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7

 

잎이 진 초목들이 동면하는 겨울철에 사람들의 걸음은 하나같이 노루뜀질이다. 추위를 이겨내자니 남자든 녀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껑충거리기도 종종걸음치기도 한다. 입은것이란 고작해서 무명두루마기나 덧저고리고 발에 걸친것 역시 짚신, 고무신따위니 버선이나 신어가지고서는 얼어드는걸 막을수 없어 잔뜩 웅크린채 토시속에 두손을 모두어잡고 걸음을 재촉하기마련이다.

평양감영이 자리잡은 만수봉기슭 행길가에는 잎이 진 버드나무들이 가지를 풀어헤치고 바람이 불어칠 때마다 시달림에 지쳐서 아우성소리를 지른다. 립춘을 바라보지만 겨울은 물러갈 잡도리는 하지 않고 련 사흘 강추위를 몰아왔다.

토목수건을 뒤집어쓴 한 사나이가 장골쪽으로 걸음을 다그친다. 도원국이다. 이틀전 박천에서 떠났는데 중낮이 돼서야 평양에 발을 들여놓았다.

장골어구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는 맨 처음 맞다든 음식점에 무턱대고 뛰여들었다. 온돌방을 빨리 찾아서 엉치를 붙여야지 얼어죽는다는 소리가 나오겠다.

찾아든 집이 마침 우동집이여서 도원국은 《어험, 마침이군.》하면서 신발을 벗어내치기 바쁘게 캉우로 기여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기름때가 올라 반질반질한 남색마고자를 입고 방울이 달린 동그란 모자를 쓴 중국남자가 반가와하는 웃음을 짓고 나타났다.

《우리 집 첫 손님인데 뭘 들여올가요?》

의주에서 청나라음식을 많이 먹어본 도원국인지라 어렵지 않게 청했다.

《교즈… 교즈… 원, 날씨라는게… 뜨끈하게…》

《예, 예. 배갈도 한잔?》

《물론… 속부터 녹여야겠소. 얼른 주오.》

허리에 두른 앞치마이자 수건인 남색천을 한손에 쥐고 흔들며 중국남자가 나가기 바쁘게 상이 들어왔다.

구운 교즈가 눈에 뜨이자 도원국은 참대저가락으로 닁큼 집어 입에 넣고 뜨거워서 혀바닥으로 굴려대다가 얼추 씹어삼켰다. 목구멍을 따라 더운것이 속에 들어가니 얼어든 몸도 녹기 시작했다. 도수높은 배갈 한잔을 마시자 눈곱이 끼며 앞이 뿌옇게 흐려났다.

《이제야 살것 같군. … 동장군한테 잡혀가는가 했지. 허허-》

그는 혼자서 중얼대며 교즈를 곁들여 술을 천천히 마셨다.

일찌기 장사길에 나선 그다. 스무해 가까이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소원성취는커녕 혈친간에도 무정한 인간이 되여버렸다. 길바닥에서 배운 거짓말이 이제는 집안에 들어가 처자들앞에서도 거리낌없이 나오는 판이다. 큰돈을 벌자니 녀편네 고생시키고 자식들 배조차 불려주지 못한다.

망할 놈의 돈이 나한테는 왜 붙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밑천 잡아 새 판을 벌리다 녹여먹은 일이 한두번 아니다. 잡았다 놓치군 할 때면 악이 받쳐 그 무서운 잠상길에 다시 몸을 잠근다. 나라법을 어기지 않고서는 묵돈을 벌 방법이 없으니 별수가 있는가.

장사란 남의 등쳐먹는노릇인데 쇨대로 쇤 세월이라 속아넘어가는 놈이 어데 있는가. 모두 눈에 달이 떠서 돈벌이에 나섰으니 속고 속여먹는게 장사판이다.

유양점은 토목공사를 해서 일어섰고 백씨는 행상으로 도매점까지 내왔다니 속에 불이 일어 참기 힘든 도원국이였다.

어차피 백씨와 마주서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니 난처한 일이다. 송월이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의 말로는 백씨가 꼭 데려다 곁에 두고 일을 시키마 약속했다는것이다. 혹시 도매점을 맡기자는게 아닐가. 그럴수도 있다. 앉아있는 성미가 아니고 앉아서 하는 장사일은 성차지 않아하는 백씨로서는 십분 자기가 믿을만 한 사람을 도매점에 앉히자고 할것이다.

