소리와 함께 골통을 싸쥐고 《아이쿠―》, 《어이쿠―》하는 소리가 연방 들려오고 그자리에 풀썩풀썩 풀자루 주저앉듯 하는 사람들이 보여왔다. 그러거나말거나 량반행차는 한결같이 무지스럽게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꿰질러나갔다.

《저런 죽일 놈 봤나.》

《사람을 개치듯 두들겨패는 놈을 그냥 둬. 이거 부아통이 터져서 견딜수 있나.》

《어이구, 북악산호랭이는 다 무얼 하노. 저 량반놈들을 잡아먹지 않구.》

《사모관대한 놈들치고 백성들을 버러지만큼도 여기지 않는 놈들이란 없느니.》

뼈에 사무치게 량반을 미워하는 마음들이 하나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이제껏 밀고당기며 아귀다툼을 하던것을 어느 사이 잊고 사람들은 서로 동정하고 양보하면서 성문을 빠져나갔다.

한식경이 지난 뒤에 사람들이 성글어졌다. 장영실은 천천히 말을 몰아 성문밖을 나섰다.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어깨에 엇걸어 등에 지고있는 상호군례복이 무거워지는것 같은 느낌이 스며들었다.

《사모관대한 놈들치고 백성들을 버러지만큼도 여기지 않는 놈들이란 없느니.》라고 하던 사람들의 울분이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처럼 귀청을 흔들었다. 례복을 입지 않고 떠나기를 잘하였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지만 다음순간 그것을 털어버리였다. 임금이 제수한 벼슬과 그 관복을 백성들의 머리우에 올라앉아서 짐승처럼 다루라고 준것이 아니라 바로 그 백성들을 잘 먹이고 잘 돌봐주라고 준것이 아니겠는가.

(아, 이 사람은 반드시 백성을 위해 살리라. 백성들에게 리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나라의 기물을 더 많이 만들어내리라!)

이렇게 심신을 다지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장영실은 청계천흐름과 나란히 뻗어있는 행길을 따라 말을 다그쳐 몰았다.

청계천은 경복궁을 끼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덕수궁이 있는 곳에 이르러 남쪽으로 구부러져 동래문앞 왕십리에 와서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든다.

장영실은 시원히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시누런 오곡이 펼쳐진 왕십리벌 한가운데로 맑고 푸른 물을 떠싣고 흐르는 청계천의 풍치가 수려하여 머리가 거뜬해지는것 같았다.

무겁고 답답하던 마음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고향을 빨리 다녀올 조바심이 가슴에 불타올랐다.

강을 넘고 들을 지나 가고가는 길에 갈림길도 많았지만 그는 어느 길손에게도 동래로 가는 길을 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 길이 낯익은 길이였다. 그래서인지 길가의 산이 반갑고 들이 반갑고 산천초목이 반가왔다. 가면갈수록 영아가 《오빠―》 하고 마중오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산너머, 구름너머에서 《어디 보자, 아들아―》 하고 어머니가 두팔을 벌리고 달려오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아계시지 않았다. 오래전에 12살 장영실과 5살 영아―오누이를 남겨두고 눈을 감았었다.

장영실은 눈에 삼삼 어려오는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상호군의 벼슬을 받은 이 아들을 맞이하며 얼마나 기뻐 우시겠는가를 생각하며 애틋한 추억을 더듬었다.

장영실의 어머니 박노을은 가난한 농사군의 외딸로 태여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어른들의 귀염을 받았다. 그의 집은 세월이 갈수록 더 째지게 가난하였다. 대대로 물려받아 내려오는 뙈기논 몇잎에 명줄을 걸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지만 조세와 온갖 가렴잡세를 물고나면 쭉정이 벼 한두말밖에 남는것이 없었다. 그것을 가지고는 한해 농량은커녕 한달도 지탱할수 없었다. 그래서 겨울 한철 주막을 열어서 근근히 목숨을 부지하였다.

한해두해 지나는 동안에 노을이네 주막집에 손님이 늘어났다. 어린 노을이가 자라면서 노래를 곧잘 불러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기때문이였다.

