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6

 

백씨는 증산읍 장마당을 돌아보았지만 고기잡이철이 아니여서인지 별로 눈에 차는게 없었다.

어데 가서 점심이나 대충 굼때고는 평양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며 걷는데 뜻밖의 녀인과 마주쳤다. 이게 누군가? 10년전 관가에 송사하여 목숨같은 천냥돈을 뺏아가지고 간다온다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길복의 처가 아닌가. 수원쪽에 내려가서 사는가 했더니 평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증산땅에서 살고있었구나.

반되가량의 좁쌀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마주 오던 녀자도 백씨를 알아보고는 눈이 올롱해서 쳐다볼뿐 그렇게 잘 놀려대던 혀바닥을 훌렁 삼켜버렸는지 벙어리모양이다.

《임자, 여기서 사나?》

쓰거운대로 백씨가 먼저 입을 열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백길복의 처는 옛날본새대로 대꾸질을 해댔다.

《죽지 못해 삽네다. 큰돈 벌어 평양바닥에 소문이 자자하겠다, 우리같은건 버러지 밟듯 할수 있게 돼서 속이 시원하겠수다.》

도적이 매를 든다더니 고약한 년의 심보는 여전하다. 낯가죽이 있으면 딱해하기라도 할텐데 도리여 제 버릇대로 싸움걸듯 해대니 과시 뻔뻔스러운 년이다. 백씨는 가난살이에 악만 남아 더해진듯 한 못돼먹은 주둥이질따윈 스쳐들으며 물었다.

《농사를 짓나?》

《부실한 서방 만나 호강합네다. 이년이 먹여살리지요.》

《허허, 그때 가진 돈이면 지금쯤 땅마지기라도 넉넉히 가졌을텐데…》

《그 병신사내가 호미쥘 위인이나 됩니까.》

《행길에서 입방아는 그만 찧고 집이 어덴지 어디 가보자구.》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지만 사람같지 않은 앙큼한 년의 입에서 그래도 같은 성씨며 오라비라고 해야 할 사내가 병신으로 불리우는게 속에 걸려 백씨는 그의 말을 막으며 고개짓했다.

《집인지 짐승우린지 한델 보고프면 가시자요.》

백길복의 처를 따라걸으며 백씨는 생각이 많았다. 가지 않는것만 못한 걸음을 하는것 같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한 살림이다. 나한테서 뺏아낸 천냥중에서 절반은 가졌을텐데 그 밑천으로 궁리를 하고 뼈심을 들였다면 왜 궁색하게 살겠는가. 천생 오금쓰기 싫어하는 건달군들이다. 돈이 생기면 먹어서 없앨 궁리나 하니 별수가 있는가.

읍거리 서쪽에 초가집들이 올망졸망 자리잡았다. 마구 내버린 짚덤불에서 닭 몇마리가 먹이를 찾아 느릿느릿 움직인다.

울바자도 없는 집마당으로 앞서서 들어가던 녀자가 걸음을 딱 멈춘다. 마당에서 비단바지저고리에 백고무신을 신은 장정이 발을 굴러대며 소리치고있었다.

《길복이 이놈, 네놈이 소작을 사는 농군이 옳으냐? 씨붙임을 해야겠는데 밭조차 갈지 않고있으니 세상에 너같이 게으른 놈은 처음 본다. 땅이 아깝다. 올해부턴 내 땅 부쳐먹을 생각을 하지도 말아!》

백길복은 두손을 마주 쥐고 허리를 구부린채 훌쩍훌쩍 코물을 삼키며 빌붙었다.

《지주어른, 제발 사정 좀 봐주시우.》

참으로 가긍한 꼴이 되였다. 집이라는건 백길복의 처가 말한것처럼 소외양간보다도 못하다.

