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3

 

평양에 도착해서 려장을 풀기 바쁘게 서필과 세이찌로는 승호지구로 나가 열흘이 넘도록 현지답사를 하고 오늘 돌아왔다.

《그새 너무 걸었더니 정말 피곤하오.》

랭수욕을 하고난 세이찌로가 하오리만 걸친채 팔걸이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낯색이 지쳐있다면 서필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먼저 현지에 파견된 일본인기술자들은 승호지구 석회석의 품위와 매장량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보고했는데 세멘트공장을 세우자는 오노다기업에 있어서는 황금덩이나 같았다. 그중에서도 만달산의 석회석은 탐내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서필의 심중이 지금같이 무거운것은 만달산일대의 토지소유권이 백씨에게 있다는 뜻밖의 사실에 접한 뒤부터였다. 그 과부에게서 당시 돈으로 1만냥을 협잡한 자기가 아닌가. 넓은 평양이라 피해다닐수는 있겠지만 속은 께름직했다. 평양에 와서 운수가 좋아본 일이 없었다.

《서상, 래일부터는 일을 착착 추진시켜봅시다.》

《만달산지구 토지소유권이 개인에게 있지 않소.》

《흠, 당신네 조선은 우리 일본의 손안에 있소. 하물며 조선인 개인땅이라는게 뭐가 큰 문제요.》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송두리채 빼앗은것이나 같았다. 리조봉건국가는 토지와 산림에 대한 소유권을 명백히 하지 못하여 국유지와 민유지가 정확히 등록되여있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실태를 꿰뚫어본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림야를 제놈들의 손에 넣기 위한 책동으로 조선정부에 강요한 이른바 《황무지개간위탁계약서》의 첫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조선정부 궁내부는 현재 궁내부가 소유하고있는것과 관청의 소유로 이미 개간한 토지 및 민유지가운데서 그 소유의 관계가 명백한 토지, 논밭, 산림, 들판을 제외한 조선8도 토지, 산림, 들판, 기타 모든 황무지의 개간과 정리, 척식 등 일체 경영을 나가모리 도이찌로(전 일본대장성 관방장관이였던 자본가)에게 위임할것이다. …

이에 따라 발족된 《동양척식회사》는 리조정부로부터 방대한 량의 토지를 빼앗아내기 시작하였다.

《서상, 만달산토지소유자가 백씨라고 하지 않았소? 그가 누구인지 모르오?》

세이찌로는 차물을 조금씩 마시며 물었다.

《글쎄, 이전에 내가 들은데 의하면 혼자 사는 녀자라던데…》

《음? 지체높은 량반의 미망인이요?》

대답하기가 매우 궁색한 서필이다.

《그런것 같지는 않고…》

서필은 백씨가 평양의 갑부이며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것만을 알고있다. 스무해전 1만냥을 꿀 때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녀자치고 보기 드문 대틀이였다.

《무능한 정치는 몽매한 백성을 두기마련이요. 백씨라는 녀자도 분명 온전한 땅문서도 갖춘게 없을거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돈더미우에 앉게 되오. 오노다상은 석회석산지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을거요.》

서필은 세이찌로의 허세에 쓴입을 다시였다.

오래전에 만나보았지만 백씨는 땅문서를 갖추지 않을만큼 어리석은 녀자가 아니였다. 눅은 값으로 흥정한대도 모르겠는데 공짜로 삼키겠다니 말이 되는가.

《백씨는 평양에서 명망있는 갑부라 권력과도 유착되여있을건 뻔하고 그를 잘 다루지 못하면…》

서필의 불안감을 포착한 세이찌로는 입귀를 찡그리였다. 아무리 갑부라 한들 계집에 불과한데 주저한다는것이 사내답지 못하나 서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관이 분명한데 자기가 실없이 쾌재를 올린것이 아닌가.

도꾜에서 오노다의 독촉은 불같다. 이따금 도착하는 전보문에 엄한 문구가 섞여있다. 승호지구 만달산일대의 땅을 손에 넣지 못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오노다는 늦어도 래달 중순이면 서울에 나타난다. 그때까지 토지소유권문제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벼락이 떨어질것이다.

《서상, 무슨 묘안이 없겠소?》

《만달산토지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는거요.》

서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만일 정확하다면?》

《다음은 세이찌로상이 흥정하는수지요.》

《내가 당신네 계집과 흥정하라는건가?》

속이 뒤틀린 세이찌로는 지금까지 갖추고 지내던 점잔을 내던지고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그리도 삽삽하던 네가 반말질을 해? 하긴 네놈이라고 몸뚱이에 사무라이피가 흐르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난 서필은 쓰겁게 웃으며 말했다.

