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4

 

장명학의 집은 내천면 무렬사골 앞동네에 자리잡고있었다.

장규현이 병석에 있어 백씨는 몇차례 문병을 갔다. 힘자라는껏 성의를 다해 약재를 얻어 병구완에 보탬을 주자고 애썼다.

두달이 넘게 순안과 사동 미림리쪽 땅들을 사느라 동분서주했고 송산자기장일도 돌보느라 겨를이 없었던 백씨는 오늘은 마음먹고 틈을 내여 장명학의 집을 찾아가고있다.

백씨의 마음속에 장규현은 살아있는 보살님이였다. 글 한자 모르는 그였지만 장규현에게서 듣는 한마디한마디는 금언같이 귀중하게 여겨졌다. 언제 봐도 비천한 녀자라고 내려다보는 일없고 마주앉으면 제 딸처럼 사랑을 담아 일깨워주는 사람은 장규현 한사람뿐이다.

장규현의 집은 대문앞에 서기만 해도 백씨에게 존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세월속에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일각대문의 기와, 너무도 눈에 익혀서 백씨조차 읽게 되는 대문에 새긴 《길할 길》자. 대문 돌쩌귀가 긁히우는 소리조차 거문고소리처럼 들린다.

《이게 백씨 아닌가? 어서 오라구.》

《어머님, 그새 몸건강하셨습니까?》

백씨의 인사를 받은 반백의 부인은 향나무와 화초로 우거진 마당의 돌길로 안내하며 다정히 말했다.

《바쁜걸음을 했겠구만.》

《제가 생겨먹기를 우둔한데다 배우지 못해 무식하다보니 인사가 뭔지 모릅니다.》

《무슨 소릴, 우리 령감은 백씨가 지어온 약재로 병 털구 일어나 앉았는데. 그러지 않아도 오늘 아침 임자소식이 궁금하다고 말씀하질 않겠나.》

《저같은걸 다 사람으로 여겨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게. 령감은 지금 별채에서 명학이와 그애 친구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중이야.》

《그럼 전 어머님과 가져온 닭곰이나 만들고는 돌아서렵니다.》

《가다니? 안되네. 령감이 알면 큰일나겠네.》

별채앞에 이른 부인이 방안에 대고 조용히 알렸다.

《령감님, 박석골 백씨가 왔어요. 오늘도 닭곰 할걸 또 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규현의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어서 들어오게 하오. 마침이네, 보구싶었는데.》

부인이 백씨의 등을 밀며 정겹게 말했다.

《보라구, 어서 들라지 않나.》

방안에 들어선 백씨는 무릎꿇고 절을 했다.

《아버님, 병환을 털고 일어나 앉으셨다니 정말 기쁩니다.》

《어서 바로 앉게. 그새 무고했나? 백씨야 앓는 법을 모를테지.》

《전 날 때부터 박달나무처럼 든든해서 고뿔 한번 앓은 일 없습니다.》

《허허, 그저 백씨의 훤한 얼굴을 봐야 마음속주름이 하나라도 펴인다니.》

고개를 들고 한옆에 비켜앉으니 장명학이 《누님 오셨소?》 하고 인사를 차리고 그옆에서 유양점이 반갑다는 눈길을 보냈다. 장명학의 친구가 왔다기에 불편스러웠는데 과히 어려운 사람이 아니여서 백씨는 마음이 놓이였다.

《삼강오륜을 내 그르다고는 하지 않네만 녀자를 삼종계률로 얽어매놓고 심히 차별하는건 옳다고 여기질 않네. 내가 백씨를 남다른 눈으로 보는건 대세의 가르침일세. 량반사대부들이 업신여긴 장사치들이 아닌가. 연암선생의 글에도 있지만 량반권세도 재력을 이기지 못해 사모까지 팔지 않나. 장사치라 하대할것이 아니라 상인이라는 사회적신분을 당당히 주어 상업을 도모했더라면 나라의 경제형편이 오늘에 이르지는 않았을거네.

