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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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서나 백씨는 만달산토지때문에 마음이 편안치 않았다. 지금까지 땅을 팔고사면서 곱으로 값을 떨궈먹으면 아주 리를 본 장사로 여겼다. 본전의 세곱이면 굉장한 폭리이지만 일본놈에게 판다고 생각하니 지금껏 해온 장사로만 대하게 되지 않았다. 생각다못해 그는 장명학을 찾아갔다.

순국한 장규현의 백날제를 지낸 날 로부인도 세상을 하직하였다. 평생 빈말하는 법을 모르고 동거동락하던 두사람이였기에 저승에 먼저 간이가 외로울세라 서둘러 따라간듯싶었다.

부친과 모친을 다 잃은 장명학은 백씨보다 나이가 아래였지만 머리가 반나마 희여버렸다.

장명학과 마주앉은 백씨는 유양점을 통해서 알게 된 만달산토지문제를 자초지종 이야기하며 자기의 생각까지 곁붙이였다.

성미가 침착한 장명학은 마지막까지 새겨듣고나서 물었다.

《양점형은 그후에 오지 않았소?》

《그 어른 걸음이라는게 어디 짐작할수 있는 걸음이나요?》

두사람 이야기가 여기에 미쳤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유양점이 불쑥 들어섰다.

《내 걸음이야 기생방 문턱 닳게밖에 더하겠소.》

《에구머니!》

백씨는 너무 놀라 뒤로 물러앉았다.

사내의 뒤소리를 한것으로 되였은즉 얼마나 노여울텐가. 평생 남을 흉질한적 없던 내가 오늘은 어찌하여 함부로 입방아를 찧었던가.

《양점형, 어서 앉소.》

유양점은 망건을 벗어놓고 자리를 잡았다.

《내뒤를 밟은건 아니시우? 흉보자고 한 말은 아니였수다. … 별스레 바싹 따라 나타나니…》

백씨는 먼저 변명하는수밖에 없었다.

《알게 뭐요. 누이, 동생 하는 사이니 나같은거 말밥에 올리기야 여반장이지요.》

《허, 양점형의 노염도 여간 아니구려.》

장명학이 웃음절반으로 말하는데 백씨가 툭한 제 성미대로 내쏘았다.

《옹근 사흘을 기다렸수다. 그래 화가 난김에 한마디 한건데 무슨 크게 못할 소리라구 그리두 삐뚤렁거리시우. 사내들 질투가 더 무섭다더니…》

구렁이같이 틀고앉아 시치미를 뚝 떼고있던 유양점이 그제야 턱을 쳐들고 껄껄거렸다.

《이보우 백씨, 내 이 나이 먹두룩 채찍같은 그대 말에 쫓기우며 기생방앞에서 돌아선 놈인데 무슨 노여움이란 말이요, 하하하.》

《양점형은 역시 호방한 사내라니까.》

《장형, 너무 춰주지 마오. 백씨가 진짜 시샘하겠소.》

《하긴 심술이 생깁니다. 그 성미에 숱한 계집이 녹았겠으니…》

거침없이 응수하는 백씨를 보며 두 사나이는 속이 후련하게 웃었다.

《양점형, 내 누님한테서 이야기를 다 들어 알고있으니 어서 말하오.》

유양점은 기름기가 빠지기 시작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뜨적뜨적 말머리를 뗐다.

《오랑캐무리 악착하고 간교하기란 더 이를데 있겠소. 그것들이 만달산토지문서를 감영에까지 가서 다 확인해봤다오. 그래 백씨의 소유가 옳으니 흥정을 하려든거요.》

《첫째는 본전이고 그 다음은 두세곱 더 올려 낚아내자는거겠소?!》

《아마 그렇게 흥정하려들거요.》

《양점형 생각은 어떠하오?》

《내 말이야 백씨하구 통하오? 장형이 대세에 비춰 잘 이야기해주소그려.》

잠자코 듣고있던 백씨가 유양점을 흘겨본다. 흉물같이 틀고앉아서 실지 해야 할 말은 꺼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르신네 말을 내가 안 들은게 뭐나요? 수염을 뻑 씻구 앉아서 한소리만 둘러치니 곱지 않수다.》

《하하하.》

유양점은 제 흥에 떠서 너털대고나서 《땅은 내놓아야 할거외다.》 하고 말했다.

《안돼요.》

백씨는 대바람에 화를 내며 돌아앉아버렸다.

