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2

 

봄이 왔다. 남산의 솔숲엔 진달래가 곱게 피고 탑골공원과 창경원의 돌길옆에는 개나리가 눈부신 황금덩굴을 이루었다.

왜색왜풍의 파도가 서울시가를 삼키고있다. 종로, 을지로, 충무로의 번화가에는 왜인들이 다툼질을 해가며 저마끔 료정이며 유흥장을 지어놓았다. 거리에 나서면 어디서나 들을수 있는것이 사무라이들의 노래요, 게다짝 끄는 소리였다.

일제에 의하여 《정미7조약》이 날조된 후 조선인민의 반일항전은 료원의 불길마냥 온 나라로 타번져갔다. 부패무능한 조정은 속수무책이요, 돈 몇푼에 현혹되고 날강도의 으름장에 기가 질린 매국노들은 대번에 무릎을 꿇었지만 백성들은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았기에 창검을 비껴들고 의병대오를 무었으며 도처에서 왜놈군대와 맞붙어 생사를 판가름하였다. 침략자앞에 쉽게 무너져 굴복할 조선인민이 아니였다.

대륙침략이라는 신기루에 홀리운 나머지 일본의 그 어느 정객도 저들의 운명이 조선반도에서 결정되리라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석양빛을 등진 한 녀자가 청계천다리를 건너오고있다. 송월이다.

중년의 녀자임에도 그의 용모에는 류다른 아름다움이 깃들어있다. 눈가에 잔주름은 많이 생겼어도 오목눈은 이슬에 젖은 진주처럼 반짝이고 오똑한 코마루와 꼭 다물린 입술모양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차겁고 맵짜보였다. 변했다면 나이를 먹으며 몸이 난것이고 걸음걸이가 떠지여 세련된감과 함께 어떤 무거운 시름을 안고있는 녀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송월은 소란스러운 서울의 저녁거리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으며 걸었다. 이따금 고개를 들어 먼곳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이슬같은것이 맺힌다.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남도의 여기저기로 흘러다니며 어느 한시 잊은적 없는 백씨를 그리는 송월이다. 꿈결에도 어머니라 부르면서 오늘까지 음식점, 려인숙에서 부엌일을 하며 목숨을 이어왔다. 용모가 고운데다 음식만드는 솜씨가 뛰여나 어디서나 그를 찾았다.

부산 동래에서는 음식점주인이 송월이의 미모로 돈을 벌 심산으로 사내들 방에 밀어넣으려다가 턱수염을 반나마 뽑히우는 일까지 있었다. 내가 왜 죽지 않고 사는지 아느냐, 원한을 품고사는 내가 몸이나 팔아 구차한 명을 이을바에는 백번도 더 죽었을게다 하고 추상같이 내리조기고나서 그 집을 뛰쳐나온 송월이였다.

나이가 들어 중년에 이르니 그의 마음은 성급해났고 하루에도 몇번씩 어머니의 유물인 장도칼을 틀어잡군 한다. 불쌍한 어머니를 소경만들어 죽인 살인귀의 가슴에 이 칼을 박지 않고서는 죽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왜놈들이 욱실거리는 인천에서 몇해동안 음식점일을 한 송월은 서울에 올라와 계림려관의 부엌일을 시작했다.

무슨 음식감이나 손을 붙이면 볼모양, 먹을 맛이 있게 만드는 그의 깔끔한 음식솜씨에 반한 주인은 송월이를 돈주머니 불쿼주는 보배같이 여기며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었다. 몸이 불편해 하루 쉬겠다고 했더니 어서 그러라던 주인이 사람을 띄워 오늘 저녁에는 꼭 나와달라고 사정했다.

송월은 충무로2가에 자리잡은 계림려관을 찾아가고있다. 요즘 그 집의 료리가 소문이 나서 돈많은 사내들이 많이 찾아든다. 그중에는 장사군, 기업가, 부동산투기업자, 부재지주, 선주, 도매상 같은 사람들과 《총독부》의 일본인관리들까지 있었다.

송월이를 무척 기다렸는지 주인사내가 두손을 쳐들고 맞아주었다.

《송월이, 아픈건 좀 나은가?》

《하루 쉬운다더니 왜 이다지 들볶는건가요?》

《송월이 없이 이 집 음식이 어떻게 빛이 나겠나. 흐흐, 오늘은 왜식에 고급료리를 해야 하니 찾을수밖에…》

《<총독부>의 고관님들이라도 행차하시나요?》

빈정대듯 묻는 송월의 말에 주인은 살진 손가락을 꼽아가며 주어섬겼다.