마당 한구석에서 총각 하나가 고개를 수그린채 지게다리를 발로 툭툭 차며 누구에게라 없이 마뜩지 않은 눈을 흘긴다. 그런즉 저 총각은 어머니가 안아키운 손자가 분명하다. 덜돼먹은 길복이 부처는 그지없이 미웠지만 총각의 측은한 정상에 백씨의 가슴이 알찌근해났다. 육신 놀리기 싫어하는 아비어미를 만났으니 그 버릇을 따른다면 자식의 앞날도 뻔했다.

《길복이 네놈따윌 믿구 내 땅에서 또 농살 망칠순 없다!》

지주는 칼로 베듯 말하고 돌아서다 백씨와 마주쳤다. 보매 낯이 익은지라 백씨가 먼저 인사했다.

《그새 편안하셨나요?》

《아니, 이게 평양 백씨가 아니요?》

《접때 어른이 내 땅을 섭섭치 않게 샀더랬지요?》

《내가 그걸 잊겠소?》

둘사이에 이런 말이 오고갈 때에야 백씨를 알아보고 기겁한 백길복이 학춤을 추며 어디에 몸을 숨기지 못해 빙빙 돌기만 하는데 함지를 내려놓은 녀자는 행여나 하여 올롱한 두눈을 연방 깜짝거려댔다.

《이 집에서 지주어른의 땅을 소작 부치댔는가요?》

《농사짓기는 통 글러먹은 사람이외다.》

백씨는 백길복의 쪽에 한동안 눈길을 보내고 지켜보다 소리내여 혼자 웃고나서 말했다.

《그 땅을 나한테 팔지 않으시려우?》

《아니, 백씨가 내 땅을 도루 사선 뭘 하시려우?》

《값은 어른이 부르시는대로 흥정없이 사지요.》

《차라리 잘됐수다. 건달군에게 소작주기보다 팔아치우는게 낫겠으니.》

《아이구, 맙시사. 동냥은 못 줄망정 찾아까지 와서 쪽박을 깨다니… 그 땅마저 부쳐먹지 못하게 하니 그럼 우린 굶어죽으라는거요? 허나새나 한지붕밑에서 산 형제인데 옛날일로 이다지 모질게 구는 법이 어데 있소? …》

백길복의 처가 두손으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원망을 터뜨렸지만 백씨는 들은척도 않으며 마당구석에 모로 선 총각을 손짓으로 불렀다.

스적스적 걸어오는 모습이 그에게는 측은하게 보였다. 부모들이 안겨준 한을 그에게까지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것이였다. 이렇든 저렇든 백씨가문의 후손이 아닌가.

《이름이 수덕이지?》

총각은 머리만 끄덕인다.

《할머니생각이 나니? …》

《예, … 고모두…》

눈물을 삼키는 대답이 백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알아둬라. 일하지 않는 놈의 입에 밥을 떠넣어줄 사람은 없다. 내가 산 땅은 네것이니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알겠지? 사내나이 열네살이 작지 않다.》

총각의 어깨를 두드려준 백씨는 지주에게 땅값을 치른 다음 뒤일을 부탁하고나서 증산읍거리로 향했다.

옛날일을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녀편네 손아귀에 쥐여사는 병신오라비로 해서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이게 백씨 아니요?》

무거운 걸음을 막아서는 사람은 유양점이다. 전보다 신수가 더 멀끔해졌다. 토목공사에서 벌이가 잘되는 모양이다.

《어른이 이 고장에서 물보막이 한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무슨 일로 왔소?》

백씨의 심중과는 달리 유양점은 기분이 좋아 따라걸으며 물었다.

《씨붙임전에 내 가지고있던 땅을 팔자구요.》

《팔았소?》

《팔지 않구요.》

《허허, 백씨가 땅을 가지고 부동산매매에 어지간히 재미를 봤소그려.》

《이자 뭐라구 했나요? 부동산?…》

《부동산매매라구 했수다.》

《처음 듣는 소리군요.》

《백씨야 모르면서도 척척 잘하질 않소. 내 토목공사로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민유지라는게 그 소유권이 온전한게 별로 없었수다. 풀어말할것 같으면 왕궁이 가진 땅과 관청소유로 된 땅이 아닌 이 민유지라는건 나라의 통제밖에서 지주가 욕심을 부리는데 따라 늘어나기도 하면서 개인이 팔고 사기를 거듭하는통에 누구의것인지 명백치 않다 그 말이요.》

백씨는 유양점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 하긴 자기가 사고 판 땅의 주인은 관청이 아니라 개인이였다. 그러니 가지고있는 땅은 민유지라는 말이다.