《그 까닭이 뭐요?》

장명학이 대신 물었다.

《왜놈들이 승호지구에 세멘트공장을 세우려고 하오. 오노다라는 큰 놈이 일본에 엎드려 여기만 넘겨다보며 독촉이 불같다오. 오노다기업의 앞잡이로 나타난게 세이찌로라는 놈이고 그놈의 가랭이에 묻어돌아가는게 서필이요. 만달산지구의 석회석이 있어야 세멘트를 구워낼수 있으니 본전에 흥정이 안되면 두세곱 더 올려서라도 사들이자는게 그것들의 속심이요.》

유양점의 말에 백씨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쓸모없다고 밀어둔 만달산땅이 석회석이라는 보물돌천지라 그것을 캐내여 양회를 만든다는 소리다. 일본의 큰 기업이라니 《총독부》를 등에 업고 나같은거쯤은 허깨비만큼도 여기지 않을게 아닌가.

유양점의 말을 다 들은 장명학이 생각을 깊이 하고나서 말했다.

《식민지로 전락된 나라의 형세는 일본놈들의 무단통치속에서 무지한 략탈을 당해야 할 기로에 놓였소. 오랑캐들은 땅부터 빼앗기 시작했소. <동양척식회사>라는게 바로 그놈들이 조작해낸 략탈도구요. 땅을 빼앗고 자원을 가로타고앉은 다음 우리 백성들의 등가죽을 벗기는 노예로동을 강요할거요. 일본정부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정책이 수립된 이상 그 집행을 막을 힘이 지금 우리에겐 없소. 이것이 망국민이 당해야 하는 굴욕이요.》

백씨는 장명학의 대세분석을 다는 알아들을수 없지만 앞으로는 왜놈들 등쌀에 장사도 바로해먹지 못하리라는것은 이미 짐작하고있었다. 이들이 하는 말인즉 만달산땅을 공손히 내놓는수밖에 없다는것이다.

《그러니 내 땅을 갸들이 하자는대로 처분해야 한다는 소리지요?》

장명학은 백씨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이고 유양점은 제 생각을 다시 덧붙였다.

《어차피 내놓을건데 흥정이 맞을 때 팔아치우면 손해가 없지 않겠소.》

눈을 감고 앉은 백씨는 식자가 있는 두사람의 말을 놓고 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본전의 세곱을 떨궈먹으면 나야 손해보는게 없겠지만 오랑캐놈들에게 너무 호락호락 내주는게 속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다.

이 나라를 타고앉았으니 과부가 소유한 땅쯤은 떡주무르듯 하겠다니 강도같은 족속들이 하자는대로 하는게 과연 뼈대있는짓이란 말인가. 양횐지 세멘트인지 한걸 한시바삐 구워내야 할테니 바쁜건 제놈들이다. 나야 지금껏 묵여둔 땅인즉 급할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놈들! 이 땅이 어떤 땅인지 아느냐? 단군성왕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도읍을 정한 곳이고 고구려강국으로 이름높았던 신령스런 땅이 바로 평양이다. 여기서 네놈들이 감히 제 생각대로 무슨짓이든 다할수 있다고 여겼느냐?! 안된다! 나중엔 내가 땅을 내놓게 될지라도 네놈들의 분통이 터지게 하고야말테다. 무서운게 없는 나다. 어디 늙은 과부라구 업수이보구 함부로 덤벼봐라.

백씨는 지금까지 장사를 해오면서 리윤을 추구해온것과는 전혀 다른 강심을 먹고 독을 써댔다.

《누님 생각은 어떠시오?》

장명학이 조용히 물었다.

《흥정은 하겠어요.》

백씨가 드디여 자기 말을 받아들인것으로 안 유양점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잘 생각했소. 그놈들한테 세곱이나 앗아내는 장사를 하지 않소. 허허…》

《내가 하자는 흥정은 그런 눅거리가 아니우다!》

유양점의 말허리를 잘라버린 백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그 돌산값을 더 올리려오?》

《아무렴, 그 알량한 세곱이나 받자구 내가 보기두 싫은 왜놈종자와 마주서겠수?!》

《그럼, 얼마나 부르시려우?》

장멱학은 백씨의 기상이 하도 사나워 맥없이 물었다.

