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1

 

덕동이와 진주사이에 아들애가 태여나 걸음마를 뗄 때까지 송산자기장은 이름뿐 시뻘건 구운흙으로 뒤덮이고 깨여진 벽돌과 구워낸 자기아닌 자기들이 되는대로 무지를 이룬 황량한 골안이였다. 룡산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달래뫼에 자리잡은 자기장터는 사막을 방불케 하는 벌거우리한 먼지가 자욱히 뒤덮인다.

덕동이와 함께 자기에 욕심을 낸 젊은이들이 한해가 넘도록 수십번 로를 허물고 다시 쌓으며 자기라는것을 구워보고는 있어도 토기쟁이보다 못한 놀음을 하고있다. 내버린 각종 그릇개비들을 보면 녹아서 찌그러든것, 사기물이 오르지 않아 모래알이 드러난것, 무늬는 고사하고 본래의 모양은 접시였는데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든 형태로 변한것 등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물건들이 생겨나 젊은이들을 아연하게 했다.

비방을 알고 시작한것이 아니라 욕망을 앞세운 놀음이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덕동이로서는 눈아래 절벽강산이 막아선듯 한데다 젊은 혈기와 급한 성미로 한층 무리한 힘내기를 계속할수밖에 없었다.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어디에 있다더냐 하는 식으로 로를 허물고 다시 쌓았으며 백토와 모래의 혼합을 주먹치기로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우격다짐을 하지만 로에서 나오는것은 아무 쓸모없는 굳어진 흙덩이뿐이다. 기술이 없이 자기를 굽는 일은 백번이 아니라 천번을 씨름질해도 차례질것이란 실패라는것을 덕동이는 모르고있었다.

진주는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도 하루도 번지지 않고 자기장에 올라가군 한다. 백씨의 주선으로 가정을 이룬 후 이곳 송산에 와서 아들까지 낳은 그로서는 덕동이가 어떻게 하나 자기를 구워내기만을 고대하였다. 백씨가 바라는 자기는 그들 가정의 유일한 희망이고 생사의 명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문에 가슴을 조이고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며 한숨속에 사는 그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요. 오늘로 끝장을 보겠소. … 안되면… 토기쟁이로 돌아가 사는수밖에…》

덕동이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자기장에 올라갔다.

나무지팽이에 의지하여 한걸음한걸음 옮기며 진주는 불안한 생각에 시달리였다. 날이 갈수록 피발이 진 두눈만 남아가는 남편의 정상에 소리없이 우는 그였고 자기들의 행복을 마련해준 백씨를 생각할 때면 죄스러운 마음으로 속에 재가 앉는다. 얼마나 많은 돈을 들이민 자기장인가. 좀해서 한숨을 쉬는 일이 없는 백씨지만 며칠전에 와서 보고 랑패감으로 자기장앞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미련한 내가 자기굽는 일을 장사만큼 여겼구나.》

통탄이였다. 후회와 절망의 개탄이였다. 그때 백씨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1년이 넘도록 일어서지 못하는 자기장에 수만냥을 들이민 그다.

진주로서는 자기굽는 일이 어떤것인지 알지조차 못했다. 막상 남편이 하는 일에 닥쳐들어보니 수틀이나 마주하고 산 그로서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로를 한번 쌓는데만도 벽돌이 수백장이나 들고 작업도구 역시 가지수를 셀수 없게 많았다. 장정 둘이서 바람을 일구는 풍구며 갖가지 목형들, 밀차며 크기가 다른 쇠장대들, 크고작은 자기모양에 따르는 색감과 유액, … 실로 자기장 하나를 갖춘다는게 보통사람으로서는 마음조차 먹지 못할 일이다.

백씨는 그 모든 부담을 혼자서 걸머지고도 달래뫼기슭에 초가집 다섯채를 지어주었다. 자기장 젊은이들이 살림을 펴고 걱정없이 살게 하려고 그렇게도 마음을 써준것이다.

