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0

 

약골에 곤장 30대를 맞고난 도원국은 아예 송장이나 다름없이 찔 늘어진채 질질 끌려와 옥에 던져졌다. 형틀에 묶이우기 전부터 그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라졸들에게 동이 닿지 않는 롱담을 던지는가 하면 느닷없이 웃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하루종일 얼빠진 사람같이 앉아 말 한마디 안하였다. 자기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했던지 순순히 오라를 지고 토포사가 따져묻는 말에 공손히 대답만 거듭했다.

지금까지 평양감영에는 개화파인물이거나 련루자들이 수없이 잡혀왔는데 그때마다 소란스럽기 이를데없었다. 자기의 주장으로 항거하는자, 어느 한 죄목도 인정하지 않으며 맞서는자, 억울하다는 하소로 울고불고하는자, 사람이 제 목숨이 끊기우는데 무슨 발악인들 안하겠는가.

버러지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도원국은 마치 어서 죽여달라는듯 찍소리없이 늘어져있어 토포사와 형리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그눔이 분명 미쳤거나 얼쳐버린것 같네.》

《모르겠소. 대의명분이라는것을 지켜 죽으려는 의기를 가진 놈인지…》

《허허, 의주 갓바치자손에 글 한자 배운게 없는 잠상놈에게 대의명분이라니? 당치않은 말이요.》

《필경 저놈은 사흘을 못 넘기고 죽을게요.》

개처럼 끌려가는 자기를 두고 관속들이 나누는 말을 도원국은 희미한 의식속에서 가려들었다.

상놈이라 사람취급도 해주지 않는 량반세상에서 돈벌이에 미쳤던탓으로 죽음의 막바지에 이른 그의 심정은 그지없이 처량했다.

어찌되여 나라는 인간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대역부도죄? 개화파? … 참으로 보잘것없는 상놈에게 내려지는 죄명으로는 너무도 요란하다. 개화파가 무엇을 하자고 했는지조차 똑똑히 알지 못하는 내가 아닌가. 《자수자강》이라는 말은 귀에 익도록 들었지만 그 뜻이 뭔지 설사 일깨워준대도 알아들을리 만무한 나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역죄인이 되였다. 기가 막힌노릇이긴 하지만 그래도 잠상군으로 잡혀죽기보다는 낫지 않은가. 손바닥만 한 동네나 의주바닥도 아니고 온 나라를 들었다놓은 량반님네 정변에 의주갓바치자손의 이름도 한축 끼웠다는게 어디 보통일인가. 억울하긴 해도 죽는 명분이 대단하니 크게 한품을것도 없는가부다.

목에 칼을 쓴 도원국은 옥의 살창너머로 흘러가는 여윈 달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의주시골에서 사는 부모처자들은 내가 이 모양이 되였다는것을 바이 알길없다. 돈벌이를 한다며 노상 집을 떠나사는지라 집사람들조차 이제는 사립문을 열어야 오는가부다 한다.

살아온 인생이 지금처럼 생생히 돌이켜진 때는 없었다. 철이 들어서부터 있은 일들을 평시에는 무심히 여기며 잊고 살았지만 지금은 눈물속에 더듬게 된다.

팔삭둥이로 태여나 돌이 지나고 두살을 먹을 때까지 노전바닥에서 제대로 기여다니지도 못한 그였다. 천생약골인 자식을 두고 부모들은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을 지었던가. 부실한 아들이 사람구실하리라고는 애당초 믿지 않았다.

여섯살 잡히던 해 어느날 종일 가야 집안에서 맴돌던 아들이 동네아이들과 마당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원국아, 네가 아이들과 뛰여다니는걸 보니 영 부실한 종자는 아니였구나. …》

지금도 어머니의 그 목소리가 쟁쟁히 들린다. 병신자식 낳았을가봐 얼마나 걱정했으면 제발로 뛰여다니는 아들을 보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으랴.

대대로 가난뱅이 상놈네 집안이라 도원국은 열살때부터 아버지한테서 배워 말총으로 갓, 망건을 만드는 장인이 되였다. 갓바치라는 말이 듣기 싫어 야장간심부름도 해보았지만 시골에서 소발통에 박을 못따위나 날랐댔자 팔자가 달라질리 없었다.