《왜놈종자들에겐 금덩이나 같을 산인데 내가 왜 막눅거리로 판단 말이요? 내 평생 못해본 큰 흥정판을 벌리겠수다. 세월없이 늘어붙어서 누가 이기나 두구볼판이지요.》

백씨의 배짱있는 용단에 두 사내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를 예측할수 없어 착잡한 심중에 휩싸였다.

《양점어른이 좀 나서주시우.》

《그야 뭐…》

《그럼 난 이만 가겠시다.》 하며 백씨가 서둘렀다.

장명학은 그제야 생각난듯 말했다.

《누님, 다리공사가 오늘래일로 끝나니 날을 잡아 락성식을 합시다. 평양유지들이 다 모이는데 누님이 나와주어야 되겠소.》

기쁜 소식에 접한 백씨는 수고한 유양점을 바라보았다.

《그간 수고많은 양점어른께 내 크게 한턱 내지요. 그리구 고작해서 돈 몇잎 기부했을따름인데 나같은 녀자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나선다구 그러시우? 두 어른이 끝까지 좀 맡아주우다.》

이 말을 남긴 백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명학의 집을 나섰다.

서필은 창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놈의 날씨가 그리 사나운지 오늘도 시커먼 구름장을 걷어안고 내려다보는품이 어느때든 소나기를 퍼붓고 벼락을 칠 기상이다. 급작스레 들이치는 이 고장의 비바람에 어지간히 혼쭐이 난 그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루 운수를 점쳐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만달산토지소유권을 놓고 어제 밤 세이찌로와 장시간 모의하였다. 시간이 촉박한 그는 타협안까지 내놓았다.

《서상, 백씬지 뭔지 한 계집년한테 당신이 진 빚의 절반은 먼저 갚고 나머지는 세멘트공장이 선 다음 세멘트로 줍시다. 그년이 싫다고는 안할거요. 그밖에 은행의 대부도 알선하며 오노다기업이 특혜로 융자도 해주겠다는것을 담보하면 될거요.》

서필은 세이찌로의 말이 말쑥한 거짓임을 알지만 그것도 묘안이라고 생각했다. 행상이나 해먹었다는 백씨가 대부니 융자니 하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겠는가. 그럴듯하게 말재간을 부리면서 압력을 가하여 받아물게 하는수밖에 딴 도리는 없다.

《좋습니다. 래일 내가 백씨를 만나지요. 첫 흥정에서 실패하면 세이찌로상도 자리를 같이합시다.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상 만달산땅은 백씨에게 있어서 옥토가 아니지요.》

세이찌로와의 모의는 이렇게 일단락을 지었지만 이제 만나야 할 백씨가 문제다. 서필로서는 이것이 제일 불안했다. 일개 행상으로 40년동안 돈을 벌어 갑부가 된 녀자다. 거기다 평생 수절한 과부라니 그 드살이 어느 정도겠는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60살이 넘은 과부인 갑부… 기묘한 인연으로 이 평양땅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희귀한 인물이다.

《서형, 이 양점이 그리 야박한 놈은 아니요. 정 이번 흥정에 나서달라면 마다하지 않겠소. 그러나… 서로 속을 감추고서는 손발을 맞추지 못하오.》

유양점이 도와나서겠다고 하기에 오노다기업이 만달산토지를 노리는 목적을 알려주었다.

서필은 방수천으로 지은 외국산 코트와 중절모로 점잖게 차림새를 갖추고 유양점과 만나자고 한 곳으로 향했다.

《서형, 밤새 편안하셨소?》

유양점의 달라진 인사말을 서필은 자기 지체에 대한 존경으로 받아들이며 외국신사나 된듯 중절모채양을 들었다놓았다.

《양점형, 기다리게 해서 안됐소.》

백씨의 집을 찾아 나란히 걷는 두사람의 심중은 서로 달랐다. 한사람은 여전히 백씨를 만나 마주하기가 낯뜨거운데다 흥정이 이루어질가 하는 걱정을 했다면 다른 사람은 (이보게 서필이, 자네 오늘 길을 잘못 들었네. 백씨한테 혼쌀나고 쫓겨나더라도 나를 나무람말게. ) 하는 태평무사한 심사였다.

유양점을 따라 백씨집 대문을 넘어선 서필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평양갑부의 집이 이다지 초라할수 있는가. 기와집의 마당은 넓은편이였는데 그나마 정원이 아니라 남새밭이다. 배추, 무우, 파, 마늘, 가지, 오이, 호박 같은 가지각색 남새가 구색을 맞추어 싱싱히 자라고있다. 울타리를 따라 심은 당콩이 보라색꽃을 매단채 나무기둥에 기여오르고있다. 남새밭에 그늘이 지지 않게 듬성듬성 자리잡은 사과, 살구, 대추나무 몇그루가 보일뿐이다.