진주는 백씨생각이 날 때면 친어머니같은 모습에 눈물부터 앞섰다. 아들을 낳았다는 기별을 받자 만사를 제껴놓고 아기옷과 기저귀며 꽃이불까지 해가지고 와서 부모들과 상론하여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룡산이라… 이름이 참 좋구나. 진주야, 룡산이를 잘 키워라. 제발로 뛰여다닐 땐 내가 데려다 서당에 보내 공부시키겠다.》

진주는 백씨의 다심한 인정에 더욱 존경하게 되였다.

인생의 고초를 그 얼마나 겪은 녀인인가. 16살에 남편을 잃고 오늘까지 혈육도 없이 고독하게 살며 자기같은 젊은이들을 자식같이 여기고 의지해서 산다. 량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제 발뒤축에 생긴 사마귀만큼도 여기지 않지만 이 어머니는 자기같은 사람들의 고생을 헤아려 자기장을 차렸다. 아, 일이 잘되면 얼마나 좋으랴. 이 골안 집들에서 시름없이 웃는 그를 맞이할 날이 과연 올가.

힘겹게 작은 등성이를 오른 진주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금시 쓰러질듯 휘청거리다가 지팽이를 두손으로 잡고 간신히 지탱했다.

대망치를 휘둘러대는 덕동이의 모습은 정신나간 사람같다. 방금 구워낸듯 한 자기를 마구 짓부셔 마사대는것이다. 망치에 맞는 자기들이 펑펑, 챙챙 소리를 내며 산산쪼각이 나 뿌려진다.

웃옷을 벗어던진 세 젊은이는 얼빠진 눈으로 덕동의 모습을 바라볼뿐 말릴념도 내지 못한다.

덕동이는 대망치를 휘둘러칠 때마다 《아- 아!》 하고 소리를 내는데 피를 토하는 사나이의 울음이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요. 오늘로 끝장을 보겠소. … 안되면… 토기쟁이로 돌아가 사는수밖에…》

진주는 덕동이가 하던 말이 귀전에 들려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저도 모르게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만해요! … 무슨짓인가 말이예요?! … 어머니가 아시면… 이건 어머니를 배반하는 일이예요! …》

덕동이 손에서 대망치가 마사진 자기우에 뚝 떨어져내린다.

이어 풀썩 주저앉아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더니 마구 뜯어댔다. 진주의 말이 너무도 옳았던것이다. 경상골 토기쟁이에게 가정을 꾸려주고 살길을 열어준 백씨의 은혜를 이렇게 갚는다는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였던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주의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여보, 내 재간으로는 안되니 이 일을 어쩌면 좋소?!》

땅에 머리박고 앉았던 덕동이가 가슴을 두드리며 하소연을 터뜨렸다.

눈물과 탄식, 절망과 한숨속에 잠긴 자기장에 불현듯 백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덕동아, 어서 일어나거라.》

자기장일이 걱정스러워 찾아온 백씨가 진주의 뒤에 서있었다.

《어머니! …》

손에 짚었던 지팽이를 떨군 진주가 다리를 끌며 걸어와 백씨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다리가 불편한 너까지 여기 올라와 속을 썩일건 뭐냐.》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차라리 우리같은걸 모르는척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이젠 저질러놓은 이 일을…》

《한다는 소리란… 이게 어디 너희들탓이냐. 내앞에서 눈물들을 거두거라. 난 울고불고하는건 질색한다.》

백씨는 진주의 팔을 끼고 가 자기장옆 통나무에 앉히고나서 천천히 로앞으로 걸어갔다. 류황빛을 띤 로벽은 아직도 녹아내릴듯 뜨거운 열을 내뿜는다. 아예 범접을 하지도 말라는 기상이다. 그의 두눈은 로벽보다 더 세찬 열을 띠고 번쩍거린다.

