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3

 

백씨의 도매점은 송월이가 주인이나 같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몰라 쩔쩔 매며 돌아가던 그가 이 몇해 장사군들속에서 치우면서 눈이 터 아무 일에나 막힘이 없게 되였다. 워낙 령리하고 영악스러운 그여서 저울눈금이 조금만 기울어도 더 올려놓지 않고서는 누구도 견뎌배기지 못했다. 도매업이라는게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수량대로 정확히 받지 못하면 영낙없이 밑지게 된다는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그는 두눈을 딱 부릅뜨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점포나 가게장사군들에게 넘겨줄 때는 쌀 한알, 천 한치, 고기 한점일지라도 저울질을 잘하여 제값보다 남겨먹자고 이악을 부렸다.

《송월아, 저울눈금 속여먹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소매군들이 리를 보지 못하게 되면 누가 이 집에 찾아오자구 하겠니. 받아도 주어도 손해만 없게 받고 주면 된다.》

이따금 도매점에 와서 백씨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말할 때뿐이지 송월의 성미는 하는 일에 고스란히 그대로 미쳤다.

도매점일은 송월이와 경림이가 하는데 둘사이는 여간만 친근하지 않았다. 경림이가 한살우여서 송월이는 《오라버니, 선창에 나갔다 오렵니다.》 했고 《송월동생은 좀 쉬오. 창고일은 내가 하겠소.》 하는 사이였다.

백씨와 한집에서 사는 경림은 오늘도 첫새벽에 도매점에 나왔다. 그때 벌써 도매점안을 다 거둔 송월이가 마당을 쓸고있었다.

《송월동생, 그만하고 아침이나 얼른 들라구.》

이름뒤에 꼭 동생이라 붙여 나리와는 구별있게 대하며 백씨의 품에서 사는 평등한 사이임을 소박한 부름에 담는 경림이였다.

《오라버닌 저때문에 아침을 설치고 오시는군요.》

《나야 제 먹을걸 다 찾아먹지. 어머니가 송월동생은 순두부를 좋아한대서 우리 사람이 했는데 입에 맞겠는지… 허허.》

《오라버닌 복이 있어요. 세상에 우리 형님같이 마음씨 고운 녀자가 또 있겠어요? 온종일 말없이 웃어가지고있는데 아유, … 사람들이 날더러 뭐라는지 알아요? 얼음바늘같다나요. 어쩌나…》

《그건 장사군들의 삐뚤어진 소리니 아예 귀에 담지 말라구. 자, 어서 들어가 들라니까. 내가 바깥일은 다하니 걱정말구.》

송월이가 도매점에 들어가자 경림은 옆구리에 차고다니는 열쇠를 꺼내여 창고문부터 열었다.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가 확인하는것이 그가 하는 하루일의 시작이다. 마당을 다 쓴 그는 창고문들을 열어놓았다. 바람이 잘 통해야 했기때문이다.

점포와 가게들에 가져갈 물건들이 많으면 손수레에 싣고 적으면 지게로 져서 날라다 준다. 쌀 같은것은 달구지를 세내여 실어주는것이 경림의 일감이기도 했다.

어떤 날 저녁에는 송월이가 경림이와 함께 나르려고 나서기도 한다.

《어딜 간다구… 도매점을 비우면 되나.》

《걱정말아요. 나리가 왔거든요. 함께 가요.》

《그럼 나리를 시킬게지. 고 맹꽁인…》

《나린 뭐 노는줄 아세요. 하루종일 어머니 치마꼬릴 따라다녀요. 어머니가 하루에 몇리를 걷구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야 오라버니가 뭐 몰라요?》

그들이 이런 말을 나눌 때 나리가 뛰쳐나왔다.

《언니, 내가 갔다와요.》

《넌 잠자코 다리쉼이나 하려무나. 어서! 정 오금이 쑤시면 놋양푼에 살아뛰는 숭어 댓마리가 있으니 그걸루 숭어탕이나 끓여라. 저녁에 어머님이 잡숫게.》

경림이가 제 동생을 밉지 않게 흘긴다.

