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4

 

종로경찰서류치장에서 평양형무소 미결수감방으로 이감된 송월은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일본료정에서 조선사람이 기도한 살인미수사건이 테로범죄로 과장날조되였던것이다. 조선 각지에서 테로의 대상으로 되고있는 저들의 앞잡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친일을 하면 살고 반일하면 죽어야 한다는 야수적인 탄압《론리》를 법률적으로 제도화하는것이 필요했던것이다.

피고인 송월은 마지막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억울하게 죽은 내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고 했을뿐이다. 그러나 이 법정이 친일분자를 죽인 정치범으로 판결을 내린 이상 나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상소권을 포기한다.》

법정판결을 받은지 사흘째 되는 날 간수가 송월을 형무소면회실로 불러냈다.

간수를 따라 어둑침침한 감옥복도를 걸으며 송월은 생각했다.

면회를 왔다면 백선행이다. 스무해 넘도록 헤여져 살며 어느 하루 마음속으로 찾지 않은 날 없는 어머니다. 죄를 짓고 쫓기여났어도 외로운 자기에게는 언제나 인정많은 어머니로 간직되여있는 백선행이였다. 경찰서 류치장에까지 찾아왔을 때 영영 다시는 입에 올릴수 없으리라 여겼던 어머니라는 친근한 부름을 목메여 불러보았고 왜놈경찰들의 모진 고문으로 이어진 취조앞에서는 옥물었던 입을 열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나에게 얼마나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는가. 세상고초를 다 겪으며 한푼두푼 벌어들인 돈을 빼앗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쓰고있다. 왜놈들에게 우리 백성들이 업심당하는 수모를 가시자고 련광정앞에 큰 공회당을 짓는다지 않는가. 어쩌면 그리도 훌륭한 생각을 할수 있었을가. 마흔이 넘은 내가 바깥세상에서만 살았다면 지금 같은 존경심을 품어볼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돈만 가지면 살수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겨우 두달 넘는 감옥살이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되고보니 망국이 어떤것인지, 애국에 산다는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다.

송월은 자기의 목숨을 살려주겠으니 공회당건설을 중지하라고 왜놈들이 백선행을 강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밤새 몸부림쳤다. 어머니, 왜놈들에게 속지 마세요, 절대로 굽어들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 속을 태우는 이 못된 년의 목숨 같은건 잊어주세요 하고 고통속에서 감방벽을 허비고 두드려댔다.

그는 지금 어떻게 하면 백선행의 마음속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가 하는 생각뿐이다. 눈물없는 리별, 울지 않는 마지막작별을 하고싶었다. 어머니곁에서 자식된 도리로 효도를 단 하루라도 할수 있다면 원이 없겠지만 왜놈들이 강요한 죽음이 기다리니 백선행을 어머니로 부르는 딸자식답게 곧고곧은 마음을 남기고싶었다.

면회실문이 열리는 요란스러운 쇠소리에 송월은 걸음을 뚝 멈추었다.

어데서 밀려드는지 알수 없는 백광에 눈이 부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쥔 그는 《송월아!》 하고 찾는 백선행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금시 터져나올것만 같은 눈물을 참으며 바라보았다.

철창밖에 백선행이 서있다. 경림과 그의 처, 진주와 덕동, 장명학과 유양점까지 찾아오지 않았는가. 서로 다른 표정을 한 얼굴들, 저 사람들은 나를 위안해주자고 찾아왔다. 혈육인가, 친척인가 따져물으면 남이나 같건만 홀몸으로 마흔고개를 넘겨산 나를, 나같은 인간을 보자고 왔다.

송월의 심중은 이상할만큼 무겁고도 가슴벅찬 감정에 이끌려 수인복을 입은 자기라는것을 잊으려고 몸부림쳤다.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 지금껏 살며 지어보지 못한 웃음을 담으며 철창속으로 들여민 백선행의 손을 잡았다. 살은 다 내리고 뼈마디뿐인 백선행의 손을 두손안에 담아쥔 송월은 다시한번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였다.

《어머니, 보고싶었어요. … 아유- 그 기상은 여전하시네. 꼭 장작개비를 들고 두들겨패실듯싶은… 호호호.》

백선행은 송월의 말에 이년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에 실성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생겨먹길 그런걸 어찌겠니.》 하며 제편에서 서둘러 눈길을 피했다.

《경림오라버니!》

《송월이…》

경림에게 한손을 맡긴 송월은 도매점때처럼 눈을 흘겼다.

《오라버닌 지금 웃을 체면도 못되지요? 잔뜩 어질어빠져가지고… 내가 사내면 안그랬겠어요.》

송월의 입에서 생각조차 못한 말이 나오는통에 경림이가 입만 벌린채 어쩔줄 몰라하자 백선행이 황황히 역성을 들었다.

《야, 세상 무던한 경림이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

백선행이 그 말을 해서 철창을 사이에 둔 이 서슬푸른 자리가 화기로운 집안같이 되여버리는 바람에 모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머니, 내 그래서 하는 말이예요. 오라버니가 대가 있고 계집 다루는 손탁이 셌다면 내가 도매점에서 뒤구멍으로 잠상품을 팔았겠어요? 덕동오라버니 같았으면 열번은 더 끄뎅이를 휘둘러 무릎꿇게 했을텐데… 어쨌든 경림오라버닌 지내 용한 사내예요.》

백선행은 가슴이 쩌릿해났다. 이 판에 생뚱같이 웬 입질을 저리 다사스레 하는걸가? 생겨먹기를 독한 년이 모진 마음을 먹고 딴전을 부리는게 분명하구나. 원, 세상에…

그냥 듣고있기 뭣해난 덕동이가 부리부리한 눈을 굴려댔다.

