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5

 

해가 저물어가고있다.

공회당지붕우에도 손톱눈에 들이는 봉선화물처럼 고운 노을이 내려앉았다. 땅과 작별하기 아쉬워선지 자식을 두고가는 어머니의 마음마냥 저녁해는 마지막빛과 열로 끝없이 애무해준다.

지팽이에 의지해선 백선행은 공회당에서 울려나오는 바이올린소리를 듣고있다. 그의 팔을 낀 진주가 속삭인다.

《토성랑에서 사는 여섯살 난 애가 합니다.》

《여섯살, 신동이구나.》

《자주 우리 공회당에 와서 바이올린연주를 합니다.》

《그거 참 대단하구나.》

《어머님은요. … 온 나라가 다 아는데…》

《못하는 수작이 없구나. 그만 가자.》

백선행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매일 찾던 공회당걸음도 더디여진다. 오늘은 송산에서 진주가 건너왔기에 함께 왔다. 왜선지 다시 올것 같지 못하다. 인생이란 끝이 있기마련 아닌가.

유양점도 지난해에 세상을 떠나갔다. 그가 공회당건설을 마무리하고 룡강으로 내려가며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백성이 되여 백성을 알게 되니 백성을 떠나 살고싶지 않소그려.》

아, 조정의 정사를 맡아본다는 사람들이 공자왈 맹자왈 외우기전에 백성의 마음부터 바로 읽으려 했더라면 나라가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련만…

백선행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공회당을 바라본다.

설음많은 고생살이끝에 남긴것이 있다면 저 집뿐이구나. 내가 저런 큰집을 지을줄이야. 내 죽어 두견새가 된다면 저 지붕에 내려앉아 울고울련만, 대동강 버드나무가지에서 깃을 치며 왜놈종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나라를 찾으라고 빌고빌련만…

《어머니, 무슨 생각을…》

《허허, 늙은이 생각이란 오락가락하는거다. 가자.》

진주는 백선행의 한팔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련광정앞길에 이르자 백선행이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다.

《일선이녀석 버릇은 여전하냐?》

행여 헴이 들가 하여 양손자 안일선을 장가들여 송산쪽에서 농사를 짓게 한 백선행이다.

진주는 백선행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내들 못된 버릇은 고질병인가 봅니다. 투전노름에 땅을 절반이나 팔았답니다.》

《덜돼먹은 녀석! 이 할미 돈을 쳐다보고 방종한짓부터 배웠으니 사람되기는 글렀다.》

백선행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남편 안재황을 생각하여 안씨가문의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려 하였건만 그마저 헛된 욕망이다.

《어머니, 저… <총독부>의 <감사>인지 <표창>인지 한걸 받아가라구 또 왔댔어요.》

왜놈《총독부》가 공회당을 건설한 이 선행에게 《감사장》을 준다는 수작이다. 간특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다. 《황국신민》의 《모범》으로 나를 내세워 떠들어대려고 한다니 개꿈을 꾸고있는게 아니고 뭔가.

백선행은 화가 부쩍 동하여 발을 굴러댔다.

《요사스러운 놈들 같으니… 전번날도 뱀새끼같은 놈이 집대문으로 기여들어왔기에 호통을 쳐 내쫓았는데 또? …》

《어머님한테 잘 말씀드리라구 하더군요.》

《이번에 나타나만 봐라. 아예 구정물벼락을 안기고말테다. 그따위 종이장을 받으면 내가 조선사람이냐?!》

겨울에 접어들면서 백선행은 웬일인지 몸을 놀리기가 퍽 불편해져 문밖출입을 하지 못했다. 딱히 병을 앓는건 아니고 로환이여선지 고작해서 마당에서 맴돌며 경림의 처 일손이나 도우면서 그럭저럭 해를 넘겼다.

모란봉에 신록이 짙어가고 대동강기슭에 실버들이 춤추는 5월 어느날 그는 경림의 부처간을 찾았다.

《너희들은 얼른 가서 덕동이네를 오게 하렴. 가던 길에 명학선생에게도 알려라. 내가 집에 오란다고.》

경림의 부처는 의아해졌다. 집에 늙은이만 남겨두는것이 어쩐지 마음놓이지 않았다.

《왜들 그러냐.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어서.》

경림의 부처는 공손히 분부를 따랐다.

집이 비자 백선행은 부엌에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씻었다. 준비해두었던 명주속옷과 흰 치마저고리를 갈아입은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 장농을 열고 옻칠한 궤를 꺼내여 방바닥에 놓고는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남은 돈 수십만원이 들어있는 궤다. 주름진 손으로 쓸어만지던 그는 열려다 그만두고 새 담요를 편 다음 자리에 누웠다.