《맛있게 해야 돼.》

《오빤 그저 맛있게 하라, 맛있게 하라. 형님만큼 만들라는건데 내 재간엔 못하겠어요.》

나리가 깜찍하게 형님을 꺼들이면 경림은 얼굴이 벌개지며 더 말을 못했다.

《요건, 깜찍하기란…》

송월은 나리의 흰 비단같은 볼을 살짝 튕겨주고는 경림을 따라 짐을 이고갔다.

밤에는 도매점에 창고가 있기때문에 경비서는 령감이 나온다. 리문리려인숙 잡부로 일하던 쉰고개를 넘긴 로인인데 백씨가 그를 데려왔다. 경림이는 한사코 자기가 창고를 밤낮으로 지키겠다고 했지만 백씨가 딱 잘랐다.

《네 색시는 밤에 누가 건사하니? 한다는 소리란… 나도 손자 안아볼 나이가 지났다. 다시는 그런 말 말아.》

경비군으로 쓰는 령감을 백씨는 아범이라 부르며 공대했다. 어데 갔다가 색다른 음식이라도 생기면 경림이나 송월이, 나리는 못먹여도 령감에게만은 꼭꼭 내놓아주었다.

백씨가 그러니 젊은이들도 자연히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밤에는 송월이가 로인과 도매점에 남는다. 로인은 창고가 있는 뒤채에서, 송월은 도매점 안채에서 잔다.

도매점일이라는게 눈 밝히며 계산하는 일인데다 많은 사람들한테 부대껴 지칠대로 지친 송월은 저녁을 먹기 바쁘게 잠에 곯아떨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의 마음은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눈치보지 않고 사는것으로 해서 편했다. 문득문득 대령강객주집이 떠오를 때면 《마귀년아, 꿈에 나타나지 말아.》 하며 뒤채기군 하였다. 과년한 그의 나이를 두고 백씨는 때없이 근심을 앞세운 말을 했다.

《내 이러다 너를 서방없는 계집으로 만들가부다.》

《어머니, 내 걱정은 마세요. 날 시집보내여 어데로 가게 하면 대동강에 빠져죽겠어요.》

《미친년같으니, 툭하면 대동강에 빠져죽는다는 소리뿐이니 듣기두 싫다.》

백씨는 제가 목숨을 끊으려 했던 대동강이여서인지 손을 내흔들며 욕하군 했다.

송월은 지금도 베개를 베고 그 모습을 그려보며 생긋이 웃었다. 행복했다. 다섯살때부터 길가에서 헤맨 거지가 아니였는가. 동냥 한푼 바로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남이 먹다가 버린것, 나무열매… 먹을만 해보이면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씹어삼키며 연명했다.

하루 세끼 밥술은 뜬다 했지만 객주집에서의 생활은 거지보다는 낫다 해도 그것대로의 고생살이였다.

어머니가 아니였더라면 지금 내가 어떤 꼴이 돼버렸겠는가. 송월의 눈가에 뜻밖에 차례진 행운으로 하여 솟구쳐오른 고마운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낳아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살아서 귀전에 울린다. 량반의 첩으로라도 가난을 면해보려 했던 불우한 녀성, 량반피줄이 아닌 딸을 가진것으로 하여 온갖 구박을 당하다 소경이 되여버린 어머니, 어린 딸애의 손에 이끌려 동냥길을 다니다가 모진 마음을 먹고 종내 대동강에 몸을 던지고만 불쌍한 인생, 돈없고 힘없는 그 인생에는 수난의 눈물과 아울러 철부지의 고생을 덜어주고싶은 애모쁜 모성애만이 넘쳐흘렀으니… 고마움과 서러움이 한데 어울려 샘솟듯 하는 송월의 눈물은 이내 베개잇을 화락하니 적셔버렸다.

《송월아, 손님이 찾아왔구나.》

밖에서 들려오는 로인의 목소리에 송월은 소스라쳐 일어나 앉으며 눈물을 훔쳤다.