송월이가 도매점에 앉기만 한다면 길은 트이는셈이다. 잠상물건을 이곳에서 소리없이 팔수도 있고 부산 동래나 송도에서 나르는 잠상짐을 로상에서 맡길만 한 집이 생기는데다 한두달도 묵여둘수 있으니 좀 좋은가. 잠상품은 여느 물건과 달라 묻어두고 줄을 찾다가 걸려들면 한시에 팔아치워야 한다. 백씨가 과연 송월의 소식을 기다릴가.

도원국의 생각은 그냥 방아를 찧어댔다.

제발로 찾아들었다가 빚진 돈때문에 올가미를 쓰면 이번에는 그녀자 손에서 빠지지 못한다. 우는소리를 해서 절반만 내놓을가 마음먹자니 그것도 아깝다.

타산에 타산을 이어가던 도원국은 제 꼴이 눈에 보여 저도 모르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오빠, 갑사댕기 사줘요. …》

장연쪽에 살던 외사촌녀동생이 만날 때마다 졸라댔지만 매번 사주마 하는 거짓말로 굼땠다.

두해전 가을에 가보니 이모는 세상을 떠났고 도원국이를 그처럼 따르던 녀동생은 볼수 없었다. 룡연쪽에서 심부름군노릇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가봤지만 그곳에는 없었다. 열살에 어머니를 잃고 집을 나간 아이니 지금 어데서 헤매는지 알수 없다. 얼마전 이모네와 한마을에서 살았다는 사람을 우연히 개천장에서 알게 됐는데 녀동생을 평양에서 봤단다. 지금 나이가 14살이니 어느 음식점 같은데서 일하지 않는지. …

우동그릇이 들어와서야 무거운 생각을 뒤에 돌려놓은 도원국이 훌훌 불면서 먹기 시작했다.

기름진 청나라음식으로 배를 채운 도원국이 껄껄 트림을 하고나서 차로 입가심하는데 우동집주인이 들어왔다.

《얼마요?》

주인은 앞치마를 한손으로 쥔채 손가락 셋을 세워보인다.

동전 세잎이면 막눅거리다. 도원국은 손짓으로 주인을 앞에 불러앉히였다.

《이런걸 보았소?》

도원국은 괴나리보짐속에서 비단천쪼박과 양초 몇대를 내놓았다.

우동집주인은 천쪼박은 만지다 밀어놓고 양초를 집어들었다.

《한가치면 밤새 탑네다.》

《이런게 많소?》

《사실려나?》

《얼마요?》

도원국은 주인이 하던대로 오른손 다섯손가락을 펼쳤다.

《호-》

주인이 만족을 표시하자 도원국은 낮은 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오늘저녁에 오겠소.》

잠간사이에 장사흥정을 끝낸 도원국은 우동집주인의 손에 동전을 쥐여주고나서 일어섰다. 평양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잠겨있던 물건을 팔게 된것이 기뻐 송월의 소식을 전할 생각은 까맣게 잊어먹었다.

그에게는 의주역관을 통해 건너온 청나라의 당목과 비단, 아라사의 양초와 털가죽이 팔리지 않은채 이집저집에 틀어박혀있었다.

우동집 중국사람을 만나 가지고있던 양초를 본전의 곱이 되게 다 팔아치운 그가 수소문하기 시작하니 겨울철인지라 부자집들에서 털가죽을 사겠다는것이였다. 그제야 도원국은 삼복철에 털가죽을 메고다닌 자기가 얼마나 아둔했는가를 깨닫고 신이 나서 값을 올리부르고 내리부르며 폭리를 보았다.

제 물건 파는 재미에 한달을 돌아다니고나니 달음질하는 계절이라 어느새 대동강이 풀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전대를 허리에 차고나서야 녀동생생각이 나서 평양바닥의 음식점이며 려인숙을 돌아치며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갑사댕기가 그리도 부러워 사정사정하던 어린것의 소원풀이도 못해준데다 부모잃고 류랑하는 가련한 신세를 건져줄 도리조차 없었다.

《순애야, 날 원망해라. … 내가 무정했구나. …》

때늦은 후회를 하며 그는 오늘저녁에는 백씨를 만나 송월의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백씨는 송산으로 갈 차비를 하고 일어섰다.

