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9

 

서슬이 등등하여 살진 무르팍을 한손으로 철썩철썩 두드리며 소리질러대는 객주집 녀주인을 백씨는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년! 얼른 기여나와 방등심지를 돋구지 못하겠느냐?! 네년의 이름은 혀바닥에 올려놓기조차 구역질이 난다. 이년아!》

한밤중이니 자고있었는지 머리를 풀어헤친 송월이가 문열고 나와 등갓을 제끼고 불심지를 돋군다.

《저 꼴을 좀 보소. 온몸에서 살이 내뻗치는게 보이지 않소?! 아귀외다, 무서운 독종이외다. 이년아, 냉큼 사라져라! 귀신같은 그 꼴에 피가 다 얼어든다!》

나오라고 들볶더니 사라지라고 소리쳐대는 주인의 고함질에 송월은 치마바람을 일구며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봤지요? 저 망할 년한테 생벼락이라도 내려칠게지. 랑림산호랑이는 배도 안 고픈가?! 저런거나 물어다 씹어먹을게지.》

《난 이런 일이 있을줄은 통 모르고 왔어요. 무슨 변이라도 있었나요?》

백씨는 주인의 앙앙불락에는 개의치 않으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글쎄 저 미친년이 량반골통을 타구로 쳐서 피투성일 만들었수다.》

《원, 저런-》

《망조외다. 손님들이 찾아들지 않아 요즘은 저녁이면 텅 빈 객주집이 돼버려요. 저 쌍년이 돈구멍을 다 막아치우지 않았수. 기가 차서…》

《어떤 량반인데 송월이한테서 타구벼락을 맞았답디까? 뭘 어쨌게 그런 일이 생겼겠지요.》

《량반인즉 서울에서 왔는데 개명한 사람이였수다. 우리 집 걸음이 몇번 되는데 녀자를 다르는 솜씨가 시골뜨기하군 판판 다릅디다. 내가 다 동하더라니까요.》

백씨는 쓴입을 다시였다. 기생퇴물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말도 듣기 거북했지만 그 얼굴보기는 더 역겨웠다. 그러니 송월의 몸에 손을 대려다 골통이 깨졌다는 소리다. 녀자 알기를 어느 집 삿자리만큼 여기는 량반들이 맛을 톡톡히 본셈이다.

《객주집에도 기생둔다는 말은 처음 듣수다.》

백씨의 말에 주인은 기겁할 일이나 당한듯 몸을 제쳤다.

《그럼 돈버는 재간을 배워주구려.》

《됐어요. 내가 실없는 소리했으니 탓하지 마시라요.》

《계집은 나무요, 사내는 도끼라 찍으면 넘어가는게고 그 찍히우는 재미로 사는게 계집이 아니겠소. 서방둔 년들도 간통을 할라니 홀몸에 오죽이나 좋소?! 재미봐, 돈벌어… 렬녀문이요, 정조요 떠들어들대지만 진짜 한 지아비 섬긴 계집이 얼마인지 누가 안답디까. 품들이지 않구 하는 일을 저 미친년이 지랄을 부려 집안돼가는 꼴이 말이 아니외다.》

녀자의 정조 같은건 잊어버린지 오랜 녀자의 입에서 기여나오는 소리란 하나같이 얼굴 뜨거운것이지만 뱉아대는쪽에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거리낌없이 지껄여댄다.

《이젠 송월이를 어떻게 하실려우?》

《어이구, 마침 잘 왔수다. 내 저 빌어먹을 년과 달반이나 불궈두고 싸움을 합네다. 아무리 뜯어주구 두들겨패도 어떻게나 질긴 독종인지 내 힘이 모자랍네다. 나가라니 어데 나가기나 하우? 이젠 내 멱살을 물고늘어져 10년 가까이 일시킨 값을 내야 나가도 나가겠다니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수?! 날더러 돈을 내래요. 하? 피를 채웁니다. 함께 미쳐버린다는 소리가 나올 판이외다.》

제풀에 초풍을 만난듯 떨어대는 녀자를 보며 백씨는 속으로 웃었다. 송월이가 정말 똑똑하다. 제 몸을 지켜낸것도 장하지만 돈에 미친년에게 얼마나 통쾌한 구실을 내댔는가. 이놈의 세상을 살자면 마음이 독해야 한다. 녀자라고 맥없이 주물리우기 시작하면 뼈대없는 물건짝이 되고만다. 그렇게 한뉘를 살다 땅속을 찾아간다는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백씨는 속과 달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 이걸 좀 보시우.》

구역질나지만 형님이라 춰올리며 그는 가지고온 보자기를 풀었다. 비단과 모시천이 보이자 주인의 낯색은 대번에 달라졌다.

