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1

 

공회당건설은 평양사람들의 한결같은 관심속에 하루가 다르게 진척되고있었다.

《선행, 벽체를 벽돌로 쌓으면 돈을 훨씬 적게 들일수 있소.》

유양점이 머리에 토목수건을 쓰고 한손에는 곡괭이를 쥔채 백선행을 따라걸었다.

《내가 처음부터 돌집을 짓겠다구 하지 않았수.》

《벽돌로 쌓구 미장을 하면 돌집이나 같지 뭘 그러오.》

《아니요. 꼭 돌을 쌓아서 지어야 하우다.》

《하필이면 돈도 많이 드는 그대로 해야 될 까닭은 뭐요?》

《그래야 왜놈종자들이 억년 가도 이 집을 허물지 못할게 아니우. 그놈들이 벽돌로 지었으니 우린 돌로 짓자는거외다.》

《허허.》

결코 괴벽한 성미로만 밀어붙일수 없는 백선행의 결곡한 마음이였다. 얄미운 왜놈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으려는 그의 대바른 의지에 감심하며 유양점이 물었다.

《어델 가는 길이요?》

《그건 왜 물으시우?》

《낯색이 시퍼런게 보기만 해도 으쓸해나서 하는 말이요.》

자리에 멎어선 백선행이 유양점을 바라봤다.

《사람 잡아먹을 상통으로 보이게요?》

《하, 그렇게까지야 뭘…》

《서필이라는 놈이 왜놈들 회사에 돈을 밀어넣고 한몫 보려 한다는걸 알고있수?》

《글쎄, 제사공장엔가 주권을 가졌다는가 봅디다.》

《도적놈! 뻔뻔스러운 놈! 천하에 나쁜 놈 같으니…》

더 험한 욕을 퍼붓지 못해 씨근거리는 백선행을 보며 유양점은 싱긋이 웃었다.

《그놈 찾아가는 길이 아니우?》

《아닌게아니라 내 오늘 그놈에게 오금을 박자고 그러우다.》

《오금을 박다니? …》

《누가 죽구 누가 사는가 두구보라구 말이요.》

송월이로 해서 독이 뻗친 백선행의 기상에 유양점은 속이 선뜩해났다. 서필이로 말하면 죽어마땅한 놈이다. 그렇다고 송월이처럼 칼부림할수야 없지 않은가. 백선행이 이쯤 독한 마음을 먹었으면 무슨 생각이 있을텐데…

《그놈이 왜놈겨드랑이에 붙어놔서 쉽지는 않을게요.》

《흠, 붙겠으면 붙구… 내 낯을 익혔으니 왜놈검사라는 량반부터 만난 다음 그놈을 찾아가려고 하외다.》

장사물계에도 귀신같은 백선행이 제 할바를 모를리 없다. 검사를 찾아가겠다는건 송월의 진술을 가지고 기소내용을 뒤집겠다는 소리다. 배운게 없다지만 세상풍파가 백선행에게 인생살이를 다 가르쳐준것이다.

《선행, 오늘 갔다가 서두르지 말구 명학을 만나 의논하오.》

《저녁에 어른도 집에 오시라구요.》

이 말을 남긴 백선행은 제풀에 돌을 걷어차고나서 유양점을 흘겨보았다.

《허허, 돌에 걸리지 않게 걸으소.》

그 시각 서필은 서문리 일본려관방에 있었다. 상처도 다 낫고 건강이 회복되였으니 오늘은 주식회사를 찾아갈 생각이였다. 20만원 주권을 소유한 기업이다. 불미스러운 일이지만 료정사건은 일본검찰기관이 몇푼의 돈을 먹고 맡아나섰다. 배후에는 일본정계인물들이 있다. 재판은 피해자가 치료중이므로 결석상태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일진회》 회원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주겠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본사람들이다.

양복을 차려입고 거울앞에서 머리를 빗고있는데 문이 열리며 그의 등뒤에 찾지도 않은 녀자가 나타났다. 거울속을 통해 그는 백선행임을 확인하고 놀라움과 함께 불안을 지울수 없었다. 저 로친네가 나를 왜 찾아왔는가?

《그새 편안하셨수?》

인사하는 어조부터가 비틀린 소리다.

《이게 선행이 아니시오? 어떻게… 반갑소. 어서 여기와 앉으시오.》

서필은 아첨과 처세로 일관된 인생살이과정에 터득한 재간으로 철면피속에 선뜩해오는 심중을 재빨리 가무리며 백선행을 맞아들이고 사뭇 친절하게 자리를 권했다.

방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백선행이 서필이 권하는 팔걸이의자가 아니라 다다미바닥에 앉으며 물었다.

