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4

 

《여봐라?》

염소수염을 쓸어내린 도원국이 긴 소리까지 뽑아가며 부르기 바쁘게 음식들이 연방 꼬리를 물었다. 이전에는 서로 밀퉁거려가며 먹은 값을 치를래기 그닥 풍성한 상을 마주해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잔치를 하자는건지 잠간새에 기운차게 큰상 하나를 가득 채워놓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뜨이는것은 매 사람에게 차례진 열구자탕이다. 신선로뚜껑이 풀떡거리니 목구멍이 저도 모르게 열리며 울대뼈도 함께 오르내렸다.

한놈은 흉물같은 구두쇠이고 다른 놈은 벼룩이 간도 뽑아먹으려들 좀스러운 깍쟁이인데 오늘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오탄술집에서 당한 망신을 분풀이하려던 서필은 본능적으로 이상한 감각이 들어 자제하며 유양점과 도원국의 낯색만 살폈다.

유양점의 얼굴색은 이전에 만나군 할 때와는 어딘가 다르다. 반갑다는 말도 건네고 입가에 웃음도 띠우고있지만 눈길은 허공을 휘둘러대지 않는가. 뒤가 켕겨서 그러는걸가? 아무리 못할짓을 한 놈들이여도 이렇게까지 차려대며 자기를 맞아줄 위인들이 아니지 않는가.

서필은 도원국의 거동을 주시했다. 두손으로 음식접시를 옮겨놓는게 손장단치는것 같다. 오탄술집 술값이 넉냥어치라면 지금은 그에 열곱도 넘는 상을 펼쳐놓고 린색하며 간교한 잠상이 저리도 흥에 뜬 까닭은 무엇일가?

살진 놈이나 마른 놈이나 한가지로 의문만 자아내는통에 서필은 당장 일을 칠듯 한 분기를 누르고 두 녀석의 속심부터 알아내자고 마음먹었다.

《원국이, 이쯤하면 과히 촌스럽지는 않네그려.》

《여부가 있을라구요.》

시침을 뗀채 북치고 징치는 소리에 서필은 속이 끓어올랐다.

《자, 그럼 한잔술로 속부터 열어보세나.》

유양점이 먼저 잔을 들고 서필에게 처음 면바로 눈길을 보내는데 그 눈빛이 어딘가 상서롭지 못했다.

《서울에서 예까지 먼길 오셨는데 로독도 풀겸 드십시오.》

갑신대며 곁들이는 도원국의 말투도 그전 같지 않다. 당초에 이놈들의 심보를 알수 없어 서필은 말없이 술잔을 들고 고개만 끄덕였다.

《하? 이 열구자탕이란게 고자도 계집곁에 가게 한다는 보신탕이외다. 막혔던 혈이 굽이쳐흐르고 기가 뻗치면 자연 그것도 용을 쓰는거지요.》

술이 두순배 돌아가자 도원국은 신선로뚜껑부터 열고 수염을 적셔가며 먹어댔다. 그와는 달리 식욕이 왕성한 유양점은 저가락조차 들지 않았다.

《이 사람 서필이, 어데 들렸다 오는 길인가?》

평시에는 형자를 붙여서 찾았고 오늘 처음인사도 그랬건만 이젠 례의쯤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반말조로 물었다.

그런즉 오탄술집에서 있은 방금전의 그 일도 나에게 큰 망신을 주려고 저들이 꾸민게 분명하다. 장부에 내 도장까지 찍어놓지 않았는가. 이 모든것은 두 녀석이 나를 기다렸다는것을 말해주며 나한테서 어떤 허점을 잡아쥐고 다과대자고 이같이 요란스러운 자리를 마련한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필은 마음을 도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양바람이 어지간히 사납군그래.》

대답대신 이렇게 말한 서필은 술잔을 단숨에 비워내쳤다.

《바람이란 불다가도 흔적없이 사라지지만…》

도원국이 이렇게 비꼬아대자 《사람의 걸음뒤엔 자취가 남지. 허허.》 하고 유양점이 꼬리를 달며 서필을 조여댔다.

이것들이 무슨 속심으로 이러는걸가? 예상밖의 일에 부닥친 서필은 머리를 짜보았지만 알수 없어 오리무중에서 돼가는대로 응수하는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나서 한생을 살고 제 자취 남긴다면 헛되이 산것은 아니지.》

《헛헛, 아하하.》

유양점이 턱을 들고 호걸스럽게 웃어댔다.