《처음 보는 비단이다-》

《장사군들이 서울량반집에 날리는걸 내가 겨우 한몫 잡은거예요. 청나라비단인데 정승대감 부인들이나 입는다더군요.》

《어디 좀 보세. … 야, 정말 곱구나.》

욕심이 동한 녀자가 천필을 드리우고 제 몸에 대보며 혀를 찼다.

《이건 상주모시예요. 모시중에선 상등자리에 갑니다.》

《야, 눈보다 더 희구나.》

송월이를 게거품물고 욕해대던 쌍스러운 입에서 노래가락같은 소리가 흘러나오자 백씨는 기다렸던 기회라 넌지시 말했다.

《옷을 해입으시구려.》

《날 주려나?》

《맘고생을 많이 시킨 내가 아니나요. 송월인 내가 얼려서 데려 가겠수다.》

욕심스레 비단천을 그러안은 녀자가 선뜻 대답했다.

《그럼 이건 내가 가지구 그년은 데려가게, 그것도 래일 당장.》

《허허, 막 쫓아내시나요?!》

《쫓지 않구. 그년이 우리 집안의 액운이네. 화를 더 당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없애버려야지.》

《아닌게아니라 벌써 날이 밝는군요.》

백씨가 송월의 방에 들어가니 독한 송월이라 밝아오는 동창을 향해 앉아서 고개조차 안 돌렸다.

얼마나 시달림을 당했겠는가. 욕심사납고 그악스럽기로 소문난 년의 손아귀에서 어느 하루 마음편한 날 없었을테니.

송월의 곁에 가서 앉은 백씨는 조용히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아무 응대가 없다.

《송월아.》

《…》

《네가 나를 원망할줄 안다.》

그 말에 송월의 고개가 앞으로 폴싹 수그러들었다. 설음을 참아내는 목소리가 울렸다.

《기다렸습니다. … 기다리고 또…》

백씨는 송월을 와락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송월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울음을 삼키였다. 이 집에서 다른 기색을 나타내면 안된다는것을 잘 아는 송월이였다. 참으로 약바른 애다. 백씨는 한동안 말없이 송월의 등만 어루만지였다.

《송월아, 머리를 빗으렴.》

눈물을 훔치며 빗을 찾아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백씨가 말했다.

《이리 다오. 내가 빗어주마.》

참빗을 든 백씨는 송월의 탐스러운 검은머리를 한손으로 쓸며 정히 빗어내렸다.

《나하구 가겠니?》

《정말입니까?》

《가자, 내 너를 딸처럼 여기고 살련다. 곁에 두고…》

탐스러운 머리채를 앞가슴에 드리운 송월이가 백씨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간절한 애원이 안개처럼 흘렀다.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

《네가 그렇게 부르면 더 좋지.》

《어머니! …》

송월은 백씨의 품에 다시 얼굴을 묻으며 《엄마, 엄마!》 하고 울며 부르고 외웠다.

짐을 꾸려든 백씨는 송월을 데리고 객주집마당에 내려섰다.

《우린 가겠어요. 이것저것 끼친 페는 후날 꼭 갚지요.》

백씨의 인사를 받으며 주인은 마루우에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에야 송월이를 놓치는게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친 모양이지만 쏟아버린 물이라 어쩔 도리가 없어 어정쩡하니 서있는 꼴이였다.

백씨는 붓배기 몇개와 장사군들도 손에 쥐지 못해 안달아하는 얼마간의 비단을 던져주고 송월이를 빼내였다. 그는 손해볼 내가 아니다 하고 속으로 말하며 대령강객주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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