마음에 깃드는 안정, 그것은 인생이 끝나가는 외로운 넋의 서글픈 곡조였다. 죽음이 다가오고있었다. 가난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쳐온 인생파도가 잦아들면서 심혼의 락엽은 환영들을 불러온다. 꽃밭속으로 엎어질듯 달려와 안기는 나리, 큰절을 하고나서 아득히 사라지는 수인복차림의 송월이… 유양점의 능청스러운 얼굴이 다가드는가 하면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뉘우치며 눈물짓던 도원국의 가련한 모습도 보인다.

몽롱해지는 의식의 한복판으로 누군가 걸어온다. 대지팽이를 짚은 백발의 로인, 그 눈빛이 똑바로 바라본다.

《아버님…》

백선행은 기쁜 마음을 터치려 애썼지만 자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장규현은 두손으로 지팽이를 짚은채 말없이 대견한 웃음을 짓고 머리만 끄덕여보인다. … 사그라져가는 반디불같은 백선행의 의식이 그만에야 깜빡 빛을 잃었다.

《어머니! … 어머님! …》

인간세상에서 안타까이 찾고 부르는 소리에 백선행은 눈을 떴다. 경림이 부처와 덕동이와 진주, 장명학… 어른이 된 룡산이와 나리의 아들딸들이 다 찾아와앉았다.

《왔구나. … 다들…》

백선행은 손을 내밀어 경림이부터 차례로 잡아주었다.

《이젠 헤여질 때가 온가부다. … 내 몸을 다치지 말아. … 옷은 다 갈아입었다. …》

《누님! 무슨 약한 소리를 하시오?!》

백발의 장명학이 눈물절반으로 말했다.

《방금전에… 아버님을 만났다오. … 그 금언… 내가 지켰는지… <바를 정>…》

《누님은 아버님의 뜻을 지켰소. 지켰을뿐더러 돈을 바로 쓰면 애국자가 되고 잘못 쓰면 매국노가 된다는 진리를 세상에 남겼소!》

《부탁하건대… 내 말을… 종이에 적어주오. …》

진주가 장명학의 앞에 종이와 붓, 먹을 갈라놓아주었다.

《저 궤속에… 내 재산의 전부가… 있다우. …》

숨을 가다듬은 백선행이 띠염띠염 말을 이었다.

《그 돈의 절반은… 공회당운영과 학교… 학교후원에 쓰고… 나머지 절반은 평양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고루고루 나눠주오. …》

장명학은 눈물을 머금고 백선행의 유언을 한자한자 적어내려갔다. 한편 자식처럼 여기고 키워온 사람들한테 한푼도 남기지 않는게 이상스러웠으나 차마 물을수 없었다.

《덕동아! …》

덕동이와 진주가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송산자기장… 백토가 없어 오래 못 갈거다만… 그 주변 내 땅으로 농사를 짓거라. …》

《어머님! …》

진주가 방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됐다. … 경림인… 경림인 이 집을 물려받거라. 도매점대신 내온 가게들을… 사람에게… 돈이 많아 좋을게 없다. …》

경림의 얼굴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경림의 처가 백선행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우린 일없어요. … 하지만 손자인 일선에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고난 백선행이 말했다.

《룡산비탈밭… 그 밭을 줘라. … 그녀석에겐 돈이 있어선 안된다. …》

백선행은 이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몽롱한 의식속에서 그는 안재황을 찾았다.

여보, 당신곁으로 가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 당신이 남겨준 그 고무신을 가지고 가겠어요. … 공수래 공수거…

백선행은 숨을 거두었다.

1933년 5월 8일, 그의 나이는 85살이였다.

백선행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거행되였다. 세상에 나서 일점혈육 남기지 못한 그였지만 평양의 청년학생들이 상주가 되여 령구를 메고 더운 눈물을 뿌리며 걸었다. 고인을 따르는 인파가 10리길을 메웠다.

조객들속에서 걷는 장명학의 마음은 살아온 지난날처럼 백선행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의 한생은 어데서 끝나는것이냐. 모진 가난, 불우한 운명이 검은구름처럼 앞을 덮었던 녀인, 주저앉아 울지 않고 무섭게 몸부림치며 험악한 세상과 맞서 산 녀인, 80평생 가시밭을 맨발로 걸으며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모은 재부를 망국으로 수난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기에 이토록 많은 자식들을 두지 않았는가.

대동강이 운다. 청류벽이 가슴을 두드린다.

그대 령혼이 대동강과 함께 영원히 살아서 흐르라. 그대의 곧은 마음, 그대의 애국선행은 청류벽과 더불어 민족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으리.

고행속에서 자기나름대로의 애국에 산 백선행은 봉건의 질곡속에 태여나 망국의 수난속에 인생의 자취를 조용히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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