도원국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간이 생겨났는데 그것이란 바꿈질이였고 타산이 밝아 남을 속여먹기를 잘하는것이였다.

16살때 장가든 그는 자기의 꾀바른 잔재간을 믿고 행상길에 나섰다. 일하기 싫어하고 제 오금을 무던히 아끼는지라 조그마한 보짐이나 들고다녔다. 장사시세를 폭넓게 볼줄은 모르고 코앞의 리만 따지다나니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할뿐 도무지 살길이 훤히 열리진 않았다.

그의 소원은 뼈심들이지 않고 큰돈을 버는것이였다. 장사에서 리득을 보아 돈냥이나 건사하면 우둔한 산골사람들을 얼마든지 속여서 부려먹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내보니 그가 그리워하는 돈이며 재물이라는게 한 가문이 대대로 이어가는 재산은 아니였다. 방탕한 놈은 할애비, 애비가 벌어들인 재산을 한시에 탕진해버렸다. 도원국은 제 눈으로 본 세상모양에서 주색잡기는 망하는 길이라는것을 깨닫고 그쪽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남다르게 살아보자고 무슨짓인들 안했던가. 돈욕심에 달이 뜨다나니 담이 커져 잠상길에도 서슴없이 들어섰고 사람들의 등을 쳐먹는 거짓말도 식은 죽 먹기로 해왔다.

도원국은 참형을 면치 못할 죄인이 된 오늘에야 살아온 한생을 두고 후회했다. 뉘우친다고 살길이 열릴리는 만무하지만 죽음이 눈앞에 닥치니 여한을 두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목에 칼을 차고 대역죄인으로 몰리우는것은 통분할노릇이나 죄없는 사람을 잡자고 모함했으니 그 죄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형틀에 묶일 때도, 곤장을 맞을 때도, 칼을 쓰고 앉은 지금까지도 눈앞에서 얼른거리는것은 백씨였다. 그에게는 희귀하게만 여겨지는 녀자다.

가난뱅이로 나기는 자기와 꼭같고 살자고 장사길에 나선것도 녀자일뿐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늘이 도와주는지 그 녀자에게는 돈이 따라서고 마주 오며 기다린다. 자기가 평생 그리워한 뭉치돈을 치마두른 녀자가 척척 벌어들이는게 좀스러운 사내의 시샘을 부추겼다. 어떤 때는 제 주머니에 들어올 돈을 그가 가로챈다고 여길만큼 질투를 했으니 심보가 고약한 놈이 자기다.

백씨가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장사에서는 신용이 첫째며 제 오금은 놀리지 않고 욕심을 부리거나 번 돈을 놀음판에 밀어넣는 일이 없도록 하라. …

그때 들을 때는 돈푼개나 챙긴 계집년의 주제넘는 훈시질로 코투레질을 하며 들었지만 지금 와서야 말뜻을 새기게 된다. 속여먹는 장사가 며칠이나 가겠는가. 하건만 자기라는 사람은 남을 속이고 등쳐먹는게 장사라고만 여겼다. 의주장사치 도원국이라면 장사판에 간특한 인간으로 소문났다.

밑지고 리보는게 장사여서 급한 대목에 손을 내밀면 도와나서는 사람이 있기마련인데 유양점이마저 눈에 차지도 않는 돈꿰미를 던져주며 고향에 내려가 갓바치노릇이나 해먹으라고 약을 올렸다. 평소에 사내답고 신용이 있었더라면 그같은 하대를 받았을텐가.

송월이를 끼고 도매점을 리용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일도 백씨에게 털어놓고 서로 좋게 합의했더라면 뒤일이 오늘같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속여먹는 버릇이 종시 일을 저질렀다. 지금쯤 송월이는 무사치 못할것이다. 백씨가 그냥 둘리 없다.

도원국의 후회는 끝이 없었다.

돈 몇푼이 아까와 사촌녀동생의 작은 소원마저 외면하지 않았던가. 린색하다기보다 고약한 놈이 나다. 얼마나 불쌍한 동생인가.