내가 말하는 상업이란 제땅에서 맴도는 장사가 아니라 청, 왜, 아라사는 물론이고 바다건너 혜초스님이 다닌 나라들에까지 오가며 교류를 하는걸 말하는거네. 그랬더라면 선진문명이 우리 나라에도 일찌기 들어왔을게고 개화가 이루어졌을게 아닌가. 쇄국일변도가 오늘에 미쳐서는 5천년력사를 가진 이 나라를 은둔국으로 만들어놓았네. 실학을 받아들여 실사구시를 하여 옳게만 정사를 했어도 지금의 형편에는 이르지 않았을거네. 다산선생이 뇌심초사하여 나무기중기를 발명했지만 누가 그걸 이어서 더 훌륭한것으로 만들었나? 없네. 문명을 중시하고 상업에 힘을 기울였더라면 섬나라 오랑캐들한테서까지 핍박을 당하며 허리숙이는 꼴은 보이지 않았을거네.》

대세를 관망하며 통탄해마지 않는 장규현의 목소리는 열기를 띠였다.

백씨는 오늘 숱한 장사길을 다녔지만 모르고 산 상업이라는 말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였다. 얼마나 수모를 받아왔고 받고있는 장사치들인가. 아마 그들이 없다면 량반님네들이 제 등짐으로 동서해의 물고기를 날라다 먹고 존귀한 부인네들이 입을 비단, 모시를 집에서 짤텐가. 권세로 턱밑 진상을 받으면서도 장사군알기를 제 집에서 기르는 개보다 못하게 여긴다. 량반도 먹어야 살지만 상놈 역시 먹어야 한다. 먹고사는 길을 이어주는게 장사고 장규현의 말대로 상업이라 이른다면 마땅히 사람취급을 해줘야 할 장사군이다.

《아버님,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백씨는 배운것 없는 녀자가 방자하게 앉아있는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말했다.

《너무 옹색해말게. 내 말을 더 들어서 나쁠거야 있겠나. 벼슬길을 바라보지 않으며 서원을 차려놓고 학문을 론했다지만 이 늙은것이 헛되이 공리공담만 해왔은즉 그게 바로 우리 왕조의 5백년 가까운 걸음이 앉은뱅이걸음이라 그 말이네. <도덕>을 숭상한다면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바른말 한마디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페단이요, 당쟁으로 날이 밝고 해가 지는 기막힌 권력싸움질이 조정의 정사였으니 세상에 내보이기 부끄러운 일이로다. 이무렵에 와서 서울형세를 들으니 개화소리가 들리는데 내 보건대 때늦은 거사이니 뒤일은 보지 않아도 알고도 남음이 있네. 양점인 호방한 사내라 설마 눈감고 앉아있진 않을텐데?》

장규현이 자기 소견을 펼치고나서 유양점에게 눈길을 돌리자 그쪽에서 황황히 대답했다.

《스승께서도 일찌기 벼슬길을 버린 제가 요즘 와서는 토목공사로 나라의 농사에 보탬을 주려고 하는줄 아시지 않습니까.》

《허허, 자넨 유흥을 멀리 하고… 심신을 가다듬게. 물보를 막아 농사가 잘되면 그 또한 마다할 일은 아니로되 지내 돈벌기에 눈이 어둡지 않도록 하게.》

《알았소이다.》

유양점은 무릎꿇고 고개숙이며 숨가쁜 소리로 대답했다.

돈에 눈이 어두워지면 안된다는 장규현의 말은 백씨의 마음도 바늘로 찔렀다.

《명학이는 서원이 철페되고 가세가 어려워진다고 하여 딴마음을 먹지 말아. 내 늘 말하지만 돈이 사람을 망친다. 돈이란 벌기도 힘들지만 지키기 또한 힘들고 바로 쓰기는 더 어려운것이지.》

병세가 차도 있다지만 긴말을 한지라 장규현은 지쳤는지 조용히 손을 내흔들었다. 물러들 가라는 소리다.

다들 나가려는데 장규현이 말했다.