사람이 욕심스럽게 돈을 버는것은 향락을 바래서고 그 향락이란 멋진 집과 맛좋은 음식에 고운 계집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갑부도 있는가. 수십만원 돈더미우에 앉아서 제 손으로 남새를 심어먹는다니 고금에 있어본 일 없는 미개인의 몰취미가 분명하다. 하긴 늙어빠진 과부가 아닌가. 돈이 곧 향락이라는것을 알지 못하고 버는 재미에만 살았으니 우매한 야만인에게 황금이 차례진 격이다.

이같은 계집과 마주앉아 흥정을 한다는게 무지와 맞서는 괜한 놀음이 아니겠는가. 서필은 제나름으로 백씨라는 녀자를 인간이하로 평가하면서도 은근히 겁이 났다.

《왜 다 와가지구 망두석이요?》

유양점이 비꼬는 소리에 서필은 정신을 차리며 피씩하니 웃었다.

《어서 안내하게.》

수건을 쓴 백씨가 손님을 맞자고 마루에 나오다 서필을 찬찬히 여겨보며 말했다.

《어서들 오시우.》

《무고하셨소?》

유양점이 백씨에게 눈을 끔쩍해보이며 인사말을 하고나서 서필을 소개했다.

《서로 면식이 있으니 인사를 나누시오. 서필형이외다.》

서필을 바라보는 백씨의 얼굴은 랭담도고했다. 상례로 주인이 반겨야 하고 녀자켠에서 먼저 인사해야겠지만 그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마주보기만 했다.

《오랜 리별이 뜻있는 상봉을 안아온다는 말이 있지요.》

숱한 말을 고르던 끝에 서필은 점잖게 유식한 인사치레를 했다. 자기가 한 말이 경우에 맞는지 가려볼 경황도 없었다. 백씨의 눈길이 너무도 찔러댔기때문이다.

《내 량반들의 신식인사법은 듣구두 모르니 그만하구 어서 들어들 오시우.》

백씨는 인사를 차려 두사람에게는 비단보료를 내놓고 자기는 초물을 깐 맨 자리에 앉았다.

방안공기는 구름낀 하늘만큼이나 무거웠다.

유양점은 서필의 안색을 슬쩍 곁눈질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일전에도 비쳤소만 서필형은 만달산토지매매흥정을 하러 왔소.》

성사가 되건말건 리해관계가 없는 유양점은 서필에 대한 백씨의 태도만을 호기심 가지고 지켜보았다. 장명학의 집에서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무표정한 백씨의 얼굴은 어떤 대답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할 말이 있으면 다해보라는 무언의 자세다.

서필은 이왕지사 맞다든 일이니 제편에서 입을 열지 않을수 없었다.

《만달산은 쓸모없는 돌산인데 후한 값을 받고 일본사람들에게 넘겨주는게 어떻소?》

백씨는 초물바닥을 내려다보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기색으로 말했다.

《내가 눈뜬 소경이겠소?! 거기서 감영에까지 가서 문서확인을 했다는걸 다 들었수다.》

서필로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백씨가 감영과 줄을 가지고있을건 뻔하다.

《내가 진 빚은 이번에 여러 형태로 다 갚겠소. 만달산흥정만 제대로 된다면…》

서필은 세이찌로와의 모의가 있은지라 자신있게 말했지만 이로하여 자기 속심이 여지없이 드러나는줄은 알리 없었다. 백씨의 계산은 서필이따위의 얕은 생각과는 대비도 안되였다.

《20년이 넘는 빚이요. 달마다 5푼변 리자가 붙은 돈이라는걸 잊지 말고 한푼도 곯지 않게 내놔야지요. 그 빚과 만달산땅값흥정은 다른것이니 섞어놓지 마시라구요.》

첫마디부터 코를 떼우는 서필의 몰골을 곁눈질하며 유양점은 《허-어.》 하고 무릎을 치는데 흥정을 바로하라는 암시 같지만 내심은 좋아라 낸 소리였다.

마당에서 생각한것처럼 무지한 백씨가 아닌것으로 하여 서필은 자기가 곤경에 빠질것이라는것을 의식했다. 이제는 피할 길도, 물러설 길도 없다.