《어른생각은 어떠시오? 땅도매를 그냥 하는게 옳을가요? 아니면 그만두는게 좋을가요?》

왕궁소유요, 관청소유요 하는 말에 불안해진 백씨는 양점에게 다우쳐물었다.

《백씨가 묘한 치부방법을 가졌기에 나도 놀라는게 아니요. 이 나라 국정이라는게 심히 문란해져 토지가 얼마라는것이 문서에 올라있지도 않소. 농사군들이 땅을 버리고 류리도산하니 황무지만 늘어나는데다 관청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 내쳐두다보니 지금같이 돼버린거요. 그 틈에 백씨가 끼여들었으니 귀신같다 그 말이요.》

《원참, 그건 욕하는 소린가요 비웃는 소린가요? 난 통 무슨 소린지…》

백씨가 못마땅스레 흘겨보자 유양점은 시뭇이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욕이라니, 감탄이지요. 거기선 이제 더 큰돈을 벌게 될거요, 아무렴!》

어쨌든 땅도매란게 해볼만 한 일이라는걸 확신하고 난 백씨는 그냥 히물떡대는 유양점에게 온곱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첩까지 뒀다는게 사실이나요?》

유양점이 뚝 멎어서며 마주본다. 놀라거나 켕겨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다.

《왜 시샘이 나오?》

《허- 별 실없는 소릴 다 듣겠수다. 본댁한테서 본 자식이 몇인데 씨받이를 또 한다니 걱정돼서 하는 말이예요.》

유양점은 입만 쩝쩝 다신다. 그르다고는 할수 없지만 첩에게 홀딱 빠져 기생집까지 멀리한다. 첩의 몸에서 아들까지 보았으니 젊은 계집 데리고 사는 멋도 있다. 벌어들인 돈은 첩에게 다 맡겨놓고 다니다싶이 한다. 욕심이 없는가 슬그머니 지켜봤지만 쓰라는외에는 한푼도 다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백씨앞에서 첩자랑하다가 무슨 코를 떼울지 모른다.

백씨는 유양점을 만나고보니 도원국의 소식이 궁금해났다. 지난해 가을 자기장에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은게 전부인데다 도매점걸음을 끊었으니 은근히 이상하게 여겨졌기때문이다.

《의주사람은 만나군 하나요?》

백씨의 물음을 받은 유양점이 무슨 기미를 채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고 저울질하고나서야 입을 열었다.

《원국이 그녀석 쫄딱 녹은가보오.》

《그건 웬 소리나요?》

《허- 그 사람이 잠상에 재미보다 끝내 덫에 걸렸소. 모은 돈을 다 가지고 송도에 가서 어벌이 크게 왜나라 은을 한관이나 둘러메고 오다… 은률에서 나루배 타고 삼화나루에 발디디기 바쁘게 관가의 손아귀에 걸려들었다오. 관청으로 끌려가다 뒤를 보겠다는 핑게를 대고 도망쳤다는거요.》

《그래 잡혔나요?》

《관가의 라졸들이 대동까지 쫓아가다 그만두었다고 하는 소릴 들었소.》

《언제 있은 일이나요?》

《지난해 가을 어느때쯤 될거요.》

덕동이가 한 말 그대로다. 관가의 라졸들이 거기까지 쫓아왔더라면 자기장은 깨여져나갔을것이다.