《누구라구요?》

《의주에서 온 길손이란다.》

도원국이 왔다는 소리다. 이 밤중에 왜 왔는가. 한두번만 그의 물건을 팔아주지 않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말해서 다 안다.

《팔아야 못 주겠니. 허지만 돈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월은 어머니의 당부를 잊지 않고 그대로만 했다.

《웃방으로 들여보내주세요.》

《오냐, 어서 저 문으로 들어가시우.》

《헤헤, 고맙수다. 밤이 늦은걸 알면서도…》

송월이 재빨리 머리거둠을 하고나서 웃방으로 올라가니 허줄한 보퉁이를 옆에 놓은 도원국이 반가와한다.

《송월이가 날이 갈수록 활짝 피는구나. 꽃도 한계절이라 때를 놓치지 말아.》

《아버님도… 무슨 일로 이렇게 늦은 밤에…》

치마를 포개며 송월이가 마주앉자 도원국은 한참 그를 여겨보다가 한숨을 내쉬였다.

《어쩐지 평양엘 오면 매번 네가 보고싶어지누나.》

《아무리 봐야 못돼먹은 년인걸요.》

《아니다. …》

도원국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탄식했다.

《내가 정말 무정한 놈이였어. 돈 몇푼이 아까와 그 어린것의 작은 소원도 못 풀어주었으니… 이제 그애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이냐?!》

송월은 도원국에게도 상처입은 마음이 있다는것을 알고 물었다.

《찾지 못해하는 애란 누굽니까?》

《내 외사촌녀동생이지. 황해도 장연서 살았는데 부모가 다 사망했으니 의지가지할데 없는 몸이 되여 지금 어데로 흘러다니고 있는지 알수가 없구나.》

《아버님도 참… 안다녀보는 고장이 없을텐데 마음먹고 찾으면야 어데 있겠지요.》

도원국이 맥없이 손을 흔들었다.

《송월이 나인데 숱한 세월 찾았다만 그림자도 못 보았다. 그애 고향사람이 평양에 있다고 하기에 서캐 훑듯 했지만 없어. … 필경 잘못된 계집애야.》

도원국의 목소리는 한숨속에 잦아들었다.

세상에 자기같이 불행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미쳐 송월은 도원국의 정상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부모잃은 그애도 나처럼 귀인을 만나면 좋으련만…

《도매치기가 잘되냐?》

《전 그저 어머니 시키는대로 하는걸요.》

《허긴 네가 어미라고 부르는 그 녀잔 장사물계에선 귀신 한가지니까. 달달이 품삯은 주니?》

《어마나- 자식이 제 집안일을 하면서 품삯이란 뭐나요.》

송월이가 놀란 소리를 내자 도원국은 제편에서 혀를 차며 영문모를 불만을 들을수 없게 중얼거렸다.

《부자간에도 회계는 회계대로 한다는 말이 있다.》

《제앞에서 그런 말씀은 다시 하지 마십시오.》

언짢아난 송월이가 딱 잘라말하자 도원국은 속으로 백씨가 참말로 타산밝은 녀자라고 생각했다. 대령강객주집에 맡겨 10년 가까이 남의 수고로 키웠으니 제 돈 한푼, 품 한자루 들인게 없지 않은가. 다 키워 부려먹을만 하니까 이번에도 돈 한푼 안들이고 제 옆에 데려다놓고 딸이라는 달콤한 말로 얼려서 시키는 일은 고분고분 다하게 만들어놓았다. 어데서 이만큼 맞춤한 애를 골라올수 있단 말인가. 예쁘게 생겼지, 똑똑하지, 이악스럽지… 그야말로 공짜인 송월이다. 과부년의 빈틈없는 그 타산에는 귀신도 무릎을 칠게다.

《송월아, 이 물건을 너한테 줄잡아 한달만 맡겨두자고 왔다.》

도원국의 그 말에 송월은 방바닥에 놓인 허름한 중태기에 눈길이 미쳤다.