부모잃고 흘러다니다 먹고살기 위해 려인숙 부엌일을 하다가 주인놈에게서 열네살에 정조를 짓밟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내가 돈에 환장하여 혈육도 잊고 돌아다닐 때 생판 남인 백씨는 녀동생 순애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뒤늦게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차려야 할 은인을 몰라보고 제편에서 잡아먹자고 들었으니 이게 어디 사람이 할짓이냐.

야심이 앙심으로 변하기는 손바닥 뒤집기다. 백씨에게서 돈을 돌려쓰자고 갔다가 거절당하자 장사길이 막혔으니 살길도 없다고 여기며 앙심을 품었다. 백씨가 가지고있는 서필의 빚문서를 감영에 바치면 유양점이나 백씨는 대역부도죄로 참형을 당할게고 나에게는 적어도 도매점이 차례질거라고 어리석게 타산했다.

사람잡이로 돈벌이를 하자고 푼수없이 날치다가 이 꼴이 되였으니 내스스로 화를 불러들인셈이 아니냐. 남잡이가 제잡이라던 말이 정녕 옳았구나. …

옥리가 아침밥을 가져왔다.

도원국은 두손으로 칼을 붙든채 물었다.

《여보게, 임자한테도 지난밤 저승사자가 왔댔나?》

옥리는 기겁하여 발을 굴러댔다.

《에끼! 죽게 된 눔이 또 산 사람 물어메치자고 생트집이냐?!》

《헤헤헤, 난생처음 보는 자네야 내가 왜 물겠나. 돈고기 좋아하던 이 짐승도 이젠 이발이 다 빠졌다네.》

이놈이 정말 미쳐버린게 아닌가 하고 잠시 여겨보던 옥리가 버럭 화를 냈다.

《처먹기나 해! 너같은 눔 끼나르는 내 신세도 가긍하다.》

《이 사람 옥리, 내 저녁은 황천에 가서 먹을테니 부탁 하나 들어주겠나?》

《참형당할 주제에 무슨 부탁이야?》

도원국은 손에 든 그릇의 개죽같은것을 주르르 쏟으며 목메여 말했다.

《옥리, 백과부에게 전해주게나. 내가 죽기 전에 한번 만나잔다고… 그가 거절하면 내 한 말을 전해주기라도 해주게나.》

옥리가 침을 뱉았다.

《쇠가죽쓴 눔일세. 허-》

《옳네. 사람가죽쓰고 산 짐승이였지… 하지만 사람같은 사람을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주오. …》

《죽을 날이나 기다려!》

옥리는 더는 마주서있고싶지 않아 휭하니 돌아서며 역증스레 말했다.

이튿날 백씨는 도원국이 자기를 만나는게 마지막소원이라고 했다는 소리를 인편으로 전해듣고 무척 놀랐다.

도원국의 신상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짐작된다. 유양점이 나섰댔으니 엄청난 죄를 뒤집어썼을것이다. 그러니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진 격이 된 도원국이다. 그가 장사길에 나서서 바란것이 무얼가? 오늘 같은 신세나 되자고 떠난 걸음은 아니였을것이다. 사람이 떳떳하게 살자면 마음부터 곱게 바로 먹어야 한다.

백씨는 송도 자하동에서 만났던 오생원과 함께 그가 말하던 불교에 대해 생각했다. 이 세상 욕망을 다 버리기 위해 산중에 앉아 념불을 외우는 승려들이 그 얼마인가. 속세의 인간들은 어떤 념불을 외우며 사는가? 승려는 부럽지 않지만 나도 그들처럼 평생토록 안고살며 마음을 가다듬을 그 무슨 념불 같은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정신적공허감을 느꼈다.

감영에서 온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놈은 효수를 당하기 전에 죽을거외다. 서너차례 맞은 곤장에 뼈다귀가 부러져나가고 살점이 뜯기워 산송장이 되였으니 오늘해가 저물기 전으로 황천길에 들어설가보웨다.》

제 죽을짓을 한 도원국이지만 생전에 만나자고 청하니 가보는게 옳다고 백씨는 생각했다.

그가 자기 마음을 내비치자 경림이와 나리가 막아나섰다.