《석회석산지를 찾아 소유권을 얻는것은 오노다가 야마다상에게 준 지령이 아닙니까.》

서필은 백씨와 만나는 놀음에만은 코를 들이밀고싶지 않았다. 빚진 돈때문에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그 일이 알려지면 평양에 차리려는 자기 기업의 앞날도 어두워진다.

《서상, 당신의 본심을 알겠소. 그래 잡혀서 다 죽게 된것을 살려준게 누구요?》

세이찌로는 협박조로 서필을 조여댔다.

서울에서 은신시켜주고 빼돌려준 《은혜》를 잊지 말라는것이다.

《은혜》를 입은것이 사실인 서필은 하는수없이 자기와 백씨사이에 있었던 일을 실토했다. 1년을 기한으로 한 빚을 20년이 넘도록 묵여두었으니 낯이 없다는 사정이였다.

《당신 지금 그런 체면차릴 형편이요? 그까짓 당신의 빚따위가 뭐 그리 대단한가 말이요?》

독기가 뻗친 세이찌로는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내 빚을 물어 만달산이 당신네 수중에 들어갈수만 있다면 왜 그러겠소.》

《당신 사람속이지 마오. 그 돈 몇푼때문에 당신의 꿈이 깨여진 다음 후회하지 말기를 바라오.》

오늘 저녁은 피로도 풀며 즐겁게 보내자고 했던 두사람사이에 좋지 못한 말들이 오가게 되였다.

《세이찌로상, 오늘은 이만합시다. 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서필은 종시 양보하지 않고 일어나 려관을 나섰다. 거리에 나선 그는 몇걸음 걷기 바쁘게 역증을 냈다.

《이놈의 땅이 너무 사납거든.》

구질구질 비가 내리는데다 북풍이 불어치는데 그조차 정한 곳없는 몸부림같이 괴이쩍은 바람이다.

그는 어느 왕년에 평양에 발을 디디기 바쁘게 못된 바람한테 중절모자를 섬겨바친 일이 생각났다. 어디 그뿐인가. 난데없는 입심세찬 술집 아낙네한테 걸려들어 외상술값때문에 개망신을 당했다.

《귀신이 곡할 땅이거든.》

비바람을 피해 서필은 두리번거리며 맞춤한 술집을 찾았다. 세이찌로의 단련을 피해 나온 몸이라 어데 들어가앉아 술잔이나 기울이며 만달산토지문제를 어떻게 할가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인가?

어깨죽지를 움켜잡은 우악스러운 손이 서필을 허깨비 다루듯했다.

이놈의 땅이… 그는 공연히 죄없는 고장만 속으로 욕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으악!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왔다. 무슨 괴물의 눈이 이리도 큰가. 얼굴은 없고 번들거리는 눈알뿐이다. 세상에 악마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본적은 없는지라 그는 겁에 질려 우들우들 떨어댔다.

《난… 나는 죄… 죄가 없수다. …》

《흐흐흐, 하하하.》

눈알만이 아니라 이번에는 쩍 벌어진 아가리가 보인다. 서필은 온몸이 그속으로 빨려들어가는것 같았다. 아래도리가 매시시해졌다.

《이보게, 서필이.》

《어- 누구요? … 내 이름은…》

《이 사람 실성했나? 친구도 가려 못보니…》

《치… 친구라니…》

날이 어둡기 시작하여 좀체로 갓쓴 《악마》의 얼굴을 가려보지 못한 서필은 잔뜩 겁에 질려 떠듬거렸다.

《마침 만났네. 개화파벙거지를 벗어내치고 물건너로 꽁무니 뺐다더니 환국했나?》

《누구요? … 나… 나를 잘못 아는거요. …》

《에끼! 바로 보게. 유양점일세. 약삭바르게 세도줄을 잘도 골라잡더니 영 시라소니가 됐네그려.》

서필은 그제야 유양점을 알아보았다. 친구의 손도 악마의 발톱으로 여겼으니 열번도 더 죽었을 목숨이 붙어있다는 죄의식이 그를 머저리로 만들었던것이다.

《대세… 대세를 잘 가려보는게 현자가 아닌가. …》

때늦게 체면을 세워보려고 애쓰는 서필을 유양점은 찌글써 흘겨보며 서슴없이 비웃었다.

《흠, 개화당돈으로 차림새부터 개명했네그려.》

《개명하면 못쓴다던가.》

《임자가 꼬물만치도 부럽지 않으니 객적은 소리말구 술집으로나 모시게.》

유양점이 호령하듯 요구하자 서필은 상전섬기는 하인처럼 굽석거려댔다.

