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5

 

서필을 통해 백씨의 립장을 듣고난 세이찌로는 사무라이본색을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이건 일본제국에 대한 반항이나 같소. 우리는 조선백성들이 허리를 펴고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짓밟아야 하오. 내 그 과부년의 뼈다귀를 분질러놓겠소.》

그는 자기앞에 앉은 서필이 조선사람이라는것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면전에서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서필이로서는 백씨가 원쑤같았다. 돈푼이나 가졌다고 교만방자하게 노는 과부로친의 기를 꺾어놓을수만 있다면 일본상전이 시키는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을 마음까지 먹고있었다.

《세이찌로상, 무슨 방도가 있소?》

세이찌로는 어두워가는 창밖을 노려보고있었다.

흥정이나 하자고 해서는 안된다. 협박과 공갈, 위협적인 흥정, 그 뒤를 따르는 칼부림… 우리가 요구하는 흥정에 응하겠는가, 아니면 죽겠는가. …

살기띤 세이찌로의 눈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거렸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잔인한 음모의 독초가 아지치고있었다.

《서상, 인편으로 전하시오. 래일 저녁 내가 만나자고 한다는걸… 기가 죽어서 나타나게 될거요. 앙탈을 부리면 잠자리에 들기전에… 흠- 흠.》

그 이튿날 어떤 사나이가 도매점에 나타나 백씨에게 전하라며 나리한테 편지 한통을 주고 갔다.

마침 도매점에 백선행이 있었다.

《어머니, 누가 이런걸 전하라고 했어요.》

《그게 뭔데?》

《편지 같아요.》

《뜯어보렴. 나야 글자나 바로 보니.》

봉투를 뜯어 종이장을 펼치던 나리가 《에그머니!》 하고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냐?》

나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손에 쥔 종이장이 마구 떨린다.

《무서워… 세상에 이런…》

백선행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어 편지를 쥐여당겼다.

나무기둥에 목이 매달려 죽은 녀자를 그린 그림이 큼직하니 자리잡고있었다.

《백과부년아, 이렇게 죽지 않겠거들랑 고분고분하는게 좋다!》

한켠에 찌글찌글 내려쓴 조선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백선행에게도 대뜸 가늠이 되였다.

《허허, 미친놈들이 못하는짓 없구나.》

백선행은 종이장을 와락 움켜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모자를 푹 내리쓴데다 안경까지 껴서… 얼굴도 제대로…》

《그깐놈 상통은 알아서 뭘하겠니.》

그들이 협박편지를 받고 이런 말을 나누고있을 때 경림이가 들어왔다.

《어머니, 만달산땅을 사겠다는 일본사람이 오늘 저녁 취향루에서 만나자고 전해왔습니다.》

경림의 그 말에 나리가 두팔을 벌리며 사색이 되여 말했다.

《안돼요! … 어머닌 가시면 안돼요! …》

《무슨 일이 있었니?》

경림이가 물었지만 나리는 여전히 온몸을 떨기만 했다.

《취향루에서? 허- 좋은 자리 마련해놓구 청하는데 가야지.》

눈에 불을 담은 백선행이 절반 웃고 절반은 이를 갈며 응해나서자 나리가 한사코 매여달렸다.

《어머니, 절대로 안됩니다. … 가시면… 무슨 변괴가…》

경림이가 백선행이 내던진 종이장이 의심스러워 펴들었다.

《엉?! …》

《오라버니, 어머니를 가시게 하면 안돼요.》

그제야 나리가 왜 기겁해하는지를 알게 된 경림이도 백선행을 막아나섰다.

《간특한 왜놈들이 무슨짓을 할지 모르니 오늘 걸음은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아니다!》

처음에는 속이 철렁했지만 차츰 마음을 진정시킨 백선행이 완고한 성미를 드러냈다.