《어데서 칼부림을 당했다던데 용케도 건재해있소그려.》

이 늙다리년이 무슨 수작을 할 잡도린가. 귀신이나 한가지니 료정사건을 모를리는 없겠지만 꼭 싸움을 걸자고 온 꼴이 아닌가. 이년이 또 그 빚을 가지고 목조르기를 하자고 들테지. 돈 먹고 사는 불가사리라더니… 먼저 선수를 써야 한다. 서필은 백선행을 외면한채 말했다.

《빚쯤은 갚으면 될것이고 헌데 그 말투가 곱지 않소.》

《허허, 제 집 종 다루듯 하는구려. 빚쯤은 갚으면 된다? 일본사람들과 배가 맞아 벌이를 잘 한다더니만 그전보다 통이 커졌소그려.》

서필의 눈살이 꼿꼿해났다. 이 늙은 년의 주둥일 어떻게 틀어막아야 속이 편할지 모르겠다. 체면이 있으니 맞붙어 소리지를수도 없는노릇이다.

《그새 어떻게 지냈소? 한번 찾아가 인사를 한다는게 그만…》

《내 그 댁 인사까지 받구서야 맑디맑은 평양하늘을 어떻게 쳐다보며 살겠수.》

허리를 구부려댄다고 고운 말 할 백씨가 아니고보면 여기에 나타난것부터가 앙심을 품고 찾아든게 분명하다.

《내가 진 빚이 하도 묵은 빚이 돼서 나도 계산이 아리숭하오. 얼마인지 거기서 말해보오.》

백선행은 여전히 서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리숭하다니 말이 되오? 나한테 내놓을 돈이 10만원은 넘소.》

너무도 엄청난 액수에 서필은 두눈을 부릅떴다.

《그런 억지가 세상에 어데 있소?》

《달달이 5푼변이지요? 한해면 6천원이 아니우? 10년도 아닌 스무해를 넘겼으니 틀리우?》

서필의 손이 코수염을 비틀어댔다. 그 빚이 10여만원에 이를줄이야. 내가 그때 5푼변으로 했던가. 이 아귀같은 로친이 내 가죽을 벗기자고 드는구나.

《빚문서를 봐야겠소.》

《그야 이를데 있소. 받을 땐 빚문서에 함께 도장을 눌렀던 유양점어른까지 데리고올테니 걱정마오.》

《허-》

서필은 유양점의 이름까지 오르자 빠질 구멍이 없어 허둥거렸다.

《빚은 빚이구 내 한가지 물읍세다. 송월이가 누구요?》

빚덫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제일 두려운 함정의 문을 열어젖히는 백선행이다.

《그… 그건 왜 묻소?》

《누군가 말이외다.》

《료… 일본료정… 창… 창녀요.》

《입 가지고 다한 대답이겠소?!》

《이 로친이? … 빚을 갚으면 그만인데 당치않게 웬 따짐인가? …》

고개를 번쩍 쳐든 백선행의 두눈에서 분노의 불줄기가 내뻗치였다.

《알아야겠소! 무슨 까닭에 칼에 맞았는가 말이외다!》

《그년이… 밤중에 내 옷에서 돈을 훔치다 들키게 되니… 그런 짓을 했소. …》

한손으로 다다미바닥을 힘껏 내리친 백선행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송월이 어미를 첩으로 삼고 짓밟다못해 소경병신 만들어 대동강에 빠져죽게 만든게 누구요?! 지은 죄가 무섭지 않소? 송월이가 돈을 훔쳤다구? 죄는 지은데루 간다우다. 그러니 죽어야 할 사람이 대체 누구겠소?》

얼굴빛이 창백해진 서필은 사냥군에게 몰리워 다 죽게 된 짐승같이 악을 썼다.

《로친네! 돈에만 미친게 아니라 사람잡이에두 환장했소그려. 죄인을 두던하자고 찾아왔는가?! 칼자룬 일본사람들이 쥐였다! 지금은 일본세상이야. 그년은 일본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

이놈이야말로 살려둘수 없는 왜놈의 개다. 너를 길러준 주인놈의 손에서 죽게 해줄테다. 백선행은 불이 펄펄 이는 두눈으로 서필을 녹여없앨듯 쏘아보며 다가앉았다.

《네가 돈을 어떻게 모아들였느냐? 뭐, 왜놈세상이야?! 왜놈 사타구니에 들이박히면 그냥 목숨이 붙어있을줄 아느냐?! 어디 나하구 사생결단을 해보자. 네놈의 돈이 큰가, 내 돈이 더 큰가 네 눈으로 보게 해주마!》

백선행의 기상에 서필은 사지를 떨어댔다. 정치사기한의 가장 큰 약점은 비겁성이다. 그는 자기가 저지른 죄행이 있기에 백선행과 맞설수 없었다.

《선행… 너무 독을 쓰지 마오. 사람사는 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겠소. …》

자리를 차고 일어난 백선행은 손가락으로 서필을 찌르며 말했다.

《내 별로 좋은 일 한것 없이 선행이라는 이름을 지녔다만 후날 악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만은 기어코 돈으로 죽여버리고야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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