《난 끌어들이지 마우. 송월이가 날 뭐 사내로 여겼소? 감영에서 찾는 문서를 가지고 송산에 와서 누구한테 맡겼댔소? 송월의 그 매운 눈에 사내같이 보일 사내가 어디 있겠소?》

괜스레 쑥스러워 거퍼 대꾸하며 두손을 휘휘 내젓는 덕동을 보며 송월은 한손으로 철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덕동오라버니, 황소뿔은 가졌는데 속이 여울물처럼 얕군요. 오라버니에겐 담벽도 밀어허물 힘은 있지만 진주만큼 매사를 깊이 생각하는 궁냥은 없어요. 그 편에선 비록 녀자이긴 해도 진주가 훨씬 나은줄 아세요. 내가 그 문서장을 왜 진주에게 맡겼는지 모르겠으면 저리 물러서기나 해요.》

《체체… 내가 우리 처보다도 못하다는거야?》

《여보.》

진주가 덕동의 소매를 슬며시 잡아당기는것을 웃음속에 건너다보며 송월은 덕동을 계속 걸고들며 놀려댔다.

《싫어요? 듣기가… 덕동오라버닌 진주를 만난걸 하늘이 준 복으로 아세요.》

옆에서 듣던 장명학이 허옇게 된 수염을 쓸어내린다.

《이 사람 덕동이, 과히 듣기 거북한 소리는 아닐세. 허허.》

《사람이 철이 들고보니 백발이더라- 허, 여기 유양점이 있네.》

유양점의 그 말에 세상에 나서 처음 보는 자리에서 세상을 살며 느껴보지 못한 심정에 사로잡혀 모두들 속이 후련해지도록 웃음보를 터쳤다.

웃음판이 사그라지기 전에 송월은 백선행의 주름진 얼굴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으며 재빨리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니, 오늘은 울면 안돼요.》

두사람의 눈길이 뜨겁게 엇갈리면서 만단사연을 순간에 나누었다.

《모진 년 같으니…》

송월은 얼굴에 다시금 미소를 활짝 피여올리며 경림의 처와 진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형님! 진주!》

《송월이!》

경림의 처와 진주가 송월의 손을 잡았다.

《다들 어머니와 늘쌍 함께 있을테지요? 막 심술나 죽겠네. …

날 대신해서 어머닐 잘 모셔주세요. 나때문에 머리가 다 희여졌어요. 부탁해요. …》

이 말까지 하고나서 송월은 목이 꽉 메여올라 한동안 굳어져있었다.

더이상 눈물을 참아낼것 같지 못하니 이를 어쩐담. 내가 이자 무슨 말을 하려 했던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온몸이 천길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구나. 이젠 그만 헤여져야 해. 다시는 볼수 없는 모습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막 미여지누나. 마음착한 이 사람들이 나때문에 울게 해서는 안된다.

송월은 뼈마디가 툭 불거진 백선행의 손을 잡아 자기 볼에 가져다댄채 꿈을 꾸는듯 눈을 감고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부디 장수하세요. 이 딸의 마지막인사를 받아주십시오.》

철창에서 물러난 송월은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으며 백선행에게 큰절을 했다.

《송월아! …》

《송월이…》

고개를 숙인 송월은 잠시 굳어진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 내 비록 무정한 세월에 태여나 불행한 팔자로 살아왔지만 세상에 자랑할만 한 훌륭한 녀인을 어머니라 부르며 이처럼 세상하직인사를 올릴수 있는것만이라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한이 없다. 이 몸이 세상에 살아 맺힌 한이란 이제는 없다. 있다면 나 혼자만의 한이 아닌, 조선민족모두의 치욕인 망국의 여한뿐이니 이는 어머니같이 착한 내 겨레가 어느때건 반드시 풀어줄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송월은 빙긋이 웃으며 한손을 가슴우에 쳐들어 흔들어보이고나서 돌아섰다.

어머니, 잘 계셔요. 그리고 속만 태운 이 딸을 용서하세요. 마음속으로 이 말을 곱씹으며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애써 돌려 걸어갔다. 보고 또 보고싶은 정다운 모습이지만 이제 다시 돌아섰다가는 눈물을 감춰낼수 없는 그였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오르는 흐느낌을 입술과 함께 짓씹으며 한점 흐트림없는 걸음을 옮겨가는 송월의 해쓱해진 얼굴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철창을 바줄처럼 두손으로 움켜쥔 백선행은 멀어져가는 송월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리도 갔는데 송월이까지 보내는구나. 망국의 이 원한을 언제면 씻는단 말이냐! 가슴터져오는 통탄을 안고선 그의 두눈에서는 눈물아닌 퍼런 불이 황황 타번지고있었다.

면회실문이 쾅 닫기는 소리와 함께 백선행은 참고참았던 울분을 마음속으로 터뜨리였다.

공회당은 일어설게다. 그 집을 지은 다음 빼앗긴 나라를 찾자고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과 나리와 송월이같이 망국의 한을 품고 간 사람들의 령혼이 고이 잠들게 위령제를 먼저 지낼테다.

왜놈종자들아, 네놈들이 우리 땅에서 어느 하루 편안하게 살줄 아느냐. 복국의 날까지 대동강의 곡성은 멎지 않을게다. 그게 눈물이 아닌줄 알아라. 피로 앙갚음을 하게 될게다. 임금과 조정이 망했지 백성은 죽지 않았다! 단군성왕님의 후손들은 절대로 죽이지 못한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