《그… 그야 여부있나. 어델 가자나?》

《난 그저 취향루의 열구자탕에 술이면 되네.》

《가세. 술과 함께 해후도 나눕세.》

유양점은 길들인 개를 앞세운듯 서필을 몰아 취향루로 갔다.

《듭세.》 하고는 그 비싼 열구자탕을 후르륵소리 몇번에 다 요정낸 유양점은 접대하는 녀자를 찾아 연방 돈이 나가는 료리만 불러댔다. 찜한 소갈비, 발그스레한 색을 띤 통닭구이…

서필은 얼나간 모양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저 황소같은 배속에 얼마나 많은 돈을 처넣어야 끝이 나겠는가. 널름널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꼴이 꼭 약을 올려대자는것 같았다. 마음껏 잡숴줄테니 어디 값을 물어보게나 하는짓이 분명했다.

《이 사람 양점이, 과식이 건강에 얼마나 나쁜지 모르는구만.》

《별 실없는 소리… 없어서 못 먹지. 난 영 궁줄에 들었다네. 임자 덕에 배를 좀 채우려는데 뭘 그러나?》

혹시 나를 놀려대자는 수작은 아닌지. 어지간히 체면을 중히 여기던 량반인데 이쯤된걸 보면 여간 궁핍한게 아닌듯도싶다.

《무슨 벌이를 하겠지?》

《무위도식이 내 업일세.》

양점은 살찐 통닭의 다리를 찢어들고 물어뜯으며 거침없이 대답했다.

《양점이 실로 안됐군. 내 돈벌이줄을 놔달라나?》

서필은 세이찌로의 요구를 물리치기 힘든 조건에서 유양점을 끌어들여 백씨와 마주세울 기발한 생각을 했다.

《그래만 주면야…》

여전히 유양점은 마시고 먹어댔다.

《승호에 있는 만달산토지가 그 백씨라는 녀자의 땅이라면서?》

만달산소리에 유양점의 귀바퀴가 움씰했다. 이 자식이 돌무지산에 욕심을 들이는게 아닌가. 이놈의 흉물단지가 무슨 속심을 가졌을가.

《허, 그건 나도 모르네.》

《그 땅을 일본사람들이 사자고 하는데 어떤가?》

한껏 배를 채운 유양점이 실눈으로 서필을 노려보며 늘어진 소리를 뽑았다.

《팔고사는건 내 알바가 아니요. 허나 평양땅값이 오르는 때라는걸 아나?》

《시가가 오르내려도 일본사람이 내놓으라면 별수없지.》

《그야 사겠다는 소린가? 빼앗겠다는 속심이지.》

《어차피 그렇게 될텐데 본전이라도 챙기는게 낫지 않을가?》

유양점은 서필이 왜놈들의 사타구니에 붙었다는것을 짐작하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만달산이라는게 돌산인데 왜 욕심을 내나?》

《일본사람들 속심을 내가 어떻게 알겠나.》

이놈이 한동아리가 되여가지고 입씻기로구나 생각한 유양점이 옆구리가 아니라 이마빼기를 두드려볼 작정을 했다.

《서형, 만달산은 제치고 그 1만냥 빚은 어쩌겠소? 5푼변에 20년이 지났소. 회계나 해봤소?》

유양점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리라 생각했던 서필은 놀라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그 돈이야 개화파의 정치자금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흠, 빚문서에도 그렇게 밝혔던가?》

《나만 한짓인가. 양점도 같이 협잡한 돈인데…》

유양점의 두눈이 금시 사납게 서필을 노려보았다.

《자네 그 혀바닥이 제거라구 함부로 놀릴텐가. 내 손으로 뽑아 내치지 않는다쳐도 백씨한테 걸려들면 무사치 못할걸세. 어험, 날 걸고들 생각은 아예 말게. 난 백씨와 회계할건 다했으니까. 오늘 잘 먹었네. 그럼 난…》

《아아, 그 성민 젊었을 때나 여전하구만. 회포나 더 나눕세.》

유양점이 손을 내저었다.

《속다른 사람과 무슨 회폰가. 만달산… 흠, 본전을 주고 내놓으라… 여보, 백씨는 땅도매로 갑부가 된 녀잘세. 자네같은 졸부의 얕은수에 넘어갈 백씨가 아니라네.》

마구잡이로 하대하는 유양점의 우직스러운 태도에 서필은 쓴입을 다시였다. 세이찌로는 만달산을 공짜로 삼키려 한다. 만약 백씨의 기분을 거슬려놓아 일이 크게 번져지면 소문이 날것이고 소문이 나면 불리하다. 당당한 땅임자가 거절하는것이기때문이다.