《과시 향목서원에서 함께 배운 지우가 다를세.》

《스승께선 건강하신지?》

《사제간의 도리조차 못 지키네. 임자가 한번 찾아가 인사드리게나. 개화당에서 큰일을 맡아한다면 아마 무척 기뻐할걸세.》

《양점은 오늘 내 비위를 너무 건드리네. 결코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못할 그대가 아닐진대…》

개화파소리가 술판에서 너무도 거침없이 나오기에 서필은 《충의계》의 계률로 유양점을 다스리려들었다.

《원국이, 이거 내 취한게 아닌가?》

《헤헤, 무슨 말씀을… 술 한동이쯤은 입가심물이 아니외까.》

《그런데 내 말길이 헛갈린다고 나무리지 않나.》

《그야 까닭이 있습죠.》

도원국은 제 먹을걸 다 찾아 골고루 배에 채워넣으며 턱수염을 살살 쓸어내린다.

두손으로 살진 닭 한마리를 움켜쥔 유양점은 드세차게 물어뜯어볼새도 없이 먹어버렸다. 그의 성미를 아는 서필은 이녀석이 단단히 생심을 먹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열구자탕에 숟가락을 박자 유양점은 곁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정신없이 들이마시고 퍼먹어 순식간에 바닥을 냈다.

《어험, 어험. 기운이 나는군. 이젠 할 말을 해야 할가부다.》

수저를 밀어놓은 유양점이 서필을 잠시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촌놈들을 얼려먹는 재미가 어떤가?》

말머리부터가 걸고드는지라 서필은 방자하게 구는 유양점을 독기찬 눈으로 쏘아보았다.

《누가 할 소릴… 골탕먹인건 누구들인데…》

《허허, 쬐꼬만 술집 돈을 문게 그리도 아까운가?》

《행실머리가 고약해서지.》

《그쯤한 대접은 약괄세. 이 사람 서필이, 자네 날 뭘루 아나?》

《적반하장일세그려.》

《이 유양점이 벼슬 내놓구 산대서 평양과 서울에 친구가 없을상싶은가?》

서필은 유양점의 도도한 태도와 그루를 쳐대는 말을 통해 전혀 가늠도 못해본 일이 생겼다는것을 느꼈다.

《무슨 불만인지 털어놓게.》

《직판들이하라. 아니, 난 알쏭달쏭한 말이 재미있네.》

《양점이답지 않구만.》

두사람사이에 낀 도원국은 이따금 서필을 가로보며 《애햄, 애햄.》 하고 혀바닥 가려운 기침을 해댔다.

《불쌍가긍한 개화당일세. 조정을 개혁하자니 돈이 없고 돈을 모으자니 옆채기군이 많지. 고균어른이 세상은 넓게 본다지만 턱밑에는 눈길이 못미치니 그 또한 측은하네.》

비틀어 꼬아대는 유양점의 말에 서필은 속이 켕기였다. 저놈이 내뒤를 살피고있었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된다. 이 몇해째 토목공사판을 벌려 돈벌이밖에 여념이 있었는가. 내 한 일은 하나같이 귀신도 알지 못하게 꾸민것이다.

《양점이, 입건사 바로 못하면 뒤일은 나도 어쩌지 못한다는걸 알게. 우리의 계률에는 배신에 대해서는 용서치 않는다는 조목이 있네. 그야 의주 도원국이도 알겠지?》

서필의 칼날같은 소리에 담이 작은 도원국은 두어깨를 솟구며 유양점만 바라봤다. 량반들 틈바구니에 끼여들었다 명줄 끊기우는게 아닌가싶어 겁이 났던것이다.

《허허허.》

유양점은 수염을 쓸어대며 웃고나서 부릅뜬 눈으로 서필을 노려봤다.

《자네 세치 혀끝으로 누굴 놀래우자는건가? 우리한테서 지금껏 모아간 돈이 얼마지?》

《그걸 회계하자는건가?》

《자네가 맡은 서북지구에서 모아들인 돈이 얼마인지 알려달라나?》

《마음이 동해 내놓은건데 이제 와서 왜 따지는가?》

《그 돈이 다 어데로 갔나?》

《그걸 모를 양점이였소?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가 말이요?》

《갈 곳으로 갔으니 알려고 하지 말라, 이 소린가?》

《양점인 내가 사복 채운것으로 여기는건가?》

화제가 뚝 끊어졌다. 두사람은 번들번들한 눈으로 마주보기만 한다. 팽팽해진 줄이 끊어지는 날에는 술상이 넘어가는 일이 날 기상들이다.