《내 빚소리는 뒤에 밀어놓읍시다. 백씨는 대세를 잘 가려보며 처신하길 바라오. 일본사람들은 만달산은 물론 승호지구를 기어코 손에 넣을거요. 국권을 잃었다는걸 명심해야 하오.》

서필은 절벽같은 녀자에게 압을 넣어서라도 물러앉게 할 심산으로 말했다.

긴장해진 유양점의 눈길이 백씨에게 향해졌다.

백씨는 국권을 잃었다는 소리를 거리낌없이 내뱉는 서필이로 하여 분이 치밀어올랐다.

《이보시우, 만달산은 내가 죽어서 묻히자고 산 땅이기에 지금껏 가지고있었수다. 아무리 볼데 없는 과부년이래두 조상이 있고 비명에 간 남편이 있는데 늦게라도 선산을 가지면 안된답디까? 그 일은 더는 말도 하지 마시우.》

놀란것은 유양점이였다. 백씨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여나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것이다. 자기가 죽어 묻힐 땅이라… 참말이지 묘한 궁리만 해내는 녀자다. 만달산을 소유자인 백씨가 선산으로 만들겠다는데야 어찌겠는가.

서필은 백씨의 말을 제나름대로 해석했다. 죽어서 묻힐 땅이라는건 죽어도 내놓지 않겠다는 소리나 같지 않은가. 여기다 대고 무슨 말을 더한단 말인가. 끙끙 갑자르며 생각을 톺아대던 그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내 알건대 백씨에게는 대동과 순안, 미림쪽에도 좋은 땅이 많다는데 하필이면 돌무지인 만달산을 아까와할게 뭐요. 선산으로 하겠다는데 선산풍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만달산이요.》

《망한 나라 백성이 풍수보고 선산 쓰겠소.》

《그러니 아예 흥정을 안하겠다는거요?》

백씨가 처음으로 서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자못 엄엄했다.

《일본사람들이 좋은 땅도 많은데 하필 만달산을 사자고 하는건 무엇때문이요?》

성미가 급한 서필은 백씨의 물음에 점점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알고 묻는지 모르고 묻는지 알수조차 없다. 유양점이 이년하고 내통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긴 그렇기도 하오. 그 알량한 돌산을 놓고 서로 내놓니마니 하는게 내가 다 우습소.》

흥흥거려대는 유양점의 수작질에 신경이 살아난 서필은 서둘러 대답했다.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오. 내가 백씨를 좀 아니 나서본거요.》

서필을 외면한 백씨가 유양점에게 눈길을 돌렸다.

《양점어른, 어른은 공연한 일에 또 따라나섰수다. 서로 리속을 감추고 흥정하는거야 남을 속여먹자는 놀음 아닌가요?》

유양점은 서필이 곤경에 빠지는게 여간 깨고소하지 않은데다 백씨가 뻣뻣하게 맞서는것이 마음에 들어 히물히물 웃으며 물었다.

《백씨는 일본사람들의 속심을 아시우?》

《알게 될거외다!》

어렵지 않게 대답하는 백씨의 거동을 지켜보며 유양점은 내심 감탄했다. 자기와의 관계를 감추면서도 서필이 진속을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겨내게 눌러놓지 않는가.

유양점이 서필에게 넌지시 말했다.

《간통도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데 무슨 방도가 없으시오?》

하는수없이 서필은 마지막주패장을 내놓았다. 그가 만달산은 무용지물의 산이다, 바위투성이에 쓸만 한 나무조차 없다, 경제적 가치로는 황무지나 같다고 루루이 력설하는 동안 백씨는 듣는지 마는지 하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서필은 백씨의 안색을 살펴가며 만달산의 돌이 석회석이고 그 일대에 일본의 큰 기업이 세멘트공장을 세우려 한다는것을 말하고야말았다. 그러면서 돌산을 팔아 본전보다 많은 돈을 받으니 좋아, 일본기업과 연줄을 가지면 은행대부와 융자도 받으니 좋아 횡재가 아닌가, 이런 기회를 놓쳐버리면 후회할것이라고 말재간을 부렸다.

《이것 보시우, 난 일본사람들이라면 질색이외다. 그리구 양회공장을 짓자구 한다는건 안지도 오래외다. 내 땅인 만달산은 돌산이 아니라 보물산인데 그래 내가 호락호락 내놓을상싶소?》

젠장, 이 망할 늙다리과부년 같으니… 그 주둥일 까치우면 좋겠다. 말이 길어질수록 백씨에게 언질만 주게 된 서필의 속은 앙앙불락이였다.