《그건 뭡니까?》

《은이다.》

바싹 목소리를 낮춘 도원국의 대답에 송월은 깜짝 놀랐다.

《예?! …》

《쉬! …》

은이라면 밀수품이라는걸 모르지 않는 송월이다. 그런 물건을 도매점에 숨겨둔다면 어머니가 가만 있겠는가.

《다른 물건이라면 몰라도 그것만은 안됩니다.》

더럭 겁이 앞선 송월은 떨리는 소리로 잘라말했다.

《얘야, 네가 받아주지 않아 내가 이걸 가지고 다니다가 관가에 붙들리는 날에는 갈데없이 죽지 않으면 옥살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그사이 지내온 정을 봐서는 거절하기도 어렵고 받자니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하필이면 왜 그런 물건을 들고다닙니까?》

《하고싶어 하는줄 아냐. 살자니 이런짓에 발을 들여놓은게지. 돈을 번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냐. 사람들이 하나같이 발그라져서 속겠다는 놈이 어데 있니. 오금이 무너지게 다녀봤자 본전도 찾기 어려운 판이다. 그러니 별수가 있니. 의주에는 녀편네와 수두룩하게 낳아놓은 아들딸자식이 자그만치 일곱이나 된다. 아비라고 나를 기다리는데 빈손들고 갈수야 없지 않느냐.》

도원국은 송월의 마음을 흔들자고 있는 말재주를 다 부리였다. 나살이나 건사한 놈치구선 체면조차 내던진 구차한 말이지만 잠상놀음에 치워난 그였기에 털끝만 한 수치도 느끼지 않았다.

《정말 딱합니다.》

《한번만…》

도원국은 자기로서도 물러설 길이 없었다. 송도에서 왜나라 은을 넘겨받은 뒤 관가의 꼬리잡이를 피해 간신히 평양까지 왔다. 인총이 많은 곳에 숨기는 했어도 감추어둘만 한 곳이 없었다. 몸에 가지고 다니다가는 언제 붙들릴지 모른다. 생각끝에 궁리해낸것이 송월이다. 백씨의 도매점은 관가의 세도줄과도 이어져있기에 마음을 놓을수 있다.

《어머니하고 상론해야 합니다.》

《그건 안돼!》

도원국은 서둘러 송월의 말을 막았다.

《백씨는 애당초 나를 바로 보지 않으니 잠상물건인줄 알면 관가에 일러바치던가 길가에 내던지던가 할게다. 그러면 나야 망하지 않느냐?》

송월은 어머니의 성미를 너무도 잘 안다. 장사를 한다지만 속여먹는다는 말조차 모르고 부정한 물건은 아예 마주서지도 않는다. 그러니 알기만 하면 도원국이 말한대로밖에 달리 되지 않을것이다.

도원국은 어떻게 해서나 송월을 구슬려내려고 머리를 쥐여짜며 말마디들을 골랐다.

《네가 어미라고 부르는 녀자는 잠상줄을 타고 돈 번 일이 없는줄 아냐? 오래전일이지만 한번은 나하고 송도인삼을 날라 큰돈을 벌었댔단다. 지금은 큰돈을 깔구앉았으니 도리질할테지만 사람이란 다 그렇구 그런거다. 내 지레짐작하는것 같은데 너도 앞으로 돈앞에서 네 어미가 어떻게 노는지 보게 되는 날이 있을게다. 지금도 그렇지. 널 도매점에 앉혀놓구 네 예쁜 얼굴로 벌이를 하지만 너한테 이 집일을 통털어 맡겼니? 창고열쇠는 경림이라는 녀석 괴춤에 매달려있지? 봐라, 딸이라고 쓸어주지만 실은 제 자식으로 믿을 녀자가 아니다. 너로 말하면 도매점주인 같지만 네 맘대로 하는 일이란 한가지도 없지 않느냐?》

이리저리 험한 말로 백씨를 시기하며 쐐기를 쳐대는 도원국을 쳐다보던 송월이가 발끈 성이 나 말했다.