《오늘따라 돈냥이나 있는 사람들이 찾아든다네. 들어보라구. 일본 <미쯔비시>상회 리사 아라가끼 곤스께와 <일진회>의 김명길, 고순호, 다음은 경상도 부호 조순재, 선상 우길호, 도매상 박순국… 또 있지. 일본 오노다기업의 중역인 야마다 세이찌로와 기업인 서필… 어떤가? 오늘 저녁만 그들을 만족하게 치르면 내 송월에게 후한 인사를 하지.》

《가만가만, 세번째로 짚은 사람들의 성함이 뭐라구요?》

《야마다 세이찌로와 서필… 흐흐흐.》

순간 송월은 눈을 감았다. 스무해동안 찾은 인간이 나타난것인가. 얼굴만 확인하면 된다. 그의 눈은 웃음을 띠였지만 서슬푸른 칼날같은 기운을 풍겼다.

《좋아요. 그럼 야마다라는 일본사람의 음식접대까지는 내가 하지요. 그대신 약속한대로 돈을 줘야 해요.》

《그야 여부가 있나. 송월이가 접대까지 해주면야 내 아낄게 있을라구.》

송월은 주인의 반죽좋은 소리를 등뒤에 남기고 주방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송월이가 료리를 나르며 기다린 야마다 세이찌로와 서필은 자정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세월은 흘렀어도 서필의 얼굴을 잊을 송월이가 아니였다.

서필과 세이찌로의 인연도 기이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세이찌로는 서필을 제물로 바치려 했지만 놓쳐버렸다. 《충의》를 곧잘 떠벌여대던 서필이 세이찌로의 간계를 넘겨짚었는지 일본이 아니라 청나라로 꼬리를 사렸던것이다.

세이찌로와 20여년이 훨씬 넘는 세월 헤여졌다 다시 만난 서필의 심중도 이상야릇해졌다.

네놈이 아무리 교활하다 해도 나에겐 너를 누를 지략이 있거늘… 서필은 오래간만에 마주앉은 세이찌로를 눈아래로 보았다.

송월이 두사람의 식탁에 주문한 료리들을 차려놓고 잔에 술을 부었다.

《많이 드십시오.》

서필이가 음식상을 흐뭇하게 내려다볼 때 세이찌로는 《성의있는 봉사에 감사합니다.》 하며 송월의 손등에 멋부리듯 입술을 가져다댔다.

《세이찌로상은 내가 제일 어려웠던 때 도와준 은인입니다.》

서필은 자못 감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때 생명을 내댄 도박을 하였소.》 하며 세이찌로는 서필과 잔을 찧었다.

세이찌로는 오노다기업의 선견대로서 본국에서 구체적인 지령을 받고 조선으로 왔다. 그로서는 서필을 손안에 틀어쥐여야 맡은 임무를 수행할수 있었다.

《서상, 나는 말입니다. 평양의 승호지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있습니다. 생각되는바가 없습니까?》

오던 길에 빙빙 에돌며 말한 세이찌로가 비로소 정확한 지명을 밝히자 서필은 오노다기업이 무엇을 계획하고있는가를 자기나름으로 분석했다. 승호지구라고 했지. 척박한 땅과 돌산으로 이루어진 그곳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광석을 찾자는것일가. 내 알건대 승호리는 석회석산지다. 석회석, 이 돌덩이가 바로 세멘트생산의 주원료다. 그러니 원료원천지에 세멘트공장을 세우자는 계획일수 있다. 서필은 스무해 넘게 여러 나라를 돌아치며 조선땅에서는 보지 못한 공업이라는 산업형태를 알게 되였으며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과 구조, 경영방식에 대해서도 일정한 파악을 가지고있었다.

《오노다기업의 첫 해외공장은 돌우에 세워질거다, 그거겠지요?!》

서필의 표현적인 대답에 세이찌로는 내심 놀라며 손벽을 쳤다. 조선인들이 머리가 좋고 재간이 뛰여나다는것을 모르는 일본사람은 없다. 조선을 식민지화하자면 이들의 민족정신과 두뇌가 일본을 위해서 복무하고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서상, 탄복합니다. 탄복합니다. 그 손을 한번 더 잡아봅시다.》

세이찌로는 서필을 한껏 춰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서상은 나와 함께 평양으로 갑시다. 당신과 함께라면 승호지구답사는 유쾌한 나날로 될것입니다.》

순간에 동행자로 만들기라도 한듯 세이찌로의 뜬 기분에 서필은 조용히 찬물을 끼얹었다.

