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3

 

일본료정에서의 살인미수사건은 이시하라 겐지의 악랄한 음모로 과장날조되여 검찰에 제출되였으며 일본검찰기관은 살인범죄로 판정하고 재판에 기소하였다.

흑백을 전도하는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여기는 겐지는 서필의 자살을 흑막속에 묻어둔채 병원에서 죽었다는 법의학적감정서까지 첨부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송월의 범죄는 미수가 아니라 기수로서 극형을 언도받아야 했던것이다.

겐지는 자기의 의도대로 사건을 결속짓자 백선행을 호출했다. 창백해진 백선행의 낯색에서 일종의 만족감을 받아안은 그는 경찰로서 자기의 능력을 과시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자부에 한껏 도취되였다.

《백선행, 앉으시오.》

여느때없이 깍듯한 례의를 차리며 겐지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의자까지 놓아주었다. 그는 이미 백선행이 송월이와 만나서 나눈 이야기의 속기까지 다 읽어보면서 오늘 나누게 될 대화를 빈틈없이 준비하였다.

겐지는 유표한 매눈에 웃음을 띠운채 백선행을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부른건 선행에게 매우 불행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행이란 말이 노래가락같이 울렸다. 장사는 알겠지만 법률이 어떤것인지 리해조차 못할 이 늙은 년을 재미있게 놀려보자고 생각한 겐지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외다. 내 귀는 멀었답디까.》

언제 봐야 아무 표정없이 말하는 백선행이여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들었다는건지 짐작할수 없어 겐지는 준비해둔 대사를 바꿀수밖에 없었다.

《당신 안다는것은 무엇인가?》

《재판놀음이지요.》

시답지 않게 내뱉는 대답에 겐지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재판기관과 은밀한 약속밑에 극비로 지키는 사실을 이 로친이 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가?》

《돈이면 뭔들 못하겠소.》

어렵지 않게 하는 백선행의 대답에 겐지의 얼굴로 경련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니 평양장사군로친네가 일본사법기관쯤은 돈으로 마음대로 주물러댄다는 소리가 아닌가. 분명 어느 녀석이 뢰물을 먹고 비밀을 루설했다고 판단한 겐지의 온몸은 금시 랭기를 풍겼다. 이놈의 로친이 내가 어떤 흥정을 하자고 하는가도 다 아는게 아닐가. 큼직한 정치흥정이다. 백선행이 응하면 이 겐지는 《총독》 아니면 경무국장으로부터 치하를 받을것이며 영전의 길도 열린다. 절호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검찰과 재판소가 내놓은 증거부족이니 뭐니 하는따위의 반론을 무리한 억지주장으로 다 뒤집어버리지 않았던가.

《말해보라. 당신이 안다는게 도대체 뭔가?》

백선행은 재판소에서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겐지에게 불리워오고보니 이놈이 분명 무슨 잔꾀를 부리려 한다는것을 짐작하고 너부터 말하라는 심사로 늘어진 소리를 냈다.

《부르긴 서장나리가 불렀는데 할 말이 있으면 먼저 할게지 나보구 따져물을게 있소? 내가 말한건 다 어림짐작이외다.》

장사군속심이 음흉하다고 이쯤하니 녀자의 몸으로 갑부가 되였을거라고 생각한 겐지는 아래로 내려다볼 상대가 아닌지라 자못 정중한 자세를 취하였다.

《백선행, 우리는 기소된 송월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하였다.》

겐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백선행이 대답했다.

《그야 어련했겠소.》

《나의 진심을 의심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을 도와주고싶다. 때문에 나로선 직분을 넘어서면서까지 검찰의 기소를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교활한 겐지의 감언리설은 준비된 문장과 조화를 이룬 억양과 감정으로 거침없이 흘렀다. 연약한 조선녀성의 운명을 놓고 정치도박을 준비한 그지만 반들반들한 얼굴에는 짐짓 동정의 빛이 어리였다.

평생 장사판에서 살아온 백선행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특유한 감각을 가지고있었다. 일본사람이라면 무작정 믿지 않고 미워하는 감정은 밀어놓고래도 겐지가 잘 련습한 말마디들에 자기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는 타산이 숨어있다는것을 간파하였다.

서툰 장사군의 중떠보기짓을 하는 겐지를 차지 않는 눈길로 쳐다보고난 백선행은 무표정한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섞지 않은 말을 했다.