《두고봅시다. 흥정은 오늘로 끝나지 않을테니…》

《난 두세번 흥정하는 법을 모르외다.》

《흠, 하게 될거요!》

백씨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할 말이 없으니 가라는 소리다. 화가 치민 서필이 일어서려는데 백씨가 손짓으로 눌러앉히였다.

《어른이 걸친 그 두루마기는 값이 얼마나 나가오?》

서필은 자기가 입은 외국산 코트를 두루마기로 여기는 백씨의 무지스러움에 기가 막혔다.

《이건 두루마기가 아니요. 코트요! 비싼거요. 왜 묻소?》

《왜 묻소? 허, 빚진 사람이 되려 큰소리칩니다그려. 그 두루마기하구 머리에 쓴 갓을 내 집에 벗어놓고 가야겠수다. 빚갚음이 끝나면 돌려드리리다.》

서필의 두눈알은 피가 지며 곤두섰다. 악이 아니라 독이 뻗치여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아무리 빚진 사람이래두 옷가지를 벗기려드는 심보앞에서 미칠것만 같았다.

《왜 아까우시우?》

《좋소!》

서필은 분통을 터뜨리며 백씨가 이름지어준 두루마기와 갓을 벗어놓았다.

《그 회중시계도 떼놓으시우.》

눈앞에 펼쳐진 가관에 유양점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돌아앉았다.

만달산땅흥정을 왔다가 거죽과 모자까지 벗기운 서필은 백씨집 대문을 발로 차고 길길이 날뛰며 가버렸다.

유양점이 서필과 함께 사라진 뒤 얼마 안있어 장명학이 여러명의 유지들과 함께 집마당에 들어섰다.

백씨는 황황히 그들앞에 나서며 고개를 숙이였다.

《어르신네들께 문안드립니다.》

통영갓을 쓴 늙은이가 하얀 수염을 쓸며 감개하여 말했다.

《그대의 덕행으로 오늘 다리를 놓았은즉 평양사람모두가 칭송해마지 않는다네.》

《황송하옵니다. 그게 어찌 제 혼자 한 일이겠습니까. 어르신네들이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한줄로 알뿐입니다.》

유지들의 얼굴마다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별로 큰일한것이 아닌 사람에게도 송덕비를 세워주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냥 있겠소. 그래서 다리에 <백선교>라는 이름을 붙였소. 그대 성씨에 선행을 베푼데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그리하였는데 다른 의사는 없겠는지?》

《너무도 황송합니다.》

《됐네. 사람들은 <백선교>를 건너다니며 그대의 선행을 오래오래 옛말로 전해갈걸세.》

《…》

백씨는 목이 메여 고개조차 들수 없었다.

크지 않은 다리 하나 놓은 뒤 백씨는 자기도 생각지 못한 일을 곳곳에서 당했다.

길가에 나서면 머리흰 늙은이들까지도 《선행, 어델 가는 길이요?》 하고 반겨묻는가 하면 《우리 선행할머니다.》 하며 조무래기들이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다녀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낳아준 부모도 주지 못했던 이름, 천대와 멸시속에 자라면서 《이놈의 계집애》로 대신해온 이름, 기구한 신세에 대한 동정과 조소가 엇갈린 백과부라는 부름대신 그리도 갖고싶었던 이름을 《백선교》로 하여 비로소 가지게 된것이였다. 나같은것한테도 이름이, 이름이 차례지다니! …

백씨는 형언할수 없는 감회를 안고 장규현의 묘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님! …》

목메여 찾는 그의 두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한푼이라도 더 챙기느라 장사판에서 무작정 허덕이던 나에게 바른 마음으로 벌어 옳은 일에 쓰라는 타이름으로 장규현이 남겨준 《바를 정》이라는 글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차례지기는커녕 꿈조차 꿀수 없었던 이름이 아닌가.

그는 봉분의 파란 잔디를 그러안고 쓸고 또 쓸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무지한 년에게 세상리치를 깨우쳐주신 아버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죽는 날까지 곧은 맘을 가지고 살렵니다. 내 뼈를 깎으며 아글타글 모아들인 돈이지만 망국의 한을 푸는 의로운 일에라면 아낌없이 바쳐가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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