《백씨는 좀 남으라구.》

옹색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지체한 백씨는 그 말에 어쩔바를 몰랐다. 유양점이 이마에 내밴 땀을 씻으면서 한숨쉬며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 말을 새겨두라구. <공수래 공수거>… 후날 이 말의 뜻을 가르쳐주지.》

백씨는 공손히 고개숙여 인사하고 물러나왔다. 그로서는 장규현을 만난것이 또 한차례 청수로 목욕재계한 심정이지만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의 뜻을 몰라 입안에서 굴려대기만 했다.

장규현의 집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유양점이 따라섰다.

《물보막이를 한다던데 어떻게 오셨나요?》

백씨가 먼저 묻자 유양점은 비죽이 웃고나서 대답했다.

《불리워와 문초를 당했소.》

《원, 무슨 말씀인지.》

《<유흥을 멀리하고 돈벌이에 눈이 어둡지 말라. > 한겻이나 다스린 뒤 한 말씀이였소. 에에, 정말 진땀을 뺐다오. 내뒤를 밟았는지 어느 한가지 모르시는게 없지 않겠소. 허허.》

《믿고 아끼는 제자이니 그러시겠지요.》

고개를 주억대며 걷던 유양점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백씨에게 물었다.

《도매점일이 잘되오?》

《그저 그러루 해요.》

《내가 몇번 지나며 봤는데 대령강객주집에 있던 처녀를 데려왔더군?》

《예.》

《흠, 흠.》

말을 끊고 이상스레 들릴만큼 코소리만 내던 유양점은 고개를 쳐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고싶으나 주저하는 기색이다.

《어르신네답지 않수다, 갑자르기만 하니.》

《백씨의 눈이 장사에는 밝지만 사람보는덴 어둡다는 생각이 드니 선뜻 말하기가 어렵구려.》

《허허, 좀 일깨워주면 못씁니까?》

《도원국이 그애한테 자주 다니는걸 아시우?》

《제 물건 잘 팔리지 않아 좀 매달리는걸 어찌겠나요.》

《잘 살피시오. 도원국이 사람됨을 알지 않소. 자, 난 이길로 대동에 가야 하니 여기서 헤여집시다.》

활개를 저으며 걸어가는 유양점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있던 백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송월이가 도매점에서 몇해 잘 굴러먹더니 이젠 제법이다. 도매값에 한두푼씩 더 붙여먹는가 하면 경림이와 나리를 시샘하는 기색도 보인다. 도원국이까지 자주 나타나 둘이서 쑥덕공론을 하니 그 뒤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나치게 똑똑한것도 우환단지로 되는가보다. 제 입으로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딴꿈을 꾸는 자식이라면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나 서두르지 않는것이 백씨의 성미여서 송월에게 아직까지는 잔소리 한마디 안했다.

무랍없이 대하게 되는것은 경림이다.

《경림아, 도매점에 의주상인이 드나든다는걸 아느냐?》

《저하구 마주친 일은 없고 해서.》

《야밤에 기여든다는 소리도 못 듣구?》

《보지 못했으니…》

《사내라는게 왜 그리 어정쩡하냐? 송월이야 네가 타이를수 있지 않느냐. 이 어민 다르다는걸 모르지 않겠지?!》

《형제사이에 의가 상할것 같아서…》

《그런 걱정 앞세우면 사람을 버린다. 그걸 모르다니…》

백씨는 경림을 꾸짖으면서도 송월이가 그의 말쯤은 귀에 담지 않으리라는걸 모르지 않았다.

밤에 나와 창고를 지키는 아범은 본대로 백씨에게 말해준다.

《의주사람 걸음이 잦네. 어제 밤에도 왔다갔지. 하필이면 밤에 숨어 만나는 놀음을 하는지 모르겠거든. 오래는 머물지 않구 되돌아서 갔네.》

백씨가 걱정하는것은 도매점에 잠상물건이 흘러들거나 팔리우는 일이다. 도원국은 쩌들어먹은 잠상이다. 설마 송월이가 그런 물건을 받을리야 있을가. 간특한 의주잠상이 장사물계를 모르는 송월이를 꾀여낼수도 있다. 도매점에서 있은 일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말하던 송월이가 감추는게 있으니 그건 분명 도원국과 사이에 있는 연고일것이다.