장사군타산이 일을 친가보구나. 땅도매에서 손해를 보면 도매점이 메꾸고 도매점에서 밑지면 자기장이 봉창하는 식으로 하자던 노릇이 지금같이 돼버렸다. 행상길에 나서서 다니며 제일 부러운게 자기장이 아니였던가. 장사하고는 달라 밑천을 들인대로 자기라는 물건이 생기면 밑지고 리보는 고패질없이 순탄하게 돈을 벌수 있다고 여겼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말이 옳다. 자기굽는 일은 장사와 다르다는 리치를 알지도 못하고 덤벼들지 않았는가. 이거야말로 행상도 도매도 아닌 오묘한 비방을 가진 재간둥이들만 할수 있는 일이다.

무지한것이 그것을 모르고 어렵지 않게 여기였으니 이제 와서 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과연 자기장을 내 힘으로 일궈세울수 없단 말인가. 저 불속에 태워버린 돈은 없어진것으로 친다 해도 덕동이와 진주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는가. 치마바람을 일구며 나서서 젊은이들의 연분까지 맺어주고 이제 와서 토기쟁이로 돌아가 살게 한다면 내가 무슨 사람인가. 그렇다고 무슨 방도가 있는가. 자기로를 허물고 다시 쌓아서 될 일도 아니며 지금 덕동이네 재간으로 만들어낼 자기도 아니다. 백씨의 두눈은 무섭게 빛을 뿜었다.

내 비록 배운게 없는 녀자다만 자기장을 꾸리지 못하면 백씨가 아니다. 물러서면 망하고만다. 이 몸이 저 불속에 들어가 앉아 자기가 되지 않으면 죽어 없어질테다.

《어머니, 이 우둔한 놈때문에 어머님이… 제 토기를 구워서라도 은혜를 죽는 날까지 갚겠습니다.》

백씨의 곁에 온 덕동이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오죽이나 고생했는가. 덕동이 성미에 제 입으로 저 말을 하자니 이젠 맥을 놓은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백씨는 측은한 생각과 함께 누를길 없는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네가 덕동이가 옳으냐? 사내대장부로 알아온 덕동이가 너였느냐?》

《어머니…》

《자기를 만들어내면 살길이고 여기서 그치면 우린 망한다!… 내가 다시 뜨물지게를 지고 네가 다시 경상골안 돌막집에서 살게 된다면 다같이 짐승살이 아니고 뭐냐?!》

《차라리 짐승같이 살지언정 어머님이 피땀으로 번 돈을 더는 못 쓰겠습니다.》

백씨의 험악해진 눈길이 천천히 덕동이를 노려보았다.

사람의 깨끗한 마음과 진정이야 어디 가겠나만 지금은 그따위 감정이나 앞세울 때가 아님을 잘 아는 그였다. 죽고사는 일앞에서 사생결단하고 일어설 궁리를 해야지 맥빠진 소리가 무엇에 필요한가.

《네가 아직 나이를 덜 먹어 고생이란 뭔지 모르는구나. 네 말로 하는 짐승살이라는게 입에 올리는 수작질이 분명하다. 가난때문에 사람이 짐승취급을 당할 때 하루에도 열두번 죽고싶은 그 고통을 맛보려거든 네 손으로 저 자기로를 허물어라! 어서!》

백씨의 기상앞에서 덕동은 헉헉 더운 숨만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시키는대로 못하겠느냐? 허물어버려라!》

《어머니! …》

《죽어도 제 할바를 아는 사내 아니면 날 어미라고 찾지 말아!》

《…》

《그럼 내가 무너치우마!》

진주는 지금까지 너그럽게 보아온 백씨가 한순간에 무서운 녀자로 변하는통에 두손으로 입을 막았다.

치마자락에 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간 백씨가 남자들이나 다루는 대망치를 한손으로 장작개비같이 움켜쥐고 쳐들어올리지 않는가. 그 기상은 자기로가 아니라 골안도 단숨에 허물어버릴것 같았다.