백씨는 의주잠상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을 못 놓고 살기에 은근히 벼르고있었다. 한번 만나기만 하면 된욕을 해서 아예 도매점에 발길질을 못하게 만들리라고까지 마음먹고있다.

《잠상이라면 살인한 놈만큼이나 크게 여기며 잡아들이던 관청인데 왜 쫓다가 그만뒀을가요?》

유양점은 고개를 끄덕대며 웃었다.

《그것두 나라가 돼가는 꼴이 비낀거요. 잡아 죄인으로 죽이던가 옥살이를 시키면 잠상물건은 나라에 바쳐야 하오. 그러니 잡아들일것 같이 냅다 쫓아 버릇도 떼주고 뺏어낸 잠상품은 관청의 큰어른부터 시작해서 아전 나부래기들까지 나누어 삼키는거요. 앉은자리에서 권세를 휘둘러 잠상을 해먹는셈이 아니겠소. 원국이 같은게 아무리 깜찍한 놈이라구 해도 아무렴 뒤 보겠다는 얕은수에 속을 라졸들이고 놓치고 쫓을 사람들이겠소. 허허허, 세상은 이렇게 속여먹고 등쳐먹으며 살아가는가보오.》

들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백성을 법으로 다스린다는 관청이 제 배 채우려고 잠상털기를 하는걸 보면 보통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하기에 잠상은 세도줄을 잡지 않고서는 못한다는 말이 있다. 좀장사군들은 장터마다에 널려서 살자고 악을 써대는데 관가의 대청마루에 높직이 앉은 량반관리들은 큰 도적질로 배불리는 세월이다. 갈수록 문란해져서 나라지경안에 법이라는게 없어져가는 판이니 잘못 걸려들면 도원국의 신세가 되고만다.

《하필이면 그노릇을 할게 뭐나요.》

마음 한구석에 도원국의 일이 안되였다는 생각도 들어 백씨는 유양점을 나무라는 눈으로 바라봤다.

《허- 내가 시켰소? 그렇게 보지 마오. 그녀석 욕심은 한번에 2만~3만냥 걷어쥔 다음 큰 장사판을 벌리겠다는건데 일확천금이 어데 그리 쉽게 차례진다오.》

《에구, 난 여기 어디서 지짐이나 한짝 사먹구 가야겠어요.》

유양점과 말장단을 피우다 갈길 늦을것 같아 백씨가 서둘러댔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음식점에나 갑시다. 백씨 돈을 쓰라구는 안할테니…》

《난 싫수다. 나살이나 있는 년이 백주에 남의 사내와 맞상들이를 한다니 될말인가요.》

백씨가 두손을 내흔들자 유양점은 화까지 냈다.

《겉으로 한번 그래보면 큰일이 나우?!》

《이런 성화라구야.》

《허허, 내 두해째 벌려놓았던 물보막이공사를 끝냈소. 인부들의 품삯을 제쳐놓고도 수천냥을 어렵지 않게 벌어들이오.》

《수천냥이라니? 큰 물보 막으면 수만냥이 오간다는걸 내가 모르는줄 아나요.》

유양점이 두눈을 찡그려붙인다.

《백씨한테 비기면 그게 무슨 큰돈이겠소.》

《자꾸 그러면 난 가겠어요.》

《내 들었소. 백씨가 나서서 많은 돈을 써가며 장규현 부자를 빼냈다는걸. 오늘 이렇게 붙드는건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는거요.》

《어른도 곁에 있었더라면 그랬을게 아니나요.》

유양점이 한상 잘 차려주어 대접을 받은 백씨는 헤여지기에 앞서 물었다.

《참, 서울량반이 나한테서 꾼 돈 1만냥말이예요. 이젠 해를 넘겼는데 어찌된 일인가요?》

참으로 대답하기 궁색한 물음을 받은 유양점이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내 그 사람 소식을 인츰 알아보겠소. … 무슨 영문인지 통 소식이 없소그려.》

《이상해요. 선상이요, 미곡상이요 하던게… 한여름 기다려봤댔자 배는 고사하고 물건짝 하나도 넘겨받지 못했어요.》

《안됐소만, 그때 내놓지 말았어야 할 돈이였소.》

《예?! …》

리문리려인숙이 음식점으로 변한지도 여러해째 되여온다. 평양랭면과 함께 다른 음식도 잘하여 제법 흥성거렸다.