《아버님은 생각과 달리 심사가 곱지 못하군요. 경림오라버니도 나리도 다 나같이 불쌍한 자식들이예요. 어머니가 안아주지 않았다면 우리 꼴은 지금 뭐가 됐겠어요? 그런 말씀이나 하시겠거들랑 그 짐을 가지고 어서 가십시오.》

서슬을 뿌려봤는데 오히려 반감만 만들어낸 도원국은 난감해났지만 서둘러 반죽좋게 능그려대기 시작했다.

《허허, 내 해본 소리다. 세상에 네 어미 백씨 같은 녀자는 없다.

나도 신셀 많이 졌지. 헌데 제때에 갚지 못한데다가 생겨먹기부터 좀스러워 미운 때가 낀 나다. 어찌겠니, 널 믿고 이렇게 온 내다. 대령강객주집에서 네가 소동을 일으켰을 때 백씨에게 귀띔해준것두 내가 아니냐? 난 그저 잃어버린 내 녀동생 순애를 보는것 같아 널 찾아온단다.》

송월은 도원국의 감언리설에 마음이 기울어들기 시작했다. 도원국이 아니였다면 백씨가 자기 소식을 제때에 몰랐을것이고 그렇게 됐더라면 뒤일이 어떻게 번져졌을지 뉘 알랴. 사람이 덕을 봤으면 갚을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이번이 처음이자 마감인줄 아세요.》

《아무렴!》

도원국은 숨이 나가 지고온 중태기를 밀어놓았다.

《한관이다. 이달안으로 가져갈테니 너를 믿고 맡긴다.》

《아버님, 언제부터 묻자던건데…》

송월은 밀수품을 받아놓고나서 조심스레 말을 비쳐보았다.

《뭘말이냐? 갑자르긴.》

《저… 몇해 잘됐어요. 내가 있던 객주집에 아버님이 두사람을 데리고 오셨지요?》

도원국은 얼떠름해서 마주보기만 했다.

《제가 술 심부름하지 않았나요. 이름이 뭐냐, 평양에서 살지 않았냐 하며 묻던 그날밤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그제야 도원국은 무릎을 탁 쳤다.

《오라- 그게 신사년 여름철 어느날이렷다?! 생각나지. 나구말구.》

눈길을 내리깐 송월이 여전히 조심스럽게 묻는다.

《좌중에 앉았던 서울사람 말입니다.》

도원국의 작은 눈알이 반짝거렸다.

《알지 않구.》

《그 사람 성함이 뭡니까?》

송월의 입에서 이런 물음이 나오자 도원국의 울대뼈가 금시 튀여나올듯 오르내렸다. 갑자기 이애가 서필의 이름자는 왜 알자고 하는가. 서뿔리 발설해서는 안되는 사람의 이름이다.

《그… 그 사람 말이냐?》

《네…》

《이름은 알아서 뭘하자는거냐?》

《아버님에게만 믿고 묻습니다.》

《허허, 그-래.》

도원국은 잠상물건을 맡겨놓아 시름을 덜긴 했지만 서필의 이름을 대라니 난감한노릇이였다. 잘 안다고 혀바닥을 내굴렸으니 대답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 량반인즉은 서울장사군이란다. 그때 차림새를 봤지? 우리같지 않은 개명한 장사군이지. 량반족속이였는데 큰 벼슬을 하지 않고 통관으로 왜나라, 청나라를 오고간 사람이여서 세상물계에는 훤한 량반이다.》

《성함을 묻지 않았나요.》

《아, 그랬지. 나도 잠상, 그도 잠상이니 이름대기가 힘겹구나.》

《그건 왜 그럽니까?》

《관가의 문서에 잠상들의 이름이 올라있을수 있으니까.》

《내 입이 미덥지 못하면 이 물건을 가져가십시오.》

《아니… 그런게 아니구.》

《어서 가져가십시오.》

《이런 성화라구야. … 그럼 너를 믿구 알려줄테니 네 어미한테는 절대로 말해선 안된다.》

《정말 잔근심도 많습니다.》

《그 량반 이름은 서필이라고 해.》

《서필?! …》

이름 두자를 받아외우는 송월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그는 이렇게 도원국이로 하여 어쩔수없이 백씨를 속이는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잠상물건을 도매점에 감추어둔 때부터 불안과 초조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보름을 넘겨 스무날째 되여오는 날 밤, 도원국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잠상품을 안고 사라졌다.