《칼부림을 했다니 재판받는거야 피할 길 없을게고… 재판인지 한걸 하자면 칼에 맞은 사람도 내다 앉히겠지요?》

《피해자 서필은 죽었다. 병원에서…》

《죽다니? … 그 량반 30년 가까이 내 빚을 묵이고 숨어다니다가 며칠전에 나한테 걸려들었댔수다. 리자까지 20만원을 내다보는 큰 빚을 진 놈인데… 죽었다는건 거짓말이요.》

《우리도 알고있다. 죽은 사람에게서 빚을 받을수 있는가. 단념하라.》

《병원에서 죽었다니 송월의 칼에 맞아죽었다는거외까?》

《그렇다.》

겐지는 백선행의 기상이 점점 사나와지는것이 자기 의도와 일치되기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강력한 자극제를 들이대여 큰 산이 무너진대도 끄떡하지 않을것처럼 밉살스럽게 틀고앉아있는 백선행의 리성을 잃게 하자는것이 그의 본심이였다.

《아니, 병원에서 나와 달포가 넘도록 일본사람들이 차린다는 방직회사에만 돌아친 사람인데 혹 죽었단들 어떻게 칼에 맞아죽은거로 되겠소?》

《하- 검찰은 죽음의 원인을 그렇게 확인하고 법의문건을 갖추었으며 시체는 피해자의 고향에 인도되였다.》

서필의 시체는 대동강에서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이 발견하였다. 여름철의 오래된 변사체였지만 입은 옷에서 백선행이 되돌려준 회중시계가 나왔다. 왜놈경찰들이 서둘러 사체를 처리했다. 그 회중시계나 내놓고 죽은 놈이 서필이라고 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장명학이 말했다. 백선행은 왜놈들이 송월의 재판을 서둘러대기에 유양점과 친구간인 변호사도 만났다. 그 사람은 피해자가 왜 죽었는가 하는 사실을 밝히게 하고 송월이가 구류상태에 있는 형편에서 살인자는 다른 사람이므로 재판은 불가피하게 지연될것이며 그와 같은 경우에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경찰서장이라는 놈의 주둥이에서는 억지주장이 나오지 않는가. 서필이 송월의 칼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는것으로 조작한게 분명하다.

《서장나리, 나한테 빚진 그놈은 대동강에 빠져죽었수다. 이 사실은 내가 재판정에서 밝혀내겠으니 마음놓으시우.》

이쯤한 백선행의 도전을 예견하고있었던 겐지는 가볍게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 마루바닥을 위엄있게 짚으며 천천히 오갔다.

《백선행, 당신은 한때 자기의 양딸로 삼아 머슴같이 부려먹다 내쫓은 송월을 구원하여 늘그막에 죄를 씻고 <하느님>의 어진 양이 되고저 하는데 이건 선에 대한 모독이다. 불행하게 죽음을 당한 <일진회> 회원이며 우리 일본과의 친목을 위한 <성업>에 나섰던 서필씨의 명예를 재판정에 나서서 훼손시킨다면 배일선동으로 취급될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태도도 달라질것이다.》

백선행은 허울을 벗어내친 이리같은 겐지를 보았다. 거짓으로 꾸며진 날조가 통하지 않으니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평생 장사나 해먹는 이 늙은게 말한다구 무슨 선동이라니 평양바닥에 귀 가진 사람치고 믿을 인간이 있겠소? 서장나리, 나를 종로에 끌어내다놓구 그 칼로 목을 치시구려. 그런다구 제 혀바닥 가지고 할 말 못할 내가 아니외다. 허허.》

백선행의 등뒤에 선 겐지는 칼자루를 꽉 움켜쥐였다. 그의 두눈은 앞에 앉은 늙은 녀자를 칼탕쳐 죽일 기상으로 번들거렸다. 이 늙은 마귀년아, 그 주둥이에 자갈을 물리고 혀바닥을 잘라버려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악이 치받친 그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객기를 부려서는 안되겠기에 두다리를 뻗치고서서 한동안 마음을 진정했다.

《백선행, 나의 호의를 받아주기를 바란다. 방도는 있다. 송월이를 살려내고싶은가?》

자기의 얼굴을 감추려고 등뒤에 서서 묻는 겐지에게 백선행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말하구려.》

백선행의 앞에 와선 겐지가 일본도를 두손으로 짚고 바라본다. 에둘러댄 화제가 드디여 마지막대목에 이른것이다.

《공회당건설을 중지하도록 하라!》

백선행의 눈길이 번쩍 쳐들린다.