음식점 구석진 자리에 외따로 떨어져 밥상을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도원국이다. 안주래야 구운 칼치 한토막, 콩나물 한접시, 고기를 추려낸 닭뼈다귀다.

술을 몇잔이나 했는지 풀어진 눈으로 상우에 널려진 동전잎들을 얼빠진듯 들여다보고있다.

도원국은 두눈을 쪼프린채 동전잎을 뚫어지게 보고 또 보았다. 가련한 몰골이 된 자기다. 수천냥을 가지고 제노라 돌아치던 내가 걸인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한번걸음에 만냥이상의 리를 보자다가 관가에 꼬리잡혀 홀지에 다 털리웠다. 목에 칼을 차지 않은것만도 하늘이 도운셈이다. 살고보니 살아갈 앞이 막막했다.

《괘씸하고 고약한 놈! …》

얇은 입술을 떨며 도원국은 악이 치밀어 중얼거렸다.

장사길을 다시 이어보자니 주머니가 텅 비여 유양점을 찾아갔다. 토목공사판을 벌려 돈벌이가 잘된다니 천냥쯤 돌려쓰자고 하면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이게 누군가? 어이구, 살아있었나?》

《흥, 운수가 트인 모양인데 너무 빈정대지 마오.》

《저런 말버릇 봤나. 좌우간 오랜만인데 한잔 하세나. 내가 한턱 내지.》

유양점이 끌어대기에 오탄술집으로 갔다. 서필을 단단히 골려먹은 집이여서 웃음집이 흔들거려난 도원국은 키득키득 웃어대며 사방을 둘러봤다.

입심 사납기로 소문난 주인아낙네가 살찐 암닭처럼 뚱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이젠 발길 안하는가 했더니 술맛이 좋으니 또 왔수다레.》

유양점을 제쳐놓고 도원국이 목을 내뽑았다.

《그때 외상술값은 다 받았소?》

《하- 내레 누구라구요. 목대 세우는걸 아예 짓밟아줬시다.》

《잘했수다. 그놈이 여우새끼외다. 남의 주머니속 돈 훔쳐먹는 도둑이외다.》

개화파가 망했다는것을 안 뒤부터 서필의 이름만 생각나면 이를 가는 도원국이였다.

술집주인과 도원국이 찧고 까부는 소리를 듣고있던 유양점이 큰 소리쳤다.

《그만 수작질하고 어서 술이나 들여오우. 숭어탕에 소갈비도 곁들여서…》

《와 소리 지르시우. 귀구멍 먹겠시다.》

《하하하.》

술이 거나하여 유양점의 기분이 뜰 때 도원국이 기회를 노려 말했다.

《이보시오 양점어른, 내 하도 딱한 대목이여서 그러니 천냥만 꿔주시우. 리자는 거기서 마음대루 붙이시구려. 이해안으로 갚을테니…》

유양점은 부한 몸통을 흔들대며 도원국을 바라보았다.

《천냥? …》

《그렇소.》

《열통이 작아. 의주 갓바치 자손이 갈데 있나.》

《더 돌려주면야 좋지.》

유양점이 손을 내흔들었다.

《안되네. … 내 임자 거덜이 난걸 모르는줄 아나. 천냥이 아니라 만냥을 줘두 또 그 꼴이 될걸. … 자네 내 말대로 할텐가?》

《하지, 하구말구.》

껄껄 트림을 하며 유양점은 얼마간의 돈꿰미를 술상우에 올려놓았다.