《어머니! …》

덕동이와 자기장 젊은이들이 백씨의 손을 붙들고 매달렸다.

《비켜라! 너희들은 말이 사내지 험한 세상을 제힘으로 살아갈 용기가 없는 녀석들이다.》

《어머니, 고정하십시오. …》

덕동이는 백씨앞에 무릎을 꿇었고 두 젊은이가 백씨의 손에서 겨우 대망치를 앗아냈다. 그리고나서 그들도 덕동이처럼 꿇어앉아 고개를 숙이였다.

《저희들이 재간이 없고 게으른탓에 어머니의 마음고생을 시키고있으니 부디 용서하십시오.》

백씨는 그 소리를 바람결같이 들으며 터벅터벅 걸어가 무릎을 짚으며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자기장 젊은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여겨보는 그의 마음은 그지없이 아팠다. 하나같이 입술들이 부르텄다. 걸친 무명잠뱅이가 불찌에 구멍이 숭숭한데다 땀에 삭아서 옷주제들도 말이 아니다. 자기굽기를 명줄로 여기지 않았다면 이런 고생을 사서 할텐가. 무엇을 먹고 일하는지 알아본 일이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친 그는 진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주의 정상에 눈길이 가자 백씨는 눈물이 솟구치는것을 겨우 참았다. 두손으로 치마자락을 꼭 움켜쥐고 손질도 못한 머리를 푹 떨군채 소리없이 울고있다. 지금같은 고생이나 시키자고 덕동이와 짝을 무어주었던가. 좋은 일을 하려다 불행을 안겨준셈이니 이 모든 일이 내탓이 아니고 뭔가. 덕동이, 진주의 재간이면 자기를 굽겠거니 여긴 내가 미련한 년이였다. 백토와 모래, 물과 나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무지한것은 나다. 행상벌이만큼 대하다나니 1년이 넘도록 이 모양, 이 꼴이 계속되게 하였다. 지금같이 힘내기로는 자기를 굽지 못한다. 여기에 밀어넣은 돈을 건져내지 않으면 도매점일이 허리를 못 펴고 해를 넘기며 시세에 따라가는 땅도매를 바라보다 밑천이 거덜나면 그땐 어쩔 도리없이 주저앉고말것이다.

백씨는 뒤늦게야 험한 고생시킨 덕동이네한테 지나치게 굴었다는 생각을 하며 진주를 불러 곁에 앉히였다. 자기장 일군들이 무얼 먹고 일하느냐 물었더니 그 대답에 억이 막혔다. 하루 세끼 강냉이죽에 소금을 뿌려서 먹었다니 무쇠란들 견디겠는가.

《내가 준 돈은 다 어떻게 하구?》

진주가 괴춤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장 몇개를 꺼냈다. 실로 귀퉁이를 꿰맸다. 거기에 돈을 쓴것이 다 적혀있다. 먹지들은 않구 자기장 꾸리는데 쓰일 가지가지의 작업도구들을 사는데 썼다. 그 돈이 약차하다는것을 백씨는 지금에야 알수 있었다.

《진주야, 왜 나한테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니?》

《죽조차도 모두 입맛들이 떨어져 들지 않습니다. …》

오죽이나 일에 정력을 바쳤으면 모두 입맛들까지 잃고 밤낮으로 자기로에서 일했겠는가.

《다 내탓이다. 돈만 보구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나를 욕해라. …》

《어머니! …》

진주가 백씨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어깨를 떨었다. 가슴속진정을 다 터뜨리지 못하는게 알린다. 무슨 일이나 열번 생각하고야 대답하는 진중한 성미여서 마음이 더욱 쓰인다. 다리만 절지 않는다면 어디에 내세워도 짝지지 않게 잘 생기고 현숙한 진주였다.