《양점, 그 땅을… 두세곱 비싸게 살수도 있지 않나.》

《그건 내 알바 아니네. 임잔 빚갚을 생각이나 하게. 리자만 해도 10만원이 넘네. 안그런가? 5푼변이니… 흠, 세상에 드문 5푼변은 자네가 만든 옹놀세, 허허.》

서필은 울기가 치밀었다.

《나를 그 계집한테 데려간게 누구지?!》

《도원국이지. 그 사람은 자네 대신 죽었네!》

《응?!》

《자네 백씨한테 진 빚은 갚아야만 할걸세. 그리구… 내 자네 관상을 보니 제명 다 살고 죽기는 힘들겠네. … 난 가네.》

《에끼, 이런 망발이라구야.》

《평양에서 지은 죄는 갚지 않곤 못 배기네.》

서필은 잔뜩 배채우고나서 화를 돋구는 말만 늘어놓고 사라지는 유양점을 억이 막혀 지켜보았다.

《나도 여러번 지나가는 길에 보았는데 다리공사가 끝나가더군요. 양점어른이 수고가 많았어요.》

도매점 방안에 백씨와 마주앉은 유양점은 수염을 내리쓸었다.

《이 양점의 손탁에서 안되는 일이 어데 있소.》

백씨의 치사에 우쭐해져 큰소리치던 그는 게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돈을 쏟아부으니 일이 잘돼가는거요, 허허. 수일내로 락성식을 하게 될거외다.》

《돈도 돈이지만 치마두른 나같은게 나서서야 어디 될 일인가요. 나리야, 어서 술상차려 들여오너라.》

백씨는 저으기 마음이 개운하여 나리를 찾았다.

《어머니, 들여갑니다.》

그 소리에 이어 중년나이에 들어선 나리가 술상을 차려들여와 유양점의 잔에 술을 부었다.

《오래간만에 우리 도매점에 오셨습니다.》

《세월두 참 빠르오. 눈앞에서 나풀대던게 어제같은데 이젠 몰라보겠소, 허허.》

유양점은 처녀때보다 더 환하고 현숙해진 나리의 용모를 훔쳐보며 웃었다.

《네 오라비와 서방은 선창에 나갔냐?》

《오라버님만 나가고 그 사람은 점포들에 짐을 나르고있어요.》

《네가 뒤에서 잘 받쳐줘라. 아끼지 말고 먹고싶다는건 다 먹여라. 공연히 후회하지 말구…》

《어머님 대접하는것만큼은 하는데요.》

나리의 대답에 백씨가 혀를 찼다.

《나야 평생 막음식만 먹어놔서 별수없다만 젊은 사람한테야 왜 그러겠느냐.》

《알겠어요.》

나리가 나가자 백씨가 권했다.

《어서 드시라구요.》

유양점은 차린 음식을 굽어보며 별로 신통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엊저녁 공짜술에 기름진 안주를 잔뜩 먹었더니 생각없소그려.》

《기생년 부어준 술보다 못하다면 거둡시다.》

백씨의 그 말에 유양점이 두손으로 술상을 부둥켜쥐였다.

《아, 이러지 마오. 내 그저 해본 소린데 뭘 그러오?》

《녹두지짐이 어때서요? 잉어탕에 콩나물이면 우리 집안에선 상등음식이예요.》

《그렇게 제대로 먹지도 않구 늙는 재미에 사오?》

《상놈이 돼서 상놈입에 맞는것만 먹다 죽으려오. 량반시늉은 해서 뭘하겠수.》

《허, 무던히 비틀어댑니다그려. 실은 내 엊저녁 서필이를 만났댔소.》

《서필이라니? …》

《아, 잊었소? 1만냥 빚을 받아내야지 않소.》

그 말에 백씨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량반이 평양에 나타나다니, 내가 죽었는가 한 모양이지. 그놈의 빚문서때문에 1만냥보다 더 큰 돈을 쓴 내가 아닌가.

《빚을 물겠다던가요?》

유양점이 턱을 저었다.

《폭포수에 씻긴 조약돌같이 반질반질한 놈이 돼서 갈지자대답만 합디다.》

주먹을 틀어쥔 백씨의 기상은 본색을 드러냈다.

《평양바닥에 기여들어가지구두 하루하루 늦잡다간 종로 한복판에서 개망신당하게 될거라고 전하라구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은 유양점이 술잔을 연방 비우고나서 말했다.