《어머니! …》

《안 간다고 그놈들이 가만 있을상싶으냐?! 나라는 빼앗겼어도 내 땅만은 왜놈종자들에게 순순히 내줄수 없다!》

백선행의 단호한 태도에 경림이와 나리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어머니, 그럼 제가 같이 가렵니다.》

《저도 가겠어요.》

경림이와 나리가 서로 나서는것을 백선행은 기특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리는 있거라. 경림인 밤길을 동무삼아 갔다오자꾸나.》

날이 어두워지자 백선행은 경림과 함께 취향루로 향했다. 그믐이 가까와오지만 길가에 드문드문 집집의 초롱들이 걸려있어 걷기에는 크게 불편이 없었다.

식당앞에서 서필이 기다리고있었다.

《점잖은 어른이 왜 나와계시우?》

《흥정이 잘되길 바래서지요.》

《속에 칼품고 하는 흥정을 어디 해봅시다.》

에둘러댈줄 모르는 백선행의 서슬찬 대꾸에 서필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가까스로 말했다.

《2층으로…》

취향루도 그새 왜풍에 푹 젖었다. 다다미방에 병풍조차 왜놈들의것을 가져다 세웠다. 벗꽃이 마구 휘날리는게 피방울이 튄 듯 하다.

양복차림의 세이찌로가 팔걸이의자에서 일어섰다.

《반갑소. 어서 오시오. 이름이 뭐라는가? 아, 백… 빠이…》

세이찌로는 조선말을 잘하면서도 일부러 백선행을 야료했다.

《이름은 없구… 그저 백씨라고 부르면…》

서필이 곁에서 지벌거리자 백선행은 권하지도 않은 자리에 제 먼저 앉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내게두 이름이 있소. 백선행이요! 녀자라구 얕잡지 말구 례절을 차리는게 좋겠수다.》

세이찌로의 사나운 눈길이 서필을 찔렀다.

서필이로서도 백선행이라는 이름은 듣느니 처음이였다.

《천한 년이 이름을 가진게 놀랍수? 허허. 평양사람들이 얼마전에 나한테 준 이름이외다.》

고압적이였던 세이찌로의 자세가 일순 풀리였다. 백선행의 당당한 태도에 그는 전술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너무 날을 세워 일을 망칠수는 없었다.

《성씨는 익히 들었는데 이름은 미처… 그만 실례했습니다.》

세이찌로와 서필이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당을 한 두마리의 개가 먹이감을 앞에 놓고 그 멱살을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고있는셈이다.

세이찌로는 묵묵히 마주앉아있는 백선행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생김새로 봐서는 젊었을 때에조차 별로 사내들 눈에 차지 않았을 수수한 녀자다. 표정없는 얼굴, 감정이 전혀 포착되지 않는 눈동자, 이마에 가로지른 깊은 주름살 두개만이 유표하다. 차림새를 보면 갑부는 고사하고 평양바닥의 평민과 다름없다. 이런 상대와 거대한 오노다기업을 대표하여 무슨 흥정을 한다는 자체가 모욕이 아닌가.

세이찌로의 심리가 이렇게 흐를 때 항시 남의 말을 먼저 듣고서야 의사표명을 하던 백선행이 오늘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다 산 늙은 몸이우다. 날 때부터 팔자가 기구해 이날까지 수십번 죽다 살아났수다. 그런즉 무서운게 하나도 없으니 어서 말을 떼라구요.》

위협적인 흥정을 시작하려던 세이찌로는 반대로 위협을 당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얕잡아보고 눌러대는 식으로 흥정하려들면 죽기내기로 해볼판이라고 독을 쓰며 앉아있는 백선행앞에서 세이찌로는 아연해졌다.

세이찌로는 상대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는것으로 하여 왕년의 외교관시절로 돌아가 례절차린 압박을 가했다.

《서상을 통해 만달산과 승호지역에 대한 우리의 의사는 전달했습니다. 산업진흥을 위한 문제이니만큼 우린 조선정부와 교섭하여 해결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씨… 선행의 갑부로서의 인격을 존중하여 당신과 직접 후한 흥정을 하려고 합니다. 만달산토지를 평당 30전으로 락착지을데 대한 회사측의 립장을 통고합니다.》

압력과 회유가 잘 반죽된 말이였다.