《어머니, 가면 안됩니다. 죽을 지경에 이른 놈이면 또 무슨 간계를 꾸밀지 알겠습니까.》

《어머니, 무서워요. … 감영이… 그런델 또 가시다니요.》

《너무 걱정들 말아. 혹시 무슨 부탁이라도 할는지 알겠니?》

그는 경림과 나리의 만류를 물리치고 감영으로 갔다.

한낮이지만 굴속같이 어둑컴컴한 옥안에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여버린 도원국이 무거운 칼에 눌려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저게 간사하기 이를데없던 의주잠상이 옳은가. 백씨는 죽은 사람같은 도원국을 바라보았다. 파뿌리같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 가려볼수조차 없었다.

《이눔! 고개를 쳐들어라! 누가 왔는지 봐야지.》

옥리가 소리쳐 말해서야 도원국은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다. 백씨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껴있지 않았다.

턱수염을 비틀며 간사하게 애햄거리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며칠사이에 이 모양이 되다니… 담이 큰 백씨지만 속이 후두둑했다. 죄인취급이 얼마나 험악한가를 처음으로 보았던것이다.

《오셨구려… 허허…》

초점없는 눈에 웃음까지 터치는 도원국의 모습은 더욱 무섬증을 불러일으켰다.

《원, 어찌다 이렇게…》

백씨는 부지중 이렇게 말하다가 죽게 된 사람앞에서 모르쇠를 하는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이 모양… 됐수다. … 인간세상에 나같은 놈은… 없어야 하외다. … 돈에 환장을 했지요. 고운 맘으로 벌려고 한게 아니라 도적놈심보로 살았수다. … 도적이라니… 아니외다. … 이놈의 나라안에 사모쓴 도적이 좀 많수… 돈에 미쳐서 사람잡이까지 했으니 천벌이 내린거외다. …》

후회막급한 도원국의 심정이 피눈물섞인 하소연으로 엮어졌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깨닫는다는것이 얼마나 뼈저린 고통인가.

백씨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다니 피할 길 없을텐데 저승에 가서라도 마음을 곱게 가지시우.》

달리는 말할수 없었다. 장규현 부자와는 다른 도원국이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덕을 받을자와 벌을 받을자가 갈라져있기마련이다.

《저승에 가면 이놈은 또 한번 벌을 받게 될거외다. 내 동생 순애의 혼이 거기서 기다리니 어찌겠소. … 백씨가 불쌍하게 죽은 그애의 혼백을 위로해주었으니… 진정 고맙소. …》

《순애라니? …》

《리문리려인숙… 서슬먹고 죽은 애가… 이 고약한 놈의 동생이외다. …》

백씨는 뜻밖에 알게 된 사실앞에서 한숨만 길게 내쉬였다. 도원국이 어떻게 자기가 성진우를 망하게 한 사연을 알고있는가.

《부탁이 있소. …》

《뭔데요?》

《이놈 저승길에 로자나 몇푼 보태여주구려.》

기막힌 소리다. 이승의 돈이라는것이 황천길 가는데도 쓰이는가? 백씨는 아연하여 마주보기만 했다.

《부디… 용서해주! … 그래준다면 백씨의 깨끗한 돈을 로자삼아 죄많은 이승을… 하직하겠소. …》

도원국의 마지막진정이 백씨의 가슴을 휘저어댔다. 그래서 나를 만나자고 했구나. 용서를 빌려고… 과연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준단 말인가.

백씨는 살창을 두손으로 잡으며 죽음이 자리잡은 도원국의 얼굴을 여겨보았다.

《누구나 한번은 가는 길인데 이승에서처럼 헛눈을 팔지 마시우.》

《고맙소.》

백씨는 무거운 걸음을 돌려세웠다.

송산자기장을 찾아떠난 길에 백씨는 장규현 부자를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옥고에서 풀려나온 후 보약재들을 여러번 보내주었다지만 제 손으로 들고간적은 없어 죄스러웠다. 요즘 와서 들리는 소문엔 장규현이 제발로 바깥출입을 한다는것이였다.

백씨가 대문을 넘어서자 장규현의 부인이 허둥지둥 달려나와 맞아주었다.