《이애, 네가 노래를 참말 잘하누나. 그참― 여보게 박서방, 자네도 들어와 노을이 노래를 함께 들으세나.》

마을사람들이 껄껄 웃으며 노을이 아버지 박서방에게 이렇게 말하는 때가 많았다. 손님들이란 한동네 사람들과 이웃동네 농군들과 어부, 머슴군들로서 박서방네와는 오래전에 알고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새벽부터 해지는 저녁까지 피땀을 흘리며 일하지만 날마다 더해가는 각박한 세월에 짓눌려 한숨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어버리자고 초라한 주막집을 찾아오는것이다.

노을이 어느덧 한떨기꽃처럼 활짝 피여나고 노래 또한 그와 같이 곱게 불러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노을이는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량반집과 부자집자식들이 찾아들고 한량 건달패들도 군침을 삼키며 기웃거리였다.

노을이는 자기가 술판의 노리개가 될것 같고 신세를 망칠것 같아서 겁이 더럭 났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것이 두려워 주막집을 페하고말았다. 이제 소문이 더 나면 관가의 량반들도 알고 딸을 불러내다가 어찌할지 누가 알겠는가. 량반의 술놀이가 오죽 많은가. 고을원님의 생일날이요, 도련님의 첫돌잔치요 또 감영이나 절도사의 진영에서 품계높은 량반들이 내려오면 영접연회요 하면서 관기들을 불러 옆에 앉히고 술을 치게 하고 꽃계절이 오면 꽃이 좋아 들놀이요, 가을이 오면 단풍이 좋아 단풍놀이요 별의별 술놀이에 기생들을 끼고 앉아서 지화자 좋구좋다 해지는줄 모른다.

노을이 이런 곳에 뽑혀가기가 첩경 쉬운것이다.

노을이 아버지, 어머니의 근심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어느해 설날을 하루이틀 앞에 두고 설명절준비로 관가의 륙방아전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돌아치는 날이였다.

《사또께 긴히 여쭐 말씀 있나이다.》

호방이 잔웃음을 치면서 고을원을 만났다.

《어험, 무슨 일이냐.》

원은 어느때나 자기를 공경스럽게 섬기고 눈치코치빠르게 비위를 잘 맞춰주는 호방이 대견하여 능글능글 웃었다.

《이번 설잔치에 기생들의 가무도 있어야 하옵는데 기생이란것들이 사또께서 싫증을 느끼시는 낡은것이라 미모라든지 기예라든지 새맛이 나는 처녀 하나를 불러들여 새해에 새맛을 보시는것이 어떠하올지―》

이 말이 고을원의 음심을 돋구었다.

《으음, 그래?! 그것 참 좋구나. 으하하… 기생중에 매월이를 내가 어여삐 여겨왔는데 그도 인젠 늙었네그려. 헌데 그를 대신할만한 계집이 어디 있을세 말이지. 네가 그런 애를 하나 주선해들이면 상을 후히 주리라. 하지만 말을 먼저 해놓고 흐지부지해버리면 곤장맛을 보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렷다, 알겠느냐?》

고을원은 주색이라면 꿀종지에 파리꾀이듯 하는 량반이라 벌써부터 음욕이 불끈불끈 살아나서 이같이 상과 벌로 다스리겠다는 말까지 하게끔 되였다.

《예이, 뉘앞이라고 실없는 소리를 하겠나이까. 두고보면 사또께서 상을 후히 주시되 벌은 없으리라고 장담하오이다.》

호방이 누가 들을세라 나직이 뒤를 이었다.

《하오나 그 계집이 호락호락 순응치 않을것 같사와 사또어른님의 함자로 부르는것이 어떠하올지…》

《그거야 무엇이 어렵겠느냐. 헌데 처녀가 몇살이고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 사는 뉘집 딸이냐?》

고을원은 열기가 번쩍이는 눈망울로 송구스럽게 머리를 조아리는 호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호방은 주막집 딸이라고 대답을 올리면 원이 얼굴을 찡그릴것 같아서 얼른 입을 열었다.