백선행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세이찌로의 견해표명이 있은지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백선행은 억양없는 물음을 던지였다.

《장사에도 법도가 있다는걸 아시우?》

《아주 훌륭한 말입니다.》

공감하는척 하는 세이찌로의 표정에는 살기가 감추어져있었다.

《만달산토지는 이미전에 내가 학교후원에 바친 땅이요. 혼자 사는 녀자의 허줄한 자선이여서 공문은 필요없어 유지들과만 약조했지요. 내가 만달산을 내놓으면 그만한 크기의 옥토로 학교들에 후원해야 하우다. 그 손해가 얼마나 크겠는지야 짐작하고도 남겠지요?》

칼날같은 세이찌로의 시선이 서필에게로 날아갔다.

《서상? …》

놀란것은 서필이다. 선산으로 쓰겠다고 하고서는 자선사업으로 뒤집기를 해치우는 백선행의 수놀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이라면 손해액이 문제인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물의가 일어날수 있었던것이다.

《며칠전에 나한텐 선산으로 쓰려고 남겨둔 땅이라고 하질 않았소?》

《선산이래야 만달산 내 땅에서 손바닥만큼 내놓으면 그만 아니요.》

서필과 세이찌로는 분이 치밀었지만 별수 없었다.

《백…선행, 본가격의 10배를 담보합니다. 10배, 이것도 작습니까?》

성급하게 가격흥정을 시도하는 세이찌로를 서필은 못마땅하여 넘겨다보았다.

《큰 장사를 한다면서 어떻게 계산에 그리두 어두울수 있소?! 땅은 한해나 털어먹고마는 재산이 아니우다. 10년후면 내가 얼마나 밑지게 되우?!》

《세상에 그런 흥정도 있는가?》

《난 10년, 20년을 내다보지 않고서는 장사도 흥정도 안하우다.》

말문이 막힌 세이찌로는 벌떡 일어나 우리안에 갇힌 승냥이처럼 오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늙다리의 속심을 알수 없다. 불모지나 같은 땅덩이를 놓고 언제까지 흥정할셈인가. 목을 조이는 오노다의 독촉전보가 어제 또 왔다. 그는 울기를 가까스로 눅잦히며 물었다.

《그럼 얼마로 흥정하면 되겠소?》

《…》

백선행은 무슨 생각인가에 옴해있느라 이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필은 세이찌로가 매우 초조해났다는것을 느끼며 백선행을 흘겨보았다. 그는 어서 주둥이를 열라고 금시 고함이라도 지르고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얼마면 되겠는가 말이요?》

세이찌로의 독촉에 백선행의 왕청같은 물음이 뒤따랐다.

《내 한가지 물읍시다. 저자거리에서 파는 닭알이 껍질값인가요, 속에 있는 노란자위의 값인가요?》

너무도 상상밖의 질문이라 속에 불이 당긴 세이찌로는 거친 숨을 내뿜었다. 서필이도 묻는 말의 뜻이 리해되지 않아 고개만 흔들어댔다.

《그건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이요?》

세이찌로가 되물었다.

《거기서는 내 땅의 껍질만 사시려우, 땅속까지 사실 작정이요?》

이거야말로 기가 막힌 소리가 아닌가. 토지란 면적으로 계산하지 립방체로 팔고사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세이찌로는 백선행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서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말인지…》

백선행은 시종 눈길을 쳐들고있었지만 세이찌로와 서필이쪽을 여겨보지조차 않았다.

《내 귀에 제일 거슬리는건 만달산을 두고 황무지요, 돌산이요 하는거우다. 거기서 탐내는건 땅껍질이 아니라 땅속이지요? 실은 그 땅속에 돌이 꽉 들어찼수다. 돌이란게 보통돌이요? 그 돌을 가루로 만들어서 양회를 굽자는거겠지요. 허니까 돌인즉 보물돌이지요. 내 그래서 닭알을 살 때 껍질값만 무는가, 노란자위값도 치르는가 물은거우다.