《나리야.》

《예.》

《려인숙식모가 왜 안 오느냐?》

《어머니, 지금 들어서는 길이예요.》

문밖에서 나리의 방울새소리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백씨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서 오시우.》

《미친 녀석이 조석으로 소동을 피우니 어디 몸뺄새가 있더라구요.》

《앉으시우.》

자리잡고 앉자 식모녀인이 먼저 말했다.

《난 엊저녁 그녀석에게 말했수다, 래일 떠나겠다구.》

《그러니 뭐랍디까?》

《기가 올라 펄펄 뛰지요. 부엌일을 시킬 일손을 마련한 다음 가라는거외다. 난 아예 딱 잘랐수다.》

《고향이 증산이라니 그곳에 내 땅이 한 7, 8정보는 됩니다. 마음드는 땅을 골라 농사지으시라요. 그리구 이건 자리잡을 동안 쓸 돈이예요. 받아두시라요.》

백씨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돈을 내놓았다.

《이러지 마시라구요. 땅을 부쳐먹고 살게 해준것만도 갚지 못할 은혠데…》

《그쪽으로 자주 다니니 종종 만나게 될거예요. 봐가면서 눈이 트이면 장사도 하게 해주지요.》

《정말 고맙수다.》

《려인숙에 쌀이 얼마나 남아있는가요?》

백씨는 묻자던 말을 그제야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송산에서 쌀이 두달째 넘어오지 않수다. 오금 놀리기 싫어하는 녀석이 두축이나 갔다왔지만 그쪽에서 꿈쩍 안해요. 창고가 바닥이 나 며칠전부터는 싸전에서 비싸게 사다가 손님을 겪지요.》

백씨는 제 뜻대로 되는지라 마음이 놓여 고개만 끄덕댔다.

오늘로 약속한 2천냥을 가져다 주면 허순백은 래일안으로 성진우와 회계할것이다. 그가 늦추어서 돈을 주는건 대를 물린 빚이여서 허순백이 너무 일찍 서두르지 않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평양쌀값은 하루를 못 넘기며 뛰여오른다. 지난해 흉년이 들었으니 더하다. 때맞춰 식모며 계집들이 려인숙을 떠나면 아무리 재주가 있다한들 성진우가 수습할 길이 없을것이다.

말이 2천냥이지 세놈이 나누어가질것이고 싸움판이 벌어질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때면 려인숙이 진 빚도 어지간할거니 꿔준 사람들이라고 눈이 없다고 가만 앉아있겠는가. 려인숙까지 판대야 뚫린 구멍이나 메울테지.

백씨는 도매점을 나서자 송산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몰아치는 바람도 겨울맛은 잃었다. 봄시위가 시작된것이다. 보통강을 건느니 드넓은 벌로 겨우내 끌어낸 거름을 밭에 뿌리는 농군들의 모습도 보인다. 새 계절이 오고있었다. 눈이 군데군데 덮인 길은 얼고녹으며 몹시 미끄러웠다.

백씨가 허순백의 집대문을 넘어설 때는 해가 기울무렵이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소여물을 끓이는 뜬김이 떠돌며 시큼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오늘은 해종일 기다리고있었수다.》

허순백이 토방을 내려와 맞았다.

《편안하셨나요?》

《어서 들어갑시다.》

손자애를 등에 업은 안주인이 부엌문가에서 인사한다.

《수고로이 오셨수다. 쥔이 속태우며 기다리더니…》

《공연히 마음쓰게 했군요.》

방안에 들어가 마주앉자 백씨는 2천냥짜리 어음을 허순백의 앞에 내놓았다.

《세여보시라요.》

《원, 이 숱한 돈을 거저 받아안는데… 세기는 무슨…》

허순백은 너무 고마와 두손을 흔들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성진우녀석이 여기까지 왔댔다지요?》

《알구있었수? 쌀을 안 실어온다구 풍만난 놈같이 날쳐댔지요. 미처 찧지 못했다는 구실로 늘쿤다는게 어지간히 뻐근했수다.》

《이 돈으로 그놈과 회계하시라요.》

대통을 문 허순백의 눈귀에 물기가 어렸다.