《사또께서 미리 아시면 흥미가 덜하실터인즉 먼저 불러내다가 미모를 보시고 기예를 시험해보시면 꿈을 꾸시듯 크게 만족해하시리니 조급해 마시오이다.》

《어, 그래?! 듣고보니 너의 말이 그럼즉 하고나. 그러면 지금 곧 라장과 라졸 두엇을 줄테니 그들과 함께 가서 처녀를 데려오게.》

《아니올시다. 그럴것없이 소인이 바깥하인 장서방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라장과 사령이 가면 처녀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그의 부모가 자기네 딸을 완력으로 잡아가는줄 알고 뻗대기가 쉬워서 일껏 좋은 일을 하려다가 그르칠수 있소이다. 기예라는건 강권으로 눌러서 하라면 하기는 한다 해도 오만간장을 녹이는 가락은 뽑아내지 못하오이다.》

《그만해라, 귀솔갑다. 무슨 잔사설이 많으냐. 네 료량대로 해라.》

호방이 관가의 바깥하인으로 매여있는 장서방을 고른것은 숨은 의도가 있었다. 장서방은 노을이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다. 그의 아들 장무림은 노을이와 약혼한 사이이다. 처녀와 총각은 한동네에서 소꿉놀이도 함께 하며 자랐고 두 집 농사도 네일내일을 가리지 않고 서로 도우면서 한집안식구들처럼 지냈다. 그들은 한쌍의 원앙새가 하나 죽으면 다른 하나도 따라 죽는것처럼 뜨거운 사랑을 고이 지니고있었다.

장무림은 부산포의 가덕진에서 군역을 지고있었다. 래년 가을에 군역을 벗고 돌아오면 노을이와 혼례를 치르기로 하였었다.

노을이네 가정내사를 알고있는 호방은 장서방을 데리고가야 노을이자신이나 그의 부모들도 안심이 되여 자기의 말을 귀담아들어줄것이라고 여겼다.

호방은 바깥마당을 쓸고있는 장서방을 불렀다.

《장서방, 요즈음 샘골 박서방네 형편이 좀 어떤가? 세밑이 오늘래일인데 어쩌자구 올해 조세를 아직두 미루고있는지 모르겠네. 지난해 조세를 못바쳐서 졸경을 치르고도 상기두 정신이 덜든탓인지 혹은 집사정이 참말로 급난해서 그런지… 나와 함께 시골에 가보세. 그 집일을 알아야 사또께 여쭈어 조세를 탕감한다든지 어떻게 마련해주어야 할게 아닌가.》

마음이 어진 장서방은 호방이 왜 류별나게 인정을 쓰는지 몰랐지만 이러나저러나 고마운 심정이 앞섰다.

《그 집 형편이 어렵소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네.》

이리하여 장서방은 호방을 따라 박서방네 집을 찾아갔다. 호방은 한동안 박서방네 집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 그참 모를 일이군. 이런 루추한 집에 황금꾀꼬리와 같은 처녀가 박혀있을줄 누가 짐작이나 할가. )

호방은 장서방을 시켜 박서방을 불러놓고 《박서방, 이 집형편이 말이 아니군그래. 물으나마나 올해의 조세마련이 없겠네. 야단야단해도 이런 야단이 또 어디 있을고.》 하고 제먼저 걱정스러워 하였다.

박서방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이건 어떻게 하는 말인가. 왜 이리도 말마디가 유순한가. 허술히 잡고 세게 치려고 하는가. 지난해처럼 조세를 미납했다고 올해에도 관가에 잡아가두고 형장맛을 보이겠다는 잡도리인가. 그는 후드득 떨리는 무릎을 가까스로 모아세우고 황감히 말을 올렸다.

《나리님, 황송하오나 조세를 래년 정월까지 바치겠으니 한달만 말미를 주소이다.》

호방은 박서방의 입에서 반드시 이런 말이 나올줄 알고서 미리 준비하여두었던 말을 슬슬 엮어내리였다.

《허, 이 사람 보게. 가을뒤끝에 없는 낟알이 해를 넘긴다고 저절로 생긴다던가. 하기는 주막을 열어서 나오는 부수입이 웬간하겠군. 듣자하니 이 집 딸이 노래를 잘 부르는 덕에 손님이 많다면서? 그럼 되였네. 뭐니뭐니 해도 내가 한시름 놓이는군그래.》

그는 제일처럼 기뻐하듯 껄껄 웃었다.