송월이에게 단단히 일러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백씨는 덕동이에게 오늘 가마고 약속한지라 송산자기장을 찾아 걸음을 다그쳤다.

강을 건너 골안에 들어서니 자기공들의 풍구타령이 건드러지게 들려온다. 가을이라 좋은 계절에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자기장은 활기에 넘쳤다.

백씨는 선자리에서 자기장을 흡족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옹근 한해 죽을 고생을 다한 끝에 일어섰다. 비석골샘물이 좋다는걸 알게 된 그는 자그마한 양주소까지 꾸려놓았다. 술맛은 물이 좋아야 한다더니 여기서 뽑는 술이 《송산술》로 이름이 났다. 녹두색자기병에 넣어 내놓으니 량반, 부자들이 너도나도 주문까지 하며 사다 마신다.

지난해 여름 같아선 앞이 막막했던 자기장이다. 그때 맥놓고 주저앉았다면 자기장의 흥성이는 오늘이 어떻게 있겠는가.

증산에서 자기쟁이가 와서 로를 세우고 불을 지핀 후부터 자기가 제 모양을 갖추고 나왔다. 색갈곱고 정갈하여 평양의 어느 장에서나 잘 팔린다. 이해안으로 본전을 뽑아낼것 같다. 이름도 없고 크지 않은 자기장이지만 래년부터는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될것이다.

《자, 풍구질을 더 세차게!》

덕동이가 다그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풍덕풍덕 풍구야 어허야 풍구야

네 바람이 세차면 우리 자기 으뜸이다

장단을 맞춰 소리를 뽑아대는 풍구군들의 가락에 이끌려 백씨는 걸음을 옮겼다.

자기장의 일군은 열명도 되나마나하지만 손발이 맞아 일손은 베틀에 바디 나들듯 한다. 백토와 모래를 적당히 섞어 이긴것을 넘겨주면 각이한 형태의 목형이 찍어내는족족 진주네한테로 넘어온다.

진주옆자리의 젊은 녀자도 무늬를 새기는데 진주에게서 배운 솜씨가 이젠 제법 손에 익어 번개같이 그려 넘긴다. 건너편에 앉은 사내가 거기에 유액을 발라 나무바퀴가 달린 밀차의 당반에 올려놓는다. 그것들이 로앞에 가서 다시 옮겨지면 덕동이가 마무리를 한다. 한쪽에서는 구워낸 자기를 종이로 포장해서 나무상자에 담는데 자그마한 실금이 생겼거나 색이 변한것들은 골라내여 옆에 무져놓는다.

일에 성수가 난 젊은이들은 백씨가 곁에 온것도 모르고 벗어제낀 구리빛잔등으로 땀을 철철 흘린다.

《덕동아, 정말 수고들 하는구나.》

그제야 땀투성인 덕동이가 《어머니!》 하고 반기며 굽벅 인사를 한다.

《지금 오시는 길입니까?》

《그래, 날도 저무는것 같은데 쉬면서 하려무나.》

낯익은 젊은이들이 백씨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며 《오마니, 이젠 다돼갑니다. 뻘겋게 익은 자기가 나오는걸 좀 보십시오.》 하고 소리친다.

다리가 불편한 진주는 일손을 놓고 일어나 조용한 미소만 보낸다. 자기장일이 잘되니 얼굴색도 한결 밝아졌다.

《진주야, 내 말하지 않았니. 이젠 자리가 잡혔으니 너는 집안일이나 하라구.》

《앉아서 붓질이나 하는 일인데 힘들것도 없습니다.》

《애는 잘 크냐?》

《녜, 부모님들이 봐줘서 아무 탈없이 자랍니다.》

덕동이와 진주는 량친을 다 모시고 산다. 자기장 일군들의 뒤바라지는 그네들이 해줘서 일손을 더는셈이다.

《여보, 이젠 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내려가오. 우리 일도 끝나가니까.》

백씨가 오는 날은 자기장의 명절이나 같아서 젊은이들의 기분은 구름처럼 둥둥 떴다.