《고맙쉐다. 이 은공을 죽은들 잊겠소. 내 백씨의 일이라면 할수 있는껏 도우리다.》

《은공이구 갚구 하는 생각은 아예 마시구 시름놓고 사시라요. 그 불여우같은 놈한테서 뜯기울래기 어느 하루인들 마음 편했겠어요.》

《여부가 있나요.》

조상때부터 쓰고사는 굴레를 벗게 된 허순백인지라 만시름을 던 한숨을 내뿜었다.

수건을 벗어 무릎에 움켜쥔 백씨가 묻는다.

《솔뫼다리 건너편 골짜기의 밭들은 지난해도 묵여두었던데 주인이 누구나요?》

대통을 물고 뻐금뻐금 빨아대던 허순백이 말했다.

《그 땅은 아예 넘겨보지 마시우. 비석골안에서 샘물줄기가 터져 거기로 흘러내리면서부터 어찌나 랭한지 수수 같은걸 심어두 고작해서 싱아대만큼 자라다 꼬부라듭네다. 장마철에는 강이 넘어나면서 모래까지 날라다 쌓으니 말그대로 불모지외다.》

백씨도 오면서 여겨봤지만 허순백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누구도 심어먹자고 욕심을 내지 않을 땅이였다.

《그래두 쥔이야 있겠지요?》

《하도 눅거리여서 눈먼 내가 사긴 했지만 아예 내버린셈 치구 지내외다.》

《그럼 이 집 땅인가요?》

《허허, 그렇수다.》

《집도 두어채 있던데요?》

《지난가을부터는 빈집이 되였수다. 그 땅을 부쳐먹어보자다가 맥이 빠져 가버렸으니까요.》

머리를 끄덕인 백씨가 허순백의 앞으로 조금 나앉았다.

《그 땅을 나한테 파시라요.》

《거저래두 가지시우, 후날 날 욕하지 않으려거든.》

《좋수다. 땅값은 후날 물어드리겠어요.》

《아, 이러지 마오. 이 많은 돈을 받구두 어떻게 그 알량한 땅값을 받겠소. 사람이 가죽을 쓰지 않는 이상…》

《이건 이거구 저건 저거지요. 그럼 땅흥정을 한셈 치자구요.》

백씨는 자기 속궁리가 쉽게 이루어지자 흔연히 웃고나서 일어섰다.

《왜 벌써 일어나시우?》

《저물기 전에 집으로 가야지요.》

허순백의 집을 나선 백씨는 비석골을 찾아 걸었다. 오면서 보니 골짜기가 장마철에 깎이우면서 허연 맨살을 드러냈다. 백토가 옳다고 여기며 왔는데 다시한번 확인하고싶었다.

야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솔뫼다리아래 강쪽으로 좁은 골짜기가 나타났다. 왼쪽은 송산과 이어진 소나무와 참나무가 들어찬 리봉이고 가파로운 골안 맞은편은 바가지를 엎어놓은것 같은 달래뫼다. 산토끼가 많아 리봉이라 부르고 봄철이면 토성랑쪽에서까지 달래를 캐러 오기에 붙인 야산이름이다. 백씨가 선 비석골에서 한줄기 작은 내가 흐른다.

달래뫼쪽에 농가 두채가 자리잡았는데 겨우내 사람이 살지 않아 문짝들이 하나도 성한게 없다. 농가아래 내가는 풀 한대 없이 황량하다. 모래밭이다. 뙈기밭이 웅기중기 널려있지만 곡식그루터기는 찾아볼수도 없다. 버려진 땅이였다.

백씨는 사태로 허물어진 산기슭에 가서 언땅을 들여다보았다. 돼지비게같은 흙이다. 손톱으로 긁어보니 잔돌 한개도 없다. 이게 백토가 옳다면 가까이에 모래가 있고 산에는 참나무가 들어찼으니 자기를 구울수 있지 않겠는가.

행상길을 다니며 자기장도 여러곳을 돌아본 그다. 옛날부터 자기쟁이재간은 재간중의 재간이라고 했고 가문이 대를 두고 비방을 루설하지 않으며 이어간다고 한다. 량반, 부자들만 쓰던 자기가 이제는 장마당에서 막 팔리는 세월이다.

황해도 수안에 리병일자기공장이 나온지도 스무해가 돼오고 평안도 선천에는 안룡진자기점이 기세를 올린다. 걸음을 떼기는 힘들테지만 일단 일으켜세우면 벌이가 잘될것은 분명하다. 백씨는 어떻게 하면 자기장을 꾸릴가 생각하고있던중이다.