《진주야, 네가 좀 말해보렴. …》

《어머니, 룡산이 아버지같이… 지금같이 해서는 안될줄 압니다. 지혜가 용력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애먹는건 자기굽는 비방을 아직까지 어림짐작으로 알고있기때문이라고 봅니다. …》

과시 옳은 말이다. 진주가 아는 리치를 내가 몰랐고 우직한 덕동이는 애초 제 안해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고 안했을것이다. 직심스럽게 하느라면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암둔한 처사였는가.

진주쪽에 대고 눈을 흘기던 덕동이가 백씨의 시선에 눌려 다시 고개를 수그린다. 토기쟁이 고집이 얼마나 세찼겠는가 하는걸 한눈에 볼수 있는 행동거지다.

《진주말이 내 마음에 꼭 든다. 눈 먼건 나고 내가 무지하다보니 덕동이네를 이같이 고생시켰으니 할 말이 없다.》

덕동이가 무릎에 대고 두주먹을 꾹 누르며 속에 들어찬 말을 토했다.

《어머니… 잘못도, 죄도 다 저한테 있습니다. 어머니분부대로 여러곳의 자기장을 찾아다니며 배워서 다 안다고 여기며 그냥 우겨대다나니… 제가 이제 무슨 말로…》

《죄는 무슨 죄… 어느 관가의 빚이라도 졌더냐? 고개들을 들고 이리 나와 앉거라.》

백씨의 어조가 풀리자 젊은이들은 고개를 들고 편안하게 앉았다.

《다들 자기 생각을 털어놓고 말해보자. 송산 백토가 다른 자기장의것만 못해서 그러진 않느냐?》

그 물음에는 덕동이가 머리부터 내저으며 대답했다.

《제가 여기 백토를 가지고 안다닌데가 없습니다. 오랜 자기공들도 백토치고는 쉽게 찾지 못할 좋은 재료라고 했습니다. 제가 본 수안과 선천의 백토도 우리것만 못했습니다. 백토탓은 아닙니다.》

덕동이가 입을 열자 곁에 앉은 자기공들이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옳아요. 송산백토만 한건 없어요. 하지만 백토가 좋다고 다 훌륭한 자기를 구워내는건 아니지요. 백토와 모래를 어떻게 섞어서 이기는가 하는것도 비결의 하나인데 우린 짐작으로 하거든요.》

《이상한건 수십개중에서 자기모양을 갖춘게 생겨나기도 하는겁니다. 내 생각엔 로안에 비결이 있다고 봅니다. 처음 자기를 넣었을 때 불기운, 익어갈 때 불기운, 마감 불기운이 달라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불조절을 오죽이나 해봤나? 로안을 들여다볼수는 없지. 별재간을 다 부려보았지만…》

백씨는 덕동이네가 자기들이 가지고있는 궁리를 합쳐 안해본 일이 없다는것을 알았다. 수백의 군사가 한사람의 장수를 당하지 못한다. 한것은 보통군졸에게 장수의 지략이 없기때문이다. 지금의 자기장이 일어서자면 재간있는 일군을 찾아내야 한다.

《덕동인 여러 자기장을 찾아다녀봤는데 재간을 가진 친구를 사귄게 없나?》

더부룩한 머리를 쳐든 덕동이가 한숨을 내쉬였다.

《말로만 들어와 뭘 그러랴 했는데 자기쟁이 백명에 비방을 아는 사람은 숨은 인물로 한둘이여서 그들을 찾기조차 힘듭니다. 그리구 자기쟁이들의 계률이 어찌나 엄한지 비방이 절대로 새여나가지 못하게 하니 더욱 재간둥이를 찾을수 없습니다. 제 생각엔…》

말꼬리를 삼킨 덕동이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든다. 제 입으로 말하기를 힘들어하는게 알렸다.