《어머니, 내려가십시다.》

《그러자꾸나.》

백씨는 진주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살룩살룩 저는 진주의 다리를 아프게 여겨보며 이 병이 배속에서 타고나온게 아닌데 고쳐줄수 없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품을 놓고 송도걸음을 해보아야 할가부다. 그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송도의 오생원이 의술이 하도 높아 앉은뱅이까지 걷게 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이 언덕길은 네 발로 올라오기가 힘들겠다.》

《막대기를 짚고 오르면 됩니다. 일이 바쁠 땐 우리 그 사람이 남들의 눈을 피해 신새벽에 업어다 앉혀놓습니다.》

《허- 그리도 고되게 부려먹는단 말이냐?》

진주는 수집음을 타며 소곤거렸다.

《일하다가도 내 얼굴을 봐야… 뭐 그래야 고운 자기가 나온다는지…》

《허허, 과히 싫지는 않은 소리구나. 그저 마음 변치 말구 잘살아라.》

골안에 집이 여러채 생겼다. 백씨가 증산에서 데려온 가정에는 로인들이 있어 새 집을 크게 지어주었다.

덕동이 어머니와 진주 어머니가 달려나와 백씨의 손을 잡았다.

《그새 다들 잘 있었어요?》

《우리야 백씨 덕분에 마음 편히 살지요.》

《백씨가 온다기에 오늘은 돼지까지 잡았네.》

진주의 아버지가 자랑삼아 하는 말이였다.

《원, 돼질 잡다니요?》

자기를 특별히 공대하려드는것을 질색하는 백씨가 놀란 소리를 냈다.

《백씨를 내대구 저들이 배 채워보자는 놀음이외다. 허허.》

진주의 아버지가 웃어넘기며 하는 말이다.

《하긴 먹어야 힘을 쓸테니까요. 자기굽는 일이 보통 고된가요.》

백씨가 토방에 앉자 진주가 두살 잡히는 아들애를 안고 나왔다.

《어디 보자, 룡산아! 어이쿠, 닮기는 신통히 네 엄마로구나.》

덕동의 집마당에 멍석을 펴고 집집의 밥상을 다 들어내다 놓았다. 행주치마를 두른 새각시들이 팽이돌듯 하며 음식을 나른다.

큼직한 두리반마다에는 함경도의 갓김치가 언감자떡과 함께 오르고 개성의 경단과 이름이 났다는 충청도 청포까지 순대며 돼지갈비찜과 구색을 갖추고 놓인다.

자기공 젊은이들앞에는 시뻘건 양념으로 고명을 대신한 국수가, 녀자들쪽에는 떡이며 지짐 같은것이 차례졌다.

덕동이가 백씨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머니, 우리 사내들은 술 한잔씩 마시렵니다.》

《그야 누가 마다하겠나. 사내라면 마셔도 흠뻑 마셔야지. 허허.》

젊은이들은 놋바리뚜껑에 저희들의 손으로 만든 술을 부어 좋아라 떠들어대며 마시는데 새각시들은 백씨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레 저가락질을 한다.

《너희들도 얌전빼지 말구 닁큼닁큼 먹어라. 사람이 눈치보며 먹는 음식은 먹어도 살로 안간다. 서방 섬기기를 잘하재두 이것저것 가리지 말구 잘 먹어야 한다.》

백씨의 말에 새각시들은 입을 가리우고 시름없이 웃는데 모두 친정에 와앉은 기분들이다.

자기공들은 하나같이 힘꼴이나 쓰는 사내들이라 황소같이 먹어댄다. 술 몇잔 오가는 사이에 국수그릇이 바닥나고 순대며 돼지갈비도 눈 깜짝할새에 다 없어졌다.

《여보, 앞에 놓인 그 녹두지짐접시를 좀…》

《우리 집 저 사람은 눈치가 아니라 발뒤꿈치라니까. 제 서방님앞의 순대그릇이 비였으면 옆에거라도 슬쩍 밀어놔줄게지.》

《하하하.》

《호호호…》

아무런 구속없이 한자리에서 마음편히 먹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백씨의 마음을 무척 기쁘게 했다.