그판에 《허어? 놀음같지 않은 놀음에 소경노릇 했으니.》 하고 도원국이 부채질까지 해댄다.

유양점의 눈은 더욱 사나와졌다.

《임자가 이 평양에 세상이 알면 기겁할 한을 끼치구두 친구인 나까지 얼려넘기려드니 큰죄를 두번다시 지을텐가?!》

서필은 금시 간이 졸아들었다. 술기운에 마구 해대는 수작이 아니다. 자기라는 인간을 발가벗겨 종로에 내세울 작정을 한가보다. 모연자금행처를 따지고들 때엔 어떤 실머리가 잡힌게 분명하다. 그는 궁지에서 빠져나갈 오그랑수에 매달리는 길밖에 없었다.

《하도 핍박하니 안해야 할 말이지만 토하는수밖에. 돈이 모은대로 고스란히 들어간건 아닐세. 우에서는 독촉이고 아래는 아래대로 사정이 있어 채워넣을수 없는 형편에서 일부는 벌이 좋은 장사판에 조금 밀어넣었네. 그게 새끼를 쳐야 나도 자네네 같은 사람도 마음이 편할것 같아서 한 일일세.》

《허허, 자넨 서북지구를 맡았지만 충청, 전라도지방 모연은 내 막역지우가 하고있네. 이쯤하면 말귀를 알아듣겠나?》

서필은 유양점의 손아귀에 걸려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모연자금 바친 액수는 비밀이지만 이미 새여 유양점의 귀에 들어간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구차해도 어깨를 낮춰야만 적당히 뭉그려치울수 있다.

《이보게, 의심이 의심을 낳으면 죄없는 친우도 배신자로 여겨지는 법이네. 자네도 사내, 나도 대장부일진대 아무래도 돈을 쥐면 주색잡이도 하지 않나. 그러니 빌 때도 있는거지. 앞서 말했지만 대사를 망치면 안되는 돈이니 메울 방도를 찾아 믿을만 한 장사판에 끼워든것도 사실이네. 어찌겠나. 나라구 청렴한 인간이 될 생각이 왜 없겠나만… 그래 자넨 맹물 먹고 청수 갈기며 사는 량반인가?》

유양점의 기상이 차츰 풀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알고있는것의 태반을 도원국이는 모른다. 의주 잠상이 바라는것은 모연금 안 내고 개화파가 이긴 다음 자기도 그편에 공을 세웠다는 인정을 받아 서울상가에 큰 점포나 하나 내오는게 소원이다. 그러니 서필이를 이쯤 조이고마는게 상책이라고 여겼다. 서필이가 개화파에서 밀려나는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오늘같이 셈을 따지게 된것은 서필의 성가심을 당하지 않기 위한 성쌓기놀음이였다.

《이보오 서형, 우리가 일구월심 바라는건 국정의 개혁이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는걸세. 대의를 중히 여겨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 미룹세.》

유양점은 틀잡힌 말을 하면서도 오늘 일은 더 따지지 않고 뒤로 밀어놓자는것을 못박아 말했다.

평양에 와서 대동강바람에 모자 벗기우고 오탄술집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여 분풀이를 하려던 서필은 지금 오라에서 풀린 심정을 맛보았다. 유양점이 더 파고들어 자기의 비밀을 들추어대면 어쩔번 했는가.

《자, 마음들을 풀고 술이나 마십시다.》

서필은 제 손으로 유양점과 도원국의 잔에 술을 부었다.

《량반님네들 바둑수야 나같은게 알리가 있나요.》

속이 차하지 않는 사람은 도원국이다. 그로서는 오늘 차린 이 요란한 음식값을 어떻게 물 잡도리인가 하는게 제일 근심이다. 량반벙거지 썼던 사람들이라 이번에도 자기 주머니 털려고 들지 않을가. 유양점이는 자기가 잠상에서 큰 밑천을 잡았다는걸 뻔히 알고있다.