《…》

《공회당건설을 중지하면 송월은 집행유예로 즉시 석방될것이다.》

《…》

장사로 늙어온 백선행이였건만 지금과 같은 흥정을 해보기는 처음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친절한 회유로 강압적인 날조를 인정시키려 하던 겐지의 입에서 마침내 위협적인 조건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날 때부터 불행한 운명을 안고 눈물겨운 인생풍파를 헤친 송월이고보면 자기보다도 더 기구한 인생살이를 하였다. 마흔살 고개를 넘겼어도 머리조차 얹어보지 못했다. 한생의 절반이나 살았다고 해야 할 그의 목숨을 부지깽이 꺾듯 한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검사인지 재판관인지 한 왜놈족속들에게 돈을 먹이면 살려내리라 생각한게 오산이였다. 이놈의 주둥이에서 공회당건설을 그만두라는 말이 나오는걸 보면 모두 한동아리가 되여 나를 궁지에 몰아넣자고 작당했을것이다. 공회당을 짓는다고 온 평양사람들의 사기가 충천했는데 돈을 댄 자기보고 그 일을 그만두게 하라니 제놈들 편에 서서 역적질을 하라는 수작이다. 사람이 산다면 백년을 살며 천만금을 가졌다고 두벌 목숨을 가진다더냐. 네놈들이 나를 무엇으로 알고 이따위 흥정을 하는거냐.

삼동의 대동강처럼 얼어붙었던 백선행의 가슴이 분노의 얼음장으로 깨여져나가며 마침내 노호한 강물처럼 파도를 일으켰다.

두손으로 무릎을 누르고 일어서며 백선행은 마음속으로 송월을 찾고나서 마주한 겐지가 아니라 벽에 걸린 일본《천황》의 초상을 노려보았다. 쩍하면 《<천황페하>의 적자인…》 하고 짐승무리같이 소리질러대는 세상에서 제일 못된 종자를 네놈이 퍼뜨렸느냐. 세상일은 두고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너희 쪽발이들이 임진년때보다 더 큰 눈물을 쏟으며 지은 죄로 망하게 될 날이 꼭 올게다. 배달민족은 죽이지 못한다! 죽지 않는다! …

겐지는 백선행의 대답을 기다리기에 지쳤다. 무지한 로친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백선행, 공회당건설을 중지하면 수만원을 절약하지 않는가. 근검절약으로 살았다는 늙은 당신에게 필요한건 돈이다. 결심하라. 후회없기를 바란다.》

겐지의 간사한 말이 초조하게 들리자 백선행은 손을 휙 내저었다.

《한사람을 살려내자고 만사람의 얼혼이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게 할수는 없다!》

백선행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겐지는 자기 방에 지진이 일지 않는가 하여 한손으로 책상을 움켜잡았다. 무지하다고 여겨온 늙은이말을 리해하기가 힘들어 이를 악물고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인가?》

《배달족의 넋을 불러일으키는 제단에 바치는 목숨이라면 아깝지 않게 죽을 이 나라의 녀인들이다. 내앞에서 그따위 흥정을 다시는 하지 말라.》

겐지는 자기를 철부지 다루듯 하는 백선행으로 하여 독이 뻗쳐 일본도를 뽑아들었다.

《칙쇼!》

칼든 망나니를 바라보는 백선행의 눈은 노기로 번쩍이였다.

《너를 사람이라고 낳은 애비에미가 늙은이앞에서도 그따위 상말질을 하라고 배워주더냐?! 이놈아, 네 눈에는 내가 촌로친네같이 보이느냐. 너희 상전들도 돈만 보면 아래도리 떨며 갑삭댄다. 버르장머리없는 수작질을 또 하면 네놈이 바지를 벗고 손에 쥔 칼도 바치게 만들테다!》

백선행은 천천히 돌아서서 겐지의 방에서 나갔다.

일본도를 비껴든 겐지는 석상처럼 굳어져 불맞은 짐승같이 눈알을 굴리다 《으악!》 하는 괴성을 지르며 책상모서리를 내리찍었다. 살기가 뻗쳤던 온몸이 소금뿌린 버섯모양으로 후줄근히 졸아들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무라이후예가 조선의 일개 늙은 장사군녀인앞에서 무사도의 칼을 꺾었으니 이보다 더 큰 수치가 어디에 있는가. 설사 그 수치는 감수한다치더라도 백선행이 치마바람을 일구면 자기 운명이 어데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구와 불안이 갈마들자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다.

상전들이라야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인간들이다. 묵돈을 처먹고 종로에 앉아있는 서장쯤은 어렵지 않게 퇴직시킬것이다. 그때 가서 저 일본도가 무슨 맥을 추겠는가. 고작해서 내 배를 내 손으로 가르는 쇠붙이나 될것이다. 조선사람들은 굴복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빼앗긴 나라를 찾을 때까지 우리 일본과 끝까지 맞설것이다. 내가 깨달은 이 리치를 《천황페하》가 어찌 알겠는가. …

겐지는 백선행으로 하여 쓰디쓴 고배를 삼키며 마침내는 패배자가 될 운명의 앞날을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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