《이걸 가지구… 임자 삐여져나온 의주로 가라구. 게서… 그것말이야. 갓이나 망건따위를 만들어 밥술이나 들게.》

기가 막힌 훈시요, 량반퇴물의 로골적인 하대라 도원국은 두손으로 가슴을 박박 뜯어댔다. 제 수중에 돈이 없으니 아무리 독을 써도 서리맞은 뱀이나 다를바 없었다. …

도원국의 옆자리에 앉은 술군들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지껄여댄다.

《난… 이 집에 오면 술… 술맛 없네…》

《집 가려가며 술 … 먹겠나…》

《아니야 이 집에 … 귀신이 붙었다구 해… 몇해전 이 집에서 열네살 난 처녀가… 서슬 먹구… 죽은걸 모르지? …》

《주인녀석이… 어쨌다지? …》

《그-래… 그… 그놈도 맞아… 뒈졌다누만.》

《지은 죄야… 어디 갈라구…》

《거-럼, … 내 말하지 않나… 이 집에 그… 그 처녀의 원귀가… 살아있는것 같아…》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마지막술잔을 비워내친 도원국은 더 앉아있을 집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어 발딱 일어섰다.

음식점을 나서니 어둠이 뒤덮인 뒤였다.

《이 집에 그… 그 처녀의 원귀가… 살아있는것 같아…》

귀신소리가 뒤따르기에 도원국은 《상서롭지 못한 집이렷다.》 하고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백씨를 만나 비위를 부려보는 길밖에 없어 그는 더듬더듬 발길이 가는대로 걸었다. 어쩐지 께름직한 걸음이다. 도매점에서 송월이와 짜고 잠상품을 판걸 백씨가 아무렴 모를가. 귀신은 속여도 장사에서 백씨는 얼려넘기지 못한다. 헌데 송월이가 여직 붙어있는걸 봐선 다른 일이 없는것 같기도 하다. 에라, 막판인데 이러구저러구 잴것 있나. 민한척 하고 그년의 치마자락에라도 매달려보는게지.

도원국은 백씨가 늦은 저녁상을 물릴 때 그의 집에 찾아들었다.

《헤헤헤, 그새 편안하셨소? 인사가 늦었수다.》

갑삭대고나서 권하지도 않은 자리부터 차지하는 도원국을 바라보며 백씨가 이 사람이 왜 나타났는가를 대번에 짐작했다.

《어떻게 그리 초라한 행색이요?》

생각보다 인사가 차겁다는걸 알면서도 도원국은 지어먹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매달려서 장사밑천을 얻어내야 한다. 여기서 저년의 발길에까지 채우면 끝장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말재간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 생겨먹기를 좀스러워 그러니 지나간 일들은 나삐 생각지 마오. 장사길에 나서서 안다녀본 길이 없고 만나 못본 사람이 없지만 백씨만 한 인품을 가진 녀인은 다시 없는줄 아오. 내 혀끝이 갑삭해서 춰올리는 말로는 듣지 마시우.》

한무릎을 세우고 앉은 백씨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채 뱉아내듯 말했다.

《공치사는 그만 하라구요.》

《헤헤헤, 사람이 사느라면 신세도 지고 빚도 지기마련인데…》

《도매점신셀 얼마나 더 지려우?》

《하-》

도원국은 시작부터 멱을 눌리우자 숨결이 급해났다. 그러니 도매점에서 송월이와 벌린 일을 다 알고있단 말인가. 그년이 종시 견디지 못해 다 토설한 모양이다.

《그건 내 잘못만이 아니외다. 송월이가 어떤 년인지는 내가 더 잘 알지요. 나이는 작아두 박천에서부터 돈 벌 궁리만 해온 년이외다.》

《나살이 아깝구려. 송월이한테 나쁜 버릇을 붙여준게 누구나요? 난 아직은 모르는척 하구 살아요. 그쪽 입이 먼저 열렸으니 그년도 기갈을 당해야지요.》

도원국은 제 혀바닥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나 장사밑천을 얻어낼 생각으로 등 달다보니 제 입이 먼저 터진셈이다.