《왜 끙끙 갑자르는거냐? 오늘같이 된 이 판에서 속생각을 감추면 일이 바로될수 있겠니?》

《저…》

《말하래두.》

덕동이가 소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님도 아실테지만 대동에 자기장이 생겼습니다. …》

《아다마다, 명준길제옹소라고 하지.》

《그 제옹소에서 노란자위로 일한 젊은이가 지금 증산에서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우로 형이 셋이였는데 모두 잘못되여 부모님들 모시느라 자기굽는 일을 그만뒀습니다.》

《우리가 그 재간둥이를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

《부모가 로환으로 앓고있는데다 오래전부터 자기를 구워온 집안이라 땅마지기나 마련해놨기에 사는 고생은 없으니 오자고 안합니다.》

자기쟁이후손이라면 대를 물려받은 재간이 있어 맞춤한 사람이겠지만 땅마지기를 넉넉히 갖추고 산다니 데려오기는 어렵겠다고 백씨가 생각할 때 덕동이가 조심히 말했다.

《제가 달포전에 갔다왔는데 그 집에도 걱정거리는 있습니다.》

《뭔데?》

《그 고장에 물보를 막는다고들 합니다. 물보가 생기면 그 집 농토가 물에 잠기니 땅을 팔고 옮겨앉을 생각을 했습니다.》

덕동의 말을 듣자 백씨는 유양점을 생각했다. 그가 전번에 만났을 때 증산쪽에서 물보공사판을 벌릴 잡도리라고 했다. 물보공사는 관가의 승인밑에서 진행되는것이니 어쩌는 도리없이 집과 땅을 버려야 했고 그와 같은 형세에 빠지면 땅값이란 크게 바라볼것도 없다. 물보는 큰 지주들이 돈을 대고 하는 공사라 물안에 들어 땅 내놓는 사람들에게 줴주는 값이란 보잘것없을게 뻔하다.

백씨는 한시바삐 유양점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덕동이 말대로 자기쟁이집 농토가 물보안에 든다면 일은 쉽게 성사시킬수 있다. 유양점을 내세워 지주들보다 땅값을 후하게 주면 자기장으로 돌려세울수 있을게고 아들뿐만아니라 대대로 자기를 구운 늙은이까지 모셔다 여기에 살림을 펴주면 지금의 궁지에서 헤여나오게 될게 아닌가.

《덕동아, 너희들은 더 맥을 뽑지 말구 자기로를 새로 쌓을 준비를 하거라. 잡도리를 잘해놔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씨가 이렇게 말하자 덕동이와 젊은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우줄우줄 일어났다.

《가시렵니까?》

《오냐, 이길로 증산에 가겠다.》

《그럼 제가 말한것때문에? …》

《진작 그 말부터 했어야지.》

진주가 백씨를 붙들었다.

《어머니, 가시더라도 날이 저무는데 하루밤 쉬고 래일 떠나세요.》

《네 서방 돼가는 꼴을 좀 봐라. 자기를 굽자고 한 로가 서방 죽일 구멍이 될가봐 걱정도 되지 않냐? 허허.》

백씨가 급해하는건 기회를 놓치면 사람을 잃게 되기때문이였다. 대동에 있는 자기장사람들이 소식을 알았다면 선손을 썼을지도 모른다.

후줄근해선 덕동이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 집에서 땅값을 엄청나게 부르면…》

《만냥을 주고서라도 재간둥이를 얻으면 리본 장사라는걸 내가 다 알게 됐는데 넌 아직 돈소리냐?》

백씨의 대범한 타이름에 덕동이가 더수기를 썩썩 긁자 젊은이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가셔지기 시작했다.

《진주야.》

《네.》

《오늘은 저녁을 잘 차려라. 고기랑 술이랑 사다가 우거지상이 된 이 졸장부들을 대접해라. 내 갔다와서 진주가 얼마나 속을 썼는가를 알아볼테다. 알겠니?》

《어머니… 그 먼길을…》

진주는 당부보다 백리길을 떠나는 백씨의 흔연한 모습에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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