《내 오늘 백씨를 찾은건 좋은 일 해주기 위해서요.》

백씨는 시큰둥한 대답만 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겠다구…》

《만달산말이요.》

《북망산이 아니구요?》

《자, 이런… 만달산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소.》

믿기 어려운지 백씨는 유양점의 거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내친거나 같다구 한 땅이 아니요. 본전에 흥정이 안되면 세곱까지 올려주겠다니 횡재가 아니요?》

놀라운 말이다. 숱한 땅을 사고팔았지만 만달산토지만은 10년 가까이 우거진 숲속에 내쳐두었다. 온통 돌판이니 어떤 곡식도 심어먹기 힘든 몹쓸 땅이다. 그런 땅을 본전도 아니고 두세곱 올려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미쳤다기보다 이상한 생각이 앞섰다.

《사겠다는게 누구요?》

《사겠다는건 일본사람이고 앞에 나선게 서필이요.》

백씨의 의심은 부쩍 더 커졌다. 왜인이라면 벼룩의 간도 뽑아먹을 놈들인데 무슨 일로 돌무지나 같은 산을 노리는가. 그놈들앞에 나선 사람이 서필이라니 이 또한 괴이쩍다. 나라를 개명시킨다고 나섰던 량반이 나라가 망하니 왜놈과 한짝이 되였다는 소리다. 그는 깊은 생각보다 괘씸한 마음이 앞섰다. 제가 진 빚은 어떻게 하구 일본놈 하는짓에 거간으로 나선건가. 아무렇게나 벌어서 제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저따위 량반놈들이 나라까지 팔아먹었다. 땅사겠다는 왜인은 왜인이고 서필이라는 같잖은 량반이 나섰다는데 속이 뒤틀린 백씨는 무작정 손을 내저었다.

《안돼요. 그 땅 사려니 생각지두 말라고 하시우.》

백씨의 태도에 유양점은 눈이 커졌다. 지금껏 팔지 못해한 땅이 아닌가. 돌산이 돼나서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없는것이나 같이 여겨왔는데 본전보다 더 뽑는 장사를 왜 거절하는가. 장사물계에서 귀신이나 한가지인 백씨도 이젠 늙어서 아둔해진게 아닌가. 아직은 로망할 나이도 아닌데…

《모를 일이요.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하니 말이요.》

덤덤히 듣기만 하는 백씨의 머리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있다. 중간에 나선 서필은 제쳐놓고 만달산토지를 사겠다는 왜인의 속심이 뭔지 알아야 한다. 쓸모없다고 여긴 땅이지만 금덩이라도 묻혀있는지 뉘 알겠는가. 본전을 받아 밑지지 않았다고 내가 좋아할 때 그 오랑캐종자들이 속여먹였다고 깨고소해하면 나는 평양의 비난거리로 된다.

《양점어른, 우리가 오늘까지 40년 가까이 알고지내오는데 딴 맘은 없으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술맛이 싹 없어지오.》

《서필이라는 량반과 친분이 있지 않았수?》

《그놈은 협잡군이요. 난 그놈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지가 오래오. 그러니 내가 그놈과 한짝이 아닌가 의심하는거요?》

《안할수가 있나요?》

칼로 베듯 말하는 백씨를 유양점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능히 그럴수밖에 없는 백씨다. 도원국의 간계였다. 하지만 서필과 함께 얼굴을 들여밀고 1만냥을 협잡한건 사실이다. 그 돈이 쉽게 백씨 손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는걸 알면서도 그자리에 앉았고 제 손으로 이름자까지 써넣지 않았던가.

《알겠소. 난 좋은 맘 먹구 왔었는데 그만 돌아가겠소.》

《사내대장부가 속좁은 계집의 말 한마디에 노여움부터 앞세우니 졸장부외다. 난 지금껏 그렇게 본 일 없는데…》

《의심을 받으니 하는 소리요.》

《해본 말이예요. 그래 어른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수? 나라를 삼킨 왜놈종자들이라 공짜로 빼앗으려들텐데 본전보다도 비싸게 사겠다니 리치가 가당한가 말이외다.》

무심히 흘려들을 소리가 아니다. 자기는 백씨를 생각해서 팔아버리자는 타산만 하지 않았는가. 서필이도 속에 품은 생각을 분명 감추고 혀바닥을 놀렸다.

《백씨 말을 듣고보니 그럴법하오.》

《앉아서 점치기나 해서는 왜놈종자들의 소갈머리를 알수 없어요. 이왕 서필이라는 량반과 만났다니 속심을 알아봐주시우.》

《음, 그럽시다. 내 알아내겠소.》

《자, 어서 드시라구요.》

백씨는 유양점의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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