그는 손으로 흙을 뜯어낼수 없자 산턱에 가로 자빠진 참나무줄기를 꺾어들고 그것으로 뚜지고 후려쳐서 마침내 애호박만 한 덩이를 뜯어낸 다음 쓰고온 수건에 싸서 허리에 둘러감고 걸음을 옮겼다.

백씨가 도매점에 당도하니 기다린듯 나리가 문을 열어제꼈다.

《어머니.》

《오냐, 오라빈?》

《웃집에 갔어요.》

백씨가 사는 집을 노상 비우다싶이 하니 경림이가 하루 세축씩 오르내리며 돌본다.

《경림이가 집안일을 다하는구나.》

《어머니 안계시면 날 욕하군 해요. 눈치가 없다느니 엉치가 무겁다느니 하면서… 저녁에 가면서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수수지짐을 지져놔라, 맛있어야 해, 이랬어요.》

《허허, 애두. 그게 다 네가 고와서 그러는게다.》

백씨가 언몸을 녹이기도 전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도원국이였다.

수염을 한들한들 흔들며 인사말을 하는 도원국을 백씨는 기막힌 웃음을 지으며 맞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나요?》

《헤헤, 어찌된 사연인지야 앉혀놔야 알게 아니겠소.》

《앉으시우.》

《기다렸수?》

자리를 잡으며 도원국은 연해연방 간사스러운 웃음발을 날렸다. 요즘 백씨의 마음도 전과 달리 편안한지라 괘씸하게 여겨오는 사람이지만 밉지 않게 바라봤다.

《장사가 잘되는가보군요?》

《백씨가 덩실한 도매점까지 내왔다기에 내 눈으로 구경하자고 왔소.》

《의주길인가요? 장연, 송도길인가요?》

《길인즉 백씨 만나자구 온 길이외다.》

《일부러 단련받자구요?》

《노상 꼬리감추고 살수야 없지 않소.》

《허허허.》

백씨는 도원국의 말재간에 웃고말았다.

평양에서 볼일이 있으니 피할수 없고 붙들려 빚갚기보다 제발로 찾아와 늦춰달라고 하는게 상책이라고 여기며 찾아든 꼴이 분명했다.

《리자가 불어서 얼마 됐는지나 알구 계시우?》

《아무러면 천냥이야 넘겠소.》

《저런-》

백씨는 도원국의 대답에 혀를 찼다. 동전 한잎도 아까와하는 위인이 천냥을 어렵지 않게 불러대니 놀랄 일이다. 잠상이라는게 도박이나 같아서 벌고 날리는 놀음이 아닌가. 그저 장사나 해서 돈벌이할 사람이 못된다. 제 짧은 타산에 노상 밑져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럼 내놓으시라요. 3백냥이면 되겠수다.》

《히야- 고게 다요?》

《계산해보시구려. 난 덜지도 더하지도 않아요.》

《그럼 백냥만 내놓으면 되겠군.》

《약삭바른 소리는 내앞에서 하지 마시라요.》

《2백냥값이 나가는 소식을 가져왔는데두요.》

《혼자 사는 과부한테 무슨 기다리는 소식이 있겠나요.》

도원국은 수염을 배배 꼬아대며 아껴둔 말꼭지를 뗐다.

《내 박천에서 오는 길이외다.》

박천소리에 백씨는 귀가 열리였지만 짐짓 모르쇠를 했다.

《진두장에서 큰 리라도 보셨나요?》

《대령강객주집에서 주인도, 송월이도 만났수다.》

《그래서요?》

도원국의 마음속 저울눈이 기울기 시작했다. 송월의 말과 백씨의 생각이 다르다면 이 걸음은 헛디딘게 아닌가.

《기가 찬 일이지요.》

내친걸음이라 도원국은 백씨가 호기심을 가지게 하려고 큰일이 생긴것처럼 말했다.

《그 시골에 무슨 희한한 일이라도 생겼나요?》

《내 말을 새겨들어야 하우다. 실은 송월이 부탁도 있어서 왔수다.》

《말씀하시구려.》

《송월이가 일을 쳤수다.》

《그애가 무슨 일 치겠나요.》

《그 독한 년이 술심부름을 하다가 어느 량반 골통을 타구로 부셔놨다는거외다.》

속이 철렁해난 백씨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요?》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