세상에 껍질값만 받고 노란자위를 거저 줄 바보가 어디 있겠소? 터놓고 말해서 만달산땅이야 거기서들 욕심내는 알짜 노란자위판이 아니요?! 양회공장을 세우면 10년을 캐먹는대두 겨우 한 귀퉁이나 파낼거우다. 그러면 얼마나 큰 리가 생기는가는 셈을 안하구두 알거우다. 내 말이 그른가요?》

백선행의 말에 세이찌로는 이마를 치며 이를 갈았다. 무지몽매한 장사군녀자의 입에서 이런 론거가 흘러나온것부터가 놀라운데다 자기가 높이 부르느라고 한 본전의 10배값마저 더이상 흥정할수 없게 된것에 억이 막혔다.

식민지나라의 자원은 종주국의것이다. 우리 일본이 그것을 바라지 않고서야 무엇때문에 청, 로와 피흘려 싸웠겠는가. 그런데 하찮은 평양의 장사군녀인따위한테 몰려 쩔쩔매며 자원의 가치따짐이나 당하고있으니 대체 내 꼴이 이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분통을 터쳐놓을수 없는 세이찌로였다. 장사흥정이 정치적문제로 번지는것을 바라지 않는 오노다인줄 알고도 남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의 흥정이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세이찌로다.

백선행은 여전히 한모양으로 앉아있었다. 자기의 주장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기상이다.

《옳은 흥정이라면 난 반대할 생각은 없수다.》

팽팽히 켕겨졌던 줄을 백선행이 조금 늦추어주자 세이찌로는 미끼본 맹어처럼 제꺽 말꼬리를 물어챘다.

《좋소! 선행이 정하시오.》

백선행의 얼굴에 그제야 느슨한 웃음이 떠올랐다.

《눅게 잡아 평당 3원, 그아래로는 안되겠수다.》

나직하나 마디마디 꾹꾹 찍어 최종가격을 알리는 백선행의 말에 두 사나이는 금시 돌부처같이 되였다. 서필은 반쯤 얼이 나가 입을 하 벌린채 있었고 세이찌로는 목조임이나 당한듯 숨이 차 헐떡거렸다.

마침내 세이찌로는 자제력을 잃고말았다.

《이건 흥정이 아니라 강요란 말이요!》

백선행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좋을대로 하시라구요. 나를 다시는 찾지도 말며 다른 흥정할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백선행은 나가버렸다.

세이찌로의 두눈이 광기를 띠고 번뜩이였다.

《좋다! 네년을 죽여치우고말테다!》

문앞에서 기다리고있던 나리가 백선행이 나오자 《어머니!》 하고 찾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너 왜 여길 왔냐? 네 오라빈?》

나리는 백선행의 팔을 끼고 걸으면서도 줄곧 여기저기를 살폈다.

《오라버니와 그 사람은 이상한 젊은 남자들이 취향루앞에서 어슬렁대기에 뒤쫓아갔어요.》

《우린 먼저 가자꾸나. 오겠지.》

《조심히 걸으세요. 어두워나서…》

종로를 벗어나 집이 있는 골목길에 들어서던 두 녀자의 주위에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앗!… 어머니!…》

《이게 무슨 일이냐?! … 나리야!》

악마의 손이 백선행에게서 나리를 순식간에 빼앗아냈다.

《소리지르지 말아! 늙다리과부년아, 공손히 굴지 않으면 이년을 죽여치울테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앞에서 백선행은 정신이 아뜩해났다. 복면한 괴한이 시퍼런 칼을 나리의 목에 가져다댄채 으르렁거린다. 이게 무슨 변인가. 백선행이 무작정 나리를 향해가려는데 휘익-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꼭같은 차림의 다섯놈이 그의 앞에 날아내리며 길을 막았다.