《도매점에 잠상품을 들여미는건 나를 망하게 하자는 심보가 아닌가요?》

《잠… 잠상품을 줬다니…》

《그런 값비싼 물건들을 송월이가 대체 어떻게 구했겠나요? 량반대가집을 찾아다니며 송월이가 팔아넘긴 물건들이 제발로 굴러들었다는건가요?》

《그건… 난 모르오…》

《모르오- 허허, 의주잠상이 간사스럽다기에 그쯤 여겼지만 다시 보니 장사를 해먹긴 글렀수다!》

백씨가 손바닥으로 노전바닥을 내려치자 도원국은 두눈을 감아버렸다. 여긴 애초 오는 걸음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펀뜩 떠올랐던것이다.

《돈푼이나 건사했다구 사람을 얕잡아보지 마오.》

마침내 도원국도 기가 올라 독을 썼다.

《내 언제든지 만날 날이 오리라 생각했구 별러온 말이니 합세다. 장사란 제 육신 바치는 고역이외다. 뼈심 들이지 않구 남을 속여넘겨 큰돈 벌겠거니 생각지 말구 장사법도부터 바로 배우는게 좋겠어요.》

도원국은 제 수염을 뽑을듯 비틀어댔다. 조막만 한 머리를 주억거리며 비린청으로 대답했다.

《백씨의 고견을 내 백골이 되도록 잊지 않으리다.》

백씨의 집을 뛰쳐나온 도원국은 들개처럼 평양골목을 마구 헤매였다.

개도 뛸 구멍을 열어주고 쫓으라고 했다. 양점이 이놈! 백과부 이년! 내 네년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참고 견딜줄 아느냐?! 물어뜯고야말테다. 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괘씸한 년놈들아!

선불맞은 짐승같이 날뛰던 도원국은 종로 한복판에 망두석인양 우뚝 서버렸다. 어둠속에서 그의 두눈만이 광기를 띠고 희번득이였다. 간신히 묶여있던 상투머리를 두손으로 움켜쥔 그는 정신없이 쥐여뜯었다.

한참후 그의 얼굴이 하늘로 쳐들렸다. 분별없이 터져오르던 뇌수의 폭발이 멎었다. 한줄기섬광이 뇌리에 번쩍이였다.

어둠속을 뚫고 눈앞으로 서필에게 꾸어준 백씨의 만냥 빚문서가 번개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의 머리속에 잔악한 간계가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똬리를 틀었다.

《다 죽게 된 판에 내가 무슨짓인들 못하겠느냐! … 이년놈들, 어디 두구보자!》

도원국은 정말 미쳐버린듯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악청을 내질렀다. 이어 그는 천방지축 내닫기 시작했다.

백씨의 도매점에 이른 그는 걸음을 멈추고 사위를 살피고나서 대문을 두드렸다.

《뉘시오?》

《나외다, 의주사람이요.》

《이 밤중에 어떻게?》

《송월일 잠간만 만나고 갈 일이 생겨서 그럽니다.》

대문빗장이 열렸다.

도원국은 로인에게 갑신대며 인사했다.

《늦게 와서… 안된 일인줄 알면서…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외다. …》

《어험, 어험. 얘, 송월아.》

로인이 찾자 안채에서 송월의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누가 왔어요?》

《의주손님이 또 왔구나.》

《제 잠간만…》

도원국은 급히 송월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종무소식이더니…》

송월은 하품을 삼키며 맞아주었다.

《그 문서말이다.》

《문서라니요?》

《네 어미가 서울량반한테서 받은 빚문서…》

《이 밤중에 그건 왜요?》

《그게 어데 있다구?》

《어머니방 장농안에…》

《분명하지?》

풋잠에서 금방 깨다나니 채 정신을 못 차렸던 송월은 도원국의 이상스러운 물음에 의아해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됐다! … 난 간다.》

도원국은 이발을 부드득 갈며 돌아서서 가버렸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