박서방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니올시다. 주막은 그만두었소이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러면 조세는 어떻게 하려구? 이런 변이라구야.》

호방은 또 박서방의 근심걱정을 제가 다 맡아안은듯이 펄쩍 뛰는 시늉을 해보이고 뒤말을 이었다.

《호방노릇은 못해먹을 일이로고. 아래로는 가난한 백성들이 조세를 감해달라고 아우성이지 우로는 조세를 제때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호령하지. 이 호방은 우아래짬에 끼여들어 량편 곱사등이 되는게야. 망짝단련도 이같은 망짝단련이 어데 있을라구― 응? 이 사람아, 어서 말을 해보라구.》

호방의 말도 그럴듯하였다. 고을조세를 조정이 정해준 기일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한 수량의 등차에 따라 형벌을 중하게도 경하게도 준다는 절목(규정)이 있었다. 고을원은 죄목에서 벗어나지만 그대신 조세의 납입정형에 따라 벼슬품계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까닭으로 매를 맞는 호방이 없고 품계를 삭탈당하는 고을원이 없다. 백성들의 등가죽을 벗겨서라도 조세성적을 올리면 그만인것이다.

《나리님, 사정을 보아주사이다.》

장서방이 한본새대로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는 박서방을 대신하여 간청하였다.

《허, 그러면 작히나 좋겠나. 아무리 보아도 이 집에서 조세마련이 안보여 그러지. 주막도 페했대, 어디 낟알이 나올 구멍이 있나. 어쩌면 좋을가. … 하― 좋은 수가 있네. 내가 왜 그 생각을 미리 못하였을고. 그렇게 된다면야 조세말미를 받을수 있지. 일이 잘되면 다는 몰라도 조세반분은 탕감받을지도 모르지. 하하하. 박서방, 우리 이렇게 하세.》

호방은 자기와 박서방이 마치 한집안식구라도 되는듯이 《우리》라는 말을 써가면서 다음말을 이었다.

《모레는 설명절이겠다, 사또께서 설잔치를 크게 열고 고을경내 량반선비들을 다 청해다가 지난 한해 고을의 정사가 잘되여 물산이 풍부해지고 아울러 시절이 태평해졌다는것을 널리 알리자함이니 이 아니 경사인가. 여기에 가무가 없으면 그 연회가 망측스럽거든. 그래서 사또께서 고을관기들을 들볶아놓았지만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드는것이 없으신가봐. 이런 때 이 집 딸이 노래 하나 잘 불러서 사또님의 기분을 흥뜨게 하면 이 호방이 척 나서서 사또께 〈저 처녀의 집에서 조세납입이 여사여사 하오니 여사여사 하여주시오면 좋으리오이다. 〉하고 은근히 여쭈겠네. 그러면 사또께서 기분이 좋은지라 〈박노을의 노래는 주옥을 주고도 듣지 못하리니 그까짓 조세 몇섬에 비기겠느냐. 어서 그리해라. 〉 하고 령을 내리시지 않으랴. 이 집 노을이가 늘 부르던 노래인데 그야말로 품들일것두 없구 꿩먹고 알먹는 격일세. 박서방이 관가에 붙잡혀가지 않아 좋아, 노을이는 사또님의 칭찬을 받아 좋아, 좋은 일만 있구 나쁜 일은 하나도 없으니 좋아. 하하하, 이런걸 가지고 일거량득이라던지―》

호방은 벌써 락착이 다 된듯이 《후유― 큰 골치거리가 뜻밖에 풀렸군.》 하고 박서방을 구렝이 닭알녹이듯 하였다.

엉거주춤 읍을 하고 서서 그 말을 듣고있던 박서방은 지그시 젖어드는 불안을 이겨낼수 없었다. 그의 낯빛이 거무스레한 흙빛처럼 어두워졌다. 내 딸을 관가에 불러다가 량반들의 술상에 끼여앉히고 노래를 시키겠다고? 그러다가 딸의 신세를 망쳐놓으려구? 내사 관가의 곤장을 맞으면 맞았지 그렇게는 못한다 하고 박서방은 마음을 다잡았다.