《왜들 이러오?… 죄없는 사람에게 칼부림하려들다니…》

괴한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백선행의 가슴에 칼을 내밀었다.

《네년이 백과분가?》

《?》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는가?》

《난 죽을 일을 한게 없소. …》

백선행은 순간 세이찌로라는 왜놈과 서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달산토지흥정이 뜻대로 안되니 이런짓을 벌려놓은게 분명하다. 죽을 길을 피할수 없게 되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는 당황했던 심리로부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돈을 내놓으라면 돈을 내놓고 정 내 죽음이 원이거든 맘대루들 하오만 그앤 놔주우다. 그래 무엇때문에 그러오?》

나리의 입을 틀어막고 목에 칼을 댄 괴한의 곁에도 여러놈이 서있다.

《만달산을 내놓겠는가?》

백선행은 왜놈의 요구에 순응하든가 괴한의 무리한테 죽든가 두 길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날 죽인대두 만달산이 너희들 손에 쉽게 들어가지는 않을게다!》

백선행의 단호한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머리우에서 휙-휙-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차고 치고 꺾어대는 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백선행의 앞에서 살기를 띠고 번뜩이던 칼날이 홀연 사라지고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올랐다.

《두칠이, 만호! 어머니를 지키라!》

《알겠소!》

무시무시한 싸움이 계속되였다. 지붕우에서 날아내리고 날아오르는가 하면 키높은 담장을 넘어 뛰여나오며 발로 차고 둘러메치고 밟아댈 때마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연방 울렸다.

《이 쪽발이놈들아, 여기가 어덴줄 알구 덤벼드느냐? 몽땅 죽여버릴테다!》

백선행에게 달려들었던 괴한들은 팔다리가 꺾이우고 급소를 맞아 너부러진 동료들을 내버린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두칠이, 선행어머님이 무사한가?》

《좀 놀랐겠지만 별일없소.》

정신을 가다듬느라 무진 애를 썼건만 백선행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며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도무지 진정할수가 없었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사람이 백선행의 앞으로 다가와 한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머님, 다친데는 없습니까?》

《거긴 뉘들이요? 어디서 온 귀인들이시우?》

《저희들은 두령님의 령을 받들었을뿐입니다.》

《두… 두령님이 뉘시게요?》

《우린 평양택견들인데 우리 두령님이 어머님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나를? … 나야 장사군인데 택견들이 어떻게…》

《두령님은 오래전에 순천 가는 길 오산골짜기에서 어머님과 낯을 익혔다고 했습니다.》

《아!-》

백선행은 뇌리를 치는 생각에 감동을 터뜨렸다.

수십년전 오산골짜기에서 만났던 그 젊은이, 박천 원형방을 죽여없애여 세상을 깜짝 놀래운 평양택견… 그때도 내 목숨을 건져주었다. 귀인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소행조차 감감 잊은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임자네들의 그… 두령을 만나게 해줄수는 없겠소?》

《우리 두령님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분입니다.》

《그럼 성함만이라도…》

《곽순이라고 합니다.》

《곽순… 내 오산에서의 그 은공두 미처 갚지 못했는데 어쩌면 좋수!…》

《두령님이 어머님에게 전하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평양 백선행답게 왜놈들앞에 절대 굽어들지 말라고…》

《고맙네!》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어머님곁에 언제나 우리가 있다는걸 잊지 마십시오.》

백선행을 구원해준 평양택견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백선행은 나리가 생각나 황황히 찾았다.

《나리야!》

《어머니!》

《어이구, 무사했구나.》

백선행은 허둥지둥 달려가 나리를 부둥켜안았다.

이튿날 평양바닥에 날개돋친 소문이 파다하게 돌아갔다. 왜놈들이 백씨의 만달산을 빼앗자고 야꾸자들까지 끌어들여 해치려 하다가 평양택견들한테 혼쌀이 났다는 통쾌한 이야기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