《원국이 이 사람, 요즘 벌이도 괜찮겠는데 기분좋게 들게.》

《해해, 너무 쑤시지 마우. 상놈이라도 셈에선 지지 않수다.》

서필로서는 밉든곱든 두사람의 가려운데를 긁어주는게 상수라고 생각했다.

《차린건 두사람이지만 값은 내가 다 치르겠소.》

모자 벗기우고 외상술 뒤쫓아 갚다못해 먹여주는 음식값도 치르자니 서필은 돈보다 체면 깎이는것으로 해서 몸살이 오는것 같지만 선심을 썼다.

《괜히 서울량반이라겠나요. 한번 내도 이쯤이야 해얍죠.》

근심이 덜린 도원국은 서필이 부은 잔을 들고 볼을 오무리면서 쪽 하니 소리내며 마시였다.

《하하하.》

유양점은 서필의 심사는 물론 도원국의 속통머리까지 들여다보며 자못 즐겁게 웃어댔다.

그들 세사람이 취향루에서 술판을 벌리고있을 때 행상길에서 돌아온 백씨는 박석골어구에 들어서고있었다. 이번 행상길은 여느때와 달리 넉달 가까이 객지의 행길에서 보냈다.

도매업을 시작하자니 삼화현과 해주의 선상들과 낯도 익혀야 했지만 바다물계에는 어두운 그였기때문이다. 영업이라고 시작하자면 도매치기할 갖가지 상품을 갖추어놓아야 하니 더더욱 여러곳을 다녀야 했다. 박천에서 송월과 헤여진것이 두달도 더 된다.

집마당에 들어서던 백씨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부터 짓게 되였다.

열여섯살 잡히는 경림이가 도끼를 휘둘러대며 나무를 패고있다. 이젠 대장부가 되였다고 해야 할 경림이다.

《오빠, 좀 쉬고 하라요.》

장작을 날라다 부엌옆 토방에 쌓으며 나리가 하는 말이다. 계집애도 10살을 넘겨 제법 처녀꼴이 잡혔다.

얼마나 고마운 애들인가. 집이나 이따금 건너와 봐달라고 했지 저런 일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앓고있는 제 어머니곁에 있어야겠는데 둘 다 자기 집 마당에서 일하고있으니 백씨의 마음은 미안스러운 생각이 앞섰다.

《얘들아, 누가 이런 일까지 하라더냐.》

백씨의 나무리는 소리가 울리자 《아지미!》 하고 찾는 나리의 목메인 소리와 함께 경림의 손에 들렸던 도끼가 뚝 떨어진다.

《나리야, 허허, 그새 더 고와졌구나.》

마주 달려오는 나리를 껴안으며 백씨는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애들두. 나리, 너야 어머니곁에 있어야지.》

《아지미… 흑흑…》

백씨의 허리를 껴안은 나리가 파고들며 흐느껴우는게 오래간만에 만난 기쁨이 아니였다. 처량한 울음소리가 귀뿌리에 마쳐오자 백씨는 경림이를 바라봤다.

겉만 보아도 이를데없이 순박한 경림이는 남은 장작을 나르는 일을 그냥 하였다. 그 거동도 눈물을 보이지 않자고 참는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나리야, 웬일이냐?》

《엄마가… 우리 엄마가…》

《네 엄마가 어찌됐다는거냐?》

《…》

《말을 해야 알지.》

장작을 다 쌓은 경림이가 백씨쪽으로 돌아섰다. 고개를 맥없이 수그린채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너 그게 무슨 말이냐?》

《장례를 치른지도 한달이 돼와요.》

나리를 품에 안은 백씨는 가슴을 두드려댔다.

《아이구! 하늘두 무심쿠나. 마음씨 고운 형님이… 가시다니.》

경림의 얼굴로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나리의 가냘픈 울음소리는 백씨의 가슴을 한층 아프게 했다.

《그러구두 이런 일을 한단 말이냐?! … 정신들두 없지. 나는 뭐가 되느냐. …》

베적삼소매로 눈물을 훔친 경림이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작은엄마가 사는 정주에 가라고 했어요. … 아지미 오기를 기다렸는데… 오늘은 나무라도 패놓고 떠나려던 참이예요. …》

들을수록 이들의 앞날이 막막한데다 자기와 이은 정이 너무도 절절함을 느낀 백씨는 나리를 더욱 꽉 그러안았다.