《어머님, 그새 편안하셨나요?》

《이 사람아! 령감, 아들목숨을 건져준 임잔데 이 로친은 인사차릴 형편이 못되여 한숨으로 날과 달을 보냈다네. 우리 명학이가 서울로 가기 전에 임자를 찾았네만 송도에 가고 없었지. … 어휴, 우린 임자까지 감영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구 속에 까맣게 재가 앉았네. …》

긴말을 모르던 점잖은 부인이 희여지기 시작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물섞인 탄식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버님병환은 차도가 있습니까?》

《임자 덕에 퍽 나았네. 원체 나이가 있는데다 마음이 대쪽같아서 감영에 끌려가 무릎을 꺾은 울화로 해서 병이 더했던가부네.》

《전 인사나 올릴가 해서…》

《어서 들어가자구.》

장규현은 서재에서 책을 읽고있었다. 얼굴에서 병색은 가셔졌지만 기침을 자주 깇는게 건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여보 령감님! 백씨가 문병을 왔어요.》

안해의 말에 장규현은 읽던 책을 밀어놓았다.

《이게 누군가?!》

《아버님, 늦게야 찾아와 죄송합니다.》

백씨가 큰절을 하자 장규현은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백씨가 제 얼굴 내밀지 않은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나. 헌데 임자도 옥고를 치를번 했다니 어인 일인가?》

《뭐 별고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송사를 해서… 이내 밝혀지는통에 감영출입을 한번 해봤을뿐입니다.》

무릎을 꿇은채 모로 앉은 백씨는 자기 신상에서 있은 일을 한마디로 말했다.

《어지러운 정사에 무지한 관리들만 모여있으니 죄없는 사람이라 해도 목숨을 빼앗기기가 쉽네. 부디 조심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올방자우에 손을 올려놓은 장규현이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했다.

《조정이란 나라의 기둥이고 대들보이건만 수백여년 좀이 쓸고 썩다보니 더는 바로서있지 못할가보네. 민심을 등지고 당쟁으로 세월을 보내는게 우리 백성들이 섬기는 조정이니 참으로 통탄할 일일세. 제일로 경계하게 되는건 저 바다건너 왜나라네.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며 방임해둔탓에 오늘에 와서 저 이리같은 놈들에게 양무리같은 먹이감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네. 사람이 철이 들어 제 할바를 알게 되니 어느덧 백발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나라가 그처럼 되는가보네.》

장규현이 통탄하는 말속에는 나라의 정사에 대한 념려가 깃들어있었지만 듣고있는 백씨에게는 자기와 무관한 일로 여겨지였다.

어떤 임금이 룡상에 앉고 어떤 정사를 펴든 하바닥장사군인 나와는 아무런 리해관계가 없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서 살고 가난뱅이들은 뜯기우면서도 제 살대로 살아왔고 살아간다. 하늘이 정한 이 리치야 변할텐가. 백성은 어진 임금에 어진 정사란 말을 대를 두고 들어오지만 궁성에서 울리는 바라소리만큼도 안 여긴다.

《어델 가던 길이 아닌가?》

백씨는 자기의 속을 들여다보는듯 한 장규현의 앞에 얼굴 숙이며 대답했다.

《떠나기는 아버님문병을 하자는 걸음이였고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다음 송산에 가려던 참입니다.》

《그런가. 가다오다 이 늙은이생각이 나면 들려주게나. 내 임자의 신세갚기엔 늙은 몸일세. 하지만 마음엔 임자가 내 자식같아 늘 보구싶네.》

장규현의 진정에 백씨는 눈앞이 확 흐려났다. 이 나이 먹으면서 살도록 량반들앞에서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한 비천한 계집이다. 그런 나를 학문으로 이름높은 량반인 장규현이 자식같이 여겨준다니 그 고마움에 눈물만 앞설뿐이다.

《아버님, 제 잊지 않고 자주 찾아와 인사를 올리렵니다.》

송산자기장은 열기를 뿜으며 활기에 넘쳐있었다.

감영에 끌려갔던 백씨가 무사히 풀려나왔다는 소식에 접한 젊은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까지 했다.