《시간은 나한테도 귀중합니다. 인천이나 대구쪽에 방직공장을 내오는 일이 바빠서 동의할수 없습니다.》

서필의 말은 빈소리다. 아직은 제힘으로 기업을 일으켜세울만한 돈이 없는 그였다. 다만 가고싶지만 께름한 곳이 평양이여서 엇나가본것이다.

《아, 유감인데요. 서상은 나와의 오랜 친분을 봐서도,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응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욕망은 시기상조입니다.》

여기서 말허리를 끊은 세이찌로가 서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훈시조로 계속했다.

《왜냐하면 당신들 조선사람은 우리 일본재벌들의 뒤받침을 받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기업도 일떠세울수 없기때문입니다. 다시말하여 일본제국의 기업전략에 복종하는 부속물로서의 조선인기업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강요된 훈시앞에서 서필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통감하기에 굴욕적인 감수를 할수밖에 없었다.

《언제 떠나겠습니까?》

《조속히. 평양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당신의 성의있는 방조에 대하여 오노다기업은 신용으로 담보할것입니다.》

《동의합니다.》

백씨는 요즘 와서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치마두른 녀인으로 분수에 넘치리만큼 돈을 싫도록 벌어보았다. 먹고싶은것도 먹지 않고 무명치마저고리만을 걸치고다니며 아글타글 번 돈을 오늘까지 지켜왔다. 그러느라니 어느덧 60나이에 이르렀다. 염라대왕이 언제 찾을지 모를 나이가 아닌가. 모아들인 돈을 어떻게 쓸가 궁리하던 끝에 솔뫼다리생각이 났다. 그 작은 강에서 장마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원한이 스민 썩은 다리대신 든든한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백씨의 머리속에 제일먼저 떠오른것은 장명학이였다. 아득히 지나간 일이지만 그 강뚝에 앉아 대동땅의 기생 초향이의 죽음을 두고 그리도 가슴아파하던 그가 다리놓는 일을 마다할리 없다. 아무리 둘러봐야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그밖에 더 있는가.

백씨가 아침상을 거두기 바쁘게 장규현의 집을 찾아가니 마침 장명학과 유양점이 마주앉아 바둑을 놀고있었다.

《누님이 어떻게 이 아침에? …》

장명학이 반기는데 유양점은 자기도 봐달라는 소리로 말했다.

《첩년 앙탈에 여기서 아침을 먹었수다.》

백씨는 유양점의 비위좋은 소리는 귀에 담지도 않으며 서둘러댔다.

《바쁜 일이 없으면 나하구 솔뫼다리쪽에 가보시자구요.》

《거긴 왜요?》

《허- 바둑수가 달아난다.》

《가면서 말씀드리지 않으리오.》

《누님도 참… 그럼 봄기운이 완연한 계절이니 바람이나 쏘일가요.》

장명학이 선선히 응해나서자 백씨는 그제야 유양점에게 눈길을 돌렸다.

《쯧쯧, 첩을 잘못 두면 집안 망친다구 내 말하지 않았나요.》

나무람탈 유양점이 아닌지라 이엔 아랑곳 않고 수염을 쓸며 능청을 떨었다.

《나두 누님이라 부르라우?》

《이그- 징그럽수다.》

《징그럽다니… 날 그렇게 여기는건 백씨뿐이외다. 허-》

비위좋은 그 소리에 장명학이 웃자 백씨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참말 세월이란 무상하다. 옛적 부끄러운 일들도 웃음으로 넘기게 되였으니 그새 서로 먹은 나이가 벌써 얼마인가.

솔뫼다리가 있는 강뚝에 이를 동안 궁금해난 장명학과 유양점이 제마끔 캐여물었건만 백씨는 그냥 가자는 소리만 했다.

《다 왔어요.》

앞서서 걸어온 백씨가 들꽃이 뒤덮인 뚝에 올라서며 말했다.

《해마다 강귀신제를 지낸다는 을씨년스러운 곳으로 우릴 데리고온 까닭이 뭐요?》

백씨의 걸음을 따라서느라 육중한 몸의 맥이 빠졌는지 유양점은 언짢은 소리를 내며 풀판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거기보구 따라오랬나요?》

《내가 없어보우. 고명 안친 국수나 같지.》

《모르겠수다. 흥돋굴 술과 계집이 없다는 투정인지.》

장명학은 두사람이 비틀고 꼬는 소리에 웃으며 물었다.