잠상품을 줘 보내고나서야 송월은 마음의 탕개를 풀며 주저앉았다.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석달이 지나 밤에만 나타나군 하던 도원국이 한낮에 도매점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송월아, 잘 있었니?》

간사하게 웃으며 도원국이 들어서자 송월은 두번다시는 전과 같은 일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며 인사를 차렸다.

《오랜만에 오십니다. 그사이 편안하셨어요?》

《아무렴, 내리막이 있으면 올리막도 있는 법이니까.》

잠상벌이가 잘된다는 소리다. 무섭지도 않은가. 하필이면 나라에서 엄금하는 물건을 가지고 쫓기우며 장사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도매점은 나무로 단을 만들고 그우에 흰쌀, 수수쌀, 조, 콩과 같은 낟알들을 고리광주리에 담아 주런이 올려놓았고 한쪽에는 덕대를 세우고 갖가지 천필을 드리웠다. 평상우에는 종이, 먹, 붓 같은 문방구류와 각종 약재들, 말린 물고기꿰미들이 자리잡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요구하는대로 그 수량을 보장해줄수 있다는 광고품이였다.

《도매집에 우리 송월이가 앉더니 흥하는구나.》

《아버님도… 이건 다 어머니가 선상들한테서 넘겨받은거예요.》

《그럴테지. 내 부탁이 있어서 왔다.》

송월은 또 위험천만한 일을 시키자고 할가봐 잔뜩 마음을 도사렸다.

《들어주겠니?》

《전번같은 일은 다신 안돼요.》

《애두 참, 그런게 아니다. 내 말했지만 사촌누이동생애를 찾자고 그런다.》

《날더러 찾아달라는겁니까?》

《도매점에 안드나드는 사람이 없지 않니. 고향은 장연이고 지금 나이는 열아홉살이다. 이름은 순애, 성씨는 김가다. 아픈 놈 병 자랑하라는 말이 있지 않니?》

《글쎄 평양 어디에 있다면…》

《좀 도와다우.》

간절하게 부탁한 도원국이 비단자루를 송월이앞에 내여놓았다.

《이건 뭐나요?》

《많지 못해. 다섯냥이다.》

《아니, 이 돈을 맡겨두고는 어쩐다는거예요?》

《맡기다니? 주는거다. 작다고 하지 말아.》

《어마나! … 무슨 영문인지…》

《전번일 도와주지 않았니. 잠상군두 도리를 지킬줄은 안단다. 잘 있거라. 또 오마.》

송월이 미처 어쩔새없이 도원국은 훌렁 가버렸다.

다섯냥! …

그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이런 큰돈을 쥐여보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제것으로 되여보기는…

한밤중에 송월은 비단자루를 풀고 반짝거리는 엽전을 한잎두잎 세여보았다.

이 돈은 어머니에게 내놓을수 없다. 나도 돈을 벌수 있지 않는가. 그의 심리는 허욕의 부추김을 받으며 한걸음씩 옮기고있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세상 궂은일은 다하였고 하루에도 2백~3백리를 걸으며 행상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힘을 들이지 않고도 돈을 벌수 있다. 내 어머니만큼만 돈을 번다면 가슴에 품은 한을 풀수 있지 않을가.

눈을 감고 앉은 그는 끝없는 상념의 세계에서 리기를 쫓았고 낳아준 어머니의 한을 기어이 풀고야말 독한 마음을 굳히며 장도칼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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