《어머님의 신상에 별고가 없다니 우린 살았네.》

《감영으로 데려갈 때 오라두 지우지 못했다네.》

《저런… 우리 어머니가 정말 대단하지?!》

《그러게 녀걸이라지 않나.》

《그 말이 썩 마음에 드네그려, 하하하.》

자기장이라는 정든 일터가 있어 마음편히 살수 있고 아무리 힘에 부친 일을 해도 미운 놈에게 피땀을 짜바치는 고역살이가 아니라 마음내켜 스스로 하는 일이여서 사람사는 맛을 진정으로 느끼며 일하는 그들이였다.

풍구타령이 건드러지게 울리고 목형으로 갖가지 자기모양을 만들어내는 패들이 흥취를 돋구어 화답하여 작은 골안이 온통 즐거움으로 들썩거린다.

백씨가 나타나자 자기장은 한층 기쁨으로 들끓었다.

끌끌한 젊은이들로 둘러싸인 백씨는 저마끔 팔을 잡아끌며 어머니라 불러대고 앞다투어 말을 하는통에 도무지 가려들을수 없어 빙긋이 웃고 섰다가 겨우 짬을 타서 한마디 물었다.

《내 여기에 와본지도 몇달 잘되는데 그새 앓은 사람은 없었나?》

《어머니, 그새 충청도내기 막동이가 재간이 무디여 조가비를 만들었습니다.》

《딸이 어때서? 임자네들같이 모두 방치매단것만 세상에 나오면 누구하구 짝을 뭇고 살텐가?!》

《하하하.》

어깨를 들썩대며 웃음보를 터치는 젊은이들속에서 진주의 모습을 찾아보던 백씨는 덕동에게 눈길을 주었다.

《덕동아, 진주가 왜 보이지 않냐?》

덕동이가 미처 대답할새도 없이 곁에 있던 젊은이가 나서며 시물거렸다.

《이 친구 쟁기는 어찌나 세찬지 자기굽는 일만큼이나 쉽게 척척 만들어내는데…》

《그만 놀리지 못해!》

덕동이가 속에 없는 화를 내자 다른 젊은이는 한수 더 뜬다.

《송산자기장일이 잘되는건 사실 덕동이가 색시 잘 만난 덕인가봅니다. 첫아들도 여기 자기장에서 보았구 연줄 꼬리를 무는데 덕동이재간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뭐, 하하하.》

진주가 아이를 뱄다는 말에 백씨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임자네들은 일을 하라구. 난 가서 진주부터 봐야겠네. 말마따나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데 있을라구.》

자기장일의 속내를 잘 아는 백씨는 시작부터 마감까지 맞물려 돌아가야 할 일손을 그이상 지체시키지 않으려고 걸음을 옮겼다.

《아 어머니! 하나만은 좀 봐주고 가십시오.》

다급히 백씨의 걸음을 멈춰세운 덕동이가 구워낸 자기들이 쌓인 곳을 가리켰다.

《보긴… 봐야 내가 뭘 안다구…》

《어머님이 무사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구 우리가 궁리를 모아가며 구워낸 새 자깁니다.》

《모양이 다른건가?》

《어머님집에 두고 쓰기에는 괜찮을줄로 압니다.》

증산에서 데려온 재간둥이 젊은이가 종이에 싼 자기를 가져다 나무덕대우에 놓고 조심히 펼치였다. 호리병이다. 백씨는 내심 놀라기까지 했다. 초라하다고 해야 할 자기장에서 이런 훌륭한 도자기가 나올줄이야 생각이나 했던가. 고작해서 문양고운 그릇개비나 만들리라 여겼다.

《이게 임자네들이 구워낸게 옳은가?》

덕동이가 백씨의 기쁨을 느끼며 격하여 말했다.

《감영에서 어머님의 집을 난탕친 다음날부터 우린 자기장의 명줄이 끊어진다고 생각하여 마지막으로 있는 재간을 부려보기로 했습니다. 이건 수백개를 마사버린 속에서 골라낸겁니다. 무고하신 어머님께 드립니다.》

《고맙네. 임자네들 그 마음이 이것보다 나한텐 더 귀하네.》

백씨가 눈굽을 훔치자 젊은이들의 어깨도 감격으로 물결쳤다. …

진주는 비석골에서 흐르는 내가에 불편스레 앉아 빨래를 하고있었다.