《이태전에 아버지도 세상을 뜨셨는데 너희들이 가긴 어데로 간다는거냐. … 나하구 엄마를 찾아가보자. 흙속에 잠든 엄마한테 물어보자. …》

경상골 솔밭속에 작은 봉분 한개가 외롭게 자리잡았다. 남편은 수안광산 굴속에 묻혀 시신조차 찾지 못했으니 저승에서나 만나겠는지.

백씨는 제 손으로 마련한 제물을 차리고 오누이를 차례로 절을 시켰다.

경림이보다 나리가 두손 모아 땅에 머리를 박을 때 백씨는 종시 눈물을 쏟았다.

형님, 이애들을 나에게 맡긴게 분명하니 너무 일찌기 땅속에 누웠지만 걱정하지 마오. 내 자식처럼 키워 청명과 추석날에는 꼭 만나게 하겠어요. …

저승의 혼백앞에 다짐한 백씨는 량손에 경림이와 나리의 손을 잡고 산을 내리였다.

그날밤 백씨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자기 집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나리는 백씨의 팔을 베고 보들보들한 손으로 얼굴을 만져주며 속삭였다.

《아지미, 우린 정말 함께 사나요?》

《이제부턴 엄마라구 불러라.》

《엄마?》

《그래 내가 살아있는 엄마다. 경림아, 너도 알겠니?》

등을 돌려대고 누웠던 경림이가 훌쩍훌쩍 울뿐 대답이 없다.

《경림인 사내가 아니냐. 대답해라. 싫으냐?》

경림이가 눈물절반으로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오누인 어머니를 자식의 도리로 섬기겠습니다.》

《너희들이 싫지 않다니 나도 네 엄마앞에 죄를 더는것 같다. 눈 감기 전에 내가 보고싶었겠는데 얼마나 욕했겠니.》

《어머니! …》

경림이와 나리가 백씨의 품에 안기며 잃었던 어머니를 찾은 심정으로 울었다.

《경림아, 이렇게 하자. 륙로문거리에 내 도매점을 내오자구 집 한채 샀다. 아직 일은 시작 안했다만 비워둘수는 없지 않냐? 그러니 너희 오누이가 그 집을 지키면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해라.》

《어머닌 또 가시나요?》

나리가 묻는다.

《이젠 멀리 다니지는 않지만 노상 집안에 있지 못하는 내가 아니냐. 나린 밥을 할줄 알겠지?》

《그앤 못하는게 없어요. 콩나물도 잘 길러요.》

경림이가 제 동생을 자랑했다.

《됐다. 나한테 너희들은 친자식이나 같다. 우리 함께 살자.》

마음이 돌아선 나리가 소근거린다.

《덕동이 오빠네가 불쌍해요.》

제 슬픔에서 겨우 벗어난 어린것이 남의 걱정을 하는것도 갸륵하지만 덕동이네 집 소식을 모르는지라 백씨가 서둘러 물었다.

《어떻게 됐게?》

이번에는 경림이가 대답했다.

《덕동이 아버진 투전노름에 숱한 빚을 져서 집까지 팔았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어데론가 가버리고 덕동이와 엄마는 경상골안으로 이사갔어요.》

《거기 가서는 뭘한다니?》

《덕동인 제 동무들과 토기 굽는 일을 시작했다나봐요.》

그러니 토기쟁이가 되였다는 소리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그 험한 일을 시작했겠는가. 백씨는 덕동이네도 어떻게 해서나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이 제 육신을 아끼지 않으면 굶어죽지는 않는다. 일하기 싫어하는 건달이 제일 쉽게 하는 일이 집안을 망쳐주는것이고 오금을 아껴 주저앉는다면 거렁뱅이신세를 면치 못하는 법이다. 살자면 이를 악물고 일어서야 한다. 백씨는 덕동이도 자기처럼 살았으면 했다.

《경림아, 도매점은 기와집이다. 너희 오누이가 그 집에서 산대서 부자집 자식이려니 생각해선 안된다. 사람은 부지런히 일해야 하고 속은 곯아서 사는게 좋다. 배가 부르면 놀 생각이 나고 노는 재미가 늘면 구실 못하는 페인이 된단다. 경림아, 내 말을 듣지?》

《우린 어머니만 있으면 어떤 고생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 난 매일 저녁 어머니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겠어요.》

나리를 껴안고 모로 누우며 백씨가 말했다.

《얘들아, 오늘은 마음편히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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