《누님은 어인 일로 양점형하고는 그리도 해보십니까?》

유양점은 제편에서 《어험!》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백씨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30년 묵은 빚이 있으니까 그러지요.》

그 소리에 유양점의 덩지큰 엉뎅이가 들렸다.

《무… 무슨 빚 말이요? …》

그러거나말거나 백씨는 솔뫼다리만 바라보며 장명학에게 말했다.

《내 이젠 40년세월이 넘도록 이 강을 건너 남편묘소를 찾군 합니다.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을 남기지 않은 해가 없는 기슭이지요. 기억날런지… 언젠가 이 강뚝에 앉아 대동기녀 초향의 죽음을 두고 얼마나 가슴아파했나요.》

《누님은 초향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는구려.》

《어떻게 잊겠수. 그가 죽기 전에 글도 남겼다고 했지요?》

장명학은 깊은 감회를 안은채 수염을 쓸었다.

《양점형, 초향이 글귀가 생각나시오?》

《나다마다. 백씨, 내가 대답하리다. <무의무생 지상천하>… 들으셨수?》

《들은들 나같은게 무슨 소린지 알게 뭐예요.》

백씨의 곁에 섰던 장명학이 푸른 잔디를 밟으며 천천히 오갔다.

《<무의무생 지상천하>… 오늘도 그 문장은 뜻이 깊소그려. 높은 뜻을 가진 선비가 이 나라에 몇이였던고. 군자의 뜻이 옳바르고 커야 백성이 편안하리라. … 허- 양점형, 글공부했다는 우리야말로 <수화상극>쟁이 아니고 뭐겠소.》

수십년전에 죽은 기녀의 문장을 오늘 다시 되새기며 장명학이 망국의 시운과 이어놓고 깊이 통탄하자 유양점도 심사가 울적해져 하염없이 강만 바라본다.

《가신이의 넋이라도 위안해줄 일을 하면 되지 않겠나요?》

《무슨 제라도 지내시려우?》

장명학과 함께 유양점이도 놀랐다.

《그런게 아니라 이 비천한 녀자의 소견엔 여기다 다리를 놓는게 어떤가 하는거외다. 해마다 장마에 떠내려가는 나무다리가 아니라 돌을 쌓아올려 든든하게 다리를 놓으면 사람들이 죽는 일 같은게 다시는 생기지 않겠지요.》

백씨가 어떤 마음먹고 자기들을 데리고나왔는가를 알아차린 장명학은 그 뜻이 장해 가슴이 뭉클해 바라보는데 유양점이 말했다.

《여기에 다리나 놓는다구 수재에 시달리는 평양사람들의 고통을 다 덜어줄수 있다우? 허? 쉽게두 말하는데 돌을 쌓아 다리를 놓자면 거기에 돈이 얼마 들겠는지 생각이나 해봤소?》

다리나 놓는것으로 수재를 못 막고 놓자면 돈도 많이 드니 공연한노릇이라는 핀잔이였다.

《나같은 녀자가 다리를 놓고 무슨 인사나 받자고 그러는것도 아니예요. 사람들의 고생을 조금만이라도 덜어주자는 마음뿐이외다. 돈을 얼마 쓰는가는 걱정 안해도 되우다.》

백씨가 이쯤 마음먹었으면 그 고집이 절벽이라는걸 잘 아는 유양점이 혀를 내둘렀다.

《내 토목공사판에 굴러다녀 물계를 좀 아는데 자그만치 수천원은 들거요.》

《수천원이 아니라 수만원이 들어도 하겠수다!》

《그… 그게 진정이요?》

유양점이 한손을 쳐들고 입을 벌린채 백씨를 바라봤다.

《난 한입 가지고 두말 한적이 없어요.》

《허?》

유양점이 기가 막혀 말을 못 잇는데 장명학은 《누님의 결심이 섰다니 우리 그 좋은 일을 돕자구요.》 하고 추겼다.

세사람은 다리놓을 일을 놓고 의논했다. 공사에 대한 방도는 유양점이 내놓았고 인부모집은 장명학이 맡아하겠다고 나섰다. 공사에 지출될 비용도 넉넉히 락착을 지었다.

《두 어르신네가 나섰으니 난 비치지 않겠어요. 돈은 래일 아침에 우리 경림이한테 보내겠어요.》

유양점이 약간 비꼬는 소리를 했다.

《돈이 못하는 일이야 있겠소.》

그 소리에 백씨가 눈을 흘겼다.