그는 송산에 오면 덕동의 집 웃방에 들었다.

부자집 잔치상 부럽지 않은 풍성한 식사를 마치고 멍석에 둘러앉아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이들은 백씨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집으로 헤쳐갔다.

집안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던 덕동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피곤하겠는데 일찍 잘게지.》

경림이가 소심한 축이라면 덕동은 백씨앞이라 해서 꺼리며 할 말을 못하지 않았다.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다면 꾸짖어도 좋고 다른 벌을 주어도 달게 받겠습니다.》

《허- 말꼭지가 어마어마하구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덕동이는 사흘전 밤에 있은 일을 이야기했다.

자기장에서 집까지는 멀지 않지만 로안에는 굽는 자기들이 있어 밤에도 남아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옆에 지은 창고에 있는 자기들도 지켜야겠기에 번을 서듯 교대로 돌아본다.

그날밤은 덕동이 차례여서 자정이 지나 옷을 대충 걸치고 집을 나서는데 달래뫼너머에서 개짖는 소리가 하도 요란해 마당에 선채 무슨 일인가 하여 그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소란스럽게 굴던 개짖는 소리도 잦아들고 사위가 조용해져 자기장쪽으로 걸음을 돌려세우려는데 문득 등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담이 크고 주먹개나 휘두르는 덕동이니 별로 놀라지 않으며 돌아섰다. 달밤인데 상투머리가 풀어진 사나이가 반달음으로 헐떡헐떡 다가왔다.

《누구요?》

《쉬! … 소리를 낮춰. …》

《이 밤중에 여기가 어데게… 제편에서 소리치지 말라니 거긴 대체 누구요?》

《여기가 백씨네 자기장이 옳지?》

《그렇다 할진대 어디서 온 사람이요?》

《자꾸 밝혀서 묻지 말구 내 묵어갈 자리나 좀 잡아주게.》

《잡아주게? … 허허 여보시오, 제 집 하인 다루듯 하는 그 말본새가 곱지 않구려. 묵어가기는 고사하구 내 집 개자리옆에도 눕히지 못하겠소.》

《젊은 녀석 말버릇 고약하다. 밝은 낮에 내 얼굴 보고두 그렇게 수작질할테냐?》

덕동은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주선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다 놀랐다. 도매점에서 몇번 보았고 자기를 가지고 이야기도 나눈바 있는 의주상인이였다. 그가 아닌 밤중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이곳에 나타난 리유는 뭘가. 덕동은 이상스러운 생각이 들어 경계심을 품은채 그를 모르는척 하였다.

《난 아무래도 모르겠소.》

《이 사람이… 임자 송월이 맡아보는 도매점에서 날 못 봤단 말인가?》

《거길 다니긴 하지만 모르겠소. 그러니 여기서 묵어갈 생각일랑 마시우.》

어렵지 않게 여기고 찾아들었던 도원국은 덕동의 단호한 태도에 급해맞아 빌붙었다.

《이 사람아 덕동이, 내가 자네 이름까지 아는데 하루밤만 몸을 숨겨주게나.》

숨겨달라니? 죄지은 사람이 아니고 뭔가. 내가 인정이 물러 이 사람 사정을 봐주다가 자기장이 해를 입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덕동은 칼로 베듯 말했다.

《살인이라도 저질렀수? 관가의 수배라도 받은가본데 깨끗한 물건 만드는 자기쟁이들은 그런 청을 받지 못하오. 그러니 당장 내앞에서 사라지오!》

간청이 통하지 않자 도원국은 악이 받쳐 발을 굴러댔다.

《이눔아! 젊은 놈이 신통히도 과부년을 닮았구나. 오늘만 사람이 사냐? 두고보자, 백과부년 염통이 곯아썩어질 때도 올게다!》

덕동이가 종시 받아들이지 않자 도원국은 그 험한 몰골로 리봉쪽 산길을 타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눈을 감은채 이야기를 다 듣고난 백씨는 덕동의 잔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자기장은 너에게 맡겼으니 내 죽은 다음에도 좋은 자기를 구우며 살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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