《진주야, 몸이 무겁다면서 쉬기나 할게지 왜 찬물에 손을 적시는거냐.》

제 생각에 잠겨 방치질을 하던 진주가 백씨의 나무람에 소스라치며 고개를 돌리였다.

《원, 애두…》

백씨를 앉은자리에서 보고보고 고쳐보던 진주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어머니… 정말 무사하셨군요. …》

얼마나 걱정속에 살았으면 이러랴 하는 생각이 치받쳐 백씨는 진주의 어깨를 쓸며 곁에 앉았다.

한줄기 바람이 스쳐지나가면서 일으킨 은백색고기비늘같은 잔물결이 반짝거리며 흘러간다.

《내가 너희들 마음고생을 시킨가부다. 여우새낀줄 모르고 끼고살았으니 그리됐구나.》

송월에 대한 원망을 쏟는 백씨였다.

물속에 비낀 진주의 버들잎같은 눈섭이 마주 붙을듯 모인다. 그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송월이가 한밤중에 여기에 왔댔습니다.》

《그년이?… 언제?》

《어머님이 송도로 떠난지 나흘째 되는 밤에…》

《무슨 일루? …》

《이걸 저한테 주고는 그길로 돌아서서 갔습니다.》

진주가 품속에서 비단천에 싼것을 꺼내여 백씨의 무릎우에 놓아준다.

《이게 뭐냐?》

《저도 모릅니다. 글을 읽을줄 모르니… 송월인 저더러 어머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말고 태워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밖에는…》

《뭐라구?!》

숨이 꺽 막히는 속에 백씨는 서둘러 비단천을 펼치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 서필과 유양점의 도장이 찍힌 빚문서다. 우환을 몰아온 화근단지가 진주에게 와있다니? 그것도 송월이가 밤중에 가져왔다면… 아, 그년이 지은 죄를 늦게야 깨닫고 나를 살리겠다구 손을 썼구나! …

서슬푸르던 가슴속의 가시벽이 마구 허물어져내리기 시작하자 백씨는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삼켰다.

노전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은듯이 엎드려있던 송월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자 그는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백씨의 행동에 겁이 난 진주가 황황히 물었다.

《아이구- 모진 년들이 만나 종시 일을 쳤구나! …》

가슴을 쾅쾅 두드려대던 백씨가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다리가 불편한 진주는 어쩔줄 몰라하다 자기장쪽에 대고 소리질렀다.

《여보!… 여보!…》

기다리고나 있었던듯 덕동이가 언덕우에 나타났다.

《빨리… 빨리 와요. … 어머니가…》

《뭐라구?! 어머니가 어쨌다는거요?!》

덕동이가 달려내려와 백씨를 부축했다.

《웬일입니까? 어디 아픈가요?》

한손을 내저으며 백씨는 터벌터벌 걷기만 했다.

송월아, 이년아! 주둥이가 없어 그 험한 욕을 처먹고 쫓겨나면서도 말 한마디 안했단 말이냐. 내가 너를 죽이고마는가부다. 돈이 너와 나의 인정을 칼로 잘라 끊어던졌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이년아, 너 지금 어데 있느냐. 이 험한 세상 어느곳에서 헤매고있느냐. 아, 내가 정말 무정한 년이다!

백씨의 눈앞에 송월이가 고스란히 남겨두고간 돈이며 옷가지들이 안겨왔다. 다시는 돈과 재물에 홀려서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떠나며 자기 결심을 남긴 송월이다. 하건만 그조차 괘씸하게 여긴 내가 아닌가. 송월이는 세상물정 잘 모르는 처녀라 혹 잘못을 저지를수도 있는것이다. 헌데 오는 눈비 가는 바람 다 겪었다는 나먹은 년이 그 작은 마음속도 헤아려보지 못하고 매몰차게 굴었으니 내가 무슨 사람이란 말인가.

《송월아!! …》

백씨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몸부림치며 귀없는 하늘을 향해 피타게 부르고 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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