《장마철전까지 기어쿠 놔야 해요.》

《인부들의 품삯을 높여주면야 되지요.》

《어른이 공사를 주관해놓으면 내 다리놓는데 든 돈의 절반을 안겨주리다.》

《내가 돈에 주린 사람 같소?》

《돈이 있어야 좋아하는 놀음도 할게 아닌가요.》

《언제는 그놈의짓을 그만두라 욕하더니 오늘은 그 놀음에 부추기는건 뭐요?》

《말려서 안할 위인이시우?》

《하하하.》

장명학이 들썩하게 웃어대자 유양점도 낯간지러움을 면하려고 덩달아 껄껄댔다.

강기슭을 떠나기 전에 장명학은 대동강을 바라보며 시조읊듯 말했다.

《강물이 제 곬을 바꾸지 않듯 사람의 마음도 언제나 바로 흘러야 하리로다. 살아서 남긴것 하나 없이 죽은 뒤에 후회한들 무엇하리오.》

백씨는 다리를 놓으려는 자기의 결심을 장하게 여겨주는 장명학의 마음을 고맙게 느끼며 말없이 걸었다.

《자넨 원래 문장에 뛰여나 초향과도 운을 맞춰가며 시를 읊군 했었지. 방금 읊은 시구도 뜻이 웅건하오.》

《놀리지 마오. 난 부친이 남긴 글자를 두고 좀 생각해보았을뿐이요.》

《스승님이 남긴 글자란 뭐요?》

《<바를 정>…》

비록 깊은 속내는 알수 없었지만 유양점은 스승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바를 정>은 스승님의 평생이나 같았지.》

백씨는 장명학의 집앞에서 뒤일을 다시금 부탁하고 그들과 헤여졌다. 집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는데 어느새 달려왔는지 유양점이 소매를 붙든다.

《아니, 바둑을 마저 두시지 않구…》

《정녕 결심했소?》

《뭘말이나요?》

《다리공산지 한것 말이요.》

《아니, 그야 다 의논한게 아닌가요.》

백씨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벌어들인 돈인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해야 할 유양점이다. 나이는 먹었어도 오늘날까지 백씨에게 류다른 감정을 가지고 사는것도 그였다. 백씨가 남달리 담이 크지만 녀자야 녀자 아닌가. 임금도 가난구제는 못한다는데 제 주머니돈이 많아보여서 되는대로 쓰자 하니 아무리 생각해봐야 단순한 녀자의 궁냥임이 분명하다.

《이보오 백씨, 내 그대 고집꺾을 사내가 못된다는건 아오만 지금이 어느때게 그런 결단을 내린단 말이요?》

《왜요, 그른가요?》

《지금 세월에야 돈밖에 의지할데가 있소? 사람은 대세에 따라 살기마련이요. 이건 세상리치요.》

《어르신네 말두 옳지요. 나도 나라가 망하고보니 눈이 텄고 번돈을 어디에 쓸가 생각한거예요. 솔뫼다리때문에 흘린 사람들의 눈물만이라도 걷어주고싶어 작정한것인데 뭐가 잘못됐나요?》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마오. 왜놈의 세상에서도 돈은 고개 숙이는 법이 없소. 백씨가 가진 돈이면 큰 기업도 일떠세울수 있소. 그렇게 되면 돈이 돈을 만들어주니 앉아서도 큰 벌이를 할수 있지 않소. 내 타산이 영 틀리는 소리는 아니니 새겨들어주오.》

백씨는 유양점의 말이 틀린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고 옳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나라는 저희들이 망하게 하고 이제 와서는 제살궁리만 하는게 옳은 처산가. 온 나라에 송충이같은 량반무리가 성해서 아래로는 백성의 등가죽을 벗겨내고 우로는 조정의 기둥까지 쏠아 마침내 나라를 넘어뜨리지 않았는가. 유양점의 심사자 량반들의 심보라는것을 깨달은 백씨는 입이 쓰거워 밀어치우듯이 말해버렸다.

《그땐 그때구 지금은 지금이라고 하셨지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귀한 나외다. 갈길이나 가시우.》

유양점은 백씨의 말을 탓하지 않았다.

《허어- 후회가 없도록 하오. 내가 그만큼 말해줬는데도 승호 만달산토지를 사지 않았소. 지금 와서 팔재도 살 사람이 어디 나서우?》

《그까짓 눅거리 돌산땅이 뭐가 아까와서요. 없는셈 치면 되는거예요.》

《다리놓는 일이 꼭 만달산토지 잃는 일같이 될가봐 그러오.》

《다리는 기어코 놓겠어요! 공사일은 어르신네만 믿겠수다.》

유양점은 백씨를 설복할 길이 없어 물러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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