호방의 등뒤에 서서 오가는 말을 듣고있던 장서방은 교활한 호방의 속심을 알아차리고 박서방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였다. 노을이가 한번 노래하느니 술상에 마주앉느니 하고나면 다음번에도, 그다음 술놀이에도 끌려들어가기 십상이다. 마치 제방의 큰물이 실금을 찾아내고 차츰차츰 먹어들어가다가 마침내 뚝을 무너뜨리듯이 노을이를 그렇게 무너뜨릴것이다.

《박서방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왜 그러구만 있나. 어떤가, 좋지?》

호방은 박서방이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조바심이 났다.

《난 싫소이다. 그애는 여기 장서방네 며느리감으로 벌써 약혼한 처녀이오이다. 안되오이다.》

호방은 박서방이 단마디로 거절하자 방망이로 한대 얻어맞은듯 얼떨떨해졌다.

《그게 정말인가?》

《나도 내 며느리감을 보내지 않겠소이다.》

장서방이 격분하여 박서방의 말에 합세하였다.

호방은 이때껏 감추고있던 본심을 드러냈다.

《좋은 말로 타일렀더니 안되겠다. 노을이를 안내놓구 무사할줄 아느냐? 관가의 말을 무얼로 아느냐. 내 원님께 아뢰여 두 령감을 다 붙잡아가게 할테다.》

호방은 성이 상투끝까지 올라서 돌아갔다.

부엌에서 두 아버님들과 호방의 말을 다 들은 노을이는 한동안 흐느껴 울다가 밖으로 나왔다. 조세를 제 날자에 못바친탓에 아버지가 지난해처럼 관가에 붙잡혀가서 형장을 맞도록 가만히 있을 노을이가 아니였다. 또 시아버님이 될 장서방까지도 어찌 매를 맞게 내버려두랴.

《아버님, 소녀 어디간들 제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그만이와요. 너무 근심마시와요. 설잔치에 노래 하나 부르고는 돌아오겠나이다.》

노을이는 결연히 눈물을 씻고 관청을 향해 제발로 걸어갔다. 이 길, 이 발걸음은 그가 관기로 불우한 한생을 마치게 한 시초로 되였다. 불쌍한 부모님들을 위해 관가의 기생이 아니될수 없었다.

처녀는 군역을 지고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죄스러워 죽어버리고싶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어쩌랴 하여 그럴수도 없었다.

그해 가을에 군역을 마친 장무림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노을이의 기막힌 사연을 부모에게서 다 듣고 그와 혼례를 치르었다. 노을이 관기가 되였다 해도 그의 변치 않는 사랑과 순결한 절개를 굳게 믿은것이다. 처녀의 눈물겨운 사랑은 바람이 불면 더욱 힘차게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이 뜨거웠다.

그들사이에 사내애가 태여났다. 몇해후에는 계집애가 빨간 주먹에 노예의 운명을 쥐고 세상에 나왔다. 그애들이 장영실과 녀동생 장영아이다.

장영실은 가라말이 평보로 천천히 가는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쓰라린 추억을 털어버리고싶건만 웬일인지 지난날이 자꾸만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어느해인가 고을원이 기생을 점고한다고 어머니를 따로 불러내여 겁탈하려고 달려들 때 그놈의 따귀를 세차게 친것이 죄가 되여 어머니는 형장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 죄가 련루되여 장영실과 영아는 관노, 관비로 전락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땅이 뒤바뀐듯 처지가 달라졌다. 만약 어머님이 살아계신다면 기생살이에서 벗어나 상호군의 어머니로서 락을 누릴수 있었을것이였다. 다행히도 영아는 노예의 멍에를 벗어버리게 되였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길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막고개에 닿았다. 고개는 그리 높지 않으나 울창한 나무숲이 굽이굽이에 바투 나앉았다. 해빛은 나무우듬지를 엇비스듬히 내려서 장영실이 가는 길에 금빛주단을 깔아놓은듯 하였다. 인적이 없는 고개길에 자기 하나만을 위해 이처럼 신비롭고 황홀한 길을